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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책꽂이 : 건축가 서현의 인문학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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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서현
  • 출판사 : 효형출판
  • 발행 : 2018년 05월 30일
  • 쪽수 : 22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872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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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장이 벽돌이 되고, 상상이 기둥이 되는,
이상한 마을의 건축가


문장을 벽돌로, 상상을 기둥 삼아 지어진 이상한 마을! 인문적 건축과 도시를 논해온 건축가 서현이 설계도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을 감행했다. 출처가 제각각인 이야기들이 엇갈리고 겹쳐지며 펼쳐지는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논리 정연한 어떤 상상의 기록.

출판사 서평

‘건축에 대한’ 글쓰기에서
‘건축적’ 글쓰기로!


멀게만 느껴지던 건축을 대중의 테두리 안으로 가져오는 데 기여한 인문 건축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 서현 교수가 조금은 독특한 책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한’ 글쓰기 못지않게 ‘건축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고 밝혀온 저자의 숙원을 위해 잘 깔아놓은 멍석이었던 셈이다. 서문에서 밝히듯, 그는 건축 설계도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깨진 채 쌓인 벽돌도, 줄눈 안 맞게 붙여진 타일도, 구멍이 숭숭 난 콘크리트도 없는’ 문장으로 구축된 세계에 뛰어들었다.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한 서평을 엮어 [또 한 권의 벽돌] (효형출판, 2011) 을 냈을 정도로 저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마어마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상상은 고전과 동화, 종교, 역사, 과학을 마구 넘나든다. 책 제목이 ‘책꽂이’인 것도 이 책에 수록된 글의 팔 할이 지금까지 그가 섭렵한 책들의 어딘가에서 빚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가 내놓은 이 책 한 권이 또 누군가의 책꽂이 한 편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리라.

집요한 질문과 촘촘히 짜인 논리로 유명한 그의 글쓰기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하지만 지금껏 논리적 글쓰기를 지향했던 서현 교수가 새롭게 시도한 상상은 뭔가 남다르다. ‘논리’와 ‘상상’이라는, 얼핏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이 둘의 조합은 이 책을 통해 저자만의 독자적인 창작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건축적 상상’, ‘논리적 상상’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제목이 네 글자로 맞춰진 각각의 꼭지는 이 한 권의 책을 이루는 벽돌 하나로, 각 장(章)은 이 책의 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너는 얼마나 다른데."
상상으로 집을 짓는 건축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시험하다


이 책의 출발은 이렇다. 건축은 땅 위에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실체를 짓는 작업이다. 따라서 건축에서 요구되는 상상은 비현실적인 공상 또는 망상과는 구별된다. 우리가 ‘상상’하면 흔히 떠올리는 ‘팔이 등에 붙은 인간’들을 위한 건물이 아닌 지극히 합리적이고 설득 가능한,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도면이 그려지고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상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는 공교롭게도 상상력이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건축과의 신입생들에게서 자주 이 능력의 부재를 목도한다. 그리고 그는 자문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상상의 토대 위에 있되 지극히 현실적인 건축의 세계에 몸담아온 건축가로서 비로소 건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어떤 제약도 개의치 않고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그 실험은 새로웠으며, 즐거운 작업이었다.

단어, 문장, 이야기를
쌓고, 뒤집고, 비트는
정의 불가능한 상상 종합 세트


오랜 기간 다져진 인문학적 토양을 바탕으로 쓰인 그의 글은 결코 술술 읽히지 않는다. 그 소재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라 해도, 정작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가 돌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겹쳐지며, 짜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 한 편의 거대한 우화(寓話)는 일견 잘 알려진 일화나 사실에서 가져다 쓴 이야기의 나열로 보이지만 기존의 상식을 가차 없이 깨고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며, 전복적이다. 그의 글에서 어린 왕자는 구미호로 둔갑한 여우의 유혹을 이겨낸 예수의 모습으로 ([어린왕자]), 그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과학자 파블로프는 개가 침을 흘릴 때마다 종을 치려고 안달이 난 조건반사의 대상으로 역전된다. ([조건반사]) 그런가 하면 미녀의 대명사 백설공주는 눈·코·입을 죄다 뜯어고친 성형미인으로 ([백설공주]), 지극한 효녀 심청이는 악덕 파워블로거로 등장한다 ([컴맹탈출]). 이렇듯 이 책에서는 우리 머릿속에 고정되다시피 한 인물과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둔갑’을 거듭하고, 새 옷을 갈아입는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의 성격과 입장만 살짝 바꾸어 놓았을 뿐이지만 쉽사리 떠올리기는 어려운 이 ‘역발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탁하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게 된다. 글 속에 숨겨진 각종 비유와 장치는 독자에게 숨은그림찾기나 퍼즐 맞추기를 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왜 이 이야기가 불쑥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싶다가도, 그리 길지 않은 각 꼭지를 찬찬히 읽다 보면 전체의 윤곽이 비로소 눈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빨간 도시]의 저자가 적나라하게 펼치는
‘웃픈’ 한국 사회의 민낯


건축을 사회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전작 [빨간 도시] (효형출판, 2014) 에서와 같이, 저자는 건축과 사회의 관계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건축 사회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독특한 관점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주로 우화나 패러디의 형식으로 낱낱이 까발려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저자는 그만의 필치로 그려내는 데 거침이 없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만 누구도 쉽게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고질적 병폐를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펼쳐내는 그의 입담에 우리는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한편, 현실을 부인할 수만은 없는 씁쓸한 마음에 쉽사리 얼굴을 붉히고 말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블랙 코미디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살피다 보면 북한의 김정은 체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G20 정상회담 등 최근의 국내 현안과 잊히지 않는 사건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속물적 행태, 정·재계의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더 나아가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저자는 소위 ‘역사적 가정’과 때로는 SF를 방불케 하는 ‘우의(寓意)적’ 기법을 자주 구사하는데,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가 지금 같다면 어떨까 가정해보는 데서 비롯된 상상, 아니면 [이솝우화]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는, 사실상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전반의 상상력 부재를 꼬집는 맥락에서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을 비꼬는가 하면 ([신사임당]), 새털같이 어린 목숨들이 물속에 그대로 가라앉는 순간 앞에서도 냉혹한 본색을 드러낸, 차마 ‘호모사피엔스’로 분류할 수 없는 인간 군상을 고발하기도 한다 ([사피엔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일부의 인간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저자는, 한편 이와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최저시급을 최적시급으로 알아듣는’ 이기적인 어른들에게 고용되어 도로 위에서 위험천만한 질주를 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알바생’들 ([오토바이]), 세월호 사건을 목전에 두고도 엉뚱한 상상을 끄적이며 ‘허튼소리’나 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까지 ([맺는말 - 꿈과 꽃]),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분노와 냉소가 다분한 풍자적 상상은 알고 보면 사회의 어두운 그늘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꿈이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바치는
한 권의 묵직한 충고


저자는 마지막 꼭지인 [꿈의해석]에서 말한다. 요즘 사람들이 꿈을 꾸지 않는 이유는 잠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오지 않는 잠을 술로 억지로 달래기 때문이라고. 이는 우리의 상상력 부재가 비단 ‘수면 부족’에서 왔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프로이트의 역사적인 저작과 동일한 제목이면서도 말 그대로 꿈의 해석을 시도하는 이 재기발랄한 꼭지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기능하는 건축계 종사자로서, 또 학생들의 상상력을 북돋워야 하는 선생으로서, 아직까지 기발한 생각들이 자라날 토양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대중의 인식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암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본래의 계기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의미심장한 마무리다.

목차

이상한 문진

Ⅰ. 시간과 공간
공짜글자
고물일기
질주본능
회중시계

Ⅱ. 정치와 외교
개굴개굴
별주부전
파리대왕
스팸메일
오합지졸

Ⅲ. 동화와 우화
노란버스
컴맹탈출
오대독자
테마파크
백설공주
신데렐라

Ⅳ. 종교와 인간
종교개혁
로제타석
염라대왕
아프리카
동방박사
어린왕자

Ⅴ. 역사와 해석
단군신화
삼국유사
흥남부두
훈민정음
신사임당
임진왜란
사도세자

Ⅵ. 과학과 사회
사피엔스
오토바이
조건반사
꿈의해석

맺는말 - 꿈과 꽃

본문중에서

ㅅ이 늘어나니 사람들이 소주 말고 쏘주를 마셨고 취해 뱉는 욕들이 ㅆ으로 가득 찬 쑥대밭이 되었다. 남는 ㅡ를 ㅅ에 덮어 ㅈ을 만들었다. 아무리 자장면이라 계도해도 백성들은 남는 ㅈ을 더해 기어이 짜장면을 비볐다. 봄철이면 멀쩡한 주꾸미가 쭈꾸미로 변태했다. ㅡ를 ㅣ로 돌려쓰니 냄비가 눌어붙고 애기들이 앵앵거렸다. ㄱ도 지천이었다. 대학생들은 꽈사무실에 들러 꽈비를 내고 꽈티와 꽈잠을 주문했다. 다 공짜로 얻은 글자들 덕에 생긴 일이다. 아니지, 꽁짜로 얻은 글자들.
('공짜글자' 중에서/ p.18)

지금도 내게 그 일기장이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일기장은 책꽂이가 아니고 가슴속에 꽂아두는 것이다. 책상 서랍이 아니고 마음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기장은 더 많은 마음 아픈 사연들로 채워졌다. 일기장은 흰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쓸 곳이 부족해지자 일기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조금씩 커진 일기장이 책상을 덮었고 방 밖으로 삐져나갔다. 매일 더 커진 일기장은 하늘을 덮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다. 오늘의 일기장이다. 이처럼 어두운 것을 보니 세상의 구석에 웅크린 이들이 여전히 애절한 일기를 저기 써넣고 있는 모양이다.
('고물일기' 중에서/ pp.24~25)

연못으로 갔지. 도끼를 연못에 던지고 꺼이꺼이 하고 있는데 금도끼, 은도끼를 다 든 산신령이 정말 나타났어. 물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건 아니고 연못 주위를 배회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대본과 달리 이걸 안 주겠다는 거야. 옥신각신해서 뺏어들고 집에 왔는데 순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어디서 이런 애들 장난감을 갖고 왔냐면서. 보니까 합판에 금박지, 은박지 입혀놓은 가짜 도끼야. 아무리 세상에 믿을 인간이 없다고 하지만 산신령이 이런 사기를 쳐도 되는 거야? 앞으로는 금도끼 이야기도 내용을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오대독자' 중에서/ pp.87~88)

심판자의 침묵, 그것이 가장 두려운 취조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내가 답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기 때문이다. 수능 세대인들 얼마나 다르랴. 내게 익숙한 물음은 이렇다. 다음 중 당신이 지은 죄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 중 당신의 죄로 가장 큰 것을 고르시오. ‘다음’ 밖에는 답이 없고 ‘다음’ 안에는 답이 하나였다. 어이없는 문제들이었다. 다음 중 전당포 노파를 죽인 라스콜리니코프가 느꼈을 감정을 고르시오. 러시아에서는 3번 ‘정의감’이라고 써도 되는 모양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한국에 왔다면 대학 입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정답은 2번 ‘죄책감’이니까. 출제자 수준을 넘는 상상력, 논리적 추론, 감수성 발휘 금지.
('염라대왕' 중에서/ pp.121~122)

그 진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거냐. 여우는 당황스럽기도 해서 좀 더 말을 붙였다.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직 마음이 가난한 자가 진리에 이를 수 있느니라. 청년의 말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었다. 여우는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어린아이가 갑자기 생각났다. 스스로 왕자라고 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둥, 길들이는 게 어떤 것이냐는 둥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사라졌기에 기억에 남았다. 여우는 청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동공은 맑은 것인지 풀린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어린 왕자도 그런 눈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그 왕자가 나이를 먹은 것이 이 청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지금은 왕이 되어 있어야 했다. 혹시 당신은 왕인가. 청년의 목소리가 좀 단호해졌다. 네 말이 옳도다. 다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오직 진리에 속한 자가 내 음성을 들을 것이니라. 여우는 도대체 이 청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청년에 대해 묻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린왕자' 중에서/ p.141)

이후는 연속극에 수시로 등장하는 방식 그대로다. 우리는 정녕 사랑하였으매 그냥 가출하여 살림을 차렸다. 원룸 얻을 돈도 없었으므로 신단수 근처 궁벽한 반지하 동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고시원에 가깝다고나 해야 할 것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웅녀 배 속에 애가 들어섰다. 당연히 기뻤지만 걱정도 컸다. 이종교배불허의 처벌 조항에 태아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림은 빡빡했지만 당시 제일 유명한 [환웅(歡雄)산부인과]에 다녔다. 이름 그대로 아들 잘 낳게 한다고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흰머리의 여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사의 처방전은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자외선 쐬지 말고 식이요법에 주의하세요. 두 분 다 마늘과 쑥만 백일 동안 드세요. 피부과로 갈 다이어트 미용 처방전이 바뀐 건 아니었는지.
('단군신화' 중에서/ p.150)

점장의 이야기는 하나도 내 귀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 입가의 허연 게거품만 눈에 거슬렸다. 내가 사는 창 없는 고시원이 왜 강 보이는 강남 아파트보다 평당 월세가 높아야 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점장 같은 세대들이 우리들 옆구리에 빨대를 꼽고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최저시급이라고 알려주면 최적시급이라고 알아듣는데 말을 섞어야 피곤할 따름이다. 이 알바에서 잘리면 나는 중국집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최저시급은 글자 속에나 있게 되고 나는 고시원 월세 낼 일이 막막해진다. 점장이 원하면 우리는 한다. 열정을 기대하지는 마라. 점장의 말이 끝나면 나는 오토바이 열쇠를 꽂고 내달렸다. 신호, 차선 그런 건 묻지 마라. 내 인생의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데 가는 길인들 보이겠느냐. 길이 보이지 않는데 무서울 건 있겠으며 아쉬울 건 있겠느냐. 세상에 내가 남길 게 있다면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자국일 것이다. 나는 달린다.
('오토바이' 중에서/ pp.205~206)

마침 작전 착수 여부를 판단할 만한 실험의 첩보가 입수되었다. 러시아 생리학자였다. 그가 개를 이용한 실험을 준비한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즉각 작전을 세웠다. 파블로프의 실험은 간단했다. 우리는 그가 종을 치면 침을 흘려주었다. 파블로프는 종을 치면 개들이 침을 흘리더라며 이것이 조건반사라고 발표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종을 치는 파블로프였다. 파블로프는 그 이후 개만 보면 종을 치고 싶어 안달을 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조건반사였다. 인간이 우리에게 완전히 예속되었다는 증거였다.
('조건반사' 중에서/ p.21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7종
판매수 4,862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건축을 이루는 공간 조직은 사회 조직의 물리적 구현이라 생각하며, 그 사회를 알기 위한 방편으로 여행과 독서가 최선이라 믿고 있다. 인문학적 건축을 알린 책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시작으로 [건축을 묻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빨간 도시]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등을 펴내며 건축과 대중 사이에 놓인 담을 부지런히 허물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천상공회의소] [해심헌] [효형출판 사옥] [문추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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