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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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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진신부’는 1910~1920년대에 미주 지역의 한인 남성들이 한국의 여성들과 사진을 교환하여 혼인한 중매결혼 또는 그렇게 결혼한 여성을 말한다. 약 600~1,000명의 여성이 하와이로 건너갔고, 이들로 인해 미주 한인 사회는 기반을 넓히고 발전할 수 있었기에 사진신부는 한인 이민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사진신부와 관련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그 의미에 비해 깊이 있게 연구되지 못하였다. 1915년, 19세의 나이로 하와이에 건너간 사진신부 천연희는 말년에 자신의 일생을 24개의 구술 녹음테이프와 7권의 노트에 기록하였다. 천연희는 자신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의 동향과 독립운동단체의 활동, 이에 대한 정치적 의견 등을 노트에 솔직하게 써 나갔다. 이 책은 천연희가 남긴 노트 7권의 원문과 현대문, 그에 대한 해제와 역주를 실은 역주 해제본이다. 일제 강점기에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 아내라는 자리를 넘어 여섯 자녀의 어머니로서, 사업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의 지난하고도 강인한 삶의 기록이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천연희의 기록은 이민사, 여성사, 구술 기록사, 언어학적 변천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일차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굴곡진 시대를 통과한 한 여성의 자전적 기록으로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출판사 서평

7권의 노트와 24개의 구술 녹음테이프, 공문서와 편지,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남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일생을 통해 만나는 하와이 한인 이민여성의 삶


1901년 함경도의 극심한 가뭄은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삶을 뿌리까지 뒤흔들었다. 1902년에는 전염병이 전국을 휩쓸어 말 그대로 백성들은 도탄(塗炭)에 빠진 상태였다. 당시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해온 하와이는 한창 값싸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1850년대부터 중국인과 유럽인, 일본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갈등이 커지자 하와이 정부는 한국, 필리핀, 포르투갈 등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기근 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던 대한제국은 주한 미국공사 알렌이 추진한 이민 사업과 맞물려 이민 정책을 추진하고자 담당 기관을 설치했다. 하와이 당국에서 파견한 데슐러가 회사를 세우고 하와이 이민자를 모집했다. 한국에서 공식적인 해외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1903년, 감리교회 존스 목사가 적극적으로 설득한 교인 남녀 50명과 제물포항의 노동자 20명, 전국에서 모집한 51명이 첫 하와이 이민을 떠났다. 이후 많은 남성들이 하와이에 노동이민을 떠났는데, 대부분 홀로 이주하여 농장에서 일하던 그들에게 점차 정착과 생활 문제가 대두되자 그 해결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사진결혼’이다.

사진신부가 직접 남긴 자전적 기록의 첫 한국어 출판
한 시대를 미시적으로 보여주는 생활문화사 기록


사진결혼이란 한국에 사는 여성과 미주 지역에 노동이민을 온 남성이 서로 사진을 교환하여 혼인하는 중매결혼을 말한다. 당시 일본인들이 사진과 서신으로 혼인하는 모습을 보고 미주 지역의 한인들도 이 방식을 따랐으며, 하와이 정부는 관련법을 만들어, 결혼하려고 하와이에 오는 여성들의 입국을 허가했다. 이렇게 하와이로 건너간 ‘사진신부’의 수는 1910~1920년대에 약 600~1,000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경제적 이유와 남녀차별 사회에서 박탈당한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이민을 택했다. 중매인들은 여성들에게 하와이에 가면 돈을 많이 벌고 교육도 받으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희망은 사진신부들이 이민선을 타고 일본을 거쳐 하와이까지 가는 힘겨운 여정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이들을 기다린 것은 자신보다 20년 이상 나이 많은 남편, 가난과 힘든 노동이었다. 남성들이 대개 자신이 젊을 때의 사진을 보내거나 나이를 속였고, 중매인들은 사진신부를 모집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 같은 어려움을 견디고 사진신부들은 아내이자 어머니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활인으로 하와이에 정착해 미주 한인사회의 기반을 넓히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다양한 단체 활동을 통해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고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진신부 관련 기록이 많지 않아 이들의 역할과 의미가 깊이 있게 연구되지 못했다. 사진신부와 그 가족을 인터뷰한 내용, 2세들의 기록, 몇 편의 논문, 신문이나 잡지 기사, 다큐멘터리 등이 있으나 절대적 수가 적다. 특히 사진신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으로 남긴 것은 현재까지 이영옥과 천연희 두 사람의 것뿐이다. (이영옥의 기록은 윤원길이 영어로 번역, 요약하여 미국에서 출판했으나 현재 기록 원본의 행방이 알려져 있지 않다.) 천연희는 말년에 자신의 일생을 24개의 구술 녹음테이프와 7권의 노트에 남겼다. 자신의 유년시절과 하와이에 사진신부로 오게 된 사정,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하와이 한인사회의 동향과 독립운동단체의 활동, 이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의견 등을 매우 자세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다. 자신의 삶을 그가 산 시대의 문화․정치․사회와 연관 지어 서술했다는 점에서 천연희의 기록은 한 시대의 면모를 미시적으로 보여주는 생활문화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7년 연상의 첫 남편, 세 번의 결혼, 여섯 자녀의 어머니
아내라는 자리를 넘어 어머니로서, 사업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의 지난하고도 강인한 삶의 기록


1896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한 천연희는 19세 때인 1915년 하와이 마우이섬의 파이아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길찬록의 사진신부로 이민을 가 101세로 세상을 떠난 1997년까지 하와이에서 산 여성이다. 고향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생활하고 기독교계 여학교를 다니던 천연희는 일제의 압박을 받는 답답한 현실과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사진신부가 되기를 자청했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가부장제에서 비껴난 가정환경도 천연희가 사진신부로 떠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자식들을 여럿 잃은 어머니는 천연희가 먼 곳으로 떠나 다른 자식들처럼 요절하지 않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다.

천연희는 27살 연상의 첫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자녀 셋을 낳았으나 남편이 술을 좋아하고 일을 제대로 못해 가족을 보살피지 못하자 그와 별거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던 중 자신과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박대성을 만나게 되어 길찬록과 이혼하고 박대성과 재혼했다. 박대성과의 사이에도 자녀 셋을 두었으나 그가 안정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전 남편의 딸 메리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등 자녀교육 문제로 불화를 빚자 천연희는 그와 이혼한다. 아이들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천연희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천연희는 가족의 생계와 자녀교육을 위해 빨래, 바느질, 여관업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했다. 45세가 된 1941년, 미국인 남성 로버트 기븐을 만나 재혼한 천연희는 카네이션 농장과 호텔을 경영하며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모두 결혼시켰다. "미국 민주주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원해서 사진혼인으로 들어오고자 희망한" 천연희는 척박한 생활 속에서도 [태평양잡지]나 [국민보] 같은 한인 신문 잡지를 꾸준히 읽고 국민회, 동지회 등을 후원했다. 또한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교회에도 꾸준히 다녔는데, 특히 이승만이 설립한 한인기독교회에 출석했다. 천연희는 이승만의 적극적 지지자였다.

남편 기븐이 지병으로 사망한 후에도 천연희는 혼자 생활하며 노년에도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75세 때인 1971년부터 88세가 된 1984년까지 천연희는 7권의 노트에 자신의 일생을 또박또박 적어서 남겼다. 그리고 1997년, 하와이에서 파란만장한 101년의 삶을 마감했다. 천연희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기록과 자료는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의 주선을 거쳐 하와이 대학교에 기증되었다가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재기증되어 마침내 고국에 자리를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고국을 떠나 하와이 이민 1세대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개척한 천연희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의 뼈아픈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2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천연희의 노트 7권에 대한 해제이다. 이덕희, 문옥표, 김순주, 함한희, 김점숙 5명의 연구자들이 각기 천연희 기록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사진신부로 떠나기 전의 삶, 결혼과 가족생활, 경제활동, 사회참여 활동을 정리하고 설명했다.

제2부는 천연희 노트 7권의 원문과 현대문이다. 천연희는 노트에 한글 세로쓰기로 내용을 적었는데,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옛 한국어, 진주 방언, 들리는 대로 적은 영어․일어 단어, 하와이어 등이 뒤섞여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천연희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료라는 점을 감안하여 책 왼쪽 면에 띄어쓰기를 한 원문을 실었다. 오른쪽 면에는 원문을 현대문으로 바꾸어 싣고, 천연희의 기록에서 부정확한 부분이나 오류,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역주를 달아 현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했다.

부록으로, 천연희가 남긴 24개의 구술 녹음테이프를 정리, 요약한 영문 글을 실었다. 이 글은 천연희의 딸 메리 자보가 어머니의 구술을 녹음한 후 본인이 직접 그 내용을 요약해 노트에 적은 것이다. 메리 자보는 어머니의 기록과 자료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기증한 장본인이다.
책 중간에는 천연희 관련 자료 사진과 당시 하와이 한인이민 사회를 보여 주는 사진을 실었다. 20세기 초 하와이 사진신부로 간 한국인 여성 천연희의 기록은 사진신부 연구뿐만 아니라 이민사, 여성사 등 여러 분야의 기초 연구 자료로서 의미 있는 사료이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한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한국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5
역주 해제본 발간에 부쳐: 천연희의 딸, 메리 자보의 편지 12

제1부 천연희 노트의 배경과 해제
천연희 기록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_ 이덕희 18
사진신부로 떠나기 전 진주에서의 삶 _ 문옥표 43
세 번의 결혼과 가족생활 _ 김순주 58
천연희의 경제활동과 일가의 경영 _ 함한희 72
천연희의 사회참여 활동 _ 김점숙 90

제2부 천연희 노트의 원문과 역주본
천연희 노트 1권 139
천연희 노트 2권 279
천연희 노트 3권 441
천연희 노트 5권 581
천연희 노트 6권 623
천연희 노트 7권 661
천연희 노트 8권 731

부록: 천연희 구술 테이프 요약_ 메리 자보 781
찾아보기 877

본문중에서

이 용감한 여성들은 사진으로만 본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와이에서 맞닥뜨린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온갖 방법과 전략을 강구해야 했으며,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그들은 일터와 교회, 절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여성들과 서로 도우며 정을 나누었다. (중략) 그들은 모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겠다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 p.9)

20세기 초 하와이로 진출한 사탕수수 노동자들에게 사진신부로 간 다른 여성들에 비해 천연희는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었고 교육도 받은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안 계셨다는 점, 많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천연희가 사진신부로 가는 것을 허락하고 지원해 주었다는 점 등이 사진신부로 떠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 p.55)

한인 사진신부들은 대부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경제적 이유와 남녀 차별적 사회에서 박탈당한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이민을 택하였다. 하지만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천연희가 미국행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즉 정치적 동기 때문이었다.
(/ p.94)

"마침 내 딸이 중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를 잘했다. 박은 딸이 대학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중학을 마치면 어디 가서 일하고 돈벌이하는 것을 원했다. 나는 그 목적이 아니었다. 내가 길찬록 씨와 이혼한 이유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공부시킬 작정으로 한 목적인 고로 내 주의의 작정은 누가 빼앗아가지 못한다. 내 몸이 없어질망정 내 목적은 빼앗지 못한다. 그래서 충돌이 집에서 있었다."
('천연희 노트 2권' 중에서/ p.387)

저자소개

문옥표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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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From Paddy Field to Ski Slope: The Revitalisation of Tradition in Japanese Village Life, [한국인의 소비와 여가생활](공저),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공저), [신여성:한국과 일본의 근대 여성상](공저), [조선양반의 생활세계](공저), [해외한인의 민족관계](공저), [우리 안의 외국 문화](공저), Japanese Tourism and Travel Culture(공편), [교토 니시진오리의 문화사] 등이, 역서로 [문화의 해석], [증보 사례편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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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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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와이에서 30여 년간 환경계획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하와이 한인이민사 연구에 몰두하여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저서로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한인기독교회, 한인기독학원, 대한인동지회], [재외동포사 연표: 미국],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등이 있다.

함한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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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인류학에 관심을 두고, 한국 농어촌사회의 변화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해오고 있다. 저서로 [미완의 기록, 새만금사업과 어민들](편저), [인류학과 지방의 역사](공저), [부엌의 문화사], [20세기 어머니 이석희의 삶과 근대이야기](공저) 등이, 논문으로 [구술사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한국전쟁과 여성: 경계에 선 여성들], [한국문화연구의 성과와 쟁점] 등이 있다.

김점숙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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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조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일제 강점기 사회운동사와 해방 후 한미 경제 관계사를 연구하였고, 최근에는 재외 동포사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공저로 [여성의 역사를 찾아서], [유럽 한인의 역사 (상)], [하와이 동포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 [한국 근현대 대외관계사의 재조명], [근대의 이민과 인천], [시민과 함께하는 서울],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한국 근현대 지역운동사 Ⅱ], [전남 사회운동사 연구] 등이 있다.

김순주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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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식민주의, 지역사, 아카이브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저로 [동아시아 관광의 상호시선: 근대 이후 한중일 관광 지형의 변화],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장서의 성격과 활용: 식민주의와 총동원체제], [근대문화유산과 서울 사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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