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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 역사 인물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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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설 100주년 기념
    ‘빨갱이인가, 아닌가?’ 논란의 중심에 선 김원봉!
    최초의 역사 인물 소설 출간!!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이다. 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축 ‘의열단’ 창설 100주년이기도 하다. 의열단을 창설하고 이끌었던 이는 약산 김원봉이다. 백범 김구가 우파계열의 독립운동 진영을 이끌었다면, 김원봉은 좌파계열의 독립운동 진영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일본 경찰이 내건 김구의 체포 현상금이 60만 원이었던 반면 김원봉은 100만 원(現 320억 원 추정)이었을 만큼, 실제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존재는 김원봉과 의열단이었다. 그러나 그간 우리 역사는 김원봉을 평가하는 데 무척이나 인색했다.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라 왜곡하고 역사에서 흔적을 지우려 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은 김원봉과 의열단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는 조승우의 짧지만 강렬했던 대사(영화 <암살> 중)와 이병헌이 김원봉으로 분했던 영화 <밀정>을 통해 짤막하게나마 김원봉과 의열단이 소개된 후 시민들은 그에 대해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또한 국가보훈처가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건국훈장 추서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다시 이념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김원봉,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독립운동을 했기에 후손에 의해 이렇듯 극명한 평가를 받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줄 소설 한 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로그컴퍼니에서 최근 출간한 역사 인물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가 바로 그것!

    김원봉과 조선 청년들,
    중국땅에서 의열단을 창설하다


    “자유는 우리가 쏟은 힘과 우리가 흘린 피로 이룬 혁명으로만 얻어지는 것이오.”
    1919년 11월 9일, 중국 길림 파호문 밖 중국인 반씨 집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조선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밀양 사람 김원봉, 윤세주, 한봉근, 김상윤과 달성 사람 이종암, 함경도 사람 강세우 등이었다. 살을 에는 길림의 칼바람도 조국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립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왜적을 암살하고 일제 시설을 파괴하면 조선 민중이 폭력 의거를 일으켜 일본을 타도하고 광복을 이루리라 믿었다. 의열투쟁은 총을 수천 자루 구하지 않아도, 사람을 수천수만 명 모으지 않아도 되는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무장독립운동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의열단이 나아갈 강령과 공약을 정하고 난 아침, 김원봉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1919년 11월 10일 아침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게다. 우리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양복을 쫙 빼입고 의열단 창단식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신사임을, 대의를 위해 목숨 던지는 의로운 사람임을 겉으로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의열투쟁은 신사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폭탄을 던지고 왜적을 저격할 때마다, 조선 백성은 독립이 온다는 희망을 더욱 키울 것이고 독립 의지도 더욱 강하게 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열투쟁을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의열투쟁으로 백성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목숨 하나 버리는 일은 영원한 안식을 얻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내 말을 깊이 받아들여준 단원 모두가 무척이나 고맙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 이야기!!


    1905년,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겼을 때 김원봉은 고작 여덟 살이었다. 외교권 박탈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져올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밀양 보통학교 시절 일장기를 몽땅 걷어다 변소에 빠뜨리는 등 저항을 행동에 옮기며 소년독립군의 면모를 갖춰갔다. 일본 군대보다 더 센 군대를 양성해야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에 있는 독일학교 덕화학당에 유학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의 열아홉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 길이 기나긴 망명길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덕화학당, 금릉대학을 거쳐 두 달 몸담았던 신흥무관학교에서 의열투쟁만이 조국 독립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그는 동지들을 규합, 1919넌 11월 의열단을 창설한다. 의열단 이름만 듣고도 일본 경찰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의열단의 무력투쟁은 불꽃처럼 뜨겁고 활발했다. 조선총독부, 밀양경찰서, 부산경찰서, 종로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신은행 등 일제 기관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일본 육군대장 등을 비롯한 요인 암살 시도도 끊임없이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함께 만든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해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후 중국군 장교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중국 민중 봉기에 조선 청년들을 이끌고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끊임없이 시도, 조선민족혁명당을 만들고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이 되어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다.
    1945년 해방이 되어 2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지만, 날선 이념 대립과 친일파의 득세, 우익청년단체의 끊임없는 테러와 암살 시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특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는 수모를 겪자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이고 말로 다 못할 수모를 당하다니.”라고 탄식하며 이 나라와 민족, 자신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국의 완전한 해방은 남한만의 정부 수립이 아닌 남과 북이 하나 된 단일대오를 이루는 것이라 여긴 그는 남한에서는 더 이상 통일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48년 월북을 감행하는데......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는 단순히 김원봉과 의열단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 거사 후 목숨을 잃은 동지들에 대한 회한, 배신한 동지를 처단할 때의 갈등, 아내이자 동지인 박차정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 등)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또한 일제 강점부터 해방 전후까지 역사적 일들을 연도와 함께 자세하게 기술하고 김원봉과 의열단의 연보, 활동 내력 지도, 세상에 알려진 의열단 거사 등을 자세히 실어, 한국 근현대사 공부에 좋은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추천사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밀양의열기념관’ 이준설 학예연구사 강력 추천!!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의열단 창설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김구,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등의 독립운동가들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면 의열단은 그들의 활동을 있게 한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동안 한국에서 금기시되었던 의열단과 단장 김원봉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독립이라는 열망 아래 불꽃처럼 타올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 모두의 오늘이 과거에 빚지고 있다.”는 걸 가슴 뜨겁게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100년 전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 호사카 유지 / 세종대 교수

    이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는 의열단이 펼쳤던 의거 현장에서 약산이 모든 것을 스케치하듯 단원들의 행동과 의식세계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당시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20년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의열단 투쟁에 이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장 ,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조선의용대 총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국광복군 군무부장 등을 지내며 일평생 독립운동을 펼쳤던 약산의 활약상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뇌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 이준설 / ‘밀양의열기념관’ 학예 연구사

    목차

    작가의 말_ 뒤늦은 소환
    지도로 보는 김원봉 일생

    프롤로그 _해방이 되어도 해방은 오지 않았다

    1. 소년독립군, 조국 해방을 꿈꾸다
    일장기를 똥통에 빠뜨린 소년독립군
    동화학교에서 덕화학당으로
    중국 유학길이 망명길이 되다
    실패로 돌아간 일본 대표 암살 계획
    3.1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독립을 위한 유일한 길, 의열투쟁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나 이승만은 실망만 주었다

    2. 의열투쟁에 명운을 걸다
    의열단을 결성하다
    특별한 훈련법
    의열단 1호 여성단원, 현계옥
    드디어 1차 거사를 실행하다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식민통치 심장인 총독부에서 터진 폭탄
    일본 육군대장을 저격하라
    남다른 청년, 김산
    폭탄 전문가 마자르
    혁명 정신을 담아낸 조선혁명선언
    일본 경찰 황옥 경부
    황옥은 밀정일까, 아닐까
    일본을 놀라게 한 황궁 앞 폭탄 투척
    성공과 죽음을 바꾼 나석주

    3. 중국 혁명전선에 참여하다
    중국 지도자, 손문과 만남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다
    중국 국민혁명군 정치부 소위로 임관
    비밀스런 태양
    장개석이 벌인 북벌과 청당운동
    민족협동전선을 세우다
    중국 민중봉기에 함께하다
    배신한 단원을 처단하다
    운명으로 만난 동지 박차정
    신간회 해체에서 얻은 교훈
    민중 속으로
    박차정과 결혼

    4. 독립운동 진영을 하나로
    만주사변과 들끓는 반일감정
    윤봉길 의거를 돕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세우다
    통일전선결성회의 결성
    임시정부가 빠진 민족혁명당
    분열, 그리고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혁명군, 중일전쟁에 나서다

    5. 해방이다, 광복이다!
    조선의용대 창설
    적군을 교란시킨 심리전
    전투에서 부상 입은 박차정
    조선의용대, 화북으로 이동하다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박차정, 영원한 안식을 얻다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이 이룬 단일대오
    최동선과 재혼
    일본 군대에서 탈영한 장준하
    광복, 그리고 28년 만에 돌아온 조국

    에필로그 _영원한 디아스포라

    부록_ 김원봉 연보
    _ 세상에 알려진 의열단 거사

    본문중에서

    역사란, 기록하는 역사가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을 불러내는 소환이다. 소환은 언제나 까닭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약산 김원봉을 소환할 수 없었다. 밀양 사람이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조선의용대가 팔로군으로 갈 때는 사령관이면서도 같이 가지 못했다. 하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갔다는 사실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우리 현대사에서 폐족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이봉창, 윤봉길 의거보다 훨씬 이전에 일으킨 박재혁, 김익상, 김지섭, 김상옥, 최수봉, 나석주를 비롯한 수많은 의열단 의거도 제대로 소환되지 못했다. 일제가 내건 현상금이 임시정부 김구 주석보다 두 배나 많은 의열단장으로, 조선의용대 사령관으로,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일제와 맞서 싸운 투쟁도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해방조국에서 남북 단일대오를 이루어내기 위해 북으로 갔고, 북에서 ‘남북정치지도자연석회의’를 이끌어낸 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가 되어버렸다. 일본을 몰아내는 단일대오를 위해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누구와도 손잡은 일은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북쪽에서는 장개석 스파이로 몰렸다. 모두와 손잡으면 모두와 벗이 되지만 그 모두가 편을 나누어 갈라서면 모두에게 적이 되고 마는 운명을 약산을 통해 절절히 보게 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손일민 선배가 찾아오라는 반약여관은 압록강을 향해 팔을 벌리듯 옆으로 기다랗게 펼친 모습이다. 손 선배는 일장기 똥통 사건 때 우리 집으로 직접 나를 찾아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밀양 사람 어깨를 한 뼘이나 높인 기특한 녀석이 바로 너구나!”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덥석 끌어안아 번쩍 들고는 이마를 부비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날로 나와 세주는 손 선배가 이끄는 청년단에 들어갔다. 청년단이 남천강변에서 하는 체력 훈련도 같이 하고 주먹싸움도 배웠다.
    손 선배는 4년 전 중국 망명길에 올랐는데, 중간에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평양경찰서에서 1년 동안 갇힌 일로 온 밀양에 명망이 자자했다. 손 선배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이라고 했다.
    “밀양 사람 김원봉입니다.”
    “밀양 일장기 똥통 의거를 일으킨 소년투사 약산을 이제야 만났구려, 반갑소.”
    나는 허리를 조금 숙이고 김좌진 장군이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다.
    김좌진 장군은 충청도 홍성 사람이다.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데도 말을 놓지 않았다. 열다섯 살에 집안에서 부리던 노비를 모두 해방시키고 풀려난 노비가 먹고살 수 있도록 땅까지 나누어 주었다. 군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붙들려 2년 반이나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 소문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질 사람이다. 풍모도 장군님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당당함을 풍겼다.
    ('동화학교에서 덕화학당으로' 중에서/ pp.31~32)

    의열단이 일으킬 첫 거사가 정해졌다. 한날한시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했다. 조선에 사는 모든 왜적은 폭탄을 맞고, 모든 관청은 파괴되어 결국 일제가 맥을 못 추고 쫓겨 가는 그림을 그렸다.
    상해에서 중국 사람으로부터 구입한 폭탄을 영국 사람 보일에게 부탁해 단동으로 날랐다. 폭탄을 궤짝 맨 아래에 깔고, 책을 얹어서 위장했다. 일부는 국내로 수입되는 수수가마니에 감추어 들여갔다.
    국내로 들어간 모든 단원은 각각 자기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공동 책임자인 곽재기는 거사를 일으킬 동지와 자금을 모아나갔다. 5파괴로 정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 기관과 7가살로 정한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 토호열신마다 한꺼번에 폭탄을 던지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을 모으는 일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차 거사를 실행하다' 중에서/ pp.85~86)

    미리 연통해둔 대로 부산역에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있었다. 그를 따라 동래성이 멀찍이 보이는 민가로 갔다. 저녁술을 놓고 세수를 마쳤는데 약수 형님이 기척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발소리도 없이 오는 걸 보니 밤손님 다 되셨소.”
    “거사는 성공했다는구나.”
    약수 형님이 내가 가장 궁금해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부산경찰서장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부산경찰서가 크게 파손되었고 일본 경찰 두 명도 부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했다. 폭탄을 던진 게 아니라 경찰서장과 마주 앉은 상태에서 터트렸다는 말에 왜 퇴로 확보를 사양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폭탄이 실패해 총을 쏘려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 네댓 걸음만 떨어져도 몸을 비틀어 피하면 명중시키기가 어렵다.
    박재혁은 폭탄을 손에 쥐고 터트려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부상을 당했고, 치료가 되어도 어차피 사형을 받아 죽을 목숨이라며 식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도려내는 통증이 훅 밀려왔다.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중에서/ pp.99~100)

    지난 1923년 1월 12일에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본 경찰을 죽이고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 후 피신을 다니다 22일 5백여 명이나 되는 일본 경찰에 둘러싸였다. 일본 경찰 수십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거사는 김상옥에 대한 복수도 겸하고 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전국 경찰서에서 동시에 폭탄이 터지고 왜적과 친일파를 처단할 날이 눈앞에 왔다. 이번에야말로 불발탄과 시간 끌기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해치울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 김상옥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북경에 왔다는 황옥이 오히려 의열단과 합심하고 복수에 앞장서게 되었으니 김상옥 동지가 주고 간 숙제를 풀어간다는 희열이 차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옥은 밀정일까, 아닐까' 중에서/ p.150)

    거사 실패 소식을 들은 한 달 뒤쯤 김지섭에 대한 재판 소식이 들려왔다. 김지섭은 재판정에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일이 왜 죄인지, 총독 통치가 얼마나 악랄한지를 당당하게 밝히고 일제에 항거하는 일이 정당함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김지섭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얼마 뒤 옥중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빌어먹을 왜놈. 가만두지 않을 테다.”
    김상윤은 치미는 오열을 누르지 못했다. 단원 모두 비탄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까지만 오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유자명 말대로 황옥과 함께한 거사 때도 감시망을 피해 돌아왔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무사히 복귀했을 김지섭이다.
    “자꾸 나이 말씀을 하시더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진으로 희생당한 동포를 위해 영혼을 달래고, 꼭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었나 보오.”
    내 말대로 모두 김지섭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옥과 함께한 거사를 실패했다는 자책이 누구보다 컸던 김지섭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일본을 놀라게 한 황궁 앞 폭탄 투척' 중에서/ pp.164~165)

    1932년 4월 초,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맡고 있는 백범이 보냈다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임시정부를 백범 혼자서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양반 귀족 출신이 아닌 백범이 주석이다보니, 후원금도 거의 모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름만 거창하지 돈도 없고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체로 작아졌다.
    의열단이 임시정부와 척을 진 사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에서 의열단에 처음으로 도와달라는 손길을 내밀었다. 백범이 쓴 편지도 없이 사람만 왔는
    데, 비공개로 대화하기를 원했다. 빈방에 둘만 마주 앉았다.
    “주석께서는 애먼 의열단에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의열단이 나섰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의열단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뜻이라고 했으나 그 뜻만 들어 있지는 않다는 눈치를 못 챌 내가 아니다.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연 뒤로 의열단 전체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있으니, 의열단 도움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들어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파벌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빛이 되었든 그림자가 되었든 성공만 된다면 어떤 자리라도 마다할 까닭이 없다는 대답을 주어서 보냈다.
    ('윤봉길 의거를 돕다' 중에서/ pp.235~236)

    졸업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육사가 직접 지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가 평소답지 않게 부끄러워했다. 제목이 무엇이냐는 내 물음에 조금 머뭇거리더니 ‘광야’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제목으로 마침맞소.”
    나는 이육사 손을 잡고 감동을 전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광야다.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광야이니, 이육사가 시로 지금 우리를 가장 잘 표현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이 내달릴 광야. 비록 지금은 춥고 바람도 불지만 거칠 것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는 그 광야가 바로 우리가 달려갈 광야라고.
    ('임시정부가 빠진 민족혁명당' 중에서/ pp.253~25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경남 하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으며 ‘어린이문학’에 동화 <참 이상한 호수>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화 《야! 쪽밥》, 《물싸움》, 《큰애기 복순이》를 썼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 《지리산 소년병》, 신라 말기인 후삼국 시대에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삶을 다룬 청소년 소설 《외눈박이 황제》도 썼다. 역사 모임인 ‘모난돌’에서 활동하며 《살아 있는 역사 재미있는 논술》을 비롯한 역사 공부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작품을 쓰는 틈틈이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살펴보러 열심히 여행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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