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한순간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일시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TV나 영화,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진정한 사랑'이란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요즘 나의 관점이다.
못 보면 죽을 것 같이 항상 그립고, 떨어져 있으면 죽을 것 같이 항상 아픈 열정적 사랑. 평생 서로만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헌신적 사랑. 사랑하는 내내 불꽃과 같이 열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미지근해진 감정에 '정'이 덧대어져 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사랑. 그런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랑은 믿지 않는다. 사람이란 너무나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쉽게 변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런 마음 상태인데, 왜 내가 이런 사랑 이야기를 찾아서 보게 된 것일까?
'없어, 없어'라고 부인하면서도, 사실 이런 사랑이 있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 사랑을 믿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누군가와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은 이런 마음들 때문일까?
'러브 온 더 로드'는 두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혈연이라는 매개채로 연결된 두 명의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첫번째 남자, 레오는 머나먼 남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버스 사고. 그것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사고'였지만, 레오는 자신이 버스의 '그 자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인도했다는 사실에 자책한다. 만약 엘레니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만약 그들이 버스를 놓쳤다면, 죽음은 엘레니를 스쳐지나갔을 것인가? 어떤 답도 명확히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직면한 레오의 모습에 동화가 되어 내 마음도 슬퍼졌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괴로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감사한 일일 것이다. 나의 존재가 그만큼 가치있는 한 사람이 나의 곁에 없다면, 나의 일생은 얼마나 쓸쓸할까... 나도 누군가에게 엘레니와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면, 그것은 나쁜 생각일까?
두번째 남자, 모리츠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전쟁터로 떠나왔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끝에 돌아온 고향에서 그가 본 것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저자의 할아버지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에필로그에 소개된 이야기를 보자니, 짧은 글이지만 '사랑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이 아니겠는가...
42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에 피비린내나는 상처투성이의 사람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배경등이 물씬 느껴지는 소설이었지만 두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전개방식 때문인지, 진한 사랑이 담겨져 있어서인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소설과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 것 한가지가 있다. 버스를 탈 때는 가운데에 앉아야 가장 안전하다는 것. 최근 있었던 버스 사고 때문인지, 버스를 탈 때마다 이 말이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남이 안타깝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해 한 남자를 사랑했고, 사랑 받아 행복했을 엘레니가 부럽다.
나도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정말 이런 사랑이 존재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느끼고 싶다.
'살아. 아름답게 살아.'
그래, 살자. 아릅답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