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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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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청춘OTL,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오늘도 우리의 청춘들은 과잉위로와 파이팅속에서 부대낀다. 아프고 흔들려야만 청춘인증을 해준다니, 살인적인 학자금 부담과 취업 경쟁 이후 저임금의 열정착취라는 악순환을 젊음이란 이유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이쯤 되면 가히 이곳은 청춘에게 아픔조차 권하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스토리 르포르타주 [현시창]은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이다. 저자가 발로 뛰며 취재한 이야기를 모은 이 책은 가슴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보잘것없는, 힐링조차 사치스러운 팍팍한 청춘들의 스물네 편의 사연을 펼쳐낸다.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시리즈,'영구빈곤 보고서'등 기획기사와 책 [4천원 인생]의 '한겨레' 임지선 기자는 그저 열심히 듣는다. 섣불리 청춘을 위로하거나 어떠한 분석이나 결론을 유보하는 대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 콤보세트'의 실상을 파헤친다. 학자금 대출을 갚으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스실에서 숨진 대학생, 돈을 위해 이직할수록 삶이 불안해지는 30대 회사원, 철강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쇳물에 빠져 죽은 청년,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다가 살해당한 여성……. 노동, 돈, 경쟁, 여성을 키워드로 묶은 24편의 이야기에는 청춘의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가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고민없는 낙관이 그들을 되려 벼랑으로 몰고 있음을 고발한다. 출구 없는 현실에 먹먹해진 마음으로 책을 덮을 즈음, 지은이 임지선의 편지가 시작된다. 그녀는 책 제목을 "현실[現]을 직시[視]하라, 그리고 창[槍]을 들라"라고 고쳐 읽는다. [현시창]은 제 힘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며, 오늘날 청춘의 고통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사연은 제각각 달라도 그 고통의 현장에는 언제나 청춘을 압박하는 '나쁜 사회'가 있다. 청춘의 고통은 개인의 노력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귀 기울이고 나눠져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구조'의 문제이다.

    출판사 서평

    청춘의 쓰디쓴 현실을 정직하게 들여다본 스물네 편의 사연

    현시창은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 가슴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에는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보잘것없을 때 자조적으로 쓰인다.
    저자 임지선은 ‘현시창’을 “현실[現]을 직시[視]하라, 그리고 창[槍]을 들라”라고 새롭게 고쳐 읽는다.
    그리고 ‘지금[現]’ ‘노래부르며[詩]’ ‘창의적으로[創]’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자고 제안한다.

    위로는 청춘의 답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청춘을 위로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팍팍한 현실에 상처받은 청춘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었건만, 이처럼 젊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힘내라" "괜찮다"는 몇 마디 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분명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로해주려는 사회의 분위기는 예전에 이들을 단지 ‘나약한 젊은이’로 몰며 다그치던 것보다는 진일보한 태도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위로의 말이란 그저 얄미운 빈말에 그칠 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위로와 힐링의 코드는 이러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청춘의 현실을 너무나 단순화해 예단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분위기마저 널리 퍼져 있다. 이는 현실의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고통의 원인을 오도한 채 모순을 유지,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잠깐의 위로로 마음이 풀리는가 싶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현실의 상처가 덧나는 식이다.
    이 책은 섣불리 청춘을 위로하기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생생한 현실에 주목한다. ‘너의 고통은 이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솔루션을 제공하기보다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 아래 청춘 저마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위로는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분석이나 결론도 없다. 다만 매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여러 청춘들의 가슴 먹먹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질 뿐이다.
    꿈을 어떻게 꾸는 건지조차 모르는 고등학생 소녀, 학자금 대출을 갚으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스실에서 숨진 대학생, 돈을 위해 직장을 옮겼지만 갈수록 삶이 불안해지는 30대 회사원, 철강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쇳물에 빠져 죽은 청년,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다가 살해당한 여성....
    노동, 돈, 경쟁, 여성을 키워드로 묶은 모두 24편의 이야기에는 청춘의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저자는 이를 통해서 제 힘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것은 물론, 오늘날 청춘의 고통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리하여 지금 청춘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얄팍한 위로가 아닌, ‘진정성’ 있는 사회의 변화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쁜 사회에서 살지 않을 권리
    저마다의 사연은 다르지만 저자가 찾아간 고통의 현장에는 언제나 ‘나쁜 사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쁜 회사가, 나쁜 국가가, 나쁜 시민이, 나쁜 제도가, 나쁜 편견이 청춘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도 한계적인 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자존심도 인권도 포기한 채 성과를 강요하는 직장문화, 초등학생들까지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경쟁에 미친 사회, 남편과 아버지가 폭력을 휘둘러도 벗어나기 힘든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내는 씁쓸한 풍경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저자는 이러한 개개의 삶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청춘이 겪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철수와 영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위로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삶들에 주목한다. 애초에 청춘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높은 학비에 고통받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낮은 학비 또는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지 위로가 아니다. 직장에서 다치고 사망하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발방지 대책이지 위로가 아니다. 입시교육에 스트레스를 받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입제도의 변화지 위로가 아니다. 저자는 청춘이 맞닥뜨리는 현실의 생생한 모순을 그려냄으로써 진한 공감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의지를 다지게 해준다.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스토리 르포르타주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통계수치나 논리적 글이 줄 수 없는 감동이 ‘이야기’에는 있다. 이 책이 ‘나쁜 사회’라는 인식 아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는 논리적 접근법을 따르지 않고 이야기의 형식을 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청춘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통해 이것이 사회의 진정한 변화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그것이 저자가 ‘현시창’을 ‘현실은 시궁창’으로 읽고 생생히 청춘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다시 ‘현실[現]을 직시[視]하라, 그리고 창[槍]을 들라’라고 새롭게 고쳐 읽는 까닭이다.
    특히 임지선은 단지 취재한 내용에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입힌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손색없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미 [한겨레]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보여준 그의 ‘이야기식 기사’는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 바 있다. 저자는 이 책 [현시창]에서 역시 오늘날 우리 시대 여러 청춘들의 삶을 감동적이고 정직한 필치로 그려낸다. 누구나 다 아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조한 문제들이 이야기 르포르타주로 재구성되면서 살아 있는 현실로 탈바꿈된다. 한편 한편 인상 깊은 단편소설 같은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청춘의 현실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적인 텍스트와 위트 있는 그림의 만남
    이 책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그림이다. 중견화가 이부록은 단순히 텍스트를 장식하는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책에 실었다. 23컷의 그림들은 텍스트를 ‘설명’하기보다 독자에게 텍스트 ‘너머’를 보게끔 유도한다. [세계인권선언][기억의 반대편 세계에서: 워바타] 등에서 보여준 픽토그램 기법이 이 책에서도 곳곳에 드러나는데, 재기발랄한 그의 그림은 시각적인 즐거움과 더불어 위트와 유머가 가득하다. 이는 텍스트 전반에 흐르는 진지함의 무게를 덜어주는 동시에, 텍스트가 남겨놓은 여운의 공간에 독자 스스로의 상상과 성찰을 채워넣을 수 있게끔 돕는다.

    추천사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의 추천 서평

    결코 ‘힐링’ 따위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진실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문화평론가 이택광

    하나의 의무로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을 때까지.
    - 철학자 강신주

    책을 읽다가 몇 번을 닫고 다시 펼쳐야 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 김조광수 / 영화감독

    이 책을 읽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맞다. 애초에 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 김진혁 / 피디

    각자의 아픔을 한데 모아놓은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연대해서 같이 아픔에 맞설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 박노자 / 교수

    ‘긍정적 사고를 가지라’ 따위의 말로 멘토 행세하는 사람들은 또 뭔가. 우습고 기괴한 세상을 살아내는 청년들의 분투기.
    - 김규항 / 칼럼니스트

    젊음이 무슨 고래 심줄이란 말인가. 얕은 힐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청춘을, 임지선은 똑바로 본다.
    - 김현진

    기자 임지선은 우리 곁의 삶, 아니 죽음의 진실을 가슴 먹먹한 풍경화로 빼어나게 그려냈다. 갈채를 보낸다.
    - 손석춘 / 언론인

    임지선과 같은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있어 위로가 된다.
    - 송호창 / 변호사

    인간으로의 권리와 삶이 토막나버린 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인 임지선 기자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양익준 / 영화감독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저는 저항과 해방의 근거가 바로 이 불의한 사회를 타파하는 데 있음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 함세웅 / 가톨릭 신부

    글쓴이의 냉정하리만큼 절제된 문체는 이웃의 고통에도 "별일 없이" 사는 동시대인들에 대한 분노가 어린 탓일까.
    - 홍세화 / 진보신당 대표

    목차

    프롤로그 - 청춘이 절망하는 나쁜 사회

    1장 일터의 배신

    이마트 지하에서 잠들다|쇳물에 녹아내린 청춘|비정한 세상, 비정규직|소녀와 백혈병, 그리고 삼성|피자 배달원의 위험한 질주|20년 된 20대 유골과의 만남

    2장 경쟁의 끝은 어디인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도미노|강남 키드의 ‘묻지마 살인’|공부 감옥에 갇힌 세 자매|어느 영업맨의 하루|영구임대아파트의 회색빛 꿈|가난한 명문대생의 눈물|대출 사기단에 걸려 가짜 결혼한 청춘

    3장 당신도 여자라면
    회사가 나를 성희롱했다 |그놈 목소리, 콜센터는 우울하다|유리방에 갇힌 영혼|캄보디아 신부의 남편 탈출|탈북소녀의 결혼 이야기|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

    4장 그리고 사건은 계속된다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온라인 논객의 죽음|양심적 병역거부한 예비 법조인|쥐식빵 사건|부모에게 살해된 화양동 세 살배기

    에필로그 - 비와 당신, 그리고 앞으로 만날 당신에게

    본문중에서

    1-1 이마트 지하에서 잠들다
    지난밤에 "이마트에 야간작업을 간다"며 집을 나간 오빠는 아침이 되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고생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났다. 슬슬 걱정이 될 때쯤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걱정 반, 반가움 반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안 들어오고 뭐해, 어디야?" 잠시 뒤 어머니가 몸을 벌벌 떨며 전화기를 떨궜다. "어떡해..., 어떡해...." "엄마, 왜 그래?" "...오빠가 죽었대." 어머니의 말을 동생은 한동안 알아듣지 못했다.

    이마트 고객들의 쾌적한 쇼핑을 위해 냉방설비를 고치다 죽었건만, 누구도 이 죽음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마트 쪽은 "우리는 냉방설비를 구입했을 뿐이고, 고장이 나서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마트는 숨진 인부들의 장례식장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된 황 씨의 죽음을 위로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 씨가 죽을 때까지 걱정했던 학자금 대출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 학자금 대출 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여동생은 물었다. 늘 자랑스러웠던 성실하고 착한 오빠가 남긴 것이 빚뿐이라는 사실을 동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생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렇다면 동생도 대학에 가게 될까. 값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고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아름답게 꿈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오빠의 죽음 앞에 동생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1-2 쇳물에 녹아내린 청춘
    남자가 죽었다, 남자는 펄펄 끓는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용광로에 빠져 죽었다. 나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철강회사 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사고다. 당진으로 가는 길, 밤새 차가운 비가 쏟아졌다. 억수비였다.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밤,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숨진 청년의 모습은 이미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7일 새벽, 김 씨는 여느 때처럼 작업복 차림으로 전기로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조였다. 야근은 언제나 사람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노동자는 선택할 수 없다. 야근을 해야 한다. 김 씨의 동료는 김 씨가 전기로 입구 옆에 걸쳐 있는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그다음으로 본 게 김 씨가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 씨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동료들은 김 씨가 빠진 사실을 보고도 이글대는 전기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김 씨가 사망한 작업 현장을 둘러본 뒤 회사 쪽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본관 사무실에 들어간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사무직 직원들이 일하는 본사 건물은 서울에 있는 어떤 건물보다도 멋졌다. 회사는 흑자를 내어 본사 건물은 멋지게 지었지만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강화하지 않았다. 김 씨의 장례식 내내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다. 비바람이 너무도 차가워 섭씨 1,600도에서 산화한 그가 더욱 서러웠다.

    1-4 소녀와 백혈병, 그리고 삼성
    젊은 나이에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죽어버리다니, 아비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백혈병은커녕 혈액과 관련한 질병을 앓은 사람 하나 없는 집안이다. 유미 역시 건강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열아홉에 회사에 들어가 일하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스물한 살에 백혈병에 걸려 스물세 살에 죽었다. 억울했다. 어쩌다가 병에 걸리게 된 건지, 네가 왜 죽게 됐는지 밝혀주겠다고 딸에게 약속했다. 황상기 씨는 그날부터 투사가 됐다.

    황상기 씨의 예상대로 유미 혼자만 죽은 게 아니었다. 사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또다른 피해자들이 속속 드러났다. 갈수록 유미의 병은 산업재해, 업무상 질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회사는 산재를 강력히 부인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삼성 직원들이 찾아왔다. 바닷가에서 소주 한잔 하자고 해서 함께 횟집에 갔다. 직원들이 "아버님, 유미는 개인적인 질병이지 산업재해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황상기 씨는 "왜 산업재해가 아니냐"며 욕까지 퍼붓고 일어나 나왔다. 이 직원들은 훗날 삼성 백혈병 산재 투쟁이 거세지자 황상기 씨를 찾아와 "10억 원을 줄 테니 삼성을 비판하지 말아 달라"는 제안까지 건넸다고 한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의 어린 노동자들은 대부분 100~13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가난해서 그 월급을 포기할 수 없었고, 순진해서 공장과 기숙사만 오가며 하라는 대로 일만 했으며, 너무 착해서 아픈데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참고 살다 죽었다. 딸의 그 마음을 알기에 황상기 씨는 여기서 싸움을 끝내지 않으려고 한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까지 투쟁을 이어가려고 한다. 딸 유미의 5주기, 그가 다시 서울 강남의 거대한 삼성 본관 앞에 딸의 사진을 들고 선 까닭이다.

    2-1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도미노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린 시절 살던 동네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 이곳에서 어린 시절 참 행복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인데. 이 끝없는 절망감은 어디서 왔을까. 열아홉 살의 박민식(가명) 씨는 동네에 있는 ㅇ아파트 102동으로 들어갔다. 오후 1시 20분, 102동 현관 앞을 지나던 요구르트 배달원이 바닥에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민식 씨를 발견했다. 2011년 들어서만 3개월 사이 네 번째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이었다.

    영재들을 모아두고 학교는 잔인하게 상대평가를 실시했다. 1등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온 수재들이 학점 3.0을 넘기지 못해 허덕여야 했다. 자존심이 무너져 서로 성적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그 안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민식 씨는 발버둥을 쳤다. 죽기 전 학교에 마련된 스트레스클리닉을 찾아 상담도 받았다. 그곳에서 민식 씨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매사에 의욕이 없어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중간고사도 거의 포기했어요"라고 털어놨다.

    학생 네 명의 죽음으로 한동안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서 총장도 물러나지 않았고 학교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은 학생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질기고 단단했다. 경쟁 사회의 두껍고 높은 벽에 작은 균열조차 내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내려다보며 민식 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도록 공부만 하다가 자유를 꿈꾸며 몸을 던져버린 청춘들의 목숨이 아까울 뿐이다.

    2-4 어느 영업맨의 하루
    돌아보면 지난 1년,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했다. 외국계 보험사로 이직을 하고 교육을 받아 현장 영업에 투입된 이후 한 번도 회사가 제시한 실적 목표를 채우지 못한 적이 없다. 회사가 벌이는 각종 실적 관련 콘테스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회사가 설정해놓은 목표치인 ‘일주일에 계약 3건’을 벌써 20주 연속 달성하고 있다.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철저히 경쟁 체제로 실적에 따라 월급을 주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의 월급은 어느새 1000만 원 가까이 된다.

    1년 전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외국계 홍보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유명 홍보회사에 입사하던 날, 그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고작 3년 뒤 홍보회사를 스스로 박차고 나가 보험 영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유명 홍보회사의 명함은 빛이 났지만 연봉은 20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몸은 바쁘고 월급은 적다 보니 대학 때부터 살던 원룸을 벗어나기는커녕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미래를 계획하기도 어려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이상 꿈만 좇을 수가 없었다. 사표를 냈다. "일하는 만큼 돈을 준다"는 외국계 보험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때부터 최 씨는 돈만 생각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한 이직이니 오직 경쟁에서 이겨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렇게 실적을 쌓았고 돈을 벌었고 꿈꾸던 결혼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자꾸만 삶이 공허하다.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쫓기는 꿈을 꾼다. 미래를 준비할수록 미래가 두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5 영구임대아파트의 회색빛 꿈
    아직까지 빈곤층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 영구임대아파트. 고등학생이 된 미영(가명)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몰라요"다. 장래 희망도 "모르고 ", 자신이 왜 잘 안 씻게 됐는지도 "모른다." 지금 뭐가 먹고 싶은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말할 때면 미영이는 아기처럼 옹알대며 작게 말한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꿈을 묻는 질문에 꿈이란 게 뭐냐고 묻는다. 미영이가 어려서부터 봐온 직업은 미싱사뿐이다. 아버지가 오래 해온 일이다. "아빠는 공무원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싫다"며 "어쨌든 100만 원 넘게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현재까지 미영이의 꿈이라면 꿈이다.

    영구임대아파트단지에서 또다른 10대를 만났다. 고등학교 2학년인 미숙(가명)이에게 꿈을 묻자 옆에 앉은 어머니 눈치를 봤다. 미술에 소질이 있는 미숙이는 한때 미대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엄마를 생각하면 대학 진학은 어림없다. 미숙이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어서 어디든 취업해서 돈을 벌길 바란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입시를 포기했지만 미숙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입시 미술’을 수강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숙이의 미술 실력을 높이 평가한 미술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다. 하지만 방과후 수업은 모녀에게 고통이었다. 미술 수업 재료비 22만 원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큰이모에게 빚을 져야 했다. 저녁 9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미숙이는 돈이 없어 저녁을 먹지 못한다. 학교 저녁 급식을 먹으려면 3,000원을 따로 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 미숙이는 허겁지겁 냉장고를 뒤진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텐데 이제 입시 미술은 그만 두려고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금까지 그만두지 못한 채 배고픔을 참고 그림을 그린다.

    2-7 대출 사기단에 걸려 가짜 결혼한 청춘
    스물아홉 장기호(가명)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장 씨는 대출 사기단이 구속되기 한 달여 전인 5월에 직장을 잃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10년 동안 장 씨는 언제나 성실하게 일했지만 가난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방송국 카메라 보조 등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벌었다. 최근까지 방송국의 카메라 보조 일을 했는데 밤을 새워서 일해도 일당 6만 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일이 있는 날에만 돈이 나왔다. 5월에는 감기에 걸렸는지 몸이 계속 아팠다. 가난한 이에게 몸이 아픈 것은 넘어설 수 없는 재앙이다. 몸뚱이 하나로 빈곤노동을 버텨 그날그날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 씨는 아팠고, 결국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일터에서는 아픈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음 날 한 남자가 장 씨가 살고 있는 동네 지하철역 앞으로 찾아왔다. 남자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있었다. 스스로를 ’박 실장’이라고 소개했다. 박 실장은 장 씨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차 안에서 박 실장이 말했다. "100만 원을 빌리고 싶다고요? 100만 원은 그냥 되는데 만약에 돈이 좀더 필요하시면 다른 일도 있습니다만...."

    장 씨는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20대 중반의 이은하(가명)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장 씨는 어렴풋이 이 씨가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둘은 이날 혼인신고를 했다. 두 사람이 부부로 기록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장 씨는 이 씨에게 물었다. "왜 이런 일을 하게 됐어요?" "돈이 없어서요. 혼인신고만 해주면 200만 원을 준댔어요." 언어 장애가 있는 이 씨가 어눌하게 답했다. "저도 그래요." 장 씨가 말했다. 모르는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된 장 씨는 괴로움에 밤잠을 설쳤다.

    3-1 회사가 나를 성희롱했다
    "상무님, 잘 모셔." 박 부장이 느끼한 목소리를 귓가에 흘리며 엉덩이를 툭 쳤을 때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기의 영업본부 대리였던 이은의 씨가 2005년 6월 동유럽 출장에서 겪은 일이다. 엉덩이를 치며 상무님을 잘 모시라니, 순간 직업여성 취급을 당한 듯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필이면 이날 이 씨는 얇은 시폰 소재의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얇은 옷감 위로 느껴지는 박 부장의 손길이 너무도 불쾌했다. 수치심에 귓불이 벌게졌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은의 씨는 인사부서를 찾아가 박 부장의 만행을 신고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인사부장의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의 씨는 이 싸움이 이리도 길어질 줄, 링 위에서 자신이 그토록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로 발령 받은 새 부서에서 은의 씨는 좀처럼 제대로 된 업무를 맡지 못했다. 부서장은 각종 업무에서 노골적으로 은의 씨를 배제했다. 부서장의 행동에 부서원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이 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점심도 함께 먹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도 은의 씨의 잔에만 술을 채워주지 않았다. 노골적인 왕따는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잔혹했다.

    2010년 4월, 마침내 길고 힘든 싸움의 결판이 났다. 수원지법은 "삼성전기는 전 부서장과 함께 250만 원, 또 별도로 375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와 싸우면서도 결코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던 은의 씨는 법원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퇴사를 했다. 쫓기듯 회사를 나온 것이 아니었다. 로스쿨 입학 준비를 마치고 개인적인 정리를 마친 뒤 사표를 제출했다. 은의 씨는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며 나처럼 외롭고 힘들게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3-3 유리방에 갇힌 영혼
    신말석이라는 쉰두 살의 남자는 588의 오랜 단골이었다. 그는 한번 여성을 고르면 그에게 집착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박 씨에게 집착했다. 밖에서 따로 만나자, 함께 살자, 이 일을 그만둬라.... 신 씨는 밑도 끝도 없는 요구를 하다가 박 씨가 거절하면 화를 냈다. 끝은 결국 파멸이었다. 마침내 그는 흉기를 들고 박 씨를 찾아갔다. 살해 방법에 ‘분노’가 묻어났다. 경찰은 신 씨가 박 씨의 목을 세게 조른 뒤 준비해간 칼로 복부를 난자했다고 밝혔다. 비영리 민간단체 ‘이룸’의 한 활동가는 "뒤를 봐주는 이른바 ‘삼촌’들과 업주들이 업소 주변을 서성이는 밤 시간대와 달리 낮 시간대는 성매매 여성을 지켜주는 이가 없어 오히려 치안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타임스퀘어에서 시작한 성매매 여성들의 질주는 바로 옆 골목 안 집창촌의 스산한 길목에서 끝이 났다. 알몸에 피칠갑을 하고 귀신 분장을 한 여성들은 유리방 앞에 다다라 모두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 같이 죽겠다"며 바닥에 뿌려놓은 석유 때문이었다. 빨간 물감에 석유가 섞여 번들번들해진 알몸의 여성들은 바닥을 뒹굴며 통곡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시위에 나선 이유는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 때문이었다. 이미 2009년 9월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가 영등포에 들어서면서 그 뒷골목에 있던 집창촌이 직접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경찰의 단속이 이어지면서 집창촌은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내달았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들어온 건데 제 마음은 어땠겠어요." 유난히 피부가 하얀 수민(가명) 씨가 고개를 떨궜다. 그는 이렇게 된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한스럽고 성매매가 죽도록 싫지만, 집창촌만 단속하는 사회가 너무나 우습고 무섭다고 했다. "집창촌만 단속하면 우리가 어디로 갈까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낯선 남자와 단둘이만 만나야 하는 성매매는 정말 끔찍해요. 집창촌에는 그래도 포주가 있고 삼촌들이 있고 동료들이 있잖아요. 성매매 여성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주세요." 경찰은 때가 되면 한 번씩 집중단속을 펼치곤 한다. 도시는 갈수록 화려해지고 그 뒷골목은 더욱더 어두워진다. 거기에 여성들이 산다.

    4-1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
    서울 마포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만삭인 박아무개 씨가 화장실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주검을 발견한 이는 의사인 남편 백아무개 씨였다. 발견 당시 박 씨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허벅지 부분이 욕조에 걸쳐진 채 무릎 아래로는 욕조 바깥에 나와 있었다. 욕조 안쪽으로 구부러져 들어간 상체는 바닥에서 조금 떠 있었다. 숙여진 머리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여러모로 불편한 자세였다. 경찰 수사 초기에는 사고사로 가닥이 잡히는 듯 했으나 곧 살인 가능성이 점쳐졌다. 용의자는 남편이었다.

    백 씨 쪽 변호인이 캐나다 법의학자 마이클 스벤 폴라넨을 앞세워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레 이상한 자세에 빠진 사람이 꼼짝 못한 채 숨 막혀 죽었다는 의미다. 다음 공판에는 국내 법의학자들이 총출동했다. 재판은 ‘국내 법의학자 대 해외 법의학자’ 사이의 싸움 구도로 흘러갔다. 서중석 국과수 법의학부장이 증인석에 섰다. "박 씨가 욕조에서 넘어져 사망했다면 욕조 안에서 소변이 발견돼야 하는데, 박 씨의 옷에 묻어 있는 소변이 욕조에는 묻어있지 않습니다. 소변은 제3의 장소, 안방 침대에 묻어 있었습니다. 또한 박 씨의 머리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도 눈에서 흘러내린 핏자국은 그 반대 방향입니다. 현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거죠. 사망 뒤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심에서 법원은 그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백 씨는 끝끝내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판사는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검찰이 백 씨의 아내가 이상자세의 의한 사망이 아니라는 점을 완벽히 입증하지 못했고, 대부분 정황상의 증거일 뿐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백 씨를 살인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백 씨가 아내를 죽인 동기 역시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백 씨가 무죄라는 취지가 아니라 백 씨의 유죄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결이었다. 이제 다시 검찰의 조사와 범죄 입증이 이어질 차례다. 어쩌면 사건은 영영 미궁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4-4 쥐식빵 사건
    2010년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날 새벽 1시께 한 남자가 경기도 평택의 피시방에 들어섰다. 그는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해 ‘과자·빵 갤러리’에 사진 다섯 장을 포함한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글의 제목은 "쥐, 쥐, 쥐 고발하면 벌금이 얼마인가요?"였다. 사진 속에는 반으로 갈라진 밤식빵 안에 죽은 쥐로 보이는 검은 물체가 들어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게다가 밤식빵 옆으로 경기도 평택 지역의 빵집 ‘파리바게뜨’ 영수증이 놓여 있었다. 새벽에 올라온 사진 다섯 장에 인터넷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네티즌들은 이를 ‘쥐식빵’이라 명명했다.

    그의 행동은 결국 며칠 만에 자작극으로 판명이 났다. 그는 쥐식빵이 나왔다는 경기도 평택의 해당 파리바게뜨 매장 인근에서 부인 명의로 빵집 ‘뚜레쥬르’를 운영하고 있는 35세 남성이었다. 쥐식빵 사건은 12월 22일부터 31일, 소위 ‘빵집 대목 기간’에 한 빵집 주인이 벌인 어설프고도 슬픈 범죄였다. 김 씨는 제빵사였다. "직접 빵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던 중 주인이 가게를 넘기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억 원을 빚으로 뚜레쥬르 매장을 넘겨받았다. 그런데 12월에 접어들면서 뚜레쥬르 본사로부터 매장을 최신 버전으로 리모델링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본사가 리모델링을 요구할 경우 가맹점주는 그걸 거부할 힘이 없다. 다시 1억 1000만 원이 들었다. 그 와중에 김 씨네 빵집의 존폐를 결정지을 법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이 지역 사람들이 파리바게뜨를 외면하고 뚜레쥬르만 찾아준다면! 김 씨는 마음이 바빴다.

    달콤한 빵을 둘러싼 씁쓸하고 살벌한 ‘빵집 전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전쟁은 치열하지만 승자는 보이지 않는다. 동네 빵집을 잡아먹은 대형 체인점 본사는 돈을 벌지만 빵집 주인에서 가맹점주로 전락한 이들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가맹점주, 즉 자영업자들이 대형 체인점 본사를 위해 치열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골목 빵집부터 경쟁업체 매장까지 겨냥한 빵집 전쟁의 두 주인공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다. 반경 500미터 안에서 파리바게뜨 두 곳, 뚜레쥬르 한 곳이 경쟁을 벌이다가 일어난 ‘쥐식빵 사건’은 엽기적이지만 언제 다시 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1~
    출생지 인천광역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71년 인천 출생으로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영상, 설치, 출판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성장과 개발 논리에 의한 파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와 배제된 가치들을 찾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주요 전시로 2003년 [slow season project...탐구생활부록], 2004년 [戰時展示-Warvata], 2007년 [sticker project], 2008년 [Newism movement-paleface project], 2010년 [파블로프의 사나운 개와 슈뢰딩거의 게으른 고양이], 2013년 [금지된 숲], 2014년 [건축적 부록] 등이 있다. 최근에는 망각된 기억을 귀환시키는 아카이브 작업을 리무부라는 이름으로 병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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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80~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겨레신문사 10년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사회부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맞닥뜨린 문화부 스타일 담당 기자 생활은 ‘문화충격’이었죠. 특히 센스로 무장한 에어비앤비파워 호스트들을 만나 감복했습니다. 공유경제에도 관심이 생겼지요. 현재는 경제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국제앰네스티언론상(2008, 2010), 한국기자상(2009, 2016), 언론인권상(2012),민주시민언론상(2015) 등을 수상했습니다. [4천원 인생],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아동학대에관한 뒤늦은 기록]을 공저했고 [현시창]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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