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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스캔들 : 누구의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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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진중권
  • 출판사 : 천년의상상
  • 발행 : 2019년 11월 18일
  • 쪽수 : 4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9041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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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지금 당신이 아는 '현대미술'은 과연 진짜일까?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루벤스, 들라크루아... 쿠르베와 마네, 그리고 워홀 이후 등장한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들까지!
    그들의 그림은 과연 다 자신이 '직접' 그린 걸까?
    우리가 아는 위대한 '원작'original은 모두 '친작'autograph일까?

    "사람들은 왜 화가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그냥 또 다른 직업일 뿐인데."
    "더 많은 사람들이 실크스크린을 해서, 내 그림이 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면 아주 멋질 것이다."
    - 앤디 워홀

    출판사 서평

    예술사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그림 대작' 사건
    - 미켈란젤로부터 렘브란트와 루벤스, 반 고흐를 넘어 워홀과 뒤샹, 무라카미 다카시의 사례까지!

    지난 2016년, 세상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가수이자 화가인 어느 연예인의 얼굴이 반복적으로 비춰졌고 그를 보면서 입 달린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었다. 안 그래도 이런저런 언행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없지 않던 인물인지라 사건이 불거진 후 그를 향한 대중과 언론의 시선은 대체로 싸늘했다. 심지어 그는 '사기꾼'으로 회자되었다. 이른바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후 격렬한 논쟁을 낳았고, 급기야 2016년 12월 21일 검찰은 "조 씨에게 (사기의) 기망행위가 있었다"라고 보고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미술가단체에서는 그에게 추가로 '명예훼손죄'를 물어 소송을 제기했다. 일반 대중 역시 '조영남은 사기꾼'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이들이 앞뒤 따질 것 없이 조영남의 행위는 어떤 의미로든 '사기'라고 판단했다. 극소수만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그중 한 사람이 진중권이다. 당시 트위터 등을 통해 진중권은 이른바 '그림 대작'이라는 문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무엇보다 '미학자'로서 갖고 있던 소신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진중권에 따르면 그 사건은 한마디로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이다. 실제로 이 사건은 2018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지금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미학 스캔들-누구의 그림일까]는 이제는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을 그 사건을 미학적·예술사적 차원에서 혹은 상식적 논리의 차원에서 재조명한다. 이 책의 저자 진중권은 그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내상을 입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사건의 불편한 기억과 더불어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까지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진중권이 말하듯,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은 한때 온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한 부정적 사건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진중권은 "이 사건을 통해 조영남은 (본의 아니게) 우리 미술계에 한 가지 중요한 의제를 던져주었다"라면서 그것이 바로 미술의 '현대성'modernity이라는 의제임을 강조한다. "대중은 이 사건에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남에게 대신 그리게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창작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그 관행을 여전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창작은 신성하다? 예술을 모독하지 마라?
    - 미학자 진중권, 오늘날 '무엇'이 예술인지 다시 묻고 다시 답하다


    미학자로서 진중권을 정말로 절망에 빠뜨린 것은, 현업에 종사하는 화가와 비평가와 미술이론가마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시키고 항소심 판결을 납득시키려면 대중과 전문가 할 것 없이, 다시 한 번 예술사를 '저자성이라는 관념의 변화' 관점에서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른바 '개념적 전회' 이후 미술에 어떤 혁명이 이미 일어났는지 환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학 스캔들-누구의 그림일까]의 1~8장에서 저자는 이 사건과 관련한 미술사적 접근을 시도한다. 즉 예술에서 '저자성'(authorship)에 관한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기술한다. 진중권은 우선, 미술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게 맡기는 것은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의 전통임을 알리고,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 '신화화'된 여러 화가를 중심으로 그 전통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는 물론이고 조수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던 푸생과 쿠르베의 숨은 이야기까지 논거로 제시된다.

    회화가 가장 회화적이었던 바로크 시대에도 거장들은 자신의 서명(sign)이 담기는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의 손에 맡기곤 했다. 다시 말해 화가가 그림을 '손수' 그리는 '친작'의 관행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나마도 20세기 초 현대미술에 일어난 '개념적' 혁명 이후 '친작', 즉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예술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영남 사건'은 이 사회에 통용되는 예술의 관념이 대체로 19~20세기 초에 머물러 있음을 다소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대중은 물론이고, '일부' 작가와 예술가 혹은 관련 전문가의 머릿속에도 '현대미술 100년의 역사'는 통째로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예술을 '숭고한 것'이며 '영원불변한' 보편적 '본질'을 자기 손으로 직접 담아내는 일일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중권은 "영원불변한 예술의 보편적 '본질' 따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의 모든 장르에 공통된 특징은 없다고 말한다. 미술의 모든 장르, 회화의 모든 유형에 공통된 특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수한 영역에만 유효한 미학을 다른 곳에까지 강요하면, 1960년대 이후 미술의 여러 흐름, 예컨대 미니멀리즘․개념미술․팝아트․옵아트, 해프닝과 퍼포먼스 등은 '미술'이라는 범위에서 배제될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앞으로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는 데에도 방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예술의 보편적 특성을 가정하는 '본질주의의 오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미학자로서 진중권이 이 사건에 주목하며 내놓는 요청이다.

    예술에 '좋은'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후진 작품이 더 많다. 관행에 저항하는 것만이 예술이라면 생산되는 작품의 90퍼센트 이상은 예술이 아닐 게다. 조영남의 것이 평가적 의미에서 '좋은 예술'이 아닐 수는 있지만, 분류적 의미에서까지 '예술'이 아닌 건 아니다. 또 "돈벌이 수단"이라고 해서 예술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예술의 상업화는 팝아트의 미적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령 워홀은 예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것을 아예 작업 콘셉트로 삼았다.
    ('9장 조영남 사건에 관하여' 중에서/ p.252)

    진중권이 이 사안에 끼어든 세 가지 이유
    - 진중권의 비판은 미술계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예술모독'인가?


    [미학 스캔들-누구의 그림일까]은 조영남 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2016년 7월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세 편의 기고를 우선 9장과 10장에 걸쳐 다시 정리했다. 이 부분에서는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게 맡기는 관행에 대한 일반 대중의 비난과 미술계 안팎 몇몇 인사의 비판을 일일이 반박하는 가운데 현대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성'의 현대적 기준을 세세한 자료 제시와 더불어 저자 특유의 명쾌함으로 깔끔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1~13장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미술계 전문가들을 겨냥한 내용이다. 1심에서 조영남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그동안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던 평론가, 미술이론가, 미술사학자 등이 뒤늦게 '진중권 비판'에 뛰어들었는데, 이들의 비판에 대한 진중권의 반박이 이 부분에 담긴 것이다. 여기서 진중권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의 미술사 지식이 얼마나 일천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또 작품의 저자성에 관한 이들의 논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진중권은 이 책의 본문에서 거듭 자신이 "이 사안에 끼어든 이유"를 명확히 밝힌다. 첫째, 검찰이 무차별하게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대작은 관행적으로 행해져왔으며,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을 누군가가 구매했을 텐데, 그때마다 고객에게 대작 사실이 고지되지는 않았다. 이는 조영남뿐 아니라 다른 "유명 작가"도 원칙적으로 '사기범'으로 기소당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의미다.

    둘째, 몇몇 언론에 의해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미술의 미의식이 '과거'의 '아름다움'에 고착되어 있었다면, 현대미술은 특유의 전위의식으로 사회를 '미래'의 새로움으로 이끌어왔다. 그런데 몇몇 언론은 대중을 타임머신에 태워 100년 전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 파리를 동경하던 식민지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현대미술 100년의 '미적 성취' 자체를 무효화한 것이다. 예술적 실험이 동시에 사회적 혁신의 전주곡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미적 낙후성의 후과는 그저 예술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친작 숭배'가 미래 예술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컬렉터들의 친작 숭배를 이해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미적 취향은 "종종 끔찍하다"라고 일갈하면서, 예술이 이렇게 '친작 페티시즘'에 영합한다면, 1960년대 이후 등장한 다양한 예술언어가 예술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산업이 등장하는 데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온갖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날, '친작'에 집착하는 것은 미학적 쇄국정책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이유를 밝히면서 그는 비판자들을 향해 말한다. "나는 조영남이 조수를 사용할 '권리'를 옹호했지, 그가 조수를 사용한 '방식'까지 옹호하지는 않았다." 진중권은 흔히 오해하듯, 대작 작가를 마구 사용한 (그리하여 도덕적으로는 얼마든지 비난받아 마땅한) 조영남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작가-조수 관계를 합리적으로 바꾸려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조수 사용 자체를 불법시하고 검찰에서 기소까지 하려고 덤벼든다면, 그 어떤 논의도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예술의 신탁통치, '주리스토크라시'를 반대한다!
    - 검찰의 무지와 미술계의 엘리티즘을 향한 비판


    "현대미술의 규칙을 왜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이 제정하려 드는가?" 애초 진중권이 제기한 쟁점은 바로 이것이다. "섬세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니 "미술계 밖에서 형사재판․인민재판의 굿판을 벌일 게 아니라 미술계 안에서 윤리적․미학적 논쟁을 시작하자"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데에 공식적 반대를 표명한 이는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미술계(와 그들을 비롯한 예술계)는 자기들이 빗장을 풀고 진심을 다해 논의해야 할 사안을 무책임하게 사법부로 넘겼다. 대한민국 미술계가 스스로 법원에 신탁통치를 바라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진중권은 이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미술계' 인사들을 일컬어 '미적 선민'이라 칭하면서, 그들이 조영남을 작가로 진지하게 받아주는 것을 "모양 빠지는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미대도 안 나온 딴따라의 화투 쪼가리까지 예술이라니 고상하신 뮤즈 신의 자존심이 상하신 게다. 이는 이들만이 아니라 미술을 좀 안다는, 혹은 미술을 좀 한다는 다른 많은 이들의 감정이기도 하다. 이해가 간다. 하지만 솔직히 재수는 없다. 뒤샹과 워홀이 깨려고 한 게 그런 허위의식이었다. 베냐민은 그것을 '예술의 속물적 개념'이라 불렀다. 예술, 개나 소나 해도 된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한 거 아니다. 그걸 보여주려고 뒤샹은 변기에 사인을 하고, 워홀은 회화에 '찌라시' 기술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조영남을 편드는 게 모양이 좀 빠지더라도 스타일 구겨야 할 때는 구겨야 한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저 '조영남 편들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지한 검찰과 미적 선민의식에 빠져 있는 미술계를 향한 합당한 비판이다.

    이 책에서 여러 번 확인하는바, "현대미술 작가들은 왜 창작에서 관념과 실행을 분리"하려 한 것인가. 그건 "전통회화를 토대로 형성된 미의식이 더는 현대의 미감에 어울리지 않고 작가의 터치가 생명이라고 보는 장인적 생산이 더는 사물을 만드는 현대의 산업적 방식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관념과 실행을 분리한 덕분에 1960년대 이후의 미술 영역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됐고, 미술적 프로젝트의 스케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그 덕에 "오늘날 미술은 천 개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진중권은 강조한다. 관념과 실행의 분리가 없었다면 워홀을 비롯하여 현대미술을 이끄는 슈퍼스타들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토록 긴요한 문제 앞에서 미술계와 예술인과 여타의 전문가 집단은 진지한 논의도 시도해보지 않은 채 비겁하게 '주리스토크라시' 아래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라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진중권이 조영남 사건을 법적 측면에서 조망해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술계에서 이 문제를 법원으로 들고 간 것과는 다르게, 법학계에서는 외려 이를 법만능주의(jusristocracy)로 보아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음을 지적하면서 그는 조영남 사건을 바라보는 법학계 내지 법조계의 시각을 소개한다. 그리고 1심판결과 2심판결 내용을 면밀히 비교하면서 서로 어긋나는 두 판결의 바탕에 현대미술에 대한 상이한 관념이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항소심 판결은 현대미술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법원에까지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진중권의 시각이다.

    대작 논란을 미술계의 자체적 논의로 해결하려 했다면 아마 그 자체가 한국 미술의 "고유한 발전"에 도움이 되었을 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갈등 해결을 맡은 담당자들의 전문성과 합리성"이 떨어지고 "합리적 제도"도 없다 보니, 결국 논의가 법정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남형두 교수는 이런 경우조차 사법부에서는 되도록 "재판을 소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자치가 보장된 영역에 사법이 자칫 잘못 개입하거나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예술의 퇴보를 가져오는 등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리스토크라시는 실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미성숙의 증거다. 독일에서도 근대화의 초기에는 시민들이 툭하면 사안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일상의 "법정화"(tribunalisieren) 현상이 빚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법조계까지 미술계 안에서 해결하라고 권하는 문제를 정작 미술계는 법정으로 가져갔다. 더욱이 대한민국 미술계가 조영남에 대한 기소를 묵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왜곡된 사실과 논리로 검찰의 기소 논리를 지원했고, 심지어 법정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11개 미술가단체에서는 별도로 조영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다. 이 건은 2016년 법원에서 각하 처분을 받았다.
    ('14장 예술의 신탁통치, 주리스토크라시' 중에서/ p.370)

    목차

    들어가는 말

    1 '그의 손으로'- 미켈란젤로 혼자 다 그렸다고?
    르네상스의 공방
    '기술'은 '예술'이 되고
    친작의 신화

    2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것은 자화상인가, 자화상이 아닌가
    렘브란트의 서명
    자화상은 자화상이 아니다
    렘브란트의 자기숭배?

    3 루벤스의 스튜디오- 17세기의 어셈블리라인 회화
    누구의 그림인가
    17세기 감정의 패러독스?

    4 푸생은 세 사람인가- [판의 승리], [바쿠스의 승리], [실레누스의 승리]
    푸생이냐 루벤스냐
    푸생의 스튜디오
    [판의 승리]와 [바쿠스의 승리], 둘 중 어느 것이 친작인가
    [실레누스의 승리]

    5 들라크루아의 조수들- 낭만주의와 19세기 친작 열풍
    낭만주의 혁명
    [럼리의 친필]
    들라크루아의 조수들

    6 신화가 된 화가, 반 고흐- 화가의 전형이 아닌 '예외적 존재'
    쿠르베의 작업실
    마네 이후의 인상주의자들
    고흐의 신화

    7 아우라의 파괴- 20세기 미술사에 일어난 일
    신의 자리를 차지한 예술
    모더니즘의 반反미학
    후기모더니즘
    팝아트와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의 조건

    8 예술의 속물적 개념- 낭만주의 미신에 사로잡힌 21세기의 대한민국 미술계
    증발한 20세기
    예술의 신성가족
    신분에서 기능으로

    9 조영남 사건에 관하여- 현대미술의 '규칙'과 대중·언론·권력의 세 가지 '오류'
    조영남은 사기꾼인가?
    저작권법 위반인가?
    이른바 '사기죄'에 관하여
    범죄(?)의 재구성
    검찰이 저지른 범주 오류
    유시민도 모르는 '조영남 사건'의 본질
    데이미언 허스트 vs 데이비드 호크니
    물리적 개입이 있어야 예술인가?
    조영남만은 안 된다?
    관행을 깨야 하나, 따라야 하나?
    세 가지 오류

    10 조영남 작가에게 권고함- 내가 이 사안에 끼어든 세 가지 이유
    조수가 창작자다?
    피블로프의 개
    작가와 조수의 관계
    슈뢰딩거의 대작
    발상과 실행의 분리
    원작에서 복제로, 거기서 합성으로
    개입해야 할 세 가지 이유
    조영남에게 보내는 권고
    예술의 고유한 관습

    11 조영남은 개념미술가인가- 미술평론가 임근준 등의 주장에 대한 반론
    피상적인, 너무나 피상적인
    백 투 더 프리모던
    화수추방론

    12 두 유형의 저자- 저들이 개념미술의 개념을 '퇴행'시킨 이유
    작품의 저자는 누구인가
    작가의 손
    저자의 두 유형

    13 워홀의 신화- 환상 속 워홀과 현실 속 워홀
    핸드메이드-레디메이드
    워홀의 신화
    워홀의 시대는 끝났다?
    상품화 · 상사화 · 금융화
    아우라와 탈아우라

    14 예술의 신탁통치, 주리스토크라시- 현대미술의 규칙을 검찰이 제정하려 드는 게 옳은가
    주리스토크라시
    빌라도와 대제사장
    카프카의 재판
    저작권법 위반
    어떤 포스트모던

    본문중에서

    오늘날 '예술'이라 하면 흔히 한 개인의 고독한 '창작'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시절 예술의 생산은 성격상 여러 기술자들 사이의 협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방에는 제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확립된 조직체계와 작업절차가 존재했다. 이 작업자 집단의 꼭대기에 장인이 있었고 그 아래로 조수나 제자가 고용되어 있었다. 물론 그 장인도 한때는 다른 장인의 조수 혹은 제자였을 것이다. 다빈치 같은 거장도 어린 시절에는 명장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조수로 일했다.
    (/ p.21)

    중세와 르네상스에는 이렇게 진품성authenticity의 개념이 친작성autographness과 일치하지 않았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듯이 당시에 '제작된'fatto이라는 말은 '스스로 만들다'fare 외에 '만들게 시키다'far fare라는 뜻도 갖고 있었다. 즉 장인이 조수에게 만들도록 시킨 작품도 "그[장인]의 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간주됐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작품이 일정한 품질을 갖추고 해당 장인의 양식을 반영하기만 한다면 누구의 손을 거쳤든 당시에는 장인의 진품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우리도 물건을 살 때 브랜드는 따져도 그것을 실제로 만든 이들의 이름은 굳이 묻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다.
    (/ p.24)

    친작의 관습은 이처럼 비교적 최근에 확립된 것이다. 그 관습이 관행으로 굳어지자 과거에도 당연히 그랬으리라 착각들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바사리와 같은 르네상스 저자들의 글을 읽으면 마치 그 시절에 이미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근대적 예술문화가 '완성태'로 존재한 듯 느껴진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저작이 보여주는 것은 르네상스의 '이상'일 뿐 그 시대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홀로 비계에 누워 그 모든 그림을 손수 그렸다는 미켈란젤로의 전설. 이 신화와 현실 사이에는 상상력만으로는 메꿀 수 없는 넓은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간극이 가끔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p.43)

    이제 한 가지 물음이 남았다. 렘브란트는 왜 제자의 모작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판매했을까? 화가의 자화상을 찾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그림에서 화가의 친필을 기대할 것이고 렘브란트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들의 손에 자신의 친필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모작을 넘겨줬을까? 판 데 페터링은 그것이 명성구매자naemkooper, 즉 작품의 품질과는 관계없이 작가의 이름만 보고 작품을 사는 이들을 조롱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당시 맥락에서는 제자의 자유모작도 얼마든지 스승의 자화상이 될 수 있었다.
    (/ p.63)

    루벤스의 친필은 예비 작업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말은 그의 대작들이 대부분 리터치 작품이라는 얘기다. 흔히 루벤스는 조수들이 작품을 실행하는 과정을 지휘 · 감독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말도 글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기록에 따르면 루벤스는 조수들의 작업을 감독하는 일을 믿을 만한 제자 반 다이크에게 거의 맡겼다. 심지어 당시 항간에는 루벤스가 아예 작업 현장에는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풍문까지 나돌았다.
    (/ p.74)

    루벤스의 시대에는 첫째, 장인의 양식에 따라 그려져 그의 작품으로 식별되며 둘째, 장인이 만든 것 못지않게 훌륭한 품질을 가진 작품이라면 설혹 조수들이 그렸더라도 장인의 터치가 구현된 장인의 원작으로 간주됐다. 친작에 집착하는 이들은 그의 스튜디오 작품들을 되도록 그의 친작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그중에는 심지어 그의 스튜디오작 전체가 친작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루벤스는 워낙 그림을 잘 그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이틀이면 충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천 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 혼자 그렸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 p.85)

    그 시대의 다른 화가들에게는 이른바 '스튜디오 모작'이라는 것이 있었다. 장인의 감독 아래 조수가 베껴 그린 이 스튜디오 모작은 원작보다 가치가 떨어지기는 해도 장인의 보증을 받은 진품으로 간주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루벤스나 렘브란트는 종종 인기 있는 작품의 스튜디오 모작을 만들어 판매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푸생은 이들과 달리 스튜디오에 조수를 고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레누스의 승리]가 모작이라면, 그것은 푸생의 감독을 받은 스튜디오 모작이 아니라 그와 별 관계가 없는 누군가가 베껴 그린 순수 모사화模寫畵일 것이다.
    (/ p.107)

    다만 드 플라네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들라크루아가 마지막으로 붓을 대어 하드에지를 소프트에지로 바꾸었다는 증언이다. 그림에서 화가의 개성은 '터치'의 특질에서 드러난다. 드 플라네에 따르면 들라크루아가 한 것이 바로 이 마지막 터치였다. 실제로 그 마지막 붓질이 제자가 그린 작품을 들라크루아의 스타일로 마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라크루아는, 그 스타일을 남이 대신할 수 없는 "반 고흐의 개성적 표현과, 그 스타일을 조수들이 넘겨받을 수도 있는 루벤스의 비개성적 표현의 사이에" 있었던 작가였는지도 모른다.
    (/ p.125)

    하지만 고흐는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이미 1880년대부터 그는 서서히 명성을 얻는 중이었다. 예를 들어 배우이자 극장장 · 영화감독이었던 앙드레 앙투안은 파리의 자유극장에 쇠라 · 시냐크와 더불어 고흐의 그림을 걸었다고 한다. 1888년 고흐는 브뤼셀의 '20인회'가 연 전시회에 초대작가로 선정된다. 당시 '20인회'의 멤버 중 하나가 고흐를 혹평했으나 툴루즈 로트레크와 폴 시냐크가 그를 열렬히 옹호해주었다고 한다. 특히 시냐크는 고흐 찬미자 중 하나로, 1889년 고흐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를 찾아가기도 했다.
    (/ pp.143~144)

    1913년의 작업노트에서 뒤샹은 작품work을 작업work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객체'로서 작품을 '활동'으로서 작업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그의 방법은 "예술을 명명하는 일을 제작하는 일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레디메이드 전략이 탄생한다. 1913년부터 뒤샹은 자전거 바퀴 · 눈삽 · 병 · 건조대 등 기성품에 이름만 붙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소변기에 'R. Mutt'라는 허구적 인물의 서명을 넣은 [샘](1917)이리라. 이와 관련하여 다다이스트 잡지 [블라인드 맨]에는 [샘]을 변명하는 작가 루이즈 노튼의 글이 실렸다.
    (/ p.171)

    이제 그들이 조수를 쓰는 관행에 그토록 분노했던 이유가 드러난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미술은 여전히 온갖 아우라를 뒤집어쓰고 있다. 미술이란 "예술가 자신의 혼"을 담아내는 활동, 즉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은 "독자적 화풍"으로 "창작자"의 "개성과 독창성"을 표현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19세기 미학에 사로잡혀, 그들은 차마 들어주기 민망한 거창한 어휘로 기어이 미술을 거룩한 활동으로 만들어놓고야 만다. 그런데 애써 이룩해놓은 이 거룩한 아우라를 딱히 족보도 근본도 없어 보이는 가수 나부랭이가 깨버렸으니 그들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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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진중권(JUNGKWON CHI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3~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62종
    판매수 74,567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1994년 [미학 오디세이]로 미학이라는 학문을 한국 사회에 처음 대중적으로 소개한 이래, 줄곧 그만의 독창적인 미학 세계를 펼치며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문화비평가, 시사평론가, 시대의 부조리에 독설을 날리는 우리 시대 대표 논객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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