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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3 : 암자로 가는 길에는 자연과 내가 다를 바 없는 한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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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 저 : 정찬주
  • 사진 : 백종하
  • 출판사 : 열림원
  • 발행 : 2015년 11월 16일
  • 쪽수 : 3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0639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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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 작가의 [암자로 가는 길 3]이 2015년 늦가을을 맞이하여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1997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래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온 [암자로 가는 길]은 2004년 첫 번째 책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2010년에 두 번째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이제 첫 출간 후 거의 20년이 흘러 세 번째 책이 출간됨으로써 대한민국 암자 기행문의 대표작 [암자로 가는 길]이 전 3권으로 완간되었다.

출판사 서평

암자는 심신을 맑게 하는 영혼의 세탁소이다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하나의 생,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불멸의 생, 울창한 숲이 되는 길이다

대한민국 암자 기행문의 대표작 [암자로 가는 길] 전 3권 완간

수행과 기도란 '맑은 눈'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그 무엇이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 작가의 [암자로 가는 길 3]이 2015년 늦가을을 맞이하여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1997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래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온 [암자로 가는 길]은 2004년 첫 번째 책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2010년에 두 번째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이제 첫 출간 후 거의 20년이 흘러 세 번째 책이 출간됨으로써 대한민국 암자 기행문의 대표작 [암자로 가는 길]이 전 3권으로 완간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반딧불이처럼 지혜의 등불을 이어오고 있는 암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와 위치 정보 및 풍부한 서지자료, 수행자들의 일상과 고승들의 일화들, 작품사진들을 담아 작가 정찬주 특유의 성찰적인 글로 녹여낸 [암자로 가는 길]은 작가의 몇 십 년에 걸친 순례의 발자취를 그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처들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암자로 가는 길]은, 1권은 52개의 암자를, 2권은 32개의 암자를, 3권은 34군데의 암자를 소개함으로써 총 118개의 전국 암자들에 대한 방대한 순례기이자 한국 불교의 정신문화사를 총괄하는 역사자료, 귀중한 사진자료로서 한국 출판에 또 하나의 방점을 찍고 있다. [암자로 가는 길 3]은 절판된 [산중암자]의 개정증보판으로, 작가의 신심을 키워주었던 호남과 영남의 암자들에 대한 글을 추가했으며, 사진은 최근의 풍광으로 모두 바꾸었다. 1권의 사진작가 김홍희, 2권의 사진작가인 유동영에 이어 이번 [암자로 가는 길 3]의 사진은 전통 문화와 한국 불교에 관련된 사진 작업에 매진 중인 사진작가 백종하가 찍은 1백여 컷의 사진이 실려 사계절 암자의 고요한 풍광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안심의 법문에 들게 한다.
넓디넓은 전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화려한 여행안내서와 여행에세이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오늘날, [암자로 가는 길]은 우리의 정신문화를 향한 보다 깊이 있는 여행, 진정한 나의 본류를 찾는 고요한 여행을 권유한다. 새롭고 기발한 것들을 시도하는 용기와 모험심을 북돋는 이 시대에 우리는 종종 '소박한 공간'에 기대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텔레비전의 수많은 채널들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24시간 국내외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환경에서 가끔은 8시, 9시 뉴스가 없는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디지털 문명의 지식과 성과가 채워줄 수 없는 정신의 허기를 느낄 때 [암자로 가는 길]은 우리를 인적 드문 산길로, 구도자들이 밟아온 가파른 길로 안내한다.
산중 암자의 역할은, 마치 산골짜기 물의 소임이 맑은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 자체로써 저잣거리의 우리들을 위안하고 평정에 들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수행은 절에서 참선하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것이다. 자신의 낡은 한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열정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진실한 수행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암자로 가는 길]은 말하고 있다. 녹음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가르침과 절규로 소리 없이 메아리치는 암자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들이 이 책 안에 펼쳐진다.
[암자로 가는 길]은 절이란 수행자들의 공간임을 넘어서 '한 권의 시집'이고 우리의 살아 있는 생활사임을 알려준 한국 기행문학의 백미이다. 사라져가는, 잊혀가는 우리의 지혜와 빛이 어떻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지 전해주는 [암자로 가는 길]을 지팡이 삼아 마음의 여정을, 발로 혹은 눈으로 쉬엄쉬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치유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암자를 찾아 산길을 오르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라, 마치 이 책이 다른 사람 아닌 나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출간되는 책이 아닐까도 싶었다. 아직도 내게 그때의 감성과 사유가 남아 있을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을 거름 삼아 움이 돋듯 내면 어딘가에 새롭게 생겨난 것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암자로 가는 길에서 만난 자연과 수행자와의 인연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하나의 생,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불멸의 생, 울창한 숲이 되는 길이다

목차

책머리에

전라남북도
암자는 스스로 봄바람에 웃네
조계산 광원암 - 솔바람 소리 회오리치는 산길
운람산 수도암 - 뜻밖에 받은 나그네의 생일상
거금도 송광암 - 바다안개 쉬어 가는 섬 산길
두륜산 진불암 - 우리는 한 뿌리에서 나온 이파리
두륜산 북미륵암 - 미륵부처님도 난롯불을 쬐는 암자
돌산 향일암 - 바다를 가슴에 담아가라고 말하는 암자
지리산 약수암 - 우주 안의 우리는 한 뿌리
지리산 백장암 - 달빛에 돌탑이 눈을 뜨네
치졸산 태조암 - 마루에 뿌려진 눈가루 보석
내장산 벽련암 - 지금 여기서 주인공 되는 삶을 살자꾸나
나한산 만연사 - 나한산 산봉우리 쳐다보니 세상 번뇌 흩어지네
영구산 운주사 - 절은 절하는 곳이다

경상남도
차 달이는 연기가 암자를 물들이네
지리산 국사암 - 봄비와 함께 가는 피안행
대운산 내원암 - 모기가 물어도 미소 짓는 스님들
가야산 지족암 - 방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 빛나도다
가야산 희랑대 - 매화는 숨지만 향기는 숨길 수 없네
가야산 삼선암 - 듣는 소리 없으니 시비가 끊어지네

경상북도
꽃 지는 바람이 암자를 스치네
호거산 사리암 - 길손에게 다람쥐도 합장하는 암자
비슬산 도성암 - 한국인 원래 쩨쩨하지 않다
팔공산 기기암 - 상구보리 없이 하화중생을 말하지 말라
팔공산 부도암 - 고양이도 스님의 법문을 듣는구나
팔공산 염불암 - 바위 속에서 들리는 염불 소리
천등산 영산암 -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자리
희양산 동암 - 회초리 같은 계곡의 찬물
희양산 백련암 - 복숭아 익는 소식을 뉘라서 알까
남산 보리사 - 미남 돌부처님을 '눈 속의 눈'으로 보라
선방산 지보사 - 배롱나무꽃 무더기 속에서 석탑을 보다
비슬산 유가사 - 풍류란 바람으로 마음을 읽는 것이다
태백산 금봉암 - 미물과 내가 무엇이 다르리

경기 · 충청도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암자에 있네
삼성산 염불암 - 눈길에 저절로 씻기는 헛 욕심
계룡산 상원암 - 마음으로 쌓아올리는 남매탑
계룡산 고왕암 - 제 몸에 있는 도둑부터 잡으시게
속리산 중사자암 - 작은 꽃에도 뛰는 가슴이고 싶소
속리산 상고암 - 청설모가 잣 따는 스님에게 항의하네

본문중에서

몸이 고단하면 때로 영혼이 맑아지는지도 모른다. 비바람 맞은 여린 신록의 나뭇잎들이 봄을 축복하는 빛깔인 듯 어느새 파래져 있지 않은가. 산길을 힘들게 오르다 보면 이런 깨침도 작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다른, 풍경 소리 뎅그렁거리는 깊은 암자임에랴!
(/ p.39)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서로 다른 이파리 같은 존재이다. 본래는 나와 남이 없는 것이다. 무아無我란 이런 의미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은 나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데서 싹튼다. 진정한 자비심이란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 p.48)

나그네도 고깃배처럼 만선의 소망을 꿈꾸어본다. 올 한 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나 곧 그런 상념을 접는다. 향일암의 무심한 바다를 가슴에 담아가고 싶다. 암자의 관세음보살님도 바다를 가슴에 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저잣거리로 돌아가서 삶이 힘들거나 가슴이 허전해질 때마다 바다를 꺼내 보라고 화두를 던지시는 것 같다.
(/ p.58)

암자는 그저 형상일 뿐, 암자의 문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러니 암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조그만 방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우주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쩍새가 우는 밤이 되자, 스님이 삼층석탑(국보 제10호)과 석등(보물 제40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 달빛 아래 서니 문득 삼층석탑의 진면眞面이 보인다. 비로소 돌에 양각된 하늘사람과 보살들이 그림자를 만들며 살아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탑이나 석등은 한낱 낮의 장엄물이 아니라 밤의 놀이 문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탑은 그 기원을 떠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옛사람들의 친근한 벗이었음이다. 석등에 불을 환히 밝히고 마을의 처녀 총각들이 강아지를 앞세우고 탑돌이를 한마당 흥겹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탑은 땀내 나는 삶과 동떨어져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 등의 이름표를 달고 유물 대접을 받고 있다. 삶의 중심에서 점점 비껴나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다.
(/ p.76)

암자는 고향의 시골집처럼 소박하다. 반영구적이라 하여 청동기와를 얹는 시대에 마치 흑백사진 한 장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그네는 이런 장면이 부럽다. 오직 참선만이 자신의 할 일이라며, 이런 가난을 불편해하지 않는 늙은 비구니스님이 좋다. 암자에서 조금 떨어진 화장실에도 눈송이들이 들이쳐 있다. 절로 통풍이 잘되고 보니 배설물의 냄새는 전혀 없다. 불구부정不垢不淨. 나그네의 한 생각이 변덕을 부릴 뿐, 본래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리. 그런데도 휴지에 얹힌 눈을 탁탁 털고 볼일을 보자니 거듭 진저리가 쳐진다.
(/ p.83)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없을까? 암자에서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시간을 쫓아가지 않는 모습이다.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수행자들이 시간을 외면하고 살지는 않는다. 저잣거리에 사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자신과의 약속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고 주어진 질서 속에서 산다. 우리들이 달콤한 잠에 빠진 새벽 시간에 수행자들은 눈 비비고 일어나 도량을 돌며 목탁을 치고, 우리들이 퇴근해 자의 반 타의 반 한잔 술을 기울이고 있을 때 그들은 범종을 치고 저녁 예불을 한다. 암자의 빈틈없는 일과는 수행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들의 얼굴 에는 미소가 깃들어 있고 눈빛은 맑다. 그렇다. 시간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되고, 자신과의 약속을 부도내는 사람에게는 속박이 된다.
(/ pp.84∼85)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순정하게 살고, 여기서 나누는 삶을 한 몸인 듯 더불어 열자. 내일이라는 시간은 미리 손짓하는 헛꽃일 뿐이고, 여기가 아닌 저기라는 공간은 가설무대 같은 것이다.
(/ p.92)

절하고 나니 직립한 나도 탑이 되는 느낌이다. 구층탑 뒤편에 있는 불상을 만나는 순간에는 나도 불상이 된다. 목이 잘린 불상이지만 편안하다.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면의 내 영혼 역시 상처투성이가 아닌가. 운주사를 찾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뭉게구름처럼 무리지어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도 절 안에서는 미완의 탑이 되고 목이 잘린 불상이 된다.
(/ p.106)

한 번 떨어지는 것이 1년이라면 얼마나 많은 낙엽이 흙으로 변해야 새 세상이 열릴까. 선가禪家에 일념一念이 만년 가도록 정진하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때 묻지 않은 열망의 한 생각을 천년인 듯 만년인 듯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가슴 벅찬 새 세상의 개벽이 아니겠는가.
(/ p.114)

열어젖힌 창호 너머 보이는 나무들도 무심히 빗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고, 그러고 보니 빗소리는 산山 식구들이 빚어낸 화음和音이다. 소나무·상수리나무·대나무·단풍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모두 다르겠지만 어느 소리 하나 튀지 않고 나그네의 마음을 비질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잣거리의 우리들도 제 목소리를 내되 지역감정이니 뭐니, 남이니 북이니 다투지 말고 감동의 화음을 일궈내는 방법은 없을까.
(/ p.125)

나그네는 스님을 기억할 때 꼭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미소이고 또 하나는 노래이다. 나그네는 구름장처럼 고뇌하는 스님보다 햇살처럼 미소 짓는 스님이 더 좋다. 저녁공양을 마친 후, 차 마시는 시간은 아예 컴컴한 밤이다. "봄에는 이 지방 전통 놀이 문화인 화전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산사 음악회를 가질 생각입니다." 암자를 엄숙한 수행 공간으로만 이용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삶의 활력 을 재충전하는 쉼터로 가꾸어나가겠다는 스님의 의지이다. 속가의 말로 신세대 스님다운 사고이다.
(/ p.128)

일타 스님의 얘기를 유발상좌 대원성 보살한테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보살이 처녀 시절에 방생放生을 따라갔다가 고기 장수의 물동이를 가리키며 "가장 큰 것으로 주세요" 하자 일타 스님이 고기 장수의 물고기를 다 사버렸다. 보살이 "스님, 곧 죽을 것 같은 고기도 있는데 왜 다 사십니까?"라 고 묻자, 일타 스님은 "고기들이 죽고 사는 것은 제 명이지만 살려주는 마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라고 하여 보살을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p.141)

이곳에서는 밭에 콩을 심고 수확하여 직접 메주를 쑨다고 한다. 햇볕이 드는 암자의 토방에 메주가 질서 정연하게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삼선암 스님들은 목탁만 치는 게 아니라 농사일에도 땀을 흘리는 모양이다. 기둥에 매달린 목탁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라고 법문을 하는 느낌이다.
(/ p.152)

비로소 등을 돌려 보니 저 건너편에 학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학산鶴山이 그윽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반존자께 힘들게 올라왔노라고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자 비로소 암자의 식구들이 다가서고, 참배객뿐만 아니라 헌식대에 놓인 음식을 먹는 박새도 보이고, 암자 마당에서 합장하고 있는 다람쥐도 보이고, 다래넝쿨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청설모도 보인다. 이때 암자의 한 비구니스님을 마주친 것도 인연이다. "우리는 육식을 안 해서 그런지 새들이 스스럼없이 손에 올라와요. '깐돌아', '똘똘아' 하고 부르면 새나 다람쥐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계곡에 있다가도 곧 달려오지요."
(/ p.170)

일상에 충실한 모습이야말로 진리의 문을 여는 일이 아닐까. 중국의 조주 스님은 불법을 묻기 위해 찾아온 젊은 스님에게 먼저 이런 작은 일부터 하라고 말했음이다. "차나 한잔 하게." "공양을 했으면 바리때를 씻게나." 빨랫줄에 젖은 빨래를 널어놓고 바위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도 조주 스님이 지금 자리에 있다면 칭찬을 해줄지 모른다. 이런 일상 역시도 바리때를 씻는 일이나 다름없으리. 마침 초하루여서 신도들은 마루에까지 나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어떤 신도는 자리가 없어 마당에서 불서를 들고 대여섯 살 되는 아이와 함께 서 있다. 아이는 엄마가 공부하고 있는 줄 알 것이고, 이 추억도 아이 가슴속에는 선한 씨앗善因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p.194)

영산암은 한 편의 곰삭은 산문이다. 자연 속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깃들인 여유와 투박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암자 자체는 'ㅁ' 자형으로 어찌 보면 폐쇄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의 자연과 열려 있다. 아랫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나가도록 누각 형식으로 터져 있는 것이다. 나그네도 누각에 올라 암자 밖을 내려다본다. 과연 암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타협하고 있다. 그래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테니까. 밖을 조망할 수 있게끔 건물을 지은 것은 스님들에게 자연이나 감상하며 세월을 보내라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저잣거리를 떠나 출가는 하였지만 인간 세상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아닐까.
(/ p.208)

세상에는 이런 도둑이 많기도 하다네. 그중 제일 고약한 도둑이 있으니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첫째는 눈도둑, 집이나 재물 보이는 족족 뭐든지 가지려 성화를 하지.
둘째는 귀도둑,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한다네.
셋째는 콧구멍도둑, 좋은 냄새는 자기가 맡고 나쁜 냄새는 남에게 맡게 한다네.
넷째는 혓바닥도둑,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한다네.
다섯째는 요놈의 몸뚱이도둑, 훔치고 죽이고 못된 짓을 골라 하니 도둑 중에 제일 큰 도둑이구나.
마지막 도둑은 생각도둑, 제 마음대로 이놈은 싫다, 저놈은 없애야 한다, 저 혼자 화를 내고 이를 갈며 난리를 치지.
그대들 가운데 이 여섯 가지 도둑이 없는 사람이 있거든 어디 한번 나서보시게. 복 받기 바라거든 우선 제 몸에 있는 여섯 도둑부터 잡으시게.
(/ p.290)

"스님, 내생에도 스님 하실 겁니까?"
"아니오, 평범하게 아들딸 낳고 살 겁니다."
"스님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데서 고독하고 치열하게 수행하다 보면 그런 말 안 나옵니다. 가짜 중들이 신도들 대접 속에서 편하니까 그런 말들 합니다."
(/ p.295)

나그네는 치아 치료 때문에 벌써 일주일간이나 죽만 먹는 상태이므로 해발 6백 미터를 넘어서자 탈진이 되고 만다. 마음은 미리 암자에 가 있는데 두 발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렇다고 예서 멈출 수는 없다. 몸도 옷도 모자 같은 것까지도 무겁고 귀찮아서 내팽개치고 싶은 극한 상황이지만 차라리 마음 편한 점도 있다. 저잣거리에서 가져온 묵은 감정 같은 것이 어느새 세탁되고 없는 것이다.
(/ p.296)

이곳에서는 지금이 바로 잣을 따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청설모가 입으로 발로 다 따가버린단다. 그러나 산 주인이 누구일 것인가. 청설모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다. 그러니 먼저 따는 자가 임자다. 스님이 잣을 먼저 따는 날에는 청설모가 나타나 나무 위에서 항의를 한다는데, 그 방법이 재미있다. 화가 난 청설모가 잣을 따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때 청설모는 스님에게 더없이 고마운 존재란다. 잣나무 높은 가지에 있는 잣을 따서 떨어뜨려주는 봉사를 하니까. 스님 없이 쌀 한 줌, 된장 한 줌만 남아 있던 빈 상고암에 올라와 벌써 수십 년째 살고 있다는 귀밑머리가 희끗한 스님. 청설모와 티격태격하는 스님의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연상된다. 그렇다. 어른이 된 우리들이 과 거 속으로 묻어버린 모습들 중 하나이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이때 말로만 표현하는 도道는 어디에도 발붙일 자리가 없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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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53~
출생지 전남 보성
출간도서 69종
판매수 14,618권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국어교사로 교단에 잠시 섰고, 〈샘터〉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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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하 [사진]
생년월일 1963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3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0~90년대 농촌을 기록한 [비탈](1994),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기록한 [고려팔만대장경](1998), 禪 풍경 [흔들리는 경계](2000), 禪 풍경 [흐름](2003) 등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십여 번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강원도청, 고토갤러리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우리 문화와 전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사진 관련 강의를 하는 한편, (주)예진디자인의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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