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위가 물러서지 않고 꽃샘을 부리는 요즘,
담이에게 일어난 일과 같이 우리 집 난방연료인 가스가 뚝! 떨어졌다면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유독 추운 것을 못견뎌 하는 편인데,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무심결에 잡은 문고리에 손이 쩍 달라붙어서 그걸 떼어 내느라 고생했던 일,
아침이면 찬바람 쌩한 한뎃 바람을 맞으며
얼음이 언 붉은 고무 대야의 물을 깨어 세수대야에 담고
엄마가 떠다 주신 온수 한 바가지를 손가락 끝으로 휘휘 저어가며 섞어
미적지근한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던 일이 떠오른다.
옹송그려진 몸을 펴기조차 힘들었던 추위…
잠자리에 누워서도 등짝은 따뜻했지만 이불 밖으로
하얀 입김이 고스란히 서리던 윗풍 센 흑벽 집...
그렇게 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의 나는 꼭지만 열면 뜨거운 온수가
펑펑 쏟아지고 조금만 기온이 내려간 듯 싶으면 보일러 온도를 살짝 올리기만 해도
공기가 훈훈해지는 아파트에서의 삶을 당연한 듯 누리며 살고 있다.
이런 삶은 너무나 익숙하게 누리는 것이어서 이 모든 것이 에너지의 소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담이가 겪은 것처럼,
석유가 뚝, 전기가 뚝 떨어져버리는 상황을 직면해서야 제대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은 건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미래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어느 광고의 카피로도 이용되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광고는 에너지 절약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인의 저력을 과장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
맞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나라다.
그러니 에너지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에너지 사용에 대한 자각이 떨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우리나라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해 조금 더 고심해야 할 때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그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피폭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그네들을 보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자연재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닥쳐올 수 있고, 그 속에서 문명의 이기는 한 순간에 빛이 바랜다. 추운 공간에서 담요로 몸을 둘러싸고 떨고 있는 그들을 보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손꼽히는 선진국이던 그 나라가 말이다… 리비아의 카타피가 벌인 일은 그 국민이 겪고 있는 비극적인 고통 뿐 아니라 그 나라 석유산업이 갖는 입지 때문에 전세계적인 석유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치솟는 원유값을 생각할 때 이 일은 남의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하나된 운명 공동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대체에너지 개발과 함께 우리 스스로 에너지를 적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 일. 담이 아버지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온 식구들이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약간은 불편한 삶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런 재난이나 어려움을 대처해 나갈 힘도 더 많을 것이다.
담이가 만난 외계인은 담이에게 하나된 마음을 이야기 한다.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 사랑의 마음.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는 개인의 이기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과연 그럴까?
내가 쓰고 있는 에너지의 과소비가 미래의 지구를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미 지구는 병들고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했던 ‘북극의 눈물’은 병들어가고 변해가는 지구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재난 영화도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세계인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내 나라, 나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무심코 틀어 놓고 끄지 않은 컴퓨터 전원이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비하고 있다는 것, 이빨을 닦을 때 무심코 틀어 놓은 수도꼭지가 생명과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물을 쓸데없이 낭비시키고 있다는 것. 겨울 실내 적정온도인 20도를 무시하고 따뜻할 때까지 보일러를 올려 놓고, 반팔을 입고 집안을 활보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담이가 만난 외계인이 말처럼,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 지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생명의 외침을 들을 줄 아는 마음. 그러한 마음이 작지만 중요한 순간순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님의 소설 <그 남자의 집>에서 그녀는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땅 집을 사서 이사를 한 첫날 밤, 아파트에서의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고 대부분의 일을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땅 집으로 이사한 자신의 무모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여기저기 땅 집 앞마당을 비집고 얼굴을 내민 새 싹들이 이세상 빛을 보길 참 잘했다고 저희들끼리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땅 집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화답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연을 생각하는 것은 편리한 삶보다 불편한 삶을 감내해 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면 그것을 선택함이 기쁘고 바른 일 아니겠는가! 내 안에 마음을 열어 다른 소리에 귀기울 일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이 샘솟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도 살고 이웃도 살고 지구도 살릴 수 있는 가장 큰 마음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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