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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세상의 발견자 콜럼버스와 산타마리아호 종의 비밀[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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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

    이것은 결코 평범한 전기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정형화할 수 없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콜럼버스라는 인물을 세 가지 측면에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첫째는 장점과 단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콜럼버스이다. 그는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문에 높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가문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그에게는 일생을 함께 해준 친구도 있었고 또한 적도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의복, 그가 읽었던 책과 가족들의 면면을 통해 그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이해하고 남달리 까다로운 그의 성격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생존을 위한 그의 투쟁, 육체적 질병을 딛고 일어선 그의 승리,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직위와 특권을 온전히 큰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그의 고집 또한 인간 콜럼버스의 모습이다.
    꾸밈없는 모습의 인간 콜럼버스를 만난 뒤에는 위대한 선원으로 발전해가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콜럼버스는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경험을 통해 항해술을 익혔다. 젊은 시절 그는 지중해 해안을 누볐고, 후에는 아프리카와 북유럽을 항해했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항해들 외에도 그는 수많은 바다 여행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는 여러 척의 배를 잃었고 폭풍을 겪었으며, 폭동을 일으킨 오만한 그의 선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다. 또한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메이카에 난파당하기도 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총독의 직위와 지배권을 누렸던 시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콜럼버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선원으로서는 훌륭했지만 통치자로서는 그렇지 못했던 콜럼버스는 1500년 산토도밍고에서 진행된 재판 결과에 따라 족쇄를 차고 스페인으로 송환된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심층적 조사 자료들은 그의 열정을 부채질한 동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특별한 도움을 준다. 그는 왕과 왕비에게 대항하려 했던 것일까? 그는 과연 신세계 원주민들의 개종을 금지했을까? 마지막으로, 실망에 빠지고 병에 시달렸던 그의 인생 마지막 2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 속에서도 오직 신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꿈꿨고 그를 인도로 안내할 해협을 찾아내고자 하는 꿈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당신은 콜럼버스에 대해 얼마나,
    또 어떤 면을 알고 계십니까?

    마치 잘 아는 사람인 듯 이야기하는 콜럼버스의 생에 대해
    그리고 그의 인생과 인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관련된 기록물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지휘 하에 항해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항해에 대한 기록은 불완전하다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신세계에서 수준 높은 생활을 영위한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1493년 이후, 그는 안토니오와 베르난디노라는 두 명의 개인 재단사, 가르시아라는 과자 제조인, 두 명의 집사와 목사 한 명, 그리고 수많은 하인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인들의 수는 너무 많아서,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이 직접 개입해 그 수를 줄이도록 해야 했다.
    최근 발견된 수많은 기록물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아마도, 1500년 프란시스코 데 보바디야 수사 법관이 산토도밍고에서 콜럼버스 형제들에 대해 작성한 수사 보고서 사본일 것이다. 이 보고서로 인해 콜럼버스 형제들은 직위를 박탈당하고 스페인으로 송환되었다. 이것은 철저하게 검토해야 할 자료로, 그 작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독이 제노바 출신이며 그 아버지는 직조공이었음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최초의 기록은 다름 아닌 제노바 공증인들의 손에서 태어난 공문서 속에서 발견되었다. 콜럼버스 가문은 그들의 국적이 언급된 것에 분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비천한 출신’이라는 보고 혹은 소문 때문에 분개했던 것이다. 이 문서에는 당황스럽거나 혹은 의심스러운 또 다른 문제들도 담겨 있는데, 그것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또 다른 자료들이 없기에 그것은 결국 미해결 문제로 남게 되었다. 스페인 왕과 왕비는 막 싹 틔우기 시작한 식민지에서의 그의 강력한 지위를 박탈해야만 했는데, 그것이 그의 적들의 ‘질투’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콜럼버스는 훌륭한 제독이었지만, 동시에 형편없는 총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 콜럼버스의 인생에는 결코 풀지 못할 수수께끼 같은 면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서명이다. 가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세울 수 있지만, 정확한 해독의 열쇠를 찾기도 전에 그의 기묘한 서명에 담긴 의미를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 될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책의 여백에 남겨진 애매모호한 글들 역시 마찬가지다. 암호의 규칙을 모를 때에는 아무리 암호를 풀어보려 노력해도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세 장은 콜럼버스라는 인물을 세 가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인간으로서, 선원으로서, 그리고 총독으로서의 콜럼버스이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존재했던 세 가지 측면으로, 이를 통해 이 인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자세히 기술하고자 했다. 콜럼버스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고, 전혀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현실을 몸소 겪으며 배워나갔다. 결국 견습 선원으로 해안을 항해하던 어린 소년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제독이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식민지 모험의 일부를 관리하는 사업가로서의 새로운 인생과 신세계라는 너무나 독특하고 낯선 식민지를 지배하는 총독으로서의 힘겨운 지위에 적응해야 했다. 네 번째 장에서는 그의 말년을 다루었다. 권력과 건강을 모두 잃어버린 그는 다른 활동에 전념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전문적인 학술서가 아니다. 이 책이 읽기 쉽고 흥미로운 글과 그에 곁들여진 놀라운 삽화로 독자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길 바란다.

    목차

    서문 | 위대한 모험가의 삶, 그 비밀과 진실

    제1장 인간 콜럼버스
    제노바에서 태어나다
    콜럼버스의 일생
    콜럼버스의 가족
    콜럼버스의 친구들
    안달루시아의 귀족들과 아라곤 왕국의 신하들
    루이스 데 산탄겔
    콜럼버스의 여성 친구들과 하인들
    콜럼버스의 이탈리아 친구들과 적들
    콜럼버스와 베스푸치
    프란체스코 데 바르디
    콜럼버스의 제노바 친구들
    노바라의 가스파레 고리초 수사
    존 데이

    제2장 항해사 콜럼버스
    지중해에서의 연습 시기
    동양과 대서양을 향한 이끌림
    포르투갈과 스페인 대서양에서의 무역
    콜럼버스의 계획
    산타페 협약
    신세계를 향해서
    뱃사람의 직관

    제3장 총독 콜럼버스
    나비다드의 재앙
    도시 건설
    힘겨운 시작
    토착민들과의 관계
    총독의 몰락
    소송 진행

    제4장 말년의 콜럼버스
    생활 스페인으로 돌아오다
    회복을 향한 열망
    절망적인 편지들
    마지막 여행

    제5장 산타마리아호의 종
    매혹적인 심연
    첫 번째 시도
    산살바도르 난파선

    색인
    참고도서

    본문중에서

    콜럼버스는 또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매력을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할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 자신을 최상의 모습으로 남들 앞에 내보일 줄 아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도 공허한 약속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설득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스페인의 왕과 왕비에게 신대륙 탐험이라는 그의 혁신적인 계획을 ‘팔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 매혹적인 설득가는 왕과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페르디난드 왕이 사냥에 사용하거나 ‘그의 왕자들에게 하사할’ 매를 손에 넣게 되면, 콜럼버스는 잊지 않고 이사벨라 여왕에게도 각종 보석과 금, 진주 등을 정중하게 선물했다. 그는 융통성을 발휘해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적응했고 실패조차도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492년 크리스마스 즈음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잃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잘못도 아니었고 선장의 잘못도 아니었다. 열심히 망을 봐야 할 시간에 깜빡 잠들어버린 부주의한 어린 선원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는 “신께서 배를 이곳에 묶으신 것은 우리가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을 결국 찾지 못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아직 열매를 볼 수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므로 그저 적당한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맹수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미리 눈치 채고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만큼의 황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원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콜럼버스는 불평과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처한 그 당시의 상황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운명이 지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뒤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인내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대한 몽상가였던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비록 내게 힘이 부족해 이렇게 쓰러지지만, 내 영혼의 강한 의지만은 절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의지력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에 갈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콜럼버스를 말해주는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콜럼버스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또한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독실한 신앙심에 대한 증거로 라스카사스는 그의 편지가 언제나 “성자와 성모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Jhesus cum Maria sit nobis in via)”이라는 짧은 기도로 시작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그의 기록에 의심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편지들 백여 통 가운데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내는 단 한 통의 편지만이 위와 같은 기도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왕에게 보낸 편지를 포함한 모든 편지에는 그의 몇몇 전기 작가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십자가 모양이 그려져 있다.
    콜럼버스는 신앙심이 두터운 엄숙한 인물이었지만, 접대를 위한 만찬에는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이나 배를 찾아온 추장들과 함께한 식사 장면을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음식에 탐욕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그저 생명유지 수단일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데에는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비록 서투르기는 하지만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그 맛을 당근이나 밤과 비교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놀라운 풍미’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거나 ‘여태 먹어본 것과는 매우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개머루의 과즙이 풍부하고 대추야자의 맛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새로운 음식들 중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원주민들의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빵이었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나는 참마와 쑥의 일종인 아예스(ajes)라는 식물로 만들어지며, “매우 하얗고 맛이 좋았다.” 1493년 1월 13일 카스티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그는 빵과 가공한 생선 요리, 그리고 구아카나가리가 선물해준 오락거리와 함께 아예스를 배에 실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 중 행여 부족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다.
    (/ pp.25~26)

    세 번째 항해
    출발 : 산루카 데 바라메다, 1498년 5월 30일. 귀환 : 카디스, 1500년 11월 20일
    두 번째 항해 후 콜럼버스의 주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인기는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협약에 따라 왕과 왕비는 시민 개인에게도 탐험을 허가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세 번째 항해를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탐험에서는 필요한 수만큼 지원자를 모집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 항해를 위해 필요한 330명의 선원을 모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도제국은 기대했던 부를 내놓지 않았고 식민지에서의 삶은 힘들고 괴로웠던 것이다. 식민지 이주자들은 새로운 땅에 적응하지 못했고, 기아와 질병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어 그 수가 줄어들었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사면을 약속하는 대신 그들을 인도제국으로 추방한다는 법적 문서들에서 인원 부족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탐험대를 구성한 226명 중 살인자로 확인된 사람은 겨우 10명에 불과했다. 탐험대는 70명의 궁수와 50명의 보병, 20명의 노동자와 지방 사람들, 18명의 관리와 15명의 선원, 6명의 견습 선원, 4명의 카나리아 원주민(그들의 직업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제독의 가사를 돌볼 4명의 하인, 신부 2명과 폭격수 한 명, 소년 고수(鼓手) 한 명, 무급 심부름꾼 5명과 6명 이상의 여자들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선단을 구성한 여덟 척의 배 중, 콜럼버스는 두 척의 배를 먼저 출항시켰다. 그 지휘를 맡은 사람은 제독의 충실한 친구인 페드로 헤르난데스 코로넬이었고, 무장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배에 타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에 식민지 지휘자로 남아 있는 동생 바르톨로메오에게 한시라도 빨리 지원군을 보내, 그들이 반항하는 원주민들을 생포하고 광산 노동이나 유럽 노예 시장에 필요한 노예들을 공급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전 항해 때 이용했던 항로를 지나는 대신, 콜럼버스는 카나리아 제도를 피해 베르데 곶 항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갔다. 이전 항로보다 남쪽에 위치한 이 항로를 따라가던 선단은 1498년 8월 1일 최초로 트리니다드 섬에 도달했다. 4일 뒤인 8월 5일, 그들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콜럼버스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고, 대신 그의 집사장 페드로 데 테레로스가 가톨릭 왕과 왕비의 이름으로 새 땅을 점령했다. 8월 말이 될 때까지 선단은 베네수엘라와 트리니다드의 북쪽 해안을 탐험했고, 파리아 만과 용의 입(Dragon's Mouth), 마르가리타 섬을 지난 후 오리노코 강 삼각주에 이르렀다. 월말이 되자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히스파니올라에 도착했고, 바르톨로메오 콜럼버스가 1494년 건설한 새로운 도시 산토도밍고에 정착했다. 바르톨로메오가 이 도시에 산토도밍고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버지인 도메니코를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지만, 이 도시 건설의 주춧돌을 세운 것이 일요일(스페인어로 도밍고, 이탈리아어로 도메니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콜럼버스는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할 두 번의 반란을 진압해야 했고, 결국 죄인의 신분이 되어 섬을 포기해야 했다.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이 보낸 프란시스코 데 보바디야가 사법권을 손에 쥐게 되자 콜럼버스는 그가 진행하는 법적 절차에 복종해야 했던 것이다. 남아메리카 대륙 첫 상륙과 영토권 주장이라는 중요한 사건과 함께 점차 식민지 체계가 완성되었다. 행정적 관점에서 볼 때 땅의 분배와 노예 배당이 모두 이루어졌고, 몇 년 후 유명한 교부지(encomiendas)가 등장하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세 번째 항해에서 이용한 항로를 따라 소위 ‘작은 항해’들이 조직되었고, 전문 선원들과 사업가들이 이 항해에 참여해 점차 스페인 왕실에 병합되어가는 근처의 새 섬들을 탐험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역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1499년 알론소 데 호제다가 이끄는 항해에 참여했다.
    (/ pp.122~123)

    [수중세계] 기사에서 언급한 또 다른 갤리온선, 즉 부아르코스에서 난파당한 배의 이름 역시 산살바도르였다. 나는 기사에 제시된 날짜를 통해, 이 배가 1555년 초에 포르투갈 해안에서 침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파 지점은 현재의 피게이라 다 포즈의 건너편이었고, 당시 그곳은 부아르코스라고 불리는 작은 어부들의 마을이었다.
    1993년 나는 난파선의 잔해를 찾기 위해 피게이라 다 포즈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해안선의 독특한 형태와 구조 때문에 산살바도르가 난파한 정확한 지점을 결정하는 일이 복잡해졌다. 참고할 만한 정확한 지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기록물에는 구체적인 지점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다만 플라야 델 로리칼이라고만 되어 있었는데, 내 항해도에 그런 지명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름인 것이 확실했다. 피게이라 다 포즈에 도착한 나는 일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하지만 플라야 델 로리칼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 첫 번째 시도에 실망한 나는 포르투갈을 떠났고, 피게이라 다 포즈에 스쿠버 다이빙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되었다. 아직 아무도 개발하지 않은 분야이니, 스쿠버 다이빙 장비와 훈련 과정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면 분명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계획을 짜고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 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생각으로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마음속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그곳에 다이빙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는 것이었고, 둘째는 포르투갈에서 산살바도르호 탐색을 위한 경제적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만난 조지는 쿠임브라의 약사였는데, 스쿠버 다이빙에 이미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생 에도아르도는 다이빙 장비를 포함한 각종 스포츠 상품 가게를 운영하고 서프보드 제작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 난 피게이라 다 포즈에 도착해 그들에게 연락을 했고, 서둘러 스쿠버 다이빙 훈련 과정 광고를 준비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산살바도르호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도와 자료, 사진, 잡지에 실린 기사 등을 보여주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산살바도르호를 찾기로 결정했다.
    에도아르도는 나를 피게이라 다 포즈 도서관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역사적 문서들과 난파선에 대한 기록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페드로 데 갈라르자가 쓴 편지의 한 부분을 유심히 읽었다. 산살바도르 난파선에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그는 갤리온선이 난파한 해변 건너편에 위치한 카살 데 마린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세이사 수도원에 손님으로 묵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스페인 왕은 그에게 난파에서 살아남은 모든 물품을 회수할 것을 명했고, 근처 어부들의 집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당시에는 난파 후 해변으로 밀려온 물건을 발견하는 사람이 그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세이사 수도원은 지금도 존재한다. 다만 몇 세기를 지나며 공장으로 바뀌었고 그 후 버려져 지금은 폐허에 지나지 않지만, 난파 지점을 찾고 있는 내게는 매우 소중한 지리적 기준이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지도를 펼쳐 수도원이 마주하고 있는 해변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그토록 찾았던 플라야 델 로리칼인 것이다. 현재 그 해변은 오소 다 발레이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포르투갈어로 ‘고래의 뼈’라는 뜻이다. 해변은 직선으로 매우 길게 뻗어 있었다. 피게이라 다 포즈 근처에서 시작해 페드로고라는 작은 마을 근처의 아담한 바위 절벽까지 약 70킬로미터 거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해변 중 약 19.3킬로미터까지 지역에 집중해야 했다. 나는 먼저 금속 탐지기로 그 지역을 훑어보기로 했다. 그 주변에서 난파당한 화물선들이 남긴 작은 철조각과 알루미늄 조각, 나사와 볼트 등이 모래사장 곳곳에 흩어져 있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저녁,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에도아르도와 함께 해변을 훑고 있던 나는 금속 탐지기에서 신호음이 들리는 것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려 두 손으로 모래를 파내기 시작했다. 나는 곧 꽤 커다란 동전을 발견했고, 깨끗이 모래를 털어냈다. 아주 오래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동전에 스페인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산살바도르호가 난파당한 시대에 사용하던 8레알(스페인의 옛 은화-역주) 동전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은화는 바닷물의 산화 작용으로 검게 변해버렸지만, 새겨진 글만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카롤루스(샤를 5세)와 요한나, 왕과 왕비’라는 글귀였다. 샤를 5세는 산살바도르 난파 당시 왕위에 있던 인물이고, 따라서 내가 경탄하며 바라보고 있는 이 동전은 바로 그 배가 운반하던 동전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했다.
    다음 며칠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해변을 찾아갔고, 나는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씩 금속 탐지기로 모래사장을 탐색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금속 탐지기로 해변을 훑고 있는 내게 한 어부가 다가와 동전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백여 개의 동전을 찾았는데 아무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 집 주위 울타리 장식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고, 나는 그의 울타리를 보는 순간, 그 옛날 산살바도르호에 실려 스페인으로 운송 중이었을 100개가 넘는 2, 4, 8레알짜리 동전에 그가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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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수엘로 바렐라(Consuelo Varela)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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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그라나다에서 태어났고, 현재 스페인 세비야의 서반 아메리카 연구 대학(Escuela de Estudios Hispano Americanos)에서 종신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연구는 아메리카 대륙 정복 초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콜럼버스와 베스푸치는 이러한 그녀의 연구 주제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의 저서로는 [콜럼버스와 플로렌스 사람들(Colombo e i Fiorentini)], 아이랄디(G. Airaldi)와 공저한[카스티야의 이사벨라 : 권력을 향한 확고한 움직임(Isabella di Castiglia : Una ferrea vocazione al potere)], 타비아니(P.E. Taviani), 질(J. Gil)과 공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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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토 마자라(Roberto Mazzara)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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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바레세 지역의 작은 마을 카스트론노에서 태어났고, 수력 공학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전문 스쿠버 다이버인 그는 호수와 바다의 기저를 탐험하는 일에 몰두했고, 이탈리아 마지오레 호수에서 여러 번 난파 지점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1994년 그는 포르투갈 해안에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산살바도르호의 잔해를 발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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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불어불문학을 복수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리버풀 종합단과대학과 프랑스 브장송 CLA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청소부 밥》, 《소문난 하루》, 《마담 보베리》, 《포드 카운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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