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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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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일본SF대상 특별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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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제34회 일본SF대상 특별상 수상작
    제33회 일본SF대상 수상작가
    나오키상 2회 연속 노미네이트, 심사위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작가
    최근 일신하고 있는 일본 SF문단의 선두에 선 작가


    이 연작소설집은 미야우치 유스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소설인 [바둑판 위의 밤]이 먼저 제33회 일본SF대상을 수상, 제147회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올라, 2년 연속 동일한 상의 수상과 노미네이트라는 기록을 세운다. 이로써 일본 SF문단은 말할 것도 없고 SF계 바깥에서도 주목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작가 개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절실한 과제로부터 조국의 문제, 인간의 모순, 문명의 광기 등을 역사적 안목에서 엮어내는 필력은 SF소설이 가진 힘과 매력을 음미하도록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미야우치 유스케는 미국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작품 속 설정들로부터 유추해보면 대략 다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맨해튼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문화의 한복판에서 언어와 사고방식, 가치관 등이 세팅되는 시기를 거친 셈이다. 중학생이 되는 나이에 일본으로 돌아왔으니, 구체적으로 상상하긴 어렵지만 적잖은 혼란을 겪었을 듯하다. 외양은 일본인이지만 내면에는 일본문화에 부적응하는 나가 있다?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는 작품에서 ‘세계시민’ 혹은 ‘정신의 고아’라고 표현한다.

    미국에 모종의 정서적 유대감을 가졌음 직한 작가에게 2001년 9.11 테러는 미국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충격을 주지 않았을까? 이슬람 청년들(모하메드 아타는 독일 유학생이었음)이 항공기를 탈취해 미국의 심장부, 자본주의 세계의 압축판 같은 초고층건물을 향해 자폭테러를 자행했다. 인종의 도가니, 인종의 샐러드 볼이라는 미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불가해한 사태다. 미궁에 갇혀 중얼거리는 듯한 작가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서 듣는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이렇게 이상하게 되어버린 분기점을 찾을 수가 없다.”(/ p.198)

    뉴욕을 파괴하기 위해서인가, 구원하기 위해서인가
    이 작품집의 이야기는 슬럼화된 미래도시 요하네스버그로부터 시작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은 이유로 작가의 개인사와 연관성이 높은 두 번째 수록작 「로어사이드의 유령들」(이하 「로어사이드」)을 통해 존재 전체를 관통했을 충격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로어사이드’는 맨해튼의 Lower East Side로 불리는 남동쪽 지역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뉴욕항을 통해 들어온 가난한 이주민들의 초기 정착지였던 곳이다. 이곳이 개발되고 경제 발전이 가속화하자 상승하는 땅값, 집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하층민들은 맨해튼섬의 동측을 흐르는 이스트강(East River)을 건너 브루클린으로 밀려나게 된다. 영화 <8번가의 기적>의 무대가 되는 곳이 로어사이드이기도 하다.

    「로어사이드」에서는 2001년의 그것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이벤트)이 벌어진다. 때는 2041년 즈음으로 추정되는 미래. 이번에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테러리스트에 의해서가 아니다. 2006년 착공해 2014년에 완공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1WTC) 혹은 프리덤타워마저도 낙후해버린 시점, 이 초고층 빌딩의 재개발 논의가 무성하다. 어떤 이는 희생자 유족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극복에 효과가 있다는 둥 어불성설의 논리를 들이대기도 하는데, 하여간 ‘4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으로 기묘한 재현쇼가 기획된다. 테러로 아들을 잃고 정신이 반쯤 미쳐버린 교수가 이론을 대고, 지역 정치인이 힘을 보탠다. 저렴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DX9이라는 여성형 로봇을 대량으로 사들여, 이들에게 테러 희생자들의 의식을 모조리 전사한다. 대량의 데이터를 감당할 수 있게 된 컴퓨터공학의 발전 덕분이다. 항공기 조종간은 실제 2001년 테러리스트였던 모하메드 아타의 의식을 전사한 DX9이 잡도록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동일한 기종의, 똑같은 외양을 한 로봇이라니!

    퇴화한 도시에서 탄생한 신인류, DX9
    로어사이드의 쇼에 동원된 DX9의 기원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이다. 남아공 북동부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네덜란드인 정복자의 이름을 땄다는 이곳을 현지인들은 그냥 ‘조버그’(Joburg)라고 부른다. 백인 이주 정복자들은 가혹한 인종차별정책으로 남아프리카를 다스렸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로도 지배계급의 지위를 오래도록 누렸다. 한데, 시점을 알 수 없는 미래의 조버그에서 아프리카너(Afrikaaner) 백인은 소멸 직전의 운명에 처해 있다. 발단은 “부족 간의 항쟁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북부가 줄루족을 중심으로 연합”한 것인데, 여기에 대항해 남부도 동맹을 결성하게 되면서 더 지독한 내전 상태에 빠지고 만다.

    와중에 전쟁고아가 된 스티브는 전쟁을 핑계 삼아 의적을 자처하며 군인을 습격해 탈취한 것들을 팔아, 정확히 같은 날 전쟁고아가 된 셰릴과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프리카너인 셰릴은 흑인인 스티브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스티브와 셰릴은 슬럼화한 조버그 중심가에 우뚝 솟은 원통형 마천루 ‘마디바타워’ 12층에 거주한다.(마디바타워는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실제 고층건물 폰테시티 타워를 모델로 했다.) 매일 저녁 일정 시각만 되면 이 타워의 뻥 뚫린 내부로 ‘소나기’가 내린다. 45분간 이어지는 로봇들의 낙하, 그것을 타워 주민들은 소나기라고 부른다. 일본계 기업이 로봇 내구성 시험을 위해 사들였다가 내전 발발로 다급히 철수하는 바람에 2700대가량의 DX9이 상승과 추락의 무한궤도를 돌고 있는 것.

    어느 날, 스티브는 DX9 중 한 대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 그리고 그 DX9 중 하나인 PP2713의 구출작전을 감행하지만 실패한다. DX9들은 추락을 거듭하고, 열 살이던 아이들은 성인이 된다. 스티브는 아프리카 남북 정치연합체의 지도자가 되어 조버그로 돌아온다. 셰릴은 죽고 없다. 스티브는 셰릴의 꿈을 이뤄주려고 한다. “오백 년의 유혈을 종식”시키려 했던 셰릴은 미완의 인간-기계 호환 프로그램을 마침내 완성했던 것이다. 어떠한 분리와 차별의 이념도 갖지 않은 신인류의 탄생. 스티브는 셰릴의 유지를 받들어 이제 그 신인류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도록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서글픈 분쟁지역의 살인병기 광대들
    셰릴의 DX9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로어사이드만 나쁜 케이스였던 걸까? 단편들의 제목을 보면, ‘잘랄라바드의 병사들’,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은 모두 DX9을 가리킨니다. 잘랄라바드는 아프가니스탄의, 하드라마우트는 예멘의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일본인 여행객 루이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사이의 접경지역 잘랄라바드를 경유해 안전하게 카불로 가기 위해 미군 재커리를 고용한다. 이 주변 여행자들의 70%가 행방불명되기 때문이다. 루이는 왜 이토록 위험한 곳을 여행하고 있을까?

    아프간 내전에 관여한 민족은 크게 나눠 다섯. 루이는 어느 쪽인지 모르는 게릴라 부대의 총탄을 피하기 위해 다흐마라는 원통형 탑 속으로 재커리와 함께 몸을 숨긴다. 조로아스터교의 조장(鳥葬)용 시설, 다흐마는 마디바타워의 변주다. 옛날 다흐마의 중심부로 독수리가 내려왔다면, 이제는 DX9이 던진 수류탄이 떨어진다. 셰릴의 신인류는 이곳에서 우상숭배와 노래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얼굴이 뭉개지고 목소리가 소거된 채 파슈툰족의 전쟁을 대리하고 있다.

    예멘에선 상황이 한층 복잡하다. DX9이 어느 한 집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립하는 두 집단에서 전쟁기계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더욱 놀라운 사실이 클라이맥스 이후 전모를 드러낸다.

    현상(現像)의 종자, 인류 구원의 씨앗?
    이 소설집을 읽는 작은 재미는 각 단편들의 연결 지점이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로어사이드의 유령들」의 유산 혹은 트라우마는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에 등장하는 나오미 발렌틴이라는 인물의 수수께끼로 전이된다. 나오미는 범죄수사국사령부 소속으로 미군이 파병지에서 저지르는 강간 범죄를 감시ㆍ조사하는 군인이다. 재커리는 루이와 동행하던 중 나오미 살해 사건을 보고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루이는 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얼굴을 보고 초등생 시절 급우였던 나오미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내색하지 않은 채 나름대로 사건의 단서를 맞춰보던 루이는 재커리를 의심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며 루이는 나오미가 대학생 시절 제조했다는 기막힌(혹은 기괴한) 화학무기, ‘현상(現像)의 종자’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아프간에서 재커리를 루이에게 소개해주는 아키토라는 일본계 장교는 ‘종자’ 유출에 대한 문책성 좌천으로 아프간보다 더 열악한 예멘으로 오게 되고,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은 독자로 하여금 더욱 기괴한 인물들의 착종된 정신과 대면하게 한다.

    고도성장기의 묘비석 같은 북도쿄의 아파트먼트 단지
    첫 이야기의 스티브와 셰릴은 마지막 이야기에서 세이와 리노로 치환된다. 세이와 리노는 열네 살, 세상을 알 만한 나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도쿄 북쪽의 쇠락한 단지”. ‘단지’라고 불리는 고층건물 집단의 실제 모델로 예상되는 곳(다카시마타이라 단지)은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판박이이다. 북도쿄의 단지는 일본 고도 경제성장기에 중산층에게 각광받던 주거지였다. ‘버블 붕괴’ 이후로도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예멘의 하드라마우트에서 만났던 루이가 오랜 방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데서 시점을 대략 짐작할 뿐이다.

    리노는 다섯 살에 세이를 만난 이후로 세이에게 크게 의지하지만, 중학생이 되도록 좀체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어른들은 단지의 슬럼화 이후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자살로 마감하더니, 이제는 DX9에 접속해 가상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지를 둘러싼 네트의 세계엔 최면상태로 접속해 DX9의 목소리를 빌려 지껄여 대는 어른들의 대화가 흘러다닌다. 단지의 한 주부가 짜넣은 코드로 인해 DX9이 어느 때부터인가 단지 꼭대기에서 추락하기 시작하자,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로봇의 추락은 행렬을 이루게 된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처럼.

    리노는 이 끔찍한 가상세계에서 엄마를 구하고 싶다. 용기를 내 자신의 비밀을 터놓고 세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이들은 엄마 구출작전에 나서는데. 두 아이의 작전은 성공할까?

    ■ 미야베 미유키 서평
    남아프리카 슬럼에서 시작해 북도쿄의 유령마을에 이르는 시련의 여행 끝에 파괴된 약국 앞에서 노래 부르는 소녀형 로봇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묻듯이 DX9이 인간에게 ‘이처럼 시련을 줄 거면 왜 우리들을 만드셨습니까?’ 하고 물어도 아무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해답을 찾아서 읽는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를 생각하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 Editor’s Note
    직선으로 시공간을 압축(혹은 압살)하는 근대적 미학의 파괴적 속성을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라는 존재의 상승과 추락이라는 모티프로 형상화하고, 정작 이 선형적 선분으로 붙잡히지 않는 인간의 욕망, 본성, 모순 따위는 도래하지 않은 시간 속 혼돈의 장소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SF의 주특기인 낯설게 하기를 멋지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 역병의 도시
    로어사이드의 유령들 ― 우리들의 짧은 영원
    잘랄라바드의 병사들 ― 침묵의 주파수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 ― 감시되는 단층들
    북도쿄의 아이들 ― 무미건조한 땅에서의 생존

    해설: 오모리 노조미(大森 望)
    주요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1461회째의 낙하.
    확실한 것은 하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통이다. PP2713의 모든 기억은 고통과 함께 있다.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요구된 그녀들에게 스스로 고통에 대한 감각을 끄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주위에 동족(同族)이 있는 것은 안다. 다만 통신을 시도해도 대답이 없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중에서/ p.29)

    아침해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을 비추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DX9이라면 생존할 수 있다. DX9은 열을 지어 한 대, 또 한 대 모래 언덕을 넘어갔다. 사막 끝, 그들의 새로운 고향. DX9은 서로를 유지, 보수해 가면서 언젠가는 자치를 한다고 한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중에서/ p.65)

    쓰키야마 신이치로, DX9 개발 리더(2027년)—–사장은 처음부터 악기 대신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려고 했죠.
    DX9은 노래를 매개로 로봇다움과 인간다움을 중개하는 겁니다. 다만 유통 쪽에서 악기로 취급한 건 우연이에요. 가전 도매상이 받아주질 않았던 거죠. 그래서 사장이 독자적으로 악기 도매상을 찾아가 악기로 유통시키게 된 겁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장 말고는 아무도 그게 팔릴 거라고 믿은 사람이 없었어요.
    ('로어사이드의 유령들' 중에서/ p.92)

    “정확히는,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는 DX9, 모하메드 아타의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탈취됐어. 우리가 재탈취를 시도해봤는데 대상이 DX9이라 원격에서 제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그래서 같은 기종인 너에게 협력을 요청하기로 했다.…지금, 마지막 가드를 떼어낸다.”
    ('로어사이드의 유령들' 중에서/ p.98)

    무인병기에 대항하기 위해 파슈툰 게릴라 세력은 염가의 로봇을 주문해 독자적으로 개조했다. 정식 명칭은 DX9—–속칭, 가희. 또는 사막의 죽음의 천사. 일본제의 견고한 기계는 모래에도 더위에도 부서지지 않는다. 무인병기의 천 분의 일 이하의 가격으로 무인병기가 죽이는 만큼의 사람을 죽인다.
    ('잘랄라바드의 병사들' 중에서/ p.127)

    “개발자는 학창 시절의 나오미 발렌틴. 메커니즘은 이렇게 돼. 체내에서 고속으로 증식한 세균이 실로시빈을 생성하면 그것이 세로토닌 수용체와 결합해 숙주의 지각이나 언어활동을 왜곡하지. 한마디로 하자면, 공기로 감염되는 LSD야. 게다가 즉각 효력이 발생하는 환각제도 섞여 있지.”
    ('잘랄라바드의 병사들' 중에서/ p.179)

    삼림 경비원이 생물의 다양성을 지키듯 이 거리의 DX9은 사상의 다양성을 감시한다.
    그녀들이 지키는 것은, 종의 유전자가 아니라, 사상의 유전자다.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 중에서/ p.210)

    폭탄이라도 터졌나 했다. 모두의 모습을 보고는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도시가 건축된 마른 하천 아래를 관통하는 때 아닌 홍수였다. 잠시 후 길이란 길에서는 모두 물이 솟아 도망칠 틈도 없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수위는 허리쯤에서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지만 유속이 빨라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다. 마대와 책, 촛대, 캔과 페트병이 섞여 눈앞으로 흘러갔다. 붉은 옷을 걸친 남자가 물의 흐름에 떠밀려 아키토에게 머리부터 부딪혀 왔다. 풍경이 빙글 돌았다. 발치가 휘감겨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죽음에 이르는 탁류는 종자의 환각에 취한 머리에는 기분 좋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 중에서/ p.237)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교외의 허공.
    고도 경제성장의 흔적—–혹은 얼마 안 되는 중산층이 남겨진 도시의 에어 포켓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린 기억에 남은 단지는 산맥보다 험하고 열대우림보다 깊다.
    ('북도쿄의 아이들' 중에서/ p.250)

    단지 내 어른들의 비밀스럽고 무구한 유희.
    혹은 무의식의 소셜 네트워크.
    클라이맥스는 물론 지면으로의 낙하다. 떨어져 모조리 가루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 유희를 시작한 사람은 삶에 지친, 4동의 원래 프로그래머였던 주부라고 한다. 그녀는 자급자족의 안정제, 또는 새로운 최면요법으로서 이것을 만들었다. 처음에 DX9은 단 한 대였다. 그것이 이윽고 유행을 타 옥상의 로봇은 72대까지 늘어났고 근처의 아파트나 단지로 퍼지고 있다.
    ('북도쿄의 아이들' 중에서/ p.273)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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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부터 1992년까지 뉴욕에서 생활했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고, 재학 시절에는 와세다미스터리클럽에서 활동했다. 여행을 좋아해 졸업 후에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들 중 요하네스버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가가 다녀본 장소들이다. 2010년, 바둑을 소재로 한 단편 [바둑판 위의 밤]으로 제1회 소겐SF단편상 야마다 마사키 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연작 단편집 [바둑판 위의 밤]을 발간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으며, 제147회 나오키상 후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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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치 않은 이 시대를 인문학자이자 번역가로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문학과 철학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공부했으나 성과는 미미하여 [섹슈얼리티와 광기] [명랑철학]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정도가 있을 뿐이다. 평소 일본이나 일본의 문학과 철학에는 관심이 많았고 항상 좋아했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SF소설을 번역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살면 크게 미련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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