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를 쓴 작가의 산문 에세이.
우리 집 안방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미니 화단. 아파트인지라 진짜 흙을 주지도 못하고 가짜 배양토로 꽃피우고 있는 식물들. 나는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면 의레 '식물 물은 주었니?'하는 말씀이 정말 못마땅했다. 식물에게 질투를 느낀다기보다는 뭐랄까. 굳이 챙겨야만할 리스트가 한 줄이 더 늘었다는 생각에. 주말에 엄마아빠께서 그 미니 화단을 가꾸시거나 가끔씩 '어머 꽃이 피었네?'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꽃, 식물이 뭐길래 행복하게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이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그 마음이 조금씩은 이해가 간다.
그 조그마하던 씨앗이 자기의 몇 배일지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그 흙들을 헤치고 바깥으로 싹을 내밀었을 때. 그리고 그 싹이 어느 순간 자라 꽃을 피우는 그 과정을 보았을 때의 행복이란. 부모님께서는 동생과 나를 키우셨던 그 어린 시절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이 으레 젊은 사람들 혹은 현 문화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비판적 시각.
작가가 던지는 젊은 사람에게는 뻔한 잔소리가 될 수 있는 그 말들이 편하지는 않았다.
나도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나이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고민거리를 공감하게 되는지라 섣불리 그의 말에 동감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분명 요즘 사회적으로나 마음으로나 병들어 있는 것이 맞기도 하고.
하지만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당시의 현세대의 사태를 걱정해왔고, 그것이 무한히 되풀이되어 현재로 내려오는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분명 작가가 덤덤하게 내뱉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은 다가오는 정도가 나에게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매번 지나치기에 바쁜 일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따스한 시선을 나누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일곱가지 감정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하나같이 인생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따스한 그 자체다라고 대답을 주는 듯하다.
+) 자연의 숲은 홀홀히 옷을 벗는 가을과 겨울이 있지만 인간 세상의 숲은 절대로 가을과 겨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숨이 막힌다. 무엇을 쫓아 세상의 숲은 저리도 무섭게 울울창창 뻗어가고 달려가는가? 행복을 좇아서? 어떤 행복? 누구의?
차라리 모스 부호를 두드리고 싶다. 사실이다. 자주자주 당신들보다 우주가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사람들을 만나서 뻔한 개그에 의례적으로 웃고 실질 도움도 안 되는 몇몇 정보를 주고 받는체 하다가 잔뜩 지쳐서 돌아오면 나는 깊은 밤 혼자 앉아 우주를 향해 나의 상처와 고독과 남은 꿈에 대해 모스 부호를 보낸다.
당신이 단지 목표에 불과한 것들을 꿈이라고 착각하면서 숨가쁜 자본주의적 시간 속으로 내달릴 때, 우리의 오랜 꿈은 더 깊고 푸른 갈망은, 상복과 같은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우리들의 등 뒤에 따라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니 뒤돌아보라.
본성으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오늘도 나는 남은 생애의 어느 굽잇길에서 행여 '한탄'하게 될까봐, 후회하고 상처받게 될까봐 수시로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떠난다. 돌아보면 그렇게 젊은 날을 떠나왔고, 그렇게 뜨거운 꿈들을 떠나왔고, 그렇게 순정과 사랑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