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아테나이'를 세운 테세우스,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얘기할 수 없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도 '아티칼 전설 속의 위대한 영웅'에 대한 연대기는 명확한 숫자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반반씩 50인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일명 '비교열전')에서 가장 먼저 다뤄지는 인물이 테세우스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테세우스에 앞서 그리스의 입법자 뤼코르고스와 로마의 2대왕 누마에 대한 전기는 이미 발표했다고 쓰고 있으며, 로마의 시조닝 로물루스 시대까지는 기록에 근거해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테세우스는 인간의 역사보다는 신화에 의존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의 생몰연대에 대한 수치를 기입할 수가 없다. 인간의 역사이면서 신화인 양 얘기할 수밖에 없는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 테세우스는 있다. 사촌간이었던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모험담으로도 유명한 테세우스의 삶에 관해서는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기에, 이곳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이쯤해두자.

테세우스는 신탁에 따라 왕의 정치를 폐지하고 새로운 정치 체계(정체)를 그리스에 도입한 사람이다. 대중들을 아무 차별없이 모아 질서 있는 민주정치를 세운 것이 그의 가장 큰 공로로, 그리스 그리고 아네테 하면 떠올르는 민주주의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아테네에 민주주의 정체를 '도입'했다는 말은, 이미 있는 것을 적용했다는 의미에서 적절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달리 생각하면 그가 민주주의를 창안했다고 확정할 수도 없다. 어쩌면 민주주의를 '발견'했고, 무엇보다 실행한 사람으로 최초라고 할 수는 있으리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신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신들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들의 문제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어떠한가, 민주적인가, 신들의 왕 제우스의 독단에 의한 결정인가, 멀리 갈 것 없이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신들 다수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반영하는지를 잘 살피면, 거기에는 대화가 있고, 타협이 있으며, 제우스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만한 요소가 신화 속 신들과 영웅들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그 싹을 보이고 있나 그렇지 않나를 살피면 민주정체의 저작권이 오롯이 테세우스의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단초가 될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는 신화 속에 당장하는 신들과 영웅들이 배우로 출연하는데, 테세우스는 영화로치면 주인공인 경우보다는 주인공에 가까운 주연으로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딸 안티고네의 도움을 받아 방랑하는 동안 왕국에 남은 두 아들들이 테바이의 왕권을 두고 다투다가 죽었을 때에도, 아르고스에서 테바이로 출동한 일곱 장수들은 죽어서도 장례 절차를 밟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때에 이들의 장례절차가 가능하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이가 아테나이의 왕 테세우스다(에우리피데스, <탄원하는  여인들>). 오이디푸스 왕이 방황 끝에 씻김굿을 한 다음에 죽음을 맞이하는 대목(비극)에서도 테세우스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에우리페디스의 비극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인 <메디이아>와 <휩폴뤼토스>에서도 테세우스의 일생은 연관되어 있다. 먼저 메데이아의 경우, 이아손의 아내였던 그녀가 자신과 헤어지고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클레온의 딸, 클레온, 그리고 그녀와 이아손 사이에 태어난 친자식까지 살해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데, 사전에 망명을 약속받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범행은 더욱 가혹하다. 그녀에게 망명을 약속한 사람이 아이게우스로 바로 테세우스의 아버지다. 아이게우스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자식이 없다. 해서 마법의 힘을 빌어 메데이아가 자식을 낳아주기를(실제 아내로까지 맞이 한다.) 바라는 조건부 망명허용이었던 셈이다.  아버지 아이게우스도 잊고 지내던 친아들 테세우스가 아테나이를 찾아오기 전의 일이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생부를 찾는 과정을 메데이아는 방행하여 독살을 기도하기까지 한다. <메데이아>에 테세우스가 직접 등장하지은 않지만, 테세우스가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까지 얼마나 대단한 인물(메데이아)이 그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지를 미뤄생각하면 섬뜩하다. 아테나이의 왕자로 왕으로 테세우스가 겪는 이야기들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영웅담이다. 그 가운데 크레테가 친정인 두 번째 부인 파이드라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아마조네스가 친정은 첫번째 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 휩폴뤼토스와 관련된 비극에서 테세우스는 여느 작품못지 않게 당사자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파이드라가 테세우스의 첫번째 부인 소생인 의붓아들 휩폴리토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바람에 결혼한 며느리와 갈등관계에 있는, '파이드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이 비극에서 나왔다. 1964년 근친상간 주제라는 규제에 걸려 <죽어도 좋아>라는 어쩌면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겨우 개봉된 영화 <페드라>가 패러디한 비극이 에우리피데스의 <휩폴뤼토스>다. 테세우스 자신의 삶도 파란만장했지만, 왕위를 계승하기까지의 과정도 섬짓했고,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던 아들과 관련해서도 결국 아들과 왕비를 죽게 하는 등, 민주주의가 참 뜻대로 되지 않듯이 그의 삶이 그가 도입한 민주정체만큼이나 복잡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비극작가들이 테세우스(라는 캐릭터)라는 신화 인물을 애용한 이유가, 신화와 역사 사이의 경계를 그가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테세우스의 삶은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안갯속과도 같은 시기를 살아왔고, 그럼에도 민주주의 또한 아테네라는 도시국가를 세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삶은 곧 그리스(아테네)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점이 있어, 비극에서 그의 역할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신화에 의거해서 비극이 씌여지고 상연되었는데, 어느덧 비극작가가 다룬 그 배역의 삶이 신화의 일부로 포함되어 유포되기도 하는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비극이 신화에서 역사 사이의 문학 그리고 공연의 한 장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한국어 위키백과는 미국 대선의 슬로건으로 유명해진 이 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넓게 쓰인 어구로, 이 덕분에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빌 클린톤(1946년~  )은 제50대와 제52대 아칸소 주지사를 지냈으며,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재임한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이다. 46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세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었다. 그는 냉전이 끝난 시대에 대통령이 되었고, 첫 번째 베이비 붐 세대 대통령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에서의 선거전은 진보와 보수로 대립각을 세운 양당제가 보여주는 최상의 정치쇼라고 할만큼, 흥미진진하다. 국내 대선 국면은 답답하고 해서, 미국 대선 과정을 마치 박지성이 뛰고 있는 영국 프로축구팀의 경기를 심야에 시청하듯 관심을 가지고 보았겠는가! 딱 단어로 방향 제시를 끝낸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승부는 갈린다. 클린턴 재임 이후 정권은 공화당 아들 부시의 시대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시작될 즈음이다. 바로 이 즈음에 미국드라마 <더 웨스트 윙> 시리즈가 시작되어, 6-7년 동안 시즌7 제작 방영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제는 세계 시청자들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 백악관의 참모진들이 모여 일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곳(대통령과 가족들이 머부는 곳은 '이스트 윙'이다). 민주당 소속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하고, 8년의 재임기간이 끝날 무렵에 젊은 라틴계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미국 민주당은 9년째 집권에 들어가는 것으로, 드라마(시즌7)는 막을 내린다. 공화당 집권기에 민주당 집권기를 가상한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 가지지 못한 이들의 '바람' 덕분일까? 그리고 8년이 흐른 후에 아들 부시의 집권이 끝나고 미국은 다시 민주당 오바바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다. 드라마에서 라틴계 대통령이 유력주자로 부상하자, 흑인 유권자들이 아직 흑인도 못해봤는데, 라틴계냐며 등을 돌리는 것을 수습하는 일련의 과정은 인종갈등의 복잡다단한 일면을 보게 하기도 하고, 이후 실제 진행된 역사에서 이 드라마의 영향이 어쨌거나 상당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짐작하게 한다.

2012년의 대선이 끝나고, 곧 대통령의 이취임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시간들을 복기하듯 살피면서 여러분은 어떤 진단을 내일 것인가. "아직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고?  "문제는 역사야, 바보야"였다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야!"라고.. 마음대로 상상하시길. 다만 한 가지만 밝힌다면(시즌1에서 7까지 그 숱한 드라마를 완전정복하고서 드리는 말씀), 특히 우리나라 야권 정치인들은 드라마를 좀 봐야 할 것 같고, 드라마라도 자기 내면화해서(책 읽기 싫으면)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순발력을 좀 발휘하시라~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요즘 드라마 재밌어요, 서둘러 귀가하여 드라마를 본다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작년 어느 인터뷰에서 들었다. 주부(라고 해서 미안하지만)들이 주 시청자인 드라마를 보아야 펼칠 시정에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김진애 전 의원이 대선국면 한 방송에서 <더 웨스트 윙>을 언급한 적이 있고, 이후 문재인 대선 후보는 막바지 유세에서, 드라마 속 미국의 웨스트 윙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들처럼 해보겠노라고, 사실, 참여정부의 집권기에 이 드라마가 제작되고 주로 방영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웨스트 윙의 중심은 누구겠는가, 대통령이 아니다.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의 보좌진들이 다 주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때늦은 미드 언급이 속상하고 화가 났으며, 김진애 전 의원의 드라마 언급 덕분에 이 드라마의 존재를 알고 보게 되었음에도.. "우리도 그들처럼",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세계를 움직이는 대통령, 참모군단이라는 자부심이 그들에게는 있다. 세계의 이목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한다. 자존심, 자부심의 문제 등.

뮤지컬이 탄생한 곳은 미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뉴욕 브로드웨이는 세계 뮤지컬 시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영화에서의 헐리우드 역할 못지 않다. 제대로 된 뮤지컬이 관객들 가슴에 감동으로 꽂히면, 퍼내고 또 퍼내도 자꾸만 채워지는 요술단지처럼 스테디셀러 뮤지컬은 한때의 대박을 노리는 블록버스터급의 영화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영광을 누린다. 공연전문기자로서 특히 공연예술의 꽃이라는 뮤지컬 관련 기사들을 써오고 있는 박돈규 기자가 고심 끝에 골라낸 20편의 뮤지컬 작품들에 담긴 인생을 읽어낸 책, 뮤지컬 블라블라블라는 실제 작품에 대한 각론들로 출발하여, 뮤지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독자 스스로 찾게 하는 보기 드문 저작이다. 뮤지컬은 자본의 논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그러한 한계를 적극 인정하고,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한다. 원작소설,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사로잡은 영화 등 최고의 스토리를 블랙홀처럼 끌어당기고 오로지 하나를 선택하고는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안다. 그리고 선택한 하나의 스토리를 위해 가진 것, 그리고 가용 가능한 모든 것을 바리바리 끌어내어 집중하고, 마침내 한 편의 뮤지컬을 시장에 내놓는다. 그렇게 선정된 스토리 혹은 테마들 가운데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웃고 사랑 때문에 웃는 우리네 인생이다. 오래된 가요들, 버전이 새로워진 현대의 뽕짝(트롯)에서, 현란한 춤이 가미되어 주객이 전도된 댄스가수들의 사랑 노래들까지, 숱한 노래의 가사와 거기에 담긴 스토리를 보라, '사랑'이다.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저자가 고르고 골라낸 작품들은 이미 관객들에게 그 흥행으로 작품성을 인증받은 것들이므로, 그 작품들의 스토리가 뭐냐는 그 공통분모를 추출한 끝에 내리는 결론은 나름 타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

그래서 뮤지컬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뮤지컬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스토리야, 바보야(It's the story, stupid)라고. 박돈규의 <뮤지컬 블라블라블라>를 읽으면서,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주장이 아니라, 섬세하게 작품의 이모저모, 무대 위와 무대 아래, 무대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최고의 스토리를 확보한 '시작은 반'의 성공임을, 그리고 거기에 집중할 총알을 확보하느냐 마느냐, 그러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는 스텝진들이 결합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매력적인 스토리안가, 다시 문제는 스토리로 돌아와 주옥과도 같은 작품 한 편을 완성한다. 그리고 테마로 치면, '사랑 플러스 알파'라고 압축할 수 있을 것인데, 어느때보다도 뮤지컬을 관람할 선택의 폭이 넓어진, 시장이 무르익어 가는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이 책은 뮤지컬이란 무엇인가, 좋은 뮤지컬이 선사하는 감동의 스펙트럼으로, 독자를 관객으로 관객을 독자로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차량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 네비게이션의 음성은 중년의 사내_본인은 좀 억울하겠지만-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실세는 멜레토스였고, 고발자로 앞장에 서는 아뉘토스는, 그리고 뤼콘은 그의 동조자였다. 변론 초반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고와 첫 번째 고발인들에 맞서 스스로 변호한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시종일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무고해온 아뉘토스와 그 동아리들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릴 적부터 여러분가운데 다수를 제자로 받아들여, "소크라테스라는 현자가 있는데, 그는 하늘에 있는 것들을 사색하고 지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며 사론(邪論)을 정론(正論)으로 만든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자신을 여러분에게 나를 무고해왔던 사람들(소크라테스의 변론 18면)

 

이라고.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표작은 <구름>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이런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내게는 무서운 고발자들이다. 게다가 이 고발자들은 수도 많고 벌써 오랫동안 나를 고발해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러분이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시절이나 청년시절부터 접근했으니, 사실상 자신은 궐석재판을 받은 셈이라고,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이름조차 몰라 그들이 누군지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들 가운데 한 명이 희극작가라는 것 말고는.

 

그들은 모두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곳 법정에 세울 수 없으니, 눈에 보이지 않은 적대자를 상대로 변호를 하고, 답변하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반대신문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변론 19면)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이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최근에 고발한 사람들, 다른 하나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인데, 후자부터 변론하겠노라고. 다른 건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문으로 그를 압박했다면,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 <구름>에서 희화화하는 소크라테스는 엄연하게 고소장(선서 진술서)에도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스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라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들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소크라테스만이 아니라 실존하는 에우리피데스도 작품에 등장시켜 비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아테네인들을 공범자로 만들어버린 위험천만한 재판에서 희극 <구름>은, 소크라테스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요샛말로 소음마케팅(noise marketing) 혹은 구전마케팅(Buzz Marketing)의 고전이며 원조라 하겠다.

 

소크라테스의 소피스트 혐의를 하나의 신념처럼 굳혀 버린 사건이 바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이었던 모양이다. 고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문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림자와 싸우는 형국이라고 토로했을까? 대체 희극 <구름>이 어떤 내용이기에..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묘사한 희극 <구름>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버지 스트렙시아데스는 허영심 많은 아내와 전차 경주와 말(馬사)에 미친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고민에 빠진다. 아들 페이딥피데스의 호사취미인 승마 때문에 빚더미에 오른 것. 아버지는 빚을 떼어먹기로 작정하고, 소송을 이기게 해주는 변론 학원에 아들을 맡기기로 한다. 이 변론 학원이 소크라테스의 사색소다. 아들은 소크라테스로부터 변론술을 배우더니만 급기야 자식이 부모를 때려도 좋다는 황당한 논변을 펴질 않나, 제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우기질 않나,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상식을 떠난 궤변을 고집하자, 소크라테스 때문에 아들을 버렸다며 사색소를 불태워버린다는 이야기다.

현존하는 저명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나이 47세인 기원전 423년에 초연되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399년)가 델리움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다음해다.

<구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주장한다. 첫째, 전통적인 가치와 믿음이 무너지고 있으며, 소피스트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둘째, 소피스트의 영향을 받아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공동체의 도덕과 정의는 배반하고 있다. 셋째, 이런 부도덕한 가치관을 전파하는 것이 소피스트인데, 소피스트는 하늘과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탐구하는 자연철학자요,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법정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진실을 말하였다면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도 진실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제자 플라톤이 옹호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모습만 진실인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파네스가 재구성한 소크라테스의 모습도 나름의 진실일 수 있다. <구름>은 당대의 시민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보였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고, 시민들에게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였다. 작품은 작품일 뿐이라야 하는데,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이라는 장르의 면죄부를 빌려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 정치적인 민감한 사안을 다뤄, 고발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구름>의 889~1104행은 아예 ‘사론(邪論)’과 ‘정론(正論)’이 극중 인물로 등장하여, 아곤(agon: '토론'이라는 뜻) 부분을 포함한 논쟁을 펼치는데, 아곤은 드라마의 주요 쟁점에 대한 두 적대자 사이의 토론으로, 이때 먼저 발언하는 쪽이 늘 지고, 작가는 사론의 손을 들어준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하늘 높이 있는 것을 골똘히 생각하는 자이며, 지하의 온갖 걸 탐사하는 자'였으며, '한결 약한 주장을 더 강한 주장으로 만드는 자'였던가? 해서 아테네인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발 그대로 '이것들을 탐구하는 자들은 신들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였던 걸까? 아리스토파네스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해도 자연과학자로서의 소크라테스는 젊은 날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곧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내면의 윤리를 본격적으로 사색하기 시작하기 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아테네인들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소크라테스를 구분할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테네 일반 시민의 눈에 일삼아서 장터에서 ‘말장난이나 하는’ 소크라테스는 분명 소피스트였다. 그들의 상식에 소피스트는 무신론자요, 무신론자는 불순한 놈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불순한 놈으로, 그의 유죄 판결에는 소피스트 혐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으리라.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펴냄)과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1』(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펴냄) 내용을 언급하면서도 어느 쪽에도 충실하지 못한 글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앞서 거론한 인물들은 27년 동안 지속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 기간을 살았고, 전쟁에서의 스파르테에 진 아테네의 국내 정세가 아주 험악했던 점, 유명한 대학에서 학생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교수로 현자로 존경받아야 할 소크라테스를 고액연봉을 받는 사설학원의 유명강사쯤으로 취급해버리는 점, 곧 소피스트가 뭐길래에 대한 점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고전(古典)는 그 내용을 제아무리 많이 알고서 읽는다고 해도 영화처럼 ‘스포일러 다량 함유 리뷰’라는 전제를 하지 않아도 그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읽은 번역본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었다면, 이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원전번역으로 만날 때이다. 이처럼 당대의 원칙적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대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빛나는 작품들에도 객관적인 평가를 해줄 때이다. 요절했거나 억울한 죽음에 한국인 고유의 정(情)과 한(恨)이라는 기재가 작동하기에 하는 말이다.

라프리에르는 『고전사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이다. 그에 비하면 몰리에르는 무뎌 보이고, 셰익스피어는 어릿광대 티가 난다."고 했다. 한 해가 가고 한 해만 온 것이 아니고 대선을 전후하여 가는 대통령과 오는 대통령의 시대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5년 우리 사회에서 아리스토파네스처럼 정치권의 비리와 무능을 해학적으로 고발한 진정한 희극이 있었던가. 앞으로 5년 웃음으로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을 어루만져줄 해학과 풍자의 정치개그는 지속가능할 것인가!

 

[뱀의 해에 뱀말]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수록된 책 말미에는 <향연>이 있는데, 에로스 곧 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아가톤의 수상을 축하하는 뒷풀이자리에서 펼쳐지는 말의 행연에는 아리스토파네스도 등장한다. 향연은 기원전 384년경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며, 소크라테스가 54세이던 때 아가톤의 집이 배경이다. 향연이 진행된 해는 기원전 416년, 아리스토파네스는 29세이다. 이날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작가답게 인간들 중에는 남성과 여성 외에 암수한몸도 있었는데, 인간들의 막강한 힘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가 인간들을 반반으로 나눠놓은 까닭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 반쪽을 동경하게 됐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플라톤은 이들-파이드로스(신화학자), 파아사나아스(소피스트), 에뤽시마코스(이사), 아가톤(시인)-의 평소 지론을 은근히 패러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크라테스말씀에 이어 이날 향연에는 소크라테스의 몸과 영혼을 흠모했던 알키비아데스가 ‘게스트’로 깜짝출연하여 스승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이날 아리스토파네스는 16년후 자신의 작품이 존경에 마지않는 현자(賢者)를 사형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혜의 향연에서 오간 얘기가 너무나 훈훈하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1>에도 올립니다. 다른 한쪽의 리뷰를 올릴 때에 한 쪽을 내릴 것입니다.