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아미. 프랑스어로 '멋진남성'이라는 뜻을 가진 벨아미라는 이 소설은 목걸이, 비곗덩어리로 우리에게 유명한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이다. 모파상은 좋아하는 작가인데 목걸이에서 나오는 인간의 허영심과, 비곗덩어리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낱낱히 밝힌 것이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이다. 벨아미 역시 당시 프랑스 상류 계층의 추악한 모습과, 투기와 권력 남용이 난무하는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냈다. 세계문학전집은 언어영역을 위해 공부할 시절에는 많이 읽기는 하였으나 공부를 위해서 읽는다는 느낌이 강해 그 작품의 깊이를 알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벨아미는 천천히 작품 세계에 빠져들며 읽었다.

 

 책 표지에 보이는 것처럼 용모가 빼어난 조르주 뒤루아라는 인물이 주인공, 즉 멋진남성 '벨아미'다. 그는 시골의 보잘것 없는 가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외모를 이용해 상류 계급 여성을 유혹하고, 출세하려는 욕망에 불타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간이 주인공이다보니 당시 파리 사회의 문란한 성도덕이 여과 없이 그려지며 갖가지 인간군상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책 속 뒤루아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용하여, 결국 대부호의 딸과 성대하게 성당 결혼식을 올리며 끝맺음을 맺는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끝엔 결국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보통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악한 주인공의 해피엔드로 결말을 짓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악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릴 때 삼국지를 읽으며 마냥 선하게 나오는 유비를 좋아하지만 커감에 따라 냉철한 결단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조조에게 더 끌렸듯이 말이다. 벨아미도 조금 심하다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벨아미의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동감할 수 있었으며, 어찌보면 처음 사교계에 발을 들일 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뒤루아에게 빠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매력적인 주인공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정이 있는 여성을 유혹해 정보와 금전적인 이득을 보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여기서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은 이 잘생긴 남성에게 매달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만 나타난다. 평생 정숙하게 살아왔지만 벨아미에게 빠져 몸과 마음을 망치고 딸마져 내준 왈테르부인. 첫번째 벨아미의 정부가 되어 헤어지고 사귀고를 반복하다 마지막엔 폭행을 당하기도하나 다시 그의 결혼식에서 밀회를 약속하는 드 마렐 부인. 책 속에서 제일 능력있게 그려지지만 결국은 이혼당하고 다시 벨아미와 같은 젊은 남자에게 빠진 마들렌까지...... 모두 하나같이 잘 속고 어찌보면 우습게 느껴지는 모습도 많이 보여준다. 물론 작품속 남성들 역시 벨아미에게 이용당하고 파멸당하는 자가 대부분이다.

 

 19세기 1880년대 배금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그 전형적 인물인 뒤루아를 통해 모파상은 당시 거액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성공을 하는 것, 그리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 이것이 모파상의 자연주의 소설을 더 빛나게 한다. 당시 파리의 신문계와 정치계를 통해 혼탁한 사회와 배금주의의 한 단면을 노출하며 금전, 권력, 쾌락을 위한 투쟁이 어떤것인지 잘 보여 준 이 소설은 결국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인생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 작품이다. 따라서 매우 비관적이며 인생의 어두운 면을 가혹하게 묘사한다. 처음에 잘 읽혀지지 않던 것도 이 때문인데, 읽을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한 때 큰 유행이었던 나쁜남자들의 표본이 될만한 벨아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악하다고 느껴야되는 벨아미보다 계속 그에게 속으면서도 먼저 그에게 안겨들던 여자들이 더 바보같았다. 마치 나쁜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결말은 정반대였지만...... 난 이 책의 뻔하지 않은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중간에 한 늙은 시인의 말과, '하느님을 분명히 알지도 못하면서 하느님에게 성공을 감사했다'라는 구절 때문에 권선징악적 결말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소설은 결국 뒤루아가 어린 처녀와 결혼하면서도 정부와 뒹굴것을 상상하며 끝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책을 다 읽고 벨아미가 장인의 말처럼 국회의원, 장관이 되며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악하지만 매력적인 인물 벨아미. 역시 아름다운 남자는 위험하다. 

천년수
 난 보통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거나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주로 읽어왔다. 그런 나에게 이 책 천년수는 작가도 처음보는 작가였고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어야 될 작품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책 소개를 읽게 되었고 책 소개만 읽어보아도 이 책의 너무나도 비극적인 내용에 끌림을 느껴 읽게되었다. 사실 처음 책을 받았을 땐 왠지 읽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았었다. 책 소개를 읽었을 때에는 기분이 좀 우울해서 비극적인 내용의 책이나 영화를 접하고 싶었는데 며칠 뒤 기분이 좋아지자 기분을 망치기 싫어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지금 천년수를 다 읽은 나는 비극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책 속에서 애절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받았기에 정말 푹빠져 읽었다.

  이 책은 고토리나무라고 불리는 거대한 녹나무 아래에서 천 년 동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인생군상을 담고 있다. 천년수는 첫 에피소드에서 아이가 굶어죽어가며 뱉은 씨앗에 싹을 틔운다. 그리고 8가지의 에피소드에서 나무와 관련되지만 각각 특징을 가지고 한 에피소드에서 시대가 다른 2가지의 내용을 연관시켜 담고있다.

  8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에피소드를 뽑아보자면 우선 유리병에 담아둔 약속을 우선 꼽고 싶다. 한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 에피소드는 공습중에 도망가 천년수에 숨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같이 나오는 내용으로 몇십년 후에 유치원에서 타임캡슐을 묻으러 온다. 여기서 땅을 파던 사람들은 한 유리병을 줍게 된다. 그 유리병은 몇십년전 공습을 피해 천년수로 왔던 세이지의 것이라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반전은(사실 첫 에피소드부터 마사야가 자살할려 할 때 나무의 정령이 부추기긴 하지만) 나무에 숨어있던 세이지에게 갑자기 나타난 어린아이가 밖에서 손짓을 한다. 보통 이러한 장면이 있으면 나무의 정령이 살려 주려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장면은 몇십년 후로 넘어가 그 유리병을 파내던 화상자국을 입은 자미라가 유리병 속에 들어있던 껌을 눈물을 흘리며 씹는다. 세이지의 스토리에서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자미라 라고 불리는 잡부가 어릴적 세이지라는 것을 알고 뒤통수를 얻어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가난한 친구에게 자신도 가난하지만 소중한 것을 아끼지 않고 공습을 받는 순간까지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까봐 가방의 교과서를 버리지 않았던 순진한 세이지는 몇십년 후 유치원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이 동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 책 속의 나무들은 사람에게 무한히 베풀기만 한다고 여겨왔는데, 천년수는 태생부터가 굶어죽은 어린아이의 원령이 함께하는 나무이니 사람을 불러와 생명을 빼앗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이 책에도 비극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할매의 돌계단 에피소드에서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사는게 힘든만큼 즐겁고 유쾌한 소설들을 주로 찾게 되는데 시간을 내어 사무치는 애절함과 잔잔한 감동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겨울 이불속에 들어가 읽기 좋은 정말 감성적인 책이다.

그림자 자국...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판타지 작가 이영도님의 신작이다. 나는 드래곤라자를 2008년 여름에 접했는데 그림자 자국을 같은해 겨울에 읽었으니 드래곤라자가 처음나왔을 때 접했던 사람들에 비해 두 작품을 비교해보기 쉬웠다. 드래곤라자는 일반 판타지 책들보다 세계관이 탄탄하다. 그래서 고정팬들도 아주 많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라자의 배경에서 1000년 뒤를 그린 소설로 드래곤라자의 주인공중 하나였던 이루릴이 주요인물로 나온다.

  처음 그림자 자국을 읽었을 때 1000년 후라고 해도 시간만 지났을 뿐이지 보통 판타지 세계관처럼 중세시대 같은 배경인줄 알았다. 하지만 고귀한 엘프 이루릴이 바이크를 타고 다니고
드래곤을 향해서 비행기로 자폭을하는 그림자 자국의 시대는 근세였다. 이런 배경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테메레르에서 먼저 도입한 적이있다. 하지만 드래곤라자 속의 세계관만을 생각했던 나로서는 특유의 인사말들의 인상적이었던 각각의 종교들도 퇴색해버린 그림자 자국의 세계관이 꽤나 새롭게 다가왔다.

  책 내용을 소개하자면 아프나이델이 만든 그림자 지우개와 한 예언자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예언자는 예언을 도피했고 바이서스의 여왕은 화가로 자신을 속이고 예언자의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예언자를 이용해 시에프리너를 죽이려한다 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사실 드래곤라자를 읽었을 때도 바이서스라는 나라가 핸드레이크를 이용한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젠 완전히 싫어진 느낌이었다. 특히 왕비는 악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자신의 아들을 이용해 예언자에게 예언을 하게하고 왕을 구하기위해 아들을 드래곤에게 던져 버리기까지... 착한 이루릴과 비교가 되어서 더욱 나빠 보였다. 그리고 왕지네는 네리아의 환생이라고도 할만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예언자는 왜 왕지네를 안좋아하고 왕비를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식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드래곤라자에서 절대적인 힘을 자랑했던 드래곤들은 그림자 자국에서 너무나도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드래곤 4마리가 그림자 지우개에 지워지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드래곤 레이디가 허수아비 같은 자폭 비행기들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는 정말 드래곤이 너무 약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과거 드래곤라자에서 크라드메서와 아무르타트의 위용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해진 드래곤이 모습이었다.

  책의 가름그림이 참 인상적인데 이것은 드래곤라자 속의 예언자, 프로타이스, 아일페사스를 나타낸다. 사실 나는 처음에 이 것을 모르고 읽어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꽤나 많은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나온 이영도님의 작품이고 첫작품인 드래곤라자의 후속편인만큼 그림자 자국은 의미가 큰 작품이다. 다음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p.s 사실 처음엔 주인공이 이루릴이라길래 드래곤라자처럼 이루릴이 여행을 하며
동료들을 모으는 내용인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