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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15호 :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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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번 보스토크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당신의 뒤를 조용히 따라갑니다. 그리고 당신의 일터, 일자리에서의 당신을 가만히 지켜보려 합니다. 어쩌면 어제와 똑같은, 또 내일도 똑같을 일터와 노동의 풍경 속에서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지, 또 그곳에서 당신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일터는 우리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한편으로 좀처럼 사진으로 남지 않는 공간입니다. 보스토크는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사이에서 당신이 느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과연 어떤 모습과 빛깔인지를 질문하는 사진과 글을 모았습니다. 이 질문은 평범한 일상을 견디는 당신을 향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한 안부이기도 합니다.

    출판사 서평

    "회사원은 되지 말자." 장래희망은 없었지만, 당신에게도 희망사항은 있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남들과 똑같은 정장을 입고 남들과 똑같은 사무실에 앉아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지겹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으니까. 그러나 남들과 똑같이 지원서를 쓸 때마다, 남들과 똑같이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남들과 똑같이 상사에게 부당한 질책을 당할 때마다, 남들과 똑같이 사직서를 썼다 지울 때마다 그 희망사항이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당신은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살려면, 한 달을 꾸리려면 남들과 똑같이 생계비가 필요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회사원이 되고 말았네." 유리 괴물처럼 거대한 오피스 빌딩으로 출근하며 당신은 별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거대한 건물이지만 당신의 자리는 책상 하나에 불과합니다. 책상 위에는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다는 스투키 화분이 있고, 의자 밑에는 다이소에서 산 짝퉁 삼선 슬리퍼도 있습니다. 어느새 부장님 앞에서만 구사하는 사무용 말투와 표정은 점점 체화되고 맙니다. 매일 회의와 메일 답신과 전화와 컨펌으로 하루의 절반을 쓰고도 일하는 시간이 부족해 야근을 하는 것도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불 켜진 사무실에 남아 끼니를 건너뛸 때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고 푸념하게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스투키의 끼니를 챙기며 화분에 물주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막차 시간에 맞춰 회사를 나온 당신은 거리에서 대리운전 콜을 대기하며 서성이는 사람과 컵라면 매대를 채우는 편의점 알바생에게 잠시 눈길을 줍니다. 막차에 물먹은 스펀지 같은 몸과 마음을 싣고,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누우면 부질 없는 계산을 해봅니다. ‘이제 몇 시간 잘 수 있나?’ 왠지 억울한 기분마저 듭니다. 그래도 내일 출근을 위해 알람을 맞추는 것을 당신은 빼먹지 않습니다. 오 분 간격으로 세 번.

    보스토크는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당신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따라 들어갑니다. 창문으로 둘러싼 사무실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원들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는 장피에르 아탈의 사진과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베네테다 리스토리의 사진을 보면서 당신을 찾아봅니다. 자정에서 새벽까지의 일본의 역사적 공간을 배회하며 촬영한 노기훈의 ‘달과 빛’은 당신이 늦은 밤 퇴근하면서 봤음직한 장면일 겁니다. 그 풍경들 사이사이로 장류진-이슬아-김민정-김동신의 에세이가 당신의 노래처럼 연이어 흘러갑니다. 회사원 겸 소설가 장류진은 구내식당 석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직장 생활의 애환을 재치있게 풀어냅니다.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며 매일 연재하는 이슬아는 글쓰기 노동을 감당하기 위한 자신의 태도와 방식을 차분하게 전합니다. 시인이자 편집자인 김민정은 책을 만들며 얻은 것들에 관해 사유하며, 디자이너 김동신은 직장인으로 소모품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의 싸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에세이 뒤에는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들의 초상을 담은 이혜진의 작업과 감정노동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담은 주황의 작업이 대비를 이루며 펼쳐집니다. 김신식의 비평문 ‘승인’은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일문화와 이에 파생된 경제금융위기를 다룬 영화와 사진 작업의 한계와 가능성을 점검해봅니다. 김현호는 사진책 [오피스 로맨스]와 [밤의 버스에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일상적인 노동의 시공간이 반짝이는 어떤 순간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윌 스테이시-브라이언 핑크-브루노 켕케-토마스 뉘블러의 화보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기록한 회사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직장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연재 코너에서는 풍성한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마련했습니다. 시작은 docking!2018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한 사진가 권해일의 화보로,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시각적으로 관통하는 그의 전 작업들을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은 미국의 실험영화 감독 홀리스 프램튼의 ⟪노스탤지어⟫를 통해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재고찰합니다. 윤원화의 칼럼은 차지량 작가의 전시를 들여다보며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시에 관한 대담인 ‘전시셔틀’에서는 두 명의 젊은 비평가 권정현, 이한범을 초대해 각각 그들이 주목한 전시에 관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차

    특집|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001 폴리 브라운(Polly Brown)- Plants
    012 루크 스티븐슨(Luke Stephenson)- Foyer Flora & Pizza
    036 장피에르 아탈(Jean-pierre Attal)- Cells
    050 베네데타 리스토리(Benedetta Ristori)- Lay Off
    064 노기훈- 달과 빛
    066 장류진-구내식당 석식을 게걸스럽게 먹게 된 이유에 대하여
    074 이슬아- 혼자가 되는 책상
    082 김동신- 7시간을 위하여
    090 김민정- 나는 ‘탐’이라는 글자의 자리에 ‘책’이라는 글자를 묻으면서 - 김민정
    098 이혜진- 화양연화
    108 주황- 의상을 입어라
    121 김신식- 승인
    130 김현호- 낮의 사무실에서 밤의 버스로
    145 김희정- 1년, 개살구, 작업실
    161 윌 스테이시(Will Steacy)- Deadline
    177 브라이언 핑크(Brian Finke)- Desktop Dining
    185 브루노 켕케(Bruno Quinquet)- Salaryman Project
    199 토마스 뉘블러(Thomas Kneubuhler)- Office 2000

    215 [도킹! 2018] 박지수- 아키텍처 아나토미, 권해일
    225 [스톱-모션] 유운성- 도래할 것을 향한 노스탤지어
    232 [사진 같은 것의 기술] 윤원화- 합성된 황혼의 시간, 차지량
    242 [전시 셔틀] 이기원, 권정현, 이한범- 보여주기 / 말하기: 전시가 작동하는 방식들

    본문중에서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왜 전에 없던 이런 방식으로 급하게 밥을 먹는지,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어 회사원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종일 가만히 앉아서 특별할 것도 없는 전문적일 것도 없는 '일반적'인 일을 하면서 손가락만을 놀릴 뿐이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어떤 현장에서, 어떤 전투에서, 어떤 정글에서, 내 몫을 해내고 이렇게 돌아왔다고. 그래서 몹시 허기가 지다고 말이다.
    ('장류진(회사원 겸 소설가), [구내식당 석식을 게걸스럽게 먹게 된 이유에 대하여]' 중에서/ p.71)

    불행인지 다행인지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글을 누군가랑 같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피아노 연탄곡을 치듯 키보드에 손 네 개를 올려서 함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쓰기는 참으로 혼자의 일이다. 남이 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 또한 좋은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프리랜서 작가 생활의 달콤한 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의 양이 변하지는 않으므로 어쨌든 스스로를 노동 모드로 엄격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비슷하다.
    ('이슬아(연재노동자), [혼자가 되는 책상]' 중에서/ p.75)

    책은 그렇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 또한 내게 몸으로 다시금 쓰게 한 듯하다. 만든 책이라는 어제에서 만들고 있는 책이라는 오늘을 지나 만들 책이라는 내일에 이르기까지 인생이라는 하루살이의 정의를 다시 내려준 책, 그 책이라는 만져짐은 나라는 사람의 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유일무이한 물성이라 언제고 나를 그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곤 하다.
    ('김민정(시인, 편집자), [나는 ‘탐’이라는 글자의 자리에 ‘책’이라는 글자를 묻으면서]' 중에서/ p.83)

    가끔 일을 한다는 것이 삼각형 모양의 트램펄린을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상상하게 될 때가 있다. 시간과 꿈과 돈이라는 세 가지 기둥에 그물을 걸고 그 한가운데에서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가는 운동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 기둥들이 튼튼하고 균형을 잘 이루느냐에 따라 얼마나 안전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높이 뛸 수 있느냐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에서 세 가지 모두 균일하게 훌륭한 경우는 드물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트램펄린으로 이동해간다.
    ('김동신(디자이너), [7시간을 위하여]' 중에서/ p.95)

    24시간 영업점에서 비추는 조명과 밤이 익숙한 몇몇이 밝힌 불빛만이 거리에 흔들리며 누군가의 존재를 희미하게 알려온다. 밤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탈 것에 의지해 빛을 발하며 이동한다.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듯한 일본의 조용한 밤 속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것은 어둠을 뚫고 달리는 알 수 없는 빛이다. 달빛과 섞인 인공의 빛은 인간이 없는 도시의 적막한 풍경에 궤적을 남긴다.
    ('노기훈(사진가), [달과 빛] 작가 노트' 중에서/ p.96)

    온카발로의 오페라[팔리아치]의 테마곡[의상을 입어라]는 유랑극단 배우 카니오가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직후에 슬픔과 격정에 휩싸여 부르는 아리아이다. "이제 공연이 시작된다. 의상을 입어라. 관객은 돈을 내고 왔으니 웃고 싶어한다. 웃어라. 웃어라 광대여! 슬픔과 고통을 감추고..."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관객들 앞에서 희극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처럼 다양한 노동형태의 ‘의상을 입고’ 자본가/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수행하는 노동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주황(사진가), [의상을 입어라] 작가 노트' 중에서/ p.108)

    과연 사진은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낳은 여파만을 뒤쫓는 ‘후사(後事)’의 매체여야만 할까. 사진은 금융엘리트의 도덕적 해이와 사기 행각의 피해자가 된 시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담아내는 데 만족해야 하는 기록인가. 사진가의 의도와 다르게 금융위기 속 서민의 일상을 다뤄온 포토저널리즘은 한편으론 특정한 참상만을 이를 보는 관계자와 일반인을 상대로 수출해버린 셈 아닐까. 이 같은 질문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좋아하거나 직접 찍고 싶은 당신의 오랜 고충을 끄집어내고 만다.
    ('김신식(감정사회학 연구자), [승인]' 중에서/ p.125)

    밤의 버스를 찍으면서 닉은 그것이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기묘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오후 다섯 시에 사무실에서 일어나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사무실과 집은 전혀 다른 이들이 모여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곳이고, 당신 역시 양쪽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까 밤의 버스는 에일리언이 타는 우주선이거나, 아니면 망자들의 연옥과도 같은 장소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 잠깐 머무르는 그런 곳.
    ('김현호(사진비평가), [낮의 사무실에서 밤의 버스로]' 중에서/ p.143)

    권경환 작가와 저녁을 먹고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어제 친구들과 술마시며 나눈 얘기라며 말했다. "어제 친구들이랑 모여서 술마시다 나온 얘긴데, 작가들은 잘 되봤자, 빛 좋은 개살구라고... 그래도 다 같은 개살구라면 빛이라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요?"
    ('김희정(사진가), [1년, 개살구, 작업실,]' 중에서/ p.154)

    내레이터를 통해 하나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정작 그 사진 자체는 보이지 않고 잠재적인 채로 있다. 마침내 이 사진이 스크린에 보이고 현실화될 때, 앞서 들은 이야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일종의 잔상(afterimage)처럼 남아 그 사진과 중첩된다. 그리고 이 사진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또 다른 사진에 얽힌 이야기와 중첩된다. 이렇게 해서, 언어에서, 이미지에서,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의 간극이 복원된다. 그리고 영화란 언제나 이러한 간극을 통해서만 출현하고 또 거기에서만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유운성(영화평론가), [도래할 것을 향한 노스탤지어]' 중에서/ p.229)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를 다른 사람의 눈에 온전히 전달하기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눈에 무엇이 비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시차를 두고 나란히 앉아 같은 빛을 보는데서 시작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그런 명령에서 이탈함으로써 개방되는 가능성의 여지다. 내가 당신이 아닐 수 있고,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 설 수 있으며, 그래서 각자가 본 빛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것. 합성된 황혼의 시간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런 비현실적 빛깔의 꿈이다.
    ('윤원화(시각문화 연구자), [합성된 황혼의 시간]' 중에서/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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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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