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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 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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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가까이는 2008년 쇠고기 수입개방 협상에 대한 반대시위인 촛불시위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의 4·19혁명을 기억해낼 수도 있으며, 1970년대의 반유신투쟁을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4·19혁명 외에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을 말할 것이다. 이렇듯 한국 민주주의는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을 거쳐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한 연구자는 1987년 이전의 한국 민주주의를 가리켜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라고 정의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은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바로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물론 1980년대를 지배한 전두환 정권의 정치·경제·사회도 아울러 서술함으로써 20세기 끝자락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

    1980년 ‘서울의 봄’은 시작되었지만…

    박정희가 사망한 10·26사태는 역설적이게도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
    즉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의 기대에 부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10·26사태에서 붕괴된 것은 유신체제의 권력구조 전체가 아니었다.
    붕괴된 것은 고도로 집중화된 그 구조의 최상층부였을 뿐이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민주화의 기대 속에서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다. 비록 비상계엄이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은 학내 언론자유와 어용교수 퇴진, 족벌재단의 비리 척결 등 학원자율화운동 또는 학원민주화운동을 전개했고,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활발해 사북항쟁 등이 일어났다. 1980년 5월에 들어 민주화 요구의 초점은 분명해져, 계엄령을 즉각 해제할 것과 함께 민주화 일정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시위는 전국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특히 5월 15일 서울의 시위는 서울역에 1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군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10·26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신군부는 ‘서울의 봄’ 초기에 민간정부에 대한 쿠데타 의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충정훈련’ 등 시위 진압훈련을 해나가며 ‘K-공작계획’이라는 언론대책 공작을 통해 쿠데타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광주항쟁의 시작, ‘해방’ 그리고 유혈참사

    다른 지역과 달리 광주는 신군부의 5·17군사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이를 초기에 분쇄하고자 3개 여단의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군부 세력의 과잉진압은 그 만행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항쟁으로
    전화(轉化)시켰고, 마침내 계엄군의 시위 진압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17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나, 광주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5월 18일 아침, 광주 전남대 교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이루어지면서 광주 시위가 촉발되었다. 신군부는 18일 오후 광주 시위에 대해 초강경의 진압 의도로 7여단과 11여단을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계엄군의 시위 진압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차별적인 만행에 가까웠다. 이에 광주 시민들도 무장하게 되면서 광주에서의 시위는 ‘항쟁’으로 전화하게 된다.
    수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항거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게 만들고, 마침내 광주를 ‘해방’시키기에 이르렀다. ‘해방’ 광주는 곧 시민 스스로에 의한 자치 질서를 창출해냈는데, 그것은 광주 시민에 대하여 ‘폭도’라고 매도하던 신군부의 주장을 무색케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철폐를 외치며 시작되어 10일 동안 전개된 광주민중항쟁은 ‘상무충정작전’이라 불리는 광주 진압작전으로 결국 계엄군의 유혈진압이라는 참혹한 결과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나중에 이루어진 공식 통계에 따르면, 광주항쟁은 사망자 154명, 행방불명자 74명 등을 포함하여 총 5,063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
    광주항쟁을 진압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 장악을 위한 수순을 밟아나갔다.

    되살아난 군사독재정권, 민주화운동의 시련과 내연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19년 뒤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17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다.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말 그대로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은
    당국의 탄압을 받아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내연(內燃)하고 있었다.

    신군부 세력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순으로 먼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고 정치와 사회 각 부분에서 숙정(肅正)과 정화(淨化) 조치들을 시행했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주요 정치인물과 노동계 인사가 공직 사퇴하거나 해직당하였으며, 주요 언론은 등록 취소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악을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불량배 검거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까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는 막대한 인권침해가 벌어졌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시켜 국회를 대신해 수많은 악법들을 양산해냈다.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정치인들의 발을 묶었으며, ‘언론기본법’으로 언론기관을 통합·흡수·조정했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박정희 정권에 비해 그 폭력성이 더 강화되고 있었다. 그 결과 고문은 박정희 시대에 비해 더욱 일상화되었고, 여기에 강제징집과 같은 조치들도 덧붙여졌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침체되었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광주의 경험을 거친 학생운동은 노동운동을 비롯한 전체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학생운동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는 노학연대 강화로 나타났다. 또한 반미운동의 격렬한 움직임이 나타나 1980년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5년 서울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이 일어났다. 1983년에는 청년활동가들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공개적인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3저 호황, 중산층 신화, 권력비리, 그리고 스포츠공화국

    1980년대 후반은 “단군 이래 최고의 경제 호황”이라 일컬어진 ‘3저 호황’을 구가했고,
    한국 국민의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긴 ‘중산층 신화’가 만들어졌다. 한편, 최고위 권력을
    배경으로 각종 권력비리와 정경유착이 대규모로 자행되었다. 1980년대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한국 스포츠가 급격히 발전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어 한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경제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1980년대 초에 들어 심각한 위기상태를 맞았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화의 구조적 문제들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 중복투자를 조정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크게 호전되어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에 의한 이른바 ‘3저 호황’이 나타나 매년 10%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1980년대는 경제 호황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투기 열풍도 크게 일었다. 여기에는 재벌을 비롯한 사회의 기득권층이 앞장서고, 일반 서민들도 가세했다. 3저 호황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국민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겼는데, 이러한 ‘중산층 신화’의 형성에는 주식 및 부동산 투기 조장을 통해 중간층을 포섭하고자 했던 노태우 정권의 전략이 작용했다.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 지표로 내세우고 출범한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이 시기 대규모 권력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 명성그룹사건, 민정당 대표 정래혁 축재사건, 새마을운동 본부장 전경환의 비리 등이 있었다.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시 특혜를 대가로 재벌들로부터 거둬들인 비자금 규모는 9,500억 원에 달했다.
    한편, 전두환 시기 ‘스포츠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스포츠가 적극 장려되었다.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유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도 출범되었다. 이는 군사쿠데타와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유혈진압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을 탈정치화시키고 스포츠 발전의 성과를 통해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의 대미, 6월민주항쟁! 군사정권의 종말

    6월민주항쟁의 성공은 민주화 이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주화 이행의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국민 직선의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1987년의 민주화 이행은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한 민주정부의 수립에는 실패했다.

    1983년 말 전두환 정권의 유화조치 이후 민주화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 그리고 국민 대중의 ‘최대 민주화연합’ 구축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났다.
    6월항쟁을 촉발시킨 사건은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대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전두환 정권은 모든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는데, 이는 6월항쟁을 촉발시킨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통련을 비롯한 재야세력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정치권까지 그 포괄 범위가 확대된 호헌 철폐를 위한 범국민적 연합전선적 기구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했다. 국본은 전국에 걸친 동시다발적 시위를 계획하고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의 강령(대통령 직선제)을 내걸어 항쟁을 확산시켰다.
    6월민주항쟁은 국본의 주도로 개최된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 즉 6·10국민대회로부터 시작되어 6·29선언이 발표된 6월 29일까지 20일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6월민주항쟁의 거대한 흐름에 전두환 정권과 민정당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마침내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이후 1980년 신군부 세력의 5·17군사쿠데타를 통해 그 생존이 연장된 군부독재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국민 직선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가 분열하고 이의 영향으로 재야세력도 분열했으며, 지역주의 정치까지 나타났다. 결국 민주화운동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했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목차

    프롤로그_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
    한국 민주주의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승만 정권 시기의 민주화운동
    박정희 정권 시기의 민주화운동

    01 ‘서울의 봄’과 신군부 세력
    부마항쟁과 10·26사태
    12·12군사반란과 신군부 세력의 등장
    ‘서울의 봄’ 시기 민주화 과정의 전개
    쿠데타의 준비, ‘충정훈련’과 ‘K-공작계획’
    갈림길에 선 민주화

    02 5·18광주민중항쟁
    5·17군사쿠데타
    신군부 세력의 과잉진압
    항쟁으로의 전화와 진압의 실패
    ‘절대공동체’ 광주의 ‘해방’
    광주의 고뇌
    상무충정작전

    03 전두환 정권의 등장과 체제 정비
    국보위 설치, ‘숙정’과 ‘정화’
    ‘사회악 일소’와 삼청교육
    전두환 정권의 출범과 ‘관제 민주주의’
    국가보위입법회의와 악법의 양산
    정당성의 부족과 대체적 정당성의 모색
    민주화운동의 시련과 내연

    04 민주화운동의 부활과 전두환 정권의 대응
    유화조치
    학생운동의 부활
    노동운동의 확산과 강화
    2·12총선과 선명 야당의 등장
    재야세력의 결집과 민통련의 등장
    개헌정국의 갈등과 민주화운동 진영의 분열
    전두환 정권의 탄압 강화

    05 6월민주항쟁
    항쟁의 배경과 촉발
    국본의 탄생
    6월민주항쟁의 전개
    지방에서의 항쟁
    6·29선언, 양보와 분리 지배
    또 하나의 항쟁, 7·8·9월 노동자대투쟁

    06 민주화 이행과 지역주의 정치의 등장
    민주화 이행의 한국적 맥락
    헌법 개정과 1987년 헌법의 등장
    양 김의 분열, 재야세력의 분열, 지역의 분열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그 결과
    민주화의 성공, 민주정부 수립의 실패
    지역주의 정치의 고착

    07 민주화 이후 민주개혁의 성과와 한계
    야대여소 국회와 5공청산의 추진
    통일운동의 부상
    공안정국
    야권 공조의 약화와 ‘의사 민주화’
    민주화운동 조직의 새로운 결성과 재편

    08 1980년대 남북관계와 경제·사회
    1980년대 중반의 남북대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추진
    경제안정화 정책과 ‘3저 호황’
    주식·부동산 투기 열풍과 ‘중산층 신화’
    대규모 권력비리와 정경유착
    탈정치의 ‘스포츠공화국’
    대중문화와 대중조작

    에필로그_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로
    민주화 이후의 보수화: 3당 합당과 5월투쟁
    탈냉전과 남북관계의 진전
    장밋빛 환상과 경제 현실

    부록
    미주
    참고문헌
    이 책에 쓰인 사진의 출처
    찾아보기

    저자소개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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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연구분야는 한국 현대정치와 민주주의이다. 주요 저서로는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주의](공저), [한국정치와 비제도적운동정치](공저), [한국민주화운동사 3](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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