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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3·1운동 100주년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찾다

    1. 역사적 전환의 시대, ‘3ㆍ1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다


    3·1운동은 거리의 저항 축제였다. 전국 방방곡곡 공원과 장터를 메운 사람들은 대로와 골목을 누비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촛불을 밝혀 민주주의 진전을 이뤄냈고, 평화의 길을 여는 새로운 역사를 마주하고 있다. 역사학 또한 전환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역사학을 모색하는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한국근대사 연구에서는 오랫동안 근대사를 바라보던 민족 대 반민족의 프레임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수탈 대 저항이라는 일제 시기를 읽어내던 이분법적 시각을 해체하고 이 시기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또 거대한 역사에 가려져 있던 개개인과 역사 속에서 배제되어 있던 주체를 찾아 그들의 삶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학의 전환기에 한국역사연구회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를 조직하고, 그동안의 3·1운동 연구를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학의 미래를 전망하는 '3·1운동 100주년 총서' [3·1운동 100년](총 5권)을 내놓았다. 이 총서는 새로운 역사학의 흐름을 반영해 반일 민족운동이자 역사의 거대한 봉우리와 같은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3·1운동을 메타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해 지난 100년의 연구를 성찰하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주체와 새로운 시선으로 3·1운동을 재구성했다.

    1919년으로부터 100년, 역사적 전환기에 발맞추어 역사학 또한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오늘날 역사학의 변화를 담고 있는 다섯 권의 총서가 앞으로 역사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미력하나마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중 역사가들이 이끄는 대중 역사에는 아직도 민족주의적 기풍이 강하다. 하지만 새로운 역사학에는 단일한 대오도, 단일한 깃발도 없다. 근대사 연구에서는 이분법적 구도가 무너져 내리고 광범한 회색지대가 드러난 이래 기존 역사상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이뤄지고 있으며 다양한 역사상이 새롭게 주조되고 있다.
    ('총론 [3·1운동 100주년, 새로운 역사학의 모색]' 중에서)

    2. 39명의 학자가 선보이는 2019년 유일한 '3, 1운동' 100년의 기록!

    한국역사연구회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6년, 10명의 중진, 소장학자 들로 구성된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를 조직했다. 3년의 준비 끝에 39명의 학자가 집필에 참여해, [3.1운동 100년]을 선보인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많은 문화.학술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3·1운동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3·1운동 100년]이 유일하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3·1운동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3.1운동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기존의 역사상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역사학의 미래를 모색하려 한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총서의 기획과 집필에 많은 소장학자가 참여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대화가 부족했던 중진, 소장학자 간의 활발한 소통과 토론은 이 총서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새로운 시도는 위원회의 구성에만 그치지 않았다. 총 39명의 필진을 구성하는 데에서도 명망보다는 문제의식의 참신성 주목해 많은 소장학자가 집필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또 네 명의 일본 학자가 집필에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손꼽히는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총서에 한국과 일본의 학자가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는 무엇보다 최근 일제 시기 연구에 한일 간 학자들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진 덕분이다. 이렇게 역사연구의 다양한 주체들이 한 데 모여 3·1운동 100주년 총서를 엮어낸 것은, 3·1운동 100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역사학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3. [3, 1운동 100년]에 나타난 새로운 역사학
    ― 다양한 주체와 공간, 시선으로 바라본 3, 1운동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책들은 으레 사건의 배경, 발달, 전개, 결과와 영향, 의의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1권 [메타역사]에서는 지난 100년간 3·1운동에 대한 기억과 상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메타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3·1운동이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남한과 북한, 일본과 동아시아라는 공간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고 쓰여왔는지에 대해 비판적 역사 읽기를 시도한다.
    2권 [사건과 목격자들]에서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3·1운동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을 정면에서 다루며, 현재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실을 규명하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고자 했다. 고종독살설과 2·8독립선언, 제암리 학살사건, 마지막 만세시위 등 3·1운동 관련 사건들을 재검토하고 재구성한다. 또 1919년 3·1운동을 마주한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으로 3·1운동을 재현했다. 도쿄 유학 중 혁명을 꿈꾸며 귀국한 청년 양주흡, 경남 산청 출신의 유림 청년 김황, 서울 한복판에서 3·1운동을 비판한 YMCA 총무 윤치호, 3·1운동 탄압을 진두지휘한 일본군 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 그리고 세계에 3·1운동을 알린 서양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3·1운동의 다양한 주체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3권 [권력과 정치]에는 일본과 조선,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항 대립적 구도에 가려져 있던 권력과 정치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했다. 3·1운동을 둘러싼 사법, 경찰, 군부 등 권력의 대응과 조선총독부, 한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정치세력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4권 [공간과 사회]에서는 식민지 조선과 식민 본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로까지 공간을 넓혀 3·1운동과 관련된 경제와 법, 사회현상을 살핀다. 또 도시 시위·길거리 정치·보통학교 등의 주제를 통해 3·1운동 전후의 조선 사회를 다층적 시각으로 재구성해 공간적 차원에서 경계 넘기를 시도한다.
    5권 [사상과 문화]에서는 그동안 식민정책과 독립운동 위주의 연구에 가려져 있던 일제 시기 문화사와 사상사를 정면에서 다룬다. 반폭력사상, 평화사상, 인종 담론, 단군문화, 역사문화, 민족정체성, 여성 정체성, 민족 서사 등에 주목해 3·1동 전후의 조선 사회를 문화사적 시각에서 접근한다.

    목차

    1권 메타역사

    1부 인식과 서사의 흐름
    1장 3·1운동, 그 기억의 탄생 _최우석(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장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의 3·1운동 인식 _박종린(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3장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 인식의 정치성과 학문성 _김정인(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4장 3·1절 기념사를 통해 본 3·1운동의 표상과 전유 _이지원(대림대학교 인문사회계열)

    2부 연구사의 성찰
    5장 3·1운동 원인론에 관한 성철과 제언 _도면회(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6장 3·1운동의 경제적 배경에 관한 서술과 시대성 _배석만(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7장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의 불완전한 정립과 균열 _한승훈(고려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8장 북한 역사학계의 3·1운동 연구 _홍종욱(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9장 전후 일본 조선사학계의 3·1운동 연구 _박준형(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2권 사건과 목격자들

    1부 사건의 재구성
    1장 고종독살설 재검토 _윤소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장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_오노 야스테루(규슈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원)
    3장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의 재구성 _김정인(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4장 학생단 독립운동과 3월 5일 시위 _장규식(중앙대학교 역사학과)
    5장 3·1운동의 탄압과 학살, 그리고 제노사이드 _김강산(성균관대학교 사학과)
    6장 3·1운동의 마지막 만세시위 검토 _최우석(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부 만세시위의 목격자들
    7장 청년 양주흡, 혁명을 꿈꾸다 _최우석(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8장 유학자 김황의 3·1운동 경험과 독립운동 이해 _서동일(국가보훈처)
    9장 윤치호, 방관과 친일 사이 _노상균(연세대학교 사학과)
    10장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의 눈에 비친 3·1운동 _이민성(건국대학교 사학과)
    11장 외국인 선교사가 바라본 3·1운동 _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3권 정치와 권력

    1부 식민통치의 구조
    1장 1910년대 일본의 식민지 통치구조 개혁과 조선 _이형식(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장 1910년대 한국의 형사재판제도와 3·1운동 _도면회(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3장 ‘무단정치기’ 조선의 헌병경찰과 위생행정 _마쓰다 도시히코(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4장 3·1운동과 조선총독부의 사법 대응 _장신(한국교원대학교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5장 3·1운동과 일본군 동향, 그리고 제국 운영 _신주백(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부 저항의 정치 역학
    6장 3·1운동의 네트워크와 조직, 다원적 연대 _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7장 3·1운동 초기 경성 시위에 대한 세대론적 분석 _주동빈(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8장 1920년대 전반 국민협회의 정치활동과 참정권 청원운동의 한계 _이태훈(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9장 3·1운동과 비식민화 _홍종욱(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4권 공간과 사회

    1부 공간과 경계
    1장 제1차 세계대전 전쟁특수와 조선 경제 _배석만(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장 ‘1918년 독감’의 유행과 혼란에 빠진 조선 사회 _백선례(한양대학교 사학과)
    3장 3·1운동 경험자가 바라본 아일랜드 독립전쟁 _한승훈(고려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4장 192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과 조선인 자본가 _김제정(경상대학교 사학과)
    5장 공간에 속박된 사람들: 식민지 조선의 민사 법제와 공통법 _이정선(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6장 한국 동북부의 공간 변용과 3·1운동 _가토 게이키(히토쓰바시대학 사회학연구과)

    2부 지역과 사회
    7장 도시 시위의 계보와 3·1운동 _박현(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8장 식민지 군중의 ‘길거리 정치’와 식민자의 공포(1920~1929) _기유정(성신여자대학교)
    9장 1910년대 보통학교의 구조와 지역 3·1운동 _이기훈(연세대학교 사학과)
    10장 3·1혁명의 여진과 조선 사회 _고태우(연세대학교 사학과)

    5권 사상과 문화

    1부 사상지형의 전환
    1장 3·1운동과 혁명적 민중폭력의 사상 _김영범(대구대학교 사회학과)
    2장 3·1운동 시기의 ‘평화’사상 _이지원(대림대학교 인문사회계열)
    3장 1920년대 전반 한국 언론에 나타난 ‘문화’의 의미 _허수(서울대학교 국사학과)
    4장 ‘동포’와 이민족 사이: ‘일조동원론’과 인종 담론의 모순 _미쓰이 다카시(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2부 문화 주체의 다양화
    5장 3·1운동과 정치 주체로서의 ‘여성’ _소현숙(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6장 3·1운동 직후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조선 미술 재발견 _류시현(광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7장 3·1운동 이후 ‘활동사진대회’를 통해 본 식민지 대중의 문화 체험과 감성공동체 _이하나(연세대 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8장 3·1운동과 단군문화 _이숙화(한국외국어대학교)
    9장 3·1운동, 민족정체성, 역사문화 _이지원(대림대학교 인문사회계열)
    10장 3·1운동, 죽음과 희생의 민족서사 _김정인(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본문중에서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임정 법통성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우파의 논리로 작동했다. 좌파가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임정 법통성을 방어논리로 구사했다. 해방 정국에서도 3·1운동과 임정 법통성은 우파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1919년 4월 서울에서 탄생한 한성정부의 법통성을 주장하는 이승만의 주도로 대한민국 정부의 제헌헌법 전문에 명문화되었다. 이후 ……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임정 법통성에서 찾고자 했던 정치세력은 별다른 갈등 없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헌법 전문에 부활시켰다. 이처럼 임정 법통성이 출발점부터 우파와 반공주의의 합작이라는 점은 해방 정국부터 일관된 것이었다.
    ('1권 3장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 인식의 정치성과 학문성' 중에서)

    역대 한국 정부는 3·1절을 통해 3·1운동이라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국가적 의례로서 기념하고, 정신계승 담론으로 3·1운동의 정신, 즉 ‘3·1정신’을 표상했다. 각 정부는 전 민족의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한 ‘정신’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민족’, ‘국민’으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민족정신·국민정신으로서 3·1운동의 정신을 표상하고 전유했다. 그러나 각 시기마다 ‘3·1정신’ 표상의 내용은 통치 전략과 정치적·사상적 지향에 따라 달랐는데, 이는 대통령마다 기념사에 사용한 어휘나 ‘3·1정신’의 공기어가 달리 나타나고 있던 점에서 확인된다.
    ('1권 4장 3·1절 기념사를 통해 본 3·1운동의 표상과 전유' 중에서)

    흔히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 하면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를 떠올린다. 교과서에서도 3·1운동의 발발지로 서울만 거론하거나 서울의 독립선언식을 비중 있게 다루어왔다. 그런데 이처럼 서울만을 강조하다 보면 바로 다음 날부터 전국, 특히 북부 지방에서 잇달아 일어난 만세시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1919년 3월 1일에는 서울을 비롯해 평양·진남포·안주(안남도), 선천·의주(평안북도), 원산(함경남도) 등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부 지방의 도시였다. 이후 만세시위는 보름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3월 중순 이후 중남부로 확산되면서 전국화·일상화되었다. …… 북부 지방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남북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2권 3장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의 재구성' 중에서)

    윤치호에게 3·1운동은 회피하고 싶은 위기였다. 그가 보기에 3·1운동은 국내외 정세도 모르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만으로 조금도 승산 없는 일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불사하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그도 식민통치에 불만이 있었다. 그는 일본이 문명국으로서 기대한 최소한의 개혁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분노와 독립의지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어떻게든 3·1운동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했다.
    ('2권 9장 윤치호, 방관과 친일 사이' 중에서)

    1918년 우쓰노미야 다로는 조선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 만세시위가 일어난 원인을 무리하게 강행된 혼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선은 ‘여자’로, 일본은 ‘남자’로 비유해 ‘남자’가 잠시만 인내했으면 ‘여자’가 혼인을 바랐을 것인데, 무리하게 혼인을 추진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우쓰노미야가 비유한 혼인은 1910년의 한일강제병합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강제병합이 조선인이 열복(悅服), 다시 말해 기쁘게 복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인식했다. 또한 강제병합이 “지나(支那) 이하 동방제방(東方諸邦)의 마음”을 잃게 만들어 일본제국의 팽창정책에도 장애가 된다고 서술했다. 식민통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조선인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시설을 갖추는 데 급급했다는 요지였다. 구체적으로는 ‘제1조선인’에 대한 봉급·임용 등의 차별과 불공평을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그들과 교섭해야 한다고 했다.
    ('2권 10장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의 눈에 비친 3·1운동' 중에서)

    많은 사람이 의아스러워하는 점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시위를 초기에 계획했던 48인의 형량이 헌병경찰과 맞서거나 관공서를 습격한 일반 시위 대중보다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최대 형량은 징역 3년에 그쳤고,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방면된 자도 있었다. 이에 반해 시위 참여자 중에는 헌병경찰을 살해하거나 관공서를 방화해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 이상에 처해진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 48인에 대한 체포 단계부터 심문, 공판, 선고에 이르는 전 과정은 대한제국 시기의 그것에 비하면 일본의 형법, 형사소송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을 병탄한 이후 구미 열강에 홍보했던 ‘법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문명 통치’였던 듯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의 한국 지배 시기를 고문과 혹형이 가득한 야만적 통치로 기억하고 있다. 일본 통치 시기 형사재판제도에 대한 이같이 상반된 기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3권 2장 1910년대 한국의 형사재판제도와 3·1운동' 중에서)

    전 세계를 휩쓴 1918년 독감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많은 환자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 방역당국의 미숙한 대응은 헌병경찰 위주로 이루어진 1910년대 방역체계의 한계이자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918년 독감이 유행하는 동안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가족 혹은 친지들이 독감에 걸려 죽을 뻔하거나 죽는 상황을 직접 겪거나 전해 들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무총감부가 검병적 호구조사를 통해 환자나 사망자를 파악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 역시 직접 보고 들었다. 이후 1919년 1월 독감의 기세가 수그러들었고, 독감 관련 신문 기사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여전히 독감의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함께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전국으로 확산된 만세시위는 독감으로 누군가를 잃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던 대다수 조선인이 식민당국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기에 좋은 공간을 제공했다.
    ('4권 2장 ‘1918년 독감’의 유행과 혼란에 빠진 조선 사회' 중에서)

    아일랜드의 독립전쟁은 33·1운동을 경험한 조선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일랜드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약소민족의 울분을 독립전쟁으로 승화시킨 사례라는 면에서 아일랜드에 대한 조선인들의 관심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었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제1차 정간(176호. 1920년 9월 25일자)까지 하루 평균 1편 내외의 아일랜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글은 창간 초기 [동아일보]의 아일랜드 기사에 주목한다. 1920년 9월 25일 [동아일보]가 정간을 당한 이유 중 하나가 아일랜드 독립전쟁의 보도 태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 총독부는 [동아일보]가 창간 초기부터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보도함으로써 조선의 독립의식을 고취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연 총독부의 판단은 정확했을까?
    ('4권 3장 3·1운동 경험자가 바라본 아일랜드 독립전쟁' 중에서)

    3·1운동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등을 통해 남녀평등의 원칙이 천명되면서 정치 주체로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다만 이와 동시에 정치 주체로서의 여성이 성립되기 위한 조건으로 ‘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말 이래 여성운동을 주도한 양반 부인들이 여성 교육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근대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3·1운동 직후 정치 주체로서 여성을 고려할 때 교육이 자격요건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 3·1운동은 ‘정치 주체’로서 여성의 표상을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계몽자로서의 ‘신여성’과 농촌의 무지한 여성으로 표상되는 ‘구여성’이라는 여성 내부의 새로운 분할을 촉진시켰다.
    ('5권 5장 3·1운동과 정치 주체로서의 ‘여성’' 중에서)

    3·1운동으로 수만의 사람이 검거되고, 수천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3·1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할 때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3·1운동에서 죽음과 희생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간이다. 이와 같은 3·1운동에서 죽음과 희생의 서사는 상징적인 사건과 인물을 통해 완성된다. 바로 제암리 학살사건과 유관순이 그러하다. …… 한국인 모두가 제암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유관순의 희생을 추앙하는 흐름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이를 새삼 되짚는 것은 특정한 사건과 인물이 민족서사를 대표하면서 그것에 대한 반응이 반일의 집단정서로만 귀결되는 현실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사실상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무자비한 폭력의 결과가 수많은 한국인의 죽음과 희생을 낳았다는 인과성만이 강조되어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제는 3·1운동의 희생자들을 한국인이라는 집합주체가 아니라, 한 개인의 삶, 한 사람의 죽음과 희생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늘날 나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는 공감의 역사를 모색할 때다.
    ('5권 10장 3·1운동, 죽음과 희생의 민족서사' 중에서)

    저자소개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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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국역사연구회는 1988년에 창립했으며 30년이 흐른 지금 700여 명의 회원을 갖추고 한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잡았다. 고대사, 중세사 1, 중세사 2, 근대사, 현대사 분과로 구성되어 꾸준히 공동연구의 전통을 지켜왔으며 다양한 교양서와 연구서를 펴내며 대중과 소통해왔다. 1989년에 《3 1민족해방운동연구》를 펴냈으며 2016년에는 3 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3 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를 조직했다. 10명의 중진, 소장학자로 꾸려진 위원회는 지난 100년간의 3 1운동 연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전망하며 이 총서를 기획하고 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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