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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세계사 : 마흔이 되기 전에 갖춰야 할 역사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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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

    1. 관용(Tolerance) ― 결정적 차이는 ‘관용’의 유무에 있다. 최초의 세계제국 아시리아는 속주민에 대한 혹독한 탄압과 강압 통치로 일관하다 120년 만에 멸망했다. 반면 로마는 속국의 최고 인재를 황제에 과감히 발탁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관용’을 발휘하여 1,000년 넘게 패권을 유지했다.

    2. 동시대성(Simultaneity) ― 기원전 202년, 각각 해하전투와 자마전투에서 승리하고 세계제국의 길로 나아간 한나라와 로마. 두 나라는 3세기에 치명적 위기를 겪는다. 이때 한제국은 멸망한 반면 로마제국은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는다. 이렇듯 결말까지 똑같지는 않지만 두 제국의 흥망성쇠는 주목할 만한 ‘역사의 동시대성’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런 ‘동시대성’은 역사의 어떤 도도한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걸까?

    3. 결핍(Deficiency) ― 기원전 5000년~기원전 2000년경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건조화’가 진행되었다. 건조화는 ‘결핍’으로 이어지는데 당대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큰 강 주위로 모여들어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를 형성했다. ‘건조화’와 ‘결핍’이라는 도전에 맞선 응전의 결과 얻어진 열매가 문명 태동인 셈이다.

    4. 대이동(Huge Migration) ― 대이동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4~5세기 게르만 민족 대이동은 서로마 제국 멸망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서유럽 각지에 게르만 국가를 탄생시켜 고대 세계 종말을 초래했다. ‘민족이동사’를 살펴보다 보면 오늘날 전 세계적 문제로 주목받는 ‘난민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5. 유일신(Monotheism) ― 인류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동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고차원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좌뇌가 우뇌의 작용을 억제해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갈 길을 잃은 인류가 찾아낸 대안이 ‘유일신’이라고 주창한다.

    6. 개방성(Openness) ―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아닌 로마만 고대 지중해 세계의 강자가 되어 제국의 길로 나아간 이유를 저자는 ‘개방성’에서 찾는다. 직접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아테네조차 시민 요건을 까다롭게 하여 폐쇄적인 시민 집단 안에서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반면 관용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로마는 노예를 제외한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 이 ‘개방성’이 로마를 제국의 길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7. 현재성(Nowness) ― “모든 역사는 현재사다.” 역사는 한 장면의 단절도 없이 ‘지금 이 순간’으로 이어지고 확장하며 ‘현재성’을 획득해간다. 역사가 학문의 중심축이며 역사에 문리가 트이면 모든 세상사에 문리가 트인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인류가 현재 직면하는 문제는 대부분 과거의 인류가 이미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고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낼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제대로 된 역사지식보다 강력한 생존무기는 없다
    “세계사 문맥력과 통찰력을 가진 자가 변화무쌍한 향후 세계를 이끌게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자라고 번성하다가 쇠퇴의 과정을 거쳐 죽고 소멸해간다. 이는 자연의 이치이며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다.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마치 생명체처럼 탄생과 발전, 번영과 쇠퇴를 거쳐 몰락하고 사멸한다. 이것이 우리가 쉼 없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역사는 지식 창고에 오래 쌓아두어 곰팡내 풍기는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인간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 펄떡펄떡 살아 숨 쉬며 때론 여행자를 위한 지도나 나침반이 되어주고 때론 늙은 독서가를 위한 돋보기가 되어주는 실용적인 학문이다. 아니, 역사는 단지 실용적인 학문 정도가 아니라 삶의 ‘무기’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저자는 역사학이 실용적인 학문일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모여 이루어지는 ‘지식 마차’의 중심축”이라고 말한다.

    “중심축 없이 제대로 된 마차가 완성될 수 없고 1미터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듯 (역사학이라는 중심축 없이) 인간의 지식체계도 완성되기 어렵다고 본다.”

    역사는 우리 삶의 현장에 살아 숨 쉬며 ‘나침반’이 되고 ‘돋보기’가 되어주는 실용적인 학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역사지식, 즉 ‘세계사 문맥력’과 ‘통찰력’을 가진 자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향후 세계를 이끄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사 문맥력’과 ‘통찰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저자는 7가지 핵심 코드를 제시한다. 관용(Tolerance), 동시대성(Simultaneity), 결핍(Deficiency, 건조화), 대이동(Huge Migration), 유일신(Monotheism), 개방성(Openness), 현재성(Nowness)이 그것이다. 이 7가지 코드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세계사를 매개로 생존무기를 날카롭게 벼리는 작은 ‘숫돌’이 되어줄 것이다.

    인류 5,000년사를 사유하고 통찰하는 7가지 코드
    관용・동시대성・결핍・대이동・유일신・개방성・현재성


    1. 관용(Tolerance) ―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세계제국 아시리아. 한때 주변국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절대강자의 지위를 누렸으나 비교적 짧은 기간 영광을 누리고 멸망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에 반해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1,000여 개 도시국가 중 하나로 출발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진정한 세계제국으로 부상하여 오랫동안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두 제국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관용’의 유무에 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최초의 세계제국으로 자리매김했으나 120년 만에 멸망했다. 반면 테베레강 유역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당대의 유일 패권국으로 성장하여 1,000년 넘게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시리아는 속주민에 대한 혹독한 탄압과 강압 통치로 일관하다 대규모 반란으로 멸망한 데 반해 로마는 임무 완수에 실패하고 전쟁에 패한 동족이나 동료에게 ‘패자부활전’을 통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고 속국의 최고 인재를 과감히 황제에 발탁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관용’을 발휘함으로써 점점 더 강력해졌다.

    2. 동시대성(Simultaneity) — 서로 교류가 전혀 없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동일한 사건이 동일한 시간대에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역사의 동시대성’이라고 한다. ‘동시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우선 동양의 ‘한제국’과 서양의 ‘로마제국’을 꼽을 수 있다.
    한과 로마는 거의 동시에 제국의 길로 나아갔다. 기원전 202년의 일이었다. 그해에 한나라 유방은 항우의 초나라 군대를 해하전투에서 격파하고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로마는 제2차 포에니전쟁의 자마전투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군대를 꺾고 서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며 세계제국의 길로 나아갔다.
    3세기에 한과 로마는 치명적 위기를 겪는다. 한제국은 후한 시대의 뛰어난 지도자 광무제 재위 기간에 번영을 이루었으나 그의 손자 숙종이 열여덟 살의 젊은 나이로 즉위한 무렵부터 정치가 혼란스러워지고 각지에서 농민의 난이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세기 말에 시작된 황건의 난으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다가 결국 멸망했다.
    로마제국은 최고의 번영을 이룬 ‘5현제 시대’를 지나 5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그의 아들 콤모두스가 제위를 이어받으면서 정국이 혼란스러워졌다. 제국은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는 치명적 위기상황에 맞닥뜨렸다.
    3세기 거의 동시에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를 로마제국은 위태위태하게 넘어간 반면 한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결말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같은 해에 등장한 동양과 서양의 세계제국이 거의 같은 시기에 존망의 기로를 맞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역사의 동시대성’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기원전 1000년경 당대의 문명 선진 지역인 그리스, 오리엔트, 인도, 중국에서 거의 동시에 매우 수준 높은 ‘사상’과 ‘철학’이 탄생했다.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이 태동했다. 오리엔트에서는 예레미야 등의 많은 예언자가 등장했으며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배화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가 태어났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출현에 이어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했다. 또 중국은 공자, 노자를 필두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부를 만큼 많은 사상가를 배출했다. 이런 ‘동시대성’은 역사의 어떤 도도한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걸까?

    3. 결핍(deficiency, 건조화) — 저자는 문명 탄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건조화’, 즉 ‘결핍’을 꼽는다.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 무렵 전 지구적으로 대규모 ‘건조화’가 진행되었다. 당시 건조화는 아프리카 북부에서 시작해 중동과 고비사막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의 이른바 4대 문명이 태동한 지역이다.
    그중에서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펼쳐진 광대한 사하라사막에 주목해서 ‘건조화’ 현상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오늘날 이곳은 메마른 사막지대지만 역사적으로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곳은 지구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습윤기후와 건조기후를 반복해온 지역이다. 이곳에 사막화가 진행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학자들은 기원전 500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 이전 사하라는 녹음이 우거져 ‘그린 사하라(Green Sahara)’라고 불렸다.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공중엔 새들이 땅 위엔 수많은 동물이 먹이를 찾아다니고 질주하는 광경이 일상적으로 펼쳐졌다. 사하라에 지금도 남아 있는 타실리나제르(Tassili n’jjer) 동굴 벽화를 보면 당시 습윤기후 풍토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이야 저런 완벽한 사막지대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물도 풍부하고 식량으로 이용되는 동식물도 넘쳐났다.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의 그린 사하라처럼 풍요롭던 지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전 지구적 건조화 환경에 맞닥뜨리면서 생명 유지의 필수 요소인 물을 찾아 큰 강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나브로 크고 작은 마을을 이루었다. 그 마을들이 통합되며 도시를 형성하고 국가를 건설했다. 그 과정에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마침내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
    대규모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물가로 몰려든 일은 어떻게 문명 태동으로 이어졌을까? 저자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남긴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다”라는 명언에서 답을 찾는다. ‘건조화’와 ‘물 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는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맞서야 했다. 그런 역동적인 과정에 그 시대의 인간들은 좀 더 영리해지고 유능해지며 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창조해냈다.

    4. 대이동(Huge Migration) — 인류사와 함께 시작된 민족이동은 국가와 대륙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놓았고 여러 차례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게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민족이동은 ‘게르만족 대이동’이다. 엄청난 규모의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이 사건은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일어났다. 게르만족 대이동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민족이동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 사건의 영향으로 유럽 전체가 송두리째 변화했기 때문이다.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기후 변동’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은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품종개량으로 추위에 강한 작물 재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1,500년 전 무렵의 세계에서 갑작스러운 기후변동은 식량 부족과 기근으로 이어졌으며 민족이동으로 귀결되었다.
    사실 가족 단위 및 소규모 집단의 이민 형태는 본격적인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2세기 무렵부터 있었다. 로마제국은 그런 이민을 까다롭게 규제하지 않았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하지도 않았다. 초창기만 해도 그들은 라틴어를 제대로 쓸 줄 몰라 막일을 하거나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중 일부는 로마군에 입대하여 용병으로 일하기도 했다. 게르만족은 라틴계 로마인보다 체격이 커서 귀중한 병력 자원으로 몸값을 인정받았다.
    4세기 무렵부터 게르만족은 엄청난 규모로 무리 지어 서로마제국 영토로 물밀듯 밀고 들어왔다. 아시아에 살던 기마민족인 훈족이 서쪽으로 옮겨옴에 따라 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렇게 일어난 대규모 이동이 ‘게르만족 대이동’이다. 게르만족 대이동은 로마제국이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와 결부되면서 서로마제국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서유럽 각지에 게르만 국가를 탄생시켜 고대 세계 종말을 초래했다.
    민족이동은 왜 일어날까? 식량 부족을 일으키는 ‘건조화’, ‘한랭화’ 등 기후적 요인이나 종교적 박해, 전쟁과 기근, 노예 매매 등이 주요 원인이다. 크고 작은 민족이동을 통해 한 지역과 대륙, 전 세계 세력과 판도가 끊임없이 달라져 왔고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민족이동사’를 살펴보다 보면 오늘날 전 세계적 문제로 주목받는 ‘난민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5. 유일신(Monotheism) — 미국 프린스턴대학 심리학 교수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에 따르면 3,000년 전의 인류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그가『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이라는 책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서사시를 풀어가며 검증한 사실이다. 그는 인간이 신의 목소리를 듣던 시대를 ‘양원 정신(Bicameral Mind)’ 시대라고 불렀다.
    인류가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던 시기는 인간이 동굴에서 나온 이후 7,000여 년 동안이다. 그러던 인류가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는데, 대략 기원전 1000년 무렵의 일이다. 인간은 왜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을까? 의식이 발전하고 고도로 발달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저자는 줄리언 제인스의 이론을 근거로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좌뇌가 우뇌의 작용을 억제해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본다. 또한 그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현상’이 유일신교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추정한다.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갈 길을 잃은 인류가 찾아낸 대안이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왜 인류 5,000년사를 사유하고 통찰하는 7가지 핵심 키워드에 종교, 그중에서도 ‘유일신’을 포함시켰을까?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갈 길을 잃은 인류가 찾아낸 대안인 ‘유일신’과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3대 유일신교가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많은 전쟁과 분쟁의 배후에 종교간 첨예한 갈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6. 개방성(Openness) ― 잠깐 질문을 던져보자. ‘고대 지중해 세계의 수많은 폴리스 중 왜 유독 로마만 강대국이 되었을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왜 로마처럼 강대국이 되지도 제국의 길로 나가지도 못했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저자는 그중에서 특히 ‘개방성’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그는 다른 폴리스가 모두 폐쇄적이었고 오직 로마만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인이 지녔던 특이하고도 매력적인 장점인 ‘개방성’을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만큼 멋지게 서술한 이가 또 있을까.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고대 그리스 국가들의 리더 격이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잠시 살펴보자. 우선, 스파르타다. 스파르타는 건국 초기부터 엄격한 쇄국 정치로 일관했다. 이 시대의 쇄국 정치는 정식수교를 거부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좀 더 원초적 의미에서의 쇄국 정치였다. 스파르타의 총인구 중 스파르타 시민권(18세 이상 성인 남자)을 획득한 사람은 고작 1〜2만 명에 불과했다. 5〜10배에 달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결격 시민’ 혹은 ‘예속민’이라는 이름으로 차별받았다. 스파르타에도 평등과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민권이 있는 1〜2만 명에만 주어지는 권리였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만큼 철저한 쇄국 정치를 표방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역시 평등과 민주주의는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외부인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서 상당히 폐쇄적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는 시민 요건을 까다롭게 관리해 집단의 질을 높였다.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폐쇄적인 시민 집단 안에서 평등을 실현하고 유지하려 했다.
    기원전 451년 아테네 정부는 부모가 아테네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 전까지 아버지가 아테네 시민이면 인정해주던 시민권을 어머니까지 아테네 출신이어야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충격적이게도 아테네의 영웅이자 민주정을 완성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페리클레스가 단행한 조치였다. 아테네 정부는 이주자와 그들의 자녀뿐 아니라 자손에게도 이 제도를 적용했다. 그 때문인지 이후 아테네에서는 장기간 시민 인구 변동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처럼 페리클레스가 시민권법을 시행하면서 아테네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로마는 그리스와 반대로 로마 시민권을 이방인에게도 개방했다. 로마는 외부인을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개방성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강화되었다. 공중목욕탕 카라칼라 욕장(Terme di Caracalla)으로 잘 알려진 카라칼라 황제(Caracalla. 본명 Marcus Aurelius Severus Antoninus, 재위 211〜17년)는 212년 로마제국의 자유민을 모두 로마 시민으로 인정한다고 공표했다. 이 조치로 로마에서는 노예를 제외하고 자유인이면 누구나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대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가진 한 가지 장점인 ‘개방적인 성향’은 로마를 고대 지중해 세계의 수많은 도시국가 중 유일하게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7. 현재성(Nowness) ― “모든 역사는 현재사다”라는 말의 의미는 뭘까? 역사는 어느 한순간 한 장면도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오늘, 지금 이 순간으로 이어지고 확장하며 ‘현재성’을 획득해간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 관점으로 오늘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교육을 비판한다. 말하자면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고대사・중세사・현대사 식으로 토막 내고 추려내는 과정에 ‘현재성’이 사라지고 ‘현장성’과 ‘생동감’이 증발해버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시대별로 역사 지식을 나열해 달달 외우는 방향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도 학교 수업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방통행식으로 지식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즉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에서는 오늘날은 이렇지만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지금 이렇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 현대의 관점으로 고대를 살펴보는 사고와 인과관계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대사는 고대사고 중세사는 중세사’라고 생각하며 지식을 통째로 암기하는 재미없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실제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우리가 사는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어나는 문제의 배경에는 반드시 그 문제와 관련된 역사가 존재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로마 역사 속에는 인류 경험의 총체가 담겨 있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인류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대부분 과거의 인류가 이미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고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목차

    서문_ ‘세계사 문맥력’과 ‘통찰력’을 가진 자가 변화무쌍한 향후 세계를 이끌게 될 것이다

    Prologue_ ‘역사에서 배운다’라는 말의 의미
    ―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


    교양을 이루는 두 가지 축, ‘고전’과 ‘세계사’
    역사에서 배우는 게 왜 어려울까
    톨스토이의 통렬한 역사가 비판
    세계사를 통찰하는 일곱 가지 관점
    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

    01 로마는 ‘관용(Tolerance)’의 힘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했다
    - 로마는 어떻게 번영을 이루었으며 쇠퇴하고 멸망했는가


    소름 돋는 역사 속 평행이론
    로마와 미국의 진정한 힘 소프트 파워
    지중해 세계 1,000여 개 폴리스 중 로마만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
    시대가 변해도 로마사 연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
    로마를 벤치마킹한 영국, 최고의 번영을 누리다
    연출력과 쇼맨십으로 승부한 로마 황제 vs. 신비주의와 신성성으로 권좌를 지킨 아시아 황제
    로마의 뛰어난 인프라는 왜 제국을 좀먹는 위험요인이 되었나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든 두 가지, ‘관용’과 ‘패자부활전을 가능케 하는 문화’
    무자비함과 관용의 두 얼굴을 가진 영웅 카이사르
    관용으로 일어선 로마, 나태와 오만의 함정에 빠져 무너지다
    로마는 미국, 그리스는 유럽, 카르타고는 일본을 닮았다?

    02 ‘동시대성(Simultaneity)’이 역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 한제국과 로마제국,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조로아스터의 탄생


    일란성 쌍둥이 같은 두 세계제국, 한과 로마
    로마제국과 한제국을 동시에 덮친 3세기의 치명적 위기
    왜 ‘역사의 동시대성’에 주목해야 할까
    알파벳, 유일신 신앙, 화폐는 모두 ‘동시대성’의 산물이다
    기원전 1000년경의 동시대성 흐름을 좌우한 ‘간소화’ 움직임
    마르코 폴로를 능가하는 ‘동서 발견’의 업적을 달성한 인물 라반 바사우마
    왜 유독 영국에서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까

    03 풍요가 아닌 ‘결핍(Deficiency, 건조화)’이 문명을 탄생시켰다
    - 문명 태동부터 도시국가를 거쳐 민주정 탄생에 이르기까지


    문명은 도시, 문화는 농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4대 문명’과 ‘5현제’가 부정확한 용어인 까닭
    문명 발상의 두 가지 필수조건, ‘문자’와 ‘건조화’
    대규모 ‘건조화’는 어떻게 문명 태동으로 이어졌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거대 문명이 태동하지 못한 이유가 ‘말의 멸종’ 때문이라고?
    ‘독창성’이 부족한 로마인이 지중해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비결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태도가 창의력을 낳는다
    제갈공명과 카이사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국가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결정적 차이
    살라미스 해전이 아테네 민주정을 낳았다고?

    04 ‘대이동(Huge Migration)’ 하며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 민족들
    - 게르만족, 몽골제국의 드라마틱한 역사, 대교역시대부터 난민 문제까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은 민족대이동
    ‘입력’과 ‘출력‘ 개념으로 통찰하는 민족이동
    고대 로마에서 ‘증기기관 원리’가 실생활에 활용됐다는 게 사실일까?
    유럽인의 대이동으로 이어진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인위적인 민족이동을 유발한 노예제도
    프랑스의 위그노 학살이 네덜란드 부흥으로 이어진 아이러니한 역사
    게르만족 대이동, 유럽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다
    게르만족 대이동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 훈족 대이동
    이슬람인이 유럽을 점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 현대 유럽인
    ‘관용의 끝판왕’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탄압한 진짜 이유
    오늘날의 민족 문제를 이해하려면 ‘종교’와 ‘지정학’을 통찰해야 한다

    05 ‘유일신교(Monotheism)’는 왜 항상 분쟁의 씨앗이 되는가
    - 세계사를 바꾼 3대 유일신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탄생과 발전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던 3,000년 전 사람들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도구 점성술
    인간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오디세우스가 ‘최초의 근대인’인 까닭
    고대 인류는 왜 ‘유일신’을 필요로 했을까
    고대 그리스를 ‘구 근대’, 로마제국을 ‘구 현대’로 보는 이유
    고대 이집트에서 ‘일신교’는 어떻게 탄생했나
    유대교는 왜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지 못했을까
    극심한 종교 대립은 일신교의 숙명인가
    ‘이슬람교 대 기독교’의 대립 구도는 악의적인 허구다
    유럽 대다수 국가와 미국까지 로마를 자신의 뿌리로 삼는 까닭은?
    전쟁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어 했던 위대한 이슬람 최고 권력자 누르 앗딘

    06 ‘개방성(Openness)’이 국가와 시대의 운명을 결정한다
    - 왜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아닌 로마가 강국이 되었나


    플라톤은 ‘독재정’,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을 권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이 높이 평가받지 못한 이유
    극심한 내분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할 동력을 상실한 고대 그리스
    기원전 3세기, 로마에 항복하러 온 그리스 사절이 로마 원로원을 ‘왕자 집단’으로 묘사한 까닭
    ‘권위를 내세워 통치하라’라는 말을 실천한 로마인
    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아닌 로마가 강국이 되었나
    2,000년 전 확립한 로마 공화정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이유
    역사적으로 동양에서 ‘공화정’이 뿌리내리기 힘들었던 까닭
    공화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회주의 국가가 공화정을 자칭하는 이유

    07 ‘현재성(Nowness)’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진다
    - 모든 역사가 ‘현대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


    ‘정확하게 쓰는 것’보다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왜 더 중요한가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역사를 배워라
    중국이 내세우는 ‘중화민족’의 허상
    중국에서는 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나
    세계 최초로 ‘국내 식민지 정책’을 펴는 나라 중국
    중세가 ‘암흑시대’가 아닌 이유
    세계사에 두 번의 ‘암흑시대’가 있었다는데?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영국이 EU를 탈퇴하려는 진짜 이유는 독일 때문이다?
    EU가 ‘애물단지’ 그리스의 손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딜레마
    민족 특수성을 무시한 강대국들의 ‘제멋대로 국경 정하기’가 초래한 비극
    평화와 번영이 계속되면 왜 사람은 반드시 퇴폐할까

    본문중에서

    아시리아는 한마디로 ‘탄압의 제국’이었다. 이 나라는 자신이 지배하는 속주에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등 강압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중에서도 속주민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정책은 강제이주 정책이었다. 물론 피지배 지역 주민을 포로로 사로잡고 혹독하게 대하는 정책은 당시 오리엔트 세계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시리아제국의 잔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조직적인 속주민의 대규모 강제이주 정책을 감행했는데, 역사상 비슷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속주민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았으며 빈털터리 신세로 만들어 낯설고 척박한 땅으로 모질게 내몰았다.
    이 강압적인 정책은 단순히 속주민의 반감을 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머지않아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졌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반란은 국력을 좀먹었다. 기원전 612년 메디아인과 칼데아인(신바빌로니아) 연합군이 수도 니네베를 점령하면서 아시리아제국은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강압적인 방법만으로는 제국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오랜 인류 역사가 명확히 검증해준 것일 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와 그 나라의 민중이 실제 경험으로 체득한 바다. 그렇다면 무한한 관용만이 정답일까? 그렇지는 않다. 나라를 떠받치고 경영하는 자들이 매사에 지나치게 관용을 보이다가는 자칫 사회 통합을 해칠 우려가 있다. ‘관용’과 ‘규제(혹은 절제)’라는 두 가지 이질적인 가치관 사이에서 마치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과연 어디까지 허용하고 관대해질지 가늠해야 한다.
    로마는 절묘한 방법으로 관용을 베풀고 정책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로마는 속주에 라틴어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 뭔가를 억지로 강요하면 누구나 반발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로마에 패배하고 복속 당한 나라와 민족에게 오랫동안 써왔던 자기 언어 사용을 무조건 금지하고 라틴어를 사용하라고 하면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와는 반대로 자기 언어를 사용하며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허용하되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그로 인해 얻는 혜택이 많아지게 한다. 그렇게 하면 속주민들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라틴어를 배우고 사용하게 된다.
    (/ pp.78~80)

    기원전 1000년대에도 흥미로운 ‘동시대성’이 존재했다. 바로 ‘사상’의 탄생이다. 당시 문명 선진지역인 그리스, 오리엔트, 인도, 중국 등지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우후죽순 사상과 철학이 태동했다.
    먼저,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부터 이오니아 철학을 거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이 탄생했다. 오리엔트에서는 예레미야 등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언자가 나타났다. 오늘날 이란 부근에서는 배화교의 시조 조로아스터가 태어났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출현했고 뒤이어 불교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공자, 노자를 필두로 ‘제자백가’라고 부를 정도로 무수히 많은 사상가가 등장했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200〜300년의 세월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상과 철학이 왜 이 시기에 일제히 꽃을 피웠는지는 아직도 역사학의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시기에 특별히 주목한 철학자가 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다. 그는 이 시대를 ‘축의 시대(Achsenzeit)’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꽃피운 사상이 모두 이후 인류 사상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상가가 출현한 이 현상을 기원전 2000년대에 일어난 문자, 일신교, 화폐 등의 탄생과 별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간소화한 문자가 널리 보급되면서 민중 사이에 읽고 쓸 줄 아는 지식계급이 탄생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화폐 탄생이 교역을 활발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더 광범위한 정보를 얻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고 본다.
    (/ pp.118~119)

    문득 궁금해진다. 대규모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물가로 몰려든 일이 어떻게 문명 태동으로 이어진 걸까?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낸 땅속 식물 뿌리나 씨앗이 봄에 새싹을 틔우고 나무를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과 비슷한 이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조화’와 ‘물 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는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런 역동적인 과정에 그 시대의 인간들은 좀 더 영리해지고 유능해졌을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마침내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을 것이다. 마치 식물이 겨울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이듬해에 싱싱한 새싹을 틔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듯 말이다. 이렇듯 문명이 태동하고 성장하는 원리도 자연의 이치와 맥을 같이한다.
    지구가 건조화해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인류는 어떻게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룩했을까? 잠시 이 점을 살펴보자. 먼저 생존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물(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고 그 마을들이 통합되며 차츰 도시라고 부를만한 규모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 마을과 마을, 집단과 집단 사이에 물을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고 분쟁이 벌어졌다. 도시나 국가의 통치자는 이런 물 분쟁 문제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 필요에 따라 물 분쟁을 방지하는 ‘물 사용 시스템’이 개발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통치자와 지배 계층은 이런 사실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기록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자가 탄생했을 것이다.
    (/ pp.142~144)

    로마는 그리스와 반대로 로마 시민권을 이방인에게도 개방했다. 즉 로마는 외부인을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개방성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강화되었다. 공중목욕탕 카라칼라 욕장(Terme di Caracalla)으로 잘 알려진 카라칼라 황제(Caracalla. 본명 Marcus Aurelius Severus Antoninus, 재위 211〜17년)는 212년 로마제국의 자유민을 모두 로마 시민으로 인정한다고 공표했다. 이 조치로 로마에서는 노예를 제외하고 자유인이면 누구나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로마제국 시대에는 로마 시민이라고 해서 직접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원로원이 주도하는 공화정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민주정의 반대는 독재정(군주정)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폴리스 중 왜 유독 로마만 강국이 되었을까? 아테네와 스타르타는 왜 로마처럼 강국이 될 수 없었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나는 여러 요인 중 ‘개방성’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다른 폴리스는 모조리 폐쇄적이었고 오직 로마만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가 개방정책을 표방한 데는 국내의 엄격한 신분 구별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중시한 그리스는 외부 집단에 빗장을 닫아걸었다. 반대로 국내적으로 특권 계급 존재를 인정한 로마는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외부인을 받아들였고 자신과 같은 로마 시민으로 인정했다. 이렇듯 로마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 pp.271~272)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시대별로 역사 지식을 나열해 달달 외우는 방향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도 학교 수업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방통행식으로 지식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즉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에서는 오늘날은 이렇지만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지금 이렇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 현대의 관점으로 고대를 살펴보는 사고와 인과관계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대사는 고대사고 중세사는 중세사’라고 생각하며 지식을 통째로 암기하는 재미없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실제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우리가 사는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어나는 문제의 배경에는 반드시 그 문제와 관련된 역사가 존재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로마 역사 속에는 인류 경험의 총체가 담겨 있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인류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대부분 과거의 인류가 이미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고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낼 수 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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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토무라 료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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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도립 기타타마고등학교를 거쳐 1973년 히토쓰바시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1980년 도쿄대학교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1984년부터 도쿄대학 교양학부에서 조교수를 지냈으며, 1994년 교수로 승격했다. 1996년부터 도쿄대학교대학원 종합 문화연구과 교수로 활동했다. 2012년 도쿄대학을 정년퇴직한 뒤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퇴직 후 전임직에서 벗어나 지금은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잡지 《KODAI》의 편집장으로 일본 고대 서양사 연구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으며, 일본 서양 전학회 위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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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회사생활에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가 삶의 모토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알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옮긴다. 옮긴 책으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1가지 심리실험 – 인간관계편』『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에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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