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신용카드 청구할인
카카오페이 3,000원
(카카오페이 결제 시 최대할인 3천원 / 5만원 이상 결제, 기간 중 1회)
PAYCO(페이코) 최대 5,000원 할인
(페이코 신규 회원 및 90일 휴면 회원 한정)
북피니언 롯데카드 30% (11,97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EBS 롯데카드 20% (13,68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NEW 우리V카드 10% (15,39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현대카드 7% (15,91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NH쇼핑&인터파크카드 20% (13,680원)
(최대할인 4만원 / 2만원 이상 결제)
Close

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소득공제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판매지수 301
?
판매지수란?
사이트의 판매량에 기반하여 판매량 추이를 반영한 인터파크 도서에서의 독립적인 판매 지수입니다.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상품에 가중치를 두었기 때문에 실제 누적 판매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매량 외에도 다양한 가중치로 구성되어 최근의 이슈도서 확인시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수는 매일 갱신됩니다.
Close
공유하기
정가

19,000원

  • 17,100 (10%할인)

    950P (5%적립)

  • 구매

    13,400 (29%할인)

    670P (5%적립)

할인혜택
적립혜택
  • I-Point 적립은 출고완료 후 14일 이내 마이페이지에서 적립받기한 경우만 적립됩니다.
  • 추가혜택
    배송정보
    주문수량
    감소 증가
    • 북카트 담기
    • 바로구매
    • 매장픽업
    • 이벤트/기획전

    • 연관도서(6)

    • 사은품(3)

    책소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필생의 역작!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모태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세계를 향한 두 번째 여정!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읽는 그리스인의 역사, 그 두 번째 이야기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그중 둘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Ⅱ: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많은 부분에서 절정기를 이룬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조망한다. 그리고 아테네의 국운을 결정지은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아테네의 쇠퇴를 통해 그리스 세계가 급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는 그리스 세계를 양분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각축전을 배경으로 민주정치의 발전과 한계, 그리고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출판사 서평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황금시대,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를 양분하는 강국이 되었다. 과두정치의 스파르타는 "변하지 않고 갈구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아테네는 달랐다. 민주정치를 운영하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길 원했고,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길 바랐다. 기원전 461~기원전 492년까지 아테네의 발전은 눈부셨고 민주주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실현된 일이 없을 만큼 원활하게 작동"했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했다. 아테네는 명실상부 델로스동맹의 맹주였고, 수도에만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으며, 대부분의 도시국가가 1척도 운용하기 힘든 삼단갤리선을 200척이나 운용하는 등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했다. 또한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하고 매년 축제, 경기, 연극제를 개최하는 등 문화와 예술 융성에도 힘을 쏟으며 ‘그리스인 모두의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아테네는 어떻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황금시대’를 맞이하며 번영과 풍요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리스인 이야기 Ⅱ]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성장 원동력과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정을 담당하는 최고 직위 ‘스트라테고스(Strategos)’에 32년 동안 연속으로 당선되면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리더 페리클레스는 민주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을 통합시키고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테네 사회의 가장 아래에 외치한 노동자계급의 생활을 보장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 것이 그중 하나다. 그리고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이들 동지중해 3대 강국의 리더는 비슷한 시기에 군주 지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양식(良識)을 지닌 자들이었다. 이들은 국제관계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며 전쟁을 피했으며 설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위험을 막았다.

    아테네는 이런 평화 유지 노력과는 별개로 강력한 해군력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델로스동맹을 견실하게 유지했다. 바다가 안전해지자 그리스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아테네의 식량 수입로도 안전해졌다. 또한 육지의 안전도 도모했는데, 아테네는 외항인 피레우스 항구와 성벽을 잇는 일체화 작업을 통해 외적의 침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경제 센터로 변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안전이 확보되니 돈과 사람과 물자가 몰리면서 투자와 교역이 활발해졌고 덩달아 예술과 문화도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 이야기 Ⅰ]에서 아테네의 개혁이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은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비로소 완성에 다다른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테네인들의 현실적 요구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과제이다. 이 책이 그리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발전상을 들여다보면 내일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최대 적은 그리스 자신이었다!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쇠락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다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뒤 48년간 그리스인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는데 특히 아테네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하였고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무조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테네는 강제로 스파르타의 동맹국이 되었고, 델로스동맹은 해체되었으며, 막강했던 해군력은 소멸되었다. 아테네와 피레우스 항구 일체화가 파괴되어 거대한 통상 센터로서의 기능과 위용마저 상실해버렸다. 무엇보다 강제로 민주정치를 포기하고 과두정치로 이행해야 했다.

    아테네가 100년 동안 유지해온 그리스 세계의 패권과 민주정치를 상실하고 쇠락하게 된 것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테네의 추락을 아테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그리스 전체가 패했다. 자기들이 쌓아 올린 가치관을 스스로 붕괴시킨 것"이라고 평했다. 과연 아테네와 그들의 민주주의는 어떤 과오와 한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기원전 430년 페리클레스는 전쟁, 난민, 역병의 책임과 공금 악용이라는 이유로 스트라테고스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숨을 거두자 아테네의 정계에는 선동자(데마고그)들이 득세했고 우중정치가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정치의 리더는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유도’하지만 우중정치의 리더는 민중의 마음속 불안을 ‘선동’한다"고 분석했다. 아테네의 국정은 이 선동자 그룹에 의해 좌우되었지만 그들은 발전적인 비전을 내놓기보다 비판만 일삼고 장기적인 시작과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이들은 아테네 정계 근처를 배회하며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자극해 잘못된 고민과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페리클레스 이후 등장한 양대 정당은 대립하기 바빴고, 시민들은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었다. 이처럼 불안정한 정권이 군사적, 정책적 실패를 거듭하자 아테네 시민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두고 "형태는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혼자 통치했다"고 평가했다. 어떤 관점에서는 독재와 비민주의 요소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테네는 장기적인 발전 과제를 두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아테네는 그러지 못했다. 급기야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정치를 버리고 ‘400인 정권’ ‘5,000인 정권’ 등 과두정치를 내세웠지만 이는 길게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민주정치로 돌아갔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자 아테네의 국력은 전진하기보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향해 공세를 펼쳤다. 특히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공격하는 스파르타를 여러 방면으로 원조했고,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테네의 병력을 빼오기를 서슴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대목에서 "그리스인의 민족정신이 약화되었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아테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가치관의 근간을 포기했다.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에 포위당한 동맹국의 원군 요청을 묵살하거나 동맹국에 부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맹주로서의 신의(信義)를 잃었고, 반란을 진압하면서 불필요한 살육을 자행하여 양식(良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그리스 세계를 두고 "아테네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전체가 양식이 없는 사람들로 변해버렸다"며 한탄한다. 1권에서 이미 예고한 대로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결국 그리스의 중심이자 ‘본보기’였던 아테네는 ‘본보기’이기를 포기한 채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고 있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쇠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세계와 민주주의에 드리운 그림자는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목차

    제1부 민주정치의 황금시대
    페리클레스 시대: 기원전 461~기원전 429년(33년)

    1. 황금시대 전기
    기원전 461~기원전 451년(11년)
    - 라이벌 키몬
    - 숙적 스파르타
    - 30대 페리클레스
    - 연속 당선
    - 무기는 언어
    - 젊은 권력자들
    - 페리클레스의 연설
    - 단단한 기반
    - 궁극적인 데모크라티아
    - 키몬, 돌아오다
    - 라이벌, 퇴장하다

    2. 황금시대 후기
    기원전 450~기원전 429년(22년)
    - 껍질을 벗은 페리클레스
    - 칼리아스 강화
    - 파르테논
    - 아테네의 노동자계급
    - 펠로폰네소스동맹과 델로스동맹
    - 미래 그리스의 평화를 토의하는 회의
    -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공존
    - 사랑하는 사람, 아스파시아
    - 변화하는 델로스동맹
    - 새로운 시장 개척
    - 사모스 섬 사건
    - 에게 해의 북쪽
    - 전쟁은 변방에서
    - 확산되는 전선
    - 전쟁이라는 악마
    - 각 나라의 신중파
    - 펠로폰네소스전쟁
    - 테베, 움직이다
    - 전쟁 첫해
    - 페리클레스의 개전 연설
    - 진심은 어디에?
    - 전몰자 추도 연설
    - 역병의 대유행
    - 탄핵
    - 오랜만의 승리
    - 죽음

    제2부 우중정치 시대
    페리클레스 이후: 기원전 429~기원전 404년(26년)

    3. 우중정치 시대 전기
    기원전 429~기원전 413년(17년)
    - 왜 우중정치로?
    - 선동자 클레온
    - 스파르타의 태도
    - 레스보스 문제
    - 확대되는 잔혹함
    - 스파르타의 패배
    - 아웃사이더 등용의 시작
    - 전선 확대
    - 역사가의 탄생
    - 스파르타의 제안
    - 니키아스 강화
    - 그리스인에게 평화란
    - 젊은 지도자의 등장
    - 소크라테스
    - 청년 정치가 알키비아데스
    - 4국동맹
    - 만티네이아전투
    - 올림픽 시상대 독점
    - 플라톤의 [향연]/ 멜로스 문제
    - 시칠리아 원정
    - 헤르메스 신상 파괴 사건
    - 출전
    - 출두 명령
    - 시라쿠사
    - 시라쿠사 공방전
    - 알키비아데스, 스파르타로
    - 다시 아웃사이더
    - 용병 도착
    - 니키아스 홀로
    - 니키아스, 집으로 편지를 쓰다
    - 원군 파견
    - 공방전 2년째
    - 첫 번째 해전
    - 두 번째 해전
    - 원군 도착
    - 월식
    - 세 번째 해전
    - 최후의 해전
    - 탈출
    - 종언

    4 우중정치 시대 후기
    기원전 412~기원전 404년(9년)
    - 참화가 알려지고
    - 재기
    - 에게 해의 동쪽
    - 다시 알키비아데스
    - 정국 불안
    - 해군 장군 알키비아데스
    - 새로운 세금이라는 실책
    - 트리에라르코스
    - 연전연승
    - 다시 민주정치로
    - 사랑했다, 미워했다, 그래도 바랐다
    - 리산드로스
    - 알키비아데스의 실각
    - 사령관들의 사형
    - 바다에서 단 한 번의 패배
    - 암살당한 알키비아데스
    - 귀국하는 사람들
    - 무조건 항복

    연표
    도판 출처

    본문중에서

    노력과 노고를 기울이지 않고도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완전한 착각이다.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고난 극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인간과 그 길을 확고하게 만드는 임무를 부여받은 인간의 차이다. 만약 내가 플루타르코스를 흉내 내어 그리스에서 한 사람, 로마에서 한 사람을 택해 서로 대비하는 열전을 쓴다면 페리클레스와 짝을 이룰 로마의 인물로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초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를 고를 것이다. 후계자에게 필요한 노력과 노고의 성질은 ‘창업자’의 그것과 다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뛰어나든가 그렇지 않든가, 두 가지밖에 없다. 이후 페리클레스의 30여 년 역시 노력과 노고의 연속이었다.
    (/ pp.31~32)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은 이것이다. "형태는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혼자 통치했다." 이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혼자’ 지배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략) 아테네의 국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명문가 출신이든 자산가든 ‘스트라테고스(Strategos)’에 선출되어야 했다. 그러자면 ‘트리부스(tribus)’라고 불리는 선거구에서 행해지는 선거에 당선되어야 했다. 게다가 도시국가 아테네의 행정구역인 ‘트리부스’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에 따라 아테네의 영토인 아티카 지방 세 곳에 각각 분산되어 있었다. 오늘날처럼 선거구를 찾아가 유권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트라테고스’는 선거를 통해 1년에 한 번 선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페리클레스는 33세에 처음 당선된 이후 32년에 걸쳐 계속 스트라테고스에 당선되었다. 그의 낙선을 기록한 사료는 없다.
    (/ pp.37~38)

    페리클레스의 논법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유혹해서 이끈다’는 의미를 가진 ‘유도(誘導)’만큼 적절한 말도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 국가 시민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던 아테네인을 강제로 끌고 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였다. 따라서 이치를 통해 ‘유혹해서 이끌고’ 가는 방법이 가장 유효했는데, 그럼에도 그 교묘함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페리클레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 p.42)

    민주정치를 운용하는 아테네에서는 이 사람들 또한 훌륭한 시민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시민의 권리인 국정 참여는 물론이고 의무인 병역도 부과되었다. 병역의 경우 이들은 경무장 보병이나 군선의 노 젓는 선원이 되었다. 특히 선원은 살라미스해전에서 승리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제4계급에 속한다 하더라도 지위가 확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매일 일을 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시에는 조국이 위기에 처했으니 무보수로 병역을 감당한다지만, 평시에 공무를 맡으면 수입이 끊어지기 때문에 감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추첨으로 ‘불레’에 선발되어도 사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페리클레스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이념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시국가 아테네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퇴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현실은,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정치 국가 아테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페리클레스는 시민집회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시민에게 재직 기간 동안 일당을 지불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 pp.56~57)

    이전에 아테네에는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존재했다. 아테나 여신은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신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는 예부터 이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아테나 신전은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 신전이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비교하면 규모나 화려함에서 뒤졌고,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신전과 별로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더구나 기원전 480년 제1차 페르시아전쟁 때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불타고 말았다. 그 후 도시의 수호신 아테나는 가건물과 같은 신전에서 비를 피해야 했다. 그것을 33년 만에 재건하기로 했다. 당시 아테네 시민은 ‘칼리아스 강화’ 성립과 아테나 신전 재건을 동일선상에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실제로 시민집회는 페리클레스가 제안한 신전 재건 공사를 반대 없이 단번에 가결했다. 페리클레스는 그리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신전을 짓고 싶지는 않았다. 골짜기에 있는 올림피아나 델포이와 달리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아테네 어디서나 보이는 위치였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번영을 상징하는 신전 건설 장소로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장엄하고 화려한 신전이 모습을 드러내면 매일 그곳을 바라보는 아테네 시민에게는 큰 자부심이 될 터였고, 아테네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감탄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볼 터였다.
    (/ pp.82~83)

    참고로 아테네에서는 자산가들이 돈을 토해내게 만드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활용했다. 하나는 연극 공연 스폰서를 맡기는 것이었다. 비극 두 작품과 희극 한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드는 비용 전체를 감당해야 했기에 상당한 금액이 필요했다. 다른 하나는 삼단 갤리선 1척을 바다에 내보내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었다. 삼단갤리선 1척을 건조하는 데 1탈란톤이 들었다. 1탈란톤은 6,000드라크마에 해당하므로 아테네 노동자의 30년 수입을 넘어서는 액수였다. 한편 갤리선 스폰서가 내야 하는 돈은 배를 건조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군선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필요한 전력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노 젓는 선원 170명을 포함한 선원들의 급료 전체를 부담해야 했다. 이 외에 연극 공연 스폰서를 맡는 것과 다른 점이 또 있었다. 돈을 낸 스폰서가 자기 사비를 들여서 전력화한 삼단 갤리선의 선장까지 맡아야 했고, 전쟁터에 직접 나가야 했다. 돈을 낸 사람도 신체가 멀쩡하니 조국 방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였을까. 전쟁에 나가 과감하게 전투에 참가하면 지명도가 올라가고 다음 해 스트라테고스에 선출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전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 pp.93~94)

    아테네는 계속 해군력을 증강했다. 언제나 보수적인 스파르타에서도 자기네 자랑인 육군 전력을 유지하는 데 반대하는 스파르타인은 없었다. 이로써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가 맹주인 ‘펠로폰네소스동맹’ 사이의 성공적인 ‘동거’가 50년 동안 이어졌다. 이것이 평화 유지의 참된 원인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세력균형상태의 확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두 나라의 ‘동거’는 50년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테네는 해군 국가였고 스파르타는 육군 국가였다. 아테네는 기지 건설에 대한 욕망은 있었지만 영토 확장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영토가 확대되어도 그곳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았다. 스파르타도 일국 평화주의를 유지한 역사가 길었고 자국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만족하며 영토 확장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두 강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테네의 1인자 페리클레스와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 왕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일어났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코르푸와 코린토스의 다툼으로 점화된 불길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통해 살펴보았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바깥으로 퍼져나가는데, 전쟁은 이와 반대로 변경에서 일어난 사태의 파문이 중앙을 향해 모이는 사례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해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매우 어리석을 정도로 소박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아테네의 주요 전력은 해상에 있고 스파르타의 주요 전력이자 유일한 전력은 육지에 있었다. 바다에 발판이 있는 나라와 육지에 서 있는 나라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을까? 두 나라는 실제로 정면으로 격돌한 적이 있었을까? 상세한 서술은 앞으로 하겠지만, 우선 답하면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27년 동안 승패를 가르지 못하고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희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은 동전을 닮아서 앞뒤 관계다. 희비극(tragico-comico)이라는 말도 있다.
    (/ pp.171~172)

    저자소개

    시오노 나나미(Nanami Shio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7.07.07~
    출생지 일본 도쿄
    출간도서 141종
    판매수 225,863권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으로 수많은

    펼쳐보기

    저자의 다른책

    전체보기
    펼쳐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문화인류학 박사. 저술가 및 번역가.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화 읽어주는 남자』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그리스와 놀자』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황금과 교역의 나라 페르시아』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를 비롯하여,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

    펼쳐보기

    역자의 다른책

    전체보기
    펼쳐보기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이 상품의 시리즈

    이 상품의 패키지(총 2권)

    선택한 상품 북카트담기

    이 책과 내용이 비슷한 책 ? 내용 유사도란? 이 도서가 가진 내용을 분석하여 기준 도서와 얼마나 많이 유사한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비율입니다.

      리뷰

      8.8 (총 0건)

      기대평

      작성시 유의사항

      평점
      0/200자
      등록하기

      기대평

      10.0

      교환/환불

      교환/환불 방법

      ‘마이페이지 > 취소/반품/교환/환불’ 에서 신청함, 1:1 문의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1577-2555) 이용 가능

      교환/환불 가능 기간

      고객변심은 출고완료 다음날부터 14일 까지만 교환/환불이 가능함

      교환/환불 비용

      고객변심 또는 구매착오의 경우에만 2,500원 택배비를 고객님이 부담함

      교환/환불 불가사유

      반품접수 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보낼 경우 상품 확인이 어려워 환불이 불가할 수 있음
      배송된 상품의 분실, 상품포장이 훼손된 경우, 비닐랩핑된 상품의 비닐 개봉시 교환/반품이 불가능함

      소비자 피해보상

      소비자 피해보상의 분쟁처리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비해 보상 받을 수 있음
      교환/반품/보증조건 및 품질보증 기준은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라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음

      기타

      도매상 및 제작사 사정에 따라 품절/절판 등의 사유로 주문이 취소될 수 있음(이 경우 인터파크도서에서 고객님께 별도로 연락하여 고지함)

      배송안내

      • 인터파크 도서 상품은 택배로 배송되며, 출고완료 1~2일내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출고가능 시간이 서로 다른 상품을 함께 주문할 경우 출고가능 시간이 가장 긴 상품을 기준으로 배송됩니다.

      • 군부대, 교도소 등 특정기관은 우체국 택배만 배송가능하여, 인터파크 외 타업체 배송상품인 경우 발송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배송비

      도서(중고도서 포함)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음반/DVD/잡지/만화 구매

      2,000원 (2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와 음반/DVD/잡지/만화/
      중고직배송상품을 함께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업체직접배송상품 구매

      업체별 상이한 배송비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