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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숨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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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여기 아주 수상한 소설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 충격적인 상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눈앞에 툭 던져진다. 마음을 추스르고 읽다 보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흥미진진한 전개에 웃음도 나온다. 웃고 난 뒤에는 생각지 못하게 가슴이 뭉클해 온다. 으스스한 스릴러인가 싶더니 익살스러운 콩트 같다. 현대 가족의 비극적인 초상이자 소년의 감동적인 성장담이기도 하다.
[냉동실에 숨긴 엄마](Bevroren Kamers, 2009)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벨기에 작가이자 네덜란드어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얀 더 레이우의 소설이다. 열여섯 요나스는 주말 아침에 엄마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한다. 아빠는 정신병원에 있고, 동생은 겨우 여덟 살이다. 요나스는 아무도 모르게 엄마를 냉동실에 숨기고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 가려 한다. 동갑내기 여자애 헬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쪽으로 활기를 띠지만, 가려져 있던 무거운 진실이 느닷없이 얼굴을 들이민다. 게다가 오지랖 넓은 이웃 할머니 때문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보호하고 위로해 줄 어른의 부재 속에서 반쪽짜리 가정과 소중한 동생, 그리고 삶을 지켜 내려는 소년의 고군분투는 상식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가벼운 문장들로 빠르게 전개되는 200쪽짜리 짧은 소설임에도 섣불리 단언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201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 파르카우에 극장에서 연극으로도 상연되었다.

출판사 서평

오늘도 우리 집은 평화롭다, 냉동실 문만 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요나스 가족의 가장 완벽한 비밀


아빠는 정신병원에 있고 엄마는 냉동실에 있다
어린 동생은 아홉 살 생일 파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우주는 아직 건재하고 인생 전체가 내 앞에 놓여 있다

여기 아주 수상한 소설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 충격적인 상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눈앞에 툭 던져진다. 마음을 추스르고 읽다 보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흥미진진한 전개에 웃음도 나온다. 웃고 난 뒤에는 생각지 못하게 가슴이 뭉클해 온다. 으스스한 스릴러인가 싶더니 익살스러운 콩트 같다. 현대 가족의 비극적인 초상이자 소년의 감동적인 성장담이기도 하다.
[냉동실에 숨긴 엄마](Bevroren Kamers, 2009)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벨기에 작가이자 네덜란드어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얀 더 레이우의 소설이다. 열여섯 요나스는 주말 아침에 엄마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한다. 아빠는 정신병원에 있고, 동생은 겨우 여덟 살이다. 요나스는 아무도 모르게 엄마를 냉동실에 숨기고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 가려 한다. 동갑내기 여자애 헬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쪽으로 활기를 띠지만, 가려져 있던 무거운 진실이 느닷없이 얼굴을 들이민다. 게다가 오지랖 넓은 이웃 할머니 때문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보호하고 위로해 줄 어른의 부재 속에서 반쪽짜리 가정과 소중한 동생, 그리고 삶을 지켜 내려는 소년의 고군분투는 상식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가벼운 문장들로 빠르게 전개되는 200쪽짜리 짧은 소설임에도 섣불리 단언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201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 파르카우에 극장에서 연극으로도 상연되었다.

준비 없이 찾아온 충격적인 이별과 서툰 만남
주말 아침, 요나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가 술에 취해 어질러 놓은 집을 치우고 동생 사라에게 아침밥을 챙겨 준다. 그리고 엄마를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본다. 빈 약통이 굴러다니고 담요가 바닥에 흘러내려 와 있고 탁자에는 유서로 보이는 하얀 편지 봉투가 있다. 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인 여동생 사라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릴 수 없다.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빠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요나스는 사라 몰래 엄마를 창고 냉동실에 숨겨 놓고, 아무 일 없는 듯 생활하려 한다. 아빠가 병원에 들어간 뒤로 엄마는 린다 박사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연애 상담 칼럼을 연재해 밥벌이를 했는데, 담당자는 원고를 독촉하고 조언을 기다리는 사연들로 메일함이 터져 나간다. 요나스는 엄마가 하듯 모범 답안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해 메일들에도 답을 보낸다. 요나스는 엄마의 사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한편으로 사라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아빠를 찾아가 달래며 가족의 삶이 흔들리지 않게 지키려고 애쓰느라 정작 자신은 슬퍼할 겨를도 충격을 진정시킬 여력도 없다.
그 와중에 헬렌이라는 열여섯 살 여자애가 린다 박사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며 상담 메일을 보내오는데, 요나스는 "복에 겨운 줄 알렴. 너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 테니까."라고 답을 보낸다. 무성의한 답변에 화가 난 헬렌은 계속해서 항의 메일을 보내다가 결국 요나스의 집까지 찾아오고 얼떨결에 냉동실 사정까지 알게 된다. 헬렌은 사라를 위해서라며 요나스를 돕기로 나서고, 엄마 문제를 해결하려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면서 두 사람은 부쩍 가까워진다. 그러는 동안 동생 에바의 죽음과 엄마의 자살에 얽힌 더욱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고, 헬렌은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는 요나스를 부담스러워하며 피하고, 요나스네를 수상하게 여겨 계속 염탐하던 이웃 할머니는 사라의 생일 파티에 맞춰 경찰을 부른다. 초반에 충격적인 소재가 독자의 이목을 끌었다면, 흥미진진한 전개와 웃음 뒤에 숨은 감동은 마지막 장까지 독자의 마음을 잡아 둔다.

무너져 가는 가족의 안타까운 초상
가족의 죽음은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요나스네 가족은 이미 한 차례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다. 사라보다 어린 여동생 에바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위로하고 결속을 다졌어야 하지만, 요나스네 가족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해체 일로를 걷고 있었다. 아빠는 이웃 할머니에게 에바의 죽음이 엄마의 부정과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을 놓아 버렸다. 손도끼로 할머니를 죽일 듯이 위협해 정신병원에 갇힌 뒤 당장 앞에 보이는 가족의 현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부정한 채,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세상이 멸망할 거라며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엄마는 아빠가 일을 그만둔 뒤 신문에 연애 상담 칼럼을 써서 밥벌이를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가족의 마음은 살피지 못한 채 삶을 놓고 술에 의존하던 엄마는 이웃 할머니가 린다 박사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남편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살을 택한다. 헬렌이 요나스를 도와주러 와서 엄마가 없는 채로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 빨리 해결하자고 하자, 요나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 못 살아? 엄마가 죽기 전에도 우린 몇 달이나 그렇게 살았는데." 원망조차 느껴지지 않는 요나스의 대답에서 이들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족 중 누구도 문제를 바로 보고 부딪치려 하지 않고, 서로 믿고 의지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서로에게 원망을 품은 채로 현실을 외면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엄마의 죽음을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소설은 대화가 단절되고 믿음이 사라진 오늘날 많은 가족들의 아픈 단면을 이처럼 날카롭게 그려 내고 있다. 그래서 이미 반쯤 무너져 내린 가족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요나스의 노력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또한 린다 박사에게 도착한 사연들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한다. 요나스는 이들 사연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고,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는 헬렌에게 사랑은 결국 불행하게 만드는 병이라고 얘기한다. 정말 사랑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일까. 이 사연들은 일종의 거울처럼 요나스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더 깊이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결국 상황을 극복하는 자극제가 된다. 헬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진짜 사랑은 헬렌의 친구처럼 팔뚝에 컴퍼스로 남자 친구 이름을 새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절망적인 순간에 오히려 더 큰 믿음으로 나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지켜 내는 것이리라. 사랑이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사랑을 병들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성장은 못 본 척 문을 닫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
요나스의 대처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벗어나 있다. 당장 경찰서나 병원에 연락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처일 것이다. 엄마를 냉동실에 숨겨 놓고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냉정하고 섬뜩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웃이나 경찰에 도움을 청하면 복잡한 가정사가 까발려지고 사라는 시설이나 친척 집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요나스는 자신이 받은 충격이나 슬픔은 돌보지도 않고 어떻게든 가족과 사랑하는 동생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이 해결된 후에야 헬렌과 함께 담담하게 애도를 표하는 모습은 애틋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엄마 옷에서 떨어진 편지를 보고 에바의 죽음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순간에는 요나스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한다. 경찰이 와서 잡아가거나 말거나 될 대로 되라지. 하지만 사랑하는 동생 사라와 소중한 친구 헬렌이 요나스를 다시 움직이게끔 한다. 때 아닌 소나기에 벼락까지 내리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요나스는 제 부모처럼 무너져 버리지 않는다. 다소 비상식적이고 이상해 보이는 방법이라도 찾아내서 요나스는 끝까지 스스로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한다.
요나스가 끝내 엄마의 유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문제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엄마 혹은 린다 박사의 방식이 아닌 스스로의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려는 책임감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뜯지 않은 편지봉투에 흰 장미를 끼워 강물에 띄워 보냄으로써 요나스는 엄마에 대한 원망까지 모두 털어 내고 진심으로 엄마를 애도하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넌 아직 젊고 인생 전체가 네 앞에 놓여 있고 모든 게 잘될 거야.
이야기는 흡사 영화 [세 얼간이]의 '알 이즈 웰'(Aal izz Well)을 연상하게 하는 대화로 막바지에 다다른다. 유려하게 발음했다면 오히려 감동적이지 않았을 영화 속 그 말처럼, 헬렌과 요나스의 대화는 애써 힘주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하게 느껴진다.

"그럼 이제 누군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 말해야 할 순간이네."
"우리 엄마는 죽었어."
"그래, 그건 나도 알아. 슬픈 일이지. 그래도 너만 그런 일을 겪는 것도 아니잖아."
"넌 뭐라고 말할 거야? 난 아직 젊고 인생 전체가 내 앞에 놓여 있다고?"
"넌 아직 젊어. 인생 전체가 네 앞에 놓여 있어. 모든 게 잘될 거야.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차차 두고 봐."
헬렌의 말에 요나스가 심드렁하게 웃더니 물었다.
"그런데 너는? 네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어."
"난 아직 젊어. 인생 전체가 내 앞에 놓여 있어. 모든 게 잘될 거야. 너도 알잖아."

아직 젊고, 인생 전체가 앞에 놓여 있고,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말. 어찌 보면 참 흔하고 뻔한 말이다. 소설에서도 처음에는 헬렌이 자조적으로 던지고 요나스가 놀리다시피 받아치면서 등장한 말이다. 그렇지만 힘든 상황에서 농담처럼 계속해서 주고받으며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에게 주술 같은 말이 된다.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대단히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 아니다. 힘든 순간에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한마디, 진심이 담긴 위로 한마디가 가진 힘은 어떤 명언보다도 위대하다.
요나스네 가족이 앞으로 어떤 삶을 이어 나갈지, 헬렌과 요나스가 어떤 관계를 맺어 갈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저 말 덕분에 여태까지보다는 분명히 더 좋아질 것만 같다. 요나스의 앞날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앞날도.

추천사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 것. 간단한 답을 얻으려고도 하지 말 것. 그저 읽고 웃고 감탄하라!
- 디벨트

아이들을 위한 존 어빙([가아프가 본 세상]), 말하자면 '요나스가 본 세상'이다.
- 쥐트도이체차이퉁

메타픽션과 슬랩스틱 요소가 교차되는 이 희비극은 특유의 가벼운 어조로 사춘기 이야기를 풀어내며 깊은 감명을 준다.
- 2011 독일 청소년 문학상 심사평

목차

냉동실에 숨긴 엄마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붉은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담요가 바닥에 흘려내려 와 있었다. 엄마는 아빠 티셔츠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파리 한 마리가 전등 주위에서 윙윙거렸다.
"엄마?"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침대 옆 탁자를 보니 하얀 편지 봉투가 와인 병에 기대어 있었다. 빈 약병이 바닥에 뒹굴었다.
"엄마?"
파리가 엄마 이마에 앉았다가 눈과 코를 지나 입술 사이로 사라졌다.
(/ p.19)

순간의 열기에 휩쓸려 비밀을 누설한 경험도 없을 테고 너무 순진하거나 잔인해져 본 적도 없을 거야. 네 심장, 방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꽉꽉 들어찬 상처 받기 쉬운 네 가슴을 낯선 이의 손에 맡겨 본 적도 없을 테지. 인생에 목말라 본 적도 없을 테고 뭔가 경험하고 싶은 나머지 푸른 수염의 성에라도 들어갈 만큼 애태워 본 적도 없을 거야. 너는 절대 그러지 않지. 그래서 나는 네가 경탄스러워.
(/ pp.107~108)

"난 네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해."
"무슨 뜻이야?"
"네 메일. 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요, 징징대는 거."
"내가 유난을 떤다고?"
"그래, 넌 이제 열여섯 살이야."
"그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마. 나는 아직 젊다고, 인생 전체가 내 앞에 놓여 있다고, 언젠가는 저절로 올 거라고."
"너는 아직 젊어, 인생 전체가 네 앞에 놓여 있어, 언젠가는 저절로 올 거야."
헬렌의 손이 갈퀴로 변해 요나스를 움켜잡으려고 했다. 요나스가 슬쩍 피했다.
(/ p.113)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도 난 별로 나쁠 것 같지 않아. 그럼 인생에 질서가 생기잖아."
"거짓말! 우리가 왜 묘지에 몰래 들어가려고 애쓰니? 그게 다 네가 네 동생을 지켜 주고 싶기 때문이잖아.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나도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애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은 바로 저기 놓여 있는데... ...."
헬렌의 팔이 테라스를 빙 둘러 훑었다.
"난 거기 닿지 못해. 저기 세상에서는 딱 하나뿐인 찬란한 축제가 열리는데, 난 바깥에서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댄 채로 사람들이 웃고 춤추는 모습을 바라볼 뿐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어!"
"넌 우리 엄마가 맡은 칼럼을 알잖아. 독자 편지 안 읽었어?"
"읽기만 해? 자근자근 씹어서 아예 삼켜 버린다!"
"거기 차곡차곡 쌓이는 불행, 하도 많아서 뭐가 뭔지 알 수도 없잖아. 그게 다 누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그 사람들은 다 병자야! 너도 그렇게 되고 싶어?"
"그렇게 되고 싶어 죽겠어!"
(/ pp.116~117)

"정말인가요?"
요나스는 그 편지를 엄마에게 들이밀었다. 엄마의 휑한 두 눈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나스는 엄마 얼굴에 침을 뱉은 다음 냉동실에 집어넣고 문을 쾅 닫았다. 집 안으로 들어간 요나스는 편지를 손에 든 채 사라의 방으로 갔다. 쌕쌕 고른 숨소리에 15분쯤 귀를 기울이자 쿵쿵거리던 심장도 가라앉았다.
요나스는 침대 밖에서 흔들리는 사라의 팔을 이불 속에 다시 넣어 준 다음 살며시 문을 닫고 옆방으로 갔다.
그 방은 어두웠다. 거리의 불빛이 커튼 아래로 거의 스며 들어오지 않았다. 요나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댔다. 인형들이 텅 빈 눈으로 요나스를 내려다보았다. 바깥은 여름이었지만 이 방은 냉동실보다 더 추웠다.
요나스는 편지를 바닥에 펼쳐 놓고 반듯하게 폈다. 너무 어두워서 글자들이 눈앞에 어룽거릴 뿐 다시 읽을 수는 없었다.
요나스는 편지를 열 쪽으로 가늘게 찢었다. 한 쪽씩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어 삼키자 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132)

첫 번째 이야기에서 너는 통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이야기꾼이 다음에는 어떤 놀라운 일을 소맷부리에서 털어 낼지 알고 싶겠지. 그 이야기에 시체가 한둘 들어 있다면 더 좋을 거야. 사람은 죽음과 마주할 때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이 이야기에는 해결책도 있어. 비록 현실은 혼란스럽고 꿰뚫어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 이야기는 진짜 인생이 아니야.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두려움을 견디고 피바다를 첨벙거리며 건너. 마지막에는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세상은 좀 더 안전하고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다른 종류의 이야기에선 당장 시체에 걸려 비틀거리진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등장인물과 함께 느끼는 거야. 물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길 원해. 하지만 우리는 그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엇갈리고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죽거나 외롭게 남는 비극적인 결말도 참아 주지.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믿는 것보다 더 현실주의자일까?
(/ pp.138~139)

너는 내가 뚜껑을 덮고 있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서 아내를 떠난 그 남자 같다고 했지.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했어.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어. 그 남자는 상자를 열었어. 상황을 보았어. 그는 절대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어. 나도 너를 알지 못하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어. 네가 부엌문을 닫고 나갔을 때...... 힘들었어.
언젠가는 너도 누군가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 진심이야.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어. 네가 누군가 찾아내길 바랄 뿐이야. 비록 아프더라도. 내 말 믿어, 그건 아파. 하지만 그게 네가 정말 원하는 거라면
(/ p.172)

"그게 거짓말이라고 누가 그래?"
요나스가 헬렌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챘다.
"내가 쓴 편지와 똑같은 내용이 이 안에 적혀 있을지도 모르잖아."
"열어 봐, 그럼 당장 알 수 있을 테니까."
요나스는 장미를 편지 봉투에 꽂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돼!"
요나스가 물속으로 던지자, 편지는 이내 그들 발아래로 미끄러졌다. 두 사람은 다리 건너편으로 가서 장미의 하얀색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 pp.192~193)

"어쩌면 이번에는 다를지도 몰라."
요나스가 헬렌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첫 별이 지나가며 하늘에 꼬리를 남겼다.
"아니, 아무 느낌도 없다니까."
헬렌이 거듭 말했다.
"쉽사리 포기해선 안 돼. 나는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어."
요나스의 너스레에 헬렌이 빙긋 웃었다.
"요나스, 넌 정말 착해."
"내가 누구니? 깨진 가슴을 위한 전문가, 요나스 박사야. 그러니 책임을 져야지."
"그건 차차 두고 보자."
헬렌이 말했다.
(/ pp.195~196)

저자소개

얀 더 레이우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8~
출생지 벨기에 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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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벨기에 알스트에서 태어났다. 책이 한 권도 없는 집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늘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틈틈이 [올빼미의 침묵][밤의 나라] 등 청소년 소설을 써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현재 플랑드르 언어권 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신예 작가이다. 201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오른 [냉동실에 숨긴 엄마]는 벨기에와 독일의 유수한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독일 파르카우에 극장에서 연극으로도 상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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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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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을, 베를린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다. [바람 저편 행복한 섬], [파블로와 두 할아버지], [독수리와 비둘기],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첫사랑] 등 여러 권의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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