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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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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재투성이’ ‘라푼첼’ ‘가시장미 공주’ ‘영리한 엘제’까지,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으로
    그림 동화의 불온한 상상력을 해부한다!

    ‘재투성이’에서 ‘라푼첼’까지 심층심리학으로 밝히는 내적 성장의 비밀
    그림 동화에 관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


    ‘재투성이’는 왜 왕자를 만나러 무도회에 갔으면서 세 번이나 그에게서 도망치는 걸까? 재투성이를 학대하는 못된 계모와 ‘라푼첼’을 탑에 가둔 무서운 마녀가 실은 둘 다 친어머니라면? ‘빨간 모자’와 ‘백설공주’가 심리 상담을 받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는 불안과 금기와 구원의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 동화(Grimms M?rchen)야말로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근원적인 심리 문제에 관한 경이로운 성찰의 기록임을 보여준다.

    심층심리학적 동화 읽기의 대가인 오이겐 드레버만은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들을 수집해 엮은 ‘그림 동화’에서 우리의 삶과 성격을 결정짓는 정신의 원형적 체험을 발견한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로서 굴욕의 잿더미 속에 살면서도 결코 긍지를 잃지 않는 재투성이, 나르시시스트 아버지로 인해 가시울타리에 갇혀 스스로 성장을 멈춘 가시장미 공주, 어머니를 마녀로 바꾼 라푼첼의 가족 로맨스, 자식의 삶을 조종하려는 아버지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영리한’ 엘제까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부정적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 절망에서 자유로 도약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상담실에서 만난, 동화 속 인물과 똑같은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화를 환상이 아닌 현실로 바꾼다.

    이 세상 모든 ‘재투성이’에게 바치는 이야기
    내 안의 숨겨진 왕국을 찾아가는 신비한 모험!


    "왜 많은 여성(혹은 남성)이 재투성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글썽이는가? 몸소 살아보지도 않은 어린 시절에 대한 해묵은 침울한 기억이 깨어난다."
    왜 우리는 여전히 백설공주나 가시장미 공주(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에 매혹되는 걸까? 계모 밑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자신을 재투성이(신데렐라)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에는 저자가 심리 상담을 하면서 만난 살아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겉으로는 늘 명랑하고 다투는 일도 없이 잘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항상 뼈저린 고독과 슬픔을 느끼는 여성에게서 ‘재투성이’를 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돌보며 독립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늙어 가는 딸에게서 ‘라푼첼’의 모습을 발견한다.

    삶은 깨어진 꿈, 실패한 관계, 상실한 기대와 늘 다시 나타나는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라도 우리 어른들에게는 반드시 동화가 필요하다. 동화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절망의 한계를 결코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쩌면 파괴되지 않는 희망을 지니는 동화가 환상에서 벗어나 더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어떤 것에도 감히 매달리지 않으려는 냉소적인 현실 감각보다 더 참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영혼에는 분명 어떠한 장애에도 맞서 단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들, 형상들, 표상들이 숨어 있다. ― [라푼첼] 391쪽에서

    이 책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 심리학과 철학과 신학을 넘나드는 탄탄한 박학을 기반으로 삼아 쓴,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리는 보기 드문 인문 교양서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해져 동화 속 가공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의 생생한 현실로 되살아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칼릴 지브란의 시, 뭉크와 르누아르의 그림, 성서와 영화에서 찾아낸 그림 동화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류 보편의 이야기임을 확인해준다.

    그림 동화, 심층심리학을 만나다

    동화 속에는 ‘보고 느낀 그대로의 삶, 또는 내면에서 들여다본 인간의 삶’이 들어 있다. 그래서 체스터튼(G. K. Chesterton)과 루이스(C. S. Lewis) 같은 작가들은 옛이야기(동화)를 "영혼의 탐험"이라고 불렀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동화의 가치와 의미는 제대로 드러난다.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그림 동화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의 교훈이나 오싹하고 유쾌한 재미를 주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삶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성찰이 담긴 지혜의 보고로 다시 태어난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는 이러한 심리학적 동화 읽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심리학적으로 고찰해보면, 대부분의 동화는 결핍으로 가득한 탐색의 방랑, 용감한 투쟁과 충돌, 자신과의 합일을 향한 행복한 성숙과 자기 영혼이 기다리는 인물과의 사랑을 향한 행복한 성숙을 통해, 인생의 갈등, 구속, 모순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라푼첼] 316쪽에서

    심층심리학, 동화에 담긴 인간과 삶의 본질을 찾아내다
    정신분석을 공부한 심리상담가로서 저자는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의 심층심리학을 통해 동화의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인물의 내면을 탐사한다.

    (그림) 동화의 심층심리학적 해석에 몰두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상징들이 마치 몽유병 환자가 걷는 듯한 확고함과 정확성을 보이며 선택되고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 위대한 예술은 무의식의 예감을 경청하고 그 형상이 지닌 창조적 힘에 표현을 부여한다. ― [재투성이] 142쪽에서

    저자는 동화 속 인물을 현실의 사람처럼 여기며 그 인물의 행동과 성격을 형성한 무의식적 원인을 찾는다. 어떠한 굴욕도 감내하며 "경건하고 착하게"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는 ‘재투성이’는 심리적으로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짓눌린 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소녀다. 저자는 재투성이의 어린 시절을 면밀히 검토하여 죽음을 앞둔 병약한 어머니가 아이의 무의식에 짙은 불안과 죄책감을 심어주었으며, 그 불안과 죄책감이 이후 아이의 삶을 좌우하게 됨을 지적한다.

    죽어 가는 어머니라는 지속적 위협의 그늘 아래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체험하는 드라마를 떠올릴 때, 아이에게 얼마나 묵직한 공포가 가득하고 아이가 얼마나 분열되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다! 마지막 남아 있는 유일한 기둥이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 재투성이 같은 소녀는 욕구와 기호를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 희생, 자기 억제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음을 단박에 배우게 된다.
    ― [재투성이] 46~47쪽에서

    동화의 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모든 구성 요소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왕이나 왕자, 마녀 같은 인물 유형, 새나 나무, 꽃, 해와 달 같은 자연물, 계단을 오르거나 채찍을 휘두르거나 말을 타고 가는 등의 행위가 모두 주인공의 심리적 모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동화 속에서 왕이나 왕자는 역사적인 신분을 뜻하지 않는다. 동화 속 왕(왕자)을 역사적으로 해석한다면 여러 가지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동화와 달리 왕이나 영주는 결코 서민과 결혼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동화가 왕(귀족)과 병사(기사), 농부(수공업자) 이야기를 할 때는 결코 봉건 사회의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화에서 사회적 신분은 다만 영혼의 현실적 상징으로만 작용한다. 그러니까 동화에서 왕자는 우리 마음에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어떤 사람을 뜻한다."

    프로이트와 융을 따라 ‘나’의 내면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교조적인 해석을 경계하며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프로이트와 융 심리학을 그때그때 유연하게 적용한다. "이야기 흐름에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법이 ‘올바른 것’이 된다."

    갈등 상황의 유형에 따라 심층심리학 학파 가운데 어느 한 학파를 빌려 해당 동화를 해명할 수 있다. 주먹구구식 규칙을 말하자면, 인생 전반기의 갈등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객관주의적 고찰을 활용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인생 후반기의 물음에는 융 학파의 주관주의적 해석이 긴요하다. 이렇게 구별하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우선 외적 현실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부모, 형제자매, 상사, 동료, 친구 등)과 관계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견디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자아를 강화하고 현실적 환경에 맞서 자기를 관철하는 일이 지혜와 인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상징 형성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과 은폐를 분석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은 정당하다. 이에 반해 인생 후반기에는 융의 상징 이해가 좀 더 정당성을 지닌다. ― [라푼첼] 316~317쪽에서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충동이나 방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가족 로맨스, 아니마와 아니무스 같은 심층심리학 개념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이 지닌 커다란 장점 중 하나다. 책을 읽는 동안 억압이나 불안 같은 정신분석 개념이 나의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무거운 학술 용어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가장 현실적이고 쓸모 있는 도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가족 로맨스’를 이해하는 데는 언제나 똑같은 물음이 제기된다. 누군가 자신의 출신과 유래를 바로 이런 식으로 묘사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즉 자기의 본질과 과거와 삶의 태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라푼첼]의 긴 가족 로맨스의 의미를 살펴보자. 누군가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인가? "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마녀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저를 마녀에게 맡기기로 약속했거든요. 그것은 임신 중인 어머니가 마녀의 정원에 있는 라푼첼을 보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꼈고, 아버지가 라푼첼을 가져오느라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 [라푼첼] 326쪽에서

    ‘재투성이’, 환멸과 굴욕을 견뎌내는 내면의 힘

    [재투성이(Aschenputtel)]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한 소녀가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늘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마침내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이본(異本)이 전해지는데, 오늘날에는 그림 형제 판본보다 샤를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가 널리 알려져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재투성이]는 다른 이들이 한없이 모멸적인 폭력으로 그의 ‘자부심’을 몰아내고자 하더라도 자기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끝까지 믿고 지키는 인간의 비밀스런 긍지에 관한 동화다.

    불안의 그늘에서 자라는 아이
    - ‘재투성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재투성이’라는 이름은 "재를 뒤적이고 재 속에서 뒹구는 부엌데기, 천하고 더러운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동화 속 재투성이는 계모와 의붓자매들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결코 화를 내거나 다투지 않는다. 이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재투성이는 왜 이런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

    심층심리학적 해석을 따르면, 재투성이를 이해하는 일은 어머니가 죽음을 예고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보호자인 어머니의 죽음은 아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불안’을 드리운다. 아이는 병약한 어머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온힘을 기울인다. 어머니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소망이나 불만을 말하지 않고 최대한 "착하고 경건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동시에 아이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가 곧 어머니에게 부담이 된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느낌과 죄책감이 자리 잡는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여기에 계모와 의붓자매의 구박과 모욕이 더해지면서 아이는 자기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진정 죄이며, 그 죄를 갚으려면 다른 사람의 요구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타인에게 부담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절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재투성이는 이렇게 태어난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재투성이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재투성이 소녀들은 나중에 여성으로서나,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도 "그저 갈등만 없도록 하자." "또 이런 말썽은 없도록 하자." "이런 비참한 기분만은 느끼지 않도록 하자. 이런 감정은 질색이다." 같은 모토 아래 삶을 꾸려 간다. 겉으로는 유쾌한 생일 파티 중에 한참 웃다가 다짜고짜 울음을 터뜨린 어떤 여성은 "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대체 이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라고 하소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무친 외로움에 대한 사소한 기억 하나만 떠올리더라도, 손님들의 짓궂은 유쾌함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나중에 그 일을 설명하면서 그 여성은 말했다. "저에게 중요한 일을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그 여성의 삶은 40년 넘게 그래왔던 것이다. ― [재투성이] 49쪽에서

    그렇지만 재투성이는 수수께끼 같은 자긍심을 내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의붓언니들이 재투성이를 학대하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따라서 나쁜 행동을 할수록 그들은 스스로 비천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재투성이는 내적인 긍지를 지킬 수 있다. 굴욕을 견뎌내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은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재투성이는 언젠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사람, ‘왕’처럼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엄마는 왜 악한 계모가 되는가?
    재투성이 이야기에서 계모와 의붓언니의 만행은 언제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동화 속 악독한 계모 이야기가 재혼 가정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는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못된 계모와 의붓언니가 실은 친엄마와 친언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재투성이 심리에서 어머니가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 재투성이 감정이 태동하는 데는, 두 언니의 등장으로 어느 시점부터 ‘외동’ 자식의 마음에서 ‘좋은’ 어머니가 ‘죽고’ 새어머니로 부활하는 것으로 족하다. 물론 동화가 서술하는 방식대로 재투성이 성장기에 좋은 어머니가 현실적으로도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재투성이 내면에서 죽는다는 사건이야말로 재투성이라는 인물이 형성되는 데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 [재투성이] 86~87쪽에서

    저자는 재투성이를 몇 살 위 언니를 둔 동생으로 가정한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와 한 몸처럼 밀착되어 있다. 어머니는 갓난아이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고자 할 것이다. 자연히 ‘언니’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언니는 어머니의 관심을 되찾으려고 기꺼이 가사를 돕거나 동생의 양육 책임을 나누어 맡는다. 이 지점에서 ‘의붓자매’ 같은 갈등이 생겨날 수 있고, 동생은 차츰 언니와 엄마를 의붓언니와 계모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한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동생을 돌보는 달갑지 않은 의무에서 비롯된 울분을 동생을 어느 정도 괴롭힘으로써 푸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차피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동생에게 있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아기는 천방지축이고 돌보기 어렵고 한마디로 사고만 치는 문제아다. 어머니 편에서 보면, 언니가 까다로운 동생을 속 깊게 도와주는 것이 고마울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많은 도움을 주고 쓸모 있는 아이를 나무라거나 벌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 동화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어머니와 언니 사이에는 어떤 동맹이 성립한다. 이 동맹은 본래는 어린 동생을 위해 맺은 것이지만 재투성이 눈에는 부당한 대우를 만성적으로 묵인하는 협정처럼 보일 것이다. ― [재투성이] 90쪽에서

    ‘재투성이’는 왜 세 번이나 왕자에게서 도망칠까?

    - 아이에서 어른으로, 소녀에서 여성으로 도약하기

    재투성이 이야기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재투성이가 왕자를 만나러 무도회에 갔으면서 세 번씩이나 왕자에게서 도망친다는 내용이다. 재투성이는 이때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집에 있으라는 새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자발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왜 다시 집으로 도망쳐 오는 일을 반복할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재투성이의 도망은 재투성이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재투성이는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으며,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 그 때문에 재투성이는 자신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재투성이는 "그가 그래도 나를 사랑할까?"와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끝없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왕자가 우리 집을 보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재투성이의 출신을 알게 된다면, 가난하고 ‘교양 없는’ 재투성이 집을 본다면 죽을 만큼 부끄러울 것이고 분명 사랑을 잃을 것이다. ‘춤추는 여인’, ‘낯선 공주’의 모습이 굴종과 모멸로 범벅된 어린 시절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최초의 시도일 뿐이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애정을 줄 바로 그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인지’하는 일에 대한 불안은 어마어마하다. 춤 상대를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기사도 정신은 왕자에게는 악의 없는 상냥한 제안이지만, 재투성이는 치명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재투성이] 145~146쪽에서

    왕자는 매번 도망치는 재투성이를 쫓아 재투성이의 집에 오지만 그때마다 드레스와 신발을 벗고 다시 재투성이로 돌아간 소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마침내 재투성이가 스스로 얼굴을 씻고 왕자 앞에 나서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왕자가 자신을 생각하고 원한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재투성이가 얼굴을 씻는 행위는 열등감과 수치를 씻고 본래의 자신을 남 앞에 드러낸다는 뜻이다.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숨기만 했던 소녀가 이제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가시장미 공주’는 왜 죽음 같은 잠에 빠져야 할까?

    그림 형제의 [가시장미 공주(Dornr?schen)]는 샤를 페로 판본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시장미 공주]는 저주에 걸려 100년 동안 긴 잠에 빠진 아름다운 공주가 성을 둘러싼 가시울타리를 헤치고 찾아온 용감한 왕자의 입맞춤을 받고 깨어나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심층심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동화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아버지와의 운명적인 결속에서 풀려나지 못하여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백 년 동안의 잠은 삶과 사랑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가시장미 공주의 무능력을 상징한다.

    왕은 왜 열세 번째 요정을 초대할 수 없었을까?

    - 나르시시즘적 부성애의 비극

    가시장미 공주는 태어나자마자 저주를 받는다. 딸의 탄생을 축하하는 왕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열세 번째 요정이 앙심을 품고 공주가 열다섯 살 되는 해 물레에 찔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다행히 열두 번째 요정의 힘으로 공주의 저주는 ‘죽음’에서 ‘백 년의 잠’으로 바뀐다. 이야기를 보면 저주는 왕에게서 비롯된다. 왕이 손님을 접대할 황금 접시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열세 번째 요정을 초대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왕이라면 황금 접시를 얼마든지 더 만들거나 빌릴 힘이 있지 않을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했을 때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시장미 공주의 아버지는 접시를 사거나 빌리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극진하게 대접한다면 굳이 황금 접시가 없어도 손님을 초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왕은 그런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 여기에 그가 지닌 결정적인 측면 하나가 드러난다. 왕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존경과 관심을 얻기 위해" 황금 접시를 과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황금 접시는 왕에게 딸을 상징한다. 가시장미 공주는 부모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였다. 특히 왕은 딸을 위한 잔치를 아내인 왕비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준비한다. 저주를 받은 뒤로는 딸을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이 동화를 이끌어 간다. 딸은 ‘아버지의 아이’로 자란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놓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있다. 자식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 된다. 자식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의 핵심을 자식에게 결부시킬 때, 정신분석에서는 그러한 감정을 ‘나르시시즘적 대상 점유’라고 부른다. 딸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 왕은 딸이 최고임을 알리는 황금 접시를 전시해야 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장식품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깊이 사랑하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딸이 어른으로, 여성으로 성장하는 길을 가로막게 된다.

    가시장미 공주의 체험에서 운명을 규정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난 가족의 특수한 상황이고, 특히 아버지의 위치와 태도다. 한편으로 공주는 부모가 간절하게 원하던 아이였고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돌보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버릇없이 키우는 것과 호통 치며 키우는 것, 활달히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과 주눅 들게 하는 것, 용기를 주는 것과 빼앗는 것이 기이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고, 이를 통해 단순하고 티 없는 행복이 가로막힌다. 특히 아버지와 맺은 관계에서 혼란을 겪으면서 소녀이자 여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차단된다. ― [가시장미 공주] 239~240쪽에서

    가시장미 공주, 자라지 않는 아이
    딸은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결속된 상태에서 성적인 혼란을 느낄 수 있다. 부모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시장미 공주]에서도 어머니인 왕비의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는데 이런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부족한 사랑을 대신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고, 자라면서 이러한 감정은 곧 수치심과 죄책감, 불안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소녀는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성장과 자아의 발달을 거부하게 된다. 그리하여 가시장미 공주의 ‘잠’은 내적으로 성장을 멈춘 상태를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거식증 환자들에게서 가시장미 공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들은 거식증이라는 정신 질환이 패션쇼와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절세미인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라고 보고한다. ...... 그렇지만 이런 소망은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한다. 실은 체중 몇 킬로그램을 감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숙한 여성으로서 (혹은 성숙한 남성으로서) 자신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 문제다. ...... 거식증의 핵심은 시간을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동화 [가시장미 공주]는 바로 이를 서술한다. ‘궁전’의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고 영원한 세계로 잠겨든다. ‘물레’와의 접촉은 공주에게 이후의 발전을 완전히 차단할 것을 강요한다. 열다섯 살 소녀로서 이미 ‘완전’해야 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아름다움, 삶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완성에 도달한 여자. 그녀는 한마디로 자연적 성숙과 발달을 거부한다. ― [가시장미 공주] 244~245쪽에서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가시장미 공주가 잠에 빠지는 계기는 물레에 찔리는 경험이다. 정신분석적 해석에서 물레에 찔리는 일은 곧 성적 경험을 의미한다. 아버지인 왕은 딸이 남자의 성(性)과 접촉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 딸에게 성적 경험에 대해 경고하거나 가르쳐주지 않고 오로지 ‘그런 것’이 절대로 딸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자 했다. 결국 최초의 성적 경험을 통해 공주는 자신이 여자임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고통과 아픔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성적 욕구를 억누르고 여성성을 거부하는 쪽을 택한다. 공주와 함께 왕과 왕비, 성 안의 모든 것들이 잠에 빠져드는 이유는 소녀의 충동이 ‘마비’되었으므로 불안에 떨며 소녀를 보호하려고 했던 아버지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푼첼’, 마법의 성에서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

    ‘라푼첼(Rapunzel)’은 독일어로 ‘들상추’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한 마녀에 의해 탑에 갇혀 살던 라푼첼은 자신을 찾아온 왕자와 사랑을 나누는데, 그 사실을 마녀에게 들켜 머리카락을 잘린 채 황야로 내쫓긴다. 이후 라푼첼은 황야에서 쌍둥이 남매를 낳고 힘겹게 세월을 보내지만 결국 왕자와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심층심리학의 눈으로 볼 때, [라푼첼]은 자식의 운명을 계획하고 조종하려 드는 어머니와 딸의 부정적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마녀, 사랑의 두 얼굴
    ‘재투성이’의 계모가 친어머니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처럼, 라푼첼의 어머니와 마녀도 심층심리학적으로 한 사람의 두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동화는 언제나 어떤 인물이 동시에, 한 몸으로 어머니이자 마녀, 천사이자 악마, 삶이자 죽음을 상징하고 의미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한 인물이 보살피고 사랑하며 생명을 주는 동시에 위협하고 압박하고 질식시킬 수 있다. 한 사람 안에 사랑과 증오, 선의와 이기주의, 우호와 낯섦이 불가분하게 하나로 모여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본질과 행동에 있을 수 있는 이중적 본성을 통찰하는 일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데 가장 치명적인 인식인 동시에 치유적인 인식이다."

    라푼첼의 어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라푼첼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끝에 아이를 얻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이를 임신한 기간 동안 어머니가 ‘들상추(라푼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병적 식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가 자식(라푼첼)을 자신의 삶을 위해 필요로 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아이를 소망하는 여성들의 심리에 순수한 모성애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도대체 여자는 왜 아이를 낳는가? 자연스럽게 모성애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를 낳으려는 동기가 견딜 수 없는 공허, 불안, 고독, 아니 절망적 상실감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에 언제나 자기 삶에서 해결할 수 없을 듯한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으로 넘어갈 수 있다. ...... 스스로 살 수 없는 여자는 경우에 따라서 아이를 소망하는 크나큰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아이 속에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 살기 위해서 여자는 아이를 원한다. ― [라푼첼] 329쪽에서

    라푼첼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남편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 실망을 맛본 뒤 아이를 자신의 구원자, 메시아로서 기다리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편 앞에서 마녀로 돌변하는 것은 더는 남편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다. 프로이트적 상징에서 ‘마녀’의 ‘정원’은 라푼첼 어머니의 몸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편이 담을 타고 마녀의 정원으로 들어가 라푼첼을 가져오는 행위는 곧 수태를 의미한다. 남편 앞에 나타나 ‘네 목숨을 구하고 싶으면 태어날 아기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마녀는 아내가 자신과 아이의 삶에서 남편을 몰아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라푼첼의 아버지는 아이를 내어주고 이야기에서 사라지는데, 이것은 심리적으로 아내와 자식에게서 완전히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라푼첼은 왜 열두 살이 되어서 탑에 갇힐까?
    라푼첼은 ‘마녀’를 ‘고텔 부인(대모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마녀’가 곧 ‘어머니’임을 상징하는 매우 적절한 이름이다. 마녀는 아이를 애지중지 기른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내’이자 ‘마녀’로 나타났듯이 아이에게도 ‘어머니’이자 ‘마녀’의 두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불안과 근심을 지닌 채 딸에게 지배적이면서 양가적으로 대한다. 아주 이중적인 방식으로, ‘어머니’로서는 딸이 살기를 기원하지만 동시에 ‘마녀’로서는 딸이 자기 인생을 펼쳐 나가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특한 상황에서 이미 이후 인생에서 겪을 모든 갈등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라푼첼이 탑에 갇히는 시기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들어서자마자 마녀는 아이를 탑에 가둔다. 딸이 어른이 되어 사랑을 찾고 자신을 떠나 독립하지 못하도록 딸의 삶을 감옥에 가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백설공주]와 [라푼첼]을 비교하여 라푼첼이 놓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백설공주의 유리‘관’과 라푼첼의 ‘탑’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다 모든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당한 불행한 삶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영혼을 숨 막히게 만드는 방식과 원인은 다르다.

    [백설공주]의 문제는 여성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한다. 의붓어머니는 딸의 아름다움 탓에 몹시 속이 상하고 자신이 밀려난다고 느낀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냥꾼’을 시켜 딸을 쏘아 죽이게 한다. ...... [백설공주]에서는 (의붓)어머니와 딸이 벌이는 경쟁 드라마를 다루며, 성장하는 소녀에게 어느 정도 자립성이 전제되어 있다. ...... [백설공주]의 정서는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주효하자마자 바로 어머니가 적이자 박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라푼첼도 어머니에게 동화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이것이 성공한다면 그녀는 어머니 곁에서 자신의 실존을 문자 그대로 ‘지양(止揚)’하게 된다.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벗어나거나, 자기 감정을 어머니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에야 비로소 추방이라는 처벌이 그녀를 위협한다. ― [라푼첼] 351, 353쪽에서

    백설공주는 어머니처럼 아름다워지려는 것 때문에 벌을 받지만 라푼첼은 다르다. 오히려 라푼첼은 아름답기 때문에 어머니의 긍지가 된다. 딸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오로지 어머니, 마녀의 것이어야만 한다. 라푼첼이 어머니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무섭게 무거운 박해에 관한 불안이 터져 나온다. "어머니는 라푼첼의 삶이자 죽음이고, 집이자 감옥이고, 낙원이자 무덤이며, 신이자 악마이고, 천상이자 지옥이다. 이보다 더 극적이고 비극적인 어머니와 딸의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라푼첼 안의 마녀, 초자아의 처벌
    라푼첼의 어머니가 마녀였음을 알고 놀랐다면, 한 번 더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야기의 뒷부분에서는 라푼첼과 마녀가 동일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라푼첼은 왕자의 존재를 마녀에게 자기 입으로 털어놓고 나서 머리카락을 잘린 채 황야로 쫓겨난다. 라푼첼 대신 왕자를 기다리고 있던 마녀는 왕자에게 가혹한 저주의 말을 쏟아붓고 왕자를 조롱한다. 절망에 빠진 왕자는 탑 아래로 몸을 던진다. 심리학적으로 이 장면을 해석하면, 왕자에게 욕을 퍼붓는 마녀가 실은 라푼첼 내면에 깃든 어머니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라푼첼에서 고텔 부인(마녀)으로의 변화를 순수하게 심리적인 것으로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텔 부인의 이 심술궂고 사악한 말은 사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왕자의 사랑을 알아차린 고텔 부인이 분노에 휩싸여 문책과 보복을 요구한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왕자는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자가 본성과 위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정중한 존경심을 보이도록 강력히 요구하지 못하는 고텔 부인은 대체 누구인가? 고텔 부인이 단지 외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공할 죄책감에 시달리는 라푼첼이 부드러운 연인에서 고텔 부인으로 변모하여 노여움에 떠는 분노의 여신 역할을 한다고 보면,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노의 여신은 사랑을 파괴하고 아름다움을 황폐하게 만들며 문자 그대로 눈을 뽑아버리겠다고 왕자를 위협한다. ― [라푼첼] 382쪽에서

    왕자는 라푼첼의 본성 안에서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변화를 꿰뚫어볼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자기를 연인으로서 그리워하는 여인과, 자기를 마치 유혹하는 난봉꾼이자 소녀를 욕보인 비열한 놈인 양 악쓰고 욕하는 마녀가 한 사람임을 이해하겠는가? 라푼첼 안에는 사랑으로 왕자에게 응답하는 자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심과 복수심, 증오에 사로잡혀 어머니에게 향하지 않는 모든 사랑을 추격하고 처벌하는 초자아도 있다. 라푼첼은 어머니와 동일시해 온 탓에 이제까지 한 번도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왕자에 대한 사랑이 처음으로 자아가 발현하도록 도우면서도 그녀의 인격을 뿌리에서부터 분열시킨 것이다. [라푼첼]을 이러한 무시무시한 극단화 속에서 이해할 때에야 왜 라푼첼뿐 아니라 왕자도 마녀의 광기 어린 태도에 전혀 맞설 수 없는지를 납득할 수 있다.

    영리해선 안 되는 ‘영리한 엘제’의 딜레마

    [영리한 엘제(Die Kluge Else)]라는 제목은 반어적이다. ‘영리한 엘제’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전혀 영리하지 못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엘제는 "머릿속에 실타래가 있"고 "골목에서 바람이 달리는 것을 보고 파리가 기침하는 것을 듣는" 쓸데없는 능력이 있다. 엘제는 불안과 절망을 안겨주는 의심과 걱정에 골몰하는 여자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엘제는 ‘한스’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엘제가 실생활에서 무능하고 어리석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엘제는 남편의 잔인한 장난과 거짓말로 인해 제정신을 잃고 집을 떠나 방황하는 신세가 된다. 심리학적으로 이 동화는 딸의 삶을 조종하는 아버지와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된 딸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바라는 아이
    아버지에게 착하게 보이기 위해 매일 이름 앞에 ‘영리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야 하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이야기는 "영리한 엘제라는 딸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딸을 가진 남자"라는 표현은 엘제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엘제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엘제의 아버지를 지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남자로 가정한다. 그가 딸의 ‘영리함’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적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서다.

    열등감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난 아이는 곧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내맡겨졌던 바로 그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괴롭힘을 당한다. 인생에서 실패를 겪었다는 느낌, 더 강하게는 모든 일에서 실패자라는 느낌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진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단, 자기 안에 어떤 인물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아이를 마치 트로피처럼 대리자로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참된 인격, 이상적 자아, 더 순수한 존재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 [영리한 엘제] 417쪽에서

    그러나 엘제의 진정한 비극은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딸의 성공을 바라는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딸의 실패를 염원한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딸을 자신의 무너진 자존심을 치유할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딸의 성공을 바란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아버지는 딸의 성공을 방해한다. 하나는 딸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게 될 위험을 막는 것이다. 엘제가 어떤 식으로든 독립성을 드러내는 순간, 아버지는 ‘자기’ 딸을 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아버지는 아이를 낙담시키는 비판을 퍼부어 아이의 자신감을 뿌리에서부터 밟아 죽임으로써 의존성과 비자립성을 교육한다. 두 번째 이유는 딸과 아버지의 경쟁 관계에서 비롯된다. 만일 딸이 정말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아버지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실패자임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서 역설은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 때문에 딸의 성공이 아버지를 위협한다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척하는 딸의 성공을 정말로 원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딸의 성공에 대한 소망을 정말로 포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자기 존중은 딸에 대한 기대와 너무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해소할 수 없는 모순이 지니는 양가감정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 생겨나고 커진다. ― [영리한 엘제] 421쪽에서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딸은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딸이 영리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지만, 딸이 영리하면 훨씬 더 싫어한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진짜로) 영리하기가 아니라, 최소한으로 영리해 보이기를 시도하라."라는 암묵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리한 엘제의 과제는 영리함이라는 겉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정말로 지성과 능력을 보유하거나 입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궤변과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엘제가 이 과제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교사들이라면, 과도할 정도로 "그건 해결할 수 없어."라는 논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아이들, 이 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탁월하여 주목받는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으리라. ...... 스스로 행동하지 않을수록,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수록, 더 착하고 똑똑하다고 간주된다. 삶의 결정적 문제에서는 결국 해결책이 절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줄수록, 주변 사람들은 말없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자신을 더욱 지적이고 ‘영리하게’ 본다는 것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한 번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영리한 엘제] 446~447쪽에서

    목차

    -‘그림 동화’에 관하여

    ∝ 재투성이 ∝

    -들어가는 글 _ 아름다움이 수치를 이기는 인간의 신비에 관한 동화
    -동화 읽기
    -심층심리학적 해석
    불안의 그늘에서 자라는 아이 - "병에 걸린 아내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기원 - "사랑하는 딸아, 경건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 있음’의 죄의식 - "매일 어머니 무덤에 가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통 속에서 얻는 자긍심 - "아이는 화덕 옆 재 속에서 잠을 잤습니다."
    ‘악한 계모’는 누구인가? - "당장 나가서 일하란 말이야, 이 부엌데기야."
    아버지는 왜 딸을 도와주지 않을까? - "아버지는 말을 타고 장에 갔습니다."
    ‘먼지 속 왕녀’의 소망 - "재투성이는 무도회에 가고 싶어 울었습니다."
    재투성이에게 금지된 곳 - "사람들이 널 보면 다 비웃을 거야."
    슬픔을 지우는 해방의 춤 - "저녁이 될 때까지 재투성이는 춤을 추었습니다."
    재투성이는 왜 세 번 도망칠까? - "소녀는 재빠르게 왕자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만남 - "이 사람이 진짜 신부입니다."

    ∝ 가시장미 공주 ∝

    -들어가는 글 _ 불안의 가시덩굴 속 죽음 같은 저주를 깨우는 사랑
    -동화 읽기
    -심층심리학적 해석
    ‘완벽한’ 아내의 내밀한 불안 - "아, 우리에게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패한 남편, 사랑받는 아버지 - "딸을 얻은 왕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나르시시즘적 부성애의 비극 - "황금 접시가 열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 - "공주는 물레 바늘에 찔려 죽을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깊은 두려움 - "모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방어와 불안의 가시울타리 - "왕자들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여자를 찾는 왕자의 모험 - "그곳으로 가서 아름다운 가시장미 공주를 보겠습니다."
    만남과 치유 - "왕자의 입술이 닿자 공주는 눈을 떴습니다."

    ∝ 라푼첼 ∝

    -들어가는 글 _ 세상 끝, 마법의 성에서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
    -동화 읽기
    -심층심리학적 해석
    사랑의 두 얼굴, 어머니와 마녀 - "라푼첼을 먹을 수 없다면 죽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 "네가 어떻게 감히 내 라푼첼을 훔쳐갈수있지?"
    라푼첼의 탑, 백설공주의 관 - "마녀는 아이를 탑 안에 가두었습니다."
    고독의 탑에서 부르는 노래 - "그때 너무나 사랑스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녀와 왕자, 둘로 나뉜 세계 - "머리칼이 내려왔고 왕자는 위로 올라갔습니다."
    추방당한 딸 - "사악한 아이 같으니라고."
    라푼첼 안의 마녀, 초자아의 처벌 - "너는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 - "눈물이 왕자의 두 눈을 적시자 눈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 영리한 엘제 ∝

    -들어가는 글 _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하여
    -동화 읽기
    -심층심리학적 해석
    아버지의 소유물 - "딸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영리해선 안 되는 ‘영리한 엘제’ - "제 딸은 머릿속에 실타래가 있어요."
    아버지와 똑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이유 - "우리 이제 딸아이를 결혼시켜야겠소."
    처벌의 불안과 강박 - "아마 곡괭이가 떨어져 내 아이를 죽일 거예요."
    내면을 보지 못하는 남편 - "집안일을 하는 데 이 정도 영리하면 될 것이오."
    문제를 회피하는 구강기적 퇴행 - "곡식을 먼저 벨까, 밥을 먼저 먹을까?"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는 불가능한 여정 - "내가 엘제인가, 엘제가 아닌가?"
    불안의 그물 풀어내기 - "엘제는 계속 걸어 마을을 떠났습니다."

    - 주석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삶이 ‘재투성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사연에 종종 귀를 기울였다. 이 동화 해석은 그런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그림 동화’의 뜻과 의의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라는 한 문장이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인 것처럼 동화를 읽고, 소설이나 동화를 듣는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새겨들을 때에야 비로소 이 문장의 참된 의미가 밝혀진다. 한 편의 동화를 이해하려면, 그리고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삶과 문학 사이에 존재한다고 흔히 생각하는 그 차이를 없애야 한다. 그러한 차이를 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동화는 너무 생생하고 삶은 너무 환상적이다.
    ('재투성이' 중에서/ p.13)

    삶은 깨어진 꿈, 실패한 관계, 상실한 기대와 늘 다시 나타나는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라도 우리 어른들에게는 반드시 동화가 필요하다. 동화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절망의 한계를 결코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쩌면 파괴되지 않는 희망을 지니는 동화가 환상에서 벗어나 더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어떤 것에도 감히 매달리지 않으려는 냉소적인 현실 감각보다 더 참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영혼에는 분명 어떠한 장애에도 맞서 단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들, 형상들, 표상들이 숨어 있다.
    ('라푼첼' 중에서/ p.391)

    심리학적으로 고찰해보면, 대부분의 동화는 결핍으로 가득한 탐색의 방랑, 용감한 투쟁과 충돌, 자신과의 합일을 향한 행복한 성숙과 자기 영혼이 기다리는 인물과의 사랑을 향한 행복한 성숙을 통해, 인생의 갈등, 구속, 모순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라푼첼' 중에서/ p.316)

    (그림) 동화의 심층심리학적 해석에 몰두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상징들이 마치 몽유병 환자가 걷는 듯한 확고함과 정확성을 보이며 선택되고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 위대한 예술은 무의식의 예감을 경청하고 그 형상이 지닌 창조적 힘에 표현을 부여한다.
    ('재투성이' 중에서/ p.142)

    죽어 가는 어머니라는 지속적 위협의 그늘 아래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체험하는 드라마를 떠올릴 때, 아이에게 얼마나 묵직한 공포가 가득하고 아이가 얼마나 분열되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다! 마지막 남아 있는 유일한 기둥이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 재투성이 같은 소녀는 욕구와 기호를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 희생, 자기 억제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음을 단박에 배우게 된다.
    ('재투성이' 중에서/ p.46~47)

    갈등 상황의 유형에 따라 심층심리학 학파 가운데 어느 한 학파를 빌려 해당 동화를 해명할 수 있다. 주먹구구식 규칙을 말하자면, 인생 전반기의 갈등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객관주의적 고찰을 활용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인생 후반기의 물음에는 융 학파의 주관주의적 해석이 긴요하다. 이렇게 구별하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우선 외적 현실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부모, 형제자매, 상사, 동료, 친구 등)과 관계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견디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자아를 강화하고 현실적 환경에 맞서 자기를 관철하는 일이 지혜와 인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상징 형성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과 은폐를 분석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은 정당하다. 이에 반해 인생 후반기에는 융의 상징 이해가 좀 더 정당성을 지닌다.
    ('라푼첼' 중에서/ p.316~317)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충동이나 방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가족 로맨스, 아니마와 아니무스 같은 심층심리학 개념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이 지닌 커다란 장점 중 하나다. 책을 읽는 동안 억압이나 불안 같은 정신분석 개념이 나의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무거운 학술 용어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가장 현실적이고 쓸모 있는 도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가족 로맨스’를 이해하는 데는 언제나 똑같은 물음이 제기된다. 누군가 자신의 출신과 유래를 바로 이런 식으로 묘사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즉 자기의 본질과 과거와 삶의 태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라푼첼]의 긴 가족 로맨스의 의미를 살펴보자. 누군가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인가? "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마녀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저를 마녀에게 맡기기로 약속했거든요. 그것은 임신 중인 어머니가 마녀의 정원에 있는 라푼첼을 보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꼈고, 아버지가 라푼첼을 가져오느라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라푼첼' 중에서/ p.326)

    재투성이 소녀들은 나중에 여성으로서나,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도 "그저 갈등만 없도록 하자." "또 이런 말썽은 없도록 하자." "이런 비참한 기분만은 느끼지 않도록 하자. 이런 감정은 질색이다." 같은 모토 아래 삶을 꾸려 간다. 겉으로는 유쾌한 생일 파티 중에 한참 웃다가 다짜고짜 울음을 터뜨린 어떤 여성은 "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대체 이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라고 하소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무친 외로움에 대한 사소한 기억 하나만 떠올리더라도, 손님들의 짓궂은 유쾌함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나중에 그 일을 설명하면서 그 여성은 말했다. "저에게 중요한 일을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그 여성의 삶은 40년 넘게 그래왔던 것이다.
    ('재투성이' 중에서/ p.49)

    재투성이 심리에서 어머니가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 재투성이 감정이 태동하는 데는, 두 언니의 등장으로 어느 시점부터 ‘외동’ 자식의 마음에서 ‘좋은’ 어머니가 ‘죽고’ 새어머니로 부활하는 것으로 족하다. 물론 동화가 서술하는 방식대로 재투성이 성장기에 좋은 어머니가 현실적으로도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재투성이 내면에서 죽는다는 사건이야말로 재투성이라는 인물이 형성되는 데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재투성이' 중에서/ p.86~87)

    "하기 싫지만 해야 한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동생을 돌보는 달갑지 않은 의무에서 비롯된 울분을 동생을 어느 정도 괴롭힘으로써 푸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차피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동생에게 있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아기는 천방지축이고 돌보기 어렵고 한마디로 사고만 치는 문제아다. 어머니 편에서 보면, 언니가 까다로운 동생을 속 깊게 도와주는 것이 고마울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많은 도움을 주고 쓸모 있는 아이를 나무라거나 벌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 동화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어머니와 언니 사이에는 어떤 동맹이 성립한다. 이 동맹은 본래는 어린 동생을 위해 맺은 것이지만 재투성이 눈에는 부당한 대우를 만성적으로 묵인하는 협정처럼 보일 것이다.
    ('재투성이' 중에서/ p.90)

    왕자가 우리 집을 보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재투성이의 출신을 알게 된다면, 가난하고 ‘교양 없는’ 재투성이 집을 본다면 죽을 만큼 부끄러울 것이고 분명 사랑을 잃을 것이다. ‘춤추는 여인’, ‘낯선 공주’의 모습이 굴종과 모멸로 범벅된 어린 시절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최초의 시도일 뿐이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애정을 줄 바로 그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인지’하는 일에 대한 불안은 어마어마하다. 춤 상대를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기사도 정신은 왕자에게는 악의 없는 상냥한 제안이지만, 재투성이는 치명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재투성이' 중에서/ p.145~146)

    가시장미 공주의 체험에서 운명을 규정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난 가족의 특수한 상황이고, 특히 아버지의 위치와 태도다. 한편으로 공주는 부모가 간절하게 원하던 아이였고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돌보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버릇없이 키우는 것과 호통 치며 키우는 것, 활달히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과 주눅 들게 하는 것, 용기를 주는 것과 빼앗는 것이 기이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고, 이를 통해 단순하고 티 없는 행복이 가로막힌다. 특히 아버지와 맺은 관계에서 혼란을 겪으면서 소녀이자 여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차단된다.
    ('가시장미 공주' 중에서/ p.239~240)

    수많은 연구들은 거식증이라는 정신 질환이 패션쇼와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절세미인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라고 보고한다. ...... 그렇지만 이런 소망은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한다. 실은 체중 몇 킬로그램을 감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숙한 여성으로서 (혹은 성숙한 남성으로서) 자신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 문제다. ...... 거식증의 핵심은 시간을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동화 [가시장미 공주]는 바로 이를 서술한다. ‘궁전’의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고 영원한 세계로 잠겨든다. ‘물레’와의 접촉은 공주에게 이후의 발전을 완전히 차단할 것을 강요한다. 열다섯 살 소녀로서 이미 ‘완전’해야 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아름다움, 삶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완성에 도달한 여자. 그녀는 한마디로 자연적 성숙과 발달을 거부한다.
    ('가시장미 공주' 중에서/ p.244~245)

    도대체 여자는 왜 아이를 낳는가? 자연스럽게 모성애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를 낳으려는 동기가 견딜 수 없는 공허, 불안, 고독, 아니 절망적 상실감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에 언제나 자기 삶에서 해결할 수 없을 듯한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으로 넘어갈 수 있다. ...... 스스로 살 수 없는 여자는 경우에 따라서 아이를 소망하는 크나큰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아이 속에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 살기 위해서 여자는 아이를 원한다.
    ('라푼첼' 중에서/ p.329)

    [백설공주]의 문제는 여성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한다. 의붓어머니는 딸의 아름다움 탓에 몹시 속이 상하고 자신이 밀려난다고 느낀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냥꾼’을 시켜 딸을 쏘아 죽이게 한다. ...... [백설공주]에서는 (의붓)어머니와 딸이 벌이는 경쟁 드라마를 다루며, 성장하는 소녀에게 어느 정도 자립성이 전제되어 있다. ...... [백설공주]의 정서는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주효하자마자 바로 어머니가 적이자 박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라푼첼도 어머니에게 동화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이것이 성공한다면 그녀는 어머니 곁에서 자신의 실존을 문자 그대로 ‘지양(止揚)’하게 된다.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벗어나거나, 자기 감정을 어머니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에야 비로소 추방이라는 처벌이 그녀를 위협한다.
    ('라푼첼' 중에서/ pp.351~353)

    우리는 라푼첼에서 고텔 부인(마녀)으로의 변화를 순수하게 심리적인 것으로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텔 부인의 이 심술궂고 사악한 말은 사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왕자의 사랑을 알아차린 고텔 부인이 분노에 휩싸여 문책과 보복을 요구한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왕자는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자가 본성과 위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정중한 존경심을 보이도록 강력히 요구하지 못하는 고텔 부인은 대체 누구인가? 고텔 부인이 단지 외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공할 죄책감에 시달리는 라푼첼이 부드러운 연인에서 고텔 부인으로 변모하여 노여움에 떠는 분노의 여신 역할을 한다고 보면,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노의 여신은 사랑을 파괴하고 아름다움을 황폐하게 만들며 문자 그대로 눈을 뽑아버리겠다고 왕자를 위협한다.
    ('라푼첼' 중에서/ p.382)

    열등감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난 아이는 곧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내맡겨졌던 바로 그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괴롭힘을 당한다. 인생에서 실패를 겪었다는 느낌, 더 강하게는 모든 일에서 실패자라는 느낌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진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단, 자기 안에 어떤 인물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아이를 마치 트로피처럼 대리자로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참된 인격, 이상적 자아, 더 순수한 존재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영리한 엘제' 중에서/ p.417)

    여기에서 역설은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 때문에 딸의 성공이 아버지를 위협한다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척하는 딸의 성공을 정말로 원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딸의 성공에 대한 소망을 정말로 포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자기 존중은 딸에 대한 기대와 너무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해소할 수 없는 모순이 지니는 양가감정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 생겨나고 커진다.
    ('영리한 엘제' 중에서/ p.421)

    교사들이라면, 과도할 정도로 "그건 해결할 수 없어."라는 논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아이들, 이 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탁월하여 주목받는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으리라. ...... 스스로 행동하지 않을수록,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수록, 더 착하고 똑똑하다고 간주된다. 삶의 결정적 문제에서는 결국 해결책이 절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줄수록, 주변 사람들은 말없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자신을 더욱 지적이고 ‘영리하게’ 본다는 것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한 번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리한 엘제' 중에서/ pp.446~447)

    저자소개

    오이겐 드레버만(Eugen Drewerman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0~
    출생지 독일 도르트문트
    출간도서 7종
    판매수 1,231권

    독일의 신학자, 평화운동가, 심리학자. 독일은 물론이고 전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신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0년에 도르트문트 인근 베르크카멘에서 태어났다. 철학, 신학, 정신분석을 공부했다. 1966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신부이자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면서 1979년부터 파더보른의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비교종교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드레버만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 수태, 예수의 부활 등 성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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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후설의 현상학적 시간론의 두 차원: 정적 현상학적 분석과 발생적 현상학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교양교육센터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상학의 현대적 해석에 기초하여 인지과학, 심리학, 사회과학, 질적 연구 등과의 학제간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논문으로 [현상학 자연화의 함의와 한계: 신경현상학의 경우], [객관적 시간 구성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 [초월론적 자아의 유한성], [예지와 근원현전]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물리학자의 철학적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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