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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잔류자들 :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

원제 : サハリン残留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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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열어나간 사할린 잔류자들

    ‘사할린 잔류자들’, 그들은 일본 통치 시기에 본국의 자원 근거지 역할을 맡은 사할린에 투입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각국의 안일한 태도와 얽힌 이해 관계 등의 문제로 인해 고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국가에 의해 지워지고 잊힌 존재가 되어, 머나먼 타지에 일방적으로 남겨진 ‘잔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역사적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의연하게 삶을 이어나갔다. 당시 사할린에 잔류해야 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가족은 오랜 시간 세대를 이어나가며, 국가라는 개념에 귀속되지 않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나갔다. 사할린, 일본, 한국 그 어디에서도 외지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삶은 분명 힘들고, 국가 체제의 밖에 놓인 존재가 겪어야 할 비극이었으나, 한 편으로는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열어나간 주체적 삶의 궤적인 것이다.

    《사할린 잔류자들》은 그들이 개척해 나간 이러한 ‘삶’에 주목한다. 이 책은 그들을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비운의 존재로서 역사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개척한 트랜스내셔널한 생활 실천의 가능성과 창조성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전후부터 현재까지 다민족·다문화적 존재로서 다층의 정체성이 혼재된 생활 세계를 구축해온 그들 삶의 면모를 살펴보며, ‘단일 국가’라는 관념이 희미해지는 시대에 국경을 초월한 트랜스내셔널한 생활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한국과 일본이 대립하고 있는 역사 문제와는 다른 전후(戰後)의 생활 세계를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사할린 잔류자들, 그들이 개척해나간 주체적 삶에 대한 기록

    ‘가라후토’라고 불리던 사할린 남쪽 지역은 한때 일본의 통치 하에 있었고, 1945년 일본의 패전 후엔 소련의 영토로 편입된 곳으로써 제국주의가 각축을 벌이던 곳이었다. 일본 통치 시기에 본국의 자원 근거지 역할을 맡은 이 지역에 많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투입되어 생활하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그들 대다수는 각국의 안일한 태도와 얽힌 이해관계 등의 문제로 인해 고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사할린에 ‘잔류’해야만 했다. 국가에 의해 지워지고 잊힌 존재가 되어, 머나먼 타지에 남겨진 ‘잔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역사적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의연하게 삶을 이어나갔다. 당시 사할린에 잔류해야 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가족은 오랜 시간 세대를 이어나가며, 국가라는 개념에 귀속되지 않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나갔다. 사할린, 일본, 한국 그 어디에서도 외지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삶은 분명 힘들고, 국가 체제의 밖에 놓인 존재가 겪어야 할 비극이었으나, 한 편으로는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열어나간 주체적 삶의 궤적인 것이다.
    《사할린 잔류자들》은 그들이 개척해 나간 ‘삶’에 주목한다. 그들을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비운의 존재로서 역사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개척한 트랜스내셔널한 생활 실천의 가능성과 창조성을 들여다본다. 전후부터 현재까지 사할린 잔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민족·다문화적 존재로서 다층의 정체성이 혼재된 생활 세계를 구축해온 그들의 삶의 면모를 살펴본다.

    다층의 정체성이 혼재된 존재로서 살아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유리코는 1946년까지 일본학교를 다녔고 집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했다. 그 뒤에는 조선학교에 다니게 되어 조선인 커뮤니티 속에 휩쓸렸고 결혼 상대 역시 조선인이었다. 이후로는 거의 한국어만을 사용해왔다. 그녀의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자 조선학교는 폐교되어 러시아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여전히 아이들과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학교 교사에게서 가능한 한 집에서도 러시아어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신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역시 언어 환경을 바꾸게 되었다.”
    ('3장 ‘영주 귀국’의 삶을 개척한 인생' 중에서/ p.100)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아키코짱, 여기 앉아봐.” 어머니는 ‘소자’라 부르지 않았고 새삼스럽게 일본어로 말했다. 어머니는 아키코가 일본어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리라. 아키코는 “갑자기 일본어로 말하니까 알아들을 수 없잖아요”라며 늘 하던 대로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국어로 “일본에 가려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고, 아버지는 일본에 같이 못 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키코 두 사람만 일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일본에 가면 재산도 있으니 행복해질 수 있어. 다른 아이들은 두고 가니까 함께 돌아가자”라며 아키코의 답변을 들으려 했다. 어린 아키코에게는 가혹한 선택이었다.”
    ('5장 어머니의 망향의 염원을 안고 살아가는 딸' 중에서/ p.136)

    “도마리에는 조선학교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러시아학교에 다니게 했다. 1958년이 되자 소련 당국은 조선인에게 소련 국적 취득을 촉구했다. 나홋카의 북조선 영사관이 사할린 잔류 조선인을 자국의 공민으로 만들기 위해 한 선전활동에 대한 대응 조치였던 것으로도 보인다. 그때까지는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국으로 귀환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여 소련 국적 취득에는 신중했지만, 요시 부부는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에 요시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함께 이 땅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살자고 서로 맹세했다. 1957~1959년까지의 후기집단귀환에서 대부분의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에 귀환될 때도 요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8장 도마리의 흙이 되다' 중에서/ pp.203~204)

    사할린 잔류자들, 그들은 끊임없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다. 패전 당시 일본군이 철수하고 소련군이 전진하는 상황 속에서, 그 어디도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건 밀항과 끝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잔류’ 가운데 고민해야 했다. 전후에는 일본, 소련(러시아), 조선(한국) 각국의 정책에 따라, 또한 어떤 사회에 편입되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이름’을 달리해야 했고, ‘국적’을 선택해야 했으며, ‘영주 귀국’을 할지 사할린에 남을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국적이 다른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기도 했다. 고정되지 않은 삶 속에서 그들은 다층의 정체성이 혼재된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은 잔류자 2세대, 3세대에게도 이어진다.

    “열 살에 일본으로 귀국한 미카의 동생 유미는 일본 학교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도쿄에서 일하고 있다. 사귀는 사람도 일본인이고 생활 방식도 일본식이다. 엄마나 언니처럼 그녀 역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사할린에서 방문하는 아버지나 할머니는 유미에게 한국 민족이라는 의식을 이어주려 한다. 그러나 유미에게는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하다.
    미카의 정체성은 유미와는 다르다. 일본 국적인 미카와 우즈베키스탄 국적인 지마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이 가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어다. 장녀인 미레이는 일본 유치원에 보내지만, 러시아어를 가르치면서 토요 교실의 러시아학교에도 데리고 간다.”
    ('4장 세 가지 문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귀국 3세' 중에서/ p.118)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지마와 이라의 멘탈리티에는 경계가 없다. 그들은 언젠가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마에게는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이라의 부모님은 일본에 있다. 다만 둘이서 양쪽 부모님을 모두 방문하면서부터는 한국의 생활 방식이 러시아와 가깝다고 차츰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는 의식이 각인되어 있다.
    사할린 잔류자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귀국 정책의 차이 때문에 사할린의 일본인과 한국인 가족이 러시아, 일본, 한국에 흩어져 살게 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속에는 이들이 각국의 귀국 제도를 활용하면서 구축해놓은 세 나라에 걸쳐 있는 ‘트랜스내셔널’한 생활공간이 있다.”
    ('6장 사할린, 홋카이도, 인천을 오가다' 중에서/ p.170)

    이처럼 사할린 잔류자와 그 가족들은 한국(조선)·일본·러시아의 정체성이 혼재된 중층적인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쉼 없이 고민했고, 씩씩하고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해나갔다.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의 태도를 지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에, 때로는 슬픔에 공감하고 용기에 감동했다. 또한 사람/상품/지식정보의 이동이 전 세계적으로 순식간으로 이루어지며, ‘단일민족’, ‘단일국가’ 관념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국가라는 개념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단일한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는 삶인지 돌아보게 된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중국, 일본, 러시아와 면해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더 특정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월경(越境)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다면체랍니다. 각도에 따라서, 빛에 따라서 보이는 면이 달라요”라는 귀국자 3세의 말은, 다층의 정체성 속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고 있는 그들을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상을 비춰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인 현무암과 파이차제 스베틀라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총 열 가족의 구성원들과 오랜 기간 만나고 유대하며 그들의 구체적 삶과 진솔한 생각을 담아냈다. 사할린 잔류자들은 그 생활 문화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서, 일본어/한국어/러시아어를 통해 소통했고, 훗카이도, 삿포로, 안산, 인천, 사할린의 유즈노사할린스크와 코르사코프 등 여기저기에 멀리 퍼져 생활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희로애락을 나누며, 그들이 겪어온, 그리고 겪고 있는 삶을 이해하고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사진작가 고토 하루키의 사진을 더해, 사할린 잔류자들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다. 총 열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고, 여러 지역에 걸쳐 펼쳐지는 그들의 생활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 각 주제 별로 세 가지 성격으로 나눴다. 1부에서는 1990년대 이후 영주 귀국을 통해 자식 및 손주 세대를 동반하거나 초청하여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을 그렸고, 2부에서는 부부만 일본 또는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후 사할린에 남거나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가족과 왕래함으로써 일본, 한국, 사할린에 걸친 생활공간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3부는 일본이나 한국으로 영주 귀국하지 않고 사할린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이들 가족의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후반부에 해설을 덧붙여 사할린 잔류자들이 처했던 역사적 배경과 사할린의 역사적 위치를 설명했다. 사할린에서 벌어졌던 일본 통치 시대의 시정(施政)이나 조선인의 이입, 패전 직전의 혼란과 귀환, 전후 조선인 사회로의 편입과 영주 귀국 등의 역사와 현재를 되돌아보았다.

    사할린 잔류자들의 삶을 통해 동아시아 위기의 실마리를 찾다
    사할린 잔류자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한·일 양국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사할린 잔류자들 각각이 살아가는 모습은 서로 차이가 있고 다양하지만, 영토, 역사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는 양국의 위기를 뛰어넘는 데 있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충분히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전전과 전후 사할린에서 이루어진 한국인과 일본인 가족의 다층적·다문화적 삶을 이해함으로써, “두 민족의 한계를 돌파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매개자 사상”(모리사키 가즈에)을 그들에게서 읽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되고 있다.
    ‘잔류’라는 운명을 공유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살던 사할린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의해 왜곡되고 일그러진 공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사할린 잔류자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이 대립하고 있는 역사 문제와는 다른 전후의 생활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목차

    남사할린(가라후토) 지도
    머리말

    1부 가족과 살다
    1장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로 확대된 생활 공간
    2장 전후 사할린에서 살게 된 어머니와 귀국 3세 손녀의 정체성
    3장 ‘영주 귀국’의 길을 개척한 인생
    4장 세 가지 문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귀국 3세

    2부 국경을 넘다
    5장 어머니의 망향의 염원을 안고 살아가는 딸
    6장 사할린, 훗카이도, 인천을 오가다
    7장 한국에 ‘영주 귀국’한 일본인 여성

    3부 사할린에서 살다
    8장 도마리의 흙이 되다
    9장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를 끌어안고 싶다
    10장 나의 ‘고향’은 사할린

    해설: 사할린에서 교차하는 한·일의 ‘잔류자’들

    후기를 대신하여: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탄생한 책
    역자 후기

    본문중에서

    2014년 6월에 삿포로에서 열린 북동아시아 축제. 이 축제는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남한), 북한, 몽골이 문화적 배경인 사람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다.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등학교와 토요 교실 러시아학교의 학생들도 각자 민족의상을 걸치고 노래와 춤을 뽐낸다.
    “조선의 전통 의상이 잘 어울리네요”라는 말을 듣자 올리아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죠? 제가 봐도 그래요. 저도 카레얀카(조선인)니까요!” 옆에 있던 육촌 동생 료샤도 “나도 카레이츠(조선인)야!”라며 박자를 맞춘다. “나도!”, “나도!”라며 아이들은 일본어와 러시아어로 소리를 지른다.
    ('1장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로 확대된 생활 공간' 중에서/ pp.16~17)

    와키 일가는 1951년 집안의 기둥이었던 텐 복만이 죽고 난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1954년에 소련 국적을 취득했다. 그런데 요네코가 1961년에 결혼했던 첫 남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국적자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나홋카(Nakhodka, 러시아의 연해주, 동해 연안 남부, 표트르 대제 만(灣)에 면한 항구도시)의 북조선 영사관 직원이 사할린으로 찾아와 사할린 조선인들에게 북조선 국적의 취득을 권유했다. 전 남편은 이를 수락하여 국적을 북조선으로 변경했다. 한국과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던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무국적 상태를 탈피하기 위한 선택지의 하나였다. 소련 국적의 요네코와 달리 북조선 국적의 남편은 반년마다 여권(신분증명서)을 갱신해야 했다. 요네코는 글을 못 배운 남편을 대신해서 신청서를 썼다. 그때마다 북조선 영사관에서는 “김일성 수령의 명예를 위해 조국(북조선)으로 가야만 합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왔다.
    ('2장 전후 사할린에서 살게 된 어머니와 귀국 3세 손녀의 정체성' 중에서/ pp.55~56)

    유리코는 1946년까지 일본학교를 다녔고 집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했다. 그 뒤에는 조선학교에 다니게 되어 조선인 커뮤니티 속에 휩쓸렸고 결혼 상대 역시 조선인이었다. 이후로는 거의 한국어만을 사용해왔다. 그녀의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자 조선학교는 폐교되어 러시아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여전히 아이들과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학교 교사에게서 가능한 한 집에서도 러시아어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신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역시 언어 환경을 바꾸게 되었다.
    ('3장 ‘영주 귀국’의 삶을 개척한 인생' 중에서/ p.100)

    열 살에 일본으로 귀국한 미카의 동생 유미는 일본 학교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도쿄에서 일하고 있다. 사귀는 사람도 일본인이고 생활 방식도 일본식이다. 엄마나 언니처럼 그녀 역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사할린에서 방문하는 아버지나 할머니는 유미에게 한국 민족이라는 의식을 이어주려 한다. 그러나 유미에게는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하다.
    미카의 정체성은 유미와는 다르다. 일본 국적인 미카와 우즈베키스탄 국적인 지마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이 가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어다. 장녀인 미레이는 일본 유치원에 보내지만, 러시아어를 가르치면서 토요 교실의 러시아학교에도 데리고 간다.
    ('4장 세 가지 문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귀국 3세' 중에서/ p.118)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아키코짱, 여기 앉아봐.” 어머니는 ‘소자’라 부르지 않았고 새삼스럽게 일본어로 말했다. 어머니는 아키코가 일본어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리라. 아키코는 “갑자기 일본어로 말하니까 알아들을 수 없잖아요”라며 늘 하던 대로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국어로 “일본에 가려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고, 아버지는 일본에 같이 못 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키코 두 사람만 일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일본에 가면 재산도 있으니 행복해질 수 있어. 다른 아이들은 두고 가니까 함께 돌아가자”라며 아키코의 답변을 들으려 했다. 어린 아키코에게는 가혹한 선택이었다.
    ('5장 어머니의 망향의 염원을 안고 살아가는 딸' 중에서/ p.136)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지마와 이라의 멘탈리티에는 경계가 없다. 그들은 언젠가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마에게는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이라의 부모님은 일본에 있다. 다만 둘이서 양쪽 부모님을 모두 방문하면서부터는 한국의 생활 방식이 러시아와 가깝다고 차츰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는 의식이 각인되어 있다.
    사할린 잔류자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귀국 정책의 차이 때문에 사할린의 일본인과 한국인 가족이 러시아, 일본, 한국에 흩어져 살게 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속에는 이들이 각국의 귀국 제도를 활용하면서 구축해놓은 세 나라에 걸쳐 있는 ‘트랜스내셔널’한 생활공간이 있다.
    ('6장 사할린, 홋카이도, 인천을 오가다' 중에서/ p.170)

    보배는 의붓아버지가 전라남도 완도에 처자를 남겨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완도를 박차고 일본으로 온 것은 좀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이후 사할린으로 건너온 뒤 전쟁이 끝나고서도 잔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차츰 고향을 그리워했다.
    1985년 어느 날 한국의 KBS 라디오의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완도의 의붓아버지 가족이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때 보배는 의붓아버지에게 한국에 연락을 해보라고 재촉했다. 의붓아버지는 “고향에 있는 자식들에게 연필 한 자루 사주지 못했다”며 어느 것 하나 아버지 역할을 한 게 없다는 사실에 책임을 느끼고 완도의 가족과 연락하려 들지 않았다.
    ('7장 한국에 ‘영주 귀국’한 일본인 여성' 중에서/ p.184)

    도마리에는 조선학교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러시아학교에 다니게 했다. 1958년이 되자 소련 당국은 조선인에게 소련 국적 취득을 촉구했다. 나홋카의 북조선 영사관이 사할린 잔류 조선인을 자국의 공민으로 만들기 위해 한 선전활동에 대한 대응 조치였던 것으로도 보인다. 그때까지는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국으로 귀환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여 소련 국적 취득에는 신중했지만, 요시 부부는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에 요시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함께 이 땅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살자고 서로 맹세했다. 1957~1959년까지의 후기집단귀환에서 대부분의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에 귀환될 때도 요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8장 도마리의 흙이 되다.' 중에서/ pp.203~204)

    기젠의 아버지는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있는 동급생에게 아들의 소식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젠이 태어난 마카로프까지 가서 기젠의 양외할머니도 만났다. 그러나 기젠의 친부모가 아이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외할머니는 살고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그의 요청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시청을 찾아가 기젠이 코르사코프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 후 에야 가까스로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으셨어요?” 기젠은 분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친구는 기젠이 연락을 하면 아버지가 만나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엔도 부부는 곧바로 아직 어린 두 아이가 함께 있는 가족사진을 찍어 그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오지 않았다. 기젠은 매일같이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9장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를 끌어안고 싶다' 중에서/ pp.224~225)

    요시코가 북조선에 있는 동안 사할린에도 시각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생겼다. 다양한 상품의 포장 상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려면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에서 러시아어나 러시아어 점자, 요리법과 재봉 등을 배워서 자격을 얻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요시코는 1967년에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의 비이스크에서 공부했다. 그때부터 레나라는 이름을 썼다. 4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무사히 자격증을 취득한 뒤 사할린으로 돌아왔다.
    사할린의 공장에서 요시코는 39년간 일했다. “나는 늘 정확하게 일했어요. 지금은 연금을 받아 생활을 하고 있어요.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의 빵을 먹지는 않아요.” 지금은 연금생활을 하고 있지만, 장애를 안고서도 자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요시코의 자랑이다. 자립할 수 있게 해준 러시아에도 감사하고 있다.
    ('10장 나의 ‘고향’은 사할린' 중에서/ p.245)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9
    출생지 제주도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9년 제주도 출생.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정보학환 조수를 거쳐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연구원 준교수. 전공은 미디어 문화론, 한일관계론. 저서로 [한국의 디지털 데모크라시], [통일 코리아 - 동아시아의 신질서를 전망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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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러시아 출신. 홋카이도대학 국제홍보미디어 연구과 박사. 현재 동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급변하는 러-일 변경의 목소리(Voices from the shifting Russo-Japanese border)》(공저) 등이 있다.

    생년월일 1971~
    출생지 울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 방송문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 외국어대학 연구원,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민지 시기의 문학, 연극, 방송, 영화 등의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사람의 세계 여행](편저), [허준전집](편저), [한국 현대소설이 걸어온 길, 1945-2010](편저), [한국 방송의 사회문화사](공저)가 있으며, [라디오 체조의 탄생]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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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토 하루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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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오사카 출생.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 졸업. 〈내리는 눈 한 송이가 사람을 충만하게 할 때까지, 그로부터 3년: MONEHT〉, 〈봄이 오기 전에〉 등 몇 차례의 사진전을 가졌다. 지은 책으로 《사할린을 잊을 수 없어(サハリンを忘れな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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