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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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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유희
  • 출판사 : 책과함께
  • 발행 : 2019년 10월 27일
  • 쪽수 : 58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99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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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한국영화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현해 왔을까
    그 표상은 우리의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구성해 왔을까
    영화의 기억과 상상으로 조망하는 한국 근현대사이자
    한국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돌아보는 한국영화 100년사


    우리는 어떤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심상이 있다. ‘어머니’ 하면 뇌리를 스쳐 가는 배우들, 마른 몸피에 콧수염을 기르고 유카타를 입은 채 굽신대는 ‘나카무라 상’, 북과 나팔을 불며 쥐 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 붉은 무복에 빗갓을 쓰고 작두 타는 무당, 남성 마초처럼 괄괄하게 구는 유능한 여성 검사…. 이런 심상들은 개인의 기억과 상상에서 연원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언제 굿판을 보았으며, 식민지시기 일본인이나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여성 검사를 만나본 일이 있는지.
    표상이 구성되는 데 핵심적인 작용을 해온 것은 영상 매체다. 그중에서도 근대의 시간을 함께하며 오늘에 이른 영화는 대중에게 공유되는 표상을 구성하고 확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이처럼 한국영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현해왔고, 그 표상이 우리의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구성해왔는지를 여러 주요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처럼 대중에게 공유된 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다방면을 살펴볼 수 있고, 한국영화의 기억과 상상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해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놓고 지도를 그려볼 수 있다.
    책은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이기도 했던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에 대한 표상을 살피며 우리의 기억에 새겨져 있는 이미지들의 연원과 맥락을 짚어본다. 이러한 표상들의 종적 흐름을 추적하는 가운데, 그 갈래들이 전방위적으로 형성하는 관계도 속에서 한국영화 텍스트의 좌표와 한국영화의 역사를 포착하고자 한다. 나아가 복합적인 서사 매체이자 예술 형식인 영화의 표상을 시각적으로 독자에게 제시하고자, 400컷에 가까운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을 수록했다.

    출판사 서평

    한국영화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현해왔고
    그 표상은 우리의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구성해왔을까


    눈가에 흉터자국이 깊게 패인 북한군 장교, 남성 마초처럼 괄괄하게 구는 유능한 여성 검사, 붉은 무복에 빗갓을 쓰고 작두 타는 무당, 북과 나팔을 불며 쥐 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 마른 몸피에 콧수염을 기르고 유카타를 입은 채 굽신대는 ‘나카무라 상’….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실제로 본 적은 거의 없지만 우리가 어떤 사회적 대상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표상(表象)’은 ‘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것’으로, ‘감각으로 획득한 외부 세계의 대상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미지가 구성되는 과정에는 기억과 상상이 함께 관여하는데, 이는 대중문화에 재현된 이미지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표상은 사실(史實)이나 실재(實在)와 동떨어진 형태로 구성되기도 한다. 나아가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표상이 변천하면서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표상과 인식 또한 변화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언제 굿판을 보았으며, 식민지시기 일본인이나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여성 검사를 만나본 일이 있는지. 만일 우리가 실제로 그들을 본다 하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와는 다를 수 있다.
    표상이 구성되는 데 핵심적인 작용을 해온 것은 영상 매체다. 그중에서도 근대의 시간을 함께하며 오늘에 이른 영화는 대중에게 공유되는 표상을 구성하고 확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박유희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가 펴낸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이처럼 한국영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현해왔고, 그 표상이 우리의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구성해왔는지를 여러 주요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크게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등 다섯 가지 표상을 살피며 우리의 기억에 새겨져 있는 이미지들의 연원과 맥락을 짚어본다.

    영화의 기억과 상상으로 조망하는 한국 근현대사이자
    한국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돌아보는 한국영화 100년사


    이 책에서는 표상들의 종적 흐름을 추적하는 가운데, 그 갈래들이 전방위적으로 형성하는 관계도 속에서 한국영화 텍스트의 좌표와 한국영화의 역사를 포착하고자 한다. 각 장에서는 표상의 변곡점을 드러내는 영화들을 연대순으로 분석하여 표상 변화의 종적 흐름을 드러내도록 했다. 영화의 제목으로 이루어진 ‘~에서 ~까지’라는 각 장의 부제는 그것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복합적인 서사 매체이자 예술 형식인 영화의 표상을 시각적으로 독자에게 제시하고자, 400컷에 가까운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을 수록했다.

    1부 가족
    빈도나 비중 면에서 한국영화의 중심에 놓인 가족의 표상을, 어머니, 아버지, 오빠, 누이라는 네 개의 하위 주제로 다룬다.
    1장 어머니 : 해방 공간의 이상적인 어머니(〈마음의 고향〉, 1949)에서 시작해 ‘엄마’라는 호명을 거부하는 2018년 ‘미쓰백’(〈미쓰백〉)에 이르기까지를 짚어본다.
    2장 아버지 : 자기 눈 뜨자고 딸을 공양하는 ‘심 봉사’(〈심청전〉, 1925)부터 눈 맑은 소년에 의해 살해되는 아비들(〈화이〉, 2013)까지 아비의 운명과 표상의 변천을 추적한다.
    3장 오빠 : 똑똑하고 의로웠으나 미쳐버린 ‘영진’(〈아리랑〉, 1926)에서 시작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여동생 곁으로 돌아오지만 곧 영어의 몸이 되는 사회주의자(〈베를린 리포트〉, 1991)에 이르기까지 오빠의 표상을 훑어본다.
    4장 누이 : 오빠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동생의 원조 ‘홍도’(〈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1939)부터 1980년에 실종된 ‘우리들’의 여동생(〈꽃잎〉, 1996)까지 뼈아픈 누이 재현의 역사를 살펴본다.

    2부 국가
    냉전 시대 한국영화에 자주 재현된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가의 표상을 들여다본다.
    1장 일본 : 1960년대 초, 한일수교를 앞두고 일본과의 과거사에 대해 잠시 새로운 재현이 가능했던 시기에 나온 문제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부터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1990년대 ‘관부재판’을 재현한 법정영화 〈허스토리〉(2018)까지를 짚어본다.
    2장 미국 : 미국이 선전하고자 했던 미국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영화 〈불사조의 언덕〉(1955)부터 ‘386세대’가 미국과 사회계급을 바라보는 방식의 맹점을 드러낸 〈이태원 살인사건〉(2009)까지 미국 재현과 인식의 역사를 살펴본다.
    3장 북한 :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자 재현의 임계가 되었던 최초의 ‘빨치산 영화’ 〈피아골〉(1955)부터 미국을 남북한의 공적(共敵)으로 설정하여 북한 재현에서 파격적인 구도를 보여준 〈웰컴 투 동막골〉(2005)까지 적으로서의 북한이 ‘사람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3부 민주주의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 민주화를 향한 역사의 도정에서, 한국영화가 이 사건들을 어떻게 재현해왔는지를 고찰한다.
    1장 3·1운동 :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에 한정되어 있는 3·1운동 표상을 짚어본다.
    2장 광주민주화운동 : 1987년 민주화 이후 제작된 16mm 장편 극영화 〈오! 꿈의 나라〉(1989)부터 2017년 촛불혁명 직후에 개봉하여 천만 영화가 된 〈택시운전사〉(2017)까지 ‘1980년 광주’가 재현되어 온 과정을 살펴본다.
    3장 6월 민주항쟁 : 한국영화사에서 민주항쟁의 재현이 앙상해진 맥락을 반추해보면서 현재로부터 가장 가까운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변호인〉(2013)과 〈1987〉(2017)을 통해 들여다본다.
    4장 법치주의 : 법과 재판에 대한 재현에 주목하여 법치주의에 대한 대중 인식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여기서는 최초의 법정드라마로 불리는 〈검사와 여선생〉(1948)부터 2010년대 들어서 등장한 본격 법정영화의 대표작 〈소수의견〉(2015)까지를 다룬다.

    4부 여성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으로 타자화되어온 여성 재현의 역사를 살펴본다.
    1장 첫사랑 : 자유연애가 일상화되어 첫사랑의 의미가 부각되는 1960년대의 청춘영화부터 21세기 첫사랑 표상의 변곡점이 되는 〈건축학개론〉(2012)까지를 다룬다.
    2장 무당 : 근대 이후 1960년대까지 비판과 배척의 대상이었다가 1970년대에는 전통문화의 하나로 재발견되고, 1980년대에는 민중으로 호출된 ‘무당’ 표상을 추적한다.
    3장 여간첩 : 간첩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적으로 타자화되었던 ‘여간첩’의 표상을 〈운명의 손〉(1954)부터 〈쉬리〉(1999)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하여 살펴본다.
    4장 여성 법조인 : 남성 카르텔이 강한 법정에 여성이 법조인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그 표상의 변천을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부터 〈침묵〉(2017)까지 추적한다.
    5장 여성 노동자 : 엄연히 노동자이면서도 국가와 사회의 편의에 따라 경계 안에 포함되기도 하고 밖으로 배제되기도 했던 여성 노동자의 재현을 〈청춘의 십자로〉(1934)부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고찰한다.

    5부 예술
    실존 예술가를 재현한 예술가 영화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에서 예술을 어떻게 그리고 인식해왔는지,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예술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1장 이광수 - 반공과 소명 : 대중에게 대표적인 친일파로 각인되었던 이광수가 1960년대에 민족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추대되는 과정을 〈춘원 이광수〉(1969)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장 이상 - 절망과 기교 : 1965년 이후 국가가 정책적으로 예술영화를 권장하는 와중에 제작된 예술가 영화 〈이상의 날개〉(1968)부터, 도착적 사랑과 예술을 유비시킨 〈금홍아 금홍아〉(1995)까지 천재 문인 이상의 표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항시적 예외상태가 강조되어온 분단국가에서 예술이 어떻게 정향되고 구성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3장 나운규 - 민족애와 방탕 : 나운규를 한국영화사의 영웅으로, 〈아리랑〉을 민족주의적 리얼리즘의 원조로 공표하는 영화 〈나운규 일생〉(1966)에 주목하면서, ‘나운규의 영화’를 규정하는 데 동원되는 요소들을 통해 영화예술의 함의를 짚어본다.
    4장 윤심덕 - 자유와 허무 : 1960년대까지 여성이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맥락을 생각하면서, 윤심덕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 〈윤심덕〉(1969)부터 비로소 그녀를 예술가로 바라보는 〈사의 찬미〉(1991)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다.
    5장 나혜석 - 애욕과 동경 : 미술과 관련되었을 때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를 고찰하면서, 나혜석 전기 영화 〈화조〉(1979)를 통해 식민지시기 남성 중심 엘리트 사회에서 축출된 나혜석이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예술영화로 재현되는 맥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후 여성 미술가의 표상이 어떻게 소비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영화의 네트워크와 다원적 영화(사) 읽기

    이 책은 각 장과 각 부가 나름의 흐름을 가지고 있으므로 꼭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된다. 순서에 관계없이 읽더라도 하위 주제들의 흐름이 축적되면서 하위 주제들 간의 중층적·횡적 관계가 포착되고 텍스트 간의 관계망 또한 드러날 수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한 텍스트가 여러 차원에서 읽히고, 읽힐 수 있음이 발견될 수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 책의 1부 1장 ‘어머니’는 나혜석의 고백으로 시작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인 5부 5장 ‘나혜석: 애욕과 동경’에 가면 예술가 나혜석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앞에서부터 읽느냐 뒤에서부터 읽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나혜석의 전기 영화에 대해 읽고 나혜석의 독백을 읽었을 때 이해가 더 쉬울 수도 있다.
    또한 1부 4장에서는 〈꽃잎〉(1996)을 분석하면서 ‘1980년 광주’에서 실종된 ‘누이’를 망각하고 살아온 ‘우리들’의 죄책감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제는 3부 2장의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된다. 2부 1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일본군 성노예 재현의 문제는 법정드라마의 형식을 갖춘 〈허스토리〉(2018)를 통해 3부 4장 ‘법치주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4부 4장의 ‘여성 법조인’에 가닿는다.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의 마지막 장면이 3·1운동의 표상에 연관되고 이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유관순 열사의 표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한편 〈꽃잎〉의 ‘소녀’였던 배우 이정현이 〈명량〉(2014)에서 나라를 구하는 벙어리 여인을 거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에서 여성 노동자 ‘복남’으로 분하는 과정은 영화 표상의 주요 요소인 스타 페르소나 차원에서 연관을 이룬다. 〈안개〉(1967)의 하인숙이자 〈감자〉(1968)에서 복녀였던 윤정희가 〈화조〉(1979)에서 나혜석 역할을 맡은 것이나 〈화이〉(2013)에서 폭압적 아비였던 김윤석이 〈1987〉(2017)에서 대공분실의 ‘박 처장’이 되는 것 등 배우들을 통해 특정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예는 많다. 다시 말해 배우에 주목해서도 표상의 또 다른 관계망을 포착할 수 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모두 이 관계망에서 두드러지는 좌표가 된다.
    그런가 하면 하나의 텍스트가 여러 각도에서 독해되면서 의미망을 구성하기도 한다. 〈장남〉(1985)이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과 같이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가족 표상 안에서도 여러 각도로(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이의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븐 데이즈〉(2007)나 〈침묵〉(2017)과 같이 가족 드라마가 들어있는 법정 추리물의 경우에는 가족 표상과 법정 표상 양쪽에서 분석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 표상의 지도와 텍스트의 좌표 사이에서 새로이 발견되는 관계들

    한국영화에 나타난 주요 표상을 살펴보는 것은 영화가 재현함으로써 대중에게 공유된 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다방면을 살펴볼 수 있는 한 방안이다. 또한 한국영화의 기억과 상상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해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놓고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써나가는 동안 처음의 기획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관계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새로운 탐색의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소설가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을 좇아가는 것처럼, 집필 과정에서 더욱 다양하고 촘촘한 관계망이 형성되어 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영화(사)의 다원적 요소들이 서로 빛과 기운을 주고받는 성좌처럼 펼쳐져갔고, 한국영화의 역사를 한층 풍부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저자가 펼쳐놓은 한국영화와 한국사회를 둘러싼 표상의 지도 속에서 독자들이 서술 이면에 얽히고설켜 있는 관계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풍부하게 감지하기를 기대한다.

    목차

    책을 시작하며

    1부 가족 : 한국영화 표상의 출발점, 가족

    1장 어머니 - 〈마음의 고향〉(1949)에서 〈미쓰백〉(2018)까지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 | 해방 이후 근대적 모성의 구성 | 재건의 이념과 시험받는 모성 | 민족의 어머니, 근대 여성이 지닌 미덕의 총화 | 모성의 이중성과 본질주의적 모성성 | 살인하는 엄마들과 ‘지뢰밭 모성’ | 모성성의 열림과 공적 영역으로의 확장

    2장 아버지 - 〈심청전〉(1925)에서 〈화이〉(2013)까지
    아버지의 이름만으로 | 전후 재건과 아버지의 귀환 | 가부장제와 근대적 가치의 충돌 | 산업화 속 무력한 아버지 | 살부의 윤리와 이분법의 균열 | ‘아비 살해’의 급진적 정치성

    3장 오빠 - 〈아리랑〉(1926)에서 〈베를린 리포트〉(1991)까지
    ‘옵바’의 딜레마 | 근대 가부장으로서 장남 | 가족과 연인 사이의 파토스 | 장벽 붕괴와 오빠의 귀환

    4장 누이 -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에서 〈꽃잎〉(1996)까지
    누이, 죽거나 팔리거나 | 한의 분출과 복수의 향방 | 집 나가는 누이, 추동하는 누이 | 피고 지고 다시 피는, 넋으로 떠도는 누이

    2부 국가 : 냉전시대 ‘국가들’의 표상
    1장 일본 -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서 〈허스토리〉(2018)까지
    숙적이자 전략적 우방 | 한일관계에 대한 성찰적 인식 | 관습적 이분법의 약화와 한일협정 이후의 경색 | 식민지시기 전쟁의 후경화와 액션 장르 | 활극의 상상과 흔들리는 적 | 일본이라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때 | 민족의 이름으로 사랑을 방패로 삼다 | 학병 탈주 서사와 『청춘극장』 | 일본제국, ‘청춘대로망’의 운명적 배경 | ‘왜색’ 검열과 일본 재현 | 탈냉전시대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전면화 |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반복해서는 안 되는 지점에 대해

    2장 미국 - 〈불사조의 언덕〉(1955)에서 〈이태원 살인사건〉(2009)까지
    미국의 양가성 | 기독교 해방군으로서 미군 | 여성, 한미동맹의 매개 | 기지촌, 타락이자 기회 그리고 근대적 충동의 공간 | 아메리칸 드림에서 반미영화로 | 미국이라는 숙주와 386세대 | ‘이태원 살인사건’이 남긴 것 | 386세대의 한계, 혹은 이분법의 맹점

    3장 북한 - 〈피아골〉(1955)에서 〈웰컴 투 동막골〉(2005)까지
    그들의 ‘흉터’ | ‘인격화’라는 금기 | ‘사람’으로서의 좌파, 피해자로서의 ‘우리’ | 장르 문법의 우위와 표상의 다양화 | 흉터, 객관화되지 못한 트라우마 | 경계의 붕괴, 그리고 웃음을 동반하는 적

    3부 민주주의 : 3·1운동으로 건립되어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장 3·1운동 - 〈유관순〉(1948)에서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까지
    3·1운동과 유관순 열사 |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과 ‘순국처녀 유관순’ | 순결과 형극의 영웅 도식과 그 그늘 | 민주주의 이상을 품은 학생 유관순

    2장 광주민주화운동 - 〈오! 꿈의 나라〉(1989)에서 〈택시운전사〉(2017)까지
    ‘푸른 눈의 목격자’와 무구한 ‘그들’ | ‘독일 비디오’에서 〈26년〉까지 | 영웅서사와 멜로드라마의 변주 | 노스탤지어로서의 여성과 훼손의 범인들 | 소시민의 각성과 광장의 윤리 | 망각의 알리바이와 ‘우리들’의 참회

    3장 6월 민주항쟁 - 〈변호인〉(2013)에서 〈1987〉(2017)까지
    ‘6월 민주항쟁’ 이후 | 〈변호인〉의 징후 | ‘역사성과 대중성’이라는 해묵은 화두 | 혁명드라마, 그 이상의 서브플롯 | 실질적 주인공 ‘박 처장’과 폭력의 생리 | 변혁의 원동력, 청년 감성 | 역사적 장면 포개놓기와 부단한 균형 감각

    4장 법치주의 - 〈검사와 여선생〉(1948)에서 〈소수의견〉(2015)까지
    법의 표상으로서 ‘법정’ | 증거와 이성보다 인정의 윤리 | 법의 두 얼굴과 눈물의 봉합 | 법의 관용과 근대화 프로젝트 | 법보다 반공(反共), 추리의 불가능성 | 법정 멜로드라마에서 법정 추리물로 | 법보다 자본의 시대, 균형적 역학의 필요성 | 99퍼센트의 입장에서 권력의 책임을 묻다 | 법정영화의 후발(後發)과 한국 근대화의 특수성

    4부 여성 : 여성, 관습 안에서 관습을 넘어서온 예외자들
    1장 첫사랑 - 〈맨발의 청춘〉(1964)에서 〈건축학개론〉(2012)까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첫 번째 사랑이 평생의 사랑 | 불치병과 불가역의 청춘 | 훼손의 트라우마에서 경계 없는 사랑으로 | 현실 장애에 순응하며 웃어넘기다

    2장 무당 - 〈고려장〉(1963)에서 〈태백산맥〉(1994)까지
    붉은 무복에 빗갓을 쓴 여인이 작두를 타다 | 야만과 미몽, 근대적 가치의 대척점 | 운명에 대한 순응과 여성의 욕망 | 불가사의, 그러나 현실적 존재 | 약해진 영험과 피억압자로서의 복수 | 공포와 연민의 섹슈얼리티

    3장 여간첩 - 〈운명의 손〉(1954)에서 〈쉬리〉(1999)까지
    간첩과 여간첩 | 여간첩의 원조, ‘마가렛’의 모호성 | 이중간첩, ‘김수임’의 파국 | ‘남남북녀’ 도식 속의 팜 파탈 | 표상의 다양화와 근본적 한계

    4장 여성 법조인 -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에서 〈침묵〉(2017)까지
    법의 젠더 이분법 |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와 여판사 | 숙녀복 입은 신사 | 가부장 질서에 저항하는 법조인의 등장 | 법정추리물의 젠더 보수성

    5장 여성 노동자 - 〈청춘의 십자로〉(1934)에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까지
    여성±노동자 | 근대 여성 노동자 영화 약사 | 시민운동과 가족주의 | 여성 중심의 서사와 상업영화로서의 곤경 | 저예산 하이 콘셉트와 딜레마의 수사학 | 신자유주의 시대의 여성 노동자 재현

    5부 예술 : 예술의 표상으로서 예술가 영화
    1장 이광수: 반공과 소명 - 〈춘원 이광수〉(1969)에서 〈마담 뺑덕〉(2014)까지
    천재성과 민족애 | 1960년대 말, 춘원 소환되다 | 친일, 천재적 민족계몽의 발로 | 반공주의로서의 민족주의 | 문인의 소명

    2장 이상: 절망과 기교 - 〈이상의 날개〉(1968)에서 〈금홍아 금홍아〉(1995)까지
    오감도(烏瞰圖), 오감도(五感圖) | 순수예술적 천재성의 발로, 절망과 기교 | 예술가의 특권, 편의적 여성 편력 | 순수 예술가의 맥락과 이면

    3장 나운규: 민족애와 방탕 - 〈아리랑〉(1926)에서 〈나운규 일생〉(1966)까지
    〈아리랑〉과 〈나운규 일생〉 | 식민지 예술가의 필수 조건, 사랑과 민족

    4장 윤심덕: 자유와 허무 - 〈윤심덕〉(1969)에서 〈사의 찬미〉(1991)까지
    현해탄 정사(情死) | 사랑과 죽음의 아이콘, 윤심덕 | 1960년대 ‘윤심덕’의 자리 | 윤심덕, 자유인으로 호명되다 | 민족보다 자유, 조국 앞의 허무 | 윤심덕과 〈겨울여자〉

    5장 나혜석: 애욕과 동경 - 〈화조〉(1979)에서 〈성애의 침묵〉(1992)까지
    한국 최초의 여성 화가 | 근대 남성 화가, 과부나 유부녀의 연인 | 남성 화가와 여성 모델의 구도 | 1960년대 말, 여성 미술가의 등장 | 1970년대 말 나혜석, 민족에 긴박된 자유주의자 | 예술과 파리 그리고 에로티시즘

    책을 마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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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판 출처

    본문중에서

    한국영화에서 가부장제 이념은 ‘어머니’를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재현되었다. ‘현모양처’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현모와 양처는 한 몸과 같은 것이면서도 어머니의 자리가 아내보다 우선한다. 또한 딸은 어머니를 예비하는 존재로서 가족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곤 했다. 그래서 딸은 영화에서 주동 인물을 주로 맡는 가족 내 젊은 남성의 시선에서 ‘누이’로 포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어머니나 딸과 대타항을 이루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이데올로기가 가부장 중심이기는 하나 재현의 비중 면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하면 현저히 적다. 이는 이념적으로는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가부장이 필요했으나 실제의 역할이나 위상은 그러한 이념적 이상에 부합하지 못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아버지가 약하거나 부재할 때 아버지가 맡은 책임은 아들에게 떠넘겨졌는데, 아들은 아직 어리거나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근대 지식 자본을 얻는 데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생업은 어머니와 딸의 몫이었다. 여기에서 어머니와 딸의 수난이 시작된다. 한편 가족의 기대와 선망이 장자(長子)에게 집중되면서 근대 ‘오빠’의 표상이 탄생했고, 이 표상은 한국영화사에서 한동안 남성 표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근대 이후 ‘오빠’라는 말이 가부장제의 총아인 동시에 비극적 청춘의 상징이자 혈육과 연인 사이를 오가는 의미로 통용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1부 〈가족〉 머리말' 중에서/ p.21)

    출세해야 하는 오빠와 그러한 오빠를 뒷바라지하는 누이의 관습이 지속된 데에는 엘리트 오빠와 그를 동경하고 섬기는 누이 사이에 흐르는, 가족과 연인을 넘나드는 과도기적 감정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근대 교육을 받는 오빠들은 일찍이 도시로 공부하러 떠났고 자연히 누이와는 떨어져 살곤 했다. 혈육이라 해도 생활을 같이해야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오빠는 혈육이지만 낯선 이성이기도 하다. 또한 오빠는 집안의 미래를 책임질 엘리트로서 집안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이에게 그런 오빠는 일생에서 처음으로 동경하는 이성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부재할 때 오빠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부장의 권한을 가지는 만큼 출가하기 전, 혹은 남편이 없는 누이에게는 그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성이기도 했다.
    ('1부 3장 〈오빠〉' 중에서/ p.97)

    영화 〈괴물〉에서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한강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미군이 독성 화학물질을 한강에 무단 방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고 납치하자 최첨단 방역과 의료기술을 내세우고 등장한 미군은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정보를 통제하고 수집하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괴물(The Monster)’이 아니라 ‘숙주(The Host)’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숙주(宿主)’란 ‘생물이 기생하는 대상으로 삼는 생물’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숙주’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바이러스의 숙주로 오인되는 ‘괴물’일 수도 있고, 그러한 괴물의 숙주로 기능하는 ‘한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괴물과 접촉한 사람들에게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괴물에게는 바이러스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괴물은 숙주가 아닌 셈이다. 한편 한강을 괴물의 숙주로 만든 것은 주한미군이었다는 인과관계를 고려하면, ‘괴물’이라는 돌연변이로 상징되는 병적인 기현상의 숙주는 ‘미국’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를 조사하고 방역한다는 명분으로 점령군처럼 행동하며, 정작 괴물은 방치한 채 애먼 사람들만 괴롭히는 미국의 행태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또한 괴물을 잡겠다면서 식수원인 한강에 정체불명의 생화학 무기를 살포하는 것도, 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러스의 숙주는 괴물이 아니라 그들 자신, 즉 ‘미국’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렇게 볼 때 영어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는 신랄한 미국 비판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2부 2장 〈미국〉' 중에서/ pp.188~189)

    21세기 한국전쟁 영화에 나오는 ‘인민군’은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유발하는 영웅이자 악당이라는 점에서 갱을 닮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국가의 검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갱을 많이 닮았다. 그들의 흉터는 장르영화 속에 편입된 악당의 낙인인 동시에 여전히 분명하게 대상화될 수 없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품고 있다.
    악당의 상징인 흉터가 21세기 한국전쟁 영화에서는 ‘인민군’이라는 ‘적’의 마지막 표식이 된 듯하다. 그 흉터 때문에 그들은 위험해 보이고, 그런 그들은 응징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험한 만큼, 그래서 비극적인 만큼, 그들은 눈길을 끄는 매혹적인 악당으로서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 면에서 아(我)와 비아(非我)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제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가는 흉터는 북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반영하는 동시에 여전히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경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르영화의 매혹적인 안타고니스트로 가벼워진 공산주의자의 무게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것이 21세기 장르영화가 분명히 대상화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2부 3장 〈북한〉' 중에서/ pp.224~225)

    법은 있었으나 국민은 오랫동안 법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멀리 있는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거나 이상적 규범이었다. 그것이 가까이에서 발효될 때에 대중은 법적 절차가 아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심법(心法)에 의거하여 그 시비를 판단했으며 그것이 대중의 정의였다. 한국영화사에서 법정영화의 주류가 멜로드라마인 점은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다. 멜로드라마는 주정적(主情的) 장르인 데다 한국 멜로드라마는 무엇보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심리적 리얼리티를 중시하며 전개되어왔다. 여기에 한국영화에서 1980년대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가족 멜로드라마의 표면적 주제인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 화합에 대한 찬미와, 법이 규범으로서 지닌 근본적 보수성이 결합하며 한국 법정영화는 오랫동안 모든 문제를 가부장적 질서로 수렴하려는 보수적 경향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법정 멜로드라마에서는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범죄가 여성에 의해 일어나는데, 현명하고 인자한 남성 법조인에 의해 법정에서 ‘정상 참작’이라는 법적 관용의 이름으로 그것이 용납되고, 가부장적 질서가 재정립되면서 마무리된다. 결과적으로 법이라는 가부장이 여성의 가부장 살해 욕망을 무마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여성의 사적 도발과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는 남성적인 법은 길항 관계를 맺으며 오랫동안 한국 법정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형성해왔다.
    ('3부 4장 〈법치주의〉' 중에서/ pp.301~302)

    예외란 일반적인 규칙이나 통례에서 벗어나는 것인 동시에, 그러한 이유로 규칙, 표준, 보편, 주류, 중심 등에서 제외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여성에게 그런 예외에 놓이는 위험한 순간은 일상일 뿐 아니라 탈선의 안팎은 샴쌍둥이같이 분리할 수 없기도 하건만, 선을 넘었다고 규정되었을 때 그 처벌은 혹독했다. 그럼에도 여성은 기성 질서에 포용되는 듯하면서도 금세 봉합을 찢고 임계에 출현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예외는 주류와 규칙 바깥으로 배제되지만, 예외가 쌓이면 흐름과 규칙을 바꾼다. 한국영화 속 여성이 이중, 삼중으로 타자화되는 관습 속에서도 끊임없이 임계에 설 때 그러한 에너지가 시스템을 지탱하는 규칙에 균열을 일으키며 임계에 변동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영화 관습의 혁신을 추동해왔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영화의 진화는 여성 재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부 〈여성〉 머리말' 중에서/ p.339)

    1990년대에 이르러 이제 첫사랑은 완벽히 과거형이 된다. 그래서 199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99년에 제작된 영화 〈박하사탕〉(이창동, 2000)에서 영호(설경구)가 첫사랑 윤순임(문소리)의 죽음 이후 기차 앞에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죽는 것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이제 ‘첫사랑’은 죽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치명적 과거가 되었으며 현실에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불가능성의 세계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1980년 광주’로 상징되는 폭력성은 순수를 훼손한 원죄가 되며, 첫사랑으로의 회귀를 절대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2000년대 첫사랑 영화들은 〈겨울 나그네〉와 〈첫사랑〉이 보여준 추억의 표상과 〈박하사탕〉이 드러낸 훼손의 트라우마를 관습화된 형태로 계속 재생산한다.
    … 노스탤지어를 품는다는 것은 이상적 가치가 상정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영원한 과거형으로, 현실과 유리된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원칙으로 훼손할 수 없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현실’이라는 상황 논리로 순수했던 과거가 부정되면서도 다시 그 부정이 부정되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부정된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일곤 했다. 그리고 그 순수성이 아름답고 순결한 여성에 유비되며 수많은 첫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시기가 근대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고 그러한 현실적 필요에 의해 가부장 질서가 강화되던 1960~80년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4부 1장 〈첫사랑〉' 중에서/ pp.351~356)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기성 질서를 저버리고 쾌락과 방탕에 탐닉하는 것은 근대 예술가들이 지닌 어쩔 수 없는 유전자이자 특권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예술가를 용납케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통해 속세와 신의 경지를 잇는 미의 사제로 그들을 바라보는 낭만적 예술관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영화에서 예술가의 표상을 구성하는 핵심이었으며, 때로는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이광수의 경우에는 그의 친일 행적까지도 천재성의 발로로 합리화된다. 여기에 무소불위의 반공주의가 결합하며 이광수는 미의 사제를 넘어 구국의 성자가 된다. 이는 낭만적 예술관에 문인에게 주어지는 소명이 결합함으로써 생성된 기이한 결과다. 문인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문인의 재현에서 계몽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을 강화했는데, 여기에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하면서 왜곡이 심해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문인 심학규가 던지는 질문은 현재에도 문인에 대한 특수한 기대에서 비롯된 재현 관습이 뿌리 깊게 잔존함을 보여준다.
    ('5부 1장 〈이광수: 반공과 소명〉' 중에서/ pp.475~476)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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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수 0권

    문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며, 서사장르의 관계망과 사회사의 맥락에서 한국영화 표상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묻는 비평을 해왔다.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서 영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디지털 시대의 서사와 매체』, 『아이러니와 딜레마』, 『1950년대 소설과 반어의 수사학』이 있고, 5개 대중서사장르(멜로드라마, 역사허구물, 추리물, 코미디, 환상물)에 대한 공동연구를 기획하여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1~5권을 펴냈다. 이외에 『한국영화 역사 속 검열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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