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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 인문의학자가 들려주는 생로병사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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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강신익
  • 출판사 : 페이퍼로드
  • 발행 : 2013년 03월 20일
  • 쪽수 : 28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292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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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유전자는 낱말, 단백질은 문장, 인생은 대하소설
    우리 몸으로 다시 쓰는 과학의 역사!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유전자의 눈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겪는 생로병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로 유명해진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그릇인 사람을 조종해 이득을 취하지만, 불량 유전자는 어떤 이익이나 목적도 없이 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목적 중심의 개념이며, 불량 유전자는 결과 중심의 개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지 유전자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생로병사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몸이다. 그 몸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여전히 과학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의 언어를 다시 인문학에 비추어본다. 저자는 이런 방법을 ‘인문의학’이라 칭한다.

    이 책은 이제 막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짤막한 에세이 형식의 글 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과학 용어나 딱딱한 도표를 배제하고, 고정된 이론 대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채워 넣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하기의 재미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과학’과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의학이란?”
    생로병사의 경험적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해하려는 생명 이해의 방법. 저자 강신익 교수는 국내 최초의 인문의학자로 2004년부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동시에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의료계에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은 여러 의과대학에 인문의학 또는 의료인문학 교실이 생기고 있다.

    현대의 예언서 DNA,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20세기는 유전자의 세기였다. 이중나선으로 꼬인 DNA 분자의 구조가 알려지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드디어 인간의 DNA 구조 전체가 밝혀졌다. 리처드 도킨스는 DNA 분자로 구성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기적 유전자]를 써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도킨스가 유전자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유전자가 정말로 이기적 목적에 따라 행동해서가 아니다. 그 결과가 사람에게는 이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눈으로 생명을 보려고 했지만,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인간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엄청난 비판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암묵적으로 그런 쪽으로 잡아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이기적인 행동으로 득을 보면서도 도덕적으로는 면죄부를 받고 싶은 현대인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성공은 과학을 넘어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도킨스는 생명의 행동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함으로써 협동과 상호부조와 같은 상위 수준의 사회현상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왜 실패했을까?

    1990년에 시작된 인간유전체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의 책임자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이었다. 그는 사업이 끝나면 우리가 주머니에서 CD 한 장을 꺼내면서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사업이 끝났을 때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유전형질의 최종 발현자인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의 서열은 전체의 1.1퍼센트에 불과했고, 염기의 95퍼센트는 아무런 기능도 밝혀지지 않은 이른바 ‘쓰레기’ DNA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전자가 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사업의 결론이 ‘나는 유전자 이상의 존재다’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DNA 염기 서열의 95퍼센트를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게놈 프로젝트의 실패 속에서 생명과학의 신비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95퍼센트에 해당하는 염기 서열 안에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온 기나긴 생명의 이력이 담겨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전체는 생명의 설계도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책에 가깝다.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의 종을 디자인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곧 유전자’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 현대인,
    자연의학의 독주를 막는 것이 해법!


    세상과 자연을 안다는 것은 차갑게 추상화한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검증된 결과를 나열하기보다, 새로운 가설들과 그 가설을 세운 사람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을 다룬다. 세균이 발견되기 전에 직관적으로 ‘손 씻기’를 통해 산모의 사망률을 낮춘 제멜바이스는 주류 의학계에 외면당한 채 평생을 고독하게 싸웠다. 사회의학의 아버지 루돌프 피르코는 "독일 실레지아 지방의 발진 티푸스 창궐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사회 전체의 민주적 교육과 자유’라는 파격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저자는 자연의학, 인문의학, 사회의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을 때, 우리 몸의 고통과 질병에 대한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콜레라나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앓지 않는다.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운 슈퍼박테리아가 우리를 위협하는가 하면, 과도한 열량에 비해 섭취량이 낮은 비타민을 인위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들어 ‘현대인은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과학이고, 인문학이며, 사회학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의학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과학 역시도 생생한 삶과 유리되어 표정을 잃고 말았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에서는 우리 몸과 삶의 여정을 통해 과학과 의학, 인문학의 긴밀한 관계를 복원해 나간다.

    목차

    프롤로그 만물이 널리 통하는 생로병사 이야기

    제1부|태어남과 늙어감
    1│정자 속에 작은 인간이 있다?
    2│생명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3│출산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4│남성이 출산을 주도하다
    5│청춘은 정력이다?
    6│살기 위해 죽는 생명

    제2부|질병과 고통
    7│원초적 본능, 후각을 복원하라
    8│작은 의사, 보통 의사, 큰 의사
    9│콜레라균 한잔하실래요?
    10│세균과 인간의 전면전
    11│안 아픈 파커 씨의 발치 대행진
    12│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하는 고통

    제3부|뇌와 마음
    1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14│나의 운명은 두개골에 달려 있다?
    15│심장을 바꾸면 사람이 달라진다?
    16│내 머리 속에 있는 거울
    17│구라마이신, 믿으면 낫는다
    18│마음의 병을 몸으로 앓는 사람들
    19│환상통의 근원을 찾아서
    20│보이지 않는 손들은 악수를 한다

    제4부|유전과 진화
    21│피는 유전자보다 진하다
    22│쓰레기 DNA에서 찾은 열쇠
    23│이 아이가 게이일까요?
    24│진보와 보수의 심리학
    25│세포들의 내밀한 사회생활
    26│불멸의 세포를 가진 여인
    27│암컷과 수컷의 사랑 이야기
    28│병자생존, 아파야 산다

    제5부|몸과 사회
    29│역사가 만든 질병, 역사를 바꾼 질병
    30│풍요와 불평등을 앓는 사람들
    31│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32│죽음을 처방해 드립니다
    33│영생을 향한 21세기의 피라미드
    34│죽음,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에필로그 생로병사의 과학, 재미와 의미를 찾는 여정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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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중에서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이런 종류의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18세기 기센 대학의 데이비드 크리스티아누스David Christianus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제시한다.
    “검은 암탉이 낳은 달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흰자를 콩 크기만큼 제거한 다음 그 부위를 사람의 정자로 채우고 처녀막으로 밀봉한다. 이것을 음력 3월 1일에 동물의 거름 속에 묻어두면 30일 후에 작은 사람이 생기는데, 이 작은 사람은 주인을 보호하고 도와준다.”
    해부학과 생리학이 충분히 발달해서 생식기관의 구조와 기능이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정자와 난자의 존재도 의심의 여지가 없던 18세기에, 그것도 대학에서 이런 처방이 나올 수 있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 p.22)

    둘째는 이 시기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근대국가의 성립기라는 점이다. (……) 당시의 도시는 일거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로 초만원이었고 혼외 관계로 임신한 빈민층 여성도 많았다. 국가는 모성전문병원lying-in hospital, 지금의 산부인과 병원을 세워 이들의 출산을 돕고 태어난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 될 때에는 아이를 시설에 보내 키우고 기술을 가르쳤다. 이렇게 모성전문병원은 자선사업과 동시에 노동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시설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거의 다 남성이었고, 여성의 고유한 삶의 경험인 출산은 사회적 장치에 의해 왜곡되고 규격화되었다. 이들 병원의 사망률이 끔찍하게 높았던 것도 출산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닌 생물학적 사건으로 보았던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출산 과정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오히려 아기와 산모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의사는 거의 없었다.
    (/ p.41)

    세균병인설에 반대한 사람 중에는 당시 의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피르코와 위생학의 선구자였던 페텐코퍼Max Josef von Pettenkofer도 있었다. 피르코는 결국 세균병인설을 받아들였지만, 페텐코퍼는 목숨을 걸고 그 이론에 맞서 싸운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1892년 당시 74세였던 그는 코흐의 실험실에 콜레라균이 가득 담긴 배양액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콜레라에 걸리면 세균병인설을 인정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 배양액을 몽땅 마셔버렸다고 한다. 그는 설사를 했고 대변에서 다량의 콜레라균이 검출되었지만 심각하게 앓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코흐의 세균병인설은 반증된 것일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페텐코퍼의 바람과는 달리 세균병인설은 진리로 굳어졌고 우울증에 빠진 81세의 페텐코퍼는 1901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역사는 이런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전하거나 그냥 무시하고 만다. 하지만 이이야기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의 배후에 수많은 논쟁과 갈등이 숨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그중에는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으려는 인간적 욕심도 있고,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차원에서 범죄가 개인의 책임인지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인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차이도 있으며, 과학자 사회가 인정하는 객관적 연구 방법의 영향도 있다.
    (/ pp.86~87)

    국소 감염설로 무장한 내과의사가 이러한 치과 치료의 관행을 공격했다. 영국의 윌리엄 헌터William Hunter가 선봉에 섰다. 그는 비싼 재료로 잘못 만들어진 보철물이 국소 감염의 온상이며 이것이 빈혈, 위염, 장염, 우울증 등 모든 종류의 정신 질환, 만성류머티즘, 신장 질환 등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이후 치과계에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치아는 모두 뽑아내는 발치의 열풍이 분다.
    그리고 이 이론을 가장 극단적으로 수용한 사람이 뉴저지 주립 정신병원의 헨리코튼Henry Cotton이었다. 그는 정신의학을 정신분석과 같은 불확실한 이론에서 탈피시켜 과학의 탄탄한 토대 위에 올려놓기를 원했다. 당시의 첨단 과학이던 세균학이 그의 야망에 불을 붙였다. 세균 감염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가 환상을 보는 등의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이후 코튼은 정신 질환자의 입 속을 뒤져 썩은 치아와 잘못된 보철물을 찾아내 뽑는 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호전이 되지 않으면 편도를 잘라냈고 나중에는 고환, 난소, 담낭, 위, 췌장. 자궁경부, 대장 등 국소 감염이 의심되는 거의 모든 장기를 들어내는 수술을 감행했다.
    (/ pp.90~91)

    파커는 한 장소에서 12명의 환자에게서 33개의 이를 뽑았는데, 일곱 번째 환자부터는 약이 떨어져 마취를 하지 못했는데도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하루에 무려 357개의 이를 뽑은 적도 있었는데, 그것들로 목걸이를 만들어 자랑스레 걸고 다녔다고 한다. (……)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로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까?
    파커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얼버무렸고, 지금까지의 정설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신음이 요란한 나팔 소리와 정신을 홀리는 현란한 말솜씨에 묻혀버렸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의학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사례들과 플라세보placebo에 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면 이들이 정말로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 pp.99~101)

    다음은 1991년 6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다

    캘리포니아에는 모든 안과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정신적 충격으로 맹인이 된 독립적 사례가 200여 건이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캄보디아에서 피난 온 난민 여성들이었는데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 고문을 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강제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앞을 볼 수 없을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울었다’와 ‘앞을 볼 수 없다’ 사이에 생물학적 인과관계는 없다. 의미의 연관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며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들에게 ‘울음’과 ‘봄’ 사이에는 깊은 의미의 연관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봄’으로써 야기된 슬픔, 울분, 공포의 ‘울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고통-죽음을 바라봄과 슬픔-울분-공포의 울음이 쌍으로 엮인다. 그들의 무의식은 ‘봄’과 ‘울음’ 사이의 연결을 끊으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그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지 않을 수 없게 강제된 상황이므로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기제를 작동시켰을 것이다.
    나는 이 사례에 대해 의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궁금해서 당시의 학술 자료들을 뒤져보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한 의학 논문을 단 한 편 밖에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유일한 논문 속에도 납득할 만한 설명은 없었다. 아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내면의 힘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p.151)

    그래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소득과 평균수명 간의 상관관계지만, 그렇게 일반화된 상관관계의 추세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살펴보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전체 추세보다 아래쪽에 있는 나라들은 소득의 증가가 평균수명의 증가에 잘 반영되지 않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눈에 띈다. 러시아도 소득에 비하면 평균수명이 무척 짧은 나라다. 그리고 인상적인 곳은 미국인데, 이 나라는 충분히 부유하고 충분히 오래 살지만 잘(부유하게)사는 만큼 아주 오래 살지는 못한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소득의 격차가 크고 상호 신뢰의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오랜 인종차별 정책의 여파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고, 러시아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도입된 자본주의의 충격에 아직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듬뿍 받았지만 이제 그 체제의 모순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돈을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한다. 그 결과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나뉘고 사회적 유대와 일체감이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심리·사회적 상태가 질병과 범죄의 토양이 된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영양과 위생이 아닌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다.
    (/ p.242)

    21세기의 미라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아닌 차디찬 액체 질소로 둘러싸인 냉동 캡슐 속에 있게 된다. 현재 100여 명의 환자 또는 시신이 이렇게 미라가 되어 새 생명을 얻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실정법은 그곳을 묘지로 규정하지만 냉동 인간을 만드는 의사들은 그곳을 병원으로 여기며, 그 속에 냉동되어 있는 사람들을 깊이 잠든 ‘환자’라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 죽음은 무한히 연기할 수 있는 삶의 사건이다. 이처럼 죽음은 과학이 동원할 수 있는 생명 유지 수단에 따라 달리 정의된다.
    냉동 인간은 미래의 기술이 냉동된 인간을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근거로 존재한다. 그런 기대를 가진 부자들은 우리 노인들이 죽음을 대비해 상조회에 가입하듯이 상당한 비용을 들여 시체 냉동 보존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와 계약을 한다. 이들이 냉동인간이 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의학적으로 사망이 선고되기 직전 환자의 몸에 부착되어 있는 경보기가 작동한다.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냉동 보존 전문팀이 출동한다. 사망이 선고되면 시신을 얼음으로 된 통에 넣고 심폐 소생 장치를 사용해 호흡과 혈액순환 기능을 복구시킨다. 시신의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분리하여 심장과 혈관에 있는 모든 피를 뽑아낸 다음 냉동 이후에도 세포에 손상을 일으키지 않는 특수 액체를 주입한다. 이후 영하 196도로 급속 냉각되어 질소 탱크에 보존된다.
    (/ pp.262~264)

    저자소개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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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전형적인 농촌에서 도시로 변해가는 삶의 터전을 온몸으로 느끼고 살았다.
    치과 대학을 졸업하고 15년간 치과 의사로 일했다. 마흔이 되던 해에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머물면서 의학과 관련된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0년부터 일산백병원 치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의료인문학을 가르쳤고, 2004년부터는 환자 진료에서 손을 떼고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전임 교수가 되었다. 추상적 지식보다는 일상적 삶에 봉사하는 의학을 지향한다.
    2007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으로 인문의학연구소를 개설해 "건강한 삶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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