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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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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아침독서 청소년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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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그땐 몰랐다. 우리가 쫓겨나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은.”

    강제 철거! 정든 집과 마을을 빼앗긴 사람들 이야기
    192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청소년소설

    미국도서관협회(ALA) 선정 청소년 부문 최우수 도서, 미국서점협회(ABA) 선정 청소년 으뜸 도서,
    국제독서협회(IRA) 추천 청소년 도서, 뉴욕공립도서관 추천 청소년 도서


    "저 사람들이 우리를 내쫓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
    "글쎄다,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겠지."


    [하얀 라일락]은 192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어느 날, 열두 살 흑인 소녀 ‘로즈 리’는 백인 부잣집에서 식사 시중을 들다가 충격에 휩싸인다. 백인 주민들이 흑인 거주지인 프리덤타운을 없애고 공원을 세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식을 접한 프리덤타운 주민들은 터전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지만, KKK 단의 백색 테러가 평화롭던 마을을 집어삼킨다. 과연 주민들은 정든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이야기는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로즈 리의 눈과 입을 통해 전개된다. 천진난만하던 소녀는 철거라는 참극을 계기로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과 부대끼면서 자신이 흑인이고 여성이며 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살빛이 검어서 차별받고, 여자라서 죽어지내야 하고, 아이라서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면서 성장해 간다.
    외할아버지 ‘짐 윌리엄스’는 로즈 리에게 작고 여린 생명들이 저마다 지닌 고운 빛깔로 활짝 피어날 수 있게 온 정성을 다해 돌보고 가꾸는 모습을 몸소 보여 준다.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손녀가 보고 배우는 것이 사랑, 곧 모든 이를 감싸 안는 인류애다. 그 상징물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하얀 라일락’이다.
    할아버지가 정원사로 일하는 백인 부잣집 안주인은 자기 피부색처럼 하얗거나 환한 빛깔 꽃들만 좋아하고 파랑이나 노랑 같은 짙은 빛깔 꽃은 질색해서 자기 정원에서는 키우지 못하게 한다. 그런 반면에 할아버지는 자기 살빛과 완전히 다른 하얀 꽃마저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집 부엌 옆에 서 있는 하얀 라일락에서 벋은 가지를 가져다가 ‘에덴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꽃밭에 심고 정성스레 가꾼다.
    결국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곳으로 내쫓기고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하얀 라일락을 잘 키우라고 로즈 리에게 당부한다.

    작품 특징

    ■ 강제 철거: 공권력에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 이야기

    [하얀 라일락]은 강체 철거로 정든 집과 마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이야기다. 192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 주 덴턴 시에 존재했던 작은 흑인 마을 퀘이커타운이 도시공원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철거된 역사적 사실이 청소년소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커쿠스 리뷰의 상찬 그대로 [하얀 라일락]은 한 편의 소설이자 다큐멘터리이다. ‘작가의 말’에도 정확하게 밝혀져 있듯이, 퀘이커타운이라는 실재 이름이 소설에서 프리덤타운으로 바뀌고, 등장인물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꾸며졌지만, 강제 철거에 따른 정황들은 거의 전부 사실이다. 가구 수와 마을의 주요 시설물 등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도시공원 설립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권 발행안이 발의되고 가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 백인들이 왜 그토록 작은 흑인 마을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는지 등까지 모두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아득한 시절, 그리고 머나먼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지만 [하얀 라일락]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백인들이 흑인 주민들의 자부심이 어린 터전을 한낱 슬럼으로 치부하며 밀어내는 이야기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과거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기막힌 이야기를 앞에 놓고 용산을, 두리반을, 거슬러 올라가서는 사당동과 상계동과 난곡을, 그리고 작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숱한 마을과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큐클럭스클랜, 즉 KKK단이 주도하는 백색 테러는 우리네 철거 현장에서 흔히 보는 용역 깡패의 폭력과 소름끼치게 흡사하다. 재개발이니 도시 정비 같은 그럴싸한 명목을 붙여서 약자를 몰아내는 논리도 너무나 똑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내 작은 안락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깨뜨리거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느냐고. 너무나 뜨거우면서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절망이 아니라 끝끝내 꽃피워야 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맺는다.

    ■ 코끝을 스치는 1920년대 미국 남부의 향기, 생동감 넘치는 흑인민권운동의 현장
    [하얀 라일락]은 여든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인 여성 작가 캐럴린 마이어의 역작이다. 1993년, 쉰여덟 살이던 작가가 원숙한 필력과 그윽한 시선으로 완성한 이 이야기에는 1920년대 초반 미국 남부의 풍경이 활동사진처럼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결속하는 흑인 커뮤니티의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로즈 리가 이종사촌 언니 대신 부엌일을 거들면서 목격하는 백인 부유층의 호사스러운 생활상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 하나. 오랜 세월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어 온 여러 입장들이 어떻게 태동하고 전개되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들도 등장인물들의 열띤 말과 행동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평등을 누리려면 직업교육을 열심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부커 T. 워싱턴의 온건노선(로즈 리의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른들), 불의한 땅을 박차고 조상들의 땅 아프리카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은 마커스 가비의 급진노선(로즈 리의 오빠 헨리), 흑인과 백인이 함께 세웠고 언뜻 온건노선과 급진노선을 합리적으로 절충한 듯 보이기도 하는 흑인민권운동 최대 조직 NAACP와 공동 설립자 W. E. B. 듀보이스(프린스 교장 선생님과 수재나 고모, 그리고 어쩌면 작가 자신)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이야기 속에 매우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 억압의 시대, 다양한 여성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로즈 리의 성장기에는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벨 씨네 말괄량이 외동딸 캐서린 제인이 바로 그다. 캐서린 제인은 로즈 리의 유년기 친구이자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다. 성격과 환경 등 무엇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소녀의 독특한 우정은 이야기에 생동감과 재미를 가득 불어넣는다.
    이 이야기는 흑인 소녀 로즈 리의 성장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백인 소녀 캐서린 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캐서린 제인에게도 결핍은 존재한다. 20세기 초 보수적인 남부 지방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과 덕’을 고루 보는 열혈 소녀 캐서린은 눈앞을 가로막고 선 봉건 가부장제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좌충우돌한다. 제 손으로 머리를 싹둑 자를 만큼 거침없고 낙천적인 캐서린 제인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속편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개성과 매력이 넘친다.
    이 밖에도 흑백 혼혈이라는 인종적인 핸디캡을 극복한 듯 보일 뿐 아니라 백인 남성과 파혼한 뒤 불타 버린 학교 재건에 뛰어드는 수재나 고모,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어머니로 두었으며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권익을 지지하는 퍼스 선생님, 가부장에 종속된 약한 존재라는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한 채 겉치레에 불과한 품위와 교양에 전부를 거는 벨 부인과 딜런 원예 부녀회 회원들, 가정을 돌보랴 백인 집에서 품을 팔랴 하루하루 고달픈 틸리 이모를 비롯한 흑인 부인들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또 다른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

    내용 요약

    내(로즈 리)가 열두 살 때 우리 외할아버지 짐 윌리엄스는 짬이 날 때마다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었다. 할아버지는 그 꽃밭을 에덴동산이라고 불렀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했고, 에덴동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백인 부자 벨 씨네 집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에덴동산에 심은 꽃과 나무도 모두 벨 씨 집에서 허락받고 가져온 것들이었다. 벨 씨네 정원이 에덴동산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지만, 내 눈엔 에덴동산이 더 아름답고 좋았다. 적어도 에덴동산에서는 그저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뿌리째 뽑혀 나가는 꽃은 없었다.
    우리 가족과 외가 식구들은 텍사스 주 딜런 시에 있는 흑인 마을 프리덤타운에 모여 살았다. 이발소를 하는 우리 아빠를 빼곤 외가 식구 거의 다 벨 씨 집에서 품을 팔았다. 어느 날 요리사로 일하는 틸리 이모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모 딸 코라 언니가 아프니까 오늘 하루만 부엌일을 도와 달란다. 할아버지와 정원에 있는 게 훨씬 좋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치마를 두르고 벨 씨네에서 식사 시중을 들게 되었다.
    식사 예법이 하도 까다로워서 한창 허둥거리던 참에, 귀가 번쩍 뜨이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안주인 벨 부인과 ‘딜런 원예 부녀회’ 회원들 말이, 프리덤타운에 사는 흑인들을 모조리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도시공원을 세운단다. 화려하게 치장한 부인들 입에서 비만 오면 진창이 된다는 둥, 순진한 검둥이가 어떻다는 둥 우리 프리덤타운과 주민들을 비웃는 소리가 연신 쏟아졌다. 사람 사는 곳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우리 마을을 저렇게 형편없는 것으로 몰아세우다니, 게다가 우리 마을이 백인들 마을 한가운데 형성된 건 그저 우연일 뿐인데!
    나는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이발소에 들러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백인과 맞서 싸워서 프리덤타운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빠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항해 봤자 부질없다며 한숨을 쉬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얼마 뒤 나는 아빠한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곧 방학이니 코라 언니 대신 계속 벨 씨네 부엌일을 거들란다. 그러면서 아빠는 저번처럼 백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말고 들으라고 당부했다. 아이에게 첩자 노릇을 시킬 요량이냐며 엄마가 못마땅해했지만, 매일 아침 벨 씨네 부엌에서 부엌일을 거들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벨 씨네 집에서 저녁 만찬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톰슨 교장의 짧은 연설을 들은 나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충격에 빠졌다. 백인들은 우리를 위험한 사람들로 여겼다. 그들은 7월 4일 독립기념일 잔칫날부터 한 달 동안 투표를 한다고 했다. "(......)우리 도시에서 삭막한 것을 제거하고, 너저분한 것을 싹 없애고, 흔히 프리덤타운이라고들 부르는 그 지역을 말끔히 치우고자(......)" 톰슨 교장의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이 와중에 기쁜 일이 생겼다. 아빠의 이복동생으로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수재나 고모가 우리 집에 온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교사로 일하는 고모는 언제나 존경스러웠다. 고모가 졸업가운과 사각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대학 공부를 마치고 큰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얻고 좋은 옷과 자기 집을 가지리라 꿈꾸곤 했다. 또 하나 기쁜 일은 우리 텍사스 주 흑인들이 자유인이 된 것을 기념하는 명절 준틴스(6월 19일)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었다. 해마다 준틴스에는 모두 함께 예배하고 마을을 한 바퀴 행진한 뒤 푸짐하게 마련해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기다리던 준틴스 날, 우리는 풍성한 마을 잔치까지 잘 치렀다. 그런데 모두가 잠든 그날 밤, 큐클럭스클랜 단원들이 무시무시한 행진을 벌였다. 하얗고 긴 통옷을 입고 뾰족한 두건을 쓴 사람들이 줄줄이 끝도 없이 지나갔다. 프리덤타운 주민들은 울타리 뒤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발소리만 쿵쿵거리며 우리가 잔치를 벌인 교회 숲으로 몰려가 구덩이를 파고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구덩이에 박고 불을 붙였다. 십자가가 횃불처럼 활활 불타올랐다.
    뒤이어 백인들의 잔치인 7월 4일 독립기념일이 찾아왔다. 백인들 잔치지만 음식을 만들랴 행사장을 꾸미랴 고생하는 것은 우리 흑인이다. 백인들은 우리가 실컷 준비한 것을 먹고 떠들면서도 ‘딜런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려면 흑인들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그런데 그때 얼마 전 북부에서 온 미술 교사 퍼스 선생님이 나서서 흑인을 편드는 연설을 했다. 선생님이 말문을 열자마자 듣고 있던 청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나는 일찍이 백인이, 더군다나 여자가 용감하게 나서서 흑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우리를 몰아내려는 백인들의 횡포는 점점 극에 달했다. 흑인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이 땅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가서 새롭게 출발하자고 주장했던 우리 헨리 오빠는 어느 날 백인들에게 끌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백인 젊은이들이 오빠를 강제로 차에 태워 교외로 끌고 간 뒤 옷을 다 벗기고 춤을 추라고 명령했단다. 말을 듣지 않자 헨리 오빠를 나무에 묶고 타르를 끓여 붓으로 온몸에 뒤바른 뒤 닭털을 덕지덕지 붙였다. 이 사고로 헨리 오빠는 심한 화상을 입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한편 벨 씨 부부는 방학을 맞은 캐서린 제인을 데리고 2주 예정으로 시카고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대청소를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나는 청소를 도와주다가 벽장에서 무시무시한 것을 발견했다. 끝이 뾰족하고 눈 부분에 구멍 두 개가 뚫린 하얀 두건과 긴 통옷이었다. 벨 씨가 큐클럭스클랜 단원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퍼스 선생님은 결국 일자리를 잃고 딜런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퍼스 선생님이 내게 스케치북과 그림 연필을 선물했다. 선생님은 내게 그림 솜씨를 살려 프리덤타운을 스케치로 기록하라고 당부했다. 선생님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하면서 나는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우리는 결국 프리덤타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마을 아저씨들은 이발소에 모여 이주할 장소를 논의하고 집과 땅을 좋은 값에 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프리덤타운에서 가장 좋은 집이 헐값에 넘어가고, 우리가 이주하려고 점찍은 버터밀크힐에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백인들의 경고 쪽지가 나붙었다. 그 와중에 우리 학교에 불이 났다. 잿더미가 되어 가는 학교를 보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우리가 없어지기를 백인들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어서, 스케치북에 학교를 영영 그릴 수 없게 되어서.
    나는 학교가 불타 버린 날부터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 일을 거들어 주고 나서 스케치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계속 공부해야 했다. 건물이 사라진 것도 문제지만, 떠난 선생님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학교 상황을 들은 수재나 고모가 아예 이곳으로 이사 와서 선생님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프린스 교장 선생님과 수재나 고모가 의기투합해 학교를 다시 열었다.
    결국 우리는 백인들이 정해 준 대로 플래츠로 이주하기로 했다. 프리덤타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척박한 그곳이 싫다며 아예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 집들이 통째로 플래츠로 끌려가는 모습은 너무나 진풍경이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구경할 정도였다.
    어디를 봐도 살풍경한 플래츠로 이사 온 뒤 할아버지는 집 언저리에 다시 꽃밭을 가꾸고 새 에덴동산을 일구어 나갔다. 아빠는 백인 여자 전문학교에 수위로 취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헨리 오빠를 찾았다. 할아버지 대신 벨 씨네 정원사로 일하게 된 헨리 오빠가 그 집 아들 에드워드의 새 자가용을 세차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단다. 화가 난 백인 청년들이 오빠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른다는 소문이 마을을 들썩였다.
    오빠는 결국 잠시 몸을 피하기로 했다. 나는 동정을 살필 겸 오빠 대신 벨 씨네 정원에서 일하다가 에드워드 패거리들이 이번엔 채찍으로 본때를 보여 주자며 작당하는 것을 엿들었다. 나는 캐서린 제인에게 오빠가 무사히 피신할 수 있도록 역까지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백인 계집애의 도움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버티던 헨리 오빠는 마침내 캐서린 제인의 차를 타고 무사히 마을을 빠져 나갔다. 그날 캐서린 제인은 나랑 같이 나갔다는 사실이 들통 나 궁지에 몰려서도 오빠를 태워 준 사실을 끝까지 부모에게 숨겼다. 나는 집을 떠나는 오빠에게 우리 마을을 그린 스케치북을 선물로 주었다. 오빠는 스케치북을 소중히 갖고 있다가 꼭 가지고 돌아오겠다며 나를 안았다.
    열심히 일해서 라이베리아로 떠날 여비를 마련하겠다는 헨리 오빠만 빼고 온 식구가 모인 가운데 할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전에 하얀 라일락을 잘 키우라는 말을 내게 남겼다.

    작가의 말

    1991년 2월 28일, 텍사스 주 덴턴 도시공원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나도 그 역사적인 행사에 참석했다. 도시공원이 우리 집에서 가까운 데다 댈러스에서 북쪽으로 65킬로미터쯤 떨어진 매력적인 대학 도시 덴턴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그곳 역사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념비를 세운 곳은 피칸 샛강에 놓인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근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던 그날, 기념비를 씌운 천을 걷자 청동 패가 보였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새겨 있었다.
    "이곳은 19세기 말부터 1922년까지 퀘이커타운이 있던 자리이다. 퀘이커타운은 날로 발전해 가는 마을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여기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것은 재건 시대(1865~1877)가 끝난 뒤였다. (......) 한창 시절 퀘이커타운에는 살림집 58채, 가게와 식당 두어 곳, 진료소 한 곳, 장례식장 한 곳, 교회 세 곳이 있었다.
    1921년 4월에 채권 발행 문제를 두고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 퀘이커타운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으나 투표를 강행, 찬성 367표 반대 240표로 채권 발행안이 가결되었다. 퀘이커타운 주민들은 1923년까지 이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스트덴턴 외에 솔로몬힐과 하이럼으로 옮겨 갔다. 옛 퀘이커타운 주민에 이어 그 후손들은 지금도 꾸준히 덴턴의 공동체 삶에 이바지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추천사

    "겹겹이 쌓아 올린 세심한 묘사 덕에 그 옛날 남부 지방의 눅눅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풀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날카로우면서도 감미롭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한 편의 소설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인 이야기. 놀랍도록 선명한 배경과 살아 꿈틀대는 인물이 주제를 멋들어지게 살려 낸다."
    - 커쿠스 리뷰

    목차

    1. 에덴동산
    2. 프리덤타운
    3. 로즈 리의 특별한 재능
    4. 하고 싶은 공부, 하기 싫은 공부
    5. 캐서린 제인
    6. 어떤 만찬회
    7. 수재나 고모
    8. 준틴스
    9. 행진하는 사람들
    10. 세상 공부
    11. 독립 기념일
    12. 헨리 오빠
    13. 대청소를 하다가
    14. 엎치고 덮치는 시련
    15. 캐서린 제인의 생일잔치
    16. 스케치로 기록하다
    17. 끌려가는 집들
    18. 헨리 오빠의 피신
    19. 할아버지의 유산, 하얀 라일락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프리덤타운? 귀가 번쩍 뜨였다. 거긴 우리 동네였다. 딜런의 흑인이 거의 다 모여 사는 우리 마을이었다. (......) 그때, 그러니까 1921년에 프리덤타운이라고 부른 곳은 딜런에 속한 우리 구역이었다. 사람 사는 마을에 필요한 것은 두루 다 갖추었다. 흑인 학교와 교회 두 곳에 식료품 가게며 카페며 흑인 진료소에 장의사까지 없는 게 없었다. 프리덤타운이 딜런 한복판에 들어서서 백인이 사방팔방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산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래도 우리 흑인들이 일하러 갈 때만 빼고 우리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오래도록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 딱한 검둥이들이야 프리덤타운을 뜰 기회라고 좋아하지 않겠어요? 큰비만 내렸다 하면 샛강이 넘쳐 진창이 되니 지긋지긋할 만도 하잖아요! 우린 그저 거기보다 살기 편한 데로 옮겨 살게 해 주는 것뿐이죠. 하긴 검둥이가 워낙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코흘리개 같으니, 이주하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구슬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라벤더색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말했다.
    내 손에 들린 은제 빵 바구니가 파들거렸다. 자기가 뭐라고 프리덤타운 주인들의 이주 문제를 들먹거린단 말인가. 누구를 옮겨? 어디로 옮겨?
    (/ pp.20~21)

    벨 씨네 가족이 여행을 떠나자마자 우리는 온 집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틸리 이모는 말할 것도 없고 플로라 외숙모와 비니 외숙모까지, 주인집 식구들이 여행을 떠난 사이 집 안팎을 대청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플로라 외숙모가 1년 내내 목요일마다 온 집 안 먼지를 떨어내고 쓸고 닦았지만 그건 대청소에 대면 새 발의 피였다. 비니 외숙모도 청소를 거들러 왔다. 창문마다 안팎을 깨끗이 닦고, 양탄자란 양탄자는 죄다 들어내 탈탈 털고, 바닥은 묵은 왁스를 긁어 낸 다음 새로 광칠을 하고, 목조 부분은 비눗물로 깨끗이 닦아 내고, 커튼은 모조리 뜯어내 깨끗이 빨고 다려서 도로 걸고, 방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을 쏘였다. (......) 책장 다른 한쪽 끝에는 좁다란 장롱 같은 게 있었다. 총을 넣어 둔 유리 진열장과 비슷했지만 평범한 나무 문이 달려 있었다. 나는 무심코 놋쇠 손잡이를 돌렸다. 이것도 반짝반짝 광나게 닦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텅 비다시피 한 장롱에는 달랑 한 가지만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길고 하얀 통옷이었다. 나는 옷을 내려서 제발 내가 짐작하는 그 옷이 아니기를 빌면서 살펴보았다. 바로 그다음이었다. 긴 옷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옷걸이가 나왔다. 거기 걸린 것은, 끝이 뾰족하고 눈만 보이도록 구멍만 도려 낸, 하얀 복면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pp.175~177)

    우리는 서로 바싹 붙어 서서 지켜보았다. 소방대원들이 호스를 꾸려 떠난 뒤에도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다 무너진 채 잉걸불처럼 이글거리는 학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 교회 모블리 목사님과 올리브 산 교회 델버트 목사님이 대표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틸리 이모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마리아여, 울지 마세요. 슬퍼 마세요......."
    다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모가 내게 늘 말했듯이, ‘우느니 노래 부르는 게 낫고, 노래는 기도나 한가지인’ 그런 노래를, 우리는 부르고 또 불렀다.
    나는 울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우리가 사라져 주기를 백인이 얼마나 바랐는지 이제야 비로소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불이 사고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둘째는 우리 학교가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스케치북에 학교를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학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 p.197)

    캐서린 제인은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한 손에는 긴 금발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뭉텅뭉텅 잘라 낸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아 있는 건 목덜미가 훤히 드러난 채 쥐가 파먹은 것 같은 머리뿐이었다.
    "캐서린 제인 아기씨, 이게......."
    나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잘랐어. 보브 단발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했어. 이제 난 열다섯 살이고, 이건 내 머리야.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없어. 아무리 엄마라도. 근데......."
    짤막한 웅변을 늘어놓던 캐서린 제인이 갑자기 말을 뚝 끊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두 눈에 절망의 빛이 어렸다.
    "오, 로즈 리. 이를 어쩌면 좋아."
    캐서린 제인이 엉엉 울었다.
    "글쎄 어쩜 좋대요, 아기씨?"
    나는 이 머리 꼴을 보고 벨 부인이 무슨 말을 할지 떠올리며 나직이 대답했다.
    "네가 다듬어 줄 수 있지?"
    그 말투가 꼭 옷에서 떨어진 단추 좀 집어 달라는 여자아이 같았다.
    (/ pp.201~202)

    우리 마을 집들이 한 채 한 채 플래츠로 끌려갔다. 모든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할 만큼 그것은 진풍경이었다. 프리덤타운에서 건장한 남자라면 너도나도 팔을 걷고 나섰다. 딜런 주변 도로에 차가 다닐 때를 피해야 했으므로 집을 옮기는 일은 밤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횃불로 길을 밝혀야 했다.
    먼저 기중기로 집을 통째로 들어 올린 다음 굴대가 달린 널빤지를 밑에 댔다. 그 굴대발판 밑에 다시 통나무를 밀어 넣고 굴대발판에 노새 몇 마리를 맸다. 딜런 시청에서 약속한 대로 그로버포인트 근처에 산다는 어느 농부에게 세내어 공짜로 빌려 준 노새였다. 노새를 모는 사람이 이랴 하자 노새가 무거운 짐이 실린 반대쪽으로 몸을 숙였다. 드디어 슬슬 구르는 통나무를 타고 집이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운반을 맡은 아저씨들이 잽싸게 뒤로 뛰어가 굴대발판이 지나가자마자 맨 끝에 대놓은 통나무를 들고 다시 부리나케 앞으로 내달려 맨 앞에 끼워 넣었다. 그런 일을 숱하게 되풀이하는 사이 집은 시나브로 조금씩 새로운 터전으로 나아갔다.
    (/ p.229)

    저자소개

    캐럴린 마이어(Carolyn Mey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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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아마추어 배우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1957년 벅넬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 대신 꿈을 찾아 뉴욕으로 이주했다. 1969년 첫 책 [미스 패치와 바느질 배우기]를 발표한 뒤 지금까지 50권이 넘는 책을 내놓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었고,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전직 교수이자 역사학자인 남편과 함께 풍광이 아름다운 뉴멕시코 앨버커키에 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찰스 다윈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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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과 교양서를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어느 뜨거웠던 날들], [너답게 살아라],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 우주의 비밀을 발견하다], [위대한 감시 학교], [하얀 라일락], [신이 없는 세상], [행복한 그림자의 춤], [검은 감자], [배고픔에 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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