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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예술사 : 한국문화 이천년을 이끈 예술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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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예술을 향한 탐닉과 집념은 역사를 어떻게 이끌었나
정치적 난국과 삶의 황폐함 속에서도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이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숨결을 빚어낸 후원자들을 조명하다


·가야국 우륵의 정치적 투항을 받아들여 신라의 가야금 음악을 꽃피운 진흥왕
·초월적 권력자 최충헌·최이가 이뤄낸 고려 예술의 절정
·은거하며 조선 후기 걸출한 문화적 경지를 이끌어낸 안동 김문
·조선시대 풍류가들이 길러낸 음악인들
·개성 3인방이 일군 한국 미술의 토양

예술후원자를 조명해 2000년 예술사를 새로 쓰다

실생활의 비속한 산문을 견디지 못해 창작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흔히 맞닥뜨리는 것은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며, 이로 인해 작품활동은 지속시키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생활인들은 삶을 지탱하는 문제에 골몰하느라 예술의 결여 속에서 황폐한 터전을 일궈나가곤 한다. 이렇듯 예술과 생활이 서로 침투되지 못하는 가운데 그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후원자’(메세나인)들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공히 예술지상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가 있을 만큼 미적 인식과 활동은 인간 욕구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술사는 역사의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가장 탁월한 미의식을 드러내는 활동과 정신이 응축된 영역일 것이다. 그런데 기존 예술사는 항상 창작자를 중심에 놓고 다루다보니, 그 창작을 가능케 했던 후원자를 조명했던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후원자 없이 예술활동을 펼치기는 힘들었다. 긴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예술가들이 혹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해도 그것을 ‘유통’시키고 ‘소통’시키는 일은 그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고대 신라에서 고려, 조선,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한국사를 예술후원자로 꿰뚫어 읽는 작업을 시도한다. 로마제국의 귀족 마에케나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등 서양의 메세나인들은 일찍이 예술을 활짝 꽃피운 주역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가야금곡과 극사실 회화작품들이 남겨지도록 예술후원을 한 신라의 국왕들에서부터 무武보다 문文을 더 장려했던 고려 최절정의 권력 최충헌 일가, 조선의 외척 세력으로 권력을 누리다가 암흑의 시대 한가운데서 인문과 예술을 지원했던 한 벌열 가문, 탁월한 음률 감각으로 관직에 근무하면서 예인들을 키우거나 왕족으로서 풍류를 알아 음악후원자가 된 인물들, ‘깍쟁이’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들으며 오로지 부富를 쌓는 것만을 최고 목표로 삼았던 부모 세대에서 벗어나 장사꾼으로서 쌓은 부를 사회에 되돌려준 개성상인들, 물려받은 부와 타고난 감식안으로 국외로의 문화재 유출을 막고 나선 간송과 현대의 기업인들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체를 통틀어 예술후원자를 조명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그러므로 후원자를 통한 예술사 읽기는 칼과 힘을 쥐었던 권력이 어떻게 가장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정치권력과 다툼이 어째서 오히려 인문활동을 꽃피웠으며, 나라를 잃거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처지 속에서 왜 문화재 수집활동이 더 단호하고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었는지를 밝혀줄 것이다.

예술을 후원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향유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준다는 의미에서 권력이나 재력과 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일찍이 서구에서도 "부자의 변덕을 섬기는" 예술을 비판해왔고, 가령 고려 무신정권만 해도 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들 권력의 빈틈을 메우고 공고히 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셈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의 예술 후원활동 역시 세제 혜택을 바란다거나 재산 은닉의 방편으로 보는 시선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한켠으로 제쳐두고 예술가와 예술후원가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작업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20세기의 터널을 뚫고 지나온 우리에게 21세기, 즉 문화의 세기가 나아갈 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상업의 터전 위에서 꽃피운 개성상인의 문화재 수호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극적인 역사를 살아냈고,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도 하며, 또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개성 3인방부터 살펴보자. 고려 역사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빛바랜 고도 개경은 조선 건국과 함께 차별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벼슬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농업에 종사할 여건도 갖추지 못했던 개성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장삿길에 나섰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근대 시기 개성인들은 가장 화려한 상업의 꽃을 피우게 된다. 한편 거부를 손에 쥔 개성 사람들은 "인색하다" "깍쟁이다"라는 폄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런 가운데 문화의 기반을 굳게 세운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개성 3인방이라 불리는 이홍근, 이회림, 윤장섭이다. 이 땅에서 자본주의가 싹을 틔울 때 부를 쌓은 이들은 다른 한편 끊임없이 노력한 수장가였고, 가진 모든 것을 문화로써 사회에 환원한 인물들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4000~5000점의 유물을 남긴 동원 이홍근은 1900년 개성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스물여섯 살에 상인으로서 독립했다. 그는 일찍이 30대에 인삼 경작으로 거부를 쌓았고 일제강점 말기 국내 30위 안에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으로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졌는데, 남한으로 내려와 다시 부를 축적한 이홍근은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고미술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다. "난 그땐 돈 버느라고 누깔이 선했는데, 아 일본 놈들은 시시한 놈들도 차완 하나쯤은 즐길 줄 안단 말야."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자극이 컸고, 월남하면서 미처 데려오지 못한 장남 일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견딜 수도 없어 문화재 수집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속기도 많이 속고 가짜도 많이 샀다. 전쟁 때 200만원짜리 화병을 손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20만원 값어치밖에 안 되는 물건이었다. 결국 "제 돈 주고 병신구실한" 이런 경험들을 쌓으며 그는 수장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거래를 항상 현금으로만 해 상인들에게는 최고의 고객이었고, 연구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골동계에서는 그를 드문 인물로 꼽았다. 그는 특히 온전한 도자기가 아닌 청자 파편 수집에도 열성이었는데, 이는 투자가 아닌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알아봤던 대수장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1960년부터 자신이 모은 문화재의 사회 환원을 고민했던 이홍근은 "내 수집 문화재는 자식들한테 단 한 점도 상속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그가 작고한 뒤 모든 수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돼 오늘날 우리와 만나고 있다. 문화재 수집뿐 아니라 미술사와 고고학 연구자들 지원에도 아낌없었던 그는 "대수장가의 윤리를 투철하게 체득하고 끝까지 실천한 사람"(최순우)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이회림은 1917년 개성 만월동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점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주인한테 인정을 받았던지,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주문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한 그는 7년의 사환생활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고는 해방 뒤 장사에 본격 투신한 이회림은 1968년 인천 남구 학익동 앞 바다를 매립해 공단 부지를 조성하고 화학산업에 매진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OCI로 이름을 바꾼 동양제철화학, 유니드, 삼광글라스 등이다. 그의 문화재 수집 동기 역시 ‘일본인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보니 일본인들이 빼가는 우리 문화재가 너무 많아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한국전쟁 때 동대문시장에서 문화재 수집가로서의 첫발을 뗐다. 전쟁 때라 원래 값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그때 구입한 게 바로 겸재 정선의 그림과 도자기다. 그의 문화재 수집에는 이홍근과 박물관계의 최순우·황수영·진홍섭의 영향이 컸다. 이회림은 이홍근의 집을 드나들며 기량을 닦았고 최순우와 교유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구입했다. 1992년 그는 인천에 송암미술관을 지어 그가 모은 모든 수집품을 인천시에 기증했다.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를 비롯해 김홍도, 김정희, 장승업, 흥선대원군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미술관에 수장되었다. 이회림 역시 숱한 실패 속에서 수장가의 면모를 가다듬어갔던 터라, 장삿속에 넘어가 모조품이나 복제품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건 초보 수집가라면 누구나 비껴갈 수 없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처럼 좀 떨어지는 수집품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사회에 환원한 총액(수집품, 미술관, 부지 등)은 430억원을 웃돈다. 오늘날 그의 뜻은 현대 미술 작가들 지원 사업으로 이어져 메세나인으로서의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개성 3인방의 세 번째 인물은 호림박물관을 세운 윤장섭이다.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 역시 상업에 뛰어들었다가 전쟁으로 모든 걸 잃고 맨손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 뒤 30대 중반에 성보실업을 세워 운영했고, 이후 유화증권과 서울농약까지 인수해 사업을 확장해갔다. 1971년 250만원에 고려청자 주전자를 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초보 수집가였던 그에겐 ‘족집게 과외 선생’이 있었는데, 바로 최순우·황수영·진홍섭이었다. 특히 최순우와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20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문을 구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 가운데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은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제211호인)이다.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이 물건은 윤장섭을 통해 우리 땅으로 되돌아왔다. 가장 비싸게 산 물건은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국보 제222호)다. 당시 종로의 4~5층짜리 빌딩 한 채 값을 지불했는데, "이건 중국 것과 다르다. 조선의 맛이 있다. 꼭 사셔야 한다"고 최순우가 권했기 때문이다. 300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을 주고 사들인 ‘분청사기 상감연당초문[공안] 대접’은 그에게 횡재를 안겨줬다. 품새가 별로 정교하지 못해 보였던 그 대접에는 ‘공안恭安’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자료적 가치가 굉장히 컸던 것이다. 윤장섭의 수장품들은 오늘날 호림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연구와 유물 구입 등을 위한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대기업이 아닌 중견 기업인으로서 최고급 사립 박물관을 세웠고,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문화재 유출을 막아 문화재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간송이 되찾은 우리 문화재들

개성 3인방에서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재 지킴이이자 가장 탁월한 감식가인 간송 전형필이 있다. 오늘날 간송미술관의 뛰어난 수장품들로 인해 이미 우뚝 선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뛰어난 미의식을 발휘하며 우리 문화의 정수를 지켜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만하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독립의 기약 없는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화가 고희동을 만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일찍이 간송의 탁월한 감성을 간파했던 고희동은 간송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며 그를 이끌어주었고, 이로써 간송은 암흑시대를 밝힐 유일한 빛은 민족 문화재 수호임을 깨닫는다. 개화기에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던 위창 오세창 역시 간송이 고증학을 익히고 감식안을 키우며 서법과 화법을 수련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도서 수집에 먼저 손댔던 간송은 1930년 무렵 문화재 수집으로 확대해나갔다. ‘한남서림’을 인수해 이곳을 중심으로 서화골동을 수집해나간 그는 물건을 제값 아닌 값을 치르고 산 적이 없고, 한번 믿은 사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겸재의 명작 [해악전신첩]을 손에 넣게 된 과정은 살얼음을 걷듯 엄청난 긴장감을 주는 일화다. 1933년 골동계의 거간 장형수는 당시 일제 매국노로 이름난 송병준이 얼마나 잘사는가 싶어 그의 집에 구경을 갔다. 주인과 장승업의 산수병풍, 고려자기 향합 같은 것을 구경한 뒤 변소로 향하던 그는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즉 그 집 머슴이 군불을 땐다며 종이 뭉치를 아궁이에 마구 쑤셔넣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게 있어 봤더니 바로 초록 비단으로 장정된 겸재의 화첩이 아니었던가. 한 줌의 재가 될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그 화첩을 건져낸 장형수는 이를 사들여 간송의 손에 넘기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당시 골동계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이 시절 눈 밝고 발 빠른 거간들이 방방곡곡에서 명품을 찾아냈고 이것들은 시절 인연을 따라 간송의 수장으로 모여들었다.

간송은 일본인 대수장가들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위해 일본인 골동상 신보 기조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신보 기조는 간송의 인품과 열성을 보고는 갖은 노력으로 우리 문화재들을 되돌려오는 데 힘썼다. 그를 통해 돌아온 것이 석호 1쌍, 청자 상감운학문 유개대발, 백자 희준, 백자 청화동채투각운룡문 슬형연적 등이다. 간송 수장품 가운데 터줏대감 격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제68호)을 사들인 과정을 보자. 이는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 사이치로에게서 거금 2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이 거작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호화찬란한 문양과 맑고 푸른 때깔을 발해, 세상에 고려자기가 많다 해도 그 화려함이나 웅장함에서 이에 견줄 만한 물건이 나타난 바 없다. 당시 2만원이면 서울 장안의 쓸 만한 기와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개성 근교에서 발굴된 이 매병을 손에 넣은 마에다 사이치로는 이 매병으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꾀하려 했고, 이에 총독부박물관에서조차 거금 1만원을 내겠다며 교섭한 물건이었지만, 간송이 사과 몇 알 사듯 한 푼도 깎지 않고 두 배 되는 돈을 지불하며 사들인 것이다.

간송 전형필의 예술 후원은 예술인과 학자 후원, 미술관을 건립해 미술품 보존활동을 펼치는 등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해 심혈을 기울여 수장한 서화 전적 등 민족 문화재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나랏말 한글 창제의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을 비롯해 고려 문화의 정화인 청자와 조선 문화의 정수인 백자 정품 및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빼어난 그림들과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등의 뛰어난 서예작품을 일본과의 경매 경쟁을 통해 수집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존하는 데 전력했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던 오세창 등 문화계 인사들과 최순우 등 미술사학계 인사들의 지원에도 힘을 쏟았으며 [고고미술] 발간 등 학계를 지원하는 데도 열정을 보였는데, 이는 한국 고고미술사학의 발전에 굳건한 디딤돌이 되었다.

고려 무신정권이 빛낸 인문과 예술 지원

고려시대에 100년간 지속된 무신정권은 무신들이 초월적 권력을 행사한 시기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편, 무신정권 후반에 이뤄진 문화예술 후원의 성과는 메세나 활동의 전범으로 꼽을 만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신정권의 정점에 있었던 최충헌과 최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무신정권기임에도 문인 우대 정책을 펼쳐 예술과 학술의 발전을 이뤄냈고, 그 결과 여러 걸출한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최충헌 집권 시기에는 팔만대장경 각성 사업이 진행되었고 이 시기 고려청자 기술은 가장 세련된 순청자를 만들어냈다. 이는 고려 도공들이 최씨 가문의 후원을 받아 신기술을 개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또 새로운 예악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고려를 대표하는 문신 이규보는 최충헌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다. 이규보의 실력을 꿰뚫어본 최충헌은 그를 등용했고 이규보는 당시의 문학을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 또한 부친의 정책을 이어받아 문인 우대 정책을 펼쳤다. [동국이상국집] [서하집] [보한집] [속파한집] 등이 최이 집정기에 간행되었다. 그림의 수집과 감상 풍조 또한 이 시기에 크게 진작되었는데, 문인화가들의 작품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그들 작품 중에는 중국에까지 명성을 날린 것이 많았다. 후원의 결과는 고려 후기 문인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제조대장경, 고려청자 등이 최씨 무신 정권의 지원으로 만들어졌고 전문 예술인들 역시 이들의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이 책은 조선 후기 인문과 예술에 있어 가장 앞서나가며 수많은 명품을 탄생시킨 주역 안동 김문, 한 시대의 음률을 주도하고 가는 곳곳에 음악의 흔적을 짙게 남겨놓은 조선시대 음악후원자들, 호암미술관을 건립해 가장 탁월한 미술품들을 남긴 호암 이병철, 클래식계의 가장 큰 후원자로서 ‘메세나의 큰 별’이라 불리는 문호 박성용의 예술 후원자들의 큰 자취를 다루고 있다.

목차

서장 탁월한 예술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송지원

1장 신라의 독보적 예술을 완성시킨 국왕들│박남수
2장 무신 집정 100년, 가장 세련된 예술품을 빚어내다│류주희
3장 조선의 으뜸 가문, 안동 김문이 펼친 인문과 예술 후원│조규희
4장 삶의 황폐함을 음률로 가꿔놓은 조선의 음악 후원자들│송지원
5장 상업의 터전 위에서 꽃피운 개성상인의 문화재 수호│양정필
6장 간송, 탁월한 심미안으로 우리 문화의 정수를 지켜내다│정병삼
7장 문화대국을 꿈꾼 경영인, 호암 이병철│김경한
8장 박성용, 메세나를 뿌리 내리게 한 ‘큰 별’│김경한

에필로그 새로운 메세나인의 출현을 기대하며
주註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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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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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사상사와 음악문화사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특히 국악의 대중화에 관심이 커서 KBS와 국악방송에서 국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조선 시대 국가전례와 음악사상사, 음악문화사, 음악사회사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한국음악의 거장들], [정조의 음악정책], [담헌 홍대용 연구](공저),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공저), [조선 전문가의 일생](공저)이 있으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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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과정 졸업
[신라수공업사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동국대·경기대 강사역임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저서로 [신라 화백제도와 화랑도] [한국 고대의 동아시아 교역사] [신라수공업사] [갑사와 동학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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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조선 태종대 정치 세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는 [조선 초 비개국파 유신의 정치적 동향], [태종의 집권 과정과 정치 세력의 추이], [고려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왕조의 마지막 풍경][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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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강사. 한국 미술사 전공.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만들어진 명작:신사임당과 초충도(草蟲圖)]([미술사와 시각문화]12. 2013, [안평대군의 상서(祥瑞) 산수: 안견 필 ‘몽유도원도’의 의미와 기능]([미술사와 시각문화]16, 2015), [정선의 금강산 그림과 그림 같은 시-진경산수화 의미 재고-]([韓國漢文學硏究]66, 2017),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2007 공저), [한국의 예술 지원사](2009 공저), [한국유학사상대계 11: 예술사상편](2010 공저), [새로 쓰는 예술사](2014), [한국문화와 유물유적](2017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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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사학과 교수. 저서로 [日本帝國勢力圈の東アジア都市經濟](공저),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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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간송미술관 수석연구원을 지냈고, 1991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있다. 신라 불교사상과 문화를 비롯한 한국불교사와 한국문화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즐겨 산사를 찾아 불교문화의 의의를 현장에서 살펴보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의상 화엄사상 연구][그림으로 보는 불교 이야기][오늘 나는 사찰에 간다][일연과 삼국유사][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공저)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공저) [한국불교사 연구 입문](공저)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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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스타임스 대표. 1984년 MBC 기자를 거쳐 CBS 국제부장, YTN 경제부장, 뉴스앵커 등 방송기자로 20년간 활동했고, [이코노믹 리뷰] 편집국장을 지냈다. ‘김경한의 세상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여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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