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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감정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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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종갑
  • 출판사 : 은행나무
  • 발행 : 2017년 08월 16일
  • 쪽수 : 2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660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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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질문에 답함
지금 손안에서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학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고, 일상을 통해 작동해야 함을 말하는 작은 인문학 책, ‘테이크아웃 인문학’을 표방하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와 함께하는 이 시리즈는 2014 출간된 1차분 5권—[생각, 의식의 소음](김종갑)·[죽음, 지속의 사라짐](최은주)·[선택, 선택의 재발견](김운하)·[효율성, 문명의 편견](이근세)·[질병, 영원한 추상성](최은주)—에서 현대인의 정신병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에서부터 생각, 선택 등 일상적인 키워드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구를 선보였다.
3년 만에 추가로 출시되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2차분은 그 무엇보다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에 주목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감정 ‘혐오’, 모든 정동의 중심이 되는 ‘자아’, 인류에게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는 ‘사랑’, 의학적인 측면이나 심리적인 측면 모두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억’에 관해 소설, 영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내러티브들을 들어 수많은 사유의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마이크로 인문학]은 인문학이란 게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문제들, 혹은 사건들을 다루는 활동이며, 인문학은 책이나 강의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삶에서,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순간에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을 비교적 일상적인 키워드들을 통해 톺아본다.

01 생각, 의식의 소음-김종갑
02 죽음, 지속의 사라짐-최은주
03 선택, 선택의 재발견-김운하
04 효율성, 문명의 편견-이근세
05 질병, 영원한 추상성-최은주
06 혐오, 감정의 정치학-김종갑
07 자아, 친숙한 이방인-김석
08 기억,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서길완(8월 23일 출간)
09 사랑, 삶의 재발명-임지연(8월 23일 출간)

출판사 서평

원래부터 혐오스러운 것은 없다

정치적이고 동물적이고 생리적인 감정, 혐오에 관한 본질적인 고찰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정을 꼽으라면 바로 혐오가 아닐까. 지난 몇 년간 가장 강렬한 이슈인 여성 혐오뿐 아니라 노조 혐오, 외국인 혐오, 동성애자 혐오, 장애인 혐오 등등 다양한 갈등의 결에서 그 존재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혐오를 감정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접근한 책 [혐오, 감정의 정치학]이 출간되었다.
흔히 혐오는 분노와 비교되곤 한다. 저자는 논리와 정의를 표출하는 분노와 ‘말을 잃은’ 혐오를 구분 지으며 서두를 연다. 거듭되는 좌절로 분노에 신물이 나 생각도 하기 싫은 순간에 바로 혐오가 온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를 혐오로 물들게 한 연원으로 지목되듯이 말이다. 혐오는 또 증오와도 비교가 된다. 그 행동을 두고 판단하는 ‘미움’이 격화된 증오와 달리 혐오는 그 존재 자체에 근거를 두는 ‘싫음’이 격화된 것으로서, 혐오는 다분히 심미적인 감정이 된다.
혐오라는 감정의 근원, 그리고 그 유구한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혐오의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입 안에 고인 침은 삼킬 수 있지만 컵에 뱉은 침은 삼킬 수 없듯이, 혐오는 내가 나로부터 분리한 속성을 나와 다르다고 구분지은 타자에게 부여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되기 싫고 나쁘다고 여겨지는 속성들을 타자에게 부여한 뒤 타자를 약하며 악한 것이라고 혐오함으로써, 나는 선하고 무결하며 우등한 주체가 되는 것이다. 혐오는 주체가 스스로 선함과 우월함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감정이기에,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타자를 열등하다고 낙인찍음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가장 정치적인 감정


혐오의 대상은 다양하다. 현재 회자되는 혐오가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이기에 다른 인간에 대한 혐오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혐오의 시작에는 자기혐오가 있고 근대 이후 한국에서 나타난 사례에서처럼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도 있다. 건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 김종갑은 감정으로서의 혐오를 원론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서양 문학과 철학의 맥을 짚으며 충실하게 추적해나가면서 혐오의 다양한 양상들을 소개한다.
혐오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는 자기혐오다. 내가 되고 싶은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현재의 나를 혐오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도 그 활약상이 그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구토]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를 소개한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외부의 충격에 상처를 입는 연약한 육신을 혐오했으며, 사르트르는 자신의 정신적인 자유를 구속하는 육체를 혐오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과 정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둘러싼 겉껍질을 혐오했던 셈이다. 결국 자기혐오는 자기애의 일종으로 나타난다. 모든 주체는 되기 싫은 것을 혐오함으로써 보다 우월한 정체성을 취득해 자아를 달랜다.

강자와 약자의 상호 관계에서 불거지는 혐오는
자극적인 발화와 표현으로써 또 다른 혐오를 키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두 가지 사례를 통해 혐오의 역사성을 설명한다. 첫째는 개장국, 즉 지금의 보신탕이다. 개장국은 근대 이전 소고기를 구하기 힘들던 서민들의 보양식이었지만,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서양인들이 우리를 열등하게 볼 것이라 생각하여 숨겨야 할 혐오 식품이 되었었다. 하지만 국제 행사를 성공리에 치르고 경제도 성장하면서 서양에 맞먹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이후, 그 유명한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일갈조차 무시하며 우리는 개장국을 보신탕이란 이름으로 전통 음식에 복귀시켰다. 다른 하나는 ‘삼청 교육대’로 표상되는 혐오 범죄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에 대한 정당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을 법한 불량배들을 사회의 폐단으로 지목하여 반드시 축출되고 교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고는, 그들에 대한 국가 폭력을 혐오스러운 불량배에 대한 당연한 처분으로 삼았다. 감정이 사회적인 수준으로 함양되었을 때의 특성을 보면서, 혐오가 그 어떤 감정보다도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감정인 동시에 역사성을 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혐오는 직관적이고 자극적으로 표현된다. ‘탐욕’을 악덕으로 생각한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 영감이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퀼프처럼 탐욕스런 인물을 생김새부터 고약하게 묘사했으며, ‘배신’을 최고 악덕으로 취급했던 단테는 브루투스를 지옥의 제일 하층부에 적치해 엄청난 고통을 안긴다. 현대의 혐오는 더욱 음험하게 나타난다.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은 [타임]지의 표지에 명암 대비를 과도하게 준 머그샷으로 실림으로써 딱딱하게 굳고 어두운 ‘범죄자스러운’ 인상으로 표현되었고, 조카에게 숙청당한 장성택은 다리가 부러져 절뚝대며 최후를 맞았다. 혐오 감정은 혐오해야 할 상대의 열등함이나 악함을 더 잘 드러나도록 조작함으로써 심화되지만, 그 과정에서 수용자들은 저도 모르게 그들을 선천적으로 싫어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동성애나 이슬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사실은 생래적인 게 아니듯이 말이다.

혐오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혐오와 ‘미소지니’의 시차


혐오에 관한 이 책의 논의는 지금 한국 사회를 말하는 가장 강렬한 키워드 ‘여성 혐오’로 귀결된다. 서양의 ‘미소지니(misogyny)’가 번역되며 함께 수입된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서구에서의 전통적인 여성 혐오를 먼저 소개한다.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해온 서양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이성적 활동을 방해하는 종족 번식의 노예이자 이성을 흐리는 살덩이로 묘사되어왔다. 대표적인 여성 혐오자인 쇼펜하우어나 오토 바이닝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양상이다. 이들이 여성을 존재 자체를 이유로 혐오했다면,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햄릿은 어머니의 신속하고도 그릇된 재혼이라는 ‘행동’을 원인으로 여성 일반을 혐오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는 이들의 계보를 잇는 것일까? 저자는 사회적 특성에 비추어볼 때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가 원론적인 여성 혐오와 거리가 있다고 선을 긋는다. 전통적으로 혐오는 나의 우월함을 다지는 강자의 감정이다. 하지만 요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내보이는 감정은 열패감으로 분석할 수 있다. 때문에 ‘미소지니’가 번역되며 붙여진 이름 ‘여성 혐오’가 사실은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잘못 만들어진 것이며, 또 이때 ‘혐오’라는 단어 때문에 실제 나타난 미소지니 현상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혐오 사회
사랑과 정의, 이성의 의지로 혐오의 굴레를 벗어날 것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모든 혐오들은 삶이 팍팍한 사회 구성원들이 우월한 것, 다수인 것, 기득권을 지닌 것을 표방하기 위해 만들어낸 감정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같은 인간의 지위에서 깎아내려 동물화하는 감정인 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이 현재 우월하려고 애쓴다는, 곧 열패감에 젖어 있다는 반증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뜨거운 정동(情動)인 혐오를 그 감정 자체로서 분석한 저자의 시도는 우리 사회에 대한 초상이 된다. 혐오 표현의 자극성은 중독적이기에 사람들이 서로 반복해서 발화하다 보면 혐오 감정의 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혐오에 노출된 주체나 타자 모두 혐오 감정에 무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혐오를 또 다른 혐오가 아니라 다른 방향의 에너지로 전복해야만 한다고 제언한다. 그것은 동물화했던 타자를 재인간화하는 사랑일 수도 있고, 폭력에 분개하여 정의로써 저항하는 분노의 감정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싫거나 미운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증상적으로 내뱉는 혐오라는 일차원적인 감정의 재생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성의 의지로 혐오의 굴레로부터 탈피해야만 한다.

목차

들어가며 혐오라는 심미적 감정

1장 혐오란 무엇인가?
생물학적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아름다운 삶과 추한 삶, 웰빙과 혐오
자기혐오의 사도들
타자 혐오: 미움과 싫음
2장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혐오 식품의 발명
혐오 식품의 탈혐오화
혐오 범죄의 연대기
예술과 대중매체의 혐오 만들기
3장 혐오와 정체성
혐오의 역설, 자기애로서의 자기혐오
아름다운 몸과 추한 살
정체성을 위한 혐오
4장 여성 혐오, 또는 미소지니
여성 혐오의 전통과 문화
두 개의 여성 혐오
혐오스런 존재와 혐오스런 행동: 혐오와 증오
5장 여성 혐오 논쟁: 여성 혐오가 있는가?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
여성 혐오의 정체
남성성의 쇠퇴와 여성 혐오
여성 혐오의 해부: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와 분노, 그리고 남성의 피해의식
여성 혐오와 여성 비하

나가며 혐오의 구조를 전복해야 한다

Micro Note

본문중에서

혐오가 생리적이라면 분노는 사회적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면 분노도 생기기 않는다. 분노는 정의의 관념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혐오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즉 동물적인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 혐오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분노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혐오와 달리 분노는 말이 통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혐오의 입은 ‘입’이 아니라 토해내는 ‘주둥이’에 가깝다. 분노에서 말을 제거하면 혐오가 된다. 혐오에는 ‘왜’나 ‘이유’가 없다. 혐오의 감정이 지배적이면 지배적일수록 언어가 파괴되고 소통이 거부된다.
(/pp.9~10)

외국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타자를 향한 혐오의 감정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와 무관한 듯이 보이는 음식 취향은 어떠할까? 혐오와 자주 연결되는 말의 하나가 ‘혐오 식품’이다. 음식에 대한 혐오는 윤리적 감정이 아니라 심미적 감정이다. 우리의 취향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식품이 혐오 식품이다. 우리가 먹기 싫어하는 소극적 반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쳐다보기도 싫다는 적극적 거부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식품의 목록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혐오 식품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독약과 같이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이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혐오 식품이었던 음식은 없었다. 혐오 식품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p.50)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는 소수의 희생(타자화)을 통한 다수의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이다.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는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현상이다. ‘내’가 "혐오한다"는 단수가 아니라 ‘우리’가 "혐오한다"라는 복수다.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취향이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본질은 주체화와 타자화의 변증법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다. 내가 이상적인 자아가 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한 나를 타자화하는 형태가 자주화의 덕분에 더 이상 가동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치화되었던 혐오의 탈정치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의 탈정치화는 집단적 현상으로서 혐오의 종언을 의미한다.
(/pp.80~81)

근친상간이나 부친 살해 등의 범죄가 특히 혐오감을 일으키는 이유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상실과 관계가 있다. 2016년 초에 부천시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해서 숨지게 한 부모가 시신을 유기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의 제목이 "자식 죽이고 밥 넘어가냐"였다. 자식을 죽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신도 죽어야 마땅하다. 어떻게 살아남아서 밥을 먹을 수가 있겠는가. 동물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 설혹 음식을 입안에 억지로 밀어넣어도 자식을 죽인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음식을 토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아예 밥을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작가 박완서가 그랬다. 1998년에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그녀는 신에 대한 원망과 절망, 고통에 신음했던 경험을 나중에 [한 말씀만 하소서]에 담아놓았다. 여기에서 그녀는 밥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다고 토로했다. 자식을 잃고 살고 싶은 의지가 아예 바닥났던 것이다.
(/p.108)

무엇이 혐오스러운 행동인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다.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서 혐오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취향이 진공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혐오의 대상은 항수가 아니라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변수이다. 동성애가 가장 단적인 예이지 않은가. (......) 2000년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했던 홍석천이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불이익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물론이고 TV에도 동성 커플이 등장하는 연속극이 방영될 정도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태도가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 혐오의 대상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인가? 혐오스러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를 바라보는 혐오의 감정과 태도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태도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pp.114~115)

불행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린다. 이것이 사회적 압력이다. 이러한 압력이 소수의 약자들에게 자살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혐오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아름다우며 또 똑같은 사랑을 받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남보다 더 아름답고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재화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면서 세상은 제한된 재화를 자기가 차지하기 위해 욕망과 욕망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욕망의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재화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경쟁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더욱 더 아름다워지고 추한 사람은 더욱 더 추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결과적으로 추한 사람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넣는 셈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타인이 희생되는 것이다. 타자의 추는 나의 아름다움, 혐오스런 타자는 사랑받는 나를 의미하게 된다.
(/p.148)

화자는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대해 분연히 일어서서 정정당당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약한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던 그는 어려운 대의명분 대신에 손 쉬운 지름길을 택한다. 남대문에서 뺨을 맞고서 동대문서 화풀이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는 서슬이 시퍼런 왕궁에 뺨을 맞고서 자기보다 힘이 없는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한다. 그에게 설렁탕집 주인은 그냥 여자 주인이 아니다. "돼지 같은 주인년"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싸다. 화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남자들처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설렁탕집 주인을 혐오스러운 타자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pp.151~152)

나는 역사적 변화의 지평으로 여성 혐오를 올려놓지 않으면 그러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구조주의적인 접근은, 왜 여성 혐오가 한국사회에서 2015년에 지배적인 정동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왜 가부장적 제도가 공고했던 과거가 아니라 강력한 사회경제적 도전에 직면해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현재에 여성 혐오의 정서가 대두되었는가?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과거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 혐오가 너무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러한 구조가 도전에 직면해서 흔들리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혐오의 감정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차별이 의식의 대상이 된 것이다.
(/p.162)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과거의 기득권과 특혜를 상실하고 있다는 박탈감의 발로가 여성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 혐오는 특정한 여성 개인에 대한 주관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집단적으로 반영된 현상이다. "이들의 위치가 몇 년 전부터 중요한 문화 코드로 등장한 ‘루저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 한 남자 개인이 아니라 남자 전체가, 한 여자 개인이 아닌 여성 전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정서적 태도인 것이다. 이 점에서 어떤 특정 여성 혐오자가 과연 루저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자신을 밀어주지 않는다면 감히 여성 혐오 발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설혹 가능하더라도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정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pp.168~170)

혐오는 상대방을 동물화(動物化)하는 감정이다. 상대를 나와 질적으로 다른 타자, 열등한 타자, 동물적 타자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동정과 연민, 사랑의 시선은 그와 같이 동물화되었던 타자를 재인간화하는 시선이다. (......) 혐오가 그 정치적 기원이 망각되고 심미화된 감정, 그래서 지독하게 보수적인 감정이라면, 분노는 그러한 기원의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감정이다. 서두에서 "사람 셋이면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다수의 폭력이 소수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다수는 기회만 생기면 혐오를 표출함으로써 자기의 특권과 권력을 과시하고 확인하며 또 재확인하려는 반복 충동을 지닌다. 이러한 반복의 악순환에 온몸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pp.194~195)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695권

건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몸문화연구소 소장.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 [생각, 의식의 소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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