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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원제 : Le developpement: Histoire d une croyance occiden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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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종교,‘발전’

놀랍게도 세계인은 이미 하나의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발전’이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신앙이다. 생산을 늘리고 시장교환체제를 확대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 그것이 지난 60여 년간 세계인을 사로잡은 ‘발전’신앙의 고유한 교리다. ‘발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한 이 책은 먼저 세계인의 종교가 된 ‘발전’신앙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경로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득세와 함께 ‘모두가 풍요를 누리는 발전’신앙의 자리를 위협하는 무한 시장경쟁의 ‘세계화’ 흐름을 짚어낸다. 그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주의에 대항했던 사회주의적 대안들 역시 생산력의 확대를 통한 성장이라는 ‘발전’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발전’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각국이 생산 확대를 통한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애써 부정하는 사이, 이제 ‘발전’ 종주국들에서도 다수가 배제되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발전’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각 사회 내부로 확산되어 나와 너 사이에 ‘발전’과 ‘저발전’의 분리를 낳고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우리의‘발전’이 걸어온 길

이 책을 읽는 묘미 중의 하나는 ‘발전’이 세계인의 신앙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나라의 ‘발전’ 경로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우리의 ‘발전’이 걸어온 길은 이 책이 보여주는 ‘발전’신앙의 족적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산업적으로 더 발전된 국가는 덜 발전된 국가에게 미래의 모습이 되었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사회 발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비서구 사회들은 자신들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기회를 잃고 역사와 문화 모두를 빼앗기는 상황에 이른다. 70년대 이후 우리의 모습을 겹쳐보아도 한치의 다름도 없다. 또한 그리 길지 않은 우리나라의 ‘발전’ 역사를 놓고 우리는 저발전국의 ‘발전’과 발전국의 ‘발전’을 함께 논할 수 있다. 심지어 ‘발전’의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다.

지금은‘발전’신앙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발전’을 멈출 수 없는 산업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발전’할 권리를 주장하는 저발전 국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갈팡질팡하는 국제사회의 ‘발전’ 논쟁을 꼼꼼하게 비판한다. 특히 돋보이는 이 책의 미덕은 ‘발전’신앙을 극복하려는 여러 담론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탈발전’을 추구한다고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며 ‘탈발전’담론을 포함한 여러 시도가 아직 미숙하고 허약하다는 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저자는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만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들에도 귀 기울인다. 프랑수아 페로, 더글리시어스, 그리고 종속학파 들을 소환하여, 그들의 감춰진 목소리,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따져 묻지 못한 목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특히 종속학파의 공과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과 평가가 돋보인다. 저자가 보기에 종속학파를 통해서 비로소 주변부가 세계자본주의체제 안에 들어서게 된 변화들을 역사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현실을 결여한 정치적 해석, 급진
적인 방법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주장한 편협함, 그리고 생태적 고려의 결여 등은 종속학파의 명백한 오류라고 밝히고 있다. 또 미래의 모델이 된 과거의 공동사회, 탄자니아의 자립주의의 사례와 원칙들을 드러내, 그 이론적 실천적인 공과를 묻고 있다.

나의 삶,나의 학문_질베르 리스트

1960년대 중반 나는 ‘발전’, 특히 남반구 국가들의 ‘발전’이 거의 북반구의 근처에 왔다고확신했다. 60년대 초에 유엔은 이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 전망하며 ‘발전10개년 계획(첫 번째 발전10개년 계획이라고도 하지 않았다!)’을 선포했다. 그래서 나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튀니지로 갔는데, 우연히 그곳 대학에서 국제법과 국제제도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다지 제대로 된 ‘발전원조’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발전’ 문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튀니지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비브 부르기바가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사실만 제외하면 상당히 전망이 밝은 국가였고 한창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발견했다. 대다수를 차지했던 프랑스 출신 동료들이 다른 주제는 괜찮지만 수업 중에 튀니지와 튀니지의 헌법을 잘못 언급했다간 바로 체포되어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을 나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한 학생이 튀니지의 유일 정당인 네오데스투르당을 세미나 주제로 정하겠다는 걸 받아들였다가 그 경고가 옳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 중에 소동이 벌어졌고 나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소수였던 튀니지 출신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대부분이 정치적 반대파에 속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은 내 숙소에 반정부 문건들을 숨겨둘 수 있겠냐고 물었다. 만약 발각되더라도 나라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추방될 뿐이었으니까. 그때나는첫 번째 교훈, 즉 ‘발전’과 인권이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두 번째 교훈은 주로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내 튀니지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점이 었다. 그들은 내가 거기 있으므로 해서 자신들이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튀니지를 ‘돕고’ 있거나 적어도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튀니지 지식인들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를 마치고 튀니지를 떠났다. 세계의 ‘피지배’ 지역에 있는 것보다는 ‘지배’ 지역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을 것 같았다. 어떻게보자면, ‘발전된’ 국가와 ‘발전도상’ 국가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세계에는 ‘잘못 발전된’ 국가들만 존재한다는 개념에 기초하여, 나는 제네바에 제3세계-유럽센터라는 작은 기구를 설립했다. 당시는 68년 5월 혁명과 ‘종속학파’의 영향이 컸던 때로 우리는 당연하게 북반구 국가들과 초국적 기업들을 비난했다. 때문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 상태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스위스의 투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저임금 흑인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우리 연구결과가 틀렸으며 자신들이 투자를 통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위스 국적의 기업들(제약회사들과 네슬레)과 심각한 분쟁이 벌어졌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내용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초국적기업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야 늘 쉽지 않지만, 그들이 ‘발전’ 사업에 참여
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는 특히 더 힘들었다.

박사학위를 받고나는 제네바에 소재한 발전학대학원에 합류했다. 그곳에는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 또는 비정부기구들로터 지원을 받아 ‘발전’ 계획들을 다루는 과가 있다. 당시 대학원의 교수진들은 ‘발전’계획을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눠져 있었다. 문제는 대학원 예산의 반을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가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발전’을 비난하는 것은 대학원의 존립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됐다. 80년대 중반에 나는 대학원의 학술지인 Les Cahiersde l’IUED의 편집위원을 맡게 되었다. 하루는 누군가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발전’이라는 개념을 다뤄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그래서 내가 18세기 풍으로 ‘옛날옛날에 발전이 살았어요’라는 제목의 일종의 동화를 쓰게 되었고 이 글이 학술지의 표제작으로 채택되었다. 물론 이 개론에 이어 대학원과 프랑스 학계의 학자들이 쓴 전문적인 논문들이 실렸다. 예의 절차에 따라 이 계획을 대학원장에게 제출하자 그는 이 학술지가 대학원의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며 검열권을 발동하여 출간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결국 책은 출간되었고, 대학원 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우리 소수의 교수들은 해고될 위기에 처했고(그러나 학문의 자유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장이 여러 명의 교수를 한꺼번에 해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곧 화형에 처해질 마녀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내가 동일한 학장에 의해 교학 담당 부학장으로 임명될 때까지 한동안 우리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소책자를 가장 격렬하게 비난했던 새 학장은 결국 내가 정년퇴임할 때 우리가 옳았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북반구의 편의들을 남반구의 ‘발전도상’ 인민들까지 누리게 만드는 의미에서의 ‘발전’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받아들였다.이짧은 글은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노벨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이 언젠가 말했듯이, “유능한 반항자가 되는 것보다 순응자가 되는 것이 쉽다.” 또는 부르디외를 인용하자면, “담론의 숨겨진 진실을 공론화하는 것은 결국 마지막에 일어나야 할 일이기 때문에논란을 빚는다.”

나는 언제나 반항자였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남들보다 앞서 올바른 생각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유럽 전체가 반대 운동에 나섰던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고, 안타깝게도 다는 아니지만 많은 독재정권들이 무너졌으며, 나도 한때 공유했던 ‘발전’에 대한 믿음마저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어려운 시기들을 살아남았다. 나는 작년에 파리 정치학대학원에서 ‘발전비판론’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기존의 주류 이론에 경도된 교육기관들마저도 세계적으로 용인되는 ‘진실’에 명백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수락했다. 세계는 분명 변하고 있고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역성장’을 탄원한다. 또 다시 배제된 소수 집단에 몸을 담게 됐지만 나는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확신한다. 비록 아직은 모두가 함께하기에는 너무 이른 싸움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목차

옮긴이의 글
한국어판 서문 / 4판 서문 / 3판 서문 / 개정판 서문

서론

1장 발전의 정의
전통적인 견헤 / 방법론적 주의사항 / 정의의 요소 /
문제가 많은 정의? / '발전', 근대성이라는 종교의 한 요소

2장 서구 신화의 변형
상징이 암시하는 것 / 서구 역사관의 주요 사건들 / 결론

3장 국가체제 형성
식민지 건설 / 국제연맹과 위임통치체제 / 결론

4장 발전의 발명
트루먼 대통령의 제4정책 / 새로운 세계관 - '저발전' / 미국 헤게모니 /
새로운 패러다임 / '발전'의 시대

5장 국제주의의 교리와 제도가 뿌리를 내리다
반둥회의 / 새로운 국제 '발전' 기구들

6장 근대화, 역사와 예언 사이
역사철학 - 로스토의 경제성장 단계론 / 반공주의인가, 마르크스 없는
마르크스주의인가? / 다른 목소리들

7장 주변부의 역사 인식
미국의 신마르크스주의 / 라틴아메리카의 종속학파 /
새로운 패러다임, 그러나 낡은 전제들

8장 자립주의 - 미래의 모델이 된 과거의 공동사회
우자마와 탄자니아 사례 / 자립주의 원칙들 / 자립주의의 미래

9장 제3세계주의의 승리
신국제경제질서 / 독자적 목소리 - 다른 발전에 관한 1975년
다그 함마르셀드 재단 보고서 / 신국제경제질서의 결과 - 추가적인 제안들 /
'기본적 욕구' 접근방식 / 결론

10장 환경 또는 '발전'의 새로운 본질
고전경제학자의 귀환과 인도주의이론 / '지속가능한 발전' 아리면
영구 성장? / 지구정상회의 / 고의적인 모호함에 대한 평가

11장 현실주의와 순수한 감상주의의 접목
남반구위원회 / 유엔개발계획과 '인간적 발전'

12장 '발전'의 시뮬라크르, 세계화
동문서답의 유용성에 관하여 / 세계화, '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
여전한 신앙의 피난처, 가상현실

13장 빈곤과의 투쟁에서부터 새천년발전목표까지
무엇이 문제라고? /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 전면 개입 /
새천년목표 - 갈가리 찢긴 '발전' / '발전원조' - 수치 손보기 / 결론

14장 거대한 반전?
사라진 발전 / 또 다른 모델? / 빈곤은 진정 감소했는가? /
생태, 위기의 희생물 / 결론

15장 발전을 넘어
역성장에서 경제학 패러다임의 전환까지
성장 반대자와 '발전 맹신자' / 경제 '과학' - 낡은 패러다임 / 결론

결론
사실들 / '탈발전' / 경제학 패러다임의 고갈 - 믿기 아니면 알기?

해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나의 삶, 나의 학문 - 질베르 리스트

1960년대 중반 나는 ‘발전’, 특히 남반구 국가들의 ‘발전’이 거의 북반구의 근처에 왔다고 확신했다. 60년대 초에 유엔은 이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 전망하며 ‘발전10개년 계획(첫 번째 발전10개년 계획이라고도 하지 않았다!)’을 선포했다. 그래서 나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튀니지로 갔는데, 우연히 그곳 대학에서 국제법과 국제제도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다지 제대로 된 ‘발전원조’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발전’ 문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튀니지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비브 부르기바가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사실만 제외하면 상당히 전망이 밝은 국가였고 한창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발견했다. 대다수를 차지했던 프랑스 출신 동료들이 다른 주제는 괜찮지만 수업 중에 튀니지와 튀니지의 헌법을 잘못 언급했다간 바로 체포되어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을 나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한 학생이 튀니지의 유일 정당인 네오데스투르당을 세미나 주제로 정하겠다는 걸 받아들였다가 그 경고가 옳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 중에 소동이 벌어졌고 나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소수였던 튀니지 출신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대부분이 정치적 반대파에 속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은 내 숙소에 반정부 문건들을 숨겨둘 수 있겠냐고 물었다. 만약 발각되더라도 나라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추방될 뿐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첫 번째 교훈, 즉 ‘발전’과 인권이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두 번째 교훈은 주로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내 튀니지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내가 거기 있으므로 해서 자신들이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튀니지를 ‘돕고’ 있거나 적어도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튀니지 지식인들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를 마치고 튀니지를 떠났다. 세계의 ‘피지배’ 지역에 있는 것보다는 ‘지배’ 지역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발전된’ 국가와 ‘발전도상’ 국가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자면 세계에는 ‘잘못 발전된’ 국가들만 존재한다는 개념에 기초하여 제네바에 제3세계-유럽센터라는 작은 기구를 설립했다. 당시는 68년 5월 혁명과 ‘종속학파’의 영향이 컸던 때로 우리는 당연하게 북반구 국가들과 초국적기업들을 비난했다. 때문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 상태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스위스의 투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저임금 흑인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우리 연구결과가 틀렸으며 자신들이 투자를 통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위스 국적의 기업들(제약회사들과 네슬레)과 심각한 분쟁이 벌어졌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내용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초국적기업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야 늘 쉽지 않지만, 그들이 ‘발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는 특히 더 힘들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는 제네바에 소재한 발전학대학원에 합류했다. 그곳에는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 또는 비정부기구들로터 지원을 받아 ‘발전’ 계획들을 다루는 과가 있다. 당시 대학원의 교수진들은 ‘발전’계획을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눠져 있었다. 문제는 대학원 예산의 반을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가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발전’을 비난하는 것은 대학원의 존립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됐다. 80년대 중반에 나는 대학원의 학술지인 Les Cahiers de l‘IUED의 편집위원을 맡게 되었다. 하루는 누군가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발전’이라는 개념을 다뤄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그래서 내가 18세기 풍으로 ‘옛날옛날에 발전이 살았어요’라는 제목의 일종의 동화를 쓰게 되었고 이 글이 학술지의 표제작으로 채택되었다. 물론 이 개론에 이어 대학원과 프랑스 학계의 학자들이 쓴 전문적인 논문들이 실렸다. 예의 절차에 따라 이 계획을 대학원장에게 제출하자 그는 이 학술지가 대학원의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며 검열권을 발동하여 출간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결국 책은 출간되었고, 대학원 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질베르 리스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발전학대학원의 명예교수다. 튀니지의 튀니스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제3세계센터 연구소장을 지냈으며 국제연합대학 프로젝트의 선임 연구원으로도 일했다. 국제발전대학원의 전신인 발전학대학원에 합류하여 국제문화학과 사회인류학을 강의했다. 현대 서구 사회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새로운 인식의 길을 여는 여러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그것도 한때는 발전이었다(Il etait une fois le developpement)] (공저, 1986),[잃어버린 북반구: 발전 이후의 목표(Le Nord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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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즐겁고 온전한 세계를 꿈꾸는 전문번역가. 대학에서 미학을 배우고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혁명하는 여자들], [사소한 정의],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버블 차이나], [덫에 걸린 유럽], [침묵을 위한 시간],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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