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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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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는 조선의 멸망을 보며 춥지도 않은데 전율을 느낀다”

    그 옛날 무성했던 장대 궁전의 버들!
    겨울에 웅크리고 벌레처럼 엎드려 있다가
    굴욕과 치욕을 참고 끈질긴 힘을 떨쳐 일어난
    일본의 손에 조선의 역사는 끝이 났다
    이에 중국의 지식인 량치차오는
    조선의 종말에 대해 비탄을 금치 못하며 붓을 들었다


    조선을 먹잇감 삼아 열강들이 각축을 벌인 세기말 세기초의 상황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조선을 바라보며 중국의 지식인이 격정적 감정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 싸움에 직면해 수난을 당하고 있던 중국의 동병상련 감정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외의존적인 안일과 무능에 머물렀던 조선 사람들에 대한 한탄, 과거 중화주의의 세례를 받았던 조선을 일본의 손아귀에 빼앗긴 것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에서의 안타까움, 나아가 조선을 사례로 삼아 중국 인민에게 교훈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이었다.

    “장대 궁전의 버들이여! 옛날에는 무성하더니 지금도 그러한지? 설사 긴 가지 옛날과 같았더라도, 필경 남의 손에 당겨져 꺾였으리라!” 청일전쟁 전의 조선과 청일전쟁 후의 조선을 비교해볼 때, 더구나 청일전쟁 후의 조선과 러일전쟁 후의 조선을 비교해볼 때,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전적에 이르기를, 상례의 지극한 애도는 군자가 그 근본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3000년 된 이 오래된 나라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멸망하는데 그와 친속의 관계를 가진 이로서 어찌 그 종말을 장식하게 된 사실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이로써 비애를 생각하니 가히 그 비애를 알겠다.”
    (/ '조선망국사략' 중에서)

    “40년 동안 일본이 했던 바를 하고자 했던 나라는 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열매를 획득한 나라가 어째서 오직 일본이었는가? 우리 중국이 조선에서 쌓았던 2000년의 위엄 위에 다시 대의명분으로 임했다면, 일의 추세가 순조로워 일본은 우리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그 광활한 영토와 많은 인민을 가지고 조선을 빼앗아 선성先聲을 울렸고, 조선에 대해 중시한 것 또한 일본의 몇 배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지극히 순조롭지 못한 지경에 처해서도 지극히 끈질긴 힘을 떨쳐 이 두 강자와 패권을 다투었고, 그 득실의 정세는 믿었던 바에 반대가 되었다. (…) 일본은 조선을 도모함에 수십 년간 정책이 일관되었다. 처음에 일정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부터 그에 따라 행하고, 일사불란했다. (…) 일본은 치욕을 참아내며 조선의 바쳐짐을 구했다.”
    (/ '일본병탄조선기' 중에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에 의해 한국은 일본에게 통치권을 빼앗겼고, 한국이 멸하는 과정에 동정심을 가지고 애석해하던 중국의 계몽주의 사상가 량치차오는 같은 해 9월 14일 발표된[조선 멸망의 원인]에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논조를 표출하기에 이른다. 량치차오는 중국의 유신파 계몽주의 지식인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그가 태어난 1873년은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 태평천국의 난이 진압된 지 10년 된 해로 서구의 충격이 한창 중국으로 물밀듯 거세게 쳐들어오던 격동의 전환기였다. 량치차오는 1880~1890년대에 캉유웨이와 함께 중국의 가장 중요한 진보 정치 사상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사회변혁·경세치용의 경향에서 근본적으로 제도를 개혁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청일전쟁의 실패를 계기로 개량주의적·계몽주의적 사회 사조를 형성해나갔다. 계몽사상과 학술·문학계를 혁신하기 위해 근대 서구 사상 및 과학기술,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의 총체적 개혁을 추진해 부강한 민족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노력해 중국 내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의 망국에 대한 슬픔과 동정에서 조소까지
    1897년 초 조선 언론에 량치차오가 처음 소개되었고 신채호, 박은식, 주시경 등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량치차오는 주로 탁월한 식견과 글로 찬양되었고, 특히 조선에 대한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친근하고도 우호적으로 다가왔다. 1904~1911년, 일제가 끈질기고도 벼락같은 수단으로 자신들의 침탈의 야욕을 채우던 시기, 량치차오는 조선에 대한 글과 시문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이 책은 바로 량치차오 전집에서 조선에 관한 모든 글을 빠짐없이 추려내 수록한 것으로, [조선망국사략] [일본의 조선] [지난 1년 동안의 세계 대사건 기록: 조선의 멸망] [아! 한국, 아! 한국 황제, 아! 한국 국민] [한일합병 문제] [조선 멸망의 원인] [일본병탄조선기] [조선 귀족의 장래]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 [조선애사] [여한십가문초서]를 다루고 있다.
    이들 글을 통해 조선 망국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조선과 청일 양국의 관계,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톈진 조약, 청일전쟁, 시모노세키 조약, 명성황후 시해, 러일전쟁, 헤이그 밀사 파견 사건과 한국 황제 양위, 한일병합조약 등 조선의 내부 상황과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에 관한 사건들을 분석하고 있다. 물론 그의 입지는 조선 망국에 대해 격앙된 슬픔을 드러낸 것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복합적인 것이며, 따라서 당시 국제정치의 현실을 받아들이던 진보 지식인의 이중성(?)과 한계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한편 그의 글들은 문학혁명을 주도했던 이로서 신新문체 문장의 중요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러한 점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단순히 역사 산문이 아닌,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읽게끔 한다. 량치차오는 특히 시문에서 정감의 적극적인 표출을 강조했고, 운문에서도 ‘곧장 내뿜는 정감 표출법’을 중시했다. 그리하여 그의 글들은 조선의 멸망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비애로 극대화하여 표출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이라는 열매를 어떻게 획득했나”
    량치차오는 [일본병탄조선기] 등에서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열강들을 제치고 어떻게 조선이라는 열매를 획득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이 식민화에 성공한 것은 단지 천행이라고만 할 수 없는데, 러시아가 먼저 조선을 빼앗았음에도 일본은 그 순조롭지 못한 지경에 처해서도 지극히 끈질긴 힘을 떨쳐 강자와 패권을 다투었고, 전쟁을 벌여 이겼을 뿐 아니라 그들만의 ‘도道’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일본은 량치차오에 따르면 “8단端을 알았다”. 첫째, 일본은 조선을 도모함에 있어 수십 년간 정책이 일관되었고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중국처럼 우왕좌왕하지 않고 치욕을 참아내며 조선의 바쳐짐을 구했다. 둘째, 일본 역시 조선에서 여러 차례 실패했지만, 저들은 그 때문에 처음에 세운 뜻을 저버리는 일이 결코 없었고, 마치 강물과도 같이 어떤 때는 고개를 휘감아 돌고, 어떤 때는 땅으로 흘러가고, 어떤 때는 모래와 자갈에 스며들고 내려가 반드시 바다에 이르고서야 그쳤던바, 큰일을 위해 굴욕을 참았으며 그 정성은 귀신도 피할 만한 것이었다. 셋째, 일본은 기회를 살피는 데 지극히 민첩해 추호라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절대로 놓쳐서 달아나지 않게 했다. 넷째,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매진하여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 일을 했는데, 가령 우정총국 사건이나 명성황후 시해와 같은 것이었다. 늘 벼락같은 수단으로 당하는 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솜씨를 발휘했던 것이다. 다섯째, 다른 열강들은 오직 궁정만을 조종하거나 세력을 떨치는 자들만 목표로 삼았던 반면, 일본은 마치 수은이 땅에 흐를 때 들어가지 않는 구멍이 없듯이 어느 방면을 막론하고 모조리 힘을 썼으며, 또 당파의 이동異同과 이합離合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인들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이들을 올렸다 내렸다 들었다 놓았다 해서 한결같이 자기 나라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여섯째, 조선 인민 여론의 세력을 경영하는 데 일본은 40년 동안 한시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즉 일진회를 만들어 무형 유형의 교묘한 책략들을 주입시킨 것이다. 일곱째, 다른 나라들은 오로지 정치 세력을 키우는 데 몰두한 반면 일본은 경제상의 세력과 정치상의 세력을 겸해 맹렬히 나아가며 쉬지 않았다. 여덟째, 다른 나라의 주동자들은 중국의 위안스카이나 러시아의 베베르 같은 이가 오직 한두 명에 불과했던 반면, 일본은 여러 방면에 걸쳐 활동하는 이들이 마치 하나의 군대에 빗댈 만하며, 마치 유격편대가 기발하게 의표를 찔러 승리하는 것과 같았다.
    이처럼 일본은 우승열패가 거짓이 아님을 믿으면 자연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마음으로 도모하며 눈으로 집중했던 것이다. 이에 량치차오는 “조선의 멸망을 보며 춥지도 않은데 전율을 느낄”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망하지 않는다면 망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량치차오는 일본을 비난하는 한편, 그의 여러 글을 통해 조선이 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과 조선 사람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나라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가운데 특히 정치가 부재해 그 최대 원인은 궁정이라 인식했으며, 조선 황제 고종의 개인적 자질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또한 비판의 칼날을 조선의 양반들에게 들이댔는데, “저들은 개인만 알고 국가의식이 전혀 없다”고 보았다. 한일병합 발표를 앞두고도 황제 즉위 4주년 기념 연회를 자연스럽게 치른 조선 군신들의 어이없는 행태를 볼 때 그들에게서 국가의식과 주권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량치차오는 지도층의 이러한 성향이 결국 친일파를 만들어내 망국의 직접적인 주역이 되게 했다고 여겼다. 또한 중국에 대한 계몽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논조를 띠었는데, 그중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으로 긍정적이었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조선에 대한 인식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대목이다.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는 바로 안중근 의사를 제재로 한 장시長詩로, 량치차오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장면을 비장하게 묘사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조선의 국치를 안타까워하며 많은 감정을 표현해냈다. “가을 밤 불어오는 피리소리는 관산의 달빛에 흩어지고, 역로의 푸른 등불은 흰 눈을 붉게 물들여 비춘다” “대국은 선진의 수급을 슬퍼하고, 망국의 유민은 위공의 피에 눈물 흩뿌린다” “기대의 책무를 모를소냐 뉘 집 자식인데” “피가 다섯 걸음이나 흘러넘치며 대사는 끝이 나고, 미친 듯 호통한 웃음소리에 산 위 달도 높구나”와 같은 시구를 통해 나라를 위해 결연히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의거 상황을 비장하게 그려내면서 그의 기절을 호방하게 묘사해냈다. 당시에 역시 침략당해가던 중국에 등장한 적인 동시에 유신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꺾어버린 데 대한 감정은 중국 최고의 지식인에게 복잡한 입장 속에 격정적 시정을 자아내게 했다.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라는 제목 역시 그러한 감정을 잘 상징하고 있다. 근세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이 시는 량치차오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제3자, 조선의 보호자, 일본의 경쟁자 등 복잡한 입장에서 써내려간 것이다.

    조선이 인식한 량치차오, 량치차오가 인식한 조선
    조선 지식인들에게 량치차오는 탁월한 식견을 지닌 선각자였고, 그의 글 속에 보이는 조선 멸망에 대한 동정과 애통함의 표현이 그를 친근하고 우호적인 외국 인사이자 동지로 느껴지게 했다. 량치차오는 비슷한 처지로 내몰리는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제국주의에 침략당하는 조선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 세르비아 등 세계의 여러 다른 국가와 민족의 불행에 대해서도 동정과 관심을 표현했다.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깊었다. 왜일까? 조선과 중국이 ‘친속의 관계’에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량치차오의 글들에서 보이는 동정은 소국, 즉 자신의 일부가 이탈되는 데 대한 상실감과 애통함으로 여겨진다. 은연중 중화주의가 내재된 인식이고 정치가이자 사학자로서 중화제국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해타산이 표출된 결과였다. 즉 량치차오에게 조선은 그저 동지가 아니라 중국을 비춰볼 수 있는 아쉽게 잃어가는 속국인 동시에 또 다른 특수한 타자였고 이는 곧 경쟁자인 일본의 강권에 대한 견책과도 연결된다. 량치차오의 이런 인식들은 결국 중국의 계몽을 위한 교훈으로 활용되었다. 중국인 량치차오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조선의 지배층 및 국민성에 대한 비판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량치차오는 조선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지녔고, 조선의 망국 과정에 있어 적극적인 관심을 표출하면서 동정과 애통함을 보였다. 량치차오에게 조선은 서구와의 대비 속에서 중국을 비춰볼 수 있는 특별한 타자로서 미래 중국의 모습일 수도 있는 존재였다. 당시 중국이 위기를 겪으면서 조선과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 조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나타냈다. 중국을 계몽시키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 10여 편의 글을 통해 조선에 대해 논의하면서 조선 황제의 실정을 비판하고 양반 통치 계층의 국가의식 부재와 열악한 국민성을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꼽았다. 량치차오의 시각이 이중적이고 제한된 면이 있긴 하나, 이를 단순히 외국인의 시각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당시 깨어나지 못했던 조선의 상황을 냉철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100여 년 전 량치차오가 조선의 망국 근원으로 꼽은 황실 및 지도층의 자질과 국가의식 부재를 오늘날의 한국은 과연 지니고 있는지 되돌아봄 직하다.

    목차

    머리말

    제1부 량치차오의 눈에 비친 조선의 멸망
    1 조선망국사략朝鮮亡國史略
    [부: 베트남망국사전록越南亡國史前錄]
    2 일본의 조선日本之朝鮮 -우리 나라에 경찰을 만들려는 당국은 볼 것
    3 지난 1년 동안의 세계 대사건 기록 조선의 멸망過去一年間世界大事記第六朝鮮之亡國
    4 아! 한국, 아! 한국 황제, 아! 한국 국민嗚呼韓國嗚呼韓皇嗚呼韓民
    5 한일합병 문제日韓合倂問題
    6 조선 멸망의 원인朝鮮滅亡之原因
    7 일본병탄조선기日本倂呑朝鮮記
    [부: 조선의 중국에 대한 관계의 변천朝鮮對我國關係之變遷]
    8 조선 귀족의 장래朝鮮貴族之將來
    9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秋風斷藤曲
    10 조선애사朝鮮哀詞
    11 여한십가문초서麗韓十家文抄序

    2부 량치차오와 조선
    1 량치차오의 생애와 성취
    2 조선의 량치차오 수용과 량치차오의 조선에 대한 인식

    저자소개

    생년월일 1873~1929
    출생지 -
    출간도서 8종
    판매수 313권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면서 끊임없이 시대를 이끌어간 대표적 지식인이다. 신문·잡지 및 교육을 기반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을 도모하고,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선전함으로써 폐쇄된 근대 중국에 새로운 개혁의 기풍을 일으켰다. 특히 탁월한 계몽주의 사상가,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 문학가로서 중국 문화사文化史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자字는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으로 음빙실주인飮氷室主人·음빙자飮氷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 등 여럿을 사용했다. 서구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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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2~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대학원에서 [청대 양호파의 원류 및 그 문학 이론 연구(淸代陽湖派的源流及其文學理論硏究)]라는 논문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6년 [량치차오의 문학 혁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부터 한양대, 연세대 등에서 시간 강사를 역임하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경동대 전임 강사를 거쳐 현재 한양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 여름부터 1년간 방문학자로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중국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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