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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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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허영철
  • 출판사 : 보리
  • 발행 : 2006년 07월 05일
  • 쪽수 : 392
  • ISBN : 898428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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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따뜻하고 해맑은 인민의 수호 전사,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2000년 극적인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이루어지면서, 아니, 그 이전에 6·15 공동선언을 비롯해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이제까지 역사의 뒤에 묻혀 있던 많은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이 책들은 깊은 감동과 가르침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수라는 커다란 삶의 무게에 눌려 조금은 딱딱하고 읽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딱딱함과 무게를 버리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을 작은 결 하나 놓치지 않고 다채롭고도 따뜻하게 담아냈다. 여섯 개의 장과 여섯 개의 인터뷰, 촌철살인의 미니 인터뷰, 남북을 아우르는 각주,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별첨 표까지, 다양한 구성 속에 저자의 이야기는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철학서처럼, 때로는 흥미진진한 역사 평전처럼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 분단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건너 온 허영철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새롭게 읽는 한국사로서 자리 매김 된다. 읽다 보면 손에 땀이 고이고, 가슴이 촉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하면서 저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사의 행보를 가장 생생하고 의미 있게 경험할 수 있다.

민중이 쓴 민중의 역사

이 책은 무엇보다 현실에 가장 뿌리박고 있는 민중이 바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책에는 유명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인민군대를 통괄하는 사령관 김일성보다는 북녘 인민위원회 작은 리의 위원장이 더 중요하게 등장하고, 남녘의 최고 권력자였던 대통령 박정희보다는 삶의 고단함에 떠밀려 삯바느질로 생계를 잇고 있는 소꿉동무가 더 크고 따뜻한 시선을 받는다.
바로 그렇기에 허영철의 이야기는 더욱 소중하고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민중의 눈높이에 닿아 있는 사람. 덧칠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자신이 본 것만을 솔직하게 구술하고 기록하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 그렇게 우리는 저자인 허영철을 따라 일제시대, 한국전쟁, 정전협정과 남북분단, 그 뒤 4·19와 5·16, 5·18 광주 항쟁, 그 빛났던 6월 항쟁과 6·15 선언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고’ 뜨겁게, 가장 소박하고 순수한 민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36년의 긴 수감 생활을 하기까지
1920년에 태어난 허영철 선생은 올해로 87세가 된다.

전라 북도 부안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육체노동에 단련되었고, 일본 유바리 탄광과 아오지 탄광에서도 일했다. 1945년 해방이 되던 해 남로당에 입당, 초보 노동당원으로서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부안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9월에는 당의 소환을 받아 북으로 가 중국 송강성에 있던 중앙당학교에서 간부 교육을 받고, 황해도 장풍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가장 민중과 가까운 조직인 인민위원회 일을 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뒤, 허영철은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1년 만에 체포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36년의 긴 수감 생활을 거쳐 마침내 1991년 출소해 지금에 이른다.

이 보다 더 생생할 수는 없다!
육필 원고와 인터뷰, 형무소 기록들로 만나는 허영철


짧게 적은 허영철 선생님의 연혁은 얼핏 다른 장기수 선생님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과 북에서 모두 인민위원장을 했다는 드문 경력과, 보통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밑바닥 기층 민중으로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을 한 번도 비껴가지 않고 함께했다는 점에서 그이의 삶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그런 허영철의 삶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은 허영철이 자서전 형식으로 직접 쓴 육필 원고 여섯 개와, 그것을 중요한 시기마다 마무리하는 인터뷰 여섯 개로 구성되었다. 인터뷰는 독자들이 허영철의 삶에 좀더 쉽게 다가가게 해준다. 가장 순수한 영혼을 지녔던 한 노동자의 삶을 파란만장한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과 함께 풍성하게 그려낸다.
또한 제5장에서는 되풀이되는 비슷한 증언의 틀을 벗어나고자 대전 국가기록원(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들로 과감히 본문을 대신했다. 곧 ‘좌익 재소자 사상동향 카드’나 면회 기록부, 서신 기록부 들이 그것이다. 형무소 기록들을 통해 새롭게 허영철의 삶에 다가가 본다. 특히 허영철의 삶을 함께 짊어가야 했던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을 서신에서 잘 엿볼 수 있다.

목차

제1장 : 허영철의 출생에서 해방 전까지(1920-1945)
제2장 : 해방된 뒤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1945-1950)
제3장 : 한국전쟁 발발 뒤부터 북에서 인민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기(1950-1955)
제4장 : 남파되어 피체되기까지(1952-1955)
제5장 : 36년에 달하는 긴 수감 생활(1955-1991)
제6장 : 출소해서 지금까지(1991-2001)

본문중에서

1980. 1. 22.
발신 : 아들 허진

아버님, 사상은 인간이 인간의 편의를 위한 방법이고 도식일 뿐, 인간의 사상을 위해서 존재할 수 없으며 사상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됨은 명확한 것이 아니겠어요.
희망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고 했듯이 희망이 없는 삶을 어떻게 삶이라 하겠습니까. 또한 삶이 없고서야 무슨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물론 이제사 전향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생각이 되시겠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제는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내일을 희생하는 것이 되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버님, 이제 연세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하루 빨리 마음을 돌려서 남은 여생을 함께 살 희망을 가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음 서신 드리고 이만 줄이겠어요. 송금 2만 원.
(/ p.297)

1980. 1. 30.
수신 : 아들 허진

노쇠했지만 아직 살 수 있다면 여생이라도 함께 살고 싶다는 충정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진아, 나는 세상에 많은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이란다. 나도 너희들과 같이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사는 이 민족의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진아, 혼자서 슬퍼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없다. 그러기에 조국의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요, 이 땅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요,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반적 과업이다.
나도 인생의 목적이 사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당장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오늘 이 민족 앞에 제기된 과업은 조국 통일이다. 반드시 공산주의일 필요는 없다. 나는 무엇보다 통일을 갈망한다. 내 사상이 오늘의 삶에 장해를 주지 않는다. 진이 엄마와 함께 건강한 생으로 자기 직무 충실하기 바란다.
(/ p.29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20~2010
출생지 전북 부안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20년 전라북도 부안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철이 들면서부터 고향을 떠나 노동자로 일했다. 해방 후 부안에서 남로당과 청년단체 활동을 하며 서서히 혁명가임을 자각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부안군과 황해도 장풍군 등에서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4년 8월 공작원으로 남파되어 1955년 7월 하순 체포됐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로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36년을 꼬박 살고 1991년 2월 25일 출감했다. 2000년, 6·15선언으로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이루어질 때, 북으로 가지 않고 남쪽에 남아 고향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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