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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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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한혜정
  • 출판사 : 사이행성
  • 발행 : 2018년 08월 01일
  • 쪽수 : 28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83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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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다"
    대전환의 시대, 인류학자가 말하는 풍랑을 헤쳐가는 법


    근대 문명과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는 시대. 저출산은 가속화되고, 기술 독주는 심화되며, 인공지능이 노동력을 대체하는 시대. 기후변화로 뜨거운 몸살을 앓고, 전 세계적으로 실업과 난민과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 거시적 틀에서 인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해온 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지금 이 시대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으며, 한국 사회와 그 안에 속한 개인이 제대로 생존하기 위해 찾아야 할 선택지는 무엇일까?
    이 책은 시대 흐름을 읽고 대안교육, 마을살이, 청년문제 등에서 대안적 공론의 장과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 온 인류학자 조한혜정의 4년만의 단독 저서다.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빌려 ‘궐위의 시간’이라고 진단한다. 오래된 왕은 죽고 새 왕은 오지 않은 과도기, 그것은 곧 근대 산업사회가 구조적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파괴의 단계인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전환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혜와 방법을 모색해 본다.

    "전환의 시대란 헌것은 맞지 않고 새것은 만들어지지 않은 궐위의 시간이다. 오래된 왕은 죽고 새 왕은 오지 않은 과도기라는 말이다. 때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면서 오래된 관계와 결별하고 새 관계를 맺어야 하고 험한 곳에 길을 내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실험정신이 필요하고 특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과 적대에 익숙해진 몸을 ‘재생’과 ‘상생’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 p.214)

    출판사 서평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의 4년만의 단독 신작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어차피 선진국 개념도 의미가 없어지는데
    언제까지나 선진국 뒤만 쫓을 게 아니라,
    ‘선망국’(先亡國) 개념으로 바꿔서 생각합시다.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이죠.
    이 선망국에서 청년 문제, 세대 문제와 같은 사회 문제를 푸는 해법을
    나름대로 찾는다면 인류에 희망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
    사상 초유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 선망국의 시민들
    새로운 가능성은 주변에서 나온다


    조한혜정은 선망국(先亡國, 먼저 망한 나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가파른 성장 이면에 새겨진 한국사회의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가장 빨리 잘 사는 나라가 된 동시에, 가장 빠르게 ‘망해가는’ 사상 초유의 징후들을 드러냈고, 이를 인지한 시민들은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 시위’를 통해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먼저 망하는 선망국으로 남을 것인가, 오히려 주변국의 위치에서 그 ‘망함’을 잘 극복함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탄핵 정국과 시민 혁명, 신고리 원전 공론화, 저출산과 고령화, 비트코인 광풍, 차별에 찬성하는 청년들, 강남역과 구의역, 기본소득제, 4차 산업 혁명, 미투 운동, 남북정상회담 등 격랑의 시기에 놓인 한국사회를 전환, 미래, 신뢰, 시민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묶은 칼럼들, 그리고 거대한 전환과 긴박한 사건들 앞에서 진행된 인터뷰, 강연록, 대담은 당면한 시대적 현 사안들을 면밀하게 돌아보게 하고, 이 분석과 성찰을 통해 미래에 대한 혜안과 해법을 전한다.

    "2016년 가을, 시민들은 6개월에 걸쳐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를 파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의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한 지대comfort zone’에 익숙해진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습니다. 현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자기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안락하게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지만 한국 시민들은 급하게 뜨거워진 물을 감지한 개구리처럼 냄비에서 튀어 올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비유를 들면서 말입니다. 원래 새로운 가능성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벌이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전환을 촉발합니다."
    (/ p.15)

    "기술이 지배한다면서 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가"
    청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전환적 사고


    인구절벽을 우려한 각종 저출산 대책과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각종 지원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왜 그런 정책은 효과가 없는 걸까? 조한혜정은 그런 식의 정책은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의 언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해가는 상황에서, 단지 출산율을 높이자거나 임대주택을 줄 테니 애를 낳으라거나 수당을 줄 테니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청년들이 희망을 품고 즐겁게 작당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기획할 수 있는 창의적 공공지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 분배가 필요하며,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단지 취업을 위한 지원이 아닌, 피폐해진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졌을 때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2차 근대는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성장 고위험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가 국가/사회에 평생 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례로 저체중아 비율이 10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효율 고비용 입시교육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우자.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면서 왜 청년들에게 기존 일자리를 잡으라고 윽박지르고 결혼도 못 하는데 아이를 낳으라 하는가? 노동중독증에 걸린, 재산권신수설을 신봉하는 1차 근대의 언어는 이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 p.137)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는 시대"
    국민, 시민, 난민의 정치학


    조한혜정은 이 책에서 국민, 시민, 난민의 정치학을 이야기한다. 외세의 침입으로 근대화가 본격화된 한국의 경우, 근대의 역사는 동원된 애국적 국민을 양산하는 과정이었다고 진단하며, ‘국민성’이라는 말은 단일화와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시민성’은 다양성과 연대를 중시하는 용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은 일정하게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의 주민이자 글로벌 시민으로서 세계를 살려낼 공공적 활동의 장을 가진 존재다. 나아가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인종주의 테러의 급증과 난민에 대한 혐오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적대의 분위기를 우려하며, 한국이야말로 난민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가정 적격인 나라라고 말한다.

    "남북 대치 상황이나 한국 정부의 핵발전 관련 안전 불감증 등을 고려하면 한국 같은 나라야말로 난민 논의를 시작할 가장 적격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난민이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아줄까? 동해/일본해에서 보트피플로 죽는 건가? 그 전에 이 나라를 뜨는 편이 나을 건가? 그러나 어디로?"라고 묻는 한 네티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재난과 재앙과 적대의 질서 안에서는 지구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난민을 돕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p.197)

    이제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 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


    신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게 된 근대화 과정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실존적 욕망은 오히려 자신을 소외시키고 외로움과 공허함만 남겼다. 조한혜정은 이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 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심심하고 느긋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를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그 곳은 미셀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일 것이다.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대신, 어쩌면 지금 바로 내 옆에,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그 ‘어딘가’에서 쉴 곳을 찾고 자신을 편안하게 내려놓은 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인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는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각자 좀 다른 시간 속에 있을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이동 중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내가 밤 10시에 동네 요가원에 가는 것은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숨을 고르며 살고 싶기 때문이고 같은 마음을 가진 선남선녀와 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현재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인류가 태초부터 해온 몸짓과 숨소리에 잠시나마 젖어보려는 시간 말입니다. 이런 작은 몸짓과 고른 숨소리가 다른 시대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p.31)

    목차

    서문-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1부 - 전환의 시간

    ‘재美난’ 학교의 마법
    청년시민에게 작업장과 활동 수당을
    남녀 국방의무제가 아니라 남녀 사회복무제를!
    탈석유 시대 비축기지와 비빌 기지
    비트코인 광풍과 88만원 세대
    ‘공시생’ 예나에게
    메리디안 180, 글로벌 대학의 실험
    ‘4차 산업혁명 정책’, 점검이 필요하다
    ‘포스트 386 세대’의 자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남긴 숙제

    * 인터뷰-한국은 앞서가는 선망국

    2부 - 미래의 시간
    이번에는 ‘퍼펙트 스톰’이 일기를!
    수신제가, 돌봄 민주주의 시대를 열며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골든 타임’
    보육 소동과 한심한 ‘아버지들’
    ‘도시 총각’ 수난 시대
    모성, 그 불안과 혼돈의 자리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
    가정, 윤리의 싹을 틔우는 곳
    고요하고 넉넉하게 늙어가기
    연말 안부를 묻는 자리

    * 기고문-근대 시민의 탄생

    3부 - 신뢰의 시간
    강남역과 구의역, 다시 신을 불러오며
    적대의 국민’과 ‘환대의 시민’ 사이
    송복 선생님께
    연애를 허하라!
    국민과 난민 사이
    파리 테러와 3차 세계대전, 그리고 청년
    다음 침공은 어디?
    ‘코즈모폴리턴 난민’으로 다시 시작하다
    즐겁게 살자, 제대로 소환하며
    경주를 부탁해
    울리히 벡 선생을 기리며

    * 강연록-재난의 시대,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4부 - 시민의 시간
    광장에서 익어가는 시민정치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무너지는 마음을 바라보는 힘
    이제는 숙제할 시간
    대의제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
    미래 세대를 위한 시간

    * 대담-2017, 촛불을 묻다

    본문중에서

    원래 새로운 가능성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벌이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전환을 촉발합니다. 2016년 가을 촛불을 든 광화문의 시민들은 바로 그 거대한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1987’ 항쟁 이후 또 한 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민들이 해낸 것이지요. 2016년 광화문 광장은 바로 ‘착한 국민’들이 ‘지혜로운 시민’으로 태어나는 역사적 ‘장소’였습니다. 적폐로 굴러가는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사회’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 p.15)

    기후변화와 폭력화 문제 외에 더 큰 전쟁이 남아 있습니다. 조만간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사물 인터넷 도입으로 일어나게 될 ‘일자리 전쟁’이 본격화되면 인류는 참으로 극심한 비참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유기윤 교수 연구팀은 2017년 10월 25일 미래 도시에 대한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2050년 무렵부터 도시는 네 계급으로 재구성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p.23)

    지금,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 아래서 압살당한 기성세대나 고삐 풀린 자본이 명령하는 무한 경쟁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젊은 세대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좀 다른 시간, 쉬어가는 시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존재가 ‘슬픔’이 되는 시간을 벗어나는 것, 서로에게 "그간 살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불가능할까요? 제대로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제 모두가 휴가를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 p.31)

    열대야로 잠을 설친다.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밤새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기온이 3℃ 상승하면 식물들부터 죽어갈 것이라고 하는데 찬물 샤워로 견뎌야지. 손주들 살아갈 날 생각하면 어떻게든 탄소 배출을 않고 지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년에 어렵게 합의를 본 파리 기후협약은 정치쇼였을 뿐인가?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여름, 내내 보일러를 가동해야 하는 겨울, 대기오염으로 숨쉬기가 힘든 잿빛의 봄,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시민들을 양산하는 아파트 왕국, 서울은 포기해야 할 도시일까?
    (/ p.59)

    4차 산업혁명의 이름 아래 우리가 정말 해내야 하는 일은 작게는 암기 위주의 교육과 승자독식의 사회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계 연구자들과 ‘공돌이’들이 직업인 이전에 상식적 시민으로서 연구/삶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사회와 접점을 찾아 활발한 공론화의 장을 열어갈 때 가능해질 것이다.
    (/ p.77)

    후기 근대의 숙의민주주의는 재난 현장에서 꽃을 피운다. 그리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숙의할 시간을 가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생업으로 바쁘고 가짜 뉴스까지 판을 치는 정보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기에 바쁘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공론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공론조사를 설계하고 진행한 공론화 위원회의 경험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86)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요즘 사람들이 다 화가 나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초등학생들까지도 화가 나 있어서 교사도 ‘학생 만나기 겁이 난다’ 하더라고 했다. "저도 그래요. 전에 없이 문득 ‘왜 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이게 무슨 감정인가 생각해보면, 더 이상 좋아질 게 없다는 깨달음 때문에 오는 것이더라고요." 그 이유는 위에 말한 대로 "근대 문명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크게 볼 때 문명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 p.88)

    2006년 이후부터 작년까지 123조 원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출산율은 1.19명 선에 머물렀다. 700여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되는 2020년 한국 노인 비율은 선진국을 따라잡고 2050년에는 선진국은 25% 선을 유지하지만 한국은 37%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대가 끊기는’ 사회가 된다.
    (/ p.119)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양육비 전액과 부성휴가 등을 제공하면서 모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1, 2차 세계대전의 참사를 겪은 후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근대화가 진행되면 가족 해체는 불가피하다는 것, 국가가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민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들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체제 전환을 했던 것이다.
    (/ p.129)

    더구나 2차 근대는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성장 고위험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가 국가/사회에 평생 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례로 저체중아 비율이 10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효율 고비용 입시교육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우자.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면서 왜 청년들에게 기존 일자리를 잡으라고 윽박지르고 결혼도 못 하는데 아이를 낳으라 하는가?
    (/ p.137)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 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심심하고 느긋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 서로로부터 배우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면서 나쁜 기운을 거두고 좋은 기운만 쏘아주는 자리. 그 자리는 예상된 프로그램이 있고 풀코스 식사가 나오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른 장소일 것이다. 유토피아를 애타게 갈망하기보다 이미 현실화된 유토피아이자 기성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 이원 대립 구조에 빠지지 않는 그 ‘어딘가’다.
    (/ p.149)

    ‘아동기’를 설정하고 아이와 어른들을 격리했던 근대적 제도와는 결별을 할 때다. 이미 조직화된 무책임의 체제가 되어버린 국가에 청원하고 매달리기보다, 그리고 붕괴된 학교를 고발하고 해체된 가족을 원망하기보다, 공생의 삶을 살아갈 몸을 만들어갈 생태계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청년들의 결혼 파업과 출산 파업은 지속될 것이며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적개심에 가득 찬 이들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경쟁과 적대의 총량을 줄이고 돌봄과 환대의 총량을 늘리면서 지속가능한 삶의 장을 회복하는 것, 함께 모여 각자가 가진 자원을 나누고 기운을 나누는 것이 삶과 교육을 전환하려는 이들이 원하는 일일 것이다.
    (/ p.163)

    저는 이 시대의 ‘노블레스’는 ‘뉴 리치’가 아니라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적정한 돈과 정신적 자산을 겸비한 국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더 튼실한 정치적 감각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어야 하지요. 글로벌 미디어와 오픈소스로 급변하는 시대를 읽어내는 이들이 정치적 냉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새 정치의 장을 열어갈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다시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테지요. 제가 요즘 노동시간 단축이나 시민배당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 p.178)

    페미니스트들은 애초부터 데이트 비용은 분담하고 결혼할 때면 형편껏 함께 집을 마련하자고 제안해왔다. 봉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연애를 허하라"는 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좀 다른 맥락에서 다시 그 슬로건을 펼칠 때가 온 것 같다. 연애는 의자 뺏기 놀이가 아니다. 싱싱하게 연애를 하고 싶다면 나무를 올라갈 사다리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 p.181)

    한국 같은 나라야말로 난민 논의를 시작할 가장 적격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난민이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아줄까? 동해/일본해에서 보트피플로 죽는 건가? 그 전에 이 나라를 뜨는 편이 나을 건가? 그러나 어디로?"라고 묻는 한 네티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재난과 재앙과 적대의 질서 안에서는 지구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난민을 돕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p.197)

    이제 정치는 글로벌 자본이 주도하는 세상을 염두에 두고 가야 한다. 좋든 싫든 그 복잡한 층위의 현실을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과 유럽연합이 일정하게 그런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관료화된 현재로서 큰 기대는 힘들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최근 국가를 소환하는 젊은 시민들의 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청소년들은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을 해서 승소했다.
    (/ p.200)

    국민/시민/주민들은 다양한 연대와 학습을 통해 월성 1호기부터 잠재워야 한다. 미니 태양광 발전소를 집 창문에 설치하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얼마나 고무적인가? ‘기억의 공동체’ 성원들이 모여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에너지 전환을 해내는 그 자리는 새로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이 시작되는 자리일 것이다.
    (/ p.206)

    우리는 지금 현기증 나는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방향을 어떻게 가는지에 따라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건 디스토피아의 악몽을 꾸건 우리는 살아생전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며 살게 될 것이다. 전환의 시대를 사는 구성원으로서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 p.215)

    탄핵 정국에 자극을 받아 ‘제1회 부끄러운 동문상’이 대학별로 제정되고 있는 모양이다. 바야흐로 부끄러움을 아는 세상이 돌아오는 것일까? 짐작하건대 이 능동적 청년 국민들은 공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바람과 물과 흙을 포함한 공유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지구를 망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세금을 매기고 지구를 살릴 시간을 벌기 위한 시민배당을 청구할 것이다.
    (/ p.246)

    나는 요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중학생 때부터 투표권을 주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입시교육의 장막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들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팩트 체크’는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최신 정보를 찾아내고 연결하면서 성찰적 근대의 훌륭한 유권자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구의회를 참관하고 지역 방송국 활동과 예비투표를 하면서 훈련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 p.25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8~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23종
    판매수 4,993권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시대 흐름을 읽고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온 학자로서 제도와 생활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해석적 시대 탐구를 해왔다. 1980년대에는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어갔으며, 1990년대에는 ‘하자센터’를 설립해 입시교육에 묶인 청소년들이 벌이는 ‘반란’을 따라가면서 대안교육의 장을 여는 데 참여했다. 200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적 돌풍에 휘말린 아이들과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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