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 별로였다. 진심으로 별로였다.
일기는 싸이 다이어리에다 쓰고 포도알 받으세요. 딱 그 생각이 났다. 알파벳순으로 나열된 항목에다가 객관적 지식이 아닌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으면서 생겨난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것은 정말 못 봐줄 지경이었다. 그게 무엇에 쓸모가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자신을 과시하고 싶다는 욕심에 그냥 무작정 더 많이 알고 더 특이한 것, 더 이상한 것을 알기 위해 기를 쓰는 게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릎 높이까지 쌓인 백과사전을 모조리 읽어 치운다던지, 성경에 기록된 유대 율법대로 일 년을 산다던지 하는 기행으로 유명세를 탄 작가일 뿐이라는 내 선입견이 더욱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끝까지 읽은 건 아마도 이 사람을 백과사전도 읽었는데 내가 이 얼마 되지도 않는 책을 읽는 시간낭비를 못할 것 같냐, 하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승부욕 때문이었던 듯 하다. 읽는 동안은 그 백과사전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는 작가의 행동이 지성 없이 지식만을 탐하는 현대의 교양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듯도 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이 나에게 크나큰 도움이 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의 역할, 지식의 용도에 대한 의문을 나에게 던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를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있어 지식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구가 해를 도는지, 해가 지구를 도는지. 바레인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 올림픽은 몇년마다 열리고 기네스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등등등. 물론 책에 나열된 지식들은 더욱 비주류적이고 더 쓸데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러나 지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들은 얼마나 쓸모가 있는 것일까. 천동설을 믿었던 중세와 지동설이 증명된 근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어느 날 그 지식으로 인해 갑자기 지진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그로 인해 서서히 바뀌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인식. 인식. 공부를 더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내 생각도 변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무분별하게 지식을 탐했고 지금은 지성을 숭배하지만, 이것도 한참 어린 생각일 테니까. 다만 지금에 내게 있어서 지식은 인식의 재료이다. 나도 점점 철학지상주의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p.s
이 책을 읽고 나서 브리태니커가 수록된 전자사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축 지름신 강림.
백과사전,
지식의의미,
지식의역할,
AJ에이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