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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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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원우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 : 2014년 03월 17일
  • 쪽수 : 35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6735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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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기억의 파노라마이자 그것의 생생한 디테일!
    일본 사회·정치·문화에서 뒷골목과 무의식의 심부까지
    한 작가의 30년 관찰과 애증이 농밀한 문필로 풀려나오다


    일본이라는 아이러니, 그 내면과 외면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단단한 껍질에 싸인 듯 웅크리고 있는 그들은 어떤 굴절과 미완의 역사를 새겨왔나
    섬나라의 ‘공기’와 반도국가의 ‘분노’는 어떻게 만나고 빚어졌는가

    이 책은 그동안 30여 년에 걸쳐 내 나름대로 겪은 일본의 사정과 일본인의 진정성을 솔직하게 밝힌 탐문기이자, 주관/객관의 저울질을 번갈아 해대면서 작금의 형편과 견주어본 일본/일본인의 전신상에 대한, 좀 중뿔날지도 모르는 비판적 고찰이다. _머리말

    ‘머리 없는 세계’와 ‘세계 없는 머리’
    한국 소설의 허실과 문단의 제도적 적폐를 신랄하게 고발한 그의 첫 문학담론집 [산책자의 눈길]에 뒤이어 작가 김원우가 [일본 탐독]을 펴냈다. 이 책은 특유의 시각으로 일본 문화 전반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일본의 국수주의적 경향 밑에는 ‘머리 없는 세계’와 ‘세계 없는 머리’라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는 거침없는 해설로 일본 읽기의 정곡에 육박해 들어간다. 한편 일본의 구석구석을 묘사한 것에 견주어 한국 사회의 성숙/미숙을 겹쳐 읽고 또 쓰는 입체적 성찰은 단연 유니크하다. 저자가 일본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몸소 겪은 일본 사회와 일본인 일반의 심부深部에는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이 고루 섞여 있는가 하면, 일본의 저작물에 숨어 있는 미덕/미달을 가감 없이 평가하는 담론에는 새로운 설득력이 넘쳐난다. 이른바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인의 솔직한 자의식으로 양국의 자국민 제일주의적 성향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따라서 [일본 탐독]은 30여 년에 걸친 한 소설가의 일본 국토 체험기이자 일본 문화에 대한 탐문서이며 일본 저작물에 대한 독후감이다.

    편파적 옹호와 지탄에서 벗어난 일본 읽기
    제1부 ‘일본열도 탐험’은 저자가 1990년 여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신문에 20회 연재한 ‘일본열도 탐험’을 모태로 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부분적으로 시효가 자동 소멸된 것들은 대폭 수정했으며 지면 제약으로 못다 한 말을 덧붙여 어떤 ‘꼭지’는 두 배 이상으로 늘리기도 했다. 또한 오늘의 시점에서 일본의 맨얼굴과 가면을 다시 더듬는 ‘후일담’을 각 꼭지 뒤에 붙여 앞의 ‘현장 중계’에 대한 회고적 반성문 역할을 했다. 즉 "일본의 ‘현주소’에 대한 한때의 생체험을 곧이곧대로 적바림하고 난 후, 오늘의 시점에서 ‘당대’ 전반을 ‘후일담’ 형식으로 성찰한 것"이다.
    1절에서는 총평적 느낌의 개관을 통해 일본을 ‘머리 없는 세계’이자 일본인을 ‘세계 없는 머리’라고 묘사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부러울 것 없는 ‘자족적 세계’야 말로 일본인들의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런 세계관이 ‘머리 없는 세계’와 ‘세계 없는 머리’들을 빚어냄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온갖 디테일과 미학적 완성도를 향한 실핏줄 같은 미로를 형성한다. 올라오지 못하고 뛰어넘지 못하고 끝없이 내려간다는 식으로.
    일본을 구석구석 맛보겠다고 작정한 저자는 2절과 4절에서 일본의 농가와 어촌을 방문한다. 때로는 건듯건듯 때로는 날카롭게 현지인들과 말을 섞으며 눈으로는 바쁘게 주변을 시찰하는 1인칭 화자의 내면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봉 1억이 훨씬 넘는 과수원 주인이 겨울철에는 지역도로보수공사라는 막노동에 무보수로 나서는 마음가짐과 그에 대한 천연덕스러운 해명이 우릴 놀라게 하고, 평생 그물망을 만지고 고기 비늘에 뒤덮인 삶을 살면서도 번듯한 어항과 어선에 대한 면밀한 욕망을 키워나가는 어부의 모습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엿보게 된다.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원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춤추는 6, 7, 8절에서는 너무나 세속적이라 오히려 부담감이 없는 일본의 불교와 절이 어떻게 수입을 올리는지, 모성에 길들여진 사회가 어떻게 유치한 영혼들을 양산해내는지도 살펴지고 있다.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하층민들이 몰려 사는 천년 고도 교토의 슬럼가를 묘사한 대목에서는 "잔인한 방관과 구별짓기" 유전자의 극단을 엿보고, ‘낙오자들의 뒷골목’을 탐방한 5절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하바리들이 도박·여자·탕진·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장면과 그것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가의 성실함을 기묘하게 대비시켜서 뒷골목의 활력을 작가적 힘으로 재생시키고 있다.
    1부에서 저자의 일본 읽기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도라이진渡來人’과의 인연을 묘사한 11절과, 일제 말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1950년대 그만 고아가 되어 한국집 가정에 얹혀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일본으로 다시 건너온 "한 일본인의 인생유전"을 묘사한 14절에서 빛을 발한다.

    ‘김원우 식의 일본 리얼리즘’
    제2부 ‘일본이라는 독서 체험’은 "일본의 여러 저작물 중 우리말로 옮겨진 것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난 후의 독후감을 즉흥적으로 재생시키면서 나름의 저회취미를 좀 방자하게 꾸려본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일본의 한 지역 정보지에 매달 한 페이지씩 쓴 에세이가 토대가 됐다. 물론 책을 집필하면서 그 주제만 일부 따오는 한편 (역시 비좁은 지면 사정 때문에)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이어붙이면서 전면 개고했다. 또한 몇몇 꼭지는 새로 쓴 것들이기도 하다.
    사실 2부에 나오는 글들은 책을 매개로 삼고 있지만 일반적인 서평과는 거리가 한참 먼 글들이다. 작가답게 책 이야기보다는 책이 촉발시킨 내부의 어떤 인상이나 기억, 때로는 모멸감이나 자괴감 같은 세부적인 감각들이 저자의 일상생활 속에서 퍼져나가는 연상 작용이 글의 주요 몸통을 이룬다. 1절만 해도 나무에 관심을 두고 나무 관련 책들을 순회하다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온통 뒤덮고 있는 그 잘 생긴 삼나무론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일본문학 독후감도 책 내용보다는 저자와 그 정신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계]의 작가 시마자키 도손을 통해서는 가족을 굶겨죽이는 소설가의 자화상과 일본 사소설 전통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관찰되어온 현상으로 "오직 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출판계에 오래 몸담았던 경력 속에서 만난 이노우에 야스시는 한때 한국사회에 불었던 야스시 열풍과 함께 그 인기의 비결을 한국 문단의 권력자 K소설가와 빗대어 분석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낫토와 같은 음식, 건강제일주의, 일본 목욕탕, 벛꽃놀이와 가방분식, 프로야구와 현대소설 등 다분히 문화와 일상 전반을 활보하면서 책과 독서 출판 문화를 직조해내는 2부의 글쓰기 또한 "음식 자랑"과 "장인적 다양성"과 같은 일본 음식 문화의 특수성과 "식재료를 그대로 살려두는" 한국의 특수성을 대비시키는 식의 내면적 분투의 장으로 정신없이 드나든다.
    김원우식 ‘일본 탐독’은 일본 관찰에 있어 가정주부식의 부지런함과 깐깐함과 심지어 아기자기함까지 건사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문학적 관조가 없을 수 없겠지만, 생활인으로서 겪는 부대낌이 더 우위에서 책 전체의 뼈대를 부여잡으며 그 디테일들을 관장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지만, 적어도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적 세계를 탄탄하게 형성하면서 여러 측면에서의 깨달음과 어떤 속깊은 만남 같은 것을 선사한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아래에서는 저자가 쓴 머리말의 핵심을 다시 서술하면서 이 책의 유래와 특성과 구성의 묘미를 밝혀둔다.
    한국인들이 거의 무모하다시피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원근遠近의 여러 외국 중에서도 일본은 단연 특이한 나라다. 별종의 묘한 나라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아니다, 단일 색조의 거대한 ‘마을’이나 ‘동네’가 더 적절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지칭어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상한 ‘동네’는 혈연/지연으로 묶여 있는 스스로의 숙명을 곱다시 수용, 그 명맥 유지에 급급해하는 단순한 ‘언어공동체’에 불과하므로 ‘나라’야 어떻게 돌아가든, 특히나 ‘이웃 국가’야 뭐라 하든 오불관언이다.
    우리끼리 오순도순 똘똘 뭉쳐서 살아가는 작은 동네이므로 일체의 ‘변화’를 모른다기보다도 그것을 싫어한다. 20년 또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물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길거리도 더 말끔하게 닦여 있는 식으로 외양은 달라져 있으나, 이내 그 속의 세부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알고 나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해진다.
    미수米壽도 머잖았을 듯한 할머니가 지키는 잡화점에서는 여전히 1엔짜리 주화를 꼬박꼬박 셈해서 거스름돈으로 내준다. 1엔은 일본처럼 물가고가 비상한 ‘세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부질없는 ‘경제활동’을 바꾸지 않는다. "돈이란 게 1엔부터 시작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인 줄이야 우리도 잘 알지. 그래도 돈 단위가 그거고, 통용하라고 만들어놨으니 써야지 어쩌겠어. 만들어놓고 안 쓴다는 것은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
    이 답답한 발상 밑에 자기 것을 애지중지하는 ‘국수주의’가 숨 쉬고 있으며, 그런 심성 일체는 섬나라 특유의 ‘안분지족성’ 같은 원형질에 닿아 있다는 설명, 진단도 실은 글쓰기/말하기가 한낱 생업으로서의 ‘일’인 일본인 식자들의 한가로운 ‘의미 부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야스쿠니’는 반역사적 행위라기보다는 그냥 ‘전통’일뿐
    보수 정객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세계 여론에 반하는 반역사적 행위가 아니라 변화를 싫어하는 특정 심성의 주체들이 일상적으로 치르는 ‘전통’이자 ‘일’일 뿐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 개개인은 더러 출중한 탐구벽, 깔끔한 정리정돈 감각, 끈질긴 개선 의지 따위를 발휘할지 몰라도 전 국민 단위의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흐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물러서는 법도 없이 제자리에서 마냥 양팔과 양다리를 열심히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웃 나라의 타매, 세계인의 눈총 따위를 무시한다기보다도 그런 전통/일에의 매진을 능사로 삼음으로써 고집스러운 자기애에 충실하는데, 그것을 일본인 특유의 자존심이나 안하무인 벽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왜냐하면 그들의 심성에는 ‘전통/일/자존’과 같은 무형의 (그러나 ‘너무 귀해서 뿌리칠 수 없는’) 가치 체계가 어떤 비교 대상일 리 만무하다는 집단 무의식이 면면히 이어져오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기본위주의’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정치 행태나 경기 지표 같은 매스컴의 요란한 선전·선동 따위를 공연한 호들갑으로 따돌려놓는 풍경에서도 그런 ‘동네’ 단위의 무반응 증상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일중독(굳이 비유한다면 무작정 땅을 파서 집을 짓고 먹을 것이나 쟁이는 ‘개미 떼’ 같은), 자기 체신 지키기, 변화 기피증, 전통 고수 등등의 문화적 코드들이 일본을 ‘머리 없는 세계’로, 일본인을 ‘세계 없는 머리’로 안착시켰을지 모른다.
    말을 바꾸면 일본/일본인을 이해, 해석하는 이런 코드화 작업에 동원할 수 있는 잣대는 많고, 또 선행의 여러 ‘일본론’이 다각도로 밝혀두기도 했다. 이를테면 ‘타자 백안시’ ‘친절 뒤에 가려진 속마음’ ‘남 치켜세우기와 시샘하기’ ‘시선의 이중성으로서의 자만과 겸손’ 같은 일본 문화 읽기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잣대는 여러 개나 등장하는데, 어떤 식의 연구서를 겨냥한 것이 아닌 만큼 모두 저자의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을 이해, 해석, 비판하고 해명하는 작업은 간단하지도, 오히려 그런저런 천부적 조건 때문에 쉽지도 않다고 말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근거 없는 자기 자랑이 아니다’라는 저쪽의 실증적 ‘의미 부여’의 실적도 워낙 착실해서 선뜻 ‘온축’이라는 말의 최대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연찬이 깊고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자학사관’ 같은 자세가 일본/일본인의 속성 및 의식 구조 전반에 대한 어떤 ‘규명 의지’에의 당위성을 지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편파적인 옹호와 편파적인 지탄의 멍에"에서 놓여나야 한다는 자각 아래 저자가 그동안 읽고 보아온 일본/일본인에 대한 직관·감상·느낌에 최대한으로 충실하려고, 따라서 추호의 거짓말도 보태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특징이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일본 열도 탐험

    1. 일본, 머리 없는 세계
    후일담 1 ‘자족적 세계’의 처세술

    2. 농부들은 더 바쁘다
    후일담 2 조선 사람이 못 따라갈 일본 농가

    3. 히로시마 원폭피해, 그 비극의 내면화와 외면화
    후일담 3 전쟁의 상흔을 견뎌내는 법

    4. 사토시마 어부의 소원
    후일담 4 ‘작명’으로 꿰뚫는 본심

    5. 일본의 그늘, 메시아를 기다리는 낙오자들
    후일담 5 하바리 인생들을 담는 르포 사진작가

    6. 고도古都의 슬럼가
    후일담 6 교토의 진풍경 하나

    7. ‘모성’에 길들여진 사회
    후일담 7 실속 좋은 ‘세속화’

    8. 캠퍼스의 ‘우량아’들
    후일담 8 오늘날 ‘지식 산업’의 처방전

    9. 일본 예찬을 대하는 불편함
    후일담 9 독학으로 빚어내는 자기완성주의

    10. ‘죽음관리 회사’, 사찰寺刹
    후일담 10 일본 불교의 제도, 단가의 그늘

    11. 여자 단기대短期大의 생명력
    후일담 11 ‘낭비’의 잣대로 살펴본 대학과 교육

    12. 료칸이 살아 있는 한
    후일담 12 일본 미학의 한 자락

    13. 북방정책의 승리, 홋카이도 개척
    후일담 13 그는 아이누족이었을까?

    14. 지방 잡지의 왕국
    후일담 14 구레와의 묘한 인연

    15. 재일동포의 양극화 현상과 일본의 심상 구조
    후일담 15 이중 잣대로 본 재일동포 귀화 문제

    16. 일본의 한국 ‘연구’
    후일담 16 일본인의 어학 천착벽과 애호벽

    17. 한 일본인의 인생유전
    후일담 17 회색빛의 무상한 해후

    18. 에로틱한 풍속의 나라
    후일담 18 일본식 섹스 산업의 독보적(?) 성취

    19. 지방자치제와 가짜 전문가
    후일담 19 분업화와 세분화의 미덕

    20. ‘일본 읽기’의 길
    후일담 20 ‘친일파’에게 바람

    제2부 일본이라는 독서 체험

    1. 국수國樹에 대하여
    2. 일본 작가들의 난해한 정직성
    3. 무미無味 예찬
    4. 한반도는 일본의 안방인가
    5. 건강제일주의자의 수선스러움
    6. 우리 출판문화에 대한 단상
    7. 일본 목욕탕의 남녀평등 신조
    8. 벚꽃놀이 중에 잃어버린 가방
    9. 프로야구와 현대소설
    10. 음식자랑에 대하여
    11. 이노우에 야스시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꼬리말

    본문중에서

    외국인의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본인들에게 일은 목숨처럼 각자의 존재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그 일을 빼앗아버리면 당장 무슨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좋게 봐서 이 ‘타고난 일복’에 전심전력하는 1억2000만 명의 일체감이 일본의 진정한 국력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부럽다가도 한편으로 무섭다.
    (/ p.20)

    미리미리 안위安危를 챙기는 풍습이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어 있어서 국부國富는 물론이려니와 개개인의 경제력도 통째로 까발리지는 않는다. 일종의 ‘혼네本音(본심)’, 곧 본색 감추기인 셈이다. 일본 문화의 심층을 풀이하는 키워드로 흔히 이 ‘혼네’를 주목하지만, 본색 감추기 기법에 관한 한 ‘엄살’만큼 효과적인 위장술도 달리 없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유례가 드문 안분지족의 세상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속의 일본인들은 오불관언으로 ‘엄살’을 떨기에 여념이 없다. 내 이웃, 내 친척, 이 사회나 저 먼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내 식으로, 내 실속이나 챙기며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엄살꾸러기로서. 대단히 편리한, 따라서 무책임한 세계관이기도 하다. 덧붙인다면 역사 인식의 착종으로 헛소리를 자주 터뜨리는 일본의 우익 정객들, 그 배후의 국수주의적 우익 단체들의 망동도 실은 이런 ‘자족적 세계’에서 철딱서니 없이 자란 엄살꾸러기의 소행으로 치부해야 마땅하다는 게 내 소견이다. 한마디로 유치한 처세술인데, 엄살을 떨다보면 자기 자신도, 나아가서 세상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무지를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 pp.22~24)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견학하고 나서 나는 일본인의 민족성을 읽어내는 코드 중 하나를 나름대로 잡아챘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것은 섬나라 특유의 ‘타자 배제’ 원칙이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타자를 늘 의식한다. 그러나 그 타자들을 자기네의 의식 속으로, 더불어 관심권 안으로의 범접과 간섭만큼은 한사코 밀막는다. 우리끼리 어떻게든 꾸려갈 테니까 외부 사람들인 너희는 재일조선인 위령비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는 것이다.
    (/ p.43)

    ‘하라키리’라는 할복 의식도 무책임한 ‘정리벽’으로서의 ‘죽음’을 구현하는 행위일 뿐이다. 더욱이나 자신의 신변을 말끔하게 치워놓고 살아가는 그 생활 습벽의 내면화가 무참한 ‘정리벽’을 미화하고, 교사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신변이 온갖 잡동사니로 어질더분해도 ‘저것이 저래 뵈어도 정이 들 대로 든 것인데 당장에 버리기는 아깝지’ 하고 내버려둔다. 일상생활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라서 깔끔하게 정리해봐야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아는, 일종의 ‘건전한 체념’을 기리며, 그냥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체념은 우선 편해서 좋다.) 우리는 그런 자연스러운 생활 감각에 익숙해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생선회가 대변하듯이 일본 음식은 정리벽으로서 자잘한 손길을 덧대서 인공의 미를 창출해내지만, 한국 음식은 비빔밥이나 총각김치가 말하는 대로 가급적이면 자연스러운 ‘원형’인 식재료 자체를 그대로 살려둔다. 두 나라의 이 차이는 크고, 이것이 양국의 문화적 지존이다.
    (/ p.44)

    엽서 크기만 한 김을 한 장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다 쌀밥을 한 숟가락 듬뿍 얹은 다음 큼지막하게 썰어놓은 생선회를 간장에 적셔서 쌀밥을 통째로 덮는 ‘생선회 쌈밥’이라고나 불러야 할 것이었다. 따끈한 밥맛과 찰기 좋은 생선회가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기막힌 음식이었다. 틀림없이 음식 이름도 말해줬을 텐데, 일본 어촌에서는 자주 먹는 전통적인 별식인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소박하나 진심어린 대접을 떠올리면, 먹성 좋은 한국인들이 흔히 잗다랗기 이를 데 없는 일본 음식의 양에 대해 혀를 찰 때(우표 크기만 하게 썰어 내놓는 김이라든지 밑반찬을 눈물만큼 또는 깨알만큼씩 담아낸다면서, 그 손이 작은 데는 아주 질린다고 머리를 휘휘 내두른다), 나는 속으로, 겨우 도회지의 장삿속 밥이나 얻어먹어본 주제라서 뭘 제대로 모르는구나 하고 싸늘하게 비웃는다.
    (/ p.49)

    바삐 살아가는 일본인들의(남자 직장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상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부분 어떤 모임에 스스로를 묶어놓고 있기 때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별의별 모임이 다 있겠으나, 그중 무슨무슨 ‘연구회’가 가장 많은 듯하다. 대단한 향학열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들이 흔히 ‘일본에서의 생활은 대단히 편리한 게 사실이지만 웬만큼 정착했다 싶으면 이내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다’라고 말하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감히 진단해보건대 유형무형의 그런저런 모임·집단·단체 따위가 쉴 새 없이 개개인을 자기 자식처럼 간섭하려들고,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낯간지러울 정도로 추켜세우면서도 뒤에서는 질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그런 ‘모성母性의 사회’에 염증이 나서 ‘갑갑해지고’ 마는 것이다.
    (/ p.75)

    일본 불교가 민간 신앙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그만큼 비리·불합리의 온상과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단가檀家’라는 제도다. 쉽게 말해서 ‘단가’는 절의 불사 때마다 그 비용을 감당할 만한 신도 내지는 그런 집안에 붙여진 호칭이다. 그런데 일본의 ‘단가’는 개인마다/집집마다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주직이 일방적으로 보시 액수를 정해버린다. (...) 뿐만이 아니다. 일본 불교는 작명료라는 제법 짭짤한 부수입을 챙긴다. 소위 ‘계명료戒名料’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법명法名’을 지어준다. 그 일을 관장하는 전매특허권이 주직에게 있다. 이 작명료가 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수백만 엔을 호가한다. 물론 얼마라고 아예 액수를 밝히고 상주에게 요구하는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들지 않을 수 없다.
    (/ pp.84~85)

    내가 보기에는 외국어 발음에 관한 한 일본인들의 이런 ‘체질적 불구성’이 오히려 그들 특유의 외국어 학습열을 강화시키지 않나 싶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무시로 덮치기 때문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국토를 애지중지 가꾸고, 그 천부의 불리한 환경 조건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애착심에 어떤 광적인 ‘국수주의적 지향’이 덧대지는 정황과도 상동한다. (잘난 자식보다 못난 혈육에게 정이 더 쏠리듯이.) 아마도 그런 생래적 열등감은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승화’의 길을 밟는다. 과찬이랄 것도 없이 일본인들은 외국어라면 상당한 경배열과 동시에 콤플렉스를 솔직하니 드러낸다.
    (/ p.138)

    일본인은 그들의 확고한 계층제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파악, 이해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 탁월한 지적을 확대 해석하면 일본은 지금도 그런 시각으로 세계 각국을 1등 국가, 2등 국가로 분류하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팔 수 있는 나라, 자동차를 먹일 수 있는 나라, 아직까지는 컴퓨터에 관한 한 어떤 테크놀로지도 넘겨줄 수 없는 나라를 일본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으며, 이런 편의주의적 세계관은 필경 극도로 조잡한 국가이기주의를 낳고 있을 게 틀림없다.
    (/ pp.213~214)

    그렇다면 일본 특유의 지적 풍토에서 소설쓰기라는 문학 행위 자체를 애초부터 ‘일상의 기록 →반성→자기 갱신(또는 자기완성)’으로 받아들였다는 혐의가 짙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본 소설에는 어느 것이나, 이것은 한낱 소설일 뿐이다라는 자의식과 더불어, 작가들이 소설도 상품이라며 고객에게 나름의 사용가치를 반드시 집어주려는 안간힘이 비친다. 이 점이 한국 소설에는 다소 희박한 것으로 비치는데 일종의 ‘현대성’ 여부로 의미 부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오로지 주목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인 ‘나’뿐이다. ‘남’은 관심 밖이다. 여기서의 남은 ‘사회’나 ‘세계’의 다른 말이다.
    (/ pp.238~239)

    일본은 ‘자화자찬’과 면전에서까지 남을 칭송하는 데 능하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기술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 글이나 말로 공히 능숙하며, 독자/청자는 물론이고 필자/대화자도 서로 무안해하지 않는 체질적 ‘심성’ 일체가 내면화되어 있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칭찬 한 마디에 겨울 세 달이 훈훈하다’는 풍속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본 속담까지 있을까.
    (/ p.279)

    무엇보다도 이노우에 야스시의 글에는 위에서 나름대로 분별한 예의 그 문장/문맥이 술술 읽힌다는 탁월한, 거의 독보적인 그만의 ‘장기’가 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문장/문맥은 소박하다. 거의 꾸밈도 없고, 직유·은유 같은 초보적인 비유조차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어휘도 적극적으로 자제하는 듯하다. 심심하달까 밍밍하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술술 읽힌다. 비유를 끌어다 대면 시루떡을 먹다가 찾게 되는 백김치나 동치미가 자꾸 입맛을 돋우는 형국과 유사하다. 어떤 흥분, 소란, 탄성, 망연 같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서술자의 임무 곧 ‘서사’의 자발적 유로流露에 그의 의식은 물론이려니와 전신의 감각 일체조차 송두리째 맡기고 있다.
    (/ pp.291~293)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번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고,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여러 나라와 생사를 건 전쟁을 몇 번이나 치렀다. 요행히도 사력을 다한 그 전쟁에서 이기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공평하게 말한다면 그 전투/전쟁의 승패마다에서 일본 국민은 비교적 순순히 승복하는 자세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이런 깔끔한 태도가 야구 경기에서는 회마다, 또 어느 경기에서라도 시현될 수밖에 없고, 이런 규칙에의 복종은 일본 국민의 전반적인 준법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이번에 졌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다음 기회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준비를 더 철저히 해두면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번에 이겼다고 해서 좋아라고 날뛰지도 않는다, 교만했다가는 다음 전투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 p.32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7.04.11~
    출생지 경남 진영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1,302권

    1947년생. 소설가. 등단 이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한결같은 걸음을 걸어왔다. 그의 소설 문장은 이제 그 자체로 한국어의 개별 장르이자 계보가 되면서 우리 삶의 세부를 켜고 전망의 허실을 가늠하는 특별한 상징이자 희한한 은유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소설집 [무기질 청년] [장애물 경주] [세 자매 이야기] [아득한 나날] [벌거벗은 마음] [안팎에서 길들이기] [객수산록] 등과, 장편소설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일인극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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