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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 문자와 페니키아 문자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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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두상
  • 출판사 : 한국문화사
  • 발행 : 2016년 04월 10일
  • 쪽수 : 31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6817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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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책은 쐐기문자가 어떻게 생성되고 전파되어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보고, 발굴과 판독에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소개한다

    세계의 여러 어족 중에서 비교적 잘 연구된 어족이 바로 인도-유럽어족(인구어족)이다. 현재 서구의 선진 국가들의 언어는 대부분 인구어족에 속한다. 이 인구어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가 히타이트어이고 이 히타이트어를 표기한 문자가 쐐기문자이다. 인구어족에 속한 대부분의 언어는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발달되어 나온 철자를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지만, 히타이트 제국은 페니키아 알파벳과 같은 선형 알파벳을 쓰지 않고 쐐기문자를 채택하여 사용한 점이 특별하다. 이 책에서는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가 어떻게 생성되고 전파되어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쐐기문자에 대한 발굴과 판독에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소개한다. 아울러 히타이트 제국의 지리적 위치, 역사적 배경, 언어, 기타 등을 살펴보며, 히타이트 제국과 이집트 제국 간의 전쟁과 평화조약에 관해 다룬 내용은 독자에게 많은 흥미를 줄 것이다.

    목차

    서문

    1장 히타이트 제국에서 사용된 쐐기문자

    1. 히타이트 제국 발견
    1) 히타이트-이집트 평화조약문
    2) 히타이트 제국의 왕들 연대기
    3) 히타이트어와 후두음 가설
    2. 히타이트 제국에 관한 기록
    3. 히타이트 제국 문자와 판독
    4. 후고 빙클러(Hugo Winckler)가 발견한 점토판
    5. 후고 빙클러의 유언과 그 실천
    6. 히타이트 쐐기문자의 예

    2장 히타이트 제국에서 사용된 루비어 상형문자

    1. 루비어(Luwian) 상형문자의 발견과 판독

    3장 인류 최초의 알파벳

    1. 세계 최초의 알파벳 철자 발견
    1) 세계 최초의 알파벳 새김글을 발견한 사람과 판독한 사람
    2) 원시-시나이 알파벳 발명자에 대한 논쟁
    3) 가나안 사람들이 이집트 이민의 역사와 탄광 일에 관여한 사연
    4) 원시-시나이 알파벳의 창제자가 문맹인이라는 주장의 근거들
    5) 원시-시나이 알파벳의 창제 동기
    6) 뉴욕 타임스 신문에 게재된 알파벳 기원의 발견과 학자들 의견
    7) 우가리트 철자와 원시-시나이 철자와의 관계
    8) 원시-시나이 알파벳의 발명과 그 이후

    4장 페니키아 알파벳 새김 흔적들

    1. 원시-시나이 알파벳이 페니키아 전파와 페니키아 알파벳 형성
    2. 모압 알파벳 새김글의 발견 사례
    1) 기원전 13세기 아히람 왕의 석관 새김글
    2) 기원전 11세기 바알 레바논 쟁반(Baal Lebanon vessel) 새김글
    3) 기원전 9세기 모압돌 새김글
    4)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청동 사자 계량기 설명 새김글
    5) 기원전 8세기 실로암 터널(Siloam Tunnel) 새김글
    3. 페니키아 시돈(Sidonian) 알파벳으로 새겨진 새김글

    5장 우가리트 알파벳 문자의 발견과 판독

    1. 우가리트 쐐기 획 알파벳과 페니키아의 선형 알파벳과의 관계
    2. 우가리트 국가 발견
    3. 우가리트 알파벳의 발견
    4. 우가리트 국가 왕들 연대기
    5. 알파벳 쐐기문자 판독에 기여한 학자들
    1) 비로로드(Charles Virolleaud)
    2) 바우어(Hans Bauer)
    3) 도름(Edouard Dhorme)
    6. 판독이 끝난 우가리트 알파벳(30개)
    7. 우가리트 점토판 새김글이 빨리 판독된 이유
    8. 우가리트 문학과 성경
    1) 바알 시가 (The Baal Cycle)
    9. 우가리트어 문학 표현
    1) 시적 형태와 운율 특징
    2) 구분을 짓는 표시(Dividing Strokes)
    3) 믿을 수 없는 성경 인물에 관한 기술
    10. 우가리트어가 히브리 성경 언어 보다 앞선 언어다.
    11. 우가리트 발굴과 성과
    12. 우가리트어 판독으로 히브리 성경 언어를 바로잡은 예
    13. 우가리트어와 히브리 성경 언어와의 유사성 정도
    14. 우가리트어와 문자에 대한 결론

    6장 알파벳 원조 엿보기

    1. 인류 최초 문자
    1) 수메르(Sumerian)그림문자에서 쐐기문자
    2) 물표에서 글자로의 전환 이론
    3) 물표의 발달단계
    4) 쐐기문자의 발달과정
    5) 수메르어 표기문자 특징
    6) 수메르 문자의 한계와 보완책
    7) 최후 선형문자가 쐐기문자로 전환되는 시기의 최초 증거 발견
    8) 쐐기 획의 다양한 모양
    9) 수메르 쐐기문자와 아카디아어 쐐기문자 형태 비교(함무라비 법전에 나온 한 구절)
    10) 아카디아어 표기문자
    11) 아카디아어 생성의 배경
    12) 표의문자에서 음절문자로
    13) 쐐기문자를 사용한 왕국
    14) 아카디아어 쐐기문자 특징
    15) 마지막 쐐기문자: 표의문자에서 음소문자 직전까지 발달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다.
    몇 년 전 부산대학교 언어교육원장 보직을 맡았을 때 미국 토익본부의 초청과 한국 YBM사의 지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때에 뉴욕의 여러 지역을 다녔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방문지는 유엔본부였다. 유엔본부 건물 벽에 걸려 있는 고대 이집트 왕국과 히타이트 제국과의 전쟁 후에 맺어진 평화조약 평판을 본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히타이트 제국에 대한 특히 그 민족이 사용한 쐐기문자에 관심을 갖게 되어 히타이트 제국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첫째 동기이다.
    그리고 어족을 연구하면서 살펴본 세계의 여러 어족 중에서 비교적 잘 연구된 어족이 바로 인도-유럽어족(이하: 인구어족이라함)이다. 현재 서구의 선진 국가들의 언어는 대부분 인구어족에 속한다. 이 인구어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가 히타이트어이고 이 히타이트어를 표기한 문자가 쐐기문자라는 사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인구어족에 속한 대부분의 언어는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발달되어 나온 철자를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서 히타이트 제국은 페니키아 알파벳과 같은 선형 알파벳을 쓰지 않고 쐐기문자를 채택하여 사용한 점이 특별해 보였다. 그래서 이 히타이트 제국의 위치, 배경, 언어, 기타 등을 조사 연구하게 된 것이 두 번째 동기다.
    특히 쐐기문자와 히타이트 제국과의 연관에 관한 연구 중에 드러난 것이 우가리트 쐐기 획 알파벳이다. 물론 우가리트 국가는 아주 작은 도시 국가로 히타이트 제국 남쪽에 붙어있었다. 국력이 약해서 히타이트 제국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히타이트어를 사용하기도 했고, 히타이트 쐐기문자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특이하게도 우가리트 국민은 그들 고유의 철자 우가리트 알파벳을 개발해서 사용한 것이 특이했다. 우가리트 제국에 대한 발견과 발굴에 대한 연구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특히 처음 히타이트 제국 지역에서 사용된 상형문자를 발견했을 때 그 상형문자를 히타이트 상형문자로 생각하고 이름도 히타이트 상형문자라고 했지만, 연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로는 상형문자는 루비어를 표기한 문자로 알려져 그 이름을 루비어 상형문자로 부르게 된 과정 등도 살펴보았다. 사실 히타이트 제국의 국력이 대단해서 그 당시 아프리카에서 제일 강국인 이집트와 카데시 지역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둔 과정 등에 관심을 가졌다. 히타이트어 표기 쐐기문자는 음절과 표의 문자를 겸한 문자임을 인지했지만, 이것을 발전시켜 중동 레바논 북쪽 지역인 샴라 지역에서 쐐기문자 형태를 가진 알파벳이 선형 알파벳 문자보다 앞선 문자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 책에 다룬다.
    특히 쐐기문자에 대비되는 선형 알파벳 문자의 최초 형태라고 하는 모양이 이집트 지역에서 발견되어 알파벳의 기원을 정확히 밝혀내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고고학자 부부가 로마 알파벳 최초의 조상 알파벳인 원본을 발견했다고 해서 각국의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들이 그 정체를 밝혀보고자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가지 찬반의 토론을 추적해 보았다. 특히 최근에는 최초의 로마 알파벳의 조상 알파벳을 일자무식자인 광부에 의해서 발명되었는지 아니면 엘리트 가나안 지식인이 발명을 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알파벳에 대한 정체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각 나라의 저명한 교수들의 의견 등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특히 알파벳의 조상 형태가 발견되어 그 발달 과정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에서 혹시 음소 알파벳이 진화되어 나온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단계를 살펴보았다. 특히 수메르 그림문자에서 뜻 글자로 가는 과정에서 물표가 또한 큰 기여를 했다는 이론이 제기되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과정도 살펴본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히타이트 제국의 발견과 그 국가에서 사용된 쐐기문자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제2장에서는 히타이트 제국에서 사용된 루비어 상형문자에 대해서 그 발견과 판독 등을 다루었다.
    제3장에서는 최초 음소 알파벳 철자 원조 형태의 발견 과정과 그 알파벳을 진정 누가 발명했는지에 관한 여러 가지 논쟁과 논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원시 알파벳이 페니키아에 전파되어 알파벳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각종 새김글의 발견 사례를 통하여 알파벳의 흔적을 살펴보려 하였다.
    제5장에서는 우가리트 알파벳 발견과 판독에 관한 내용이며 특히 우가리트 알파벳은 형태가 쐐기 획 형을 갖고 있으므로 그 형태가 선형 알파벳과 어떤 관계에 있고, 쐐기 알파벳과 선형 알파벳의 역사적인 발견 시점이 어느 것이 앞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특히 알파벳 쐐기문자에 대한 발굴과 판독에 관련된 사실을 살펴본다. 특히 우가리트 문학은 히브리 성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가리트 문학의 중요성을 성경에 나오는 여러 내용과 연계해서 다루었다.
    제6장에서는 인간이 글자를 발명함으로써 문명인이 되었던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수메르의 쐐기문자이며 그 문자가 어떻게 전파되어 사용되었는가를 다루고, 최후에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다루면서 이 책을 마무리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의 지명이나 사람 이름을 한국의 외래어 규칙에 따르게 되어 있으나 외래어 표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있어 필자의 지식으로 대강의 발음으로 표기하였고 그러나 반드시 원어 표기를 병기하였기에 원어의 표기를 참고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끝으로 이 책을 출판하여주신 한국문화사 직원 관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인천 서구 심곡동에서
    2016년 3월 조두상
    (/ 머리말 중에서)

    1장 히타이트 제국에서 사용된 쐐기문자

    1. 히타이트 제국 발견
    히타이트(Hittite) 제국은 기원전 2000~700년경 또는 기원전 1570~1200년경에 존속했던 왕국으로, 소아시아 터키 중부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 지도를 보면 현재 터키가 있는 곳에 히타이트 제국이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아시아(Asia Minor) 중앙을 차지한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았고 그 민족 중에서도 가장 큰 왕국을 건설한 민족이 히타이트 민족이었다. 이 히타이트 국가는 근동(Near East)에서 거대한 세력으로 부상했지만, 이 왕국이 멸망하고부터 이 지역에 이와 같은 큰 왕국이 다시는 탄생하지 않았다.

    1) 히타이트-이집트 평화조약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 입구에 히타이트-이집트 평화조약문 복제본(청동으로 만들어진 평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 평화조약문은 기원전 1269년에 조약을 체결하면서 작성한 것으로 조약문의 원본이 현전하는 것으로는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문이다. 이 조약문은 이집트에서 초안이 작성되고 그 당시 국제 공용어인 아카디아어를 표기한 쐐기문자로 번역하여 히타이트 왕에게 보내어졌던 것이다. 이 의미 깊은 평화조약문 평판이 이곳 유엔본부에 있게 된 사연은 터키 외무장관이 1970년 9월 24일 당시 미얀마 출신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증해서 이곳에 있게 되었다.
    위 평화조약문은 터키와 시리아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히타이트 왕국의 하투실리 3세(Hattusili III)와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Ramses II)가 조인한 조약문이다. 이 평화조약의 원문이 새겨진 점토판이 1908년에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보가즈쾨이(옛 이름: Hattusha)에서 발굴되었다.
    이 평화조약문(Egyptian-Hittite peace treaty)이 이루어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원전 1259년경 이집트 왕 람세스 2세(Ramses II)와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 3세(Hattusili III)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람세스 2세(Ramses II) 이집트 왕이 히타이트의 외교관들이 가져온 평화조약문을 새긴 은 평판(silver tablet)을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하게 되었다.
    둘째, 이 평화조약은 이집트와 히타이트 두 나라 사이에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맺어진 조약이다. 근동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외교협정으로 가장 오래된 평화협정은 아니더라도 현전하는 평화협정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셋째, 평화조약이 나온 배경은 바로 시리아 지역의 카데시(Kadesh) 전투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 전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16년간이나 지속된 처절한 전투였다.
    넷째, 이 평화협정문은 이집트에서 처음에 이집트 상형문자로 작성한 후에 아카디아어로 번역한 다음 쐐기문자로 표기해서 히타이트 제국에 보냈다. 이집트는 처음 상형문자로 작성한 평화조약문 내용을 테베(Thebes)에 있는 람세스 2세 시신을 안치한 람세스 사원(Ramesseum)의 벽에 새겨 놓았다. 이 상형문자를 해석해 보면 이집트 왕 람세스 2세에게 히타이트 왕이 보낸 은 평판(silver tablet)에 새긴 내용을 번역해서 새겼음을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이 은 평판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다섯째, 평화협정문 내용 일부를 해석해 보면 “이집트 왕, 위대한 왕 람세스는 하티의 위대한 왕 하투실리와 함께 평화와 우의 넘치는 형제로 지내고자 한다. 이집트의 왕 위대한 왕 아몬의 사랑을 받는 람세스의 아들들은 하티의 왕 위대한 왕 하투실리 왕의 아들들과 함께 평화롭게 형제로 지낼 것이다.”로 시작된다.
    평화조약문 내용을 요약하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상호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즉 국내외의 적이 양국 어느 하나로 침입해 오고, 또한 지원을 요청할 시에는 양측은 즉각 그들의 군대와 전차를 파견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본국의 귀족이 상대방 국가에 망명을 요청하면 그를 잡아서 강제로 송환하되 보복을 하지 않는다. 특히 일반인이 상대국에 피난처를 요청하면 그들을 붙잡아서 반드시 돌려보내되 송환 후에 엄한 처벌을 하지 않고, 그의 가족에도 복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집트 카르나크(Karnak) 사원과 람세스 사원(Ramesseum) 벽에 새겨진 평화조약문은 히타이트 왕이 보내준 은 평판에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복사본도 두 개가 있었는데 룩소르(Luxor)와 아비도스(Abydos) 사원 벽에 각각 새김되어 있다.
    이 조약문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Champolion)이 1828년에 이 평화조약 일부를 복사해서 1844년에 출판된 책에 게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평화조약문의 내용에서는 ‘Khatti의 위대한 왕’으로 기술되어 있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히타이트 왕 이름을 알 수가 없었으나, 그 뒤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평화조약문은 1906~1909년 사이 독일 고고학자 후고 빙클러(Hugo Winckler)가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Hattusha)를 발굴하면서, 왕의 고문서 창고를 발견했고, 거기에서 무려 10,000점의 점토판을 발견했는데 그중에서 이 평화조약문을 새긴 점토판을 발견했다.
    발굴된 많은 점토판에는 왕궁기록, 영수증, 계약서, 행정기록문 등이 있었고, 그중에는 문학 시도 있었고, 그중에 특히 히타이트와 전투에서 이집트가 항복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평판들이 있었다. 또한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은 히타이트 측 조약문도 그 당시 아카디아어로 기록된 점토판 3개가 발견되었다. 빙클러는 그 3개의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을 보고 직감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 후에 아카디아어로 기록된 평화조약문은 1916년 바이드너(E. F. Weidner)에 의해서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히타이트 왕국과 이집트 왕국이 카데시(Qadesh)에서 벌인 전투는 이집트가 시리아(Syria) 지역을 차지하고자 히타이트 지배하에 있는 시리아 지역으로 먼저 침투하면서 발생했다. 원래 기원전 1320~1294년 사이에 통치한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스(Muwatallis) 때에 시리아를 두고 이집트 왕 세티 1세(Set I)와 그 뒤를 이은 람세스 2세(Ramses II)와 끊임없는 전투를 해 왔다.
    이 전투는 무려 16년간 지속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조차 전투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이 점차 쌓여만 갔다. 특히 히타이트 제국으로서는 외부적으로 바다 사람(Sea People)들의 위협과 되살아나는 아시리아의 위협이 점차 증대되면서 전쟁 종식에 대한 희망도 증대되어 갔다. 이집트 쪽에서도 서쪽으로 리비아(Libya)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그래서 히타이트 제국에서 조카 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하투실리 3세 왕이 종전을 제안하자 이집트 왕 람세스 2세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여 평화협정문이 나오게 됐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이집트 기록문에서 이집트의 승리로 기록하게 했지만, 실제는 히타이트 왕에게 패하고 시리아 지역 카데시를 히타이트에게 돌려주는 쓰라린 참패를 한 것이다. 평화조약 체결은 전투를 시작한 지 16년 후에 하투실리 3세(기원전 1275~1250) 통치 기간에 이루어졌다. 이 평화조약이 논의되는 기간에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는 히타이트 족의 폭동 여파로 기원전 1269년에 살해되었고 뒤를 이은 하투실리 3세 왕에 의해서 체결되었다.
    이 조약문은 히타이트 판과 이집트 판 두 가지가 있다. 그래서 양국의 협정문 내용은 처음부터 약간 차이가 났다. 이집트 측 평화조약문을 보면 히타이트 왕이 평화협정을 먼저 제안했다고 기록되었지만 히타이트 측 조약문을 보면 이집트 왕이 하티(Hatti)(히타이트 제국을 하티국으로 칭했다)에 이집트의 밀사를 파견해서 평화협정을 제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타이트 측 조약문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서 이집트 판은 이집트의 수도 피 람세스(Pi-Ramesse)에서 각각 만들어졌다.
    히타이트 측 새김판은 처음에 아카디아어 쐐기문자로 초안이 작성되고 은 평판에 새겨 이집트에 보냈다. 이것을 보고 이집트 측은 이집트 상형문자로 번역해서 조약문을 작성했다.
    이집트 판은 처음에 이집트어로 초안을 만들어 상형문자 표기로 작성한 다음 이것을 은 평판에 아카디아어 쐐기문자 표기로 번역해 새겨서 히타이트 왕에게 보냈다.
    두 협정문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큰 차이나 오류는 없었다. 왜냐하면, 협정문을 교환하기 전에 중요한 문제들은 이미 협의가 이루어져서 이해가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평화협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우선 이집트가 카데시 지역을 지배할 수는 없었으나 시리아에서 국경선이 분명하게 이루어졌다. 이집트 왕국에서는 시리아인들에게 페니키아에 있는 여러 항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주었고, 히타이트 왕국에서는 이집트인들에게 시리아 북쪽에 있는 우가리트(Ugarit) 지역까지 허가 없이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평화조약문은 18조로 구성되어 있다. 한 조문을 보면 두 왕의 여러 명칭을 길게 소개하고 우의와 친선 및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절대로 상대방 국가에 영토 침입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기록되어 있다.
    위 평판은 터키 하투샤에서 발굴된 것이며, 카데시 평화조약문 이집트판으로 아카디아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측에서 작성한 이집트의 주장을 담은 평화조약문이다. 카데시 전투(기원전 1274) 이후 13년간에 걸쳐 작성된 것이다.
    이집트 측에서는 상형문자로 이집트어를 표기했고, 히타이트 측에서는 쐐기문자로 히타이트어를 표기했다. 그러고 나서 양국의 보좌진은 협정문을 그 당시 국제공용어인 아카디아어로 작성했는데 표기는 쐐기문자로 했다. 이것을 은으로 만든 평판에 새겼다.
    히타이트 지역 고문서 고에서 나온 히타이트 점토판 중에는 근동 지역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일어났던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기원전 14세기 18대 왕조 시대인 아마르나(Amarna 왕궁 시대) 시대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정치적인 역사가 이 히타이트 점토판에 기록된 것으로 알 수가 있다.
    위 새김글의 예는 이집트 카르나크(Karnak)사원 벽에 새겨진 평화조약문이다. 원래 은 평판에 아카디아어를 쐐기문자로 새겨진 것을 이집트어로 번역하여 이집트 상형문자로 번역한 것이다.
    평화협정에 나오는 하티(Hatti)는 히타이트를 지칭하는 말이다.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의 가장 오래된 이름이 ‘하티의 나라(땅)’였다. 이것은 기원전 2350~2150년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Akkad)국 사르곤 왕(Sargon) 시대에 기록된 쐐기문자 평판 기록에서 밝혀진 것이다. 하티 나라 이름은 약 15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후기 히타이트 기록에 보면 사르곤 왕은 루비족(Luwian) 왕과 싸웠고, 사르곤 후계자 아카드의 나람-신(Naram-sin)왕은 하티의 왕과 전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타이트는 하티가 사용한 하티어와 관계가 없는 인구어인 네사(Nesa)어(Nesili)를 사용했다. 하티 땅을 정복한 히타이트 민족은 그들의 왕국 이름을 하티 국(land of Hitti)으로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다소 헷갈리는 부분이 평화조약에서 발견된다. 즉 하티 국은 바로 히타이트 국이다. 실제로 하티어를 사용하던 하티 민족도 결국에 히타이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구어족에 속하게 되었고 루비어(Luwian), 팔라이어(Palaic)어도 인구어족이다.

    2) 히타이트 제국의 왕들 연대기
    히타이트 왕국은 후기 청동기 시대에 지금의 터키의 중앙 지역에서부터 시리아 지역에 걸쳐 큰 제국을 이루고 살았다.
    터키의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살았던 히타이트 족에 대한 여러 자료를 보면 히타이트인들은 기원전 2000년 이전 어느 시점에 아나톨리아에 이주해왔다. 그러나 그들이 아나톨리아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 어느 지역에 거주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런데 상당한 기간 동안 인구어(인도-유럽어족을 형성한 조상 언어)의 고향은 제4차 천 년이나 제3차 천 년경에 지금의 남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이었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리고 히타이트족과 다른 아나톨리아 언어를 구사하는 민족은 아마도 북쪽에서 왔는데 카스피 해를 따라왔을 것이고, 발칸을 경유해서 왔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 당시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에 대다수 거주인은 하티(Hatti)족이었다. 히타이트(Hittite)라는 말이 하티(Hatti)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나라에는 이미 셈족의 아시리아 왕국의 식민지가 있었다. 이 식민지에서 히타이트인들은 쐐기문자 표기를 그들의 표기 글자로 채택했던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히타이트인들은 아나톨리아에서 정착을 시도했고, 수 세기 동안에 여러 가지 히타이트어와 그 언어와 연관된 아나톨리아어군이 사용되었다. 히타이트는 수도 하투샤(Hattusha)를 중심으로 강력한 통치자들이 민족을 단결시켰고, 중앙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기원전 1650년경에 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에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세 개의 언어가 사용되었는데 히타이트어, 루비어(Luwian)와 팔라이어(palaic) 등인데 표기문자는 전부 쐐기문자가 사용되었다.
    히타이트 왕국은 2단계로 나누면 고 왕국(old kingdom)은 기원전 1650~1500년경이며, 신 왕국(new kingdom)은 기원전 1400~1207년경 이었다.
    신 왕국 시대에 히타이트 왕국은 수필룰리우마스 1세(Suppiluliumas I, 기원전 약 1380~1340)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하투샤 수도를 재건했고, 정부를 재조직하여 정비했으며, 남부 및 남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점령했고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이 시리아 지역 점령은 바로 이집트와 충돌을 의미했다.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스 2세(Muwatallis II, 기원전 약 1306~1282)가 집권하는 동안에 오론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카데시(Kadesh)에서 이집트와 큰 전투를 벌였다. 양쪽 모두 자국의 승리를 주장했다. 그다음 왕 하투실리 3세(Hattusilis III, 기원전 약 1275~1250) 집권 시절에 양 국가 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고, 히타이트 왕국의 공주가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아내가 되는 결혼정치가 이루어졌다.
    히타이트 왕국의 힘은 한동안 시리아에서 유지되었고 기원전 제1차 천 년에 걸쳐서 아나톨리아 언어들도 증명하고 있다.
    학자들마다 약간의 연대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는 트레버 브라이스(Trevor Bryce(2013): The Last Days of Hattusha: The Mysterious Collapse of the Hittite Empire)의 것을 참고해 왕의 연대기를 작성했다.
    이 왕국은 신 왕국 말기에 특별한 원인 없이 바다사람(Sea People)에게 일시에 멸망당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히타이트 국가는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고, 아나톨리아 지역도 4세기 동안 여러 국가로 토막 나 있었다. 역사 속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기독교 구약성서에 여러 번 히타이트 민족을 암시하는 기록이 나온다. 구약 성서 여호수아 3장 10절에 헷족속이라고 언급되었고 그것을 근거로 오늘의 이름이 있게 되었다. 또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Bathsheba)의 남편이자 다윗 군대 지휘관인 우리아(Uriah)는 사무엘 11장 3절에 나오는 헷사람이 히타이트인과 동일인물로 밝혀졌다. 히타이트 민족은 성경 이외의 실제 역사에서는 흔적이 없었다가 수도 하투샤의 발굴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히타이트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19세기에 들어와서 극적으로 밝혀졌지만, 그것은 학자 등 전문가 소수의 관계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히타이트 왕국은 기원전 1650년에서 1180년까지 약 400년간 지속 된 왕국이다. 그러나 왕국의 성립과 왕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 영향력을 고려하면 약 1000년간의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히타이트 왕국의 발견은 샤를 텍시에(Charles Texier)가 처음으로 히타이트 왕국 지역 탐사에 도전했고, 고생 끝에 히타이트 왕국의 유적지를 발견하여 발굴하게 됨으로써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히타이트어를 판독한 사림은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젊은 교수인 프리드리히 흐로즈니(Bedrich Hrozny, 1879~1952)이다. 그는 히타이트어를 표기한 쐐기문자를 음역으로 읽어본 것 중에 로마자 ‘Ninda’의 철자는 “빵”을 뜻하는 표의문자이었고, 이것은 바빌로니아 단어인데 뜻은 “음식”, 또는 “빵”을 나타내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히타이트어 텍스트에는 바빌로니아 단어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고, 흐로즈니가 아카디아어 쐐기문자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것이 히타이트어를 판독해내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 히타이트가 셈어족에 속한 언어가 아니고 인구어족에 속한 언어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차츰 히타이트 제국에 대해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3) 히타이트어와 후두음 가설
    히타이트어 표기문자는 그림문자이거나 상형문자 형태로 표기되기도 했지만, 국제 관계 서신이나 무역 관계 일에 사용하는 문자는 아시리아형 쐐기문자를 사용했다. 아시리아형 쐐기문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아시리아와 히타이트 간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라 인정받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인구어가 가지고 있었던 문법적인 굴절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구어의 명사 굴절형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인구어(재구성된 단어는 *표) 중에서 산스크리트, 그리스어, 라틴어의 명사 굴절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위 예에서 보면 인구어를 재구성해보니 8격의 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인구어에서 파생되어 나온 언어에 보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8격 모두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는 단수에서 위치격, 도구격 등에서 이미 사라져버렸고, 복수에서도 위치격과 도구격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을 예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인구어족에 속하는 히타이트어를 발견하기 전에는 산스크리트어가 가장 오래된 언어로 인식하고 있었다.
    역사비교언어학자들이 인구어를 연구하다 보니 인구어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는 산스크리트어와 히타이트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처음에는 인도-히타이트어군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 언어가 사용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히타이트어가 존속되다가 그 이후 약 1000년간에 걸쳐서 히타이트어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분리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2500년경부터 산스크리트어와 히타이트어가 분리 사용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인도-히타이트어군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원 거주지인 러시아 남부 지방을 떠나서 아나톨리아 지역에 정착하면서 아나톨리아어군이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인구어족을 연구하는 비교언어학자들은 이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족의 다른 언어들보다 더 원시 언어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구어에서 있었던 후두음이 다른 인구어 언어들에는 없어졌지만, 히타이트어에서만은 이 후두음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인구어족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시기에 히타이트어만 전혀 알 수가 없는 언어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가서야 히타이트어에 대한 기록이 담긴 점토판이 발굴되면서 연구에 활기가 불기 시작했다. 1915년에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그것은 터키의 이스탄불 박물관에서 빈 대학까지 점토판을 옮겨서 흐로즈니 교수가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흐로즈니 교수가 이 사실을 1917년에 그의 저서 [Die Sprache der Hethiter]에 수록하여 발간했다.
    그 후 히타이트어의 문법에 관한 책은 1951년에 가서야 스터트번트(Edgar H. Sturtevant)에 의해서 ‘A Comparative Grammar of the Hittite Language’(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1)가 발간되었다. 이 책이 발간되자 곧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족의 다른 언어와 차이점이 부각되었다. 이 언어는 그 언어와 인접에서 사용되고 있던 비 인구어족 언어의 영향으로 많이 변화되었지만, 인구어족에 속한 언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되었다. 히타이트어를 중심으로 주변에 루비어(Luwian), 리디아어(Lydian), 그리고 팔라이어(Palaic)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 언어들을 합쳐서 아나톨리아(Anatolian)어군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히타이트어만 분류하기도 한다.
    히타이어어가 인구어족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인구어족에서 다른 언어에는 이미 사라졌지만 히타이트어에서만 인구어 음 중에 ‘후두음’(음역으로 h음)이 보존되고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히타이트어 단어 pahhur(뜻은 영어로 fire임), 같은 뜻의 그리스에서 p□r, 토카리아어(Tocharin)에서는 por, 고대영어에 f□r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히타이트에서는 후두음 h음이 표기되고 있지만 다른 인구어족의 언어들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음운조직에서 히타이트어 h음으로 표기되는 것이 인구어족의 언어들에서는 장모음 a음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히타이트어에서 ‘앞에’ 뜻의 단어인 ‘hanza’에 첫 h음이 존재하지만, 라틴어에서는 ‘앞에’ 뜻의 단어인 ‘ante’에서 첫 음이 장모음 a음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현상을 1878년에 이미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히타이트어의 자음 h가 다른 인구어에서는 h음은 없어지고 모음 a로 나타난다는 가설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즉 ‘후두음 가설’이다. 이것은 인구어 단어에 나타난 변칙적인 어근이 실제로는 인구어 단어 어근에서 후두음 자음을 규칙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근이라는 결론을 낸 이론이다. 이러한 후두음 중에 어떤 것은 앞에나 뒤에서 나오는 모음을 변화시켰다. 그 후 모든 후두음은 결국 인구어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모음에 합쳐진 후에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중성 후두음 h는 모음을 변경시키지 못하고, □-음을 갖고 있는 후두음은 a음으로, □음을 가진 후두음은 o음으로 변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 소쉬르가 그것을 주장한 지 49년이 지난 1927년에 쿠리로비츠(Jerry Kurylowicz)가 입증해냈다. 그는 그의 논문 ‘□ Indo-europeen et h hittite’에서 소쉬르의 가설이 사실이라고 입증했다. 1878년에 ‘후두음 가설’을 처음 제시했을 때만 해도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분석적인 이론을 바탕으로만 주장을 하니 논쟁만이 무성했고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히타이트어의 발견과 히타이트어가 인구어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학자들이 소쉬르의 후두음이 진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하여 주목했다. 실제로 히타이트어의 단어 어느 장소에서 쐐기문자 표기에서 h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침 그다음 해인 1879년에 묄러(Moller)는 그 당시 함-셈(Hamito- Semitic) 언어학의 용어로 그 음을 ‘후두음(laryngeal)’이라고 명칭을 붙였다. 소쉬르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라틴어 potare (= 마시다)
    산스크리트어 pa- (o → a 로 변함)(=마시다, 삼키다)

    그런데 이때 장모음 o 때문에 재구성된 가상의 인구어는 ‘*peh’ 일 것이라고 했다. 뒤에 히타이트어에서 ‘마시다’, ‘삼키다’의 “뜻을 가진 단어를 찾아보니 ‘pahs’라는 단어를 실제로 발견하게 되었다. 그다음 인구어의 동족어를 찾아보니 같은 현상이 나왔다.

    동족어 그리스어 anti (in front of)-히타이트어 □anti
    동족어 그리스어 rges (white)-히타이트어 □arkis
    동족어 라틴어 p□sco (protect)-히타이트어 pa□sanzi
    *그리스어 예에 앞에 나온 단모음 a 때문에 재구성된 인구어 단어는 *h2ent 일 것인데, 실제로 히타이트어에서 ‘□ants’(front, face)가 나타났다.

    그래서 모 언어를 재구성해 보니 실제로 인구어와 초기 인구어에서 눈에 띌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예를 들면 음운조직 여러 위치에서 인구어에 이미 사라졌던 후두음의 현상이 발생한 음운 변화를 볼 수가 있었다. 그 뒤에 흔적을 모음에서 또는 다른 자음에서 볼 수 있었다. 인구어 어근으로 알맞지 않은 구조를 가진 어근도 더 옛날 조상-인구어에서는 비교할 만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음운구조에서 어근 *dh□-(장소)→*dheh-, *st□-(일어서다) → *steh- 등에서 보면 뒤에 변화를 해서 장모음과 함께한 것이 아니라 후두음이 첨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무성유기성파열음을 가진 인도-이란어군에 ph, th, kh음도 사실상 p, t, k에 후두음(h)이 붙어 함께 발달되어 나왔던 것이다. 이런 사연들을 종합해서 결국에 가서 히타이트어에서 h음과 유사한 음들은 실제로 조상-인구어에서 후두음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루비어에서 몇몇 후두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히타이트어와 루비어에서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후두음 이론은 현대 언어학에서 인정되었고, 처음 주장한 소쉬르의 연구업적도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형태론에서 보면 히타이트에서는 명사에 두 개의 성(gender), 즉 보통성과 중성만이 있었다. 히타이트어 동사문법에서 같은 인구어족에서 조상-인구어족을 재구성하는데 기본이 된 산스크리트어나 그리스어보다 더 간단했다. 즉 시제에 현재와 과거만 있고, 법에는 직설법과 명령법뿐이며, 활용 편에서도 1인칭 단수 어미는 -mi로 끝나며 나머지 인칭에는 모두 □hi로 끝났다. 형태론에서 히타이트어에 두 개의 성(Gender) 표현이 있지만 다른 인구어족 언어들을 연구해 보니 세 개의 성 표현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 대다수 학자들은 두 개의 성 표현을 가진 언어가 더 오래된 언어이라고 생각했다. 소수의 학자들은 여성 표현이 히타이트어에서는 상실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사 활용에서는 더욱 간단하다. 특히 1인칭 단수 어미에 -mi가 붙고, 나머지 인칭에는 -hi가 붙었다. 이것에 대하여 학자들은 주목했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에 완료형태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기능면에서 히타이트어에서 중간-수동태(medio-passive)를 나타내는 굴절형(stative inflection)과 같은 기능을 했다. 재구성된 조상-인구어에서 차이점 등을 근거로 스터트번트(Edgar Sturtevant)는 히타이트어를 조상-인구어의 자매 언어로 생각해서 원시-인도-히타이트어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원시-인도-히타이트어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은 후에 공통적인 의견 일치를 본 것은 히타이트어가 원시-인도-히타이트어에 속하지 않고 조상-인구어에 속하며, 다른 언어보다는 다소 일찍 기록되어 있는 관계로 다른 인구어 언어에 이미 상실된 여러 가지 옛날 특징들을, 특히 굴절어미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 정리는 능동적/상태적(Active/Stative)언어들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 결과였다. 그래서 이런 언어에서는 명사와 동사는 능동적/생동적(active/animate)이냐 아니면 상태적/비생동적(stative/inanimate)이냐 둘 중의 하나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옛날 형태의 예를 들면 아나톨리아 언어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재구성 된 조상-인구어는 모두 능동적/상태적(Active/Stative) 언어에 속한다. 히타이트어에 나타나는 두 가지 성 표현은 대조적인 일반 : 중성 굴절형 사이에서 생동적 : 비생동적 구성을 반영한 형태이다. 동사에서 hi-활용형이 상태적 굴절형을 나타내는 반면에 mi-활용형은 더 옛날의 능동적 굴절형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하게 되었다.
    히타이트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루비어(Luwian)의 발견과 그 언어가 인구어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사실로 인구어족을 연구하는 데에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이 언어는 모든 인구어의 어머니 언어로 가정한 조상-인구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전환시킨 후두음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부산대학교 영문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석·박사
    동아대학교 영문과 조교수
    부산대학교 영문과 조교수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명예연구교수
    부산대학교 신문사 주간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한국헤밍웨이학회 회장
    한국헤밍웨이학회 제1회 학술상 수상
    부산대학교 언어교육원 원장
    부산대학교 언어정보학과 교수
    현) 부산대학교 언어정보학과 명예교수

    저서

    [문법이론과 문체]
    [문자학]
    [영어의 역사를 알면 영어가 보인다](2007년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쐐기문자에서 훈민정음까지]
    [영문법의 이해와 문체](2009년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언어학사와 언어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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