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은 기술이 아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

여보, 내 말에 상처 받았어?

[커뮤니케이션북스 리더]

   인간이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자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렇다면 말도, 문자도 없던 원시시대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언어적(verbal) 커뮤니케이션과 비언어적(nonverbal)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진다. 직접 말을 함으로써 소통할 수도 있고, 행동이나 제스쳐, 표정, 태도 등을 통해서도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소개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왔을 때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인연 만나실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은 '난 니가 싫어'라는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이고, 소개팅 상대가 열심히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턱을 괴고 있는다면 이것은 '지루해, 재미없거든?' 이라는 의미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러이러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통을 잘 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있다. 다원화, 복합화 된 사회에서 상대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어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통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나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잘' 말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말하기 방법에는 '말(verbal)' 뿐만 아니라 행동, 표정 등에 반영되는 '마음(nonverbal)'까지 포함됨을 알아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여보, 내 말에 상처 받았어?' 는 그러한 말하기 방법을 부부, 연인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상대방 앞에서 듣기 좋은, 괜찮은 말만 하는 것을 잘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상대방을 기분상하지 않게 했을 거라 생각한 말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또 같은 의미라도 좀 더 효과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전하는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게 한다. 책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무심코 말하기'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을 고쳐 '배려하여 말하기'를 하는 방법, 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정서를 고려한 '한국 부부의 말하기' 순서로 되어 있다. 대부분이 사례로 이루어져 내용이 어렵지 않고, '어? 이거 나도 자주 하는 말인데' 하는 부분이 많아 조금씩 긴장하게 하기도 한다.

[무심코 말하기]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전통적·사회적으로 형성된 차이도 포함한다. 남녀의 언어적 차이를 이러한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해보면, 여자들의 말 속에는 우회적 사고가, 남자들의 말 속에는 직접적 사고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복잡성, 감성적, 문제 공유, 원인(의도)를 중시하는 성향이 있고, 남자는 단순성, 이성적, 문제 해결, 결과 중시의 성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차이 때문에 부부, 남녀 관계에 끊임없는 마찰이 일어나는 것일까? 책은 그 원인을 남녀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어느 순간부터 받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오랜 시간 가깝고 친근하게 지내다보니 눈치로 알고 코치로 알아 '말이 필요 없게' 되는 사이가 부부, 연인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말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잊을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친하다는 것이, 혹은 편하다는 것이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책은 강조한다.

   '무심코 말하기' 파트에서는 각각의 사례마다 '남자의 사전'과 '여자의 사전'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케이블 프로그램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사전의 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부부 싸움 중 "미안해"의 의미>

* 남자의 사전 : 아내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표면적으로 "그래, 다 내 잘못이야"라는 뜻을 가지나 전적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종종 부부 싸움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데 유용하게 사용됨.

* 여자의 사전 : 변명할 말이 없게 된 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어용 말. 그것이 제대로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최소한의 진심이 담긴 말이 첨부되어야만 함. 남편이 아내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말로만 미안하다고 한다든가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경우 다툼을 더 커질 수도 있음.

  아, 이 얼마나 공감가는 내용인가! 부부 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에서도 수없이 발생하는 일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남자친구가 "미안해"라고 할 경우 오히려 더 화가 나기도 한다. '뭘 잘못했는지 알고 사과하는 거야? 대충 내 말 알았으니까 그만좀 짜증내라는 뜻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부에 닿는 사례들과 남녀의 사전을 보면 웃음도 나고, 상대방(남자친구)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남자친구의 "미안해"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게 아니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책에는 이러한 사례 및 남녀의 사전을 통해 문제를 진단한 후, 그것을 개선에 이르는 연습을 유도한다. 그 중에 한 사례이다.

<맞벌이 부부>

하루를 쉬게 된 남편이 일을 나간 아내를 대신해 가사 및 육아일을 하였다.

일을 마치고 온 아내와의 대화.

아내 : 아이들 밥은 먹였어?

남편 : (자랑스럽게) 그럼. 배불리 먹이고 공원도 데려갔다 왔어. 그리고 방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깨끗이 했어.

아내 : (못마땅하다는 듯) 그래서? 난 그거 매일 하거든?

이러한 사례 다음에는 다른 말하기 방법을 생각하게끔 빈 칸을 만들어 놓았다.

이 칸에 뭐라고 말을 하면 갈등을 막을 수 있을까를 적는 것이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대화에 대해 반성하고, 실질적인 개선책을 도모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어이구, 그랬쪄요? 잘 했네. 우쭈쭈쭈 (궁디팡팡)" 이라고 적어 주었다.

[배려하여 말하기]

   빈번히 부딪치고 쉽게 상처나는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는 말 자체에만 신경 쓰기보다,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려 읽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첫 단계는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고 다가가는 것이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친한 사이일수록 사소한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인 추임새를 넣거나 맞장구치기, 인정해주기, 눈 마주보기 등의 대화법을 통해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다음, 상대방의 입장과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감정적으로, 별 생각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가 쉽지만, 이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자극하거나 감정을 부추기기 쉽기 때문이다. 책은 조금 우회적으로, 온화하게 말하는 시도들을 통해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단계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

   '배려하여 말하기' 파트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대화의 사례별로 그것이 왜 잘못된 말하기인지, 혹은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다. 또한 마으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예시 답변도 제시하고 있다. 아래는 사례 중 한 가지이다.

<학원 강사를 하는 아내>

딸 아이의 생일인 주말에도 늦게까지 특강을 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전화를 한다.

남편 : 어, 난데. 아직 안 끝났어?

아내 : ________________

① 나 지금 바쁘니까 끊어. 금방 갈 거야.

② 아직 안 끝났어. 내가 일 끝나면 다시 전화할게.

③ 응,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나.

④ 미안해,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전화를 못했어.

위와 같은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①~④ 보기의 대화들 역시 수없이 하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 누구나 해본 적 있는 보기와 같은 말들이 잘못되었다면, 혹은 부족한 대화법이라면? 그 근거는 사례 바로 다음에 설명된다.

[한국 부부의 말하기]

  한국의 부부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속마음을 분명히 전달하기보다는 극도로 자제하는 말하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말을 저제하고, 그러면서도 말하지 않아도 배우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그에 맞게 행동해주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모순을 낳는다. 이는 부부 뿐만 아니라 한국인 본래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점잖게 말하고, 돌려 말하고, 함축해서 말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한 두 문장의 시조 속에 그토록 많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수능 등 각종 시험의 단골 출제 문제가 되어 우리 한국인의 언어능력을 측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한국인의 독특한 사고 방식이 우리의 대화법에 전제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말법은 부부간의 심리적, 정서적 거리를 만들거나 갈등을 낳는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며 이러한 절제식 말하기는 자신의 주장을 똑바로 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 혹은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도 부부 간 갈등을 만들지 않는 말하기를 하여야 한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남의 단점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고, 장점을 부각시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또는 내가 구사하는 대화는 과연 어느 쪽일까? 혹시 남의 단점을 잘 찾아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즐거워하며 얘기하곤 하진 않을까? 하지만 말이란 우리 마음이 그대로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다.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은 좋은 말하기를 하기 위한 토양, 양분과도 같은 것이다. 내 의견을 전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도리어 남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음과 말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듣기'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노력 할 필요는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몸짓과 울음과 행동으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수천, 수만, 수억가지의 크고 작은 느낌과 미세한 감정까지도 말로써 전달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자산인 '말하기'를 잘 사용하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특권을 누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 노력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음을 너그럽게 써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고, 그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많이 배워서 쓰는 것이라고 책은 마무리하고 있다.

 2010. 03. 05

커뮤니케이션북스 리더 최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