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이란 드라마를 봤다. 방영중에는 관심도 없다가 최종회가 끝나고 한참이 지났음에도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드라마 속 대사를 읽고는 주말내내 KBS 홈페이지에 접속해 눈이 빨개지도록 그 드라마를 모두 보았다. <굿바이 솔로> 도 그렇고 <꽃보다 아름다워>도 그러하였다. 보고 또 보아도, 같은 부분에서 여전히 가슴을 움켜쥘만큼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드라마를 보았다. 그 드라마를 가슴에 넣고 살 수 있다면 한동안 그리 했을만큼 난 그 드라마를 사랑했다. 그네들의 삶을 안고 또 안아주고 싶어 어쩌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게 준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감사히 여기며 할 수 있다면 오래 더욱 오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가슴 아리게 봤던 그 드라마들 모두가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저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노희경이란 이름을 머리 속에 새겼으며 그녀가 쓴 대사들을 가슴에 새겼다. 노희경이란 이름만으로 지인이 내게 이 책을 선물한다고 했을 때 너무 좋았다, 그녀의 글을 지면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에.
이 책을 내게 선물해 준 그녀의 아리송한 멘트도 한 귀로 흘려버리고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세>에서 좋았던 대사들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며 운전 중에 드라마 OST를 들으며 기다렸다. 그 책에 적힌 이야기에 내가 받을 감동과 가슴 아림 혹은 수분기 가득한 바람을 입으로 말하면 달아날까봐 혼자서 기다렸다. 며칠 뒤 책이 내 손에 닿았다. 이렇게 예쁜 책이라니. 예전에 이소라가 진행한 라디오에서 나온 <그남자 그여자>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사랑이 가득 담겨 있을라나? 제목 또한 멋지지 않은가! 이리 당차게 독자들을 유죄로 몰아버릴 수 있는 필력이 노희경에는 있는 것이다라며 책을 읽기도 전에 노희경의 책에 반하고 마는 것이다.
책을 펼쳤다. 은은한 불빛의 스탠드도 준비했으며 아로마 향초도 켰으며 새로 사 온 원두 커피를 정성스레 내려왔다. 소중히 읽고 싶었으며 단어 하나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내게 노희경의 책은 이다지도 사랑스러웠었다, 읽기도 전에.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내린 커피를 다 마셔버리기도 전에 책은 끝나버렸고 촛불은 여전히 흔들리면서 나에게 무언가 듣기를 고대하고 있것만 책은 내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책이 너무 예뻤고 작가는 너무 대단했으며 제목은 너무 멋있었던 이 책이 내게 준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동안 내가 읽은 작가들의 에세이는 어땠을까? 분명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생각을 엿본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 바로 내게 전해진다는 것, 그 감동을, 그 떨림을 설명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기대를 노희경 작가님에게 했었다. 그렇게나 가슴 아리게 하는 드라마를 쓰시는 작가님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풀어 쓰셨을지 상상만으로 행복했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노희경 작가의 첫사랑 이야기도, 부모님 이야기도, 윤여정 , 나문희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다. 드라마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책에 아쉬움이 들고 마는 건 조금 더 많이 들려주고 조금 더 깊이 보여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대사를 그대로 책에 옮기는 것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책이 채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분명 책 디자인은 예쁘고, 주인공들의 대사는 다시 봐도 가슴을 울리지만 내가 읽고자 했던 것은 보고자 했던 것은 노희경 작가의 수분기 가득한 내면이었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작가임이 분명한데 이리도 표면적인 글로 우리 앞에 책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책에 적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드라마를 통해 내게 와 닿았것만 그녀가 내게 전해주려 했던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걸 찾지 못함은 나뿐일까란 아쉬움에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