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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선물 2 : 선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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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심경호
  • 출판사 : 책문
  • 발행 : 2012년 06월 15일
  • 쪽수 : 528
  • ISBN : 9788931575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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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국왕과 사대부를 이어 준 선물의 미학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그렇기에 선물에는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어, 달콤한 말과는 다른 어떤 힘을 발휘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열광하고, 그날 전해진 선물은 화이트데이에 또 다른 선물로 변신한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큰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잠을 설치는 것도 선물이 가진 위력과 달콤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우리는 선물의 위력을 매순간 실감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620년 전에 탄생해 5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선 왕조를 이끈 27명의 국왕들은,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사대부에게 일정한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국왕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이들은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역대 국왕들은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에게 선물을 증여했다.
한편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함께 묶어 포상한 경우도 많았다. 선조는 재위 37년인 1604년에 이순신, 권율, 원균, 김시민, 이정암 등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선무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또 역대 조선의 군신 관계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권력 다툼과 연관된 선물 사례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종은 1468년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해 일어난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37명에게 익대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엄청난 물품과 함께 궁중의 술을 내려 주었다.
하지만 국왕의 선물과 관련된 슬픈 역사의 기록도 있다. 단종은 계유정난의 공신들에게 세조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과 그 연좌인들의 집을 내려 주었는데, 즉위년인 1452년 4월 27일에는 명신(名臣) 김종서의 집을 시녀 내은이(內隱伊)에게 내려 주었다. 또한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하여 공신들에게 배분했는데,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된 이들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는데, 윤근수의 [월정만필]을 보면 단종의 왕비 송씨가 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공신비로 삼아서 받으려 한 공신도 있었다.
조선의 국왕들이 이렇게 선물 증여를 통해 신하들에게 신뢰?격려?감사의 뜻을 표현하면, 신하들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국왕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은 신하들은 반드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전(謝恩箋)을 작성하여 올렸다. 도성에 거주할 때는 궁궐로 가서, 국왕이 부르면 사은의 예를 올리고 부르지 않으면 궁궐의 일정한 곳에서 사은례를 올렸다. 사은전에는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했는데, 물품을 하사받은 데 대한 감사와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들여다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은 어떠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국왕의 선물은 관직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기(公器)였다. 때문에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선왕의 뜻을 이으면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었다. 문종은 병약했지만 총명하고 인자한 군주로서,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조선의 국왕은 공신과 대관(大官), 세신(世臣)을 대우하여 국가 권력의 기반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태조는 공신 조준에게 두 번이나 초상을 하사하고 정도전에게 그 찬(贊)을 짓게 하였다. 태종은 공신 하륜에게 궁중의 의원을 내려 보내어 존문(存問)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이천의 온천에 행차했을 때 도승지 이승손 등 시종신에게도 온천욕을 하사했다. 세조는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고 정인지 등 조정 신하들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여 혁명 이후 군신 관계를 새로 맺어나갔다. 예종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고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명했다. 성종은 자신의 장인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내려 주었고, 선왕 이래 서적의 편찬과 문화 창달에 공을 많이 세운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했으며, 외직에 잠시 나가 있었던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려 주었다. 연산군은 좌의정 성준에게 탑호를 내려 주어 변함없는 충성을 요구했으며, 인종도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려 주면서 왕권을 보호해 주길 기대했다. 중종이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린 일, 명종이 조식에게 약재를 내리면서 상경을 종용한 일, 선조가 원접사로 나가는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고 호성공신이면서 향촌에 칩거하고 있는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린 일, 광해군이 자신의 등극에 큰 힘이 되었던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린 일, 인조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린 일, 효종이 성묘하러 가는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한 일, 효종이 세자 시절의 사부 윤선도에게 성균 사예의 벼슬을 주고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한 일과 산림의 거두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한 일, 숙종이 남인의 지도자 허목에게 궤장을 내린 일, 경종이 진주 겸 주청 정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유배되어 섬에 있던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한 일,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보호한 홍국영에게 초피?사모?이엄을 내린 일, 세손 시절의 스승 서명응에게 특별히 고비를 하사한 일, 영조가 이인좌의 난 이후 정국을 안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여 자문했던 정제두에게 낙죽을 수시로 내린 일, 정조가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고 규장각의 각신 이만수에게 목극나막신을 하사한 일, 순조가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한 일, 헌종이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원보 해임의 청을 들어준 일, 철종이 자신을 옹립하는 데 기여한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린 일 등등은 국왕의 편에서 현량(賢亮)한 신하와의 제우(際遇)를 희원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왕은 부마나 종친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도 노력하여, 그 경우 선물을 크게 활용했다. 영조가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국왕은 문치와 중흥을 위해서도 선물을 활용했다.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선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公?)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성종은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했고, 명종은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렸다. 세종은 [찬주분류두시]를 편찬케 하고 그 자문에 응한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했다. 성종은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저고리를 하사했다. 인조는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일을 맡은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렸다. 영조는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과 유기그릇을 내려 주었다. 정조는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었다.
국왕은 지방 민간의 삶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질병을 퇴치하고 재해를 막거나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경우 선물을 자주 활용했다. 곧, 문종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렸고, 예종은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렸다. 현종은 유랑민을 잘 구호한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었으며, 숙종은 황해도 연안의 이정암 사우에 은액을 하사했다. 영조는 이인좌를 체포한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해서 백성들의 충성심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잘못된 선물을 내린 일도 있었다. 정종은 격구에 늘 함께 한다는 이유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했고,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었으며,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렸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구로 후금과 전투하러 나가는 강홍립의 군사에게 몸을 덥힐 목면을 하사했다. 인조는 후금의 징병 요구를 거절한 책임을 지고 심양으로 떠나는 최명길에게 갖옷을 내려, 전대(專對)의 책임을 지웠다. 또한 일본의 에도막부가 일광(日光?닛코)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을 모신 사당에 봉헌할 동종을 요구했을 때, 교린의 의리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고려하여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어 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면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조선 국왕은 국왕의 권력과 국가의 주권을 외세에게 넘겨주었기에, 공기(公器)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500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목차

책머리에

1장 광해군,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리다
2장 광해군,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리다
3장 광해군, 강홍립의 군사에게 목면을 하사하다
4장 인조, 승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리다
5장 인조, 청나라 심양으로 들어가는 최명길에게 초구를 내리다
6장 인조,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리다
7장 인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동종을 선사하다
8장 효종,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하다
9장 효종, 사부 윤선도에게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하다
10장 효종,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하다
11장 현종,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다
12장 숙종, 81세의 허목에게 궤장을 내리다
13장 숙종, 황해도의 이정암 사우에 편액을 하사하다
14장 경종, 진주사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하다
15장 영조, 이인좌를 붙잡은 농민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하다
16장 영조, 팔십 노인 정제두에게 낙죽을 내리다
17장 영조,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을 내려 주다
18장 영조,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하다
19장 정조, 홍국영에게 사모를 내리다
20장 정조, 남한산성 수어사 서명응에게 고비를 하사하다
21장 정조, 검서관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다
22장 정조, 직제학 이만수에게 나막신을 하사하다
23장 정조,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다
24장 순조,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하다
25장 헌종,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영의정 해임의 청을 들어주다
26장 철종,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리다
27장 고종,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했으나 최익현은 받지 않다
28장 고종, 을사오적 살해에 실패한 이기를 특별 사면하다
29장 고종,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다
30장 순종,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다

부록1 _ 조선의 국왕과 가족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도판목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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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영조는 재위 50년째 되던 1774년 6월 5일(정해), 특별히 창성위(昌城尉) 황인점(黃仁點)과 청성위(靑城尉) 심능건(沈能建)을 파직(罷職)했다. 이유는 그들이 하사 받은 제택(第宅)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성위나 청성위는 국왕의 사위인 부마에게 주는 위호(位號)다. 그렇다면 대체 왜 황인점과 심능건은 하사받은 집에서 살지 않았을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중략)
황인점은 정조 연간에 여섯 차례나 사신으로 연경에 갔다. 사행은 청나라의 정세를 탐색하는 심세(審勢)의 임무를 지니고 있었고, 연행 중에 별단(別單)을 작성해서 비밀리에 신속하게 보고하고, 또 귀국한 뒤에는 대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연행기 형태로 사적인 여정을 정리했다. 황인점이 정조의 명으로 6회나 사행을 한 것은 심세와 관련해서 특별한 밀명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어떤 별단이나 보고서를 작성했을까? 그렇게 빈번하게 청나라의 정세를 관찰했으면서도 사적인 연행기조차 남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또한 정조 연간에는 탕평책을 와해시키려는 세력들에 의해 천주교 문제가 늘 부각되었다. 그렇거늘 황인점은 어째서 정조의 서거 후 순조 초에 이르러서야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을까? 혹시 화유옹주가 생전에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貞聖王后)의 사랑을 받았기에,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에 황인점이 보호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 '18장 영조,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하다' 중에서)

노량진의 용양봉저정(龍 鳳 亭)은 용봉정(龍鳳亭)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정조가 재위 13년(1793년)에 수원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에 행차하던 때 주교(배다리)를 건너 일시 머물던 행궁의 고옥이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 "용양봉저정기"가 있다. 그 글을 보면 본래 망해정(望海亭)이라 했으나 정조가 주변 전망이 ‘용이 꿈틀거리고 봉황이 나는 듯하다.’라고 하여 그 이름을 용양봉저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런데 고종 때 부근에 철로가 놓이고 철교가 가설됨에 따라 한강을 배다리로 건널 필요가 없게 되었다.
1907년 겨울에 고종은 상왕으로 있을 때, 이 행궁을 유길준(兪吉濬)에게 하사했다. 유길준은 감히 행궁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조호정(詔湖亭)이라 고치고 만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중략)
고종은 본래 유길준을 친일파로 생각했으나, 유길준이 정미 7조약을 반대했다는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더구나 1907년 8월 16일에 일본 통감부가 벼슬을 줄 때, 일본에 망명했다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유길준만이 일본이 주는 벼슬을 받지 않았다. 고종은 용양봉저정을 유길준에게 하사하고, 순종을 시켜 그 편액의 글씨를 쓰게 했다. 이관규 님에 의하면, 유길준이 이때 흥사단을 만들어 교육 사업을 벌이자 상왕인 고종은 1만 원의 찬조금을 내리고, 또 수진궁(壽進宮)을 사무실로 쓰도록 했다고 한다.
(/ '29장 고종,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다' 중에서)

"유릉지문"에 따르면 순종은 황제로서 백성들의 의지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순종은 황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순종은 “난 예 있기 진저리가 나, 난 너무 괴롭기만 해.”라고 되뇌었다고 했다. 일본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국가 전역에 왕의 명령을 유시(諭示)할 수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순종은 신하들에게 황제로서 의미 있는 선물을 할 수가 없었다. 총독부의 지시대로 일본의 군사들에게 하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략)
순종이 서거한 후 1927년 4월, 이왕직은 순종의 재위 4년간과 퇴위한 뒤의 17년간에 이르는 사적을 편찬해서 [순종실록]을 엮었다. 그러나 그 편찬위원장은 이왕직 장관 종3품 훈1등의 일본인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였다. 또 감수위원에는 오다 쇼고(小田省吾), 나리타 세키나이(成田碩內) 등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전체 원고를 조작했을 것이다. 시노다 지사쿠는 간도 용정촌(龍井村)의 통감부 임시간도파출소에 부임해서 1909년 11월 1일 파출소가 폐쇄될 때까지 간도 영유권 문제를 조사했다. 그 뒤 이왕직 장관을 지냈고, 1940년 7월부터 1944년 3월까지 경성제국대학 총장으로 있었다.
[순종실록]에는 순종이 매국노들과 일본인들에게 서훈(敍勳)하고 일본 군대에게 하사금을 준 내용이 많다. 이를테면 순종 융희 2년 3월 28일의 기록에 보면 일본 육군 기념제에 맞춰 하사금 1,000원을 일본군 주차사령부(駐箚司令部)에 주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친일관료들이 하사를 강요했을 것이다. 또 [순종실록]의 편찬자들은 일본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순종 황제가 친일파와 일본인, 그리고 일본 육군에 대해 하사한 사실만 부각시켰을 것이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순종이 황제로서 온당한 하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다.
(/ '30장 순종,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다'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5.12.23~
출생지 충북 음성
출간도서 41종
판매수 4,488권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일본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을 수료하고 교토대학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8년 국문학연구회 논문상, 2002년 성산학술상, 2006년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2011년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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