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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는 봄 : 양석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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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양석일
  • 역 : 김응교
  • 출판사 : 산책
  • 발행 : 2012년 02월 20일
  • 쪽수 : 52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655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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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유린당한 삶, 지울 수 없는 기억
    일본군 ‘위안부’의 가혹한 운명과 진실이
    지금 밝혀진다!


    “나는 인간인 걸까……? 아니면 뭐지……?”
    이렇게까지 능욕과 유린을 당하고 동물 이하, 벌레 이하로
    취급받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 아니, 아니다. 이렇게까지
    나를 능욕하고, 유린한 일본 병사야말로 인간이 아니다, 하고
    자신에게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살아 있는 성적 도구와 똑같다, 하고 생각했다.
    순화는 필사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앞서 ‘아시아적’ 고통에 대해 말해온 작가 양석일의 최신작!
    그가 마침내 꺼내놓는 너무도 뼈아프고 가슴 저미는 이야기


    [피와 뼈]로 일본에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거머쥐며 문단에 돌풍을 일으키고, 이후 계속해서 온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작품을 발표해온 재일작가 양석일이 2010년 [어둠의 아이들] 이후 일 년 만에 더 ‘고통스러운 진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아시아적 고통의 문제를 들고 왔다. 바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이른바 ‘종군 위안부’, 즉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조선 여성들(혹은 아시아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오는 봄]은 한국 문단이 거의 외면해왔던 이야기를 철저한 자료 조사에 기초해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2010년 방한한 양석일은 자신의 소설세계와 더불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밝힌다. “일본에선 시바 료타로처럼 권력을 대변하는 영웅 이야기를 주로 쓴 소설가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작가라면 모름지기 약한 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 한,일 간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역사를 제대로 보고 그것이 현대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펴 양쪽이 가진 편견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다.”
    양석일의 소설은 어둡다. 독자는 너무나 쓰라리고 고통스런 이야기를 들이미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끔찍한 실상을 대면하고 글로 쓰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러나 양석일은 “써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쓸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내면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다시 오는 봄] 역시 그 필연적 의지에 따라, 우리 곁에 놓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피 묻은 손을 내민다.

    어둠의 세계를 천황제라는 화려한 거대담론으로 포장하는 일본의 ‘국가폭력’, 그 성역을 드러내는 이 소설이 출판되자마자 일본의 우익단체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 소설이 연재될 때 작가 양석일은 테러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우익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양석일을 암살하라”는 글귀가 자주 오르곤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조총련은 “재일조선인의 가난과 상처를 팔아 책을 파는 작가”라며 비난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산 그녀(들)의 치욕적 세월,
    빼앗긴 인간의 삶과 ‘인류 최대의 성범죄’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는 소설


    [다시 오는 봄]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처녀 ‘김순화’다. 이 소설은 1938년 고향에서 일본인 순사의 말에 속아 난징으로 끌려간 순화가 첫날부터 쉰여섯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것을 시작으로, 약 팔 년간 난징에서 상하이, 싱가포르, 미얀마 랑군, 만달레이, 메이묘, 라시오, 바모, 미트키나, 라멍 등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전장으로 끌려 다니며 일본군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과정을 여과 없이 기록한다. 소설은 한 ‘여자’로서 능욕당한 순화의 삶과, 어둠의 터널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 끝에 있을 빛을 더욱 희구하게 되는 ‘인간’ 순화의 심리적 여정을 추적한다. 아울러 가해자로서 순화의 적으로 존재하며 순화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군 ‘남성’들을 통해 인간이 지닌 더럽고 추악한 본능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지 한 사람의 ‘순화’ 일대기가 아닌, ‘조선’이라는 처녀성을 지닌 ‘집단적(“아시아적”) 신체’가 강간당한, 수많은 순화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결코 소설 같지만은 않은 이 소설이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평론가 임헌영이 언급했듯이 “인류 최대의 성범죄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임헌영은 “인류 역사에 나타난 최대의 조직적 성범죄는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일본군 성노예 전범 행각’일 것”이라며, 워낙 그 범죄가 악랄하다 보니 무려 65년이 지난 사건인데도 정확한 명칭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명칭 가운데 궁여지책으로 ‘일본군 위안부’ 혹은 ‘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라고 칭하지만 역시 이 범죄행위의 실상을 드러내기에는 뭔가 모자라다고 밝힌 임헌영은 “이 끔찍하고 수치스러우며 비인간적인 사건이 어떻게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가에 대한 불가사의가 바로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과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일깨운다”고 강조한다.

    일본군의 강간과 그것에 뒤따르는 성병이 만연해 전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태에 직면한 군의 상층부는 병사의 성처리(性處理)와 성병 감염의 고비에서 그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급히 위안소를 설치해, 성병에 감염되지 않은 여자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기존의 일본인 위안부는 일본에서 창부로 일하던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성병에 감염된 여성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군의 상층부는 조선인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유교의 영향 아래서 자란 조선인 여성은 정조 관념이 강해 처녀성을 지키는 비율이 높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는 곧 성병에 감염될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그렇게 조선인 여성은 성병이 만연해 있는 일본군 안에 희생양으로 던져진 것이다. 이들 조선인 여성이 성병에 감염될지 감염되지 않을지는 그저 운에 맡길 따름이었다.
    (/ pp.122~123)

    아무런 해결 없이, 누구의 책임도 없이 그렇게 끝낼 것인가.
    “우리는 단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


    [다시 오는 봄]을 펼쳐 어느 책장을 보든 독자는 칼과 총에 깊은 살이 찢어지고 시체 속에서 구더기가 들끓고 조각난 시체가 구르고 산목숨이 졸지에 죽은목숨이 되는 처참한 장면과 마주해야 한다. 작가 양석일은 그렇듯 끔찍하고 기형적 폭력에 관한 묘사로 소설을 이어가면서 치욕적인 제국주의와 국가폭력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어질 지경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재적 문제를 정면에서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이 열린 바 있고, 한국에서는 1987년에 윤정옥 교수가 앞장서서 위안부 문제를 공개 비판한 후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국가 차원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해왔다. 그 시위가 지난 2011년 12월 14일에는 천 회를 맞았다. 그간 가려져왔던 ‘위안부 문제’가 모든 아시아인의 문제로 고개를 내민 지 이미 오래건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로부터는 최소한의 진심 어린 사과조차 없다. 그사이 정부에 등록되었던 피해자 234명 중 171명이 세상을 뜨고 이제 63명만 남았다. [다시 오는 봄]의 순화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오늘의 우리 현실이 증언해주는 것이다.
    소설 속 순화, 그리고 순화와 함께 아시아 이곳저곳에서 신체적 학대를 당한 조선 및 아시아의 여성들은, 소설 속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통이기도 하고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이기도 했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그녀들은 단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희망고문이 아니라 무서운 적 앞에서 궁극적으로는 불복종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고 근거였다.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그들에게, 그녀들은 ‘살아남음’으로 되갚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온갖 질곡을 겪은 후 일본군으로부터 해방된 순화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전히 치욕이었다. 그녀들은 다시 미군수용소에 1년 넘게 갇힌 채 미군조사관들에게 하급 인간 취급을 받아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이웃과 국가로부터 외면당했다. 그 외면이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기에, 양석일은 작가로서 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안부라는 가혹한 멍에에서 해방되려는 시점에서, 이젠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자유롭고 싶지만 그 자유가 오히려 더 무겁게 짓눌러 찌부러트리는 게 아닌지 겁내고 있었다. “난 숨어서 그늘 속에 살기는 싫어. 햇빛 닿는 곳에서 살고 싶어. 난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는걸. 모두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렇지. 아무 잘못도 없는 인간이 왜 그늘에 숨어 살아야 해?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우리 어머니처럼 되고 싶어.”
    (/ p.478)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조선의 딸로 태어난 죄밖에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끌려가 일본이 그런 만행을 저질러도 당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할머니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외교통상부는 일본 외교통상부입니까. 20년간 할머니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시는 것이 통쾌했습니까. 일본과 똑같이 돌아가시길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요. 도대체 외교부가 뭐하는 뎁니까. 책임을 지세요.”
    - 2012년 1월 25일 오후 외교부 청사를 찾은 이용수 할머니의 항의 내용
    (/ 1월 26일자 '경향신문' 중에서)

    추천사

    작가 양석일은 인간의 고통과 한계를 모조리 드러내는 ‘돌진하는 비밀’이다!

    작가 양석일이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은 일본을 비롯한 전범국가에 다름 아니다. 성범죄란 자고로 침략행위의 일종으로, 제국주의가 낳은 최대의 반인륜적 죄악에 속한다. 바로 이 연장선에서 양석일의 최신작 [다시 오는 봄]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 임헌영 / 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양석일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건 매우 자명하다. 언뜻 ‘세계문학’으로 오인하기 쉬운 하루키의 ‘보편성’은 고도자본주의가 양산해낸 도시문화의 ‘보편성’이며, 이는 극히 한정적인 의미의 ‘보편성’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별이나 빈곤 문제 등을 노정한 근대가 해소되기를 지향하는 ‘큰 이야기’가 무효화된 포스트모던한 도시문화의 ‘보편성’일 뿐이다. …… 양석일의 문학은 세계문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양석일의 지향점에 현대사상과 문학이 지닌 가혹하고도 풍부한 가능성의 일단을 발견했다.
    - 다카하시 도시오 / 문학평론가,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

    본문중에서

    문이 닫히자 창 없는 화물열차 안은 아주 어두웠다. 화물열차에 올라탄 헌병은 회중전등을 비추어 구석에 굳은 모습으로 모여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움직이지 마!” 총검을 쥔 헌병이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처음 순화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확인할 용기가 없어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조용히 해.” 헌병은 회중전등 빛을 한 명 한 명에게 비추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회중전등 빛을 받은 순화는 그가 여자들을 죽이지 않을까 겁이 났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우리는 속은 거야.”
    (/ p.62)

    여자들 앞에 궤짝 같은 것이 놓였다. 그 위에 장교 한 명이 올라서더니 모두를 노려보았다. 보병연대의 후방 담당 마쓰모토 다케히코 대위였다. 갈색 군복의 가슴에 훈장을 달았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햇살이 강해서일까, 약간 그을린 얼굴의 절반 정도가 군모의 그늘에 덮여 있었고, 그 속에서 눈이 빛났다. “너희들은, 황공하옵게도”라고, 마쓰모토 다케히코 대위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 …천황폐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너희들 외지인이 내지인과 일체가 된 것이다. 너희들은 천황폐하의 적자가 되어,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황군을 위해 최후까지 분골쇄신으로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들은… ….”
    (/ p.70)

    온힘으로 저항하는 순화에게 쩔쩔매던 나카이 중위가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순화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래도 새우처럼 둥글게 만 몸을 풀지 않았다. “이년아, 제국의 군인에게 대드는 거냐!” 흥분한 나카이 중위는 순화의 머리카락을 잡고는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쿵! ” 하는 소리와 함께 순화는 침대에서 떨어졌다. 떨어진 순화를, 나카이 중위는 때렸고 발로 찼다. 그래도 순화는 책상 다리를 꽉 붙든 채 저항했다. 그때 옆방에서 “꺅” 하는 혜영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혜영도 자기처럼 얻어맞고 강간당하는 것이라고 순화는 생각했다. “이년아, 끝까지 대들어봐야 내 손에 죽는다. 조센삐 한둘 죽인들 별 문제 아냐. 너 같은 년 얼마든지 있다고.” 나카이 중위는 발기한 페니스를 순화의 입 속에 쑤셔 넣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 p.81)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저항하느라 몸이 마디마디 아팠고 멍이 들었다. 순화가 변변찮은 화장지로 밑을 닦으려 했을 때 문이 열리고 다음 병사가 들어왔다. 순화는 공포로 덜덜 떨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노골적인 욕망이 또다시 순화를 덮쳐왔다. 그래도 순화는 저항했다. 저항조차 하지 않으면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덧없는 저항이었다. 순화는 짓눌렸고 능욕을 당했다. 그날 순화는 열세 명의 병사에게 능욕을 당했다.
    (/ pp.88~89)

    장교에게 안긴 순화는 산 넘어 계곡과 강 건너 들을 지나 압도적 힘으로 밀려드는 자연의 힘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를 바랐다. 살아 있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이 세계는 폐허와 같았다. 인간적인 것은 모두 부정되었다. 격렬히 밀어붙이는 장교의 페니스와 방출되는 대량의 정자에 태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걸 생각하면 태아 또한 학대받고 있다고 여겨졌다.
    (/ p.134)

    순화는 무슨 일인가 하고 복도로 나와 계단 아래 안뜰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뒤로 결박된 위안부가 두 명의 병사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땅바닥에 붙들려 있었다. 각 방에서 복도로 나와 뜰을 내려다보는 위안부들을 향해 장교 하나가 말했다. “너희들, 잘 봤나! 도망치려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황군에 대한 반역행위는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장교는 허리춤의 군도를 뽑아 꼼짝 못하고 있는 위안부 앞으로 한 발짝 나오더니 “얍!” 하고 기합을 넣어 단칼에 베어버렸다. 위안부의 목부터 가슴까지 피가 솟구쳤고, 검붉은 새벽녘 하늘에 “악!” 하는 단말마의 절규만이 들렸다.
    (/ p.189)

    킨스이 루의 위안부 열여섯 명은 모두 한 대의 트럭에 태워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김복미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였다. 위안부들을 내모는 듯한 호령과 노성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는 거야. 살아나가는 거야. 그게 우리들의 단 한 가지 희망이야.” 순화는 자기 자신을 고무하듯 말했다. 트럭이 움직였다. 1942년 5월 중순, 난징의 위안부들은 미얀마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상하이의 항구로 이동했다. 난징의 위안부들은 남방파견군(南方派遣軍)의 요청에 응해 미얀마의 위안소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 pp.210~211)

    그날 밤 순화는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는 수천의 밤을 지나온 듯했다. 성순녀는 어째서 일본 병사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밤의 정적 속에서 무서운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무서워하며 운 적도 몇 번 있다. 그런 때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성순녀는 고독을 견디지 못한 것일까. 고독은 날카로운 칼처럼 몸과 마음의 심연을 난도질한다. 그것은 죽음보다도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 p.281)

    강렬한 썩은 냄새의 진원지는 산길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시체였다. 120~130미터에 걸쳐 이어진 60~70구의 시체는 부패해 내장이 녹아 있었고 피와 고름이 산길의 요철(凹凸) 부분에 고여 있었다. 그 길을 이미 통과한 몇 대의 차바퀴 자국 위에는 납작해진 두개골에서 빠져나간 눈알이 질척하게 녹아 있다. 부서진 뼛조각은 땅에 박혀 흡사 석회암 같았다. 부패한 시체에서는 무수히 많은 구더기가 생겨나 태양빛을 닿으면 유황에 그을린 은처럼 빛났다. 시체는 대부분 장제스 군대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시체 중에는 군복을 입지 않은 민간인도 몇 명 있었다. 긴 머리가 얼굴을 가렸는데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입이 꼭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외치는 듯한 그 입안에서 벌레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시체 내장을 파먹고 나왔는지 벌레의 몸은 둥글고 두꺼웠다. 시체는 아마 여자였을 것이다.
    (/ p.327)

    라멍에서의 나날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매일 병사들 열 명 정도를 받고, 휴일이 되면 병사들 이삼십 명을 상대했다. 병사들과의 일상적 성행위가 이젠 그리 고통스럽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토록 일본 병사를 미워하고 혐오했는데 지금은 그냥 아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었다. 전투가 없는 날이 이어지면 라멍이 최전선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 p.389)

    매일 세수를 한 후 손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는데도 지금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 순화는 거기에 낯선 얼굴이 있어 놀랐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대체 누구일까. 영혼이 빠져 껍데기만 남은 듯 혈색 나쁜 흙색 얼굴이 마치 유령 같았다.
    (/ p.395)

    뱃속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뱃속 움직임은 물구덩이의 올챙이같이 움직이다 멈추고 다시 움직이다 멈춰 심장 박동과 함께 전해왔다. 순화는 배에 손을 얹어 “아기가 움직여” 하고 중얼거렸다. 뱃속 새 생명이 힘 있게 약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동했다. 어떤 열악한 환경이어도, 새 생명인 아기에게 자궁 안은 성역(聖域)이었다. “위안부 자궁은 철로 만들어졌으니까”라고 말한 심용자의 말을 떠올리며, 어떤 일이 있어도 아기를 낳아 기르겠다고 새롭게 다짐했다.
    (/ pp.404~405)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열일곱에 G마을에서 일본인 경관에게 속아 난징으로 납치되어 상하이, 싱가포르, 랑군, 통, 만달레이, 메이묘, 라시오, 바모, 미트키나를 경유해 라멍에 왔지만,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만 띄엄띄엄 떠올라 시간개념이 누락되었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동이 심한 시기에는 자연의 변화도 극심하다. 기억의 필름은 빨리감기와 슬로모션이 뒤죽박죽 섞인 느낌이었다.
    (/ p.407)

    위안부로 취급되는 이상한 상황이 일상화되자 자기도 그것을 보통의 일상생활과 똑같이 여기게 되었다. 사육되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육되고 있다는 의식이 붕괴되었다. 평온무사한 일상이 계속되자 자신이 위안부라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 장병과의 사이에서 친밀함이 생기고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가 생겨도 그건 단순히 표면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장군과 위안부 사이에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학이 작용하고 있어 그것을 역전시키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길어지는 전쟁의 실체를 구현하고 있는 위안부들은 일본군이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무엇 하나도 자가판단을 할 수 없었다.
    (/ p.408)

    “병사들이 저희를 먹을 생각까지 하나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야기다. 그러나 도다 대위의 말이 갑자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요 한 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위안부들도 공복을 견딜 수 없었다. 김전옥은 먹을 것을 환각으로 보기도 했다. 위안부들은 적의 포격과 일본 병사가 덮칠지 모른다는 이중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김전옥은 차라리 적의 포탄이 바로 머리 위에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446)

    “정말로 일본은 전쟁에서 졌습니까? 전쟁은 끝난 겁니까?” 순화는 젊은 미군 조사관에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말이다.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항복 했다.” 그렇지만 순화는 믿을 수 없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면 라멍이 함락되어 쿤밍 수용소로 들어가기 전에 위안부는 해방되었어야 마땅하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는데 우리는 왜 일 년 가까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건가요?” 순화는 젊은 미군 조사관에게 따지듯 다그쳤다.
    (/ p.487)

    “아이고! 아이고! 왜 쏘는 거야. 왜 쐈어! 불쌍한 영순! 이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 지옥을 살아온 이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살고 싶었는데. 이 아이는 살고 싶었다고! 그런데 쏴 죽이다니 너무해!” 김전옥이 울부짖으며 땅을 쳤다. 뒤따르던 위안부들은 피투성이가 된 신영순을 안고 통곡하는 김전옥을 둘러싸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신영순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달빛 속에서 콜타르처럼 새까맣게 빛났다.
    (/ p.492)

    오늘은 여섯 번째 청취조사였다. 서른 살가량의 조사원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질문 순서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몇 살 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꼬드김을 당해 어디로 끌려갔는가. 이 질문이 끝나면 드디어 핵심 부분에 들어간다. 일본 병사 몇 명을 상대했는가. 첫날 갑자기 쉰 명 정도의 일본 병사에게 당했다고 순화가 대답하면 “갑자기 쉰 명?” 하며 조사원인 미군 병사가 놀란 듯 되묻는다. 일요일이나 축제일은 백 명 정도의 일본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고 말하면, 양손을 들며 과장스런 몸짓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백 명이라고! 우와! 그야말로 섹스머신이다. 오클라호마의 창부도 기겁하겠다!”
    (/ p.494)

    “이제부터 너희 한 사람당 여비 천오백 원을 나눠준다. 우리 한국광복군은 너희를 서울로 돌려보낸다. 모레 아침식사 후 광장에 집합해 오전 여덟 시에 출발한다. 그때까지 몸가짐을 정리해두도록. 이상.”
    두 병사가 봉투에 든 천오백 원을 위안부들에게 나눠 주었다. 천오백 원이 든 봉투를 받은 순화는 그 무게에 손이 떨렸다. 그 무게는 꿈에 그리던 자유가 현실이 된 무게였다.
    (/ p.49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6~
    출생지 일본 오사카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36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시인을 꿈꾸며 열여덟 살부터 시를 썼고, 생업을 위해 잠시 미술인쇄 일을 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전국을 떠돌며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시골 책방에서 헨리 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에 휩싸여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1980년 시집 [몽마의 저편으로]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설 때까지, 생업을 위해 십 년간 도쿄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원제: 택시 광조곡)]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1993년 최양일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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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2~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 대학을 거쳐,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비교문화를 공부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십 년간 한국학을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씨앗/통조림] , 평론집[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한국 현대시의 매혹 韓?現代詩の魅惑] 등이, 옮긴 책으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겨울숲] [부활을 믿는 사람들] 등이 있고, [고은시선집] 을 일본어로 옮기기도 했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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