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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끝없는 투쟁

원제 : Churc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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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타고난 반항아, 과격분자,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깊이 무는 불도그,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거듭거듭 잔인하게 매를 맞았다. 그래도 여전히 배우지 않았고, 어느 날 항의의 뜻으로 교장의 밀짚모자를 밟았다.” _본문 35쪽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의 역작 『처칠, 끝없는 투쟁』이 출간되었다. 독일 현대사 3부작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어느 독일인 이야기』,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 이어 네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이 책은 다른 세 책과 달리 독일의 숙적 영국을 다룬다. 독일 국민작가가 쓴 영국 역사, 그것도 독일을 잿더미 속으로 밀어 넣은 전쟁 영웅의 이야기라는 기묘함! 그러나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경계인’적인 정체성을 고려하면 더없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하프너는 190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1938년 나치의 폭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뒤 《옵서버》 편집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영국 언론을 위해 일했던 이력을 고려하면, 하프너야말로 처칠(1874~1965)을 다면적으로 조명할 적임자다. 하프너는 원고지 700장 남짓한 분량으로, 90년에 이르는 처칠의 전 생애와 양차 세계 대전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계사를 흥미진진하게 압축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처칠의 공과를 모두 짚는다. 1940년과 1941년에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거대 게르만 친위대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상찬하는 한편, 처칠이 반파시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파시스트에 가깝고 정치인으로서는 로이드 조지나 네빌 체임벌린 등에 비해 하수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하프너는 처칠의 삶이 ‘투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한다. 기나긴 투쟁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빛나는 장면은 두말 할 필요 없이 히틀러와의 대결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책의 가운데를 처칠의 비범함이 차지하고 있다면, 처음과 끝은 기이할 정도로 미약한, 그러나 여전히 ‘투쟁’하는 인간 처칠이 자리하고 있다. “초강력 교육기계” 기숙학교에서 잔혹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하던 소년은 빛나는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순간까지 살아남아 우울증과 무료함, 뇌졸중과 투쟁하면서 서서히 소멸해 간다. “나는 늘 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울보가 되었어.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나?”(본문 281쪽) 90년의 장고한 삶이 스산하게 완결된다.
    책의 말미에는 냉전 상황 속에서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에 초석을 놓고 세계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말년의 활약상이 간결하게 소개된다. 2014년 『처칠 팩터』(한국어판은 2018년, 지식향연)를 출간하기도 한 언론인 출신 신임 총리 보리스 존슨이 “3년간 망설임의 종지부를 찍겠다”며 유럽연합 탈퇴를 공언하고 있는 지금, 세계 통합을 향한 처칠의 비전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힐 것이다.
    독일 로볼트 출판사의 로로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역사적인 도판 53컷을 수록했다.

    출판사 서평

    모든 이에 맞선 단 한 사람… 윈스턴 처칠
    투쟁으로 점철된 90년 필생에 붙이는 주석
    독일 국민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역작


    ■ 소년 처칠의 수난과 투쟁
    『처칠, 끝없는 투쟁』은 보잘것없는 시골귀족이었던 처칠 가문을 고위귀족으로 끌어올린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1650~1722)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150년 동안 역사책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처칠 가문을 다시 일으킨 또 한 명의 천재가 소개된다. 서른 살에 “혜성처럼” 정치무대에 등장해서 6년 만에 보수당을 다시 집권당으로 만들었으나 부총리에 취임한 지 넉 달 만에 스스로 모든 관직을 내던지고 파멸한 기이한 천재 로드 랜돌프 처칠(1849~1895). 바로 그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다.

    [랜돌프 처칠은] 절도 없고 불끈 화를 내며 내던지고, 예의 없다고 할 정도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게다가 스스로도 몹시 쉽사리 상처를 입는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돈키호테 방식의 기사였다. 그러니까 무모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경탄의 뜻을 담아 ‘정신 나간 놈’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더욱 진지한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늙은 빅토리아 여왕은 그가 짧은 명성의 절정에 있을 때 악의를 품고 진지하게 그를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죽었다. 겨우 마흔다섯 살 때였다. _본문 13쪽

    처칠은 일곱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12년 동안 영국식 “초강력 교육기계” 기숙학교에서 잔혹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했고, 그로써 아버지 랜돌프 처칠에게 “재능 없고 희망도 없는 실패자”라는 경멸을 받아야 했다. “삶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의 열쇠를 쥔 듯이 보이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어린 처칠의 “트라우마”였다. 처칠은 스무 살이 되도록 고등학교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했고, 사관학교 입학시험을 두 번 떨어졌으며, 보병이 되기엔 “멍청”한 부잣집 자제들이 흔히 지원하는 기병이 되어야 했다.

    어린 처칠은 해로 스쿨에서 영원한 낙제생이었다. 오직 영어만 우수했고, 나머지 모든 과목에 대해 ‘이성을 닫아’걸었다. 학교 스포츠에서도 반항적인 실패자였으니 크리켓과 축구도 라틴어나 수학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어떤 우정도 맺지 않았다. 그가 학교에 대해, 학교의 강요와 방식에 대해 마음을 닫고 내면의 파업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막연히 결심한 채 이 모든 것을 12년 동안이나 견뎠다. 비싼 학교는 그에게 모조리 허사였고 학비만 들었다. 그는 기율을 얻지 못하고 목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채 교육도 교양도 없이 학교를 떠났다. _본문 36쪽

    ■ 청년 처칠, 국민영웅이 되다
    “다 자랐으나 쓸모없는 귀족 자제, 가문의 수치이며, 죽어 가는 아버지 눈에 ‘무능력자’일 뿐”이었던 처칠은 스물한 살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환골탈태한다. 훗날 처칠은 “마치 알라딘의 기적의 동굴처럼” 세계가 자신 앞에 열렸다고 썼다. 그리고 하프너는 이 놀라운 변화의 원인을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과의 운명적인 조우’ 덕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 대한 처칠의 회고에서 열쇠가 되는 문장이 나온다. “이제부터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길들일 수 없는 그를 길들이려는 시도가 갑자기 사라졌다. 학교도, 사관생도 생활도, 위압적인 아버지도 없었다. 랜돌프 처칠 경의 죽음은 희망 없고 수치스런 위대한 사랑[아버지를 향한]의 종말을 뜻했다. 이 죽음과 함께 나타난 우울하면서도 깊은 해방감은 젊은 윈스턴 처칠이 꽉 눌려 있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갑자기 풀려난 깃털처럼 앞으로 날아오른 것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된다.
    또 다른 설명은 그가 거의 우연히 곧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직종인 전쟁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_본문 46쪽

    하프너는 책 전반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처칠을 “전쟁의 사람”이라고 호명한다. 실제로 처칠은 평생 전쟁을 쫓아다녔다. 청년 처칠이 대반전을 맞는 것도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에서 잇달아 터진 전쟁에 뛰어들면서다. 특히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기관차를 탈취해 부상자들을 구하고,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등의 스펙터클한 모험을 통해 처칠은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타고난 군사적 재능과 글쓰기 재능으로 무장한 처칠은 때론 기병소위로, 때론 신랄한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면서 점점 더 세상의 주목을 받다가 1900년 10월 스물다섯 살에 올덤 하원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 성공한 기회주의자
    정치인 처칠은 몇 차례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거의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다시 보수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60년 동안 하원의원, 장관, 총리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하프너는 거물 정치인 처칠을 꽤나 야박하게 평가한다. “아웃사이더”인 동시에 “기회주의자”라는 이중적인 처신으로 권력을 좇았지만, 당대의 정치 천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나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스러져 간 네빌 체임벌린 등에 비하면 정치인으로서는 하수라는 것이다.
    하프너에 따르면 처칠은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보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명예욕”, “권력욕”, “소명 의식”, “운명에 대한 믿음”, “천재적인 데몬의 힘”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진정한 추종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처칠에 대해 로이드 조지는 이렇게 썼다.

    “그의 정신은 강력한 기계와 같지만, 무언가 감추어진, 알려지지 않은 결함을 갖고 있다. (…) 이 기계가 잘못 작동하는 날이면, 그 결과는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 일 자체와, 일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까지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을 그토록 예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 말로는, 그가 어딘가 자재(資材)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_본문 132쪽

    ■ 차라리 파시스트
    급기야 하프너는 처칠이 반(反)파시스트라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평생 반볼셰비키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던 처칠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고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이 부상하는 것을 분노에 차서 지켜보다가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반혁명 붐이 일자 오히려 반색했다는 것이다. 하프너는 1920년대의 처칠을 파시스트라고 단언하면서, 그 당시 처칠이 “사회주의 배신자인 무솔리니와 천박한 속물 히틀러보다” “유럽 파시즘의 가장 위대한 국제적 지도자”에 더욱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1930년대 초반의 처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칠은―특히 30년대 초기의 처칠은―반(反)파시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 처음에는 심지어 히틀러에 대해서도 어떤 특별한 반대가 없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 대해서만은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이 무시무시한 사내의 잔인성과 독특한 깡패 기질에 진짜 역겨움을 느꼈다. 30년대 초에는 그런 게 아직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따금,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한 것처럼 영국이 큰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영국에도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_본문 166쪽

    이런 그가 20년 뒤 파시즘을 물리치는 전사가 되는 것은 “기질적으로 모든 유화 정책의 반대자였기 때문이고, 마침 이 순간 나치가―노동당과 인도에 뒤이어―영국 유화 정책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하프너는 설명한다.

    ■ 전쟁의 사람 vs 전쟁의 사람
    하프너는 ‘정치인 처칠’ 대신 ‘전사 처칠’에 더욱 주목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전사였고, 그런 다음에야 정치가”였던 사람. “20세기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더 옛날 더욱 강하던 시대에 속했”던 시대착오적인 인물. “다른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는 온건한 지역에서는 쇠약해지고, 남들이 숨을 헐떡이는 곳에서 비로소 되살아”나는 사람…. 이 같은 표현들은 히틀러에게도 그대로 부합한다. 하프너에 따르면 처칠과 히틀러는 “서로의 운명”이다.

    처칠은 히틀러보다 무한히 고귀하고 인간적이고 고상한 현상으로, 도덕적으로나 미적으로 마치 블레넘궁이 빈(Wien) 멜더만 거리의 노숙자 숙소와 거리가 먼 만큼이나 히틀러에게 멀리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두 사내, 고귀한 사람과 저급한 사람을 서로의 운명으로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서로의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승리했을 것이고, 히틀러가 없었다면 처칠은 빛나는 실패자, 시대 착오자로 시들어 갔을 것이다. 평생 직접 대면한 적이 없는 이 두 사내는 알지도 못한 채로 수십 년 전부터 서로를 향해 행진해 나갔고, 그런 다음 죽기까지 서로 결투를 벌였다. 특별한 의미에서 그들은 한데 속하는 사람들이니, 언제까지나 역사에 함께 등장할 것이다. _본문 180쪽

    그러나 처칠과 히틀러는 극과 극의 인물이기도 했다. 하프너는 이렇게 말한다. “처칠은 타고난 전사임에도 매우 인간적이었고, 자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마치 정열적인 사냥꾼이 흔히 동물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인 것과 비슷하다. 더 약한 존재, 패배한 존재에 대한 잔인성을 그는 죄악처럼 싫어했다. 이런 종류의 잔인성은 히틀러의 성격 특성이었다.”(본문 216~217쪽)
    정치적으로 훨씬 유능하고 유연했던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이 실패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하겠노라”는 처칠의 무시무시한 결심이 세계를 구원한 것은, 단 하나, 반대편에 버티고 있는 파트너가 ‘히틀러’라는 특수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체임벌린의 구상에는 “자신이 영국을 위해 계산하듯이, 자기 나라의 가능성과 이익을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하는 독일의 정치가라는 개념”이 들어 있었지만, 히틀러는 “정치가가 아니”라 “유대인 절멸, 슬라브인의 노예화, 그리고 새로운 게르만 주인종족의 양성”을 꿈꾸는 “극히 무시무시한 종류의 혁명가”였으며, 오로지 처칠만이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40년과 1941년에 처칠이 없었다면, 지금도 78세의 히틀러가 대서양부터 우랄 산맥에 이르는, 또는 그 이상까지 미치는 거대 게르만 친위대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처칠이 없었다면 오늘날에도 어쩌면 대영제국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히틀러는 대영제국이 존속하는 것을 보려고 했으니)―아마도 강력한 파시즘과 야만적 형태를 하고서, 히틀러가 통치하는 유라시아 대륙국가의 불쾌한 주니어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_본문 208~209쪽

    ■ 마지막 투쟁
    하프너는 처칠의 투쟁을 마냥 빛나는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떤 대상과 싸운다는 것은 투지에 찬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처절하고 피로하며 제 살 깎아 먹기이기도 하다. 처칠의 말년은 빛나는 승리 다음에 찾아오는 그늘에 싸여 있다. 처칠은 우울증과 무료함과 싸우며 서서히 소멸해 간다. 누군가는 처칠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게 너무 지루해.” 1965년 1월 24일에 처칠은 아흔 살의 나이로 죽었다. 90년의 투쟁이 그렇게 막을 내린다.

    세월이 가면서 점차 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띄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자주 죽음을 소망했다. 이제 쓸모없게 되어 버린 삶이 자신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그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지금도 그의 안에는 포기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 자신이 알든 모르든 마지막까지 죽음에 맞서 항거했다. 죽음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했듯이 천천히 한 조각씩 그를 차지했다. _본문 289쪽

    [옮긴이의 글]

    처칠이 내면에 지녔던 고귀하고 인간적인 성품을 히틀러는 지니지 못했다. 처칠이 지닌 신사의 요소도 히틀러에게는 없었다. 그는 상대가 양보하거나 물러서면 상대를 더욱 가차 없이 짓밟으려 드는 저질 깡패 성품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의 과격성이 비슷하더라도 방향은 이렇듯 정반대다. 여기서 도덕성의 관점이 나타난다. 히틀러의 반도덕적 방향성이 결국 처칠의 도덕적 노선과 맞붙은 것이고, 처칠과 연합군이 승리했던 것이다. 처칠이 아니었다면 히틀러의 유럽 정복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통찰과 그런 세상의 전망을 읽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_안인희

    목차

    1. 아버지와 아들 7
    2. 젊은 시절의 처칠 43
    3. 과격분자 67
    4. 고공비행과 추락 99
    5. 반동주의자 127
    6. 모든 사람에 맞선 한 사람 155
    7. 데자뷔 183
    8. 운명의 사람 205
    9. 승리와 비극 237
    10. 최후의 싸움 267

    연표 293 | 증언 296 | 옮긴이의 글 303
    참고 문헌 313 | 찾아보기 331

    본문중에서

    유모인 에버리스트 부인(Mrs. Everest)을 어린 윈스턴 처칠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중에 그녀가 끈 달린 작은 모자를 쓰고 퍼블릭스쿨로 찾아왔을 때 그는 전 학급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포옹했다. 이는 극히 대담한 행동이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스무 살의 기병 소위는 그녀의 곁을 지켰고, 사람들은 장례식에서 그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총리는 자기 집무실 벽에 그녀의 초상화를 걸어 두었다.
    ('아버지와 아들' 중에서/ p.28)

    훨씬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계산하는 체임벌린이 잘못 보고 아니면 아예 못 보고, 처칠이 제대로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답은 오직 한마디, 하나의 이름에 들어 있었으니, 바로 히틀러였다. 체임벌린의 계산에는 말하자면 히틀러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히틀러 대신에 체임벌린에게는 하나의 추상적 개념만 있었다. 체임벌린 자신이 영국을 위해 계산하듯이, 자기 나라의 가능성과 이익을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하는 독일의 정치가라는 개념이었다. 그런 파트너였다면 체임벌린의 정책은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라는 파트너를 두고는 가망이 없었다.
    히틀러는 상대가 받아 주면 자동으로 그것을 허약함과 비겁함으로 여기고 상대를 밟아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전쟁을 위한 전쟁,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원래 목적이며 오로지 전쟁으로만 실현 가능한 생물학적 혁명을 위해 전쟁을 원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 맞선 단 한 사람' 중에서/ pp.178~179)

    온갖 능변에도 불구하고 처칠에게는 평생 로이드 조지의 최대 강점이었던 재능이 결핍되었다. 즉 유혹하는 설득, ‘꾀어내는’ 능력 말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느끼는 것, 남의 처지가 되어 보는 능력과 재미를 전제로 한다. 로이드 조지가 바람둥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런 역지사지의 능력을 엄청나게 많이 지녔다. 전사이자 자기중심적인 처칠은 그런 것을 갖지 못했고, 그의 태도는 본능적으로 그런 능력을 갖지 않기를 지향했다.
    ('승리와 비극' 중에서/ p.253)

    1953년 5월 11일에 처칠이 내놓은 목소리들은 그 이후로 세계 정책에서 다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당시 구상한 평화가 오늘날까지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처칠이 당시 말한 것은 오늘날 다시 읽으면 그렇게 낯설게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당시 냉전의 정점에서 그는 이것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러시아는 경청했다. 독일은 경악했고, 미국은 낯설어하며 걱정했다. 영국은 갑자기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 새로운 자부심이기도 했다. 영국의 위대한 늙은 정치가가 단번에 영국을 다시금 세계사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은 것이다. 처칠의 평화 계획은 영국에서 나온 마지막 위대한 세계 발의(發意)였다.
    ('최후의 싸움' 중에서/ p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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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07~
    출생지 베를린
    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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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12월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라이문트 프레첼(Raimund Pretzel)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과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극으로 치닫던 1938년에 유대인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다. 언어장벽과 가난, 나중에 부인이 되는 약혼자의 임신으로 이민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피해를 우려해 필명 '제바스티안 하프너'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 필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제바스티안'과 모차르트 교향곡 35번의 곡명 [하프너]를 조합한 것이다. 훗날 하프너는 이 교향곡의 쾨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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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예술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로 주목받아 온 인문학자이자, 영어와 독일어권 대표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밤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2003년 올해의 논픽션상),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히틀러 평전』, 『광기와 우연의 역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국번역가협회 번역대상),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한독문학번역상), 『철학의 에스프레소』, 『돈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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