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소세키- 그 후

p. 350

2013.01.23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 마음 등등은 유명해서 제목만이라도 알고 있었지만 ‘그 후’는 다소 생소한 작품이었다. 여기서 ‘그 후’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데, 소설의 끝장을 넘긴 후에 과연 다이스케와 미요코는 어떻게 되었는가. 또는 히라오카와 미요코가 도쿄로 돌아오고 난 그 후를 뜻하는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제목의 and then을 이 두 개의 의미로 봤다.

 

고등유민. noblesse nomad. 고학력의 한량.

이 극의 주인공인 ‘다이스케’를 뜻한다. 그는 생활비를 위한 노동을 천박하며,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는 인물로 정작 자신은 집에서 자고싶을 때 자고, 또 심심하면 나가서 산책하는 한마디로 ‘게으른’ 인간이다. 오사카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도쿄로 돌아온 자신의 친구 히라오카와 ‘노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인 다이스케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가까워서 히라오카가 그랬듯이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실패했지. 그러나 실패는 했을망정 아직 일하고 있어. 또한 앞으로도 일할 생각이지. 자네는 내가 실패한 것을 보고 비웃고 있어- 실제로 비웃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비웃은 셈이나 마찬가지지. 다시 말하건대 자네는 비웃고 있어. 그러나 그러는 자네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잖은가? 자네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달리 말하면 의지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지. 의지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왜냐하면 인간이니까. 그 증거로,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내 의지로 인해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는 확증을 가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 바로 그런 점에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자네는 단지 생각만 하고 있어. 생각만 하다 보니 관념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따로따로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는 거야. 이런 엄청난 부조화를 감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크나큰 실패가 아닐까? 왜냐고? 내 경우 그런 부조화를 겉으로 드러내지만, 자네의 경우는 속에 감춰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사실 그 정도를 따지자면 겉으로 드러낸 만큼 내가 자네보다 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도 나는 자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자네를 비웃을 수가 없어. 아니 비웃고는 싶어도 세상 사람들은 비웃어서는 안된다고 하겠지.’

 

- p.101

 

히라오카의 이 말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이해 못하는 부르주아 지식인 다이스케를 그 누구보다 더 잘 분석한 일침이 아니었나. 먹고 노는게 일이면서 자기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며 다른 이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다이스케가 나도 이해가 안되고 비호감이었기에 깊이 와닿았다.

 

당시 사회가 지주들이 자본주의에 합류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사업을 키워왔고, 다이스케의 아버지 또한 그런 인물이다. ‘배짱’ ‘성실’을 중시하지만 정작 자신은 부정한 방법도 서슴치 않는 모순된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nomad마냥 사회라는 틀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주인공.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원조 없이는 돈 한푼 벌줄 모르는 모순된 인간이다.

 

사회와 가족이라는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죽은 옛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에게 다시 연정을 품게 되는 동력은 역시 ‘연민’이 아닐까. 그녀의 처지가 점점 더 불행해질수록 더욱 갈구하게 된다. 친구의 아내를 빼앗으며 본성에 맞서는 ‘의지의 인간’- 그는 여기서 이 의지의 인간을 자신의 아버지나, 형과 같은 부류로 본다.- 이 되기보다는 ‘자연의 인간’이 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하지만 그렇게도 경멸하던 ‘의지의 인간’인 집에서의 지원도 끊기고, ‘미치요’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구하러 집을 나서는 주인공. 그렇게도 경멸하고 비난했지만 결국 ‘자연의 인간’이 되면서 또한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게된 것이다. 과연 ‘그 후’의 이 둘은 행복했을까..

 

‘평소 다이스케는 만일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인간은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서 금전상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면 그는 싫어도 다이아몬드를 내던지고 감자에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는 자연으로서의 사랑만이 남을 뿐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남의 아내였다. ’

 

p.229

 

번역도 잘되어 있고 오랜만에 읽은, 정말 오랜만에 읽은 일본책!!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철부지 서른살 부르주아의 뒤늦은 사랑.

다섯째 아이’ 도리스레싱

p.189 민음사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1월 25일 완독

 

1988년 출간된 책으로, 극 중 배경은 1960년대 영국 시골마을의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너무나 평범해서 어디에 두어도 흡수될 것 같은, 안개같이 희미한 여자 ‘해리엇’과 자신의 본성과는 달리 애써 유쾌한 척하며 누구나 좋아하는 ‘데이비드’의 만남. 그리고 이 둘은 빠른 시간 안에 부부가 되고, 호텔같이 큰 집에서 여덞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데이비드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해리엇 이었기에 이 둘이 바라는 행복이 그러했으리라. 첫째 아이 루크를 갖고, 둘째, 셋째 그리고 넷째 귀염둥이 ‘폴’을 갖게 된다. 쉼 없이 새로운 생명은 탄생하고 처음엔 축복받았으나, 이제 은연중의 친척들은 그들의 ‘무책임함’을 비난한다. 그리고 생겨난 다섯째는 전혀 기대하지 않던 존재로 엄마의 외면을 받는다. 그녀의 배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의 요구를 거부하는 해리엇. 그리고 부정한다. 이때부터 행복했던 한 가정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싸이코패스(?)적 성향을 갖고 태어난 아이 ‘벤’. 앞의 네 아이들과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독립하려 하고 자기 힘으로 일어서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의 두 배, 세 배는 되는 양의 음식을 먹어치우며, 생김새 또한 이질적이고 비호감이다. 그의 넘치는 힘과 폭력적인 성향(?) 그리고 주체 못하는 힘으로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는 벤.

 

‘ 그 울음은 보통 아기가 기분 나쁠 때 벌개지는 것과는 달리 분노로 노르스름하게 창백해지면서 내뱉는 포효와 고함이었다.’

P.70

 

‘고약한 작은 짐승’, ‘성나고 난폭한 작은 거인’, ‘누더기를 깁듯이 조각을 붙인 측은한 짐승’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벤.

그러다 결국 가족들의 동의하에 아동 요양원에 보내지고 다시 행복해 ‘보이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해리엇은 결국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들 벤을 찾으러 요양원에 간다. 그 곳에 있는 벤은 마치 죽은 시체와 같이 창백하고 늘어져있으며, 그 비열한 초록색 눈동자는 멍-한 상태라 그마저도 일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아들을 다시 데려오고, 그녀는 데이비드와 네 자식을 저버린다. 아니 적어도 그 다섯 명의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벤이 처음으로 호감을 가진 상대가 나타나는데 바로 정원사 ‘존’. 백수로 동네 양아치 무리인데, 벤은 이들을 엄청나게 따르며 거의 밤낮을 붙어 다닌다. 그런 존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는 해리엇. 벤이 오랜 시간 집에 없자 가족들은 다시 평화를 찾지만, 이미 첫째와 둘째는 각자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 지낸다. 결국엔 셋째 제인과 넷째 폴도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벤은 반사회적 인물이 되어 언젠가 벤 또한 집을 떠나리라 장담하는 해리엇. 그리고 소설에서 내내 사건의 배경이자 무대였던 호텔과 같던 그 ‘집’을 떠나며 끝이 난다. 해리엇의 독백과 함께.

 

극 중에서 ‘브리짓’은 제대로된 가정을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해리엇과 데이빗 부부, 즉 로버트 부부를 누구보다 부러워하고 경외와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브리짓’의 모습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 불쌍한 브리짓은 가족이라는 이 기적에 꼭 매달려서 내내 거기에 있었다. 사실 데이비드와 해리엇도 그랬다. 자신의 관심이 느슨해지는 순간 신의 은총이나 선함의 계시를 놓쳐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이 소녀가 항상 조심하면서 존경하고 더 나아가 경외하는 듯한 얼굴을 할 때, 두 사람은 그 얼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을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너무 과했다. 지나쳤다. 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봐, 브리짓,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인생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올바르게 선택만 한다면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풍부하게 가진 것을 그 소녀는 가질 수 없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결국 그들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 행복이 깨져버릴까 두려워했던 것이고, ‘인생은 그렇지 않아!’에서 알 수 있듯, 앞으로의 험난한 삶을 예고하고 있다. BUT 올바르게 선택했더라면 그들의 엔딩은 달랐을 수도 있겠지. 만일 다섯째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는 전혀 예상 밖이니까 넘어가더라도, 만일 요양원에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과연 해리엇이 엄마로서의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벤을 데려옴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깨뜨린 것은 옳은 선택이었을까? 결국 가정은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고, 남편으로부터 또 자식들로부터 완전히 외면 받게 된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면 벤이 들어 올까봐 방문을 꼭 걸어 잠그는 아이들과, 문을 열어달라고 조용히 사정하는 엄마 해리엇. 그렇다고 요양원에서 벤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았을까?

 

벤을 갖고 나서부터 불행의 그늘을 알아차린 브리짓은 ‘난 이런 행복한 생활이 언젠가는 끝날거라는걸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구문이다.

 

그렇다면 벤의 존재는 무엇일까? 요새 말로 ‘사이코패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화가 덜 된 원시적인 어떤 ‘존재’자체일까. ‘네안데르탈인’ 뭐 이런걸까? 소설 뒤에 해설을 보면 도리스 레싱이 이 소설을 착안하게 된 사건은 두 가지임을 밝혔는데, 하나는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한 인류학자의 글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한 어머니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상적인 세 아이를 낳은 뒤 태어난 네 번째 딸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읽은 일이란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건 ‘벤’은 잘못된 존재나,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우리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었나.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어쩌면 남들보다 유달리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에서 데이비드와 네 명의 아이들은 ‘벤’의 존재로 인한 희생양, 그리고 엄마 해리엇의 선택-요양원에서 벤을 데려옴-으로 인한 희생양으로 간주된다. 그 중에서도 벤의 바로 위 형, 넷째 ‘폴’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폴은 히스테릭해진 엄마에게 소외되고 고립된다. 벤의 존재는 위협적이고 또 공포 그 자체로, 얇고 가는 거미줄과 같이 점점 더 마르고 신경질적인 아이로 자라난다. 결국 폴도 집을 떠난다. 남편 ‘데이비드’는 가정에서 손을 떼고 일에만 매달리는, 젊었을 적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그런 인물이 되어버린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넷째 아이가 있을 때 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가족이, 다섯째 벤의 존재로 해체되어 가는 과정. 결국 행복의 상징이자 배경인 큰 집을 떠나며 끝이 난다.

 

‘해리엇은 이 나이 든 두 여인, 강하고 끈질긴 생존자들이 인생에 대한 그들의 방대한 경험에 비추어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힐끗 보았는데, 그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비난과 비판과 혐오. 벤은 이런 감정들을 야기했고 사람들 안에 있던 이런 감정들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었다.’

P.80

 

'우린 벌받는 거야. 그 뿐이야'

'무엇 때문에?'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그렇다면 너무 슬픈 진실 아닌가  ..씁쓸.

그저 행복해지고자 했을 뿐인데, 결말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던 삶을 살게된 이들.

 

p.s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비슷한 분위기다. 음침.

제목이 확 끌려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빌리고 난 뒤에 알았다. 시리즈물이었고 내가 빌린건 3편이었음. 딱히 연결은 되지 않아서 중간 시리즈부터 읽어도 무관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제왕’ 미키스필레인 이라는 문구가 가장 와닿아서 빌렸다. 헤밍웨이의 짤막짤막하고 굵은 문체를 좋아하니까.

 

이 책의 주인공 ‘마이클 해머’는 여러 히어로물이나 추리물의 주인공들처럼 명성있는 탐정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다. 어쩌다 휘말린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책 한 권 분량 내내 뛰어다니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얽히고, 싸운다. 마초적인 인물로 극 중 그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을 죽이는데에 전혀 죄책감 같은 것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들(벨다, 코니)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고, 진범을 밝혀내려고 동분서주. 그러나 코니는 결국 죽고, 알고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진범이라고 믿어왔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 책의 가장 뒷장을 덮기 네 장 전 쯤에 진범이 밝혀진다.

 

소설의 전개는 빠르고, 해머라는 인물은 너무 고전 영화에나 나올법한 성격을 가졌다. 진중한 듯 하면서도 여자라면 껌뻑 죽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남발하지도 않는. 머리 속으로 장면들이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전개될 정도 ㅋㅋㅋ

 

번역을 급히 하셨는지 중간 중간 오역이 많았다. 정말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오역이 많은 건 처음 본다. 번역이 왜 중요한지 새삼 깨달음. 그리고 나는 이런 마초마초한 소설은 잘 안맞는구나 또 한번 되돌아봄..... 책을 읽으면서 이래저래 사건 조합하느라 머리 아픔.

 

전 세계적으로 2억부 가까이 팔렸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 검색을 해봐도 뭐 나오는 건덕지가 없었다. 가벼운 문고본(페이퍼백)이 유행하면서 인기가 높아진 작가라고 하니, 흐름을 잘 탔던 듯 하다. 아무튼 ‘밀리언 셀러 클럽’ 표지 책들은 오다가다 많이 봤지만, 물론 표지만 ^^;;, 실제로 읽은 건 처음이다. 나름 기념비적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