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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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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사드'를 읽다- D. A. F. 드 사드 사후 200주기를 맞이하여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cois de Sade). 오랜 시간, 사드 후작(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은 스캔들을 동반해왔다. 우선 그의 생애가 그러했으며, 그가 남긴 글들 또한 음란하다는 추문에 뒤덮여왔다. 물론 사드를 읽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물리적인 거북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북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주 희귀한 문학적 쾌감으로 변하게 된다.

    2014년, D. A. F. 드 사드 사후 200주기를 맞아 프랑스에서는 사드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장자크 포베르와 함께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사드 전집을 기획 출간했던 아니 르 브룅은 사드 연구서 두 권을 저술했고, 사드의 대표작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에 새로운 서문을 더해 펴냈다. 또한 사드의 작품들이 여러 판본으로 재출간됐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대 초반에 자신의 출판사를 차려 사드의 전작을 1947~1970년과 1986~1991년 두 차례에 걸쳐 펴내고 사드 전기를 집필하며 사드 연구의 새 지평을 연 바 있는 장자크 포베르가 2014년 9월 27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한국에서, 사드 사후 200주기인 2014년 12월부터, 수년간 사드 연구에 매진해온 번역가 성귀수와 워크룸 프레스가 함께 사드 전집을 펴낸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드의 기본 사상이 드러나는 글 9편과 사드에 대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장문의 해설, 사드의 생애와 당시 시대적 배경이 어우러진 자료, 사드의 생전/사후 출간작 목록 등 사드를 알기 위한 기본 텍스트들로 구성된 사드 전집 1권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를 시작으로, 1년에 1~2권씩 약 10년간 사드의 전작을 14권에 걸쳐 출간한다. 그간 국내에는 사드의 개별 작품이 간간이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사드의 작품 세계 전반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며 사드 텍스트의 가장 큰 특징인 '글쓰기(?criture)'를 주목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드를 단지 광적인 성향을 지녔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나간 작가로 여기지 않는다. 필리프 솔레르스의 말대로, 이제 사드를 명확히 고찰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문학뿐 아니라 언어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신학, 예술 등 인간을 논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등장한다. 이는 그의 독보적 상상력이 펼쳐 보인 전인미답의 세계가 인간의 가장 심오하면서 치명적인 영역의 비밀들을 폭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사드적(sadique)이다.

    출판사 서평

    "18세기를 휩쓴 자유의 파도가 사드를 태어나게 했다. 19세기는 그를 검열하고 잊어버리느라 무진 애를 썼다. 20세기는 야단법석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를 드러내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제 21세기는 명확한 의미로 그를 고찰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 필리프 솔레르스

    사드와 '글쓰기'

    "'글쓰기(ecriture)', 사드의 고유한 광기."
    - 모리스 블랑쇼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구체제 붕괴와 공포정치, 혁명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에 이르는 유럽의 격동기에 귀족으로 태어난 D. A. F. 드 사드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기상천외한 행각으로 인해 15년간 감옥에, 14년간 정신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수감 생활 중 그가 써낸 엄청난 분량의 글은 대부분 압수당해 불태워지거나 분실되었고, 50대에 접어들어 발표한 일부 작품들은 오명을 낳았다. 사후 극소수 작가들이 진가를 알아보았으나, 20세기 초현실주의가 도래하기 전까지 100여 년 간, 그는 미치광이 작가로 머물러야 했다.
    20세기 들어와 사드의 글을 문학 텍스트로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 이들 중 으뜸은 단연 기욤 아폴리네르이다. (1904년 독일인 의사 이반 블로흐[가명 오이겐 뒤렌]가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를 출간했지만, 이는 의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폴리네르는 1909년 사드의 주요 소설을 선집으로 묶어 [사드 후작 작품집]을 펴냈고, 그 서두에 장문의 해설을 첨부했다. 이를 시발점으로 사드에 대한 초현실주의 진영의 관심이 폭발했고, 비로소 순수문학으로서 사드의 작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의 뒤를 이어 모리스 엔과 질베르 렐리는 사드의 작품을 온전히 복원하는 데 공헌했는데, 모리스 엔은 앞서 오이겐 뒤렌이 출간한 [소돔 120일]을 정밀히 검토해 재출간했고(1931년), 질베르 렐리는 사드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1952~7년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사드 전기[사드 후작의 생애]를 펴낸 후, 1989년까지 이를 수정하고 보완했다. 또한 질베르 렐리는 1962년 15권 분량의 사드 전집을 펴낸 이후 197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매번 8권짜리 합본형 개정판을 펴냈다. 앞서 언급된, 사드 사후 200주기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난 장자크 포베르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사드 전작을 펴내고(1947~70년, 1986~91년) 사드 전기[살아 있는 사드](1986~90)를 집필했다.
    이렇게 사드 연구의 기본 토대를 닦은 이들에 이어, 사드를 새롭게 바라본 현대 작가들이 있다. 문학의 전통적 개념을 전복시키고 '글쓰기(?criture)'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 텔켈(Tel Quel) 그룹 비평가들에게, 사드는 '텍스트'다. 모리스 블랑쇼는 사드의 '글쓰기'를 자연과 신, 인간을 말살하는 부정(否定)의 체험으로 보면서, "'글쓰기'야말로 사드의 고유한 광기"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드의 문장에서 보이는 끊임없는 반복 현상도 "자유를 표명하는 글쓰기의 순환"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롤랑 바르트 역시 사드를 "언어의 창안자"로 본다. 그는 소위 말하는 '사디슴(sadisme)'이란 사드의 텍스트에 담긴 "투박한 내용"일 뿐, 핵심은 그 에피소드와 장면들, 행위와 자세들을 조작하는 '문법'과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발명에 있음을 간파한다.
    그리하여 이미 장폴 브리겔리의 사드 전기 [사드, 삶과 전설](번역서 제목: 사드-불멸의 에로티스트)를 번역해 2006년 국내에 소개하는 등 오랜 시간 사드 연구에 천착해온 번역가 성귀수는 이번 사드 전집을 여는 1권의 첫 해설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에 혼비백산하여 사드를 화형대에 세우는 그야말로 '사디슴적'인 행위와 이처럼 '희귀한 쾌감'을 찾아 텍스트의 켜를 한 겹씩 벗겨 들어가는 독서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멀다. 이제 시작하는 사드 전작 번역의 험난한 길은 바로 그런 먼 거리에 대한 쓰라린 자각에서 시작한다."

    [사드 전집 구성에 대하여]
    현재 우리가 접하는 사드의 각종 글(소설, 희곡, 편지, 일기, 시, 기행문, 그 밖에 소책자로 묶일 만한 산문들)은 일정한 시점에 일목요연하게 집대성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흩어지거나 분실된 상태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발굴과 복원 작업을 통해 한 편 한 편 사드의 문헌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들이다. 따라서 그 작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으며, 고로 그의 작품집에는 엄밀한 의미의 ‘결정판(edition definitive)’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거나, 붙인다 해도 무의미하다. 질베르 렐리가 1960년대에 사드 전집을 펴내면서 ‘결정판’이라는 명칭을 붙였으나, 그 이후에도 새롭게 발굴된 글들이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이번 사드 전집을 만들면서 사드가 남긴 글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소설 작품을 총망라해 싣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희곡 작품과 기행문, 편지글, 그 밖의 운문과 산문은 부득이 중요도를 기준으로 선별하여 수록함을 밝힌다.
    사드 전집은 다음과 같은 체제로 진행될 것이다. 번역할 텍스트는, 질베르 렐리가 1962년 15권 분량의 사드 전집을 펴낸 이후 1973년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매번 8권(I~XVI)짜리 합본형 개정판을 출간한 중에서, 두 번째 개정판본인 세르클 뒤 리브르 프레시외(Cercle du Livre precieux)판(版) [사드 후작 전집, 결정판(OEuvres completes du Marquis de Sade, edition definitive)](1966~7)을 저본으로 삼았다. 여기에, 1990년에서 1998년까지 미셸 들롱의 주도하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비블리오테크 드 라 플레이아드(Bibliotheque de la Pleiade)’판 [사드 작품집(Sade, OEuvres)]과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장자크 포베르와 아니 르 브룅의 주도하에 출간된 ‘포베르(Pauvert)’판 [사드 후작 전집(OEuvres completes du Marquis de Sade)]을 부분적으로 참고했다. 그 밖에 1968년 장자크 포베르 사에서 나온 네 권 분량의 [라 누벨(新)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과 1954년 역시 장자크 포베르 사에서 나온 여섯 권 분량의 [언니 쥘리에트 이야기 혹은 악덕의 번영]을 비롯하여, 개별 작품에 따라 다수의 단행본을 참고했다. 각 권마다 1) 해설, 2) 작품, 3) 자료의 순서로 글이 배열되며, 1권에서는 ‘부록’으로 [사드와 그의 시대](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를 추가한다. ‘자료’는 사드 작품에 관한 후대의 평론을 위주로 하되, 그때마다 작품 이해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저자 혹은 연구자의 글을 수록한다.

    [책에 수록된 각 글에 대하여]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사드가 뱅센 감옥에 결정적으로 수감된 지 4년째 되는 해이자 42세에 접어들 무렵 완성된 작품. 저자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다. 19세기 내내 파리의 경매시장을 떠돌던 원고는 1920년 11월 6일 드루오 경매장에서 체계적인 사드 연구의 선구자 모리스 엔에 의해 발견되어, 1926년 스탕달 출판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정식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성찰'이라는 철학적, 종교적 테마가 서로 대극을 이루는 양자 간 대화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물론과 무신론, 쾌락주의가 혼융된 18세기 무신론적 자유사상(libertinage)을 본격적으로 천착하는 사드의 초기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향후 초지일관하게 펼쳐질 사드의 진면목이 이 길지 않은 작품 속에 씨앗의 형태로 조목조목 포진해 있다. 단순히 신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개념을 넘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무자비한 자연의 개념 위에 정립되어 있는 사드의 무신론은 18세기 철학에 만연한 반종교적인 사상들(백과전서파의 이신론, 자연을 의인화하여 떠받드는 범신론)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어떤 문제든 하나의 논리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비타협적인 정신세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론으로, 사드가 앞으로 보여줄 사상적 행보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무도회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C모(某) 양에게
    L 양을 위한 연가
    L 양의 초상

    사드의 5대 손(孫) 그자비에 드 사드가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질베르 렐리가 '세르클 뒤 리브르 프레시외'판 사드 전집을 만들면서 입수해 세상에 첫선을 보인 문헌이다. 사드는 스물 세 살(1763년)부터 서른여덟 살(1778년)에 감옥에 갇히기까지 그야말로 방탕의 구렁텅이를 마음껏 뒹굴었는데, 이 세 편의 글은 모두 사드가 20대 때 쓴 글이다. 이니셜로 표기한 여인들 중 C모 양만 확인이 안 되고 나머지 두 L 양은 근접한 추정이 이루어진 상태다. 편지가 쓰인 시기로 보나 그 내용으로 보나, 세 여성 모두 떳떳한 연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독서 노트 제4권 혹은 수상록
    두 차례의 스캔들을 치른 후 사드는 뱅센 감옥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나간다. 그 가운데 일종의 독후감을 여러 권의 독서 노트에 담았고, 그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한 권이 이것이다. 철학자로서 사드는 완전히 독창적인 사상을 표출했다기보다 당대를 풍미한 라메트리, 돌바크, 엘베시우스 등의 무신론적 유물론 사상과 달랑베르, 디드로, 루소 등 백과전서파의 계몽주의 사상을 왕성히 호흡하면서 그 핵심을 논리적 극단으로 밀고 나간 끝에 자신만의 고유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의 독서가 유발한 사고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은 그런 뜻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철학적 신년 인사
    1929년 출간된 [가족, 친지와 주고받은 사드 후작의 미공개 서한집]에 포함되어 세상에 처음 공개된 문헌이다. 뱅센에서의 힘든 감옥 생활 중 사드는 마리도로테 드 루세라는 여성과 우정 어린 편지를 교환하는데, 사드는 이 여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순수한 우정이 가져다주는 모든 감미로운 감정"을 맛본다고 술회했으며, 편지를 빙자해 철학적 토론을 전개할 정도로 깊은 교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적인 여성과의 '순수한 우정'이어서 그런지, 과연 편지의 어조는 앞선 연애편지들과 상당히 다르다.

    어느 문인(文人)의 잡문집
    사드가 네 권 분량의 서한체 위주 소설을 구상한 뒤, 그중 두 권 분량만 우선 정리하고 나머지는 그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 여부를 확인한 뒤 추진하려고 하다가 중단된 글의 잔해. 사드는 대혁명 와중에 뱅센에서 바스티유로 강제 이감되면서 상당량의 원고를 챙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툭하면 수색과 압수에 직면하는 가운데 작품 구상을 중도 폐기하거나 어쩔 수 없이 변경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집필 생활을 감내한 작가다. 이 글은 그런 사정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숱한 작품들 중 하나인 셈이다.

    신에 대한 사색(思索)
    모리스 엔의 주선으로, 1931년 발간된 잡지 [혁명에 이바지하는 초현실주의] 제4호에 '사드의 현재성'이라는 표제를 달고 처음 소개되었다. 그 후 1953년에 이르러 장자크 포베르가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와 함께 책으로 묶어 다시 출간했다. 그런 만큼 두 글에서는 극단적인 무신론과 관련한 논리적 근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 글은 원래 [어느 문인의 잡문집]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드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진실
    1961년 질베르 렐리가 사드의 미발표 원고에서 추려내 장자크 포베르 사(社)를 통해 처음 세상에 소개한 일종의 철학시. 집필 시기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적시된 글을 찾을 수 없다. 다만 필체와 종이의 상태를 살펴본 결과, 1787년 바스티유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쓰이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아울러 자연의 위력 앞에 전적인 경도로 일관하는 시적 화자의 자세 역시 시가 쓰인 시기를 짐작케 해준다. 사드의 무신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심도가 깊어질수록 자연의 절대권에 대해서조차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의 형태를 빌렸기에 사상이 생동감 있게 제시되었으며, 사드 자신이 직접 단 주(註)의 직설적이고 명쾌한 논리가 읽는 이의 마음을 불가피하게 움직이는 과정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자료: 신성한 후작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파리 국립도서관 금서 보관소에 처박혀 있던 사드의 작품들을 발췌해 1909년 선집 형태로 세상에 소개하면서 단 장문의 해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문헌이다.
    아폴리네르는 사드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참으로 오랜 기간 금서 보관소의 고약한 공기 속에 처박혀 농익어온 그 사상들이 바야흐로 기를 펼 때가 온 것 같다. 19세기 내내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었던 이 남자는 20세기를 확실히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폴리네르가 사상 최초로 대중성을 겨냥한 선집 형식을 동원해 사드를 소개했다는 점이다. 아폴리네르의 시도 이전에 사드의 작품이 읽히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오직 소수의 특정 독자만을 위한 비밀출판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사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양적, 질적으로 증폭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 글 [신성한 후작]을 자세히 읽어가다 보면 몇 가지 측면에서 그 의의가 남다름을 느끼게 된다.
    아폴리네르의 기본 논조는 한 작가의 작품과 인간을 구분하여 바라보자는 데서 출발한다. 작품 속에서는 온갖 논리를 동원해 살인을 찬양하던 사드가 정작 현실에서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다 공포정치 치하에 옥살이까지 감수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산한 괴물과 다름없던 사드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어떻게든 걷어버리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 새로운 정신(L'Esprit Nouveau)의 전도사를 자처한 아폴리네르가 사드에게서 가장 높이 산 덕목은 바로 '자유'였다. 아울러 그 '자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초지일관한 '대담성'과 기발할 정도의 '새로움'을 그의 문학이 가진 전례 없는 장점으로 보았다. 그것은 시인이 기필코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아폴리네르가 침이 마르도록 주장해온 덕목이며, 그를 계승해 초현실주의자들이 받들어 마지않은 미학적 신조다. 작가로서 사드의 문학적 위상을 논하는 것이 아직 요원하던 시절, 아폴리네르의 이 장문의 해설은 글자 그대로 예언자적 직관을 통해 사드의 작품에 내재된 예언적 가치를 꿰뚫어본 최초의 글인 셈이다.

    [참고 자료]
    -사드 공식 홈페이지: www.marquis-de-sade.com
    -사드 사후 200주기 기념 홈페이지: bicentenaire.marquis-de-sade.com

    [표지 그림]
    카를 나브로(Karl Nawrot) - 그래픽 디자이너. 드로잉, 모형 제작, 서체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결합하여 순진한 선과 폭력적인 형상, 건축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조와 초현실적으로 왜곡된 공간 사이에 잠재한 서사를 탐구한다. 리옹 에밀 콜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아른험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에스오엠아트, 마인츠 구텐베르크 미술관, 문화역 서울 284, 취리히 디자인 미술관, 피렌체 피티 이마지네, 파리 12메일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2013년 버밍엄 이스트사이드 프로젝트와 2014년 서울의 갤러리 팩토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암스테르담 헤릿 리트벨트 아카데미에서 드로잉을 가르쳤으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초빙교수로 드로잉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 김영나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협업 플랫폼인 테이블유니온(www.tableunion.com)을 운영하며 전시, 디자인,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표제 글자]
    이용제 -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한글 디자이너. 한글을 디자인하고 한글로 디자인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내용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세로쓰기 전용 글꼴 '꽃길'(2006), 홈쇼핑 방송 전용서체 'GS블루'(2008)를 디자인했고, 아모레퍼시픽의 기업 전용 서체 '아리따'(2007) 디자인에 참여했다. 2011~3년 '바람체'를 디자인했다.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ㅎ] 발행인이다.

    목차

    작가에 대하여
    사드 전집에 대하여
    해설
    사드와 '글쓰기(ecriture)'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무도회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C모(某) 양에게
    L 양을 위한 연가
    L 양의 초상
    독서 노트 제4권 혹은 수상록
    철학적 신년 인사
    어느 문인(文人)의 잡문집
    신에 대한 사색(思索)
    진실

    자료
    신성한 후작 / 기욤 아폴리네르

    부록
    사드와 그의 시대
    작품 연보

    본문중에서

    만약 죄를 범하지 않을 자유가 인간에게 있다면, 죄와 교수대를 동시에 바라보면서도 죄를 범하고야 마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에 끌려다니면서, 단 한순간도 기존의 진행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네. 자연에 필요하지 않은 미덕은 단 하나도 없거니와, 뒤집어 말하자면, 그 어떤 악덕도 자연에게는 필요한 것이지.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중에서/ p.34)

    (…) 모든 인간의 다양한 부류를 심도 깊게 연구하고 그것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면, 아마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겠지만, 결국에는 가장 비천한 동물 종으로까지 내려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밝은색들이 그보다 어두운색들의 단계적 변화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 자신도 사실상 짐승의 아주 괜찮은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이런 고찰은 인류 입장에서 참 괴로운 것이겠으나, 그렇다고 그 현실성이 덜하겠는가? 여기에 더해 양극단의 지적 능력, 즉 짐승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녀석의 본능과 인간 중에서 가장 모자란 자의 본능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이란 정말 오리무중이거니와, 우리의 어리석은 허영과 삶의 규범들 태반은 그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다는 걸 자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이성(理性)은? 이 빛나는 이성은? 혹자는 그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오, 인간이여, 그대가 내세우는 그 잘난 이성, 우리가 가진 성벽(性癖) 때문에 툭하면 흐릿해지는 그 존귀하신 이성이란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해로운 선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교해보면 우리와 비슷하기만 한 동물들보다 우리가 더 나은 점들을 한탄하게 만드는 어쩌면 유일한 자질이 아니고 대체 무어란 말인가?
    ('독서 노트 제4권 혹은 수상록' 중에서/ pp.47~48)

    누군가로 하여금 우리에게 호감을 갖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누군가의 적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그 똑같은 감정을 도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는 보편적인 시금석이며, 한마디로 만인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로 인해, 심지어 가장 덜 정치적인 사람을 포함한 모든 이는 같은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갈 간단한 방법을 손쉽게 터득할 수 있다. 세상을 살면서 고려해야 할 것은 딱 그 두 가지 이치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거기에서 유래한다.
    ('독서 노트 제4권 혹은 수상록' 중에서/ p.56)

    여기 수록된 다양한 글들 하나하나가 엄청난 철학적 노고의 산물이지만, 종종 그 양상이 달리 적용되었기에 어떤 이들은 그것들이 동일인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철학이 아니라, 각 글에 어울리는 철학을 그때그때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아메리카에 관한 소논문에 적합한 견해가 교육에 관한 편지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저자는 언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할 수 있겠다. 스스로 자제할 때인가, 아니면 모든 베일을 찢고 나설 때인가? 어느 쪽이든 독자에겐 상관없는 문제다. 제각각 글의 특성에 맞는 견해를 그때그때 제시함으로써 표제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방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이성에 충실해서든 그 밖에 다른 동기에서든, 편견을 완전히 말살해버린 사람들이라면 이 문집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글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편견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고, 철학적 사고의 주변부만을 기웃거린 사람들이라면 다소 평범한 견해에 머물 것이며, 대개는 누구나 그런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그런데, 미리 말해두지만, 일부 부류는 결코 그렇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_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뒹굴던 그 진창 속에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다. 거기서 그들은 시대가 저물 때까지 지지부진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남에게 불쾌감만을 유발할 뿐인 자들의 비위를 굳이 맞추려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어느 문인의 잡문집' 중에서/ p.71)

    요컨대 신은 인간에게, 색이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 자에게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할 권리가 맹인에게 있는 것처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확언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있다. 왜냐하면, 색이란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관습의 산물일 뿐이며, 모든 관습의 산물은 인간의 감각에 영향을 주고 그로 인해 지각됨으로써만 인간의 정신 속에 그 실재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은 오감을 가진 모든 인간에게 실재하는 것일 수 있되, 그것을 감지할 감각이 없는 자에게는 그 존재가 의심스럽거나 심지어 있으나 마나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감각을 통한 지각이 완전히 불가능한 대상은 아예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며, 색이 맹인에게 그런 만큼 무의미해진다. 고로, 색이 그것을 체득할 감각이 없는 맹인에게 무의미하다면 신 역시 그를 지각할 감각을 갖지 않은 인간에게 무의미한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신은 색과 마찬가지로 관습상 존재할 뿐, 그 자체에 실재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인의 개입이 차단된 맹인 사회에도 실재성을 갖추지 못한 대상들을 표현하기 위한 관습상의 명칭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신에 대한 사색' 중에서/ pp.87~88)

    저자소개

    D. A. F.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cois de Sad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740.6.2.~1814.12.2
    출생지 프랑스 프로방스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유서 깊은 프로방스 지방 대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받는 군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불같은 기질과 극단을 탐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가 요망되는 이단아의 삶을 살게 된다. 평생 두 번의 사형선고와 15년의 감옥살이, 14년의 정신병원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최소 열한 곳 이상의 감금 시설을 전전했다. 이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구체제의 충격적인 붕괴와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 혁명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격동기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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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이자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문학정신] 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 ‘내면 일기’ 시리즈 기획 [숭고한 노이로제]를 펴냈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오페라의 유령], [적의 화장법], [아르센 뤼팽 전집](전20권), [팡토마스 선집](전5권), [침묵의 기술], ‘마테를링크 선집’[꽃의 지혜], [지혜와 운명],[운명의 문 앞에서] 등 백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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