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고, 온전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주인공 수린이는 엄마가 두렵고 무섭다. 고등학생이었기에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결국 일을 저질러버린 자신이 두렵고 무섭다. 또, 수술 후에 휴학계를 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두렵고 무섭다. 엄마는 그런 딸을 껴안으려 하지만, 엄마의 충동적인 실수로 떠난 아이를 미처 보내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수린이가 사물놀이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극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된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악기는 우리가 글을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오묘한 기분이다. 작가는 아주 강렬하게 아이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아이가 다시 그 날을 떠올리게 하고 그 남자를 생각하게 하며 마음의 상처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준다. 그 과정은 별스럽거나 애타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아픔을 악기로서 음악으로서 이겨내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린이도 이제는 엄마의 상처까지 끌어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나기를 맞고도, 괜찮았다면. 그녀는 이제 엄마가 되어본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아픔을 모두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성숙해질 수 있을까.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해진 갈두 오빠처럼...

 

주인공에게 갑자기 닥친 위기, 그는 어떻게 이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것인가. 불륜은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 자체에 집중하고 그 부모세대를 부각시키는 분위기를 이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가와 미츠하루 작가는 정확히 그 점을 일부러 부각시켜 작성한 듯하다. 의도적으로 부모세대에 의한 가정 파괴를 설정하여 주인공의 복잡한 시선을 담아낸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통의 청소년 문학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를 원망하고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아주 차분하게 이 상황을,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독특한 캐릭터 설정이 아주 만족스러운 이유는 감정에 휩쓸린 서술이 아니라 담담히 써내려가는 슬픔이 반갑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시선이지만 감정을 충분히 절제하고 있기에 훨씬 더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주인공을 만나고 그를 돕는 새로운 스타일의 조력자, 이모를 보며 또 한 번 당황하게 된다. 보육원의 아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슬픔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그녀를 보며 나는 작가가 그녀를 여자로 설정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만남, 관계, 결혼에 이르러 상처받고 헤어짐을 택한 그녀가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 힘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닿아서 우리를 기쁘게 한다. 두근거리게 한다.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또 다른 조력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근미 작가의 글에는 정체성을 잃은 청소년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가 존재한다. 가족, 친구, 옆집 남자, 아빠의 옛 애인까지. 이렇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아프고 더디지만 뜻 깊다. 주인공 문영이는 아이의 눈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똑바로 쳐다본다. 아이들을 대표해서, 어른들이 왜 겁을 내고 도망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혹은 상황을 버리고 떠난 것 자체에 대해 원망할 뿐이다. 작가는 아이들의 눈으로 어른들의 복잡한 생각을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청소년은 계속 흔들리고 고민하고 오해하고 궁금해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청소년이기에 상처받을까봐 숨기고 계속해서 도망치고 일찍이 단정지어버린다. 그렇게 서로 다른 수단으로 한 목적을 이루려하니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다져지고 가장 깊어야 할 것은 부모와 자녀의 사이다. 그것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자의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이것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아이에게 꿈을 강요하지 않고, 잘못된 훈육으로 상처주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관계가 형성된다.

중2병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아이들이 관심을 요구하는 시기가 거의 모두 같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조금 더 관심 받으려고 발악한다. 집에서 눈 마주칠 시간도 없는 부모에게 행동으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건 당신입니다, 라면서. 어른들은 현실을 알기에 아이들의 바람을 어리광으로 치부해 버리고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되어버린다. 아이의 외침을 유치한 사유로 단정 짓는 태도가 지금의 가정을 만들었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아이를 외로움 속에 방치하고 싶었겠는가. 결국은 세상에 맞춰 살아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었을 테지만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처럼 상처가 곪아서 폭발해버리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가정을 세운다. 새로이 세워진 가정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치유 받을 수 있다. 어른들이 현실을 이기지 못할 때, 아이들의 순수한 몸짓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때에는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