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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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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오윤
  • 출판사 : 사람풍경
  • 발행 : 2015년 10월 25일
  • 쪽수 : 32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8280109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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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우리 내면에 살아있는 지역감정이라는 유령에 관한 이야기!

    치유 글쓰기, 자기 역사 쓰기 작업의 기준을 제시하는 책
    우리 내면에 살아있는 지역감정이라는 유령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마흔 살 대한민국 남자인 저자가 임상 역사학자 이영남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쓴 [자기 역사 쓰기] 작업 결과물이다. 저자는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불편한 내면과, 갈등으로 치닫는 관계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객관적 모습은 대한민국 표준 직장인이지만 내면의 주관적 삶은 불안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임상 역사학자 이영남 선생님을 만나 자기 치유 작업의 일환으로 삶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출판사 서평

    저자가 자기 역사를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찾아낸 삶의 키워드는 [전라도]였다. 프란츠 파농의 "니그로는 비교다."라는 문장처럼, 그도 자신의 삶을 구속했던 모든 감옥이 결국 전라도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전라도 출신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목포로 이사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전학 첫날 한 아이가 묻는다. "너 전라도에서 왔다며? 너도 빨갱이지?"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전라도]는 좌천과 좌절과 모욕과 불안의 근원이 되어 있었다. 그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웃음 띤 얼굴로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다시 광주로 이주했을 때 전라도는 더욱 무거운 것으로 다가왔다. 그곳에는 전라도라는 특별한 명사를 정체성의 일부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오월의 거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패배 등을 경험하면서 중학생이던 그의 어깨에도 지역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지워진다. 광주를 떠나 다시 수원으로 이사했을 때 그는 광주에게 짊어졌던 책임감과 함께 공부 자체를 내려놓는다. 대입 시험 때 기숙사 같은 방에 배정된 대구 학생은 엄마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룸메이트 서울 아다. 전라도 새끼랑 같은 방 쓰면 재수 없을 뻔했는데 다행이다."
    저자가 자기 역사 쓰기 작업에서 찾아낸 자신에 대한 자신에 대한 최종 진실은 이렇다.
    "나는 한국의 니그로였고, 세상에 잘 보이고 싶어하는 화냥이였다."
    저자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에게 [전라도]는 단순한 지역감정이나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를 변방에 위치시키는 마음 속 감옥이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개인의 미시사와 함께 가족사, 사회사를 함께 써내려간다. 식민지 시대의 일본의 광산 도시에서 시작되는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한국 전쟁과 이념 갈등, 빨치산 활동과 토벌 작전, 이후의 보복 살인 등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 드라마가 서술된다. 그가 늘 시달려오던 모호한 불안감의 근원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족사 전체를 밀봉해둔 아버지의 노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버지의 불안감이기도 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오류를 범하는 태도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엄격하면서도 소극적인 양육 방식이 있었다. 경제 개발정책과 함께 어린 나이에 경제 활동에 뛰어든 어머니는 그에게 영원한 모성 결핍과 여자에 대한 공포심을 물려 주었다.
    "자기 역사 쓰기는 한 개인이 이룩한 업적보다는 좌절에 주목한다. 사람은 좌절할 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상 역사학자 이영남 선생님 말씀처럼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한 개인의 삶 중에서 아프고 슬픈 측면의 기록이다. 전라도라는 아픈 땅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며, 그 땅에서 숨쉬고 살아온 이들의 고통에 관한 기록이다. 여전히 그 콤플렉스의 힘으로 미래를 모색해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미시사와 거시사를 가로지르며 자신을 탐구해가는 저자의 역사 쓰기 첫 작업은 2010년에 시작되었다. 이후 5년간에 걸쳐 그는 이 글을 틈틈이 꺼내 보며 여러 각도에서 고쳐 쓰곤 했다. 침묵과 공란이 많은 아버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묵은 신문이며 자료를 조사했다. 또한 한국 현대사와 사회학, 심리학과 픽션을 넘나드는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전라도]라는 공간에 대한 자극적인 고백이나 기억 나열식 글쓰기와 차별성을 확보한다. 저자는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삶의 조건이 어떻게 마음속에서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는지를 탐구하며 동시에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정립해가는 모색의 과정을 보여준다.
    2015년 오늘도 대한민국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지역 감정이라는 유령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 유령은 우리가 정직하게 인정하지 못한 우리 마음의 열등한 측면이 먼 곳으로 축출되었다가 무서운 얼굴이 되어 돌아온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이 땅에서 마흔 살, 남자, 중년이라는 키워드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나 공감의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막 시작된 보편적 치유 작업의 일환으로서 치유 글쓰기, 자기 역사 쓰기 작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이것은 마흔 살 한 남성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서울에 사는 평범한 인간에게 있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과 해방 후 70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시공간을 한 걸음 앞선 곳에서 걸어간 부모의 삶과 뒤에서 걸어간 아들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부모도 아들도 자주 외면하고 회피하려 했던 전라도라는 숙명이 삶의 빛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고 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이 어느 순간 도돌이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이 지속되었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일도 사랑도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아닌지, 내가 머무는 곳은 무슨 의미인지 늘 이런 의문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 마주하는 사건, 삶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든 불안하고 외로워하는 마음을 마주하곤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이 필요했다. 하찮은 감정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빚어내는 삶의 장벽들이 너무도 거대하고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실하고 성실하게 불안과 외로움을 떨쳐 보내려 했지만 결국은 잘되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고, 반복되는 실패는 자주 회환, 비애, 슬픔, 우울, 분노를 동반했다. 어째서 나는 불안하고 외로울까? 어째서 내 인생은 결국 실패일 거라고 생각할까? 어째서 최선을 다해도 결국은 홀로 남겨질 거라고 확신할까? 어째서 이 하늘은 이렇게 슬플까? 그런데도 왜 웃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도 왜 착하고 성실하며 자신 있는 척 연기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답을 찾기에는 관련된 이야기가 부족했고, 많은 정보들이 삭제되거나 빠져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명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문장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글로 써야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뿐 오랫동안 손도 대지 못했다. 자주 지난 일기와 앨범을 들춰보고 머릿속으로 과거를 재연했지만 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자기 역사 쓰기'에 관한 특집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역사화하는 임상 역사학자의 워크숍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워크숍을 기획한 역사가 이영남 박사는 자기 역사 쓰기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다. 개인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모순이나 고민을 해명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이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이런 영역도 공적인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은 지적인 욕구가 있어서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다."
    그 기사를 본 후 나는 곧장 임상 역사학자 워크숍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주일에 한 번씩 1년 동안 자기 역사 쓰기를 위한 훈련(?)을 받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자기 역사 쓰기를 훈련하는 동안 지루함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서 배우고 듣고 교류한 이야기들이 내 삶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학교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문제를 품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기도 했다. 그곳에서 배운 이야기는 모두 내 삶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었고, 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해준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불안과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을 억누르던 것들, 상처, 콤플렉스, 그림자 들을 기억 위로 꺼내놓았고, 부모의 삶과 시대적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삶이 불안하고 외로울 때면 공책을 펼쳤고, 이야기는 내게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사회로 확장되어갔다. 모든 이야기의 배면에 깔린 한국 사회의 빛깔 속에서 깊은 슬픔과 적막을 느끼곤 했다. 자기 분석적이고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출판물로 기획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은 아닌지, 그것이 기억과 아픔을 세상에 파는 행위는 아닌지 자주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 글이 발표됨으로써 나와 가족들이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그런 두려움도 있었다. 여러 번 펜을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이야기와 그것이 빚어낸 정서들이 한국 사회에서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한 번 작은 고함을 내지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불안과 외로움의 폐허를 질주하는 또 다른 나에게 거침없는 용기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위안은 주고 싶었다. 내 작은 외침이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가증스러운 것인지 애처로운 것인지, 지금의 나는 잘 모른다.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글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관점에서든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2015년의 나라는 인간이고, 그런 면에서 나는 정직하게 지금 시점에서의 '오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그들이 내게 전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선의의 자극처럼 나 역시 불안하고 외롭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티끌만큼의 자극과 격려가 된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다. 아니 이 글을 통해 내 불안과 외로움을 또 다른 나에게 전염시키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혹시 자기 이야기를 역사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글 말미에 붙인 참고 문헌이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문헌들은 내 자신마저 속이고 있던 내 이야기를 직시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쟁기들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달될까 궁금해진다. 내 이야기가 이 땅 곳곳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고 연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좀 더 많은 침묵의 역사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이 땅 위에 작은 희망의 씨앗들을 만들어내기를 소망한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불안하고 외로운 또 다른 '나'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겠다는 외침이다.

    추천사

    "한 동무를 만났다. 우리는 퇴근 후 신촌의 어두운 골목 안 작은 공간에서 만나 1년 동안 자기 역사를 함께 썼다. 그이의 매력은 성실함,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며 고뇌하는 데 있었다. 왜, 어떻게 해서, 어떤 종류의 성실함과 불안감을 갖게 되었는지 그는 자문했고, 자기 역사를 쓰면서 답을 찾고자 했다. 임상 역사 쓰기는 처음 하는 작업이라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그는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역사를 통해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구나, 미시사와 거시사가 이렇게 접목될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 이영남 / 임상 역사학자

    "자기 이야기를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면 마음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독자와 만나는 자리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보살피고자 하는 이들의 질문을 받는다. 치유 글쓰기 작업에 모델로 삼을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 그때마다 우리에게 심리 치료 경험이 일천하여 마땅한 책이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묵은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이제 치유 글쓰기를 묻는 이에게 이 책을 소개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 김형경 / 심리 에세이스트

    목차

    추천사 / 내가 만난 오윤 / 이영남
    작가의 말 / 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프롤로그 서울 2010

    1장 세상을 만나다 1976-2002-2006
    눈 내리던 새벽
    세상은 나를, 나는 세상을 거부했다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원한다

    2장 기억의 첫 단추 1980-1981
    전라선
    빛과 그림자, 외갓집 칠보
    원호원 아줌마

    3장 어머니와 아들 1934-1973
    나 아파 아파
    엄마의 언니
    사랑을 모르던 엄마

    4장 아버지와 아들 1939-1985
    목포의 눈물
    아버지의 아버지
    전라도의 모스크바
    침묵의 고향
    빨갱이라는 주홍글씨

    5장 전라도, 그 잿빛 기억 1986-1989
    전라도 전학생
    회색빛 도시
    차별받는 일등의 고장

    6장 전라도 아이, 세상의 아웃사이더 1996-1998
    스무 살, 욕망의 민낯
    우리는 왜 아웃사이더가 되었을까?
    상실의 시대

    7장 그림자는 빛에서 태어난다 1991-1994
    짝사랑
    흩어지고 바래지는 이야기
    마이크 앞에 앉은 원숭이
    이길 수 없는 아버지
    비가 내리지 않는 그늘, 노량진

    8장 병든 사랑의 도시 1995-2010
    오윤의 사랑
    강한 여자
    시험에 든 사랑
    사랑에 맹목적인 여자, 사랑에 수동적인 남자
    싸움의 공식 그리고 남겨진 흔적

    9장 변방과 중심의 경계에서 2000-2010
    계급과 소속
    변방에서
    [전라도 죽이기]와 강준만
    세상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
    워커홀릭의 뿌리
    서울과 함께 신음하다

    에필로그 삼청동 2015

    참고문헌
    첨부 / 자기 역사 쓰기란 무엇인가/ 이영남

    본문중에서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다음날 일어났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오르막길을 올라 광주 동산초등학교에 도착했는데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확실히 광주는 내가 그때까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어떤 동화책에서도 보지 못한 낯선 세계였다. 선거 결과가 최종 발표된 12월 17일 아침,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광주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1996년 여름, 내가 닮고 싶었던 선배와 동기들은 대부분 구속되거나 수배자가 되었다. 그들이 서울 신촌 바닥에서 빨갱이로 몰리던 8월, 나는 동네 도서관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당구를 치고 술을 마시고 그래도 남아도는 시간을 하릴없이 보냈다. 내가 다시 학교에 간 것은 전쟁터가 된 신촌 풍경을 뉴스를 통해 보고나서였다. 신촌역을 나서자마자 경찰 네 명이 나를 에워쌌다. 신분증을 제출해야 했고, 몸수색을 받아야 했고, 가방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역 한 가운데에 전시해야 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라는 단 한마디 반항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들의 명령에 순응했다. 겁을 먹고 있었고, 그들의 심문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으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간다는 거짓말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를 둘러싼 경찰들 위에 두 대의 헬리콥터가 낮게 날고 있었고,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2001년 여름,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 브리스번으로 떠났다. 이전의 삶과 단절이 필요했다. 내가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은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 난민, 베트남 보트 피플, 위장 결혼한 불법체류자, 일본 프리터족, 성적 소수자, 호주 소수민족, 노인 등 한마디로 그 도시 소수자들이었다. 그 땅의 철저한 변방에서 나는 꽤 깊은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팀, 내가 이 세상에 돌직구를 던져 18승을 따내고 싶은 리그는 바로 이 변방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내 홈그라운드는 결국 그늘지고 소외된 공간이 아닐까?'

    결혼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 관계는 엉망이 되었다. 사랑에 수동적이었던 내게 갈등 국면은 오직 회피하고 싶은 어떤 것이었다. 그녀에게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나는 갈등을 해결하려기보다 도망칠 궁리만 했다. 그녀가 화를 내면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고, 잠에서 깨면 그녀의 무서운 표정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몰래 도망쳤다. 첫사랑이 영원한 사랑이 되길 꿈꾸던 그녀의 욕망은 비루한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사랑에 늘 뒷걸음치던 내 일상은 매일이 전쟁터 같았다. 사랑이라는 허상으로 꾸며진 신혼집은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다. 공포의 공간에서 우리는 악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입사한 후 일상이 분주해질수록 나는 누군가의 평가에 과도하게 민감해졌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주눅 들거나 기뻐했으며, 그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일과 관계에 둘러싸인 내 일상에 거절이란 없었다. 능력 있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그렇게 견고해져갔다. 그런 행동과 감정의 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채, 인정받지 못한다면 실패한 삶이라 생각했다. 칭찬받지 못하면 아버지처럼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몸에 각인된 전라도의 흔적은 소외되고, 차별받고, 배제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저는 전라도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쫓기고 불안해하며 살아온 삶도, 아버지의 삶에서 내 삶으로, 내 십 대로부터 삼십 대까지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그 반복에는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모습들이 함께했다. 한국전쟁, 군사 독재, 남북 대치, 간첩, 광주민주화항쟁, 빨갱이, 최루탄, 변사체, 한총련, IMF, 신자유주의,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 내 삶은 이 모든 풍경에 종속되어 있었다. 종속이 심화되면서 불안, 죄책감, 두려움은 점점 심해졌다.

    전라도는 아버지에게 부정하고 싶은 공간이었고 아들인 내게는 도망치고 싶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들도 어쩔 수 없는 전라도 태생이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놀림 받고 차별 당했다. 조롱과 차별의 벽은 탄탄했고 나도 아버지도 그 벽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프란츠 파농의 언어를 빌리자면 그것은 주체성과 능동성이 결여된 식민지 주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의문도 들었다.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 나는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언제나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자책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사회적 모순과 차별을 인정하면서 자발적으로 열등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얼마간 과도한 해석 같지만, 파농의 책을 들고 귀가하던 날 나는 한국의 니그로라는 느낌을 받았다.

    해고 통지를 받던 날, 서울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한강변을 무작정 걸었다. 라면과 음료수를 파는 작은 매점들을 지나쳤고, 돗자리 위에서 통닭을 먹는 가족, 연인들을 지나쳤다. 멀리 63빌딩이 보였고, 노량진이 보였고, 빼곡하게 자리 잡은 아파트들이 보였다. 한강의 풍경 위에 분노와 슬픔의 색깔이 강하게 결합되어 보였다. 전날 달렸던 한강공원과 그날 걷는 한강공원은 변한 게 없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크게 달랐다. 나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참 울었다. 스스로 가련하고 무가치하다는 느낌에 빠져들게 하는 데는 서울 공간에 펼쳐지는 풍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내 마음 속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사는 게 그다지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침잠하기보다는 세상의 문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길을 걸었다. 자주 도서관에 갔고 한적한 카페에서 글을 썼다. 틈이 나면 한강변을 달렸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의 결을 느꼈다. 나는 조금씩 여유로운 인간으로 변해갔다. 삶에 여백이 생기면서 주변 사람과 풍경들이 내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아파하고 분노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게 됐고, 그들이 울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로 또 다른 나였기 때문이다. 눈물도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또 다른 수많은 윤들과 함께 가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도 시작했고, 그들의 공간에 함께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렇게 나는 과거와는 다른 인간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KBS 연구원이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마케팅 리서처, 편성 전문 PD 등을 거쳐 현재 KBS 방송본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2015), [나는 미디어다](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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