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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단순하게 살아 보기』는 저자가 직접 섬에서의 삶을 체험하며 느낀 기록을 에세이 작품으로 담은 책이다. 남해의 작은 섬에 방 하나를 구해놓고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들어가 미니멀리스트로 살아 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며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원칙을 정하고 이 삶에 ‘실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혼자가 되라
터널 같은 고요 속을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거기 머물라

등에 진 짐 내려 가볍게 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무게가 다 사라지게 하라

저자는 일에서 자유로워지자 내 식대로 살아 보아야겠다는 욕구가 더 강해졌고 그의 꿈꾸는 삶은 최대한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다. 주위 사람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을 찾아 남해의 작은 섬에 방 하나를 구해놓고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들어가 미니멀리스트로 살아 보기로 한다. 미니멀리스트는 모든 걸 최소화시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며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원칙을 정하고 이 삶에 ‘실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실험은 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저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맑고 투명해졌으며 비울수록 풍족해진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글은 그동안의 기록이다.

1 실험
실험 / 동백나무 / 바람 / 별 / 자리다툼 / 단순하게 / 음식 / 낙원

2 일거리 줄이기
등대 / 빈집 / 고요 / 친절 / 산책 / 일거리 줄이기 / 자비 실천 / 길

3 어느 하루
글쓰기 / 비 오는 날 / 아침 / 어느 하루 / 태풍 / 낚시 / 방문객 / 집

4 왕이 되다
안개 / 작은 새 / 난 내가 좋다네 / 더 느리게 / 왕이 되다 / 친구들 / 먼지로 돌아가라 / 실험의 결과

느린 걸음으로 바닷가를 걷는다. 저 멀리 어선 한 척이 떠가고 갈매기 몇 마리가 머리 위를 난다. 맞은편에 보이는 섬 위로 하얀 길이 넥타이처럼 구겨진 채 내달리고 있다.
파도는 밀려갔다가 다시 힘을 모아 전력으로 달려온다. 그 모습이 뭍으로 기어오르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흔적만 남길 뿐 길은 열리지 않는다.
분주하고 요란하나 때로는 장엄하기도 한 파도의 엄청난 힘이 전해져 온다. 바다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임을 깨닫는다. 파도는 바다의 호흡이다. 어류나 패류, 해초들은 이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는다.
가끔씩 산소 부족 현상이 생기면 태풍이나 해일의 도움을 받아 몸을 크게 뒤척여 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품에 안긴 생명들은 언제나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로 목숨을 이어 간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바다의 품이 얼마나 크고 넉넉한지 가늠해 본다. 바다는 그렇게 크고 넓어도 한없이 단순하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도 그렇고 눈 온 세상도 그렇고 초록 들판도 그렇다.
35쪽 「단순하게」 중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행복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연의 본성에 눈길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래지 않아 무한한 평화를 마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리라. 그 평화가 바로 행복의 숙성된 알갱이인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행불행이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환경에 적응하며 형성된 습관이 선택을 주도하는데 습관이 왜곡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노여움을 선택하게 된다. 노여움은 심장을 파고들어 불행의 바이러스를 심어 놓는다.
조직 사회에서 인간은 시계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다.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유 의지는 무시되고 사고와 행동은 질서를 향하여 초점이 모아진다. 질서에 협조하지 않는 존재는 가차 없이 라인 밖으로 폐기 처분된다. 이런 상황이 차츰 습관을 왜곡시킨다. 조직 사회에 길들여지는 걸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혼자가 되어야,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 스스로의 존엄이 더욱 확연해진다.
71쪽 「고요」 중에서

바닷가를 거닐다가 얕은 곳에서 놀고 있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쥐치 한 마리를 잡고, 언덕을 올라가서 폐교를 둘러보았다. 다시 마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파에 앉아 있다가 택배로 부칠 짐을 리어카로 옮기는 일을 도와주고 냉수 한 잔을 얻어 마셨다.
이렇게 하루해를 보내고 두미도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난 일이 아니며 노대도에 도착한 그 순간 한꺼번에 일어난 일처럼 여겨졌다. 섬에 내리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어느새 돌아갈 시각이 되어 배에 오르는 발을 디딘 것이다.
이것을 시간이 빨리 갔다고 하지 않고 정지되었다 표현한 것은 시간의 개념으로는 그 느낌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 속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지루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여유로웠고 편안했으며 만족스러웠다.
비로소 이런 느낌은 섬이란, 그것도 문명과는 철저하게 격리된 아주 작은 섬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에서는 일들이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서 잠깐 한눈을 팔면 실타래가 헝클어지듯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래서 늘 긴장하며 시간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이 작은 섬에서는 도대체가 욕심낼 일이 없다.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면 그만이다. 잠에서 깨면 일어나 밥을 먹고, 늘 하던 대로 바다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피곤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한숨 자고, 할 일이 없으면 소파에 앉아 바다를 보든지 산에 올라 바람을 쐬든지 하면 될 일이다.
169쪽 「더 느리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