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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5권 세트 : 서울, 경기, 전라, 북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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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21세기 김정호’,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대한민국 방방곡곡 두 발로 쓴 국토 인문서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두 번째 책 ‘경기도’ 편이 출간되었다.
    경기도의 기본 틀은 조선시대에 형성되었지만 ‘경기’라는 말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부터 통용되었으므로 올해는 경기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지 1000년이 넘었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는 지금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영향권에 있다 보니 고유의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팔도의 으뜸”이라고 평했을 만큼 살기 좋은 땅으로 꼽혔다. 조선의 개항 이후 서울 못지않게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기도는 오늘날 1,200만여 명의 삶의 터전이자 28개 시와 3개 군으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광역자치단체로 성장했다. 동월이 “팔도의 으뜸”으로 꼽은 경기도를 저자와 함께 답사하듯 구성한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경기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 2권 ‘경기’ 편은 1981년 경기도에서 분리된 인천을 포함해 경기 각 지역을 위치와 성격에 따라 8개 장으로 나누었다.

    1장 남한강에서 남한산성까지 : 여주·양평·광주·성남·하남
    남한강 유역에 자리한 여주 북성산 기슭에 있는 세종대왕의 무덤 영릉은 “이 능 덕으로 조선왕조가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하는 명당 중 명당이다. 광주, 성남, 하남에 걸쳐 있는 남한산에 축성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으나 보존이 잘 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장 역사 속 수난의 땅 : 강화도·교동도
    강화도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이다. 고려 때 원나라가 침입하자 고려 왕실은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기도 했다. 강화도는 조선시대에도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외세의 침입으로 수난을 겪었다. 강화도의 부속섬인 교동도는 고위층의 단골 유배지였으며, 연산군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3장 남북으로 통하던 중요한 길목 : 안산·화성·평택·오산
    안산은 조선시대에는 연꽃이 많이 핀다고 해서 연성(蓮城)이라 불렸으나 공업단지로 변모되어 연성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화성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융릉과 건릉이 있으며, 이곳 마산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포로로 붙잡혀 간 비극이 벌어졌다. 평택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4장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 : 안성·이천·용인·의왕·광명
    교통이 편리한 안성에서는 대구, 전주와 더불어 ‘조선 3대 큰 시장’인 안성장이 열렸는데,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장사를 벌여서 성공한 곳도 안성장이다. 이천의 앵산동(현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숨어 지냈던 곳이다. 용인 김량장(金良場)은 이 일대에서 양질의 금이 많이 났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 이곳에는 금을 캔 흔적이 남아 있다.

    5장 수원 화성에서 서해안까지 : 수원·안양·과천·부천·인천·김포
    정조는 수원을 ‘서울을 보좌하는 중요한 땅’이라 여겨 수원 화성을 축성하고, 화성행궁을 짓는 등 수원을 세계 최초

    ‘21세기 김정호’,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대한민국 방방곡곡 두 발로 쓴 국토 인문서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저자가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 서울을 도보답사기의 첫 권으로 꼽은 것은 나라 안에서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자 도심 한복판을 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우리가 그 진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구석구석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 전해주는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서울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 1권 ‘서울’ 편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공화국 : 서울의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서울을 도읍(수도)으로 정하고, 국가의 근간이자 왕권의 존엄을 드러내는 궁궐을 짓고 성곽을 쌓았다. 1장에서는 서울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신분과 직업에 따라 백성들의 거주지를 정하는 등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과정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의 수도가 되기까지 서울의 역사를 짚어본다.

    2장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궁궐 :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태조 이성계는 서울에 궁궐터를 정한 뒤 ‘좌묘우사’의 법도에 따라 종묘를 왼편에 사직단을 오른편에 세운 후 경복궁을 건설했다. 정종 때 수도를 개성으로 옮겼으나 태종 때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기면서 창덕궁을 건설하여 이궁으로 사용했다.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조선의 5대 궁궐이라고 한다. 2장에서는 조선시대 5대 궁궐과 함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를 탐방한다.

    3장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숭례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궁궐이 지어진 뒤에는 한양을 둘러싼 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연결하여 둘레 18.6킬로미터의 성을 쌓았다. 《한경지략》에는 “봄과 여름이 되면 한양 사람들은 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는데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며, 이렇게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했다.

    4장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이 다른 나라의 수도보다 아름다운 것은 크고 작은 산들이 서울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의 바깥 경계에 해당하는 산을 외사산이라고 하는데, 남쪽의 관악산과 북쪽의 북한산, 여기에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덕양산이 서울을 감싸면서 호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강 북쪽에는 도봉산·청계산·불암산 등이 있고, 한강 남쪽에는 관악산 자락의 청계산·삼성산 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5장 서울의 중심 한강 : 역사가 흐르는 강
    서울의 젖줄, 나라의 젖줄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강은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 문화 발달의 터전이 되었다. 한강은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도 북동부의 많은 곳을 연결하는 큰 간선 수로였으며, 조선 말기까지도 다리가 가설되지 않아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종합개발의 여파로 한강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하중도인 뚝섬·잠실·여의도에는 아파트단지와 빌딩이 들어섰고, 폭파되어 사라졌던 밤섬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현재는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6장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서울 시내에는 근대사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서구 열강의 공사관과 정동교회가 들어선 정동 지역은 우리나라로 서구 문화가
    과거에는 유배지로, 현재는 관광지로 각광받는 제주,
    돌‧바람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은 제주의 흥미진진한 역사, 문화, 사람 이야기


    한반도의 남쪽에 자리 잡은 제주도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풍토와 풍속을 지녔다. 과거에는 유배지로, 오늘날에는 관광지로 조명받는 제주는 숱한 부침을 겪어왔다. 고려 때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들어온 삼별초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 했고, 조선 중기에는 제주도에 유배된 길운절이 모반을 도모했다. 조선 후기에 일어난 제주 민란, 방성칠의 난, 이재수의 난 등이 모두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란이었다. 그 뒤 잠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던 제주도에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전대미문의 큰 사건이 터졌다. 바로 제주도 민중 3분의 1이 희생된 4·3항쟁이었다. 이렇듯 제주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사건도 많았고, 진귀하고 흥미진진한 설화와 전설도 많이 품은 곳이다.
    이 책은 은하를 당긴다는 뜻을 가진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부터 신령한 분화구 백록담,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서린 영실, 삼남대로의 길목 조천포, 비양도, 산저포, 산굼부리 차귀도, 화북포, 산방산, 성산, 추자도, 혼인지, 존자암, 송악산 법화사 등 제주 곳곳을 사진과 함께 살펴보고, 각 지역의 역사적 사건, 설화, 전설도 소개한다. 또한 김정, 보우, 김상헌, 정온, 송시열, 추사 김정희, 임관주, 광해군 등 600년 유배객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누구나 살아 보고 싶은 그리움과 환상의 섬
    사연을 알면, 전혀 다른 제주가 보인다!


    - 제주도는 삼별초 항쟁 이후 대략 100여 년 동안 원나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그때 원나라의 언어와 풍습 등이 제주도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 산방산은 독특한 돔 모양 때문에 얽힌 전설이 많은데 그중에는 원래 백록담의 정수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 고려 때까지도 제주도 부근에서는 화산 운동이 그치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산 폭발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동굴로 몸을 피하거나 잠시 배를 타고 바다로 대피했다.
    - 인조 3년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가던 중 태풍에 밀려 제주도 해안에 닿은 3명의 네덜란드인들은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무기를 제조하는 일을 담당했다.
    - 제주도는 육지와 다른 풍속들이 많은데 어디를 가든 돌하르방과 집안의 안녕을 비는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 제주도를 두고 ‘언어학의 보물 창고’라고 부르는 것은 사라진 옛말과 독특한 조어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어는 중국이나 일본, 몽골과도 연관이 있다.
    - 제주도 사람들이 모시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은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와서 미역이나 전복 등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의 씨를 뿌려 주고 보름날에 돌아간다고 한다.
    - 김만덕은 나이 58세에 ‘제주도 여자는 뭍에 오를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정조를 알현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각 고을 역참의 융숭한 호위를 받는 특전을 누리며 서울에 입성했다.
    - 키가 큰 설문대할망은 그 몸집이 얼마나 크고 또 힘은 얼마나 셌던지 삽으로 흙을 떠서 던지자 그것이 한라산이 되었다 한다. 설문대할망의 후예답게 제주 여자들은 강인하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렇듯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
    다가올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인문지리학적 통찰
    ‘21세기 김정호’ 신정일이 발로 쓴 북한 곳곳의 지리, 역사, 사람 이야기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의 네 번째 책 ‘북한’ 편이 출간되었다. 1945년 동서 냉전 체제의 산물로 남북이 분단된 이래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백두산에서 비롯한 백두대간이 가열하게 금강산으로 이어지고 대동강, 두만강, 압록강이 흐르는 북한은, 지금 우리 민족 구성원에게 그리움과 설렘으로 남아 있는 미지의 땅.
    이 책은 조선왕조의 꿈을 품은 곳 함경도부터,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인심을 자랑하는 평안도, 단군이 도읍을 정한 구월산과 교통의 요충지 사리원이 있는 황해도, 금강산을 품고 분단과 평화의 땅이 된 강원도 북부까지 북한의 곳곳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백두산, 금강산, 구월산은 물론, 삼지연,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사리원, 용수산, 만월대 등 마치 입담 좋은 해설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답사하는 것처럼 지형과 지세,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 지명의 유래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평양 등지의 최신 화보는 북한에 직접 다녀온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하기에 손색없다. 다가올 통일 시대를 대비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문지리학적 통찰을 줄 것이다.

    그리움과 설렘으로 남아 있는 미지의 땅,
    북한의 어제와 오늘, 땅과 사람들을 한눈에 펼쳐 보여주는 책


    - 함경은 함흥과 경성의 첫 자를 따서 만든 지명으로,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할 당시에는 함흥과 길주를 합한 함길도였다.
    - 삼지연은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호수로, 흘러들거나 나가는 강하천 없이 눈과 비, 샘물에 의해 채워지며 물맛도 좋다.
    - 양강도의 한복판에 위치한 갑산군은 본래 고구려의 옛 땅으로 고려 때는 여진족이 살았다. 예로부터 삼수갑산이라고 하면 하늘을 나는 새조차 찾지 않는 산간벽지였다.
    - 두만강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으로 고려강, 통문강, 도문강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 서울에 물이 귀했던 시절, 함경남도 북청 사람들이 물장수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근대 문명에 일찍 눈 뜬 그들이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서울에 와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평안도는 《택리지》에서 “팔도 중에서 인심이 순박하고 후덕하기로 제일가는 곳”으로 꼽혔다.
    -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세운 정자다. 먼 옛날 을밀 선녀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가 있다.
    -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청천강은 낭림산과 웅어수산에서 발원한다. 웅어수산은 웅어가 많이 서식하는 와룡천 상류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개성은 물산이 풍부하고 산천이 아름다워 미인이 많았다. 게다가 이재에 밝아서 ‘개성 사람은 오줌도 맛보고 산다’는 말도 생겨났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렇듯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라》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전라도’ 편이 출간되었다.
    한반도의 서남해안에 자리잡은 전라도는 삼한시대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 ‘전라’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인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으로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합해 전라주도를 설치하면서부터다. 전라도는 과거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 일대를 관할했던 행정구역이었으나, 조선 고종 33년인 1896년 남도와 북도로 나뉘었으며, 1946년에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고, 1986년에는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1995년 광역시로 변경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라도에는 금강과 섬진강, 그리고 영산강?만경강?탐진강 등 나라 안에 크고 작은 강들이 비옥한 평야를 이루어냈으며, 덕유산과 지리산, 그리고 내장산?무등산?월출산 등 국립공원들이 들어서 있어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멋과 맛의 고장 전라도

    나라 안 어느 지역보다 멋과 맛이 빼어나 ‘예술의 고장’, ‘예향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전라도에서는 예술적으로 또는 사상적으로 독특한 사람들이 유독 많이 태어났다.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가 이 지역에서 예술로 거듭났으며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홍록과 서편제의 창시자인 박유진이 전라도에서 태어났다. 근현대 이후에는 한국어의 우수성을 알린 시인 미당 서정주,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한 수많은 소설을 남긴 이청준, 한국적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과 접목한 파인 김환기가 전라도 출신이다. 그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공화주의를 제창한 정여립의 대동사상이 이곳에서 펼쳐졌고, 최제우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한울님”이라고 설파한 동학이 전라도 땅에서 꽃을 피워 근현대사의 출발점이 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광주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전라도 사람들은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풍류를 즐기며 잘 놀고 잘 살아왔다. 저자와 함께 답사하듯 구성한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전라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현대판 김정호” 신정일이 발로 쓴 국토 인문서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라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시리즈 3권 ‘전라도’ 편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를 포함해 각 지역을 위치와 성격에 따라 11개 장으로 나누었다.

    1장 후백제의 도읍지 온고을 : 전주·완주
    순우리말로 살기에 완벽함을 갖춘 고을이라는 뜻의 ‘온고을’인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라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발상지라는 뜻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세웠다. 또한 전주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도읍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전주 승암산 동고산성 건물터에서 발견된 ‘전주성’이라는 글씨가 쓰인 연꽃무늬 와당이 그 근거로 거론된다. 전주
    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들어오는 중심지였다. 일제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지은 구 서울역사는 지금은 전시관으로 운영되며, 일제에 저항하던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던 구 서대문형무소는 지금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7장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다산 정약용은 “사람이 살 곳은 서울의 십 리 안팎뿐”이라며 자녀들에게 서울에 살 것을 권했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서울에 살아야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7장에서는 서울에서 태어나 살다간 사람에는 누가 있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서울 사람들의 풍속을 살펴본다.

    8장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지금의 명동 세종호텔 뒤는 비만 오면 토사가 쌓여 진흙탕길로 변해 ‘진고개’라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고개 높이를 낮추고 도로를 만들어 일본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선 번화가가 되었다. 구로동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 있던 구루지라는 마을에 노인 아홉 사람이 오랫동안 화목하게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8장에서는 서울 지역 지명의 유래를 알아본다.
    를 둘러싸고 있는 완주의 삼례는 조선시대에 삼남대로의 길목에 세워져 있어서 수많은 길손들이 쉬어갔던 곳이다.

    2장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 : 익산·군산·김제
    익산은 백제 무왕 때 사비성과 함께 도읍으로 삼은 곳으로, 익산의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는 충남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통합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일제 수탈의 중심지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해 지금도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두 줄기 물이 감싸듯하여 정기가 풀어지지 않아서 살 만한 곳이 대단히 많다”라고 소개한 김제는 쌀을 많이 생산하는 곳으로 김제 만경평야는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3장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다 : 정읍·부안·고창
    정읍은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빼어난 내장산으로 유명하다. 정읍 고부면은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곳이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인 전봉준이 당시 살았던 집을 복원한 유적도 정읍에 남아 있다. 전라북도 서부 해안지대에 위치한 부안의 변산반도는 우리나라의 10승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살기 좋은 땅이며,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율도국은 부안 앞바다의 위도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고창 사는 사람치고 소리 한마디 못하고 장단 못 맞추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고창에서 진채선, 신재효, 김소희 등 많은 소리꾼이 태어났다.

    4장 첩첩산중의 대명사 무진장 : 무주·진안·장수
    전라북도 동부의 무주군·진안군·장수군을 합쳐서 무진장이라고 부른다. 본래 무진장無盡藏은 ‘다함이 없이 굉장히 많음’을 의미하나, 1987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 3개 군이 단일 선거구로 통합되자 머리글자를 따서 무진장으로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전라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무주에는 적상산, 두문산 등의 높은 산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덕유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은 진안의 덕태산 아래 백운면 일대를 풍수적 이상향에 근접한 좋은 마을로 꼽았다. 전라북도 동부에 위치한 장수는 임진왜란 때 촉석루에서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고향이다. 장수에는 논개사당이 있다.

    5장 살 제 남원, 죽어 임실 : 임실·순창·남원
    “살 제 남원, 죽어 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살아서는 물산이 풍부한 남원에서 즐겁게 살고, 죽은 뒤에는 산세가 빼어난 임실에 묻히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임실은 《동국여지승람》에 “산과 산이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곳”이라고 실렸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임실의 남쪽에 자리잡은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하며,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 최익현이 항일의병운동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도령과 춘향이의 사랑이 시작되는 남원의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이곳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6장 섬진강 물길 따라 : 곡성·구례·광양
    전라남도 북동부에 있는 곡성군은 전라북도 남원시와 도계를 이루는 지역이며, 특히 석곡면은 삼베를 모시와 같이 가늘게 짜는 돌실나이로 유명하다. 지리산 서쪽에 위치하는 구례는 곡성, 남원, 경상도의 함양, 산청, 하동과 더불어 지리산 문화권으로 분류되어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구례 운조루 고택 일대는 금환락지라 하여 부귀와 영화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명당자리로 남한 3대 길지로 꼽혔다. 구례 남쪽에 있는 광양만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흘러드는 섬진강 하류에 해당한다.

    7장 무등산을 바라보다 : 담양·광주·화순
    담양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죽녹원에는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2킬로미터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80만 명 이상이 찾는 인기 많은 관광지이다. 담양 청평면은 전통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2007년 슬로시티로 인정받기도 했다. 담양의 남쪽에 위치한 광주광역시는 고종 33년인 1896년에 전라남도청이 나주에서 광주로 옮기면서 전라남도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광주의 역사의 계획 신도시로 건설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 비류가 비류백제를 세웠던 인천의 작은 포구 제물포는 조선 말기 일본의 강업의 못 이겨 개항을 한 후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공동 조계지가 되면서 급속도로 변모했다.

    6장 서울 동쪽의 고을들 : 구리·양주·남양주·의정부
    구리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9명의 임금들이 잠들어 있는 동구릉이 있다.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태조의 건원릉 봉분에는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를 심었다. 남양주 양수리의 우리말 지명인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 붙은 이름이다. 의정부라는 지명은 태종이 태조가 머무르던 회암사에 의정부 대신들과 함께 자주 찾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7정 경기 북부의 땅 : 포천·연천·가평
    포천은 조선시대에 “고을이 작아서 송사하는 백성이 없고, 전지가 비옥하여 해마다 풍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연천 아미산에는 고려 태조와 7왕의 시위를 모신 사당인 숭의전이 있다. 가평과 포천의 경계에 있는 운악산에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현등사가 있다. 현등사(懸燈寺)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보조국사가 이곳 절터 석등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보고 붙였다고 한다.

    8장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 : 고양·파주
    고양은 조선시대 큰 도로였던 관서로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에는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머물며 쉬던 벽제관터가 남아 있다. 또한 고양에는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으로, 5개의 능으로 구성된 서오롱이 있다. 파주 판문점은 널문리라는 마을에서 천막을 치고 휴전회담을 진행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널문’을 한자로 쓰면 ‘판문(板門)’이다.
    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인데 광주 동구 광산동에는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최후항전을 벌였던 전라남도청 구 본관이 ‘민주화의 성지’로서 보존되어 있다. 화순에는 고려시대 절터인 운주사지가 있는데, 운주사에는 도선국사가 세운 천불천탑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석불 100여 구와 석탑 21기만이 남아 있다.

    8장 수지니, 날지니 쉬어 넘는 고개 : 장성·영광·함평
    전라북도와 도계를 이루는 장성의 북쪽은 백양산이 내장산과 안팎을 이루고 있으며 큰 산들이 마치 긴 성처럼 군을 둘러싸고 있다. 전라남도 장성과 전라북도 정읍 사이에 있는 갈재는 남도 사람들이 서울로 갈 때 꼭 넘어야 하는 고개로 지금은 갈재 바로 아래에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호남터널이 있다. 장성의 서쪽에 위치한 영광 법성포는 영광굴비의 산지이며,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처음 발을 들여놓은 포구이기도 하다. 영광 남쪽의 함평은 지방자치단체 축제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나비 축제와 가을에 용천사 일대에 피는 상사화 축제로 유명하다.

    9장 영산강 유역의 고을 : 나주·무안·목포·신안·영암
    《동국여지승람》에 “나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커서 땅이 넓고 만물이 번성한다”라고 한 것처럼 나주는 조선 말기까지 남부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전라남도청이 광주로 이전하고 목포가 성장하면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우리나라 서남부 핵심 지역을 흐르는 영산강은 담양 병풍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나주와 영산포에서 제법 큰 강이 되어 함평, 무안, 영암, 목포 등지로 흘러 서해로 흘러든다. 노래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항구의 도시’ 목포에 있는 유달산 노적봉에는 이순신 장군이 바위를 짚으로 덮어 군량미처럼 보이게 하여 적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10장 남도의 해안을 따라 : 순천·여수·보성·고흥·장흥
    순천에서 남해안으로 돌출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있는 순천만은 160만 평의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690만 평의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순천에는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여수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수군을 지휘했던 전라좌수영성지와 거북선을 만든 선소유적 등이 남아 있다.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보성은 150만 평 규모의 녹차밭이 조성되어 각종 광고와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보성 아래쪽에 있는 고흥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땅이 기름지며 날씨가 따뜻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국내 최초의 우주센터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11장 다도해 주변 고을 : 강진·완도·해남·진도
    전라남도 남서부에 있는 강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전라남도 남단에 섬으로 이루어진 완도군에는 통일신라 때 해군무역기지인 청해진이 있었으며, 완도 보길도는 조선 중기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윤선도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머물며 부용동 정원을 만들어 살았다. 해남은 도서지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내륙 최남단에 위치해 땅끝마을이라고 불린다. 해남의 남서쪽에 위치한 진도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이용되어 조선 영조 때 전라감사가 조정에 “진도에는 유배자가 너무 많습니다. 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죄 없는 섬사람들까지 굶어 죽을 판이니 유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십시오”라는 건의문을 조정에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출판사 서평

    ‘21세기 김정호’, 도보답사의 선구자이자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 출간!

    《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산천 곳곳의 생생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 서울 편

    우리가 몰랐던 우리 땅 ‘서울’ 이야기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가 1권 ‘서울’ 편을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저자가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 서울을 도보답사기의 첫 권으로 꼽은 것은 나라 안에서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자 도심 한복판을 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우리가 그 진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두 발로 누비며 걸어온 저자 신정일에 대해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과 함께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한반도 5000년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해온 서울의 역사를 살펴본 후 해설사와 함께 서울 곳곳을 답사하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먼저 경복궁, 창덕궁 등 조선의 5대 궁궐과 조선왕조의 상징인 종묘를 둘러보고,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놀이를 하듯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고,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을 둘러싼 산에 오르고, 서울의 젖줄 한강을 물길 따라 걸으며 강의 변천을 살펴보고, 정동교회를 시작으로 서대문형무소까지 도심 속 근대 유적을 답사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 뒤 서울의 중심지 종로부터 서초구 양재동, 강동구 둔촌동까지 각 지역 지명의 유래를 살펴본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제주 편 출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하늘 길은 어디일까? 무려 연간 8만여 편의 항공기가 운항하는 ‘서울 김포-제주’ 노선이 압도적인 1위다. 내외국인 합쳐 입도 관광객 수가 연간 1,400만 명을 훌쩍 넘는 자타공인 최고의 관광명소가 바로 제주다.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제주’ 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은하를 당긴다는 뜻을 가진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부터 신령한 분화구 백록담,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서린 영실, 삼남대로의 길목 조천포, 비양도, 산저포, 산굼부리 차귀도, 화북포, 산방산, 성산, 추자도, 혼인지, 존자암, 송악산 법화사 등 제주 곳곳을 사진과 함께 살펴보고, 각 지역의 역사적 사건, 설화, 전설도 소개한다. 또한 김정, 보우, 김상헌, 정온, 송시열, 추사 김정희, 임관주, 광해군 등 600년 유배객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21세기 김정호’, 도보답사의 선구자이자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 경기 편 출간!
    《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산천 곳곳의 생생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경기》 편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두 번째 책 ‘경기’ 편이 출간되었다. 경기도의 기본 틀은 조선시대에 형성되었지만 ‘경기’라는 말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부터 통용되었으므로 경기라는 지명은 만들어진 지 1000년이 넘었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는 지금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영향권에 있다 보니 고유의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조선 시대에는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팔도의 으뜸”이라고 평했을 만큼 살기 좋은 땅으로 꼽혔다.
    조선 말 개항 이후 경기도는 서울 못지않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1200만여 명의 삶의 터전이자 28개 시와 3개 군으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광역자치단체로 성장했다. 이 책은 1981년 경기도에서 분리된 인천을 포함해 경기 각 지역을 위치와 성격에 따라 8개 장으로 나누었다. 남한강 유역과 남한산성 주변의 여주·양평·광주·성남·하남, 역사 속 수난의 섬 강화도·교동도, 경기 남서부 지역 안산·화성·평택·오산,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였던 안성을 비롯한 이천·용인·의왕·광명, 수원화성에서 서해안에 이르는 수원·안양·과천·부천·인천·김포, 경기 중부 지역 구리·양주·남양주·의정부, 경기 북부 지역 포천·연천·가평,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 고양·파주 등으로 나누어 경기 지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이 지역을 살다간 선조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경기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이곳을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사연을 담은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북한 편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네 번째 책 ‘북한’ 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왕조의 꿈을 품은 곳 함경도부터,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북부까지 북한의 곳곳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백두산, 금강산, 구월산은 물론, 삼지연,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사리원, 용수산, 만월대 등 마치 입담 좋은 해설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답사하는 것처럼 지형과 지세,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 지명의 유래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평양 등지의 최신 화보는 북한에 직접 다녀온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하기에 손색없다. 다가올 통일 시대를 대비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문지리학적 통찰을 줄 것이다.
    ‘21세기 김정호’, 도보답사의 선구자이자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 전라 편 출간!

    《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산천 곳곳의 생생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라》 편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전라도’ 편이 출간되었다. 전라도는 삼한시대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 ‘전라’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으로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합해 전라주도를 설치하면서부터다. 나라 안 어느 지역보다 멋과 맛이 빼어나 ‘예술의 고장’, ‘예향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전라도에는 금강과 섬진강, 그리고 영산강‧만경강‧탐진강 등 나라 안에 크고 작은 강들이 비옥한 평야를 이루어냈으며, 덕유산과 지리산, 그리고 내장산‧무등산‧월출산 등 국립공원들이 들어서 있어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를 포함해 각 지역을 위치와 성격에 따라 11개 장으로 나누어 전라 지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이 지역을 살다간 선조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추천사

    신정일의 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 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이덕일 / 역사가

    《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책이 신정일의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인 신정일 선생은 30년 넘게 전국의 산천을 답사한 전문가이다. 아마 이중환보다 더 다녔으면 다녔지 못 다닌 것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산천이 없다.
    - 조용헌 / 강호동양학자

    우리가 사는 지금, 김정호 선생을 닮은 사내가 잇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가 다음은 강 길을 걷더니, 이제는 아예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잡듯 뒤지며 걷고 또 걷는다. 나는 그를 보며 나는 '저 사내 틀림없이 김정호 귀신이 씌었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한다. 현대판 김정호, 그가 바로 신정일이다.
    - 김용택 / 시인

    강과 길의 철학자인 신정일 저자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정말 걷고 싶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우리 땅에 깃든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신정일 저자는 우리 시대 또 하나의 희망으로 기억될 것이다.
    - 박원순 / 서울시장

    신정일 선생은 촌놈 같기도 하고 동학군 같기도 하여 어수룩해 보인다. 그런데 이 ‘촌놈’의 얘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절로 무릎을 치게 한다.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이렇게 혼이 실리고 신명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
    - 이정만 /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이 책은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산과 들, 강과 바다, 시간적 과거들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소망들을 책상물림이나 머리로 쥐어짜는 짱구들의 억지 글과는 판이하다. 그는 자기의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나는 그를 '발로 쓰는 민족사상가'라고 부른다.
    - 김지하 / 사상가, 시인

    우리가 사는 이 땅을 구석구석 밟아보고, 그 땅의 자연과 물산과 그 땅에 심어 놓은 조상의 문화를 직업 체험하면서 죽도록 이 땅을 사랑해본 일이 있는가? 250년 전에 이중환은 불우한 가운데서 그런 일을 했고, 《택리지》라는 명저를 냈다. 150년 전의 김정호도 이 땅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움을 《대동여지도》로 그려냈다. 그런데, 바로 지금 또 하나의 21세기 《택리지》가 나타났다. 세월이 변하고 국토가 변하고, 문화가 바뀐 이 시점에서 당연히 《택리지》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고, 그 일을 신정일이라는 문화사학자가 일구어냈다. 비록 분단의 북쪽 땅을 샅샅이 밟아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았으나 이 책은 왜 우리가 죽도록 이 땅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뜨거운 가슴으로 말하고 있다. 귀중한 현장 사진과 더불어 옛날과 지금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땅과 사람의 대화를 그려낸다.
    - 한영우 / 서울대 명예교수

    목차

    추천사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사통팔달의 살기 좋은 고장
    개요 나라의 으뜸 경기도 : 적현과 기현을 합쳐 경기가 되다

    1. 남한강에서 남한산성까지 : 여주·양평·광주·성남·하남
    왕조를 100년 연장한 명당자리, 영릉 | 한강 뱃길의 상류에 위치한 여주 | 남한강의 제일 절경 청심루 |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 나옹선사가 열반에 든 신륵사 | 여주 혜목산 아래에 있는 고달사지 | 서울로 가던 길목 양근나루 | 남한강을 지키던 여울들 |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진 구둔재 | 양평을 굽어보고 있는 용문산 | 택당 이식이 숨어 지낸 택풍당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 | 조선에 닥친 큰 위기, 병자호란 | 항복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 | 효종의 원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의 무망루 | 철거민이 세운 성남,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분당’ |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 한강변에 자리잡은 하남시

    2. 역사 속 수난의 땅 : 강화도·교동도
    강과 바다가 지켜주는 천연의 요새 | 고려의 임시 도읍지 강화 | 서럽게 우는 전등사 은행나무 | 조선왕조실록 사고가 있던 정족산 |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이 지어진 고려산 | 석주 권필의 자취가 남은 강화도 |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쌓은 문수산성 | 강화 여자의 억척스러운 기질 | 강화도의 큰 섬 교동도 | 안평대군과 연산군의 유배지 교동도 | 산 아래 집집마다 흰 술 걸러내고 | 송나라 사신들이 묵어가던 남산포

    3. 남북으로 통하던 중요한 길목 : 안산·화성·평택·오산
    산에 둘러싸인 바닷가 고을 안산 | 안산 김씨의 본향인 안산 | 바닷길이 열리는 대부도 |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이 있는 화성 | 흥선대원군이 포로로 붙잡혀 간 마산포 | 산은 낮고 옥야는 평평한 평택 |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수도사 | 한강 이남 최고의 산성 독산성이 있는 오산

    4.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 : 안성·이천·용인·의왕·광명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한 안성 | 서운산 자락의 청룡사와 남사당패 | 민중을 보듬는 안성의 미륵불 | 고려의 빼어난 시인 정지상의 자취가 남은 분행역 | 안성맞춤의 유래가 된 안성유기 | 원나라의 침입을 받은 죽주산성 | 임꺽정의 자취가 남아 있는 칠장사 | 미리내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 | 땅은 넓고 기름지며 백성은 많고 부유했던 이천 |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숨어 지낸 앵산동 | 육괴정과 신라군의 토성지 |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여주와 이천 쌀 | 남북으로 통하던 길목 용인 | 금이 많이 나는 지역 김량장 |영남로가 지나던 교통의 요지 양지 | 자연의 도시 의왕 | 광명에 있는 왕이 하사한 오리 이원익의 집

    5. 수원 화성에서 서해안까지 : 수원·안양·과천·부천·인천·김포
    삼남지방으로 통하는 요충지 수원 | 정조가 세운 계획도시 수원 화성 | 수원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 | 조선시대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큰 화성행궁 | 관악산 아래 고을 안양과 과천 | 복사꽃이 많이 피는 고을 부천 | 비류백제의 도읍지 인천 | 문학산에 얽힌 사연 | 장명이고개에 남아 있는 임꺽정의 흔적 | 인천 이씨 이자연의 고향 인천 | 작은 포구에서 개항의 중심지가 된 제물포 | 굴포천이 변해서 경인운하 아라뱃길이 되다 | 해상교통의 중심지 인천 앞바다 | 익령군이 숨어 지낸 영흥도 | 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 | 서해로 가는 길목에 있는 김포 | 이규보가 기록한 조강 일대의 밀물과 썰물

    6. 서울 동쪽의 고을들 : 구리·양주·남양주·의정부
    삼국시대의 석축산성인 아차산성 | 동구릉에 얽힌 사연 | 산이 많고 평지가 적은 양주 | 신명 나는 한판 축제 양주별산대놀이 | 고려시대 걸출한 선승들이 머물렀던 회암사지 | 양주에서 분리된 남양주시 | 운악산 자락에 있는 광릉과 국립수목원 | 국립수목원 입구에 있는 봉선사 | 양수리에 들어선 팔당댐 | 다산의 숨결이 깃든 능내리 | 나라의 일을 옮겨 의논했던 의정부 | 박세당이 살았던 장암동

    7. 경기 북부의 땅 : 포천·연천·가평
    고을이 작아 송사하는 백성이 없던 포천 | 포천 이동막걸리의 본고장 | 산은 첩첩 물은 구불구불한 연천

    추천사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역사 속 나그네 되어 두 발로 서울을 만나자
    개요 한반도의 중심 서울 : 나라 안 제일가는 명당을 도읍으로 정하다

    1.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공화국 : 서울의 역사
    우리말 이름인 서울│나라를 세우기에 가장 적당한 땅│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다│북악 아래 경복궁을 짓다│서울의 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중국으로 이어지던 의주로│조선시대의 서울은 어디까지인가│신분에 따라 사는 곳도 달랐다│서울공화국의 어제와 오늘│한국인에게 서울은 무엇인가

    2.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궁궐 :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고려시대 남경에 경복궁을 세우다│임금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의 근정전│왕의 집무공간 사정전│왕과 왕비의 침전, 강녕전과 교태전│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경회루│휴식과 풍류를 즐기던 향원정│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비운의 현장 건청궁│가장 오랜 세월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비밀의 화원 창덕궁의 후원│상왕 태종을 위해 지은 창경궁│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던 경희궁│돌담길이 아름다운 덕수궁│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

    3.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숭례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500년 역사의 한양도성│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숭례문 근처에 있던 남지터│사라져 버린 태평관터│전국 각지 봉수의 최종 집결지 남산 봉수대│손순효의 자취가 서린 남산│세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집 남산 허백당│광희문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길│김창협의 흔적이 남은 흥인지문│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동묘│낙산 기슭에 살았던 사람들│동망봉에서 영월을 바라보다│도성의 북쪽 대문이었던 숙정문│서울이 눈에 잡힐 듯 보이는 북악산│사소문 가운데 융리하게 남아 있는 창의문│창의문 밖 세검정과 석파정에 얽힌 내력│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던 인왕산 자락│악명 높았던 인왕산 호랑이│김구 선생의 최후를 지켜본 경교장│다산 정약용이 친구들과 풍류를 즐겼던 서련지

    4.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의 진산 북한산│북한산에 북한산성이 있다│추사 김정희가 발견한 신라 진흥왕 순수비│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찾았던 북한산│관악산에 올랐던 조선의 사대부들│산이 맑고 골짜기가 많은 청계산│노원의 명산, 불암산과 수락산│우뚝 솟은 바위가 일품인 도봉산

    5. 서울의 중심 한강 : 역사가 흐르는 강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내린 강│한강에 떠 있던 잠실섬과 부리도│흔적도 없이 사라진 송파나루와 삼전도│말이 떼 지어 노니는 모습을 즐기던 화양정│잃어버린 섬 저자도│중국 사신 예겸이 이름 지은 압구정│박지원의 슬픈 제문이 남아 있는 동호│이항복의 소유였던 천일정과 달구경하기 좋았던 제천정│삼남대로가 지나던 동작나루│한강변 모래언덕이었던 노들섬│백로가 노닐던 노들나루│노량진 동산에 있는 사육신묘│나라 안 모든 세곡이 몰리던 마포나루│철새도래지로 변신한 밤섬│고려시대 귀양지 여의도│미수 허목이 바라본 서강에서 임진강까지│한양의 천연방어선을 이루는 양화나루│산의 형세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선유봉│풍경이 아름다워 국제 연회장으로 쓰였던 망원정│난초 향이 난다던 난지도의 어제와 오늘│한강에 놓인 다리들│한국전쟁 때 폭파된 한강대교

    6.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미국 문화가 들어오는 중심지가 된 정동교회 |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 명동성당 | 약초고개에 자리한 약현성당 | 일제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된 서울역 |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한국은행 본관 | 보천교 십일전으로 건립된 조계사 대웅전 | 3·1운동의 진원지 인사동 태화관 | 서울 3대 건축물로 꼽혔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 원각사지에 들어선 한국 최초의 공원, 탑골공원 |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 대한의원 | 자유의 진공지대 서대문형무소

    7.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예나 지금이나 혼잡한 도시 서울 |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간 인물들 | 우산각골에 서린 사
    추천사 _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_ 그리움으로 출렁이는 섬 제주도
    개요 _ 바람이 빚은 섬 제주도 : 이어도의 꿈을 달래다

    1 멀리 남해의 가운데 있는 섬 : 가 보고 싶고, 살아 보고 싶은
    북쪽으로 큰 바다를 배고 남쪽으로 높은 산에 대하고 | 주호인이 살았던 제주도 | 제주 신화가 시작되다 | 제주목이었던 제주시 | 그 아름다운 제주도

    2 어디에서나 우뚝 선 한라산 : 은하를 당기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 |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 | 산천단에서 산제를 지냈다 | 노인성이 보이는 한라산 | 신선이 사는 신령스런 산 | 신령한 분화구 백록담 | 고려 목종 때 화산재를 뿜었던 한라산 | 여름 제주는 온 섬이 시루 속 |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서린 영실 | 꿈에 본 한라산 | 한라산을 노래한 문학 작품

    3 바람이 많은 제주도 : 삼다삼무의 섬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 | 조난 사고가 많았던 제주 해협 | 유구국의 왕자가 떠밀려 도착한 제주도 | 《표해록》의 산실 제주도 | 여인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 하멜이 표류한 제주도

    4 육지와 매우 다른 제주도의 풍속 : 신들의 고향
    풍속은 별나고 백성은 기쁘면 사람이요 성내면 짐승이다 | 부모가 죽어도 장사를 지내지 않았다 | 남자를 기다렸던 제주도 여자 | 방아 노래 원성처럼 들리네 | 삼촌, 폭삭 속았수다 | 방이왕과 쉐왕은 필수 | 신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 신구간 | 산담을 두른 죽은 사람이 사는 집 | 초파일에는 바다가 잔잔하길 | 영등할망 제주 오신다 | 이형상의 미신 타파 | 가시리 당나미 문씨아기당 | 토산리 여드렛당 | 세화리 본향당 | 한수리 영등당 | 추자도의 최영 장군 사당 | 김녕굴당 괴뇌깃도 | 없는 것은 까치뿐이다 | 제주의 마을과 우물 | 담 나라 제주

    5 제주의 인물과 벼슬아치들 : 절해고도에서 꾸는 꿈
    유배나 다름없는 제주 벼슬살이 | 반란군의 철수 조건은 최척경 | 탐라인 고득종 | 제주 명환들 | 글을 배우지 말라 | 탐학을 일삼았던 제주 목사 양호 | 하멜을 만난 목사 이원진 | 《산경표》의 저자 신경준 | 이규원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조선 마지막 제주 군수 | 제주 큰손 김만덕 | 만덕의 두 얼굴 | 삼별초 항쟁의 마지막 현장 탐라 | 제주 민란 | 방성칠의 난 | 이재수의 난의 진원지 | 4·3항쟁의 현장

    6 제주의 유적과 지명 : 생명과 평화의 땅
    제주의 상징 관덕정 | 제주목 관아에 있던 홍화각 | 용담동의 제주향교 | 용연과 용두암 | 신선이 방문한다는 방선문 | 삼성혈에 얽힌 사연 | 김녕에 있는 김녕사굴과 만장굴 | 떠내려가다가 멎은 비양도 | 협재굴과 쌍룡굴 그리고 협재해수욕장 | 원나라 목호를 몰아낸 최영과 새별오름 | 한라산 자락의 오름들과 다랑쉬오름에 얽힌 사연 | 문주란과 수선화 | 제주항으로 바뀐 산저포 | 곽지리 사람 연근이 아내 김천덕 | 산굼부리와 환해장성 | 고유문의 효자비와 수월봉 | 차귀도와 절부암에 얽힌 내력 | 오현단에 서린 사연 | 벼를 실어 오는 포구 화북포 | 서불이 처음 도착한 조천 | 삼남대로의 길목이던 조천포 | 제주도에서 사라진 폐현 | 도근천의 숨은 내력 | 서미륵과 동미륵 | 제주의 한쪽이 떨어져서 생긴 소섬 | 제주의 섬 추자도

    7 한국의 최남단에 있는 서귀포시 : 남국의 향연
    한라산 남쪽 고을 | 지장샘에 얽힌 사연 | 서귀포의 제주 3대 폭포 | 삼매봉 봉수와 외돌개 | 제주도의 서쪽에 있던 대정현 | 가파도와 마라도 | 생김새가 호랑이를 닮은 호도 | 산방산의 산방굴사 | 광정당에 얽힌 사연 | 제주 동쪽에 있던 정의현 | 성산일출봉 | 세상에서 제일 키가 컸던 설문대할망 | 성산읍에 있던 고성 | 세 신인이 결혼한 혼인지 | 제주도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읍마을 | 한라산 남쪽에 솟은 송악산 | 서귀포의 존자암 | 존자암은 원래 영실에 있었다 | 번성했던 법화사 |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영주십이경과 유채꽃 | 명월성과 명월진

    8 한 많은 제주 유배지 : 600년 유배객들의 이야기
    유배지로서 최적지였던 제주도 | 고려 유민이라고 칭했던 김만희 | 제주도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다 | 기묘사화
    추천사 _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_ 대동강 물은 출렁이는데 아득하구나!

    함경도 _ 조선왕조의 꿈을 품은 곳
    1 철령관 북쪽에 있어 관북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 우리 백성과 오랑캐가 섞여서 농사짓던 곳 | 국토의 끝자락에 있는 온성 | 오랑캐의 피리 소리는 나그네를 근심케 하고 | 세 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 두만강이 휘감아 돌아가는 은덕군 | 나진에서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까지 731킬로미터 | 사람들이 모두 말을 타고 활을 쏘고 | 고말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청진항
    2 관모봉엔 흰 눈이 덮여 있고
    나라 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관모봉 | 칠보산, 개심사를 품은 함북의 금강산 | 이시애 난의 진원지 길주 | 백무고원 일대에 자리한 무산군
    3 봄도 넘기 어려운 함관령
    함주군에 있는 용흥강 | 천불동 골짜기에는 부처들이 서 있고 | 북청 물장수 | 단천과 북청 사이에 자리한 이원군 | 한백겸의 고향 단천 | 허천사과의 고장
    4 삼지연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다
    새로 만들어진 양강도 | 산의 혜택으로 살아간다 | 김일성과 보천보 전투 | 삼수갑산의 고장 | 허천강이 발원하는 김형권군 | 이순신의 첫 부임지 삼수
    5 이성계의 태 자리 함흥
    조선왕조의 발상지 | 함흥차사의 고향 함흥 | 함남에서 가장 넓은 농업 지대 | 산봉우리는 북으로 여진성에 의지하고 | 한적한 고갯길이 된 운령

    평안도 _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인심
    1 평평하고 아늑한 땅 평양
    대동강변에 자리한 평양 | 모든 것을 우리식대로 |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안 아프다? | 평양의 진산 금수산 | 성은 강가에 있고 | 을밀대야, 부벽루야 | 대동강변 평양 시내 | 김부식과 정지상 |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묘청의 난 | 평안 감사 박엽 | 평양 동쪽에 있는 성천군 | 높은 산이 호위하듯 빙 둘러 있고
    2 청천강 물은 가슴 시리게 푸르고
    살수대첩의 현장 | 바다는 서쪽 벽에 연이어 남국으로 향하고 | 백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백상루 | 열두삼천리벌 | 고구려의 무덤이 있는 대동군 | 땅은 향산에 닿았고 | 평안남도 중앙부에 자리한 고을 순천 | 함종 어씨의 고장 함종
    3 산 빛 물빛 고운 강계부
    미인의 고장 강계 | 위원군에서 날아온 위원산 | 나라 안에서 가장 추운 중강진 | 이여송의 조상 묘소가 있다는 위원군 | 김굉필의 유배지 희천시
    4 천하의 큰 강 압록강의 하류
    압록강 이천 리는 서러운 눈물 | 서희 장군의 흔적이 남은 의주 | 압록강 가운데 자리한 섬 위화도 | 인물의 고장 의주 | 귀주대첩의 현장 | 곽산고개 아래 운흥역에서 낮 밥을 먹고 | 인물이 많은 정주 | 진실로 맑지 않은 것이 없도다 | 청천강과 대령강변의 박천군 | 하늘이 만들어 낸 견고한 당아산성 |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 약산에 세운 철옹성 | 천리장성의 중심지였던 맹산군 |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묘향산 | 마음속으로 상원암에도 올라 보시고 | 청남정맥이 대동강으로 빠져들고

    황해도 _ 산천에 쓴 신화
    1 단군이 도읍을 정했던 구월산
    서도의 요긴한 지방 황주 | 봉산탈춤의 고장 | 서흥군에 자비령이 있다 | 관청이 한가한 수안군 | 산이 높고 물이 아름다운 곡산 | 평산 신씨의 고장 평산 | 멸악산 자락에 있는 금천군 | 임꺽정의 난 진원지 청석골 | 연암 박지원이 살던 곳 | 한석봉이 호를 지은 금천의 석봉산 | 자비령 넘어가는 길
    2 교통의 요충지 사리원
    그리운 사리원 | 단군이 신이 된 구월산 | 탈춤의 고향 은율 | 〈몽금포타령〉이 들려오는 곳 | 원나라 태자의 귀양지 대청
    3 용수산 자락에 해주가 있다
    관서의 큰 고을이었던 해주 | 벽성군에 석담구곡이 있다 | 해서 지방 제일의 고을 연안군 | 예성강에 인접한 배천
    4 500년 왕업의 터는 만월대로만 남아
    옛 시절 장단도호부 | 개성의 어제와 오늘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 두문동 72인 | 왕씨들은 자취를 감추고 | 500년 사직의 터 만월대 | 서경덕과 황진이 | 만수산 드렁칡은 얽히고 또 얽혀서 | 개성상인들의 고장 | 예성강 푸른 물에 | 국방의 요충지 강령군

    강원도 _ 모든 길이 빽빽한 숲속 그리운 땅
    1 높고 높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추가
    추천사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물길이 ‘산발사하’인 예향의 땅
    개요 멋과 맛의 고장 전라도 : 위대한 예술가와 사상가가 태어난 곳

    1. 후백제의 도읍지 온고을 : 전주·완주
    온전한 땅 전주 | 후백제의 도읍지 완산 | 백제 외교 복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견훤 | 물왕멀에는 백제 왕궁의 석축만 남아 |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전주 | 세상에 오는 것은 돌아감을 뜻함이니 |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간직한 도시 | 전주를 감싸고 있는 완주 | 화암사 가는 길 | 호남을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 삼례역

    2.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 : 익산·군산·김제
    백제의 궁궐터가 있는 익산 | 동양 최대의 절터 미륵사지 | 가람 이병기의 고향 여산 | 금강 하류에 있는 군산 | 오성산에서 금강을 바라보다 | 소설 《탁류》에 묘사된 1930년대 군산 | 쌀의 집산지 군산 | 공주의 태를 묻은 공주산 |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 만경평야 | 미륵신앙의 도량 금산사 | 증산교의 성지 동곡약방 | 망해사와 진묵대사

    3.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다 : 정읍·부안·고창
    내장산과 <정읍사>의 고장 | 동학의 땅 정읍 | 산천이 아름다운 신선 동네 고부 | 여류 시인 이매창의 고향 부안 | 허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우반동 | 아나키스트 백정기의 고향 | 고창읍성에는 여름 햇살만 남아 |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와 도산리 고인돌 |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무장읍성 | 3000여 승려와 89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대가람 선운사 | 소요산 자락에서 태어난 인물들

    4. 첩첩산중의 대명사 무진장 : 무주·진안·장수
    산간오지 무진장에서도 가장 북쪽인 무주 | 호남 최고의 누각 한풍루 | 산지로 둘러싸인 진안 | 덕태산 방면에 어린 용이 보이다 |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조용한 마을 진안 | 산은 높고 그 물줄기는 길고 | 강낭콩보다 푸른 절개를 지닌 장수 삼절

    5. 살 제 남원, 죽어 임실 : 임실·순창·남원
    고려와 조선의 건국 설화가 전해오는 성수산 | 의견비와 임실치즈 | 순창의 명물, 고추장과 강천산 | 18세기 지리학자 신경준의 고향 순창 | 애국지사 최익현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 | 남원의 상징, 춘향전과 광한루 |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 교룡산성 선국사 | 만복사에 남아 있는 양생의 사랑 | 판소리의 본고장 남원 |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섬멸한 황산

    6. 섬진강 물길 따라 : 곡성·구례·광양
    골짜기가 많은 산지에 들어선 곡성 | 구산선문의 큰 절 태안사 | 지리산 남쪽 기슭의 화엄사 | 모든 산의 으뜸인 지리산 | 남한 3대 길지에 지은 운조루 | 매천 황현의 고향인 구례 |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에 | 광양의 진산 백계산과 옥룡사지 |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 봄의 전령 청매실 익어가는 섬진나루

    7. 무등산을 바라보다 : 담양·광주·화순
    대나무가 많은 담양 | 금성산성과 강항 | 유희춘·정철 등 빼어난 인물이 많았던 창평 | 사미인곡의 탄생지 | 광주, 그 영원한 도시 | 문화의 도시이자 저항의 도시 | 민주화의 성지 광주 | 풍속이 화순한 고을 | 천불천탑이 있었다는 운주사와 고인돌 유적지 | 붉고 푸른 숲 사이의 쌍봉사 | 김삿갓의 마지막을 지켜본 동복

    8. 수지니, 날지니 쉬어 넘는 고개 : 장성·영광·함평
    바람도 쉬어 넘는 장성 갈재 | 갈애바위의 전설 | 유림의 고을 장성의 필암서원 |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황룡촌전투 | 편백나무 대군락지인 축령산 | 법성포의 영광굴비 |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의 고향 영광 |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때 지어진 불갑사 | 칠산바다 아랫자락의 함평

    9. 영산강 유역의 고을 : 나주·무안·목포·신안·영암
    고을의 판세가 한양과 흡사하다 | 집강소를 설치하지 못했던 나주 | 율정점에서 눈물로 헤어진 정약전과 정약용 | 영산강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 영산강 하류의 무안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 목포의 상징, 유달산과 삼학도 | 목포 앞바다 섬들로 이뤄진 신안 | 김환기 화백의 기좌도, 김대중 대통령의 하의도 | 영산강 하구에 평야가 발달한 영암 | 도선국사와 왕인박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림마을| 왕씨들의 제사를 지내는 숭의전 | 고려 진사 이양소와 태종 | 미수 허목이 잠든 연천 | 시냇물이 일렁거려 햇볕도 푸른 가평 | 숭명배청론자들의 조종암

    8.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 : 고양·파주
    고봉산 자락의 고양 | 한양 방문 전 중국 사신이 반드시 묵던 벽제관 | 이여송이 왜군과 싸워 크게 진 벽제관전투 | 고양에 있는 서오릉과 서삼릉 | 영험한 용미리 석불입상 | 고령산 자락의 보광사 | 율곡이 오른 화석정 | 유교문화의 상징, 자운서원과 파산서원 | 생활은 넉넉치 못하나 교통의 요지이던 파주 | 설인귀가 신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감악산 | 파평 윤씨의 고향 파주 | 청백리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낸 반구정 | 임진강변의 임진나루 | 남북 분단의 상징, 판문점과 임진각 | 통일 수도의 적지 교하
    | 월출산 아래 도선이 머물렀던 도갑사

    10. 남도의 해안을 따라 : 순천·여수·보성·고흥·장흥
    산과 물이 기이하고 | 빽빽한 갈대밭과 광활한 갯벌의 순천만 | 천년사찰 송광사와 선암사 | 금전산과 낙안읍성 | 여수의 진남관과 종고산 | 돌산도 향일암과 금오도 | 영취산 아래의 흥국사 | 여수순천10·19사건의 아픔을 딛고 | 보성과 벌교 그리고 태백산맥 | 대종교를 중창한 나철의 고향 벌교 | 흐린 물과 탁한 물 | 소록도가 있는 고흥군 | 여인이 치맛자락처럼 부드러운 능선의 억불산 |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중 하나인 보림사 |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 장흥

    11. 다도해 주변 고을 : 강진·완도·해남·진도
    조선시대 전라도 병영이던 강진 |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만덕산 | 다산 정약용의 숨결이 남아 있는 강진군 | 다산초당 아래 구강포 | 장보고와 청해진 | 보길도, 그 아름다운 곳 | 남쪽 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 아침고개와 푸른 비가 내리는 녹우당 | 달마산 기슭의 미황사 | 삼남대로가 시작되는 이진항 | 진도, 그 유배의 땅 |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이긴 울돌목
    령 지구대 | 강원도에서 함경도로 바뀐 안변 | 총석정이 있는 통천 | 금강과 회양에 걸친 금강산 | 금강산의 이름 온 천하에 드높아
    2 휴전선 이북, 분단과 평화의 땅
    세조의 자취가 남은 김화군 | 회양의 서쪽에 있는 금성 | 창도군 동북쪽의 단발령을 넘어서 | 온종일 푸르고 빽빽한 산속을 뚫고 간다 | 평강의 서쪽에 있는 이천군 | 이천에 편입된 안협
    연 |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던 청계천 | 수표교의 연날리기와 다리밟기 | 북청 물장수의 내력 | 도성민의 시계 역할을 한 보신각종 | 종루거리의 육의전 | 우리나라 최대 시장,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 각종 물화의 집산지 송파시장 | 서울을 두고 만들어진 속담들

    8.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진흙탕길에서 번화가로 변모한 진고개 | 다양한 상점이 들어선 종로 | 종로의 뒷골목 피맛골에 얽힌 사연 | 구름재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 긴 세월 수난을 겪은 정릉 | 공릉동에 있는 태릉과 강릉 | 미나리로 유명했던 왕십리 | 나라의 목장이 있었던 뚝섬 | 얼음 창고가 있던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 나이 많은 노인들이 오래오래 살았던 구로 | 새로운 모래판 신사동과 논고개 논현동 |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선릉과 사교육 1번지 대치동 | 조선시대에 마방이 있던 양재역의 말죽거리 | 인조가 피난길에 들른 송파구 마을들 | 고려 말 이집이 은거했던 둔촌동
    로 유배를 왔던 김정 | 불교의 부활을 꿈꾸었던 보우 | 기축옥사로 유배 온 소덕유와 길운절 | 제주에 파견되었던 김상헌 | 대정현에 남겨진 정온의 자취 | 비운의 왕 광해군의 자취 | 〈제주풍토기〉를 지은 이건 | 소현세자의 세 아들 | 송시열이 왔던 제주도 | 두 번 제주에 유배된 김춘택 | 이중환이 연루된 신임사화의 주인공들 | 임관주가 머물렀던 안덕의 창천리 | 유배객 조정철이 사랑한 제주 여자 | 천주교 박해로 유배 온 사람들 | 추사 김정희의 적거지 대정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배

    9 제주에 남은 역사의 자취들 : 섬에 남겨진 것들
    이지함의 자취가 서린 제주도 | 출륙금지령이 있던 제주도 | 출륙금지령 이후에 발효된 풍선조선금지령 | 환상의 섬, 이어도 | 신선의 나라에서 나는 열매 | 귤을 독약 같이 보고 | 진상품을 맺던 귤나무는 대학나무가 되었고 | 오직 뱃일뿐 | 올레와 올래 | 곤밥과 고사리 | 제주말 |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탔던 제주말 | 생선이 지천이니 | 제주도의 나무 | 숨비소리 |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제주도의 아홉 곳

    본문중에서

    평안도와 양강도 동쪽에 있는 백두산에서 비롯된 백두대간이 대연지봉과 소연지봉, 간백, 소백, 허항령을 거쳐 북포태산을 지나면 장백정간이 갈라지는 설령봉 아랫부분에 닿는다.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은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이 나뉘는 지점을 관모봉冠帽峯이라 했고, 산악인 박기성은 만탑봉萬塔峯이라 부른다. 이 산에서 두만강 끝자락까지 이어지는 장백정간과 갈라진 백두대간은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를 가르며 마대산과 두류산을 지나 추가령까지 내려와 철령에서 휘돌아 남으로 내려가는데, 그 바로 윗부분이 명사십리明沙十里로 유명한 원산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중에서/ p.28)

    두만강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백두산 동남쪽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서두수, 연면수, 성천수 등의 큰 지류들이 합류하며, 중류에 이르러서는 심한 감입 곡류를 하면서 보을천과 회령천을 합한 후 본류는 북북동으로 흐른다. 함경북도의 최북단에 이르러 중국의 간도 방면에서 흘러오는 해란강을 합한 두만강의 물길은 급전해 남동쪽으로 흐른다. 하류에서는 다시 간도 지방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혼춘강과 우리나라 쪽의 오룡천, 아오지천 등의 물길을 합한 후 수량과 하폭을 증대하면서 하구 부근의 호소 지대를 거쳐 서수라 부근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두만강은 고려강, 통문강統們江, 도문강圖們江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만주지명고满州地名考》에 따르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衾의 ‘도문’이라는 여진어 자구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청문감漢淸文監》이나 《동문유해同文類解》에는 원나라 때 지방 관제에 만호萬戶와 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쓰여 있다. 두만강의 이 같은 별칭들은 후에 청나라 측이 백두산 정계비에 쓰여 있는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자구 속의 ‘토문’이 두만강이라고 강변하는 데까지 이르러 오늘날의 간도 지역을 중국의 영역으로 하고 있다
    ('세 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중에서/ p.48)

    부령 바로 아래가 청진淸津이다. 부령부 산하 청하면에 소속된 60여 호에 불과한 한적한 어촌이었던 청진이 현대적 항구로 탈바꿈한 것은 1908년 개항 이후부터였다. 1914년 경서부로 승격했고, 1929년 함경선이 개통되면서 대륙의 목재 및 지하자원의 집산지와 수송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후 1944년 수성과 나남을 흡수하면서 청진시가 되었고, 도청이 경성으로 옮겨 오면서 크게 발달하기 시작해 동해안 최북단의 최대 항구가 되었다. 1960년 10월 직할시가 되었으며 그 뒤 다시 함경북도에 편입되었다가 1977년 11월 또다시 직할시가 되었고, 1985년에 일반시로 환원되었다. 이곳 청진에는 관북 특유의 애수에 찬 근대 민요 〈애원성〉이 전해 온다.(중략)
    이 얼마나 애달픈 사랑 노래인가. 청진에는 경성만과 해발 182미터의 고말반도가 있어 항구로 발달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고말반도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면서 쌍연산, 고말산 등을 이루며 이 산들은 항구의 북쪽 벽을 이룬다. 서북쪽으로 고성산이 있다. 서쪽으로 나남에 이르는 길목에 넓은 수성평야가 펼쳐지고 수성천이 흐른다. 청진은 바다와 인접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큰 추위가 없는 따뜻한 항구다. 주요 수산업 기지로 원양 어업의 근거지이기도 하지만 금속, 기계, 건재, 화학 등 중공업이 발달했으며, 김책제철소, 청진조선소, 청진제강소가 있다.
    ('고말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청진항' 중에서/ p.58)

    한편 길주에는 고려시대에 여진족을 몰아내고 쌓은 9성 중 하나인 공험진公嶮鎭 외에도 서북진西北鎭, 선화진宣化鎭, 다신산성多信山城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조선 전기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황희黃喜는 길주에 온 뒤 “나이 일흔에 3000리 밖 왕의 명을 받들고 오니, 멀고 먼 지역 땅이 끝난 곳이로다. 다행히 주인이 정중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서, 늙은 얼굴 센 머리털에도 오히려 운치 있게 지내도다”라고 하여 먼 곳에 온 여정을 시로 피력했다. “풍속이 중후하며 순박함을 좋아한다”

    고려 현종 9년(1018) 경기는 개성을 둘러싼 주변 구역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랐다. 이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그때까지 개성부가 관할하던 적현과 기현을 합쳐 경기라고 불렀다. 적현과 기현을 합쳤으므로 적기라고 불러야 옳았겠지만 당시 적현을 다른 말로 경현이라고도 불렀으므로 경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경기를 좌우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도로 칭하게 된 것은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이 지방행정제도를 팔도제로 정비하면서부터였고, 세종 때에 이르러 개성 주변이던 경기도가 조선왕조의 새 서울인 한양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로 확립되었다.
    -개요 나라의 으뜸 경기도' 중에서/ p.24)

    한남정맥의 줄기에 속하는 여주 북성산 기슭에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과 부인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사적 제195호)이 있다. ‘꽃부리 영(英)’ 자를 쓰는 영릉(英陵)은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땅에 피는 아름다운 꽃, 즉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 풍수가들은 “이 능의 덕으로 조선왕조가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1장 남한강에서 남한산성까지 : 여주·양평·광주·성남·하남' 중에서/ p.34)

    강화 전등사 대웅전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발가벗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의 형상이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바라보기가 무척 애처롭기도 하지만 해학이 넘쳐나는 이 나녀상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광해군 때 대웅전의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에 사는 주모에게 돈과 집물을 맡겨 두었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주모가 돈과 집물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에 도편수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여자와 닮은 나체 형상을 만들어 추녀를 들고 있게 했다. 불경을 듣고 개과천선하도록 하고 절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악녀를 경고하는 본보기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2장 역사 속 수난의 땅 : 강화도·교동도' 중에서/ p.110)

    이곳 화성에는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을 먹어 치울 때 쓰는 말로 예전 남양도호부에 부임하는 원님들이 남양만의 특산물인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고 해서 생긴 속담이다. 굴은 서식 환경에 따라 맛이 다른데 이 지역에서 나는 굴이 알은 작아도 맛이 특별히 좋아 남양에 부임하면 만사 제쳐놓고 굴회부터 후루룩 마셨던 것이다.
    ('3장 남북으로 통하던 중요한 길목 : 안산·화성·평택·오산' 중에서/ p.152)

    ‘안성꽃신 반저름(가죽신의 일종)은 시집가는 새아씨 발에 마침이다’라는 속요가 전해지고, ‘안성맞춤이다’라는 속담이 만들어질 만큼 안성유기를 비롯한 이 지역 생산품이 공물(貢物) 품목에 들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한양에서 ‘안성유기 열 벌만 만들어 올려라’ 하면 이곳의 관리들이 스무 벌 서른 벌을 만들어서 제가 가지는 통에 살 길이 막막해진 안성 사람들은 꾀를 내어 현감이나 군수가 새로 부임되어 오자마자 공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부터 세워줬다고 한다. 그러한 사연을 지닌 영세불망비가 안성공원에 44개쯤 모여 있어 나라 안에 단일로는 가장 많다고 한다.
    ('4장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 : 안성·이천·용인·의왕·광명' 중에서/ p.194)

    수원 화성은 세계 역사 속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성곽도시로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성문(城門)은 성곽 내외를 연결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전시에는 적의 목표가 되지만, 평시에는 성곽의 외관을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의장 기능을 한다. 수원 화성의 사대문인 북문 장안문, 남문 팔달문, 동문 창룡문, 서문 화서문은 모두 아치형의 홍예문을 이루며, 2층에는 적의 동태를 조망할 수 있는 누각이 설치되어 있다. 수원 성문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장안문과 팔달문인데, 그중에서도 장안문은 수원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장안문은 서울 장안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사대문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5장 수원 화성에서 서해안까지 : 수원·안양·과천·부천·인천·김포' 중에서/ p.232)

    북한강과 남한
    이중환이 《택리지》 말미에 “어진 사람이 그 지역에 살면서 부유한 업을 밑받침으로 예의와 문행文行을 가르친다면 살지 못할 지역은 아니다. 또한 산천이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은데,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도록 크게 드러난 적이 없었으니, 한 번쯤은 모였던 정기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썼던 전라도는 변혁의 땅이기도 하다.
    ('개요 멋과 맛의 고장 전라도' 중에서/ p.28)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 살았다고 해서 전주객사의 이름조차 풍패지관豊沛之館(보물 제583호)이라고 붙인 전주에는 호남제일문인 풍남문(보물 제308호)과 경기전(사적 제339호), 오목대, 이목대 등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고종 31년(1894) 5월에는 동학농민군이 무혈입성을 한 뒤 전주화약을 맺었던 곳이며, 오늘날 지방자치제의 효시라 할 집강소를 설치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오랜 전통 속에 풍류가 흐르는 전주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발전 기회를 놓쳤다.
    ('1장 후백제의 도읍지 온고을 : 전주·완주' 중에서/ pp.60~61)

    두 개의 석탑 중 (…) 서쪽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1915년에 벼락을 맞아 무너져 내려 일제가 보수공사를 했으나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오히려 탑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8년 석탑이 노후화된 데다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어 해체, 수리가 결정되었다. 원래는 9층탑이었으나 1915년 당시 무너진 6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되어 일제가 덧바른 콘크리트를 세밀하게 벗겨내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20년 만인 2018년 복원이 완료되었다.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수리를 진행한 미륵사지 석탑은 2018년 12월부터 원래의 자리에서 공개된다.
    ('2장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 : 익산·군산·김제' 중에서/ p.86)

    불길처럼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그날의 함성은 결국 우리 근현대사의 시작이 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맥은 증산교와 보천교로 이어진다. 농민 봉기로 탐관오리를 몰아낸 역사적 현장인 고부관아는 1926년에 발간된 《조선고적보도朝鮮古蹟報道》에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현재 고부관아터(전북기념물 제122호)에는 고부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관아 건물이 전부 철거되었다. 대신 운동장 한 켠에 초석·기단석 등 석조물이 남아 이곳이 역사적 현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장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다 : 정읍·부안·고창' 중에서/ p.134)

    구천동은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에 걸쳐 있는데 이곳에는 옛날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음을 보여주는 라제통문羅濟通門이 있다. 말 그대로 신라와 백제가 서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의 라제통문은 바위투성이 벼랑에 인위적으로 뚫어 만든 굴문으로 현재는 전라도 땅인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다. 실제로 이 굴문이 뚫린 것은 삼국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무주와 경북 김천을 잇는 신작로를 닦으면서였다고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이 문에 이곳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4장 첩첩산중의 대명사 무진장 : 무주·진안·장수' 중에서/ p.173)

    지리산 피아골은 동학농민군들이 숨어들고, 의병들이 일본군에 항전을 벌인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빨치산이 이곳을 근거지 삼아 저항했다. 그때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골짜기마다 붉게 물들었기에 피아골이라고 한다거나 그들의 넋이 나무마다 스며들어 단풍이 유난스레 붉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본래 이 지역에서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한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어느 순간 피아골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6장 섬진강 물길 따라 : 곡성·구례·광양' 중에서/ p.239)

    광주가 전라도의 중심 도시로 자리잡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대륙 침공과 자원 반출을 위해 광주 대신 항구 도시인 목포를 더 많이 개발하고 이용했기 때문이다. 호남선이 광주를 비켜 송정리(현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를 거쳐 목포로 이어졌고, 목포가 1910년에 이미 부로 승격한 데 비해 광주는19 35년에야 비로소 부가 되었다.
    ('7장 무등산을 바라보다 : 담양·광주·화순' 중에서/ p.270)

    법성포는 영
    한반도의 남쪽에 자리 잡은 제주도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풍토와 풍속을 지녀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겐 마치 이국의 어느 지방에 도착한 것과 같은 낯섦을 선사한다.(중략)
    이렇듯 육지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제주도에서의 삶은 유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어떠했을까? 누구나 제주도에서의 탈출을 꿈꾸었다. 더러는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더러는 금세 돌아와 제주에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과거에는 유배지로, 오늘날에는 관광지로 조명받는 땅인 만큼 제주는 숱한 부침을 겪어 왔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는 섬 제주도' 중에서/ p.10)

    수많은 사람들이 질곡의 세월 속에 살다간 제주도, 그 제주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있었다. 고려 때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로 들어온 김통정을 비롯한 삼별초가 제주도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 했고, 조선 중기에는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길운절이 소덕유(정여립의 척분)를 찾아가 모반을 도모했다. 그 뒤를 이어 조선 후기에 일어난 제주 민란의 주동자들도 그러했다. 어디 그뿐인가. 1894년 요원의 불길처럼 치솟았던 동학 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동학도였던 방성칠과 그 일행들이 일으켰던 방성칠의 난과 외래 종교인 천주교와의 마찰로 일어났던 이재수의 난이 모두 조선 후기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란이었다. 그 뒤 잠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던 제주도에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전대미문의 큰 사건이 터졌다. 바로 제주도 민중 3분의 1이 희생된 4·3항쟁. 제주도 땅에서 피어난 이 모든 꿈은 무수한 희생자와 큰 상처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시샘해서 그런지 제주의 역사는 이처럼 절망과 슬픔의 역사다.
    ('바람이 빚은 섬 제주도' 중에서/ p.27)

    한라산은 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한라’라고 하는 것은 운한雲漢(은하)을 나인拏引(끌어당김)할 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사람이 떠들면 구름안개가 일어나서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다. 5월에도 눈이 있고 털옷을 입어야 한다.
    산이 높은 지방에서 흔히 쓰는 말로 ‘하늘이 세 뼘밖에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한라산이 영주산이라고 알려진 것은 중국 《사기史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중국 동쪽에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으로 봉래산과 방장산, 영주산이 등장한다. 이는 곧 금강산과 지리산, 한라산의 다른 이름이다. 이 중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한라산에 기원전 200년경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명을 받아 역사力士 서불徐市이 그 불로초를 캐러 왔다.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 중에서/ p.56)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500명의 아들을 데리고 한라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식구가 워낙 많다 보니 그날그날 구걸을 해 와야만 끼니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아들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할망은 아들들을 먹일 죽을 큰 가마솥에 끓이다가 잘못하여 가마솥에 빠져 죽게 된다.
    구걸한 쌀을 짊어지고 늦게야 돌아온 아들들은 배가 고파 어머니를 찾을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죽을 떠먹었다. 그날따라 죽 맛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늦게 온 막내아들이 어머니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다 가마솥을 죽젓개로 젓자 어머니가 그 안에 빠져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막내아들은 크게 서러워하다 무심하게도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먹은 형들을 원망하며 도망쳤다. 그러고는 고산 앞바다 차귀도 앞에 가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 버렸고, 499명의 형제는 그 자리(영실)에서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서 큰 소리를 지르면 삽시간에 구름이 덮이고 안개가 끼어 앞을 찾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하면 비가 온다. 이는 설문대할망이 성이 나서 그런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서린 영실' 중에서/ p.80)

    제주도를 두고 ‘언어학의 보물
    5000년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도시, 서울. 그 서울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느닷없이, 호랑이를 만나기도 하고, 암행 나온 성종 임금을 만나기도 하고, 느릿느릿 걷는 흥선대원군이나 법회를 열다가 나와서 수챗구멍에서 낮잠을 자는 매월당 김시습이나 새끼를 꼬고 있는 연암 박지원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머리말' 중에서/ p.10)

    한양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으로부터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그 정기가 봉우리로 뭉친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청룡인 낙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고, 우백호인 인왕산(일설에는 무악 또는 갈마재라고 함)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 남쪽에는 목멱산(남산)이 안산(案山,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 산)으로 솟아 있고, 한강이 남쪽과 서쪽을 둘러 흐르며, 관악산이 북한산에 문안드리는 듯하여 예부터 풍수지리상 왕도가 될 만한 명당으로 지목되어왔다. 이처럼 한양은 명당일 뿐 아니라 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있고 서해가 가까워 교통이 편리한 자연적 이점을 지녔으며 실제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1장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공화국 : 서울의 역사' 중에서/ p.40)

    우리나라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창덕궁(사적 제122호)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 한양으로 재천도한 태종 4년(1404)에 건립한 궁궐이다. 태조 3년 한양 천도가 이루어진 뒤 정종 원년(1399) 3월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으로 환도가 이루어졌다. (…) 창덕궁은 처음에 크지 않은 규모로 지어진 데다가 주거 및 편전 등 실용적으로 필요한 건물 위주로 지어졌다. 때문에 의례를 위한 건물인 정전을 비롯한 외전은 매우 조촐하게 지어졌다.
    ('2장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궁궐 :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중에서/ pp.94~95)

    서대문터에는 다산 정약용의 자취가 남아 있다. 다산도 젊은 날에는 풍류를 즐겼는데, 그는 서른다섯 살이던 정조 20년(1796) 7월에 죽련시사(竹欄詩社)라는 풍류계를 맺었다. (…) 이 연못에는 연꽃이 많기도 했지만 연꽃이 크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죽련시사를 맺은 선비들은 동이 트기 전 서련지에 모여서 연못에 배를 띄우고 연꽃 틈에 귀를 갖다 대고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무언가를 기다렸다. 연꽃이 필 때 꽃봉오리가 터지며 나는 아름다운 맑은 음을 듣기 위해서였다. 다산과 그의 친구들은 ‘청개화성(聽開花聲)’, 즉 꽃 피는 소리를 듣는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3장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숭례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중에서/ pp.179~180)

    여의도는 모래섬이다 보니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홍수가 나면 양말산을 제외한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가뭄이 심할 때는 영등포에서 밤섬까지 한강철교에서 양화대교까지 온통 모래벌판이었다고 하니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은 별로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잉화도(여의도)가 서강 남쪽에 있고 목축장이 있다. 사축서, 전생서의 관원 한 사람씩을 보내 목축을 감독한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부터 이곳이 나라의 말이나 양, 염소 등을 기르는 목축장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양말산이라는 이름도 나라에서 말을 길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5장 서울의 중심 한강 : 역사가 흐르는 강' 중에서/ p.264)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하다가 병신 되면 못 가리”라는 참요처럼, 19세기 후반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갑오년(1894)에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고, 을미년(1895)에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 병신년(1896) 2월 11일에 새벽 한 나라의 국왕이 비밀리에 궁궐을 탈출하여 타국의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가 바로 친러 세력과 러시아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현재 정동에 있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이다
    ('6장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중에서/ p.288)

    보신각에 처음 종을 건 것은 태조 7년(1398) 때였다. 처음에는 지금의 인사동 입구쯤에 있던 청운교 서
    창고’라고 부르는 것은 이 지역에 사라진 옛말과 독특한 조어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새그릇(질그릇), 지새집(기와집), 비바리(처녀), 독새기(돌멩이), 가우리(지렁이), 오로(두더지), 덕세기(멍석), 베염고장(봉선화), 밥주리(참새), 폿자리(작은 매미), 물새(잠자리), 게염지(개미), 쟁이(호박), 수눌음(품앗이), 솟덕(부뚜막), 돗껭이(회오리바람), 황고지(무지개), 입바위(입술), 바릇(바다), 보제기(어부) 등과 같은 단어가 그렇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듣고 황당해 하는 말이 ‘속다’이다. 속다는 ‘욕보다’, ‘수고하다’라는 뜻의 제주 말인데 말의 어휘상 그 말을 들으면 느닷없이 ‘왜 속았다고 하는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래전 조선의 아홉 대로 중 한 곳인 ‘관동대로’ 촬영 차 방문했던 삼척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다. 촬영이 다 끝나자 그곳 사람들이 “폭삭 속았수다” 하는 것이었다. 즉,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인데, 강원도 삼척 부근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한다. 해녀들이 삼척으로 전복을 따러 갔다가 육지 남자와 살게 되면서 옮긴 말이 아닌가 싶다.
    ('삼촌, 폭삭 속았수다' 중에서/ p.131)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어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이 바로 김만덕金萬德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에도 등장하는 김만덕의 삶을 〈만덕전萬德傳〉으로 기록한 사람이 정조 때 문신인 채제공蔡濟恭이다. 〈만덕전〉에 의하면 만덕의 본관은 김해 김씨이고,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기안妓案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스물셋에 제주 목사의 허락을 받아 양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만덕은 제주도 남자들을 촌스럽게 여겨 혼인하지 않고 지냈는데, 장사 수완이 뛰어나 수십 년 사이에 내로라하는 부자가 되었다.
    당시 제주 목사가 만덕의 선행을 조정에 보고하자, 정조는 김만덕에게 내의원 의녀반수醫女班首의 벼슬을 내렸다. 김만덕은 나이 58세(정조 20, 1796)에 정조를 알현했다. ‘제주도 여자는 뭍(육지)에 오를 수 없다’는 금기를 깨뜨린 김만덕은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각 고을 역참의 융숭한 호위를 받는 특전을 누리며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에 도착한 만덕은 당시 좌의정이던 윤시동尹蓍東의 부인 처소에 머물렀다. 궁궐에 나가서 혜경궁 홍씨를 알현하기도 했다. 그때 혜경궁 홍씨는 “네가 여자의 몸으로 굶주린 수많은 백성을 의롭게 구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며 후한 상을 내렸다. 그리고 영의정 채제공과 선혜청의 배려로 금강산을 유람했다.
    ('만덕의 두 얼굴' 중에서/ p.195)

    제주도와 진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추자도는 상추자와 하추자 그리고 두 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포함한다. 맑은 날에는 섬들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이 추자도에는 다산 정약용의 조카 정난주丁蘭珠와 아들에 얽힌 사연이 서려 있다.
    신유박해 때 다산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발각되어 황사영은 참수당하고, 그의 부인 정난주는 관노가 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길이었다. 추자도 해안가에 잠시 머물 때 정난주는 아들까지 노비로 자라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 이름과 태어난 날, 부모의 이름을 적어 젖을 먹고 잠든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옷 안에 넣고 아이만 남겨 둔 채 홀로 제주도로 향했다. 정난주는 유배지 대정에서 살다 작고했고 추자도에 남겨진 아기는 오씨가 발견하여 잘 키워 주었다. 그런 연유로 추자도 오씨와 황씨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기가 남겨졌던 바위에는 눈물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는데 태풍에 십자가가 꺾이고 말았다.
    ('제주의 섬 추자도' 중에서/ p.305)

    제주도 사람들에게 출륙금지령을 내리면서 함께 시행했던 것이 풍선조선금지령風船造船禁止令이었다.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갈 때 사용하던 풍선은 화살처럼 빠른 배다. 풍선은 선체 위에 세운 돛에 바람을 받게 해서 진행하는 배로 울릉도 개척 시기에 이주민들이 타고 온 나선(전라도 어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종 19년(1882) 울릉도 검찰사
    쪽에 2층짜리 누각을 짓고 종을 걸었다가 태종 13년(1413)에 지금의 종로1가사거리에 통운교로 옮겼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광해군 11년(1619)에 종루를 다시 짓고 종을 걸었다. 이때는 임진왜란 전과 같은 2층 종루가 아니라 1층 종루로 세웠다. 종루는 그 뒤로도 화재로 인해 다시 건립되기를 거듭하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현판을 걸면서 보신각으로 불리게 되었다.
    ('7장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중에서/ p.346)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큰길 양쪽으로는 집 한두 채 건너마다 좁다란 골목길이 형성되었는데 이 길을 피맛골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말을 타고 큰길을 가다가 고관대작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가에 엎드려 있는 것이 관례였다. 고관대작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말을 타고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피맛골을 한자로 피마동(避馬洞)이라고 한 것은 이처럼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쓰던 길이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주로 서민들이 다녔던 피맛골에는 그들을 상대하는 장국밥집이나 목로주점과 내외술집 같은 허름한 가게들이 들어서 이 일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8장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중에서/ p.366)고 《여지도서》 실린 길주에서 생산되는 삼베인 길포吉布는 예로부터 그 품질이 우수하고 발이 곱기로 유명했다. 김삿갓 김병연金炳淵의 시에서도 길주를 만날 수 있다
    ('이시애 난의 진원지 길주' 중에서/ p.66)

    개마고원은 행정 구역상 삼수군, 갑산군, 장진군, 신흥군, 김형권군 등에 위치하며, 북부의 압록강 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나 남쪽과 동쪽에서는 급경사를 이룬다. 또한 압록강과 두만강 지류에는 갑산, 장진, 무산 등의 대지가 펼쳐진다. 허천강과 장진강 사이에는 북수백산, 차일봉 등이 솟은 북수백산맥이 뻗어 있고, 부전강과 장진강 사이에는 연화산, 희색봉 등이 뻗어 있으며, 장진강 서쪽에는 와갈봉과 낭림산 등이 솟아 있다.
    개마고원에는 허천강, 능귀강, 장진강, 부전강, 삼수천, 후주천, 후창강 등 압록강의 지류가 흐르며, 강의 계곡에는 부전호, 낭림호, 황수원저수지 등이 있다. 이 하천과 저수지들은 수력 발전뿐만 아니라 뱃길과 뗏목 수송로로도 이용되었다. 대륙성 기후 특성이 뚜렷한 곳으로, 지역에 따라 연평균 기온은 1~4도,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8~20도, 7월 평균 기온은 16~21도다. 백조봉과 칠발산, 활기봉, 동점령산, 백세봉 희색봉 등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겹겹이 솟아 있다. 이곳 삼수갑산을 한 편의 시로 남긴 이가 김소월金素月이다.
    ('삼수갑산의 고장' 중에서/ p.111)

    평양에서 이름난 물산은 평안남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평양견平壤繭과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 일대에서 사육되는 소[牛]다.
    《여지도서》는 평양시 강동군江東郡을 “동쪽과 북쪽은 뒤로 산을 등지고 있고, 서쪽과 남쪽은 앞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다. 학문과 배움을 숭상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힘쓰며 농업과 누에치기에 부지런하다” 했다. 이곳 대박산 기슭에는 단군의 무덤이라는 단군릉이 있고 무진리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묘 동명왕릉이 있는데, 장수왕 15년(427)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함께 옮긴 것이라고 한다.
    평양에 와서 냉면을 못 먹었다면 평양 구경을 다 했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조선 팔도에 소문난 옥류관의 평양냉면, 청류관의 전골과 신선로, 평양약밥이 이름 높다. 또 하나 이름났던 것은 대동강에서 물을 길어다 파는 물지게꾼이었다.
    ('대동강변 평양 시내' 중에서/ p.177)

    장강군 동쪽에 자리한 낭림군狼林郡은 함경남도 장진군에 속했다가 1952년에 신설한 군으로, 개마고원의 서부 낭림고원에 있다. 낭림군은 해발 1000미터 안팎의 전형적인 고원 지대에 속해 주변에 와갈봉, 회색봉, 천의물산, 연화산 등의 높은 산이 연이어 서 있으며, 장진강과 그 지류들이 흐르고 군의 중앙부에 낭림호가 있다. 주요 산업은 목재 산업과 양을 키우는 축산업이다.
    자강도 북동쪽에 있는 화평군和坪郡 역시 1952년 후창군과 자성군의 일부를 분리해 만든 군으로, 천리산, 백삼봉, 오가산, 오봉산, 직고개 등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과 고개가 줄지어 솟구쳐 있다. 이 중에 오가산은 1959년에 자연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봉산은 기묘한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라 안에서 가장 추운 중강진' 중에서/ p.235)

    황해도 일대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는 1년에 한 번 씩은 탈춤놀이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봉산은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사신들이 오가기 때문에 영접하는 행사가 잦았다. 또한 여러 지역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기에 더욱 이런 놀이가 성행했다. 처음에는 나무 탈을 쓰고 봉산탈춤을 벌렸으나, 대략 200여 년 전 봉산에서 관아의 구실아치 노릇을 하던 안초목이 전라도에 있는 한 섬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후 종이탈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19 세기 말부터 봉산탈춤은 해서 탈춤의 대표적 놀이로 발전했다.
    봉산탈춤이 열리는 시기는 원래 4월 초파일이었으나 5월 단옷날로 옮겨졌다. 단옷날 밤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그 외에도 원님 부임하는 날이나 원님 생일, 사신의 영접, 탈춤대회가 있을 때도 연희되었다.
    ('봉산탈춤의 고장' 중에서/ p.324)

    해주를 두고 “섬들은 많이도 봉화에 비치고, 밭두둑은 태반이 다북쑥에
    광굴비의 산지로도 유명한데 말린 조기를 뜻하는 굴비라는 말은 고려 때 문벌귀족인 이자겸과 관련이 있다. 이자겸은 딸을 예종에게 시집보내 권력을 잡았는데, 예종이 죽자 다른 딸을 왕이 된 외손자(인종)에게 시집보냈다. 인종이 즉위한 후에도 이자겸이 전횡을 일삼자 인종과 신진세력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이를 알게 된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 척준경의 배반으로 실패하고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 이곳에서 소금에 절여 해풍에 말린 조기를 맛본 이자겸은 감탄하여 임금에게 조기를 보내면서 ‘정주굴비’라고 적었다고 한다. 정주靜州는 영광의 별호이고, 굴비屈非는 ‘뜻은 굽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영광에서 말린 조기를 영광굴비라고 부르게 되었다.
    ('8장 수지니, 날지니 쉬어 넘는 고개 : 장성·영광·함평' 중에서/ pp.304~305)

    여수의 진산은 연등동에 있는 종고산이다. 임진왜란때 산이 스스로 울어 국난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이 종고산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한산도대첩 하루 전날 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무음산無音山이라고 불리는 전라좌수영 뒷산에서 3일 밤 계속하여 종소리 같기도 하고 북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괴이하게 여긴 사람들은 한산도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장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장군은 “바다에 맹세했더니 고기들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했더니 초목들이 알았구나” 하며 무음산을 쇠북 ‘종種’ 자와 북 ‘고鼓’ 자를 써서 종고산鐘鼓山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10장 남도의 해안을 따라 : 순천·여수·보성·고흥·장흥' 중에서/ p.379)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한자로는 양수두(兩水頭)라고 쓰는데, 두 강줄기가 합수하는 모서리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일제 때 양수리 근처에 올라갔던 일본인이 두물머리를 내려다보고 “조선에도 이런 명당이 있었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나라의 젖줄인 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으로 한민족을 감싸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뜻깊은 곳이다.
    ('6장 서울 동쪽의 고을들 : 구리·양주·남양주·의정부' 중에서/ p.312)

    파주시 진서면의 판문점은 한국전쟁 때 1951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최초의 휴전회담 장소는 도로변에 초가집 몇 채만 있던 널문리라는 고장이었으며,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휴전회담을 했다. 판문점은 바로 이 널문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널문을 한자로 쓰면 ‘판문(板門)’인데 구멍가게를 의미하는 ‘점(店)’ 자를 넣어 판문점이 된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판문점은 유엔 측과 북한 측의‘공동경비구역’으로 결정되었다.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8장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 : 고양·파주' 중에서/ p.396)
    이규원의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를 보면 전라도와 강원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도항해서 채곽과 채어를 하여 조선이 끝나면 배에 싣고 귀향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정조 11년(1787) 울릉도를 탐사한 라페주르 탐험대의 《세계탐험기》에는 선박 건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울릉도 개척 시기 이전부터 나라 곳곳에서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풍선의 길이는 대개 20~30미터가량 되며, 풍 돛은 1~3개 정도 달았다. 단순한 돛을 가진 작은 범선은 돛단배 또는 돛배라고 했다. 돛과 기관을 함께 갖춘 선반을 기범선機帆船이라고 했다. 풍선을 타고 항해할 때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밤에는 별의 방향을, 낮에는 바람의 방향을 이용했다.
    제주도에 풍선조선금지령이 내려지면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용되던 ‘덕판배’라는 풍선을 못 만들게 하여 그때 등장한 배가 ‘테우’라고 한다. 풍선을 못 만들게 하면서 테우라는 느린 배로 인근만 오가게 했던 세월이 200여 년이었다. 중국의 당나라나 송나라가 왕조를 누리던 시간과 거의 같은 오랜 세월이었고, 다시 만들기 시작하여 전라도 일대에서 만들어진 풍선이 울릉도로 가게 되었다
    ('출륙금지령 이후에 발효된 풍선조선금지령' 중에서/ p.454)묻혔네”라고 한 이색과 “높은 산은 층층한 구름 가에 은은한데, 넓은 바다는 출렁거려 앞을 둘렀네”라고 한 윤자운의 시는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조선 전기 문신 김자지金自知의 “고을은 수풀 언덕을 의지하여 궁벽하고, 땅은 바다 어귀에 곁하여 깊었네”와 역시 같은 시기 문신이었던 고득종高得宗의 “만고에 백이숙제 살던 곳인데, 그 유풍에 감회도 깊구나” 같은 시도 해주를 노래했다.
    이곳의 물산은 실미역이라 부르는 사곽, 해조류인 황각, 쌀새우라고 부르는 백하, 참서대라고 부르는 설어, 장두어(짱뚱어), 즉어(붕어) 그리고 곤쟁이라고 부르는 자하였다. 곤쟁이젓은 줄(볏과의 여러해살이풀)과 함께 소금에 절여서 만들었다. 이 지역의 민간에서는 이 젓갈을 ‘감동感動’이라고 부르는데 그 연유가 재미있다.
    옛날에 중국의 사신이 해주를 지나가던 중에 이 젓갈을 먹다 눈물을 흘리며 차마 먹지를 못했다. 사신 접대를 담당하는 원접사가 이상히 여겨서 물어보자 사신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노모가 집에 계시는데, 이 젓갈이 너무나 맛있어서 차마 목으로 넘기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원접사가 해주의 관리에게 주문하여 그 젓갈을 한 항아리 선물하자 사신이 말하기를 “감동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그 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젓갈을 ‘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서의 큰 고을이었던 해주' 중에서/ p.382)

    한편 개성에서 동남쪽으로 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덕물산이 있다. ‘덕물’은 한자로 ‘덕수德水’로 표기되는데, 이순신을 비롯한 덕수 이씨들의 관향이 바로 이곳이다. 덕적산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은 앞에서 본 최영의 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산의 정상이 넓은 평지이고 맑은 물이 솟는 우물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 말에 이루어진 무당촌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무당이었다. 이러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개성이나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덕물산 무당을 단골로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을에서는 1년 내내 굿을 하느라 노랫소리와 장구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는데 아직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수산 드렁칡은 얽히고 또 얽혀서' 중에서/ p.42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
    출생지 -
    출간도서 57종
    판매수 9,280권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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