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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당한 몸 (큰글자책) :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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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시력 약자를 위해 판형과 글자를 키운 큰글자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장애관(觀)에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의 두번째 권으로,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질병과 장애 문제에 접근한다. 오랜 시간 여성주의 이론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저자는 만성질병인 근육통성 뇌척수염(ME)으로 인해 심각한 몸의 한계를 맞닥뜨린 이후, 삶의 모든 면면이 재구성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질병과 장애에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몸소 알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잘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기에 질병과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질병과 장애를 ‘정상적인 삶’의 범주 안에 통합시키고 이러한 삶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는 장애인들의 경험과 통찰 속에서 그런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여성주의의 이론과 접근을 빌려 와 장애 개념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여성주의의 이론적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보완하기도 한다.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들을 던지면서(예컨대, “여성의 [장애선별]낙태권과 장애를 가진 태아의 살 권리 중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재고찰하는 이 책은, 앞으로의 여성주의 이론과 윤리학에 장애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출판사 서평

    ‘재앙’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인 질병과 장애를 말한다!
    장애여성들의 경험과 통찰로부터 배우는 ‘몸으로 사는 삶’!!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건강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건강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임을 보여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작정 건강하기만을 기원할 것이 아니라 건강을 잃더라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TV 채널을 돌리다 무심코 환자들의 투병기를 그린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을 때, 미간을 찌푸리며 채널을 다시 돌렸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대중매체들은 ‘건강’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라도 하듯,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절망적인 모습을 클로즈업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런 묘사 속에서, 질병은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장애’ 역시 두렵게 그려지기는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은 ‘건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낳는다. 즉, 질병과 장애는 삶의 재앙이며,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편협한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 책 『거부당한 몸』(수전 웬델 지음,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은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장애관(觀)에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의 두번째 권으로,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질병과 장애 문제에 접근한다. 오랜 시간 여성주의 이론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저자는 만성질병인 근육통성 뇌척수염(ME)으로 인해 심각한 몸의 한계를 맞닥뜨린 이후, 삶의 모든 면면이 재구성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질병과 장애에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몸소 알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잘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기에 질병과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질병과 장애를 ‘정상적인 삶’의 범주 안에 통합시키고 이러한 삶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는 장애인들의 경험과 통찰 속에서 그런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여성주의의 이론과 접근을 빌려 와 장애 개념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여성주의의 이론적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보완하기도 한다.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들을 던지면서(예컨대, “여성의 [장애선별]낙태권과 장애를 가진 태아의 살 권리 중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재고찰하는 이 책은, 앞으로의 여성주의 이론과 윤리학에 장애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몸의 ‘차이’는 어떻게 거부당하는가?

    공적 세계 대부분은 모두가 육체적으로 강하고, 모든 몸이 똑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모두가 걷고, 듣고, 잘 볼 수 있으며, 어떤 질병이나 고통과도 공존할 수 없는 정도의 속도에 맞춰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고, 어지럼증이나 배변조절 장애 없이 혹은 조금이라도 앉거나 누울 필요가 없이 사는 것처럼 구조화되었다.
    (/ p.85)

    웬델은 질병 경험에서 얻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장애와 질병, 건강이라는 ‘규범’에 의해 이 사회에서 ‘거부당한 몸’을 깊이 있게 다룬다.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이상적인(정상적인) 몸’이라는 제한된 범주를 설정하고(대개 젊고 건강한 백인 남성의 몸이다), 이를 기준으로 모든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방도가 변변치 않았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웠다는 점은 이를 반증한다. 사회가 기대하는 수행능력 역시 ‘이상적인 몸’을 기준으로 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적절한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곧바로 회복되는 건강한 몸을 갖고 있고, 똑같이 빠른 속도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이러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몸은 사회로부터 ‘거부’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대중적으로 생산되는 건강 담론과 현대 서양의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마치 우리의 몸이 ‘관리만 잘하면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그리하여 질병과 장애로 인한 고통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된다. 현대 서양의학이 고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몸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고통의 존재, 몸의 불완전함과 허약함, 그들도 고통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p.187)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 질병과 장애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의학은 질병이나 장애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만 관심을 쏟을 뿐, 이미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방치하는 듯하다. 사람들 역시 의학이 날로 더 막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고도의 첨단의학이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진 듯하다.
    저자는 질병과 장애가 ‘재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질병과 장애를 ‘정상적인 삶’ 안에 통합시킬 수 있고, 장애인 다수에게 돌아가는 사회적 지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으며, 장애인들의 경험과 통찰을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식의 범주에 통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본 윤리적 문제들

    이 책은 또한 기존의 여성주의 윤리학과 의료 윤리학이 담지하지 못한 장애와 관련한 문제들을 하나씩 되짚어 본다. 예컨대 장애인의 돌봄, 낙태, 안락사, 의료배당제 등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었던 민감한 문제들을 장애인,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 확장에 초점을 맞춰 온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의 낙태권을 지지하는데, ‘장애선별낙태’는 장애를 가진 태아의 살 권리와 여성의 낙태권 중 어느 것이 우선시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자칫 여성들의 권리와 장애인들의 권리가 상충되게 보이게끔 한다. 저자는 ‘장애선별낙태’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의 수를 줄일 뿐,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장애인이 사회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여성들에게 주어진 이후라면, 문제는 또 달라질 것이다. 장애인들의 ‘안락사’와‘자살보조’를 허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모든 문제를 장애인 당사자와 개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분위기 속에서, 장애인은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 역시 장애인들이 충분히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이후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사적영역에서 강제적으로 돌봄노동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들의 현실을 시정하기 위한 움직임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장애운동의 방향과 상충되어 보인다. 하지만 장애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저자는, ‘돌봄노동’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하며, 돌봄을 둘러싼 현실적인 처우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물리적 여건으로 인해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고립되는 일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돌봄의 재평가를 비롯하여 위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주의에서 논의되어 왔던 주제이다. 하지만 저자는 장애인, 장애여성의 시각이 기존의 여성주의 윤리학의 지평을 보다 넓혀 줄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여성주의 윤리학이 여성의 삶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도덕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장애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 윤리학의 모든 측면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p.304)고 말한다.

    장애여성들의 경험과 통찰로부터 배우는 삶의 전략

    수전 웬델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몸의 문제를 다룰 뿐, 몸의 통증과 한계를 포함한 구체적인 몸의 경험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여성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질병․장애 경험과 구체적인 삶의 전략들을 책의 후반부에 소개하고 있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질병과 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줄이고, 일상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 장애여성들이 묘사하는 전략들은 공통적으로 질병과 장애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 모든 일을 유보하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몸 상태에 맞추어 생활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나는 나의 증상을 받아들이고 이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의학적·심리적·영적인 치유법을 찾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시적인 괴로움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줄이고 증상들을 관찰하는 능력을 발달시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삶을 다시 구성해 나갈 수 있었다.
    (/ p.324)

    회복하는 것을 기대하거나 좋아질 때까지 내 삶을 미루어 놓는 것을 그만두었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전략들을 개발해 나가고 도움을 청하였다. 내 신체적 한계에 맞추어 일과 계획을 수정하였고 다른 장애인과 동일시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 p.327)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주의와 장애 이론을 재구성하는 웬델의 작업은, 질병과 장애가 두렵거나 제거되어야 할 악조건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일상적인 조건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앞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장애인들의 경험과 통찰로부터 더 배워 나가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앞에서 밝혔듯, 유한한 몸을 가진 우리 모두는 ‘건강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을 잃어도 모든 것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몸으로 사는 삶’의 현실을 잘 알아야 하고, 장애여성들의 목소리에 지금보다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목차

    옮긴이 서문 |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 | 감사의 글

    서론

    1장 누가 장애인인가? 장애를 정의하기
    UN의 정의 | 질병은 장애인가? | 장애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 누가, 어떤 목적에 따라 장애를 정의하는가? | 누가 자기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체화하는가? | 장애 정체성에 대한 정치학

    2장 장애의 사회적 구성
    장애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소들 | 장애의 문화적 구성 | 장애의 사회적 해체 | 장애를 해체하려고 할 때의 걸림돌

    3장 차이로서의 장애
    ‘타자’로서의 장애인 | 질병과 장애의 상징적 의미 | ‘타자’화의 결과 | 차이로서의 장애 | 장애인의 입장론적 인식론은 가능한가? | 비슷함과 차이의 정치학 | 언어의 정치학 | 차이의 미래

    4장 거부당한 몸으로부터 떠나는 비행
    정상성의 훈육 | 몸에 대한 여성주의적인 이상화 |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 과학적 서양의학과 통제의 환상 | 대체치료 그리고 몸에 대한 통제의 환상 | 마음이 몸을 극복한다는 생각과 통제의 환상 | 환상의 여러 종류들 | 환상 때문에 생긴 결과 | 안 좋은 일은 일어나기 마련 | 잃어버린 지식 | 몇 가지 결론

    5장 의학의 인지적・사회적 권위
    소외 | 인식의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 | 사회적으로 버려지는 것 | 소통의 실패와 지식의 격차 | 철학자들의 역할

    6장 장애와 여성주의 윤리학
    돌봄의 윤리학과 정치학 | 의존성, 독립성, 상호성 | 낙태, 안락사, 의료개혁

    7장 여성주의, 장애, 그리고 몸의 초월
    여성주의 이론과 몸 | 고통받고 제한된 몸 | 통증 | 몇 가지 이탈 전략들 | 초월

    참고문헌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질병 때문에 남들과 다른 몸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고로 인해 몸의 큰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 일상적으로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가진 몸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기를 희망한다. 웬델의 경험을 마주하며 공감하고 자기의 마음을 짓누르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병원에서 나의 목소리가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 아프다고 했을 때 의심받았던 경험, 내 몸이 하나의 물체같이 다루어졌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에게도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운 소식이 되기를 희망한다.
    (/ pp.9~10)

    나는 장애가 없는 사회를 상상할 때 모든 신체적・정신적 ‘결함’이나 ‘비정상성’이 치료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젠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장애의 사회적 해체를 막는 심각한 걸림돌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 대신 완전하게 접근 가능한 사회를 상상한다. 가장 넓은 범위의 인간 능력을 고려해 모든 건축물이 지어지고 모든 활동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을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라면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장애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 p.115)

    거부당한 몸을 꺼리는 것은 비정상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통증, 질병, 한계, 괴로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거부당한 몸을 문화적으로 추방하는 것은 통증, 질병, 한계, 괴로움, 죽음의 경험들을 잘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설령 모두가 부정적인 몸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갖게 될 수도 있다고 해도, ‘정상적인’ 몸에 대한 문화적인 개념이 젊고, 건강하고, 힘이 넘치고, 통증이 없고, 몸의 모든 부분을 갖추고 있고, 최대의 범위로 우아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몸에 대한 경험을 마주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험은 장애와 병을 가진 주변화된 사람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 p.177)

    서양 과학과 의학의 힘이 크고 과학과 의학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대다수가 믿고 있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존재를 통해 그 전망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과학과 의학이 사람들을 병, 장애, 죽음으로부터 지켜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과학이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타자이다.
    (/ p.129)

    장애를 차이로 인정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모든 장애가 비극적인 손실이고 모든 장애인이 ‘치유’되기를 원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이 가진 지식과 관점을 찾아내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생각의 형태나 존재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또한 인간 신체의 완벽함을 추구하고 통제하려는 환상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p.165)

    몸에 대한 여성의 통제력을 늘리고 불필요한 고통을 예방하고자 하는 여성주의의 지속적인 노력은 몸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현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여성주의 이론이 몸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몸의 차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이론 안에 우리와 몸의 관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상(像)이 만들어졌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회적 정의를 이루어 내고 몸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면 몸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대부분 즐겁고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신념이 내재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몸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몸의 경험을 아예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 p.313)

    나는 나의 증상을 받아들이고 이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의학적·심리적·영적인 치유법을 찾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시적인 괴로움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줄이고 증상들을 관찰하는 능력을 발달시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삶을 다시 구성해 나갈 수 있었다. 내 몸 상태가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성을 제한하긴 하지만, 새로운 종류의 이해력, 새로운 관심, 새로운 열의와 계획들을 제시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질병의 경험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는 내가 오직 근원 그 자체로서 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병에 대해 심리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의 증상이 가진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에너지를 썼다면 나는 아직도 아픈 것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전보다 덜 동일시하게 되었는데도 이렇게 내 몸은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했고 나 자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도록 하였다.
    (/ p.324)

    저자소개

    수전 웬델(Susan Wendel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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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웬델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여성학 명예교수이다. 1985년부터 근육통성 뇌척수염 / 만성피로 면역장애증후군을 갖고 살고 있다. 은퇴한 후 고통의 가치와 그것이 윤리학에 던져 주는 함의에 대한 책을 쓰는 중이다. 현재 밴쿠버에서 유기농정원을 가꾸고 채소 기르는 것을 즐기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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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척추수술을 한 이후 몸의 한계와 통증에 대해 생각해 왔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장애여성운동에 대한 관심을 키워 왔다. 학교라는 공간과 특수교육 현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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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리노이 주립대 시카고(UIC)에서 장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위스콘신 주립대 매디슨에서 여성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여성학, 인권, 장애학 이론, 영화, 인도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의 회원이고 장애여성의 경험과 정상성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공역서로 [섹슈얼리티의 매춘화](200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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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장애를 가진 부모님에 대한 궁금증,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가 장애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찾고 싶어 특수교육과 졸업 후 장애여성공감 활동에 합류했다. 여성학과에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주제로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받았고, 세미나 모임인 ‘리카 패밀리’에서 장애와 퀴어 이론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 현재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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