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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 장미전쟁의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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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중세 말을 장식한 피와 강철의 게임
    장미전쟁의 가장 강력한 가문, 네빌 가문의 킹메이커와의 만남


    샤티옹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난 후의 잉글랜드는 극심한 혼돈에 빠져듭니다. 길고 길었던 전쟁의 결과는 프랑스 내 영토 대부분의 상실이었고 전쟁에 소모된 잉글랜드 국내에서는 자원의 고갈과 함께 민심의 불만이 폭등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랭커스터 가문의 왕 헨리 6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잉글랜드 각지의 대가문들은 표류하는 정권의 확보를 노리게 됩니다. 이윽고 붉은 장미로 상징되는 랭커스터와 흰 장미로 상징되는 요크라는 두 거대 파벌이 잉글랜드의 패권을 두고 전쟁의 포문을 엽니다. 후에 장미전쟁이라고 불리게 될 영국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미전쟁의 판을 움직인 주요 인물들을 꼽는다면 비극적인 왕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왕비, 요크파의 수장인 요크의 리처드 공작, 리처드공의 아들 에드워드 4세, 그리고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중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장미전쟁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다른 네 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얘기됩니다. 본서는 영국에서도 그 역할이 과소평가되었다고 얘기되는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복권에 관한 본격적인 시도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부터 조지 R. R. 마틴까지
    거장들의 창작의 영감이 된 장미전쟁의 시대를 관통하다


    장미전쟁은 잉글랜드의 대가문들 거의 모두가 관여하여 랭커스터파와 요크파로 편을 나눠 이뤄진, 귀족과 기사와 종자 들의 내전이었습니다. 그중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속한 네빌 가문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습니다. 3대에 걸친 계속된 혼인동맹으로 가문을 넓힌 네빌가는 잉글랜드 전역에 걸친 광활한 영지와 무수한 봉신들을 바탕으로 정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사촌이 요크파의 핵심이었던 리처드 공작이었던 만큼 장미전쟁은 곧 네빌가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들의 시대는 여러 인상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선하지만 정신병을 앓으며 무력했던 헨리 6세, 남편을 대신해 랭커스터파를 이끌면서 권모술수의 진수를 보여주는 앙주의 마거릿, 백년전쟁의 영웅이자 안정된 행정가였던 요크의 리처드, 장미전쟁의 가장 탁월한 군사 지휘관으로 평가되는 에드워드 4세, 그 에드워드 4세를 가르쳤으며 전략 전술과 정치의 귀재였던 리처드 네빌 본인에 이르는 인물군은 난세의 군웅들이 보여주는 서양판 『삼국지』 같은 인상마저 줍니다. 따라서 이 풍부한 이야깃거리들로 가득한 장미전쟁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조지 R.R. 마틴에 이르기까지 후대의 수많은 작가들이 매혹되어 영감을 받은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로 불린
    리처드 네빌의 관점에서 보는 장미전쟁


    역사 속에서 ‘킹메이커’라고 불렸던, 장막 뒤에서 암약하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멸과 경외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유명한 명칭이 최초로 부여된 사람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은 남은 게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왕좌를 거부하고, 혹은 왕좌에 충실하면서 2인자로서 남고자 했던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록이 없으면서도 그가 행사한 영향력은 막대했기에, 역설적이게도 리처드 네빌을 설명하려면 바넷 전투까지 이르는 장미전쟁의 흐름을 설명해야 합니다. 즉, 장미전쟁과 리처드 네빌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서 떼려야 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장미전쟁의 킹메이커』는 혼돈과 음모, 배신, 전투로 이뤄진 장미전쟁 전반기의 역사를 리처드 네빌의 관점에서 풀어나갑니다. 영국의 역사를 바꾸고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 이름값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내용이 적은 장미전쟁의 전반기를 다루는 본서는 장미전쟁에 대한 소개와 이해를 통해 중세 유럽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목차

    Ⅰ 킹메이커의 시대
    Ⅱ 네빌 가문
    Ⅲ 솔즈버리의 리처드
    Ⅳ 킹메이커의 유년 시절
    Ⅴ 요크의 대의
    Ⅵ 내전의 시작, 세인트 올번스
    Ⅶ 칼레의 수장, 해군 제독 워릭
    Ⅷ 망명
    Ⅸ 승리와 재앙, 노스햄튼과 세인트 올번스
    Ⅹ 타우튼 전투
    XI 에드워드 4세의 승리
    XII 북부에 찾아온 평화
    XIII 워릭과 에드워드 4세의 분열
    XIV 배신의 게임
    XV 헨리 6세를 위하여
    XVI 에드워드 4세의 귀환
    XVII 바넷
    해제-장미전쟁의 열쇠,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본문중에서

    도덕적 퇴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프랑스와의 비참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순수한 탐욕과 야망이 뒤섞인 채 시작됐다. 거기에는 방탕한 외국인 용병 무리의 지원에 의해 지탱됐던 에드워드 3세(1312~1377) 시대의 빈약한 변명조차도 없었다. 전쟁은 부분적으로는 잘못된 국가적 자부심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지배 계급의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절망스러울 정도로 오래 지속됐다. 불행한 만큼이나 부당했던 35년간의 전쟁은 국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기를 떨어뜨렸다. 잉글랜드는 해산한 용병들로 가득 찼다. 영국해협 너머에서 부정하게 얻은 영토를 잃은, 운이 좋았던 시절에는 불안정한 영주 노릇을 했던 기사, 성주와 총독 들은 실직한 상태였다. 노르망디와 기옌Guyenne의 전리품들로 재정을 해결했던 온갖 종류의 뜨내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년 사람과 돈이 아무 효과도 없이 전쟁에 쏟아 부어졌다.
    (/ pp.16~17)

    1449년이 워릭에게는 아내가 받은 유산을 취득한 해였다고 한다면, 잉글랜드에게 있어선 즉각적으로 뒤따른 심각한 문제의 시기였다. 노르망디 요새의 상실 후에는 예상대로 수개월 동안 대중의 분노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 표출은 어떤 식으로든 왕국의 엉망진창인 통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국새상서國璽尙書인 몰레인스Moleyns 주교는 1월에 포츠머스(/ p.ortsmouth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 타격은 정부의 수반인 서퍽에게 불어 닥친 폭풍의 전조일 뿐이었다. 넉 달 후-포르미니에서 치명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프랑스 북부의 마지막 잉글랜드 기반이 상실되는 동안-그는 상원에서부터 런던 군중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 불어닥친 억누를 수 없는 분노의 시위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왕의 사면 덕분에 법적 처벌로부터 보호받은 서퍽은 바다 밖으로 도망쳤다.
    (/ p.53)

    피할 수 없는 내전을 막을 특별한 기회로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이 더 일찍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가 결심한 만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며, 왕의 병약한 체질과 척박한 결혼이 약속하게 될 왕관을 기다리는 일에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왕당파에서도 아주 가까운 시기에 자신들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그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지 않았다. 요크와 서머셋의 분쟁은 실제로 싸움이 벌어지기 전까지 4년 넘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선언과 선언문으로, 의회법에 의해서, 무장 시위로 싸웠지만 아무도 실제적인 첫 번째 타격을 날리지 않았다.
    마지막 위기는 매우 다른 성격의 두 사건이 병렬됨으로써 야기되었다. 1453년 8월, 왕은 불운한 할아버지 샤를 6세(1368~1422)를 괴롭혔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우울한 광기에 빠졌다.
    (/ p.63)

    세인트 올번스 전투와 워릭이 명성을 쌓고 인기를 얻은 1459년의 내전의 두 번째 발발 사이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 1455년까지의 그는 아버지 솔즈버리를 전적으로 따르는 능력 있는 젊은 귀족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비록 그는 이미 15세기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나이를 훨씬 넘어섰지만, 아직 어떠한 독립적인 지휘권도 받지 못했고 중요한 사업에서 홀로 신뢰받지도 못했다. 그는 이제 스물일곱 살로 웨일스 정부를 인계받았을 때의 헨리 5세보다 열한 살이 많았으며, 모티머스 크로스Mortimer's Cross에서 승리했을 때(1461)의 에드워드 4세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워릭에게는 많은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열여섯 살에 어른이 되고 마흔 살에 노쇠한 퇴역 군인으로 만든 그런 조숙한 발전의 징후가 없었다.
    (/ p.77)

    이제 칼레는 동요하면서 부산스러워졌으며, 솔즈버리와 폴큰브릿지는 더블린에서 합심한 침공 계획을 완전히 승인했다. 잉글랜드에서 온 소식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레스터 의회가 요크파의 사권을 무모하게 박탈한 것은 심각한 반감에 부딪쳤다. 랭커스터 영주들의 부하들은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사건은 윌트셔 백작 오먼드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뉴버리Newbury에서의 합당한 이유 없는 약탈이었다. 런던은 백작들과 합류하기 위해 칼레로 가는 길 도중에 템스 강the Thames에서 붙잡힌 네빌가 장정 일곱 명이 처형된 일로 몹시 성이 났다. 정부가 요크파에 대항하는 설교를 하기 위해 폴스 크로스(/ p.aul's Cross에 세운 무식한 설교자들은 군중의 야유를 받고 물러나야 했다. 켄트 지방 하원은 하얀 장미 깃발이 잉글랜드에서 펼쳐지는 순간 백작들과 합류하겠다는 의향을 의심의 여지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 p.106)

    장미전쟁의 모든 전투들 중에서, 아마도 잉글랜드 역사의 모든 전투들 중에서도 타우튼 전투는 가장 절망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다. 순전히 힘든 싸움에 있어서 그 사건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아침 5시부터 정오까지 전투는 잠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남부 사람들이 북부보다 덜 터프하다고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 랭커스터 병사들은 몇 번이고 타우튼데일의 남쪽 비탈을 타고 올라와 요크군에게 몸을 던졌다. 때때로 단숨에 끌어내리거나 때로는 적을 뒤에서부터 압박했으나 결코 왕의 전선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공격 종대가 격퇴될 때마다 새로 배치된 군대가 자리를 차지했고 파이크의 진격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소란이 한창일 때 우리는 워릭을 언뜻 보게 된다. 장 드 와브랭Jean de Wavrin은 ‘워릭 백작이 서있던 부분이 전투에서의 가장 큰 압박이 있었다’고 말했고, 휘섬스테드는 그를 ‘두 번째 헥토르Hector처럼 압박하며 어린 병사들을 격려한다’고 묘사했다.
    (/ p.143)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0~
    출생지 인도 무자파르푸르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78권

    1860년 인도 무자파르푸르에서 영국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역사학과 교수, 왕립역사협회와 왕립화폐협회 및 왕립고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20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연대기 저자들이 남긴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재구성하여 기민한 분석과 극적인 서사를 혼합한 작법으로 완성시킨 그의 작업은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서로는 『비잔티움 제국 이야기The Story of the Byzantine Empire』, 『중세 전쟁사A History of the Art of War in the Middle Ages』, 『반도전쟁사Hi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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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81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교까지의 정규 교육 과정과 육군 보병 복무를 마치고 회사에 사무직으로 입사하여 어학 교육, 금융, 전기 전자, 교섭 분야의 업무를 수행했다. 11년 동안 근무하고 과장 직위에서 퇴사하여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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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7년간 철학을 공부하고, 7년간 대기업에 다니다가, 다음 7년은 창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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