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했다.
누군가에겐 하룻밤 술값으로 나가는 100만 원이라는 돈이,
누군가에겐 가방 하나 값도 안 되는 100만 원이라는 돈이
그녀들에겐 하루 10시간을 넘게 꼬박 서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는 사실이.
더럽고 치사해도 감정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고 굽신대며 비굴함을 참아가며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는 사실이.
하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동시에 화가 났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에.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더더욱.
 

비정규직, 계약직.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고, 난 그런 굴레를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이제야 그녀들의 모습이 기억에 턱턱 박힌다.
명절에도 집이 아닌 일터에 나와 물건 값을 찍어주던 그 언니.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 김을 맞으며 냉방도 안 되는 식당에서 밥을 퍼주던 그 엄마.
‘와~ 여자 기사님이네요.’라고 신기하다는 듯 말하던 날, 그 차를 몰던 중년의 아줌마.
그깟 한 끼 사 먹으면 될 걸 난방도 시원찮은 병원 복도에서 도시락을 열던 간병인 아줌마.
그리고 거리에서, 식당에서, 학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봐 온,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는 그녀들이. 
 
그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내가 부끄럽다.
동시에 나도 얼마든지 비정규직, 계약직의 굴레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린다.

고용을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 최소한의 인격과 자존심마저 세워주지 않는 이 나라를 믿고 그래도 가족을 위해,
내 자식을 위해 설움을 웃음으로 애써 감춰가며 일하는 그녀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힘내시라는 응원도, 살다 보면 분명 나아질 거라는 빈말도 그녀들에겐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이 나라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그녀들을 법적으로나마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기만을 간절하게 빌어볼 뿐.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먼,
그래서 그녀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험난할 것을 알기에 난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충격에 빠진 마음을 가눌 겨를도 없이 북한의 갑작스런 핵실험 소식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다. 그네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초상집에 폭탄을 던진 격'이라는 비난과 분노는 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국가의 사생활》은 공교롭게도 그런 미묘한 감정과 맞물릴 수밖에 없었다. 진작에 읽고도 쉽게 평을 남길 수 없었던 이유도 복잡한 머리, 아니 머리보다 복잡한 가슴 때문이었다. 그냥 어둡고 복잡한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 그런데도 전혀 기쁘다거나 좋지만은 않은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앞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문학상의 수상집으로 기억되는, 언젠가 읽은 단편 <레몬트리>가 유독 기억에 남았고, 그 때문에 나에게는 <레몬트리>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이 작가의 신작 《국가의 사생활》이라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 통일한 지 5년이 지난 2016년.
모두가 꿈꾸는 통일 한국의 평화로운 모습을 상상했다면 아웃. 서울의 밤은 지옥 그 자체다. 어둡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가 아닌 둘이다. 밤을 지배하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살인과 마약이 난무하고, 총기 소지도 가능하다. 부패한 경찰과 폭력 조직도 활개한다. 그리고 그 안에 통일된 대한민국, 하나이지만 여전히 두 개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고, 사건은 종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 벅참을 마주하며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기대보다는 또 어떤 어둠과 갈등의 길로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고통과 악몽 앞에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영화 같은 생생함은 읽는 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이기에 나올 수 있는 작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기에 한번 읽고 덮을 수 업는 작품. 도발적이고 강렬하다는 말로 정리하고 끝내기엔 아프고, 무섭고, 소름끼치는 미래의 모습을 담아낸 것만 같아 뒤가 영 찜찜하다.  

모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똑같은 소재로 이북 작가의 시선에서 이 작품을 쓴다면?"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국민 요정 김연아도 빵을 좋아한다지 않는가? ^^
하지만 나처럼 손으로 할 줄 아는 거라곤 밥 먹는 일밖에 없는 사람에게 손재주, 아니 빵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느즈막이 일어나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슴슴한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나른한 오후, 녹차와 함께 잘근잘근 씹는 달콤한 빵의 매력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커피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고, 녹차만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는 순간이 빵이 있어 가득 채워지고 완전해지니 말이다. 
문제는 빵의 달콤함에 취한 나머지 아름다운 여인이 긴 스커트를 입고 뒷좌석에 바케트를 가득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광고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된다는 것. ^^  
 
이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카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말 그대로 검증된 빵들만 모아 놓았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간식용 쿠키에서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발효빵, 소중한 우리 가족을 위한 파티용 케이크,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카페 디저트, 그리고 주는 이의 마음은 물론 받는 이의 마음에 기쁨까지 더해 주는 선물용 빵까지 정말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 가능한 빵과 레서피가 함께 들어 있어서 보는 내내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성의도 성의지만 내 손으로 직접 고른 재료로 만든 안전한 빵이라는 데 더 의미를 주고 싶다. 날이 갈수록 먹거리에 대한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안전한 먹거리로 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에 이 책을 펴든 것이 유일한 실수였다고나 할까. 하마터면 그 밤에 신반을 신고 아직도 문을 연 빵집을 찾아 헤맬 뻔했으니 말이다.

언제 들어도 달콤한 그 이름 빵. 비록 지금은 눈으로 먹는 데 그치지만 언젠가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빵 만들기에 도전, 입으로도 그 행복함을 즐기게 될 그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