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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읽는 인물열전 : 명당이 역사와 인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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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규원
  • 출판사 : 글로세움
  • 발행 : 2019년 08월 22일
  • 쪽수 : 48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6578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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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땅은 어떻게 인걸을 잉태했고 역사를 이끌어 왔는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산을 등 뒤로 하고 물을 마주 보는 강변이나 냇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따뜻하게 햇볕이 잘 드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 살기에 가장 쾌적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배산임수의 안전지대를 찾아 나서게 되었는데, 이것이 고대 자생풍수의 시원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상이나 학풍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는 데는 그것을 수용하기 위한 배태(胚胎) 기간이 전제된다. 풍수지리 사상도 예외일 수 없다.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풍수 역사는 신라 말 도선(道詵, 827~898) 국사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도선보다 210년 앞선 원효(元曉, 617~686) 대사 당시에도 풍수에 근거한 명당 택지(擇地)는 엄연히 존재했다. 한국의 풍수는 산 모형과 물줄기를 헤아려 자연 재해가 적은 곳을 택하는 생존의 지혜였다.
    한반도 풍수의 기원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비롯된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동·서로 양분해 산줄기와 물길을 갈랐다. 이것이 고대 부족국가 영역이 되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는 행정 체계를 구획 짓는 기준이 되었다. 또한 현대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고 있다. 이 땅의 인걸(人傑)들은 백두대간의 정기가 기혈로 뭉친 1개 정간, 13개 정맥 아래서 태어나 한민족사를 주도하고 시대적 위기들을 극복해냈다. 명당과 관련한 인걸들의 면면은 대개 두뇌가 영민하고 무예가 출중했으며 개인적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명당이기에 한 시대의 국운을 좌우한 영웅호걸들을 태어나게 했는가? 땅은 어떻게 인물들을 잉태했고 역사를 이끌어 왔는가? 이처럼 땅이 암시해 주는 역사 속 인걸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풍수학으로 엮어낸 인물 탐사기록이 바로 이규원의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이다.

    역사를 주도한 인걸들과 명당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에 등장한 인물들의 삶은 풍수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와 밀접한 연관 속에 살아왔고 그러한 관심사는 오늘날의 생활 속에도 깊숙이 뿌리 내려져 있다. 한국의 풍수는 충과 효를 바탕으로 조상을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사상이요, 학문이다. 내 자식, 내 권속만 출세하여 부자가 되려고 이용하던 비술이 아니다. 명당 혈처를 찾아 조상을 잘 모시고 바르게 살고자 했던 풍수사상은 충과 효 그리고 지조와 절개로 표상된 선비정신과 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풍수지리는 단순히 명당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풍수와 인물 그리고 역사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하나의 전통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는 역사를 주도한 인걸들과 명당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대가들을 우선했다. 또한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저명도도 함께 감안했다. 간략한 인물 평전을 겸한 이 책은 어려운 풍수 용어를 알기 쉽게 풀이해 읽는 재미를 보탰다. 1장 ‘바람과 물, 풍수를 말하다’에는 한국의 신화, 종교, 풍속에 대한 고찰을 통해 풍수의 기원과 천하제일의 명당을 소개한다. 2장 ‘역사의 표상이 되다’와 3장 ‘신념대로 살다’에는 회헌 안향, 방촌 황희, 사명대사 임응규, 다산 정약용, 포은 정몽주, 우암 송시열 등 역사의 본보기가 된 16명의 삶과 신념을 명당과 관련해 살펴본다. 4장 ‘영욕의 삶을 살다’에는 압구정 한명회, 강호산인 최만리 등 영예와 치욕이 함께 한 8명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5장 ‘여인아, 시대를 살아내다’에는 사임당 신인선, 거상 김만덕, 가수 이난영 등 남성 우월적인 유교사상이 사회 전반의 덕목이어서 여자 지위가 보잘 것 없던 때 독자적인 삶을 살아낸 7명의 여인들을 조명한다. 6장 ‘현대사를 써 내려가다’에는 안드레아 김대건, 면암 최익현, 만해 한용운, 작곡가 안익태 등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민족의 대의를 이끈 8명의 삶을 풍수학적으로 탐사한다.

    출판사 서평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산맥’이란 말을 썼을까?

    일제는 혹독한 고문과 죽음도 두려워 않는 한민족의 선비정신을 풍수사상에서도 찾아냈다. 그들은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을 앞세워 우리 강토의 구석구석을 뒤져 [조선의 풍수](란 책을 펴낸 후 풍수지리는 혹세무민하는 미신이라며 조선 민중이 배우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더불어 조선 왕실의 맥을 끊기 위해 고종, 순종의 두 황제를 탄출(誕出)시킨 전설적 명당으로 꼽히는 흥선대원군의 생부 남연군의 묘(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뒤에 있는 거대한 입수 내룡맥을 무지막지하게 절단했다. 일제의 풍수 만행은 백두대간으로까지 확산됐다. 1903년 전국의 지하자원을 탐사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고유의 ‘대간’, ‘정맥’이란 용어를 없애고 그들이 쓰는 ‘산맥’이란 말로 바꿔놓았다. 산맥은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과 들의 연결체계로 물길을 고려 않는 인위적 구획선이다. 1925년부터는 신속한 물자수송을 빌미로 백두대간 곳곳을 끊어 신작로를 냈다. 남한의 진부령에서 지리산 구간의 735㎞ 중에서만 63곳이나 잘려 나갔다. 일제가 백두대간을 파괴하고 고유의 용어까지 말살한 이유는 땅의 운기와 인물의 탄생이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한국의 풍수사상이 충절(忠節)의 근본이자 독립운동을 이끈 선비정신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풍수사상이 독립운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6장 ‘현대사를 써 내려가다’에 그대로 드러난다. 혹독한 고문에도 끝내 천주 신앙을 배교하지 않았던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나라를 구하겠다고 의병을 일으켰지만 74세에 대마도로 유배당해 굶어 죽은 항일 의병대장 면암 최익현, 33인 민족대표로 불교개혁과 저술로 식민통치에 맞선 만해 한용운,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노심초사로 생애를 일관한 단재 신채호, 국어학자로 한글의 전문적 이론 연구와 후진양성에 몸 바쳐 우리말・글의 근대화와 중화를 이끈 한힌샘 주시경, 개인의 일신영달과 부의 대물림만이 가진 자의 능사가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며 위국헌신에 매진한 성제 이시영과 그의 형제들 등 우리의 근대사를 이끈 독립투사와 민족주의자들의 뚜렷한 행적에서 저자는 풍수사상의 역사적 맥락을 읽어낸다.

    인걸의 탄생은 까닭이 있다!―황희와 이항복

    묏자리와 걸출한 인물의 탄생은 상당한 연관이 있다. 인걸의 탄생은 풍수라는 지리적 요건도 충분한 작용을 하지만 조상을 숭배하여 그들의 행적을 닮고자하는 후손들의 가풍이 면면히 이어진 필연의 결과이기도하다.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에 실린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가계를 보면 그러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황희 정승은 바르고 의로운 것이 아니면 행하지 아니하여 조정 권신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는 인재를 기용할 때 출신 성분이나 가문보다는 인성과 실력을 우선시했고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극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황희 정승의 조부 묘는 ‘기러기가 바람을 만나 울면서 멀리 날아간다.’는 명홍조풍형(鳴鴻遭風形)의 유명한 혈처다. 이 묘를 쓴 후 황씨 문중은 대대로 벼슬하며 크게 번성했다. 황희의 아들 황수신은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선조 때 일본 통신사로 침략조짐을 보고한 황윤길, 영조 때 대제학 황경원,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음독 순결한 매천 황현도 그의 방손들이다. 묘 하나를 잘 써 이런 인물들이 배출됐다면 필경 까닭이 있는 법이다.
    탁월한 외교적 수완으로 명을 설득시켜 왜군을 이 땅에서 패퇴시키고, 적통 왕자인 어린 영창대군(1606~1614)을 강화에 귀양 보내 죽이려는 광해군에게 추상같은 상소문을 올려 결국엔 귀향길에 올라 북청에서 6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백사 이항복은 생전에 자신의 묘를 직접 골랐다.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위치한 백사의 묘는 당대 신풍 박상의의 소점을 받아 백사가 직접 잡은 비룡상천혈(飛龍上天穴)로 죽엽산 중출맥의 영세발복 명당으로 꼽힌다. 백사의 묘를 북청에서 포천으로 이장을 한 이후 백사 문중에서는 육조판서와 삼정승이 연이어 출현했고 삼한갑족으로 우뚝 섰다. 경주 이씨는 조선조에만 8정승과 3명의 대제학이 가문을 빛냈고 178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시켰다. 영의정 이태좌, 이광좌, 이종성 등이 백사의 방손이며 한말 독립운동가 이회영, 초대 부통령 이시영도 그의 후예다.

    과연 땅의 진실은 어디까지인가?―정약용과 한명회

    풍수와 인물의 관계가 꼭 가문의 번성과 인걸의 탄생이라는 좋은 영향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조선의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생전에 풍수를 멀리했다. 명당 논쟁에 국력이 소모되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가산마저 탕진하는 당시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부인 풍산 홍씨와 합장된 다산의 묘는 자좌오향의 정남향으로 생가와 함께 경기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됐다. 그의 묘는 춘천 쪽에서 흘러온 북한강과 충주에서 달려온 남한강이 합수돼 만나는 천혜의 절경이다. 사학자들은 당대 문한(文翰)으로 문명을 날리던 다산 3형제가 옥사로 죽거나 유배로 관운이 좌절됐다는 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전도가 유망했던 3형제가 한꺼번에 비운을 겪는 횡액을 당했기 때문이다.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풍수학계서는 생가 묘방(卯方), 즉 동쪽을 치고 들어오는 좌청룡의 능침살(陵侵殺)에서 그 연유를 찾고 있다. 실제 생가에 가보면 본채 처마와 날카롭게 맞서 있는 좌측 산세를 확인할 수 있다. 풍수에서 좌청룡은 아들과 관직에 해당된다. 도도한 북한강은 활처럼 굽어진 궁현수(弓弦水)가 되지 못하고 직사로 빠져나가며 일직선의 수살水殺이 되고 있다. 실제로 다산 생가는 을축년(1925) 대홍수 때 모두 유실돼 다시 복원한 것이다. 과연 땅의 진실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조에 맞서 봉기한 사육신 세력을 잡아 가두고 참혹한 고문을 가해 그들의 목숨을 앗아버리고 가족까지 멸문시킨 한명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분분하다. 사후 18년이 지난 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때 한명회는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비사건과 관련됐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참화를 당했다가 훗날 신원되었다. 그러나 한명회가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공·과를 미리 예견해 사후를 대비했다. 무연고 묘지 유골을 광중위에 묻게 하여 정작 자신은 끔찍한 부관참시를 면하게 했다는 풍수학계의 정설이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천안(天安)에 묻힌 그의 속발지복혈(速發之福穴) 덕분에 후손들의 영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땅의 진실을 묻게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삶과 풍수

    학문과 교양을 갖춘 두루 갖춘 현부(賢婦) 신사임당의 예술 감각과 감수성은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신사임당은 친정 오죽헌에 살며 아들로 대를 잇지 못하는 외갓집을 늘 가슴 아파했다. 어느 해 가을, 남루한 행색의 탁발승이 대문 앞을 지나치며 “외손 발복지로서야 손색없으련만 정작 내 대(代)는 누가 이을까?”라고 탄식했다. 사임당이 듣고 깜짝 놀랐으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외손 발복지는 아들보다 딸의 자손이 번성하는 집터나 묘터를 이르는데 오죽헌은 대표적인 외손 발복 양택지로 유명하다. 외손 발복지는 아들보다 딸의 자손이 번성하는 집터나 묘터를 이르는데 오죽헌은 대표적인 외손 발복 양택지로 유명하다.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 뒤의 오죽 밭에 올라 살펴보면 좌청룡은 넓고 펑퍼짐하게 지리멸렬해 있는데 우백호는 우렁차게 가옥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좌청룡은 아들과 관직을, 우백호는 딸과 재물을 관장한다. 이는 사임당과 율곡 모자의 생애와 절묘하게 일치하는 풍수 법도라 할 수 있다.
    고죽 최경창은 절세미인의 관기 홍랑과의 사랑이 탄로나 관직에서 파직당한 뒤 중병을 앓다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홍랑은 고죽의 무덤 앞에 손수 초막을 짓고 3년간 두문불출하며 시묘살이를 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심산유곡에서 혼자 시묘를 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홍랑은 천하일색의 얼굴을 심하게 훼손시켜 뭇 남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커다란 숯덩이를 삼켜 불구가 되고 말았다. 후손들은 고죽의 무덤(부인 선산 임씨와 합장) 앞에 자좌오향(정남향)으로 홍랑을 묻었다. 우백호가 좌청룡의 설기(泄氣)를 막아 파수구를 관쇄(關鎖)한 고죽의 혈처다. 외척이나 여자의 슬기로 남자들이 출세하는 산형이다. 당쟁의 난국을 올곧은 소신으로 바로잡은 영조 때 영의정 최규서가 고죽의 현손(玄孫)이다.
    천신만고 끝에 모은 거금을 세상 위해 기꺼이 환원시킨 당대의 여걸 김만덕은 제주성 안이 한눈에 조감되는 ‘가으니마루’ 길가에 묻혔다가 사후 165년 만인 1976년 제주시 사라봉에 모충사가 건립되고 ‘의녀반수 김만덕 의인 묘탑’이 조성되며 현 위치로 이장됐다. 제주 풍수학계서는 한라산 생기가 뭉친 명당 중 사라봉을 으뜸으로 손꼽는다. 인걸의 탄생이나 유적지가 많지 않은 이곳에서 ‘만덕 할머니’넋이 깃든 모충사는 제주를 빛낼 새 인물의 출현을 고대하는 염원의 현장이기도 하다. 후대 사람들에게 김만덕은 제주를 대표하는‘만덕 할머니’로 칭송받게 되었다.

    풍수, 우리 민족사와 동행해 온 인걸과 졸자의 자취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에는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의 낯익은 저명인사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 민족사와 동행해 온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들이다. 역사를 깊이 천착하다 보면 당대를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사례와 만나게 된다. 거기에는 두 가지 삶의 형태가 평가의 분기점에서 두드러지며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는 개인적 수양과 절제를 통해 자신을 지켜낸 인걸들의 생애다. 다음에는 분에 넘치는 부의 누림과 권력의 횡포를 일삼다가 스스로는 물론 후손들의 앞길까지 가로 막은 졸자들이다. 조상이 충신이고 간신이었다는 역사적 평판은 모조리 후손들의 몫으로 전가돼 가문의 창달과도 직결된다. 다시 말해 죄 없는 자손들이 연좌(緣坐)의 덫에 걸려 그 굴레를 못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신양명하여 출세한 사람들은 올바르게 처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이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교훈이다.

    목차

    서문

    1장 바람과 물, 풍수를 말하다


    | 풍수와 백두대간 | 풍수의 기원 / 명당에 기를 공급하는 근본이 되니
    | 풍수와 윤달 풍속 | 윤달의 의미 / 귀신의 해코지가 없는 달, 신들이 쉬나니
    | 풍수와 영산정기 | 수경신 / 인간의 장수열망은 무한하여 생명연장을 꾀하나
    | 제주 역사의 발상지 | 삼성혈과 탐라신화 / 탐라신화에서 성탄지로 성역화돼
    | 천하제일 7명당 | 칠갑산과 장곡사 / 천하제일 7명당 중 그 한 자리가 바로 장곡사 터라
    | 자유분방인 원효대사와 한국풍수 / 해골 물을 마시고 불도 깨달아 민중 불교로
    | 신라의 파계승 | 부설거사와 월명암 / 파계승이나 도심은 깊어 불교사의 대업 이뤄
    | 조선의 왕사 | 무학대사와 간월암 / 한양 천도하고 인재 출세시켜 나라 근본을 세우니
    | 왕실과 풍수 | 태실과 태봉산 / 태 자 지명은 국풍 동원, 명당 혈지 많아
    | 최고의 양택지 명당 | 안동 하회마을 / 곡물을 실은 배가 들어오는 행주형 명당이나
    | 영험한 명당 발복지 | 광평대군 묘역 / 명당 발복은 후손들의 입신양명으로 입증하니
    | 여인의 처신 | 서울 현충원과 창빈 묘 / 한 여인의 조신했던 처신으로 왕의 발복지가 되다
    | 백령도의 풍수 기원 | 심청각과 인당수 / 백령도의 풍수 기원점은 심청각에서 비롯
    | 한국 기독교의 성지 | 절두산과 외국인선교사 묘원 / 철길 경계로 가톨릭, 개신교 성지가 대조 이뤄
    | 세계 평화의 상징 | 재한유엔기념공원 / 추모객 끊이지 않을 천혜 명당이라
    | 자유수호의 현장 |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 나라 위해 헌신한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이라

    2장 역사의 표상이 되다

    | 동방의 주자 | 회헌 안향 / 고려 최초 유학자로 중원 대륙의 성인 반열에 올라
    | 청백리 표상 | 방촌 황희 / 정승이 나올 천하제일 명당이나 가난하게 사니
    | 조선의 도연명 | 토정 이지함 / 앉아서도 천리 밖을 내다보니 신풍의 경지를 넘어
    | 호국 승려 | 사명대사 임응규 / 절체절명의 국난을 당해 호국 일등공신이 되니
    | 슬기로 국난극복 | 백사 이항복 / 우국충절 높이사 청백리에 녹선되니
    | 난세를 이겨 낸 | 한음 이덕형 / 올곧은 신념 공직자의 본보기가 되어
    | 공직자의 본보기 | 동고 이준경 / 붕당정치를 경계, 청렴한 인사 등용
    | 정의로운 심판자 | 암행어사 박문수 / 부패한 관리 적발해 가차 없이 응징
    | 실학의 대가 | 다산 정약용 / 유배지에서 위대한 민족 문화유산 남겨

    3장 신념대로 살다

    | 동방 이학을 정립 | 포은 정몽주 / 고려 왕조를 살리고자 안간힘, 선죽교에서 쓰러지니
    | 외길 무관의 삶 | 설죽 이종무 / 대마도 정벌로 큰 공훈, 나라를 평안케 해
    | 조선 개국공신 | 퇴촌 조영무 / 절제를 알아 무탈한 생애로 천수 누려
    | 강직한 충신 | 경암 허조 / 청백리 기질, 부정부패에 가차 없는 원칙 확립
    | 친명파 외교통 | 간이재 한확 / 조선과 명나라의 쟁점 현안 무리 없이 중재
    | 생육신의 절의 | 추강 남효온 / 요주의 인물로 온갖 박해 술과 시로 울분 달래
    | 예송논쟁의 거두 | 우암 송시열 / 사생결단 예송 논쟁으로 결국 사약 받아 절명

    4장 영욕의 삶을 살다

    | 고려의 대문장가 | 백운거사 이규보 / 올곧게 살고자 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 세조의 장자방 | 압구정 한명회 /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 뿌리깊은 사대주의자 | 강호산인 최만리 / 훈민정음 창제 반대, 언문으로 비하하니
    | 승자편에 선 유학자 | 효중 정창손 / 승자 편에만 섰으나 일생은 파란만장 영욕이 교차하니
    | 연산군의 난신 적자 | 이의 임사홍 / 모함과 분란, 간신 모리배의 말로는 비참했으니
    | 관가를 습격한 3대 도적 | 백정 임꺽정 / 백정 출신, 신출귀몰 의적으로 불리나
    | 이상주의자로 살다간 | 교산 허균 / 천재성 타고난 반골 재사로 이상 못 펼쳐
    | 사도세자 장인 | 익익재 홍봉한 / 혈육지정인 사도세자 버리고 천수를 누렸건만

    5장 여인아, 시대를 살아내다

    | 현모양처의 표상 | 사임당 신인선 / 현명하고 어진 어미이자 천부적 예술인으로
    | 조선 최고 러브스캔들 | 시인 최경창 기생 홍랑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문학사에 길이 남아
    | 착한 기부로 난민 구휼 | 거상 김만덕 / 거상으로 번 돈, 통 큰 기부로 감동 주니
    | 사제 간 못다한 사랑 | 동리 신재효 명창 진채선 / 제자에게 품은 연정이 사랑인 줄 알았으나
    | 민족반역자 여간첩 | 사다코 배정자 / 수양딸로 삼았으나 이토의 속셈은 따로 있었으니
    | 비극적 로맨스의 주인공 | 수선 윤심덕 / 운명적 만남이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으니
    | 목포 삼절 삼학도 | 가수 이난영 / 별은 반짝이나 일생은 험난하기만 하고

    6장 현대사를 써 내려가다

    | 한국 최초의 신부 | 안드레아 김대건 / 그가 묻힌 곳은 한국 가톨릭의 성지가 되고
    | 항일 의병대장 | 면암 최익현 / 구국 의병을 일으켰지만 74세에 대마도로 유배당하니
    | 33인의 민족대표 | 만해 한용운 / 33인 민족대표로 3년 형, 식민통치에 맞서니
    | 민족주의 사관 정립 | 단재 신채호 / 일제에 맞서 저항하는 길은 민족 정통사관 정립으로
    | 한글 외길 사랑 | 한힌샘 주시경 / 세종의 한글창제 이후 최고 어문학자
    | 메밀꽃 필 무렵 | 가산 이효석 / 한 편의 문학작품이 주는 감성의 힘, 지역경제 살려
    | 위국헌신과 6형제 | 성재 이시영 / 거부의 대물림 포기, 전 재산 팔아 독립운동에
    | 애국가와 한국환상곡 | 작곡가 안익태 / 한국인 정서에 맞게 작곡, 공식 애국가로 사용되나

    본문중에서

    민족의 사표로 공직의 표상이 된 황희 정승 묘는 후손들이 묘역 관리를 잘해 엊그제 쓴 묘와 진배없었다. 반면 간신의 대명사가 된 임사홍 묘는 우거진 잡초 속에서 관직과 이름 석 자가 어렴풋이 새겨진 표석만 댕그라니 남았다. 충북 괴산과 충남 천안에 있는 우암 송시열과 암행어사 박문수 묘는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의 명당 혈이다. 장군은 병사가 있어야 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혈 앞에 병사를 상징하는 물형이 없자 후손들이 거금을 갹출해 없던 시장을 개설했다. 오늘날의 괴산 청천장과 천안 병천(아우내) 장으로 장날마다 사람이 모여드니 곧 ‘병사’들이다. 허한 곳을 보충하는 한국만의 비보(裨補) 풍수로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현장이다.
    (/ p.7)

    우리나라 각 고장 지명은 역사와 지역 인심, 산천 운기와 상관된 작명이 많다. 그래서 역사는 인걸이 움직이고 지령地靈은 명인을 품는다 했다. 화산폭발이 잦아 기가 빠진 현무암 지반에서는 큰 인물이 배출될 수 없다. 풍수에서는 땅속의 지반을 인간의 태반과 동일시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생기가 충만한 화강암 지반이 대부분이어서 국가적 위기 때마다 영웅이 출현해 난세를 평정해 왔다.
    (/ p.91)

    하회마을은 일제 강점기 한・일 간 풍수 격론이 벌어졌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전체 지형이 득수국得水局으로 거대한 배가 뜬 행주형임을 알았던 일본인들이 혈맥을 찾아 우물을 판 것이다. 낙동강 물을 길어다 먹던 주민들이 마을이 가라앉는다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일인들의 의도적 강압에 속수무책이었다. 최근까지도 이곳에선 우물 파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 p.99)

    동·서양을 뛰어넘어 명당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풍수지리적으로 이들의 안식처는 어떤 곳일까. 6・25 한국전쟁 중 전사한 4만여 명의 유엔군 장병 이름을 모두 새긴 전몰장병 추모명비 앞에 서면 풍수에 앞서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이 철저히 적용됐음에 새삼 놀란다.
    추모명비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원형수반(우주)의 물(음)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양)이 타오르고 있다. 수반 내 움푹 팬 곳(음)에는 평화로운 삶으로 승화함을 뜻하는 꽃이 있고 전쟁과 죽음을 상징하는 철모(양)가 대칭으로 배치돼 있다. 22개국(한국 포함) 국기가 반기로 게양된 길 건너에는 목(청) 화(적) 토(황) 금(백) 수(흑)의 오행五行 색깔이 자유롭게 뒤섞여 상생하고 있는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p.137)

    고령 박씨 후손들은 부족한 병사들의 비보책으로 거액의 문중 돈을 갹출해 묘의 남쪽에 장터를 개설했다. 유관순 열사가 3・1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곳이며 병천 순댓국으로 유명한 아우내 장터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면적이 좁다는 이유로 장터를 옮기려 했으나 박씨 문중의 결사반대와 주민들 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비보 풍수에 대한 믿음과 민족의식이 결합된 민중봉기의 발로였다.
    박문수의 묘 너머 산기슭에는 고령 박씨 문중의 재실(문화재자료 제289호・충남 천안시 북면 은지리 44)이 있다. 박 어사의 초상화(보물 제1189호)가 보존돼 있으며 전국 각급 학교의 체험학습장과 수학여행지로도 각광 받고 있다. 한 시대를 바르게 산 뛰어난 인물이 문중을 빛내고 그 후손들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는 현장이다.
    (/ pp.216~217)

    포은은 처음 궁궐 가까운 개성 산록에 묻혔다. 조선왕조가 개국한 뒤 개성의 지기가 쇠하여 포은도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천묘하게 되었다. 이장 행렬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닥쳐 명정銘旌(붉은 천에 흰 글씨로 망자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하늘로 치솟았다. 질겁한 상주와 문하생들이 명정을 쫓아 떨어지는 곳에 이르니 오늘날 포은 묘가 있는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산3번지의 문수산 안자락이었다.
    (/ p.234)

    강화에는 단군왕검이 국가안위를 기원하며 천제를 지낸 참성단과 조선 제25대 철종이 성장한 집터 등 명당 혈지가 많다. 이규보 묘는 서쪽(오른쪽)의 우백호가 길게 뻗어 안산(남주작)을 감싸 안은 백호 작국作局이다. 백운거사 묘 뒤의 입수入首 용맥에 올라보면 누구나 명당 혈지임을 직감하게 된다. 묘 아래에는 최근 문인들이 세운 백운문학비가 있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규보가 본질상 입신출세 지향자였으며 철저한보신주의자였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신정권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30년이나 더 지속됐다. 묘역을 내려오며 먼 산에 뜬 저 구름에게 물었다.
    “이 시대 지식인 중 백운거사에게 돌 던질 자 과연 누구인가.”
    (/ p.297)

    만해는 몇몇 동지들에 의해 미아리 사설 장묘장에서 화장된 뒤 망우리 공동묘지에 유좌묘향(정동향)으로 안치됐다. 고향으로 가려했으나 홍성이 ‘의병의 고장’임을 두려워해 총독부가 서둘러 이곳에 매장토록 했다. 이 당시만 해도 망우리 공동묘지는 전국 공동묘지의 대명사로 누구나 꺼리던 곳이었다.
    현재는 ‘망우리 묘지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동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5월 27일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1973년 3월 2만 8,500여 기의 분묘로 가득 차며 포화상태를 이뤘다. 이후 당국이 납골과 이장을 장려한 결과 현재는 1만여 기의 묘가 남아있다.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활용되며 서울 시민과 인근 경기도 구리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애국지사 및 유명 인사들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조봉암, 오세창, 문일평, 장덕수, 방정환, 지석영과 문인으로는 박인환, 김말봉, 계용묵도 이곳에 영면하며 화가 이중섭, 작곡가 채동선, 요절한 가수 차중락도 잠들어 있다.
    (/ pp.438~43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9~
    출생지 충남 홍성
    출간도서 6종
    판매수 1,068권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홍성중, 예산농고를 거쳐 대학에서는 중국어와 장례풍수학을 전공했다. [종교신문] 취재부장, [세계종교신문] 주필, 월간 [광장] 편집장과 [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고교시절 유효동 선생과의 인연으로 풍수학에 입문한 뒤 화엄학의 태두 탄허 대종사로부터 주역과 명리를 인가받고 황진경 조실 스님에게서 사찰풍수를 전수받았다. 현역 취재 30여 년간 종교와 풍수전문 대기자로서 다양한 기사와 글을 써왔다.
    1995년 [문예사조]지 시 부문 신인상을 타며 문단에 등단한 후 제6회 부원문학상과 제27회 한국기자상 본상(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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