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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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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시백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13년 03월 26일
  • 쪽수 : 29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84316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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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어째 없는 것들만 똘똘 뭉치느냔 말이여?”
    국가권력에 맞서 통쾌한 일침을 가하는
    짜릿하고도 통렬한 풍자 소설

    청계천변의 벼룩 같은 인생들, 부당한 세상에 통쾌한 풍자를 날리다


    능청스런 해학과 맛깔 나는 사투리를 구사하며 ‘제2의 이문구’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 이시백이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나는 꽃 도둑이다]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현재 서울 한복판 청계천을 배경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을 비춘다. 작가는 청계천 장바닥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생존’만을 목표로 무작정 앞만 보고 서로에게 등을 떠밀려 가는 약육강식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나는 꽃 도둑이다]는 개발과 욕망에 취한 대한민국에서 그저 먹고살자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천변 사람들의 삶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청계천을 덮었다 엎었다 하는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휘말리며 “덮개를 씌우든, 벗겨내든 언제나 쫓기고 몰리는” 없는 인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는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온 불법 노동자와 탈북자,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들, 멀쩡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두루 살피며 우리들의 삶의 풍경을 완성해간다.
    한 장소(경찰서)에서 천변 명판이 없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도둑을 찾는 과정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그리는 [나는 꽃 도둑이다]는 4대강, 광우병, 촛불 시위, G20, FTA, 청계천 복원 등 현실 사회를 성실히 풍자하면서 걸쭉한 입담을 뽐내는 생기발랄한 소설이다. 수시로 터지는 웃음과 동시에, 작가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의 두 얼굴을 마주하다

    [나는 꽃 도둑이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에 몰두한다. 그 속에서 작가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를 착취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을 포착한다. 김치 공장 공장장인 명식은 도시락을 싸고 다니겠으니 식대를 달라고 공장에 요구했다가, 오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사장의 대꾸에 풀이 죽는다. ‘먹도날드 분식’을 하고 있는 명식의 아내는 그런 김치 공장 사장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다가도 자신이 부리는 종업원 영식 엄마에게는 너나없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며 윽박지른다. 서울광장에서 외쳐대는 시위대의 외침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자들의 논리 그대로 약자의 입을 통해 왜곡되는 현실의 반영이다.

    “배지를 쫄쫄 굶겨야 혀. 시방 나라 경제가 워찌 돌아간다는 소리도 듣지 못혔나. 애덜 돌반지꺼정 빼다가 나라 살린 지가 월매나 되었다고 파업이여? 가뜩이나 불경기에 영업허는 사람들은 밤잠을 제대루 못 자가며 고심허는디, 다달이 따박따박 봉급에 밥값에 차 몰구 댕기는 지름값꺼정 챙겨 받구, 때마다 보너스루 떡값꺼정 타먹으면서 뭘 워쩌라구 심심허믄 빨갱이덜츠럼 대가리에 뻘건 띠를 두르구 거리루 나서냔 말이여.”
    (/ pp.31~32)

    환경미화원 보조로 일하는 심씨는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삶이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는 밑바닥을 벗어나기 힘들다. 벼룩시장 골목에서 좌판을 벌이고 헌 옷 장사를 하던 그에게 청계천 복원 공사는 날벼락이었다. 당장 끼니를 이을 방도가 막막하던 차에 ‘만물상회’ 황 회장의 소개로 그나마 일당 5만 원의 환경미화원 보조로 청계천 청소를 맡게 된 것이다. 그에게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세상의 잣대는 화를 치밀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계급사회 안에서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회의 시선이 심씨를 숨 막히게 한다.

    그로 말하자면 부모 잘못 만나, 남들이 놀이 삼아 다닌다는 대학도 못 가고, 등 기대고 일어설 밑천이 없어 변변한 장사조차 벌이지 못했고, 자기 집 가진 이들이 남는 돈으로 우르르 몰려가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걸 세를 주어 분당에 아파트를 사들이고, 분당이 오르면 다시 세를 주어 수지에 사고, 그렇게 앉아서 눈덩이 굴리듯 돈을 불리지 못한 죄밖에 없었다. 그것도 잘못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해서 지질하게 산다는 말만은 차마 앉아서 들을 수가 없었다.
    (/ p.89)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윤리의 부재는 자신의 친구인 딸 경순이를 키쓰방에서 마주치고도 서비스를 받는 이발사 재록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 하나 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는 세상에서, 앞장 서 세상을 바꾸려고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자 하는 이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그런 민중은 더 이상 똘똘 뭉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정신으로 파출소에서 풀려난 청심회 계원들은 하루하루 살아내기 힘든 일상 속으로 순식간에 파묻힌다.
    졸졸졸 흐르는 개천에 발을 담그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과 눈으로 보는 ‘태평성세’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결말에 이르러, 작가는 뭉칠 줄 모르는 민중들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꼬집는다.

    생동하는 언어로 부당한 권력을 눙치는 이시백의 소설 세계


    “여그서 채이구 저그서 쫓겨난 것들이 꾸정물처럼 떠내려와 살던 청계천에 본토가 워디 있구, 펼쳐놓을 족보가 워디 있간디? 애견 센터 갱아지 족보라믄 모를까.”(/ p.208)

    “애국허지 말그래이. 백성 알기럴 갈빗집 빼박이쯤으로 아는 나라에 미쳤다꼬 충성허고 애국헐 끼가.”
    (/ p.245)

    이시백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한 특징은 ‘구술성’이다. 사멸해가는 토종 언어는 그가 그리는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하여 세계를 세밀하게 재구성한다. 이 책에서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런 구술성은 힘없는 민중들이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이시백 작가 특유의 구술성은 “민중의 생생한 생활 감각뿐 아니라 이것에 바탕을 둔 세계 인식을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요소(p.285)"로 하나의 작품 세계를 훌륭히 구축한다.

    작가의 구술성은 국가의 제도적 권력의 틈새에 균열을 냄으로써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조소가 동반된 비판적 풍자의 길을 낸다. 국가 권력의 강제성을 통해 민중의 일상을 감시하고자 한 진술서가 오히려 민중의 일상의 감각을 떠받치는 구술성에 의해 통렬히 비판을 받는 이야기로 전도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당한 국가 권력이 민중의 구술성의 신명으로 전복되는 통쾌함에 짜릿함을 맛본다.(/ pp.285~286)

    [나는 꽃 도둑이다]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민중들은 여전히 속을 수밖에 없는 뼈아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능청스럽게 유머를 구사한다. 가장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웃음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힘이라는 것을 충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요 내용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친목계인 ‘청심회’.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강 형사로 인해 줄줄이 경찰서로 불려온다. 명목상 이들의 죄는 ‘공유수면에 평화롭게 떠도는 잉어를 잡아먹은 죄’. 청심회 계원들이 복날이라고 청계천에 모여 잉어 매운탕을 끓여 먹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그 속은 지난 월요일, 청계천 공사를 마치고 황학교 부근에 완공 기념으로 박아 놓은 전 시장이자 현 대통령의 명판이 사라졌고, 얼마 뒤 있을 청계천 행사에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 범인을 색출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영문도 모른 채 청심회 일원들은 각자 자신이 지난 월요일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김치공장 공장장 김씨, 에덴 미용실 송씨, 황학동 만물상회 황 회장, 환경미화원 보조 심씨, 탈북자 양경일, 시위 현장에서 초를 파는 임씨, 야바위 킴 김노천, ‘특수 임무’ 박금남, 꽃 파는 안 목사 내외 등의 진술을 토대로 청계천변에서 몸 붙이고 사는 이들의 인생사가 펼쳐지는데…….

    추천사

    이시백이라는 예외적인 작가를 과시하는 작품일 뿐 아니라 한국문학사의 여러 좌표가 겹치는 수작이다. 이문구의 공백이 한 언어의 사멸처럼 충격이었을 때 그가 홀연 나타나 그리움과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구어의 세계로 한껏 열린 한국어의 생동, 삶 가운데에서 거둔 토종들의 능청과 익살, 뻔뻔함과 부잡스러움이 영락없고, 더하여 시간에도 깎이지 않을 시대의 설움을 기록하는 데도 물러섬이 없다. 근대문학의 1번지로 매몰된 청계천변을 그는 우리 시대의 엄연한 풍경으로 세워놓고 통쾌한 풍자를 날리고 있다. 이명박 시대를 논할 때 우리는 이시백의 [나는 꽃 도둑이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전성태 / 소설가

    잠시, 하찮고 지리멸렬하되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상에서, 소탈하면서 질박하고 그러면서 맛깔나고 푸짐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뭔가 뾰족한 대책은 쥐뿔도 없는 채 이러쿵저러쿵하는 제 흥에 못 이겨, 그 잘나고 질펀한 개똥철학을 실컷 주억거리고 싶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작가 이시백의 소설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는 꽃 도둑이다]는 우리에게 음울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삶의 상식적인 물음을 던진다. 작가 이시백의 민중 서사를 지탱하는 구술성이 민중의 아름다운 가치로 충만한 태평성세의 미래를 담아낼 날을 기대해본다.
    - 고명철 / 문학평론가

    목차

    자진 납세
    먹고살자
    청계천 잉어
    애국 어버이 로맨스
    작은집 돼지
    돈, 돈, 돈
    특별 서비스
    촛불 있어요!
    인생은 야바위판
    애국과 매국 사이
    꽃 도둑
    저희를 용서하소서
    갈등 해결 연구소
    따뜻한 밥상

    해설- 민중의 윤리 부재와 마주하는 자기 풍자(고명철)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평생 땅 파는 일로 성공했다는 이가 사장으로 나서더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청계천을 뒤엎고 꽃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심씨는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촌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모려와 구경을 하고, 주말이면 젊은것들이 손에 커피 통을 하나씩 들고 물가에 앉아 노닥거리는 풍경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흐르는 맑은 물에 발모가지 담글 줄만 알지, 그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한강 물을 거꾸로 끌어 올리는 데 드는 전기료가 하루에 얼마인지, 과연 그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새어나가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걸 청계천을 헐어낸 시장이 자기 돈으로 내겠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라면 길길이 날뛸 것이나 눈앞에서 헤엄치며 노는 고기 떼와 꽃나무에 눈이 먼 표가 제게 쏟아지기만 한다면 달나라의 토끼도 붙들어 올 인간이었다.
    (/ p.69)

    “타구난 팔자가 그런 걸 어쩌우? 다 제 팔자소관이지.”
    팔자라는 말에 심씨는 제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싶었다. 없는 집에 태어난 것이야 팔자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평생을 지질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팔자가 아니라 원수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입 바른 것들은 가난도 다 저 노력하기 나름이라고 주절거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말굽에 박힌 편자처럼 굳은 못이 박힌 제 손바닥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손수레도 끌어보고, 고물 장사에 막노동판이며 청소부 노릇까지 잠시도 쉼이 없던 손이었다. 그런 손이 성실하지 못하고 노력이 부족하여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차라리 손모가지를 제 손으로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 p.86)

    어디를 가나 돈이 없으면 사람값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앞에서는 사상이고 인민이고 소용없었다. 자유니 민주니 떠드는 것들도 막상 돈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돈이란 세상의 어느 것보다 악랄하고 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경일은 당장 그 돈에 목을 맨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 20만 원을 마련해야 했다.
    (/ p.110)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는 머니가 제일이었다. 부자들이 어떻다고 욕하는 인간들도 막상 자기가 부자가 되면 입장이 달라진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게 없다 하여 부자를 미워하지 않았다. 욕할 시간에 한 푼이라도 벌어 부자가 되면 될 일이었다. 땅 투기를 하든, 사채놀이를 하든 그것도 능력이고 노력이었다. 그는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없다고 설움을 겪을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부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 pp.145~146)

    “옛부터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악세사리루 전해 내려오는 게 아니란 말이시. 자라나는 애기덜헌티 환경이 을매나 중요한 것인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왔지만 이제는 강남에서 나온다는 말은 암만 귀가 어둡다 혀두 한 번쯤 들어봤을 테고. 그랴서 워츠게든 강남 팔학군으루 입성허려구 모다 눈 까뒤집구 뎀벼든다 이 말씸이야. 개천에서 용이 나와? 지랄, 암만 파봐라 지렁이만 나올 테니.”
    (/ p.165)

    이제와 생각하면 야바위야말로 관 것들을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작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화투짝을 놀려 꾸깃거리는 지폐 몇 장 훑어내는 것에 비할까. 분칠을 하고 신문이며 방송에 얼굴 내밀고는, 말끝마다 내놓는 얘기가 국가고 민족뿐인 것들 치고 애국 애족하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쇠스랑 들고 나가 싸운 것은 개털들이었고, 있는 것들은 뒤에서 열심히 싸우지 않는다고 발만 탕탕 굴러대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차피 야바위판이었다. 힘센 놈이 약한 놈 잡아먹고, 있는 놈이 없는 놈 놀려먹고, 높은 놈이 낮은 놈 부려먹는 게 이치였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래도 아무리 화투 한 장으로 ‘쇼부’를 보는 야바위판이라도 돌다 보면, 개평 얻은 놈이 준 놈을 이기는 경우도 있는 법인데, 어떻게 이놈의 나라는 평생을 그 모양 그 꼴로 살아야 하니, 야바위판 치고는 낙장불입, 삼세판도 아닌 단판 내기가 영락없었다.
    (/ pp.173~174)

    꽃이라고 해봐야 불그레한 것이 몇 개 들러붙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소박했다. 가죽을 벗겨놓은 것처럼 매끈거리는 알몸만 남은 나무줄기도 빈약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나무가 피워낸 볼품없는 꽃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골목 안이 꽃 몇 송이로 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안 목사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그 꽃들로 골목의 풍경은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저마다 한푼이라도 속이거나 깎느라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그 나무가 소리도 없이 꽃송이를 터뜨리는 순간, 일제히 소란을 멈추고 탄성을 지르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시멘트 덩어리뿐인 도심에 그동안 어디에서 몸을 숨기고 살아왔을지 모르는 벌들이 밥풀 같은 꽃송이마다 들러붙어 열심히 꿀을 빨며 잉잉거리는 소리도 생생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 꽃들이 세상을 고요한 평화와 정적으로 데려갔다.
    (/ p.219)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여주
    출간도서 14종
    판매수 3,308권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던 증조부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던 아버지의 역사적 사명을 타고 여주의 주막거리 길갓집에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보려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소설을 공부했으나 대체로 흐린 주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엉겁결에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이란 걸 했다.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광대울에서 주경은 조금 시늉을 내나 야독은 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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