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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만든 길 : 인류 문명을 창조해낸 위대하고도 매혹적인 여정

원제 : Sur La Route Du Pap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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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프랑스의 최고 지성 에릭 오르세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번엔 ‘종이’다!

종이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이자 인류 문명과 역사를 혁명적이고도 지속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꾸준히 진보하도록 도운 매우 유익하고도 특별한 물건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종이가 2천 몇백 년 전 인류에 의해 발명되지 않았다면,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뒤얽혀 전 세계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책 [ 종이가 만든 길]의 저자인 에릭 오르세나는 프랑스 학술원(l'Acad?mie fran?aise)의 회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며, 1988년 소설 [식민지 전시회(L’Exposition coloniale)]로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수상한 최고의 지성이자 탁월한 문학가다. 그는 인류를 위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위대한 일을 해왔으면서도 오늘날에 이르러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매우 특별한 물건 종이를 위해 그 발상지인 중국의 우름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 일본의 에치젠, 인도의 볼리우드, 캐나다의 트루아리비에르, 스웨덴의 예블레,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브라질의 아라크루즈로 이어지는 5대륙 15여 국으로의 대장정을 통해 마침내 이 책을 탄생시켰다. 그가 여행한 이 나라들과 수많은 도시들은 하나같이 종이와 관련된 역사 깊은 기억과 소중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다.

[종이가 만든 길]에서 에릭 오르세나는 종이를 맨 처음 발명한 ‘사람들’(놀랍게도 채륜이 아니다!)에서 시작해 오랜 세월 동안 중국대륙 안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어떻게 아랍을 거쳐 유럽대륙으로,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AD 8세기에 아랍에 전파된 종이가 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보다 무려 500여 년이나 뒤쳐진 AD 13세기나 되어서야 비로소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는지 그 놀랄 만한 정치적?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놓치지 않고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그 밖에도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영원한 적인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종이 속에 영원히 고정시키는 기술, 전자출판에 관한 고찰, 종이를 위한 위생이나 온도와 관련된 최신 기술과 같은 특별하고도 유용한 지식을 담아 전수한다. 또한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와 루이 파스퇴르 등의 세계적인 문학가 및 과학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그들의 ‘원고’를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들,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스 시리즈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프랑스 ‘위조지폐 제조왕’ 보자르스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그는 화장지, 감동적인 청소년소설, 종이접기처럼 조금은 시시콜콜하면서도 종이의 다양한 속성과 입체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빼놓이 않는다.

에릭 오르세나는 세계 5대륙 6도시를 다니며 ‘목화’를 주제로 세계화의 규칙과 비밀스런 이면을 탁월하고 절제된 언어로 풀어낸 역작 [코튼로드]로 전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또한 그는 ‘물’을 주제로 2년여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 이스라엘과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 알제리 등의 지중해 연안 국가에 이르기까지 물 위기의 현장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가뭄과 홍수, 물로 인한 질병으로 생존의 경계에 선 나라들과 사람들을 만난 기록을 담은 [물의 미래]를 집필했다. 그리고 다시 그는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종이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를 심도 있게 추적한 일생일대의 역작 [종이가 만든 길]을 펴냈다.

종이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사실들과 허를 찌르는 이야기들

중국 우름키에서 시작해 5대륙 15여 국의 수많은 도시들로 이어지는 위대한 석학 에릭 오르세나의 장대한 페이퍼로드. 에릭 오르세나는 이 책에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갈증과도 같은 호기심 탓에, 종이와 관련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나라와 다양한 도시,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마을들을 일일이 발품 팔아 찾아다니며 마치 광부가 광산에서 금을 캐듯, 혹은 해녀가 바다 밑바닥에서 진주조개를 건져 올리듯 소중한 지식들을 발굴해낸다.

종이를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은 채륜이 아니다?
- 오랫동안 사람들이 믿어온 것과는 달리, 당시 궁중의 환관이었으며 AD 121년에 사망한 한나라의 환관 채륜이 종이의 발명가는 아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이나 망루 등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중 몇몇은 BC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수 세기 동안 중국 안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은 ‘전쟁’과 ‘종이가 가진 속성 ’정직성‘ 때문이었다
- AD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랍의 압바스 왕조가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에 극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수백 년 동안 비밀로 철저히 지켜져왔던 종이 제조법이 아랍세계에 전파되었고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 아랍과 유럽에 종이가 전파되기까지 사용되었던 소재들의 경우, 뒷면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잘못 쓴 글자, 심지어 왕이나 중요한 인물의 서명까지 감쪽같이 고칠 수 있었다. 중요한 문서에 적힌 내용을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조는 자신들이 발송하거나 전달한 문서에 신뢰를 담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재료들과는 달리 종이의 뒷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틀린 글자를 고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종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러한 속성이 제국의 지배자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에 종이의 전파가 늦어진 것은 ‘종교’ 때문이었다?
- 중세 유럽인의 입장에서, 종이는 아랍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종이는 ‘악마의 작품’, ‘불경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그토록 정성스럽게 [코란]을 적었던 물건에 기독교의 신성한 ‘복음’을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이유로, 1221년에 프레데릭 황제는 모든 행정문서에 이 ‘불경스러운’ 물건을 사용하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넝마’가 없었다면 종이도 없었다?
- 나무를 사용하게 될 때까지 넝마는 종이의 주요 재료였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청소부’라는 직업이 생기고 그들이 정기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해가기 전까지 쓰레기를 모아갔던 ‘넝마주이’가 없었다면 종이를 만드는 제분기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로 넝마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따라서 종이의 원료가 되는 넝마를 손에 넣으려는 ‘넝마 전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넝마의 부족이 너무도 심각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천을 다시 회수할 목적으로 시신을 수의에 입혀 매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까지 발표될 정도였다. 또한 독일과 스위스 같은 산업국가들은 어떠한 넝마든지 자국의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

인도의 종이 산업을 발전시킨 1등공신은 ‘마하트마 간디’였다
- 간디는 전통적인 가내수공업을 중시했으며, 산업 마을들 즉 마을의 산업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간디는 인도 최고의 종이기술자 자납 알라 바즈를 만났고, 그가 국회에서 종이 예술을 선보일 수 있도록 했다. 그로 인해 자납 알라 바즈의 종이회사는 모든 행정적인 주문에 대한 우선권을 갖게 되었고, 인도 종이 산업의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석면’으로 종이를 만든다?
- 석면은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석면에서 긴 섬유만 뽑아낼 경우,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종이를 만들 수도 있다. 한데, 석면으로 만든 종이는 불에 매우 강하기 때문에 특히나 화재를 두려워하는 ‘공증인’이나 ‘기록보관자’들에게 애용된다.

가장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종이가 ‘포장용지’인 이유
- 포장용지는 수많은 모순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내구성이 있으면서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즉, 유연한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포장용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박테리아나 냄새, 빛을 차단해야 하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셋째 그 표면에 글자, 그림, 색깔을 쉽고도 선명하게 인쇄할 수 있어야 한다.

목차

평면구형도 │ 저자 서문

제1부_ 과거의 종이
브르타뉴 한복판의 중국인 거주지_ 플로고넥 프랑스│ 상업과 국경_ 우름키 중국│ 역사 속의 천국_ 투르판 중국│ 석굴 도서관_ 둔황 중국│ 아랍의 시대_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마르케스와 움브리아에 대한 찬사_ 파브리아노 이탈리아│ 제분기 어휘사전_ 유럽│ 넝마 전쟁_ 뫼르나크 프랑스│ 비행의 역사_ 비달롱 레 아노네이 프랑스│ 창조자의 고통_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프랑스│ 위인들과의 친밀함 속에서_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프랑스│ 인간문화재_ 에치젠 일본│ 종이의 영원성_ 일본│ 히로시마_ 일본│ 과거 돌아보기_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가족사진_ 브르타뉴 프랑스

제2부_ 현재의 종이
종이의 아이들_ 라자스탄 인도│ 이야기의 필요성에 대하여_ 볼리우드 인도│ 종이의 지정학 I│ 페이퍼 위크_ 몬트리올 캐나다│ 뗏목운반인부에게 보내는 감사_ 트루아리비에르 캐나다│ 라튀크 캐나다│ 별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_ 트루아리비에르 캐나다│ 추운 지방에서 제작되는 종이 I_ 스베토고르스크 러시아│ 추운 지방에서 제작되는 종이 II_ 외스타발레와 예블레 스웨덴│ 노루의 교훈_ 랑드 숲 프랑스│ 쓰레기통의 공모_ 르 블랑 메닐, 라 쿠르뇌브 프랑스│ 우체부, 선별기, 와이퍼와 치약 튜브│ 에릭이란 │ 커피머신에 대한 찬사_ 그르노블 프랑스│ 예술가들에 대한 찬사 I_ 낭테르 프랑스│ 예술가들에 대한 찬사 II_ 크레브쾨르 프랑스│ 즐거움의 확장_ 토레스 노바스 포르투갈│ 종이의 지정학 II│ 피를 흘리는 길_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60만 헥타르_ 아라크루즈 브라질│ 유칼립투스에 대한 찬사 혹은 새롭게 얻은 생각들│ 종이 접기에 대한 경의│ 색깔을 파는 사람_ 파리 프랑스│ 보르헤스, 케이프 혼, 자크 아탈리, 그리고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

결론│ 감사의 글 │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우리 둘 다 중간 정도의 키에 안경을 끼고 있었고 머리 크기가 비슷했고 탈모 정도도 비슷했다. 시간을 더 지체하지 않고 고양이와 그 주인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믿어왔던 것과는 달리, 당시 궁중의 환관이었으며 서기 121년에 사망한 채륜(蔡倫)이 종이의 발명가는 아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이나 망루 등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중 몇몇은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날짜가 말해주는 진실 때문에 영광을 빼앗긴 불쌍한 채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종이의 모태는 어떤 재료들로 만들어졌습니까?”
“주로 대마를 잘게 빻아서 만든 식물성 섬유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대나무, 뽕나무 껍질을 사용하기도 했죠.”
장 피에르 드레즈는 미소를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낡은 옷가지나 썩은 고기잡이 그물로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군요. 늘 상상력은 경계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까만 고양이는 타고난 습성대로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간간이 귀를 쫑긋거리기도 했다. 마치 교사의 수업을 통제하는 감독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최초로 종이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제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만약 이 발명품들이 모두 북부 지역, 즉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고비 사막 근처의 비단길을 따라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곳 기후가 건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이는 겉으로 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종이는 그 무엇에도 잘 견딥니다. 단 한 가지 취약점만 빼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습기입니다.”
('브르타뉴 한복판의 중국인 거주지' 중에서/ pp.18~19)

수 세기 동안 종이는 중국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후 서서히 상인들에 의해서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인더스 강 서쪽 지방에서 여전히 파피루스와 양피지만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751년 7월이 되었다. 이 날짜는 결정적이다. 종이와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말이다. 이미 얼마 전부터 아랍인들과 중국인들은 중앙아시아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고 있었다. 아랍과 손을 잡고 있던 티베트가 중국의 상업로를 위협하자, 당나라 행정부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두 군대는 사마르칸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탈라스 강가에서 충돌했다. 닷새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중국이 항복했다. 중화 제국은 영토 확장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화 제국은 서쪽 한계에 도달했으며 더 이상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랍인들은 이 751년의 전투로 732년의 일을 복수했다. 탈라스의 승리는 푸아티에에서의 패배를 보상해주었다. 프랑스에서 멈춘 그들의 영토 확장이 극동 지역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종이에게 좋은 소식이 되었다. 이제 종이는 새로운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마르칸트를 정복함으로써 아랍인들은 중국의 장인들이 그곳에서 제작하던 경이로운 소재인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아랍인들은 더 이상 종이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762년에 압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자신들의 수도로 정했다. 압바스 왕조는 종이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지 종이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종이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종이는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까지 사용하던 다른 소재는 그 뒷면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잘못 쓴 글자를 긁어낼 수 있었다. 이름이나 숫자, 심지어 서명까지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틀린 것을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조는 자신들이 발송하거나 전달한 문서에 신뢰를 담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종이는 서서히 서구 사회를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종이를 사용하게 된 나라에서는 더 이상 종이를 구입하는 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많은 양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은 종이를 직접 제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주로 중동 지방에 위치하고 있던 종이 생산지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티그리스 강을 따라 수많은 제지공장이 생겨났다. 이집트 역시 종이에게 굴복하였다.
('아랍의 시대' 중에서/ pp.49~51)

“두 번째 진보 역시 우리 마을이 이루어냈습니다. 종이 위에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종이의 표면을 다듬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며, 잉크가 섬유 덩어리에 다 스며들어버리죠. 중국인들은 몇 가지 식물을 한꺼번에 끓인 물을 이용했습니다. 아랍인들은 또한 식물에서 얻은 전분을 이용했죠. 하지만 우리는 무두장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죽을 삶을 때 생기는 물을 우리에게 선물을 하게 된 것이죠. 그건 기적입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부터 동물성 젤라틴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쉽게 잘 붙는 이 접착제 덕분에 종잇장은 더 강해질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필기구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식물의 섬유가 인간의 필요에 더욱 잘 부응하기 위해서 동물과 협력을 한 셈이죠.”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로디아 부인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우리 기술자들은 경쟁심에 사로잡혀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물레방아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제조 비법을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파브리아노는 이 비법을 외지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당한 채 가족과 함께 추방당하는 중벌을 받았다. 하지만 모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파브리아노는 섬유 반죽을 올려놓았던 구리 여과기 때문에 종이에 생긴 가느다란 구리 자국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 자국은 종이를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들어 올렸을 때만 보였다. 이렇게 해서 투명무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명무늬를 이용하여 제지업자는 각자 상표의 역할을 해주는 자신만의 서명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질투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투명무늬의 탄생 장소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이곳이다. 나는 이 매력적인 도시에 얼마 더 머무르고 싶었다. 나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보물들 사이를 한가로이 거닐었다.
('마르케스와 움브리아에 대한 찬사' 중에서/ pp.59~60)

“에치젠은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에겐 물이 있었습니다. 우물과 산에서 내려오는 강물이었죠. 우리 조상들은 노동을 즐겼으며 고집이 있었습니다. 조상들은 우연히 산책하다가 가장 적합한 세 종류의 소관목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닥나무(kozo)입니다. 섬유가 가장 길죠. 두 번째는 삼지닥나무(mitsumata)라 불리죠. 같은 종류의 나무이지만 더 가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안피(gampi)입니다. 안피 나무는 흉내 낼 수 없는 광채를 띠는 특별히 얇은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처음 두 나무는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농부들의 수입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빨리 자란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치 우연인 것처럼 가장 특별한 안피는 아주 느리게 자라며 야생 상태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귀하고 구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값도 더 비싼 것입니다.”
좋은 선생님인 수기하라 씨는 내가 노트에 자신의 말을 받아 적는 것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종이들을 내밀었다. 나에게 그 원료를 맞춰보라고 했다. 안피의 경우에는 쉬웠다. 하지만 다른 두 종류를 구분하는 데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의 선생님은 두 번째 강의로 넘어갔다.
“점액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나의 무지를 고백했다.
“그렇다면 점성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죠?”
나는 내 기억 속에서 화학과 물리학에 대한 오래된 추억들을 찾아보았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마찰력으로 그 흐름을 막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이 종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점액은 종이 반죽에 점성을 줍니다. 다시 말해서 물에 섞여 있는 섬유를 움직이지 않도록 해주죠. 물이 빠지는 속도를 늦추어서 종이 반죽을 여과기에 펼쳐놓기 쉽게 만들어줍니다. 가장 좋은 점액 물질은 하이비스커스 뿌리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다시 한 번 사전 설명을 한 뒤에, 수기하라 씨는 나에게 일본 종이의 긴 역사에 대해서 요약해주었다.
“우선 종이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불교 경전을 옮겨 적은 백만 여 개의 두루마리를 백만 여 개의 나무로 만든 작은 탑에 넣어서 각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다음 안피가 영광을 누리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쓰기에 안성맞춤인 안피의 우아함을 사랑했습니다. 그 후 사무라이의 시대가 되었죠. 사무라이들은 더 단단하고 두꺼운 종이를 원했습니다. 바로 닥 나무로 만든 종이였죠.”
(본문 중에서/ pp.101~102)

“우리 가족은 분명히 1000년경에 터키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누구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종이라는 물질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잔혹한 사건들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강제 추방되었죠.”
나에게 말을 하는 동시에 카그지 씨는 나를 첫 번째 방으로 데리고 가서 두 손을 펄프 통 속으로 경쾌하게 집어넣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넝마 외에는 어떤 화학 성분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피부에 아주 순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객의 상황과 요구에 따라 우리는 풀이나 개양귀비, 제비꽃, 심지어 장미꽃잎을 넣기도 합니다. 양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늘 쫓기거나 혹은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중앙아시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제지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늘 함께 다녔죠. 라자스탄에 정착한 것은 이렇게 해서입니다. 1600년경에 자이푸르의 태수였던 라자 만 싱 1세(Raja Man Singh I)가 자신의 곁으로 우리 조상을 불러들였습니다. 한 세기가 더 지난 후에 우리 조상들은 물이 더 풍부한 곳을 찾아서 사라스바티(Sarasvati) 강가인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강물은 특히 깨끗하고 그 물에 담궜다 종이를 꺼내면 물의 색을 간직한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 땅 위에서 살 곳을 찾은 것입니다.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이름에 카그지(Kagzi)를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종이 제작자’를 뜻하는 오래된 우르두어 단어입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내 얼굴이 감출 수 없었던 대조된 표정을 카그지 씨가 본 것이 틀림없었다.
“걱정 마세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알리무딘 살림 카그지 씨는 자신들의 자랑거리 중 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대한 테라스에 종이에 빨래집게로 고정된 채 널려 있었다.
“규칙적인 건조가 종이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물의 흐름을 가장 잘 이용하기 위해서 이 장소를 설계한 것은 저희 아버지죠.”
본토를 여행할수록 나는 약간은 슬픈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선원들만이 바람과 친밀함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이의 아이들' 중에서/ pp.136~137)

저자소개

에릭 오르세나(Erik Orsenna)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7.03.22~
출생지 프랑스 파리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1,368권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소설가 중 한 사람이자 철학과 경제학, 정치학에 걸친 인문 분야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1988년 [식민지 박람회]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aise 회원으로 지정되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인정받았다.
정확한 프랑스어를 구사하기로 유명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이기도 했으며,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 국제 해양센터 원장 등 주요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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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불 어 및 영어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종이가 만든 길], [철학자의 여행법], [코코 샤넬], [인간관계의 심리학], [비밀의 심리학], [격리된 낙원], [나는 왜 이유 없이 아픈 걸까], [아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아이와 협상하라], [프랑스 영재 교육법]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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